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 지음, 정승희 옮김 / 작가정신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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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단편집을 좋아한다.
중남미 소설을 좋아한다.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라는 작가의 프로필도 맘에 든다. ' 여성, 동성애자, 좌파'인 그녀는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을 통해 제도와 문명이라는 틀 속에서 살아가는 회의하고 주저하는 일상의 순간, 현대적 삶의 편린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무려 서른개의 단편이 있으니 책도 실하다.
제목들도 너무 멋지다. '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 '장거리 주자 멈추어서다', '언어의 심연' , '도마뱀의 크리스마스' , '침대에서 내려오기 위한 지침들' , '빛이 물고기에게 미치는 영향', '돼지에게 국화 먹이기' ...

단편들의 내용들은 '어디선가 읽은' 이라기 보다 ' 신선한 날것의 새로운' 느낌이다.
동시에 ' 지루해서 죽을 것 같은' 과 ' 잔인해서 눈쌀 찌푸리게 하는 ' 이기도 하다.

이 모든걸 다 함께 지닌 단편집이라니.
읽어볼 시도 해볼만하다.

표제작이기도 한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은 어느 정크야드에 세워진 '쓸모없는 노력' 의 기록을 모아 놓은 박물관과 그 박물관을 매일같이 방문해서 기록을 열람하는 '나'의 이야기이다.
' 가계도를 복원하고, 금을 찾아 광산을 파헤치거나, 책을 쓰는 것 같은 쓸모없는 노력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복권에 당첨되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
책에서 이야기되는 '쓸모없는' 은 머릿속에서 계속 퍼져나가서, 이 세상의 모든 행동과 꿈들이 '쓸모없는 짓'으로 분류되어 박물관 어딘가 처박혀 있을 것 같은 염세적인 마음마저 들게 한다.

그 외에도 '모나리자' 에서는 뒤샹의 '모나리자' ( 콧수염 그려진) 을 보고 스토리를 새롭게 만들어 내고 '타잔의 외침' 에서는 은퇴한 배우 자니 와이즈물러( 초대 타잔역) 에 대해 희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등 현재를 관찰해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시간이 약이다' , '창과 벽 사이' ( 스페인 숙어로 곤란에 빠졌다는 뜻) , ' 고집스런 양 한마리' 에서는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의 꼬.투.리.를 잡아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망명작가인 그녀의 경험은 '조각상들과 이방인들의 조건'  ' 도시' 와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으며,
그런 경험에서 나왔을법한 사회와의 화해. 충돌에 관한 이야기들도 ' 침대에서 내려오기 위한 지침' , ' 느슨한 줄에서 살기' 등에서 볼 수 있다.

줄거리만으로는 종합선물세트같은 단편집이 아닐 수 없다.


여기 모인 단편들을 난 '미완성' 혹은 '메모'라 부르고 싶긴 하다. 단순히 길이가 짧아서, 스토리가 완결되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평생 단편만을 썼던 보르헤스의 그 단편들에 집약된 완벽하고 완전하며 완결된 느낌을 받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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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2005-11-03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미스하이드님.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역자입니다. 뻬리 로시의 작품듦은 치밀한듯 한데 또 미완의, 열려진 구조를 갖고 있는 것같아요. 저한테는 한 가지 해석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모호함이 뻬리 로시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저도 독자로서 시작한 번역이니 만큼 작품에 대한 독자들 반응이나 느낌이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글 남겨주셔서 반가워서 댓글 달아봅니다:)

하이드 2005-11-03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닉네임이 멋지시네요. ^^ 좋아하는 곡인데.
내용도 알차고, 새로운 스타일이라 맘에 든 책이었습니다.
처음 읽을때는 미완의 느낌이 그리 편하지 않았는데, 다양한 해석과 결말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렇게 본다면, 또 매력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군요.
 
