이번주 주간경향(988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주말까지 강의를 하고 1박2일 휴가를 다녀오는 바람에 서평을 썼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폴 우드러프의 <최초의 민주주의>(돌베개, 2012)에 대한 것인데, 책의 몇가지 논점에 대해서는 관련서들을 더 읽고서 따로 다루고 싶다. 저자의 책으론 <연극의 필요성>도 이번에 구입했는데, '민주주의와 연극'이란 주제를 다루는 듯하다. 소개됨직한 책이다... 

 

 

 

주간경향(12. 08. 14) 아테네 민주주의는 무엇을 추구했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사람들에 의한, 그리고 사람들을 위한 정치체제”다. 그 ‘사람들’ 대신에 ‘국민’이나 ‘인민’이란 말을 넣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상식이다.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무엇이 민주주의인가? 투표? 다수결의 원칙? 대표선출제? 우리가 흔히 떠올리게 되는 민주주의의 구현방식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민주주의의 대역(代役)이고 그림자일 뿐 그 자체로는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재검토해봐야 하지 않을까.

 
폴 우드러프의 <최초의 민주주의>의 문제의식이 그렇다. 잘못 알고 있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제대로 이해하자는 것. “우리가 민주주의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민주주의의 대역들에 이끌린 채 길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모범적인’ 민주주의의 실례를 참조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자가 모범으로 삼은 것은 ‘최초의 민주주의’, 곧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다. 완벽해서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고안한 주인공들이지만 아테네 민주주의 또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결함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이상을 향한 그들의 끊임없는 도전만큼은 오늘날까지도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된다.

 

최초의 민주주의가 지향했던 이상은 무엇인가? 저자는 일곱 가지 이념을 지목한다. 참주정으로부터의 자유, 조화, 법에 따른 통치, 본성에 따른 자연적 평등성, 시민 지혜, 지식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추론, 그리고 일반 교양교육이 그가 꼽은 일곱 가지 이념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참주정으로부터의 자유’인데, 저자는 최초의 민주주의의 본질적 특징이 참주정으로부터의 자유와 모든 시민의 평등한 정치참여라고 본다. 참주란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법 밖에서 통치하는 군주를 가리킨다. 요즘이라면 독재정치에 가깝겠지만, 실상은 좀 더 복잡하다. 개인이 아닌 집단도 참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주정은 흔히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등장하기에 곧바로 알 수는 없고 징후를 통해 식별해야 한다. 저자가 일러주는 참주정의 징후는 이렇다. 정치적 지위를 잃을까 두려워하며, 그 두려움이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말로는 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법 위에 세우려 한다. 비판을 수용하지 못한다. 자신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책임을 추궁받지 않으려 한다. 자신의 비위를 맞추려 하지 않는 자로부터는 조언이나 충고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자기와 의견이 다른 자가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막고자 한다. 이런 징후들이 발견된다면 우리는 즉각 경계태세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자유의 본질, 곧 아테네 시민이라면 민회에서 발언할 권리를 제한하고 억압하기에 참주정은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통렬한 비판은 민주주의가 다중(多衆)에 의한 참주적 정치체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가령 다수결이 대표적이다. 흔히 다수결 원칙과 동일시되는 중우정치는 저자가 보기에 참주정의 일종일 뿐이다. 소수를 위협하고 배제하며 다수에 의한 독재에 종속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참주정에서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방책은 무엇인가. 교양교육으로서 ‘파이데이아’에 주목하게 되는데, 시민교육으로서 파이데이아의 목표는 전문적인 지식 훈련이 아니라 전문가의 주장에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지혜를 갖게끔 하는 것이다. 고대 아테네에서 그런 교육의 대표적 수단이 연극이었다. 아테네인들은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의 극작품을 보면서 정치적 사안과 활동에 대해 따져볼 수 있었다. 오직 아메리칸 풋볼리그 결승전인 슈퍼볼 시청에만 열중하는 게 대다수 미국인의 현실이라면 과연 최초의 민주주의보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인지 저자는 묻는다. 우리도 질문에서 비켜나지 않는다. 과연 우리의 파이데이아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12. 08.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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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986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분량상 지면에서 빠진 문장의 일부를 되살렸다). 여름다운 무더위에 독서 의욕도 떨어지는지라 어디 여행이라도 가면 좋을 듯싶지만, 정작 손에 든 책은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여름언덕, 2012)이었다. '방콕 여행자'들을 위한 책인데, 덕분에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비롯해 관련서만 또 여러 권 주문했다. 의욕은 떨어지는데, 책은 점점 더 높이 쌓아두는 심리라니...