시대의 우울 - 최영미의 유럽 일기
최영미 지음 / 창비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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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기 전에 올라와 있는 서른 아홉편의 리뷰들을 훑었다.
대부분 그녀를 '시인 최영미' 로 알고 '서른, 잔치는 끝났다' 란 강렬한 제목의 시인으로 알고 있다.
나 역시 이번에 그녀의 '서양미술사 - 문학과 미술의 특별한 만남' 을 듣기 전에는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 그렇다고 그녀의 시집을 찬찬히 읽어본적이 있던것도 아니였지만) 그녀가 서양사를 강의한다기에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녀는 서울대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했고 홍익대학원에서 역시 미술사를 전공한 미술사학도이다.( 그녀 자신 이 표현을 꺼릴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딱 한 번 들어봤지만, 미술사를 강의하는 그녀의 열정은 ' 자신이 가르치는 것을 정말 좋아하고, 수백번을 봤을 슬라이드를 설명하면서도 본인이 또 감탄하는' 그런 열정이었다. 그렇게 짧았던 두시간여의 강의 동안 미술사와 문학 이야기를 절묘하게 섞어내는 그녀는 본인 스스로 말솜씨가 없다. 두서없고, 어수선하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듣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강의를 신청하고 그녀 이름으로 된 책을 두 권 샀다. ' 화가의 우연한 시선'이라는 비교적 최근에 나온 표지도 아름다운 책과 '시대의 우울'이라는 자그마한 책. 무려 십여년전에 나온 책이다. 목차로 봐서는 비슷비슷한 요즘 나온 책들을 여러번 본 터라 사지 말까. 잠시 고민하며 책을 후루룩 넘기는데, 나를 사로잡는 한문장이 있어 대번에 샀다. ' 나는 '잔치는 끝났다'고 말한 적 없다'  그녀를 알기 전에 그 말은 참 도발적으로 다가왔고, 결국, 제목도 표지도 온통 블루인 이 책을 집었던 것이다.

1995년 1996년의 여행동안의 일기 속에 유럽을 혼자 떠돌았던 그녀의 모습은 지난달 이십여일간의 유럽여행을 떠올리게 했다. ' 생은 왜 내게 이다지도 낯설까. 이방의 도시를 전전하며 나는 자신과 끝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68pg '여행을 하면서 나는 점점 내 자신에 근접해갔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 내가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게 무엇인지. 얼마짜리 방이면 만족할 수 있는 인생인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91pg 이런류(?) 의 비슷한 유럽 일기. 함정임의 일기가 문득 생각났다. 그녀의 그 책은 묘지기행이었는데, 너무 오버된 감정으로 보기에 심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대부분인 그림 이야기에 간간히 섞여 나오는 최영미의 독백은 그대로 가슴 털썩스럽다.

이런류(?) 의 책들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이주헌의 책들이다. 그의 글은 솔직담백하며 자연스럽다.
최영미의 글? '깬다 ' 아. 이런글도 쓰는구나. 그저 이런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깜짝깜짝 놀라는데, 그녀가 속해있는 '서양미술사' 공부하는 무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괜찮을까, 그녀? 두번째 책인 '화가의 우연한 시선' 의 책껍데기에는 유홍준의 추천사가 있다. ' 그녀가 내 후배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 고하는 걸보면 왕따는 아니겠지?

언뜻봐도 호오가 분명해보이는 그녀다.
좋아하는 렘브란트의 그림 앞에서는 한없이 무너지고
루벤스의 거대한 캔버스들 앞에서 탄식하며' 거 참 비싼 화폭에 엄청나게도 물감을 싸질렀군'  이라고 말한다.  피터 브뤼겔의 '꿈나라 동산' 을 보는 그녀의 감상은 다음과 같다.
' 맛있는 음식들이 지붕 위에 가득 널려 있고 포식한 세 명의 남자가 늘어지게 누워 자는 한가로운 모습. 피터 브뤼겔의 [꿈나라 동산](1956) 이다. 동화책의 삽화 같은 그림 속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을 법한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오른쪽에 누운 남자의 바지춤이 벌어져 있는 게 아닌가. 너무 배 터지게 먹은 탓에 허리가 잠기지 않은 것이다.  사타구니 가리개가 벌어진 틈으로 혹시.... 아무래도 긴가민가하여 그 부위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혼자서 빙그레, 캔버스 앞에서 웃었다. '꿈나라 동산'이 어린아이의 동화에서 성인만화로 건너뛰는 순간이다. 대식가와 게으름뱅이들을 위한 지상낙원을 묘사한 이 작품의 실제 의도는 과식과 게으름에 대한 비판이라는데, 아무려면 어떤가.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어디선가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의 기억이 새롭다. 그림 속의 과자 접시들은 얼마나 신기하고 맛있어 보였던지. 난 그 음식들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아저씨들이 부러워 군침을 흘렸었다. '132pg