 

 

 

주간경향(12. 07. 31)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을 손에 들 독자의 대부분은 피에르 바야르의 전작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읽은 독자일 것이다. 저자의 책이 연이어 번역되고 있지만 국내에 제일 처음 소개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 아무래도 그의 대표작이면서 제목 또한 직접적인 연관성을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는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이 그 ‘논리적 속편’이라고 말한다.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저자는 “어떤 주제에 대한 우리의 부분적이거나 완전한 무지가 반드시 그것을 일관성 있게 논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이 세계를 좀 더 잘 아는 용도로 활용될 수 있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그가 자주 드는 사례는 무질의 소설의 <특성 없는 남자>에 등장하는 도서관 사서다. 이 사서는 너무도 방대한 도서관 책들 전체에 대한 ‘전반적인 시각’을 갖기 위해 역설적으로 어떤 책도 펼쳐보지 않으며 단지 카탈로그만 읽는다. 책을 읽게 되면 그 한 권에 대한 이해는 얻을 수 있겠지만 총체적 시각을 잃게 되니 그의 ‘비독서’는 전략적인 선택이면서 독서의 한 방식이다. 


여행에서 이러한 비독서가에 해당하는 것이 비여행자, 곧 ‘방콕 여행자’다. 방에 틀어박혀 여행하는 자를 가리킨다. 이들은 여행이 공허하기 때문에, 보들레르의 시구를 빌면 “여행에서 얻는 앎은, 쓰라린 앎이어라!”는 인식 때문에 굳이 여행을 떠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여행을 위해서 반드시 신체를 이동해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믿는다. 방콕 여행자의 상징적 인물이 바로 철학자 칸트인데, 알다시피 그는 단 한 번도 고향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난 적이 없지만 각종 여행담의 열혈 독자였다. 그가 여행할 시간을 내지 못한 것은 역설적으로 더 많은 나라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저자의 관심은 자신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들을 세세하게 묘사한 작가들을 향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다. 서양에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던 중국의 일상과 풍속에 대한 자세한 소개로 유명하지만 정작 그가 직접 중국을 여행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혹이 제기된 형편이다. 중국 문헌에 그의 행적에 관한 기록이 없고, 그의 견문록에 만리장성이나 전족에 대한 언급도 빠져 있어서 진짜 여행기라기보다는 여행객들에게서 들은 정보를 집적해놓은 책이란 가설도 나와 있다. 하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여행과 비여행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입장에서 피에르 바야르는 <동반견문록>이 여행기에서 픽션이 갖는 능동적인 몫을 되새기게 해준다고 재평가한다.

 

 


그러한 재평가는 다양한 사례에 적용될 수 있다. 사모아족 청소년들의 자유분방한 성 풍속을 소개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의 경우도 실제로는 사모아족 마을에서 단지 열흘간 체류했을 뿐이고 그녀의 주장 대부분이 젊은 아가씨들의 간접적인 증언에 의존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정보원들의 성적 환상을 사모아족 성 풍속으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피에르 바야르는 참여적 관찰에 대한 강조 역시 착각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비판한다. 일단 직접적인 관찰은 물리학이나 역사학에서 볼 수 있듯이 이해의 필수조건이 아니다. 또 탐구 주체의 존재 자체가 탐구의 장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참여 관찰법은 간과한다. 상상력과 글쓰기의 힘에 대한 몰이해도 참여 관찰론자들이 빠지는 함정이다. 반대로 바로 그런 근거에서 ‘원거리 관찰’은 옹호될 수 있다.

 


이 원거리 관찰의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2003년 기사 표절 스캔들을 일으켰던 뉴욕타임스의 기자 제이슨 블레어이다. 다른 신문의 기사 일부를 표절한 게 문제의 발단이었지만 알고 보니 그의 현장 취재기사 대부분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작성된 것이었다. 피에르 바야르는 기자로서의 직업윤리를 위반한 점만 제쳐놓는다면 이 경우도 과연 ‘어떤 장소에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성찰하게 해준다고 평가한다. 휴가철 방콕 여행자들에게 위로와 영감을 전해주는 책이다.

 

12. 0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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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에서 펴내는 반연간지 <연극> 제3호(2012년 여름)에 실은 서평 중 일부를 옮겨놓는다. '<햄릿>은 어째서 길어졌을까?'란 문제를 다루려고 했지만, 분량이 충분하지 않았다. 하긴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작품 중 하나가 아닌가. 나중에 한번 더 도전해볼 생각이다.

 

 

 

우리에겐 너무 긴 <햄릿>

“<햄릿>은 너무 길지 않은가?” 옥스퍼드대학교 영문학과의 입학면접시험 문제라 한다. 셰익스피어의 걸작이자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의 하나인 <햄릿>이 너무 길다? 듣기에 따라서는 불경스러울 수도 있는 질문이다. 미숙한 작가가 쓴 작품이라면 몰라도 ‘무려’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이 ‘너무’ 길 수 있겠는가? 하지만 사정을 들여다보면 근거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거의 4,000행에 달하는 <햄릿>은 셰익스피어가 쓴 가장 긴 희곡으로 <맥베스>나 <템페스트>의 두 배 분량이다. 원작 그대로 공연한다면 4시간이 넘어가는데,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엘리자베스 시대의 일반적인 공연 시간이 2시간 이내였던 걸 고려하면 분명 이례적이다.


<이것은 질문입니까?>(랜덤하우스, 2011)에서 이 질문을 소개한 영국의 저술가 존 판던은 실제로 당시의 평론가가 이렇게 불평했을지도 모른다고 적는다. “셰익스피어 씨는 마음이 어지러운 한 젊은이에 관한 멋진 희곡을 썼다. 그는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에게 복수할지 말지를 놓고 오래 고뇌한다. 하지만 이 젊은이의 지독한 우유부단함 때문에 1시간 남짓이면 충분할 연극은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나 4시간을 넘겨버렸다! 거의 관객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수준이었다. 연극이 절반 정도 지났을 때 나는 하마터면 이렇게 소리칠 뻔했다. ‘빨리 죽이지 않으면 내가 올라가서 죽인다!’” 이것이 유난스런 반응이 아니라면, 현실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 물론 축약하는 것이다.

 

 


원작의 모든 대사를 담고 있어서 4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을 자랑하는 케네스 브래너의 <햄릿>이 예외적인 경우이고 사실 영화화된 <햄릿> 대부분이 2시간 남짓 시간으로 축약된 <햄릿>을 보여준다.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이 2시간 30분이고, 프랑코 제피렐리의 <햄릿>도 2시간 10분 분량이다. 심지어 브래너의 <햄릿>도 2시간짜리 방송용이 따로 있다. 4시간짜리 <햄릿>이 아무래도 부담스럽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판던은 이 문제에 대해서 좀더 신중한 견해를 제시한다. “셰익스피어는 분명히 인류 역사상 가장 실력 있고 뛰어난 극작가중 한 명이었다. 그런 그가 4시간 넘는 분량의 작품을 썼을 때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지 않았을까? 만약에 <햄릿>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면 우리가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요컨대 셰익스피어가 길게 썼다면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길어진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햄릿>을 이해하는 관건이 될 수 있다. 작품을 축약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왜 길어졌는지를 알아야 어떻게 줄일지 방도를 마련할 수 있을 테니까. 따라서 “<햄릿>은 너무 길지 않은가?”란 질문의 짝은 “<햄릿>은 어째서 길어졌을까?”이다. 이것은 <햄릿>을 무대에 올리려는 연출가나 배우들에게라면 더더욱 흥미로우면서도 절박한 문제가 아닐까.

 

(...)