http://www.abcgallery.com/B/bruegel/bruegel-3.html


딱히 할일이 없어서 미술관 돌아다녔다는 그녀.
'나는 쌀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 - 89) 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 오후에 아까데미아 미술관을 나와 달리를 보러 바르똘로메오 교회( Chiesa S. Bartolomeo) 를 방문한 것은 순전히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였다. 내가 예약한 베네찌아발 빠리행 야간열차는 저녁 8시에 떠나는데 그때까지 무려 여섯 시간 동안 딱히 갈 데가 없었던 것이다. 점심을 먹은 뒤 리알또 다리 부근을 얼쩡거리다 심심해서 교회를 찾아들어갔다.' 190pg

호오가 분명하다고 했지만, 이 책에는 물론 그녀를 반하게 한, 그녀를 몇번이고 감탄하게 한 때로는 그녀를 무너지게 한 그림예찬들이 대부분이다. 이런류(?) 의 책들 속에서 '싫다' 는 얘기를 거의 본 적이 없기에 재미있어서 몇가지 인용하였다고 해서 오해말기를.

그래. 그녀. 시집을 낸 시인이었지? 그것도 대박친 시집.
이 책에서 그녀가 가장 열광하는 것은 '렘브란트' 가 아닐까. 그녀는 무언가 답을 찾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고, 그 여행을 끝낼쯤 그 답을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혹은 지금까지도 찾고 있는건지 모르겠지만.그녀가 그토록 열광하는걸 보면 여행중에 여러 도시에서 만난 렘브란트의 '자화상' 들에서 가장 근접한 답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평온하게 가라앉다가도 문득 들끓고, 웃다가 다시 분노하고, 상처받는가 하면 곧 냉소한다. 놀람과 두려움의 차이를, 자포자기와 견인의 미세하고도 심오한 차이를 그보다 더 잘 표현해낸 화가는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으리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의 표정을 한순간에 포착한 그의 초상은 언제 보아도 신선하고 현대적이다. 조금치의 감상도 허용하지 않고 자신을 직시하는 램브란트. 그 끔찍한 자의식은 거의 19세기의 보들레르 수준이다.

나의 신이여, 내가 형편없는 인간이 아니며 내가 경멸하는 자들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증명해줄 아름다운 시 몇편을 쓰도록 은총을 내려주소서.

- 보들레르, [빠리의 우울] -

그래, 바로 이거다. 뒤러가 세상에 대해 그토록 간절히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했다면, 램브란트와 보들레르는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했을 뿐이다. 135pg

그녀는 '그림들의 배후를 추적하는게 버릇' 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깐 좀 우아하게 말하면 '그림의 역사와 배경을 공부하는 것' 인데, 그녀의 그런 툭툭 던지는 말투는 은근히 거만한가? 겸손한가?
소크라테스이전부텀도 '요즘애들 버릇없'었듯이 시대 또한 항상 우울하다. 그래도 그 '우울' 을 힘으로 살아가는건 왠만한 예술가에게도 버거운 일일게다. 나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특별한 ' 우울' 은 찾아오고. 그 우울을 허용하는 시절이 있었다. 그녀의 책 제목 ' 시대의 우울' 은 나에게 그렇게 공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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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10-07 0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 털썩스럽다.. ^ㅂ^)b
시대의 우울, 우연히 읽고는 참 의외다 싶었어요.
서른, 잔치는 끝났다. 시 제목만 알고 있었는데, 그러면서 괜히 우습게 보고 있었는데, 참. 괜찮더라구요. ^^
화가의 우연한 시선도 좋았구요. 멋진 강연 열심히 들으시는 하이드님의 모습이 제일 멋집니다만. ^^