 

<햄릿>에 대한 법률가적 해석

이것이 기본해석이라면, <법, 셰익스피어를 입다>(서울대출판문화원, 2012)에서 저자 안경환 교수는 법학자로서 새로운 시각의 해석을 제시한다. 소위 ‘법률가적’ 해석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시작하는 유명한 독백에서 햄릿은 견뎌낼 것인가, 끝장을 볼 것인가를 고민한다. 어째서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 누가 이 세상의 사나운 채찍의 비난을 견디며/ 폭군의 탄압과 세도가의 멸시,/ 버림받은 사랑의 고통, 법의 지연,/ 덕망 있는 사람에게 가하는 소인배의 불손,/ 이 모든 것을 참고 지낼 것인가?/ 한 자루의 단도면 쉽게 끝낼 수 있는 일인데.”(안경환 역)라고 말하는 대목이 단서다. 특히 ‘법의 지연(law's delay)’에 대한 햄릿의 불만에 주목하여 저자는 햄릿의 고뇌가 ‘신속한 사적 복수’와 ‘지루한 법적 복수’ 사이의 선택을 놓고 빚어지는 것으로 본다. 더 확장하면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통해 원시적인 사적 복수에서 법의 지배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개인적 고통과 불확실한 결과를 그린 작품”이 <햄릿>이다. 


법학자들이 보는 햄릿은 ‘신중한 법률가’의 전형이다. 자명해 보이는 사실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인물이 햄릿이다. 비록 추정이긴 하지만 친구 호레이쇼와 함께 수학한 비텐베르크대학에서도 그의 전공은 법학일 가능성이 높다. 철학, 의학, 수사학과 함께 법학은 중세대학의 4대 학문 가운데 하나였기에 최소한 햄릿에게 법학은 낯설지 않은 학문이다. 게다가 법학은 인간의 추악함과 어두운 세계를 주로 다루기에 과도한 법학 공부는 ‘만성 우울증’을 낳기도 한다. 햄릿의 우울증 또한 전형적인 법학도의 우울증으로 간주하게 되면 특이할 게 없는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햄릿의 다변성도 법률가적 특징이다. 말은 많고 행동은 더딘 이들 말이다. 햄릿은 “절대 안전을 확신할 수 있어야만 행동에 옮기는 법률가와 같다.”


법률가적 해석에 따르면 햄릿은 살인을 통한 복수를 해서는 안 된다. 정당한 법적 절차에 따른 법적 응징을 위해선 충동적인 복수나 원시적 보복 감정을 제어해야만 하며, 햄릿의 우유부단은 그 자기제어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투의 결과로 오히려 높이 평가돼야 한다. 그리고 만약 복수를 감행한다 하더라도 법적 책임을 면하기 위해 햄릿은 치밀한 준비를 한다는 것이 이러한 해석의 요지다.

 

저자는 이런 관점에서 햄릿을 <햄릿>에서 복수의 인물로 더 등장하는 포틴브라스, 그리고 레어티스와 비교한다. 노르웨이의 왕자 포틴브라스는 선왕 포틴브라스의 복수를 하고자 하며, 레어티스는 아버지 폴로니어스를 죽이고 여동생 오필리어를 자살하도록 만든 햄릿에게 복수하고자 한다. 이들은 “눈에는 눈”이라는 ‘구약적 복수관’을 신봉하며 햄릿과 달리 아무런 고민이나 주저 없이 복수에 나선다. 즉각적인 복수를 통해서 ‘법적 정의’와는 다른 ‘원시적 정의’를 구현하고자 한다. 군장을 한 유령의 모습으로 나타나 아들에게 복수를 주문한 부왕 햄릿 또한 이러한 정의관을 대변한다. 하지만 햄릿은 이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성적 법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세 청년 중에 햄릿만 유일하게 이성적인 존재이다.”


안경환 교수는 이런 관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햄릿의 우유부단함조차도 ‘지극히 영리한 법률가의 계산된 행동’이라고 본다. “단순한 분노나 심증만으로 행동에 옮기지 않는 것이 법률가의 기본자세”이고 햄릿의 행동은 그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본자세가 부왕의 복수를 위해 숙부 클로디어스를 살해하고자 하지만 동시에 살인 후에 받을 처벌을 극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도록 한다. 가장 유력한 방법이 심신상실을 가장하는 것이다. 햄릿이 미친 척 가장하는 것은 법률적 책임을 면하기 위한 고도의 계책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햄릿의 모든 행동이 이처럼 계산된 것이라는 가정은 좀 무리한 해석으로도 이어진다. 왕비 거트루드와의 대화를 몰래 엿듣던 폴로니어스를 찔러 죽이는 장면에서 햄릿의 번뜩이는 ‘법률가적 기지’를 읽어내는 대목이 그렇다. 침소를 찾아온 아들 햄릿과의 대화중에 햄릿에게 위협을 느낀 왕비가 “여봐라, 누구, 없느냐!”라고 외치자 휘장 뒤에 숨어 있던 폴로니어스가 “여봐라!”란 소리를 복창하고, 햄릿은 “뒈져라 쥐새끼야!”라고 외치며 바로 휘장을 칼로 찔러 폴로니어스를 죽게 만든다. 안 교수는 햄릿이 이 한마디로 ‘사실 착오’의 법리에 따라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사람’이 아니라 ‘쥐새끼’인 줄 알고 찔렀으므로 책임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어지는 햄릿의 대사는 그런 계산과는 좀 거리가 멀다. “이런, 비참한, 경솔한, 나서기 좋아하는 바보 같으니, 잘 가시게./ 난 또 자네 상관인 줄 알았지. 자네 운이라 생각하시게나.”(김정환 역)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 대사대로라면 햄릿은 폴로니어스를 ‘쥐새끼’가 아니라 ‘자네 상관’, 곧 클로디어스로 오인해서 죽인 것이다. ‘사실 착오’로 자신을 방어하려는 계산이었다면 오히려 ‘실수’를 부각시키는 말로 변호했어야 옳았다. 클로디어스인 줄 알고 죽였다는 것은 자기변호의 말이 아니다.


물론 사실 착오도 이 사건과 관련하여 재판이 이루어져야만 동원할 수 있는 법리다. 작품에서는 재판 자체가 소집되지 않는다. 살인을 목격한 거트루드가 햄릿을 변호하기 위해 그가 미친 상태에서 칼을 휘두르다가 폴로니어스를 죽였다고 클로디어스에게 보고할 따름이다. 그녀는 햄릿이 융단 뒤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자 “쥐새끼, 쥐새끼!”라고 고함을 지르며 얼이 빠진 듯 ‘착한 노인’을 보지도 않고 죽였다고 전한다. 이러한 증언의 밑바탕에 놓인 건 사실 착오가 아니라 아들에 대한 모성적 보호본능이다. 그리고 클로디어스는 햄릿의 ‘방종’이 위험하다며 그를 영국으로 보낸다. 영국왕에게 전하는 서신에 햄릿을 즉시 죽이라고 적혀 있지만 햄릿의 영국행은 폴로니어스의 살해 이전에 정해진 것이고, 서신 또한 그 이전에 쓰였기에 살인 행위에 대한 처분과는 무관하다. 햄릿이 법률가적으로 행동한다고 하지만 <햄릿>에는 법의 힘이 강제되는 재판장면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안경환 교수는 “이 작품에는 엘리자베스 영국의 살인죄 법리가 정교하게 엮였고, 당시에 한창 진행 중이던 살인죄 법리 개혁의 내용이 반영되었다.”라고 주장하지만, <햄릿>에서 살인죄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거나 처벌을 받는 인물은 한 명도 없다. ‘법의 지연’이란 햄릿의 말을 그대로 갖다 쓰자면 <햄릿>은 법이 도착하기 전에 상황이 종료되는 비극이다.