하이드 2005-10-07 0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너스.. 음.. 안 보인다. ^^;;

판다님. 그러게요 .그러게요. 저도 그랬는데, 정말 의외네요. 이 사람.


hnine 2005-10-07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기 시작해서는 단숨에 읽은 책 중의 하나랍니다. 작가의 강의를 어디서 들으시는지, 부럽네요. 시도 솔직하고 직선적이었지만, 저는 이 사람의 이런 수필이 제일 맘에 들더군요. 최근에 낸 소설 '흉터와 상처'는 약간 실망^ ^

클리오 2005-10-07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말, 시인인데 서양미술 쪽으로 넓혀가는 줄 알았었는데... 완전 잘못 짚었었군요.. ^^

kleinsusun 2005-10-10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강의를 어디서 들어시는거예용?
살짝꿍 알려주세용.

카페인중독 2006-09-21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녀의 그 싸한 말투때문에 자꾸 들춰보게 되요...
그 말투가 중독성이 좀 있더라구요...^^
 
스트로베리 숏케이크 Strawberry Shortcakes 1~2(완결) 세트
나나난 키리코 지음 / 하이북스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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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키리코 나나난
이 울림도 아름다운 소리의 이름을 가진 작가는
어쩌면 이렇게 우울한걸까.

다른 단편에선 그나마 우울 속의 희망. 일상 속의 일탈( 혹은 그 반대) 이 있는데,
이 책에서 모든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 사랑받고싶어사랑받고싶어' 를 힘겹게 되뇌이며
'죽고싶어. 죽어버릴까.' 를 절망속에 되뇌인다.

자신이 한없이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겨지고
냅둬도 잘만흘러가는 시간 앞에 체념하고, 혹은 심지어 두려워하고

내 속에는 분명 이런 우울함이 시도 때도 없이 치고나온다.
그런 우울함을 이렇게 책으로 그려내는 작가는
이렇게나마 자신의 독을 내뿜었으니 이제 살만한걸까?

다른 작품과 달리 간결하면서 성의없는 펜놀림이
더 우울하다.

두권짜리 장편이지만, 한 권 속의 단편보다 더 짧게 읽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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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 아이 블루?
마리온 데인 바우어 외 12인 지음, 조응주 옮김 / 낭기열라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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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래간만에 아주 특별하고 아름다운 책을 읽었다.
오늘 오후 도착한 푸른빛의 예쁘고 작은 책을 점심시간과 집으로 오는 귀가시간을 투자해서 순식간에 다 읽어 버렸다. 덕분에 지하철에서 눈물 가득 머금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이걸 흘려야 하나, 마를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그냥 닦아야 하나 고민해야 하긴 했지만서도.

표제작이기도한 '앰 아이 블루'는 내가 이 책 받기 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우울한' blue 가 아니였다. 그러기는 커녕 경쾌하기 짝이 없다. 호모로 불리며 반친구들에게 얻어맞고 진흙탕에 엎어져 있는 빈센트 앞에 '요정(fairy : 속어로 남성 동성애자를 뜻하기도 함) 대부' 멜빈이 나타난다. 맞다. 신데렐라에 나오는 요정대모 아니고 요.정.( fairy) 대부. 즉. 게이수호천사가 나타난다. 빈센트는 본인이 호모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정체성에 혼란을 겪지만, 이야기조차 꺼내기 힘든 현실이다. 그런 그에게 요정대부는 하루동안 '게이더(gaydar : 게이 레이더 : 동성애자가 다른 동성애자를 식별하는 능력) ' 를 쓰게해주고 3가지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다. 이 단편은 무지하게 경쾌하고 절로 웃음 삐져나오게 하면서 동시에 유익하다.