마지막 5막에 이르게 되면 햄릿도 결국 숙부이자 계부인 클로디어스에 대한 복수의 충동에 굴복하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내면적 고뇌는 “도덕적 사려가 깊은 법학도의 갈등”이라고 안경환 교수는 말한다. 하지만 폴로니어스 살인에 대한 책임을 사실 착오라는 법리를 이용해 법적 책임으로부터 면제받으려 했다고 가정할 때도 햄릿의 행동을 ‘도덕적 사려가 깊은’ 행동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설사 폴로니어스가 왕비의 내실에 침입한 ‘스파이’라 하더라도 ‘법학도 햄릿’이라면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 처리했어야 하지 않을까. 안 교수는 또 클로디어스의 편지를 위조해 길덴스턴과 로젠크란츠를 죽게 만들지만 이 문서 위조가 이루어진 곳이 공해상이기에 햄릿은 형사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햄릿을 변호한다. 그 경우에도 법적 정당성은 도덕적 정당성과 동일시될 수 없다.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해서 도덕적 정당성까지 얻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법률가적 해석에서 <햄릿>의 결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알다시피 마지막 장면에서 햄릿은 레어티스와의 결투에서 입은 상처로 죽어가면서 덴마크의 왕위는 적국의 왕자인 포틴브라스의 것이라고 말한다. 왕위의 승계 문제를 언급하고 죽는 것이다. 안경환 교수는 이 장면에서 <햄릿>의 진수가 드러난다고 본다. “법률문학으로서 <햄릿>의 진수를 주인공의 비극적인 죽음과 동시에 적국인을 왕으로 승계시키는 수법에서 나타난다. 법률가는 악법과 정의보다 무질서를 더욱 싫어한다. 재빨리 왕위 계승자를 확정하여 권력의 공동 상태를 방지하고 사회질서를 안정시키는 것이 법률가의 주된 관심사일 뿐, 누가 권력자가 되는가는 부차적인 문제다.” 법률가의 이런 속성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점에서도 <햄릿>은 ‘탁월한 법률문학’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햄릿의 관심이 정말로 권력의 안정과 사회질서 유지에 놓여 있다면 이제까지 그가 아버지의 복수 문제로 고뇌해왔던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누가 권력자가 되는가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한다면, 클로디어스가 형수와 결혼하여 왕위에 오르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실상 작품에 처음 등장하는 1막 2장에서 클로디어스는 형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하기도 전에 급하게 형수와 결혼식을 올린 일조차도 국정을 안정시키기 위함이었다고 말한다. 노르웨이의 왕자 포틴브라스가 제 아비가 빼앗긴 땅을 되찾겠다면서 군대를 모으고 있는 상황이기에 이에 대비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논리다. ‘법률가’가 과연 이런 논리에 반대할 수 있을까. 악법과 정의보다 무질서를 더 싫어한다면 말이다. 게다가 포틴브라스에게 덴마크의 왕권을 넘기는 일조차도 적법한 절차와는 전혀 무관하다. 선왕이 전쟁도 불사했던 적국의 왕자에게 임의로 왕권을 이양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햄릿에게 그러한 권한이 있는가. 이것이 ‘법률문학의 진수’라고 하면 법률문학이란 것 자체를 다시 정의해야 할 것이다.


저자도 인용하고 있는 대목이지만 5막 1장에서 햄릿은 무덤 파는 광대들이 건져 올린 해골을 들고서 친구 호레이쇼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건 법률가의 해골인 것 같군! 그 능숙한 구변과 궤변은 어디로 갔지? 소송사건, 신분권, 그리고 모략은? 이 무지렁이에게 더러운 삽으로 골통을 그렇게 얻어맞고도 가만있나? 어디 폭행죄로 고소라도 해보시지, 왜 말을 못해?” 안 교수는 이 대목을 햄릿이 삶의 유한성과 무상을 한탄하는 장면으로 읽는다. 특이한 것은 여기서도 햄릿의 말을 ‘법률가의 화법’으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놀랍게도 “전문용어를 즐겨 사용함으로써 은연중에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고 의뢰인의 경외심을 유발하려는 법률가의 직업적 속성”이 반영된 화법이다! 오히려 그러한 화법을 즐겨 쓰던 법률가들을 조롱하는 장면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런 조롱 역시 ‘신중한 법률가’의 특징으로 볼 수 있는지는 더 생각해볼 문제다. 

 

(...)

 

12. 0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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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책&(408호)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이달의 주제는 지난 5월에 개막된 여수세계박람회를 빌미로 삼아서 '세계박람회'로 정했다. 관련서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몇 권은 된다.

 

 

 

책&(12년 7월호) 세계박람회

 

‘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이란 주제를 내건 여수세계박람회가 5월 12일에 문을 열어 8월 12일까지 관람객을 맞이한다. 월드컵, 올림픽과 함께 세계 3대 행사로도 불리는 국제적 이벤트이니만큼 세계박람회에 사람들의 눈과 귀가 쏠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세계박람회와 관련한 책들에는 어떤 것이 있나. 풍족하진 않지만 세계박람회의 이모저모에 대한 식견을 넓혀주는 책들이 몇 권 나와 있다. 주로 박람회 실무자와 연구자를 겨냥한 책들이지만 박람회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도 얼마든지 손에 들 수 있다. 혹은 박람회 구경 가는 길에 같이 챙겨도 좋을 듯싶다.


기본 가이드가 될 만한 책은 히라노 시게오미의 <국제박람회 역사와 일본의 경험>(커뮤니케이션북스, 2011)이다. 우리가 해방 이전에는 ‘만국박람회’, 그 이후에는 주로 ‘세계박람회’라고 부르는 것을 일본에서는 ‘국제박람회’라 칭한다. 40여 년간 박람회 프로듀서로서 일한 저자의 책답게 1부에서는 국제박람회의 기원에서부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박람회에 이르기까지 박람회의 거의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소개하고 2부에서는 일본의 박람회 경험을 자세히 살핀다. 우리에게 요긴한 건 저자가 간추린 국제박람회의 역사인데, 최초의 근대적인 박람회는 1756년 ‘영국산업박람회’이다. 처음 의도는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그것을 사회에 보급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산업혁명의 시발지인 영국에서 산업박람회가 개최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에 뒤질세라 1798년에는 프랑스도 ‘산업박람회’를 개최했다.


하지만 권력자의 의지에 따라 개최될 수 있었던 국가박람회와는 달리 국제박람회는 좀더 까다로운 요구조건이 충족되어야 했다. 박람회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국가 간의 자유무역체제가 전제돼야 했던 것이다. 19세기 중반 세계무역의 1/4을 점하던 영국은 자유무역으로의 길을 열고,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1851년 세계 최초의 런던국제박람회를 연다. 5개월간 무려 600만 명이 넘는 입장객을 동원해 대성공을 거둔 이 박람회는 뒤이은 국제박람회의 성공모델이 되면서 국제박람회 붐을 가져온다. 영국의 라이벌 프랑스도 1855년 국제박람회를 파리에서 개최하지만 성공적인 박람회는 1867년에 개최된 제2회 파리만국박람회였다. 4만 2천 점의 물품이 출품됐고 15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을 불러모아 제1회 런던박람회의 성과를 뛰어넘었다.


이런 성공사례가 과도한 규모 경쟁을 불러온 것은 당연한데, 최악은 1904년 세인트루이스국제박람회였다. 최대 규모를 자랑한 ‘농업관’을 보는 데만 14-15킬로미터를 걸어야 했다는 이 박람회에서는 체력 부담으로 쓰러지는 입장객이 속출했다고 한다. 무분별하게 난립하는 국제박람회를 규제하기 위한 국제박람회 조약이 1928년에 제정됐고, 1933년 시카고국제박람회부터는 박람회의 공식주제가 선정된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박람회는 내용적으로나 구조적으로 훨씬 다양해진다. 저자는 1993년 대전세계박람회에 대해서는 ‘개발도상국의 저력을 보여준’ 박람회로 평가한다.


대전세계박람회에 이어서 여수세계박람회도 세계박람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터이지만, 이들 박람회의 전사(前史)가 궁금하다면 이각규의 <한국의 근대박람회>(커뮤니케이션북스, 2010)를 참고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최초의 외국 박람회 관람은 1881년 일본에 파견된 신사유람단에 의해 이루어진다. 도쿄의 제2회 내국권업박람회를 둘러보고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1882년 미국과의 수교 이후 파견된 조선 보빙사 사절단은 1883년 보스턴박람회를 시찰한다. 조선전시실을 마련하여 최초로 참가한 것은 1893년 시카고세계박람회부터인데, 동아시아 삼국 가운데서 가장 늦은 것이라 한다. 책은 1940년 조선대박람회까지 주요 박람회의 개요와 전시 물품 목록, 각종 사진자료까지 꼼꼼하게 제시하고 있어서 우리의 근대 박람회에 대한 백과사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종합적인 자료집으로선 여수세계박람회에 맞춰 출간된 주강현의 <세계박람회 1851-2012>(블루&노트, 2012)도 요긴하다. ‘세계박람회의 모든 것’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책으로 특히 풍부한 사진자료가 강점이다. 저자는 1851년에 시작된 세계박람회 160여년의 역사를 많은 사진자료와 함께 일곱 엑스폴로지(Expology)로 풀었다. 역사속의 박람회 또한 단일한 모습이 아닌 복수의 모습, ‘박람회들’로 존재한다는 관점이다. 단순히 개별박람회에 대한 소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박람회가 세계체제의 자본적 운동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전제하에 ‘박람회의 세계체제적 연구’를 시도한다. 박람회 역사에 대한 일람에 덧붙여 이론적 조망까지 검토해보려는 것이다. 박람회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시발점으로서도 의미를 갖는다. 그밖에 이민식의 <세계박람회란 무엇인가?>(한국학술정보, 2010와 <세계박람회 100장면>(이담북스, 2012)도 세계박람회의 간추린 역사를 일람하게 해주는 책들이다.    

 

12. 0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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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서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지지난달인가 페이퍼에서 한번 다룬 적이 있는데,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민음사)의 번역 한 대목을 문제 삼았다. 1998년에 나온 1쇄와 2010년에 나온 신장판 8쇄를 나는 갖고 있는데, 번역은 아무런 교정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많아서 개역판이 나오면 좋겠다. 니체 관련서로 고명섭의 <니체 극장>(김영사, 2012)은 근래에 나온 가장 강렬한(그리고 무거운) 책인데, 들뢰즈의 니체 해석, 특히 영원회귀에 대한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이만한 규모의 국내서는 백승영의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책세상, 2005)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일독해보시길.  

 

 

 

한겨레(12. 07. 14) 신은 하나라고? 니체가 배꼽 잡네

 

“만일 신들이 존재한다면, 내가 신이 되지 않고서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신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말이다. 상식대로 ‘신의 죽음’은 니체의 이 대표작에서 ‘초인의 탄생’을 가능케 하는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신들은 어떻게 죽은 것인가. <차라투스트라>를 읽은 독자라면 기억할 만한 대목이다. 그들은 웃다가 죽었다.

오래전 어느 날 분노의 수염을 한 어떤 신이 가장 무신론적인 말을 내뱉었다. “오직 하나의 신이 있을 뿐이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 된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다른 모든 신들이 깔깔거리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들은 외쳤다. “신들이 존재하지만, 하나의 신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바로 신성함이 아닌가?”(펭귄클래식) “신들은 존재하지만 유일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신다운 일이 아니겠는가?”(한길사) “신들은 존재하지만 유일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신성함이 아닌가?”(민음사)

손에 잡히는 대로 몇 가지 번역을 나열한 것은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에서는 이 대목이 좀 다르게 번역됐기 때문이다. “신들이 존재하건, 단 하나의 유일신도 존재하지 않건, 소위 그것이 신(성) 아닌가?” <차라투스트라>의 내용과 비교하면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번역이다. 니체가 말하는 신성은 복수로서의 신들은 존재하지만 단수로서의 신, 곧 유일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복수주의(pluralism)가 들뢰즈가 강조하는 니체 철학의 본질이다. 더 나아가 그는 복수주의가 철학의 고유한 사유방식이자 발명품이라고 말한다.

들뢰즈에 따르면 니체는 ‘위대한 사건들’을 믿은 게 아니라 사건의 복수적 의미를 믿었다. 모든 사건과 현상, 말과 사유는 다수의 의미를 갖는다. 때로는 이렇고 때로는 저렇다. ‘그때그때 달라요’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 헤겔은 복수주의를 순진한 의식과 동일시하면서 비웃었다. 마치 요랬다조랬다 하는 아이들의 미숙한 행태와 닮았다고 보는 쪽이다. 헤겔식으로 말하면 진리는 하나인 것이지 여럿이 될 수 없다. 그러한 헤겔주의에 맞서 들뢰즈는 사건이나 현상이 이렇게도 보이고 저렇게도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철학의 가장 위대한 성취이자 성숙함의 표지라고 말한다.

이렇게 보거나 저렇게 본다는 것은 무게를 재고 가치를 평가한다는 뜻이다. 다르게 말하면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은 다른 무엇보다도 해석의 기술이 된다. 이 해석은 해석하는 자의 존재양태와 분리되지 않는다. 세상엔 고귀한 자가 있고 비천한 자가 있다. 인생은 바라보는 자에 따라서 희극도 되고 비극도 된다. 그것을 관통하는 단일한 보편성이란 없다. 칸트적 보편성을 니체는 ‘거리의 파토스’로 대체한다. 고귀한 자와 비천한 자의 거리는 제거될 수 없다는 관점이다.

들뢰즈는 <니체와 철학> 서두에서 그 핵심을 이렇게 정리한다. “니체의 가장 일반적인 기획은 철학에 의미와 가치의 개념을 도입하는 데 있다.” 그러한 가치의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칸트의 비판철학은 참된 비판을 수행하지 못했다. 니체 스스로 철학사를 니체 이전과 이후로 구분한 이유다.

 

12. 0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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