'어쩌면 우리는'  은 커밍아웃하는 앨리슨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앨리슨 할머니가 옛 경험담을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크리스마스때 스위스에 있는 학교를 다닐때 독일의 친구 집에 놀러갔다. 마을 어귀에 '유대인 사절' 이란 간판이 붙어 있었지만, 친구는 다 정치적인거라며 새총리 히틀러 때문에 그러는거니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 잘 차려진 저녁을 먹고 있는데 비쩍 마른 하녀하나가 " 저 시중 못 들겠어요. 남자든 여자든 어린애든...' 그러더니 날 쳐다보더니 이러는 거야. ' 유대인 피가 조금이라도 섞인 것들한테는 두 번 다시 시중 못 들어요.'  .... 그러니까 아웃사이더가 된 기분이 어떤 건지 말하지 않아도 안단다. 편견이 어떤 건지도 말이야. 앨리슨, 네 자신에 대해서 이 할미한테 말해줘서 고맙다. 나한테 맨 먼저 얘기해줘서 얼마나 뿌듯한지 모르겠구나'  이 단편의 제목인 '어쩌면 우리는' 이란 제목은 어쩌면 이 뒤에 나오는 이야기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해와 몰이해.  '모든 커밍아웃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남남이 서로를 이해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특히 그 남남이 가족이라면. '

다른 장르의 다른 색깔의 다른 시대의 이야기들이 '동성애' 란 주제 아래 묶여있다.
몇가지 공통되는 것들이 있다면, 첫째 청소년 소설들이니만큼, 성정체성에 고민하고 죄의식을 느끼는 청소년들에게 '그것은 죄가 아니고, 선택도 아니며,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다' 라고 이야기해 주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로는 '소외받는 자' 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동성애자일수도 있고, 동양인이나 흑인 혹은 혼혈일 수도 있다. 유대인이기도 하고, 가족 중에 동성애자가 있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가족' 이다. 가장 가까운 남남인 가족. 가족의 이해와 사랑은 어느 경우에도 가장 중요하고 힘이 된다. 마지막 이유로 나의 눈물을 쏙 빼놓은 작품이 ' 학부모의 밤' 이다.

이 단편집의 소재는 동성애일지라도 위의 것들이 주제일 것이다.
성정체성에 고민하거나 혹은 주위의 그런 이들을 색안경 쓰고 보지 않기 위해 뿐만 아니라, 더 넓은 '사랑' 과 '이해' 그리고 '평등' 의 의미에서 이 책은 참으로 아름답고 또 유익하다.

책을 읽음으로써 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된다면, 이 책 추천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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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5-10-06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네요. 책을 읽음으로써 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나도 아는데. 히히~. 근데 '낭기열라' 이거 생소하고 열라 웃기네요. 낭기열라가 뭘까?

하이드 2005-10-06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5년 8월 어느 날 시내의 모 대형 서점 구매과

그러니까 남... 이름이 뭐더라, (서류를 다시 들여다보며) 남비열라에서 말이죠...
아뇨, (어색한 웃음) 남비열라가 아니구 낭기열라요.
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며) 남기열라.
낭이요, 낭.
아, 네... 아무튼... 출판사 이름이란 게 쉬워야 되거든요. 독자들이 서점에 와서 책 제목을 기억 못하고 무슨 무슨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라며 찾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제 조언을 듣고 이름을 바꾼 출판사도 있어요. 참고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네에...
낭, 기, 열, 라. 그런데 낭기열라가 뭐예요? 무슨 뜻이에요?
아, 네... 그러니까... 혹시... 말괄량이 삐삐 아세요? 그 삐삐를 쓰신 작가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인데요. 그분 작품 중에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란 작품이 있어요. 거기 나오는 판타지 세계 이름이에요. (머쓱) 그 작품을 워낙 좋아해서요. (긁적긁적)

하이드 2005-10-06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고 합니다. ^^ http://nangiyala.co.kr/tt/index.php?pl=8&ct1=2

돌바람 2005-10-06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lliott Smith의 Between the Bars도 듣고 왔어요. 특이하고 따뜻한 출판사라는 생각. 특히 성정체성을 묻는 청소년들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고 손을 내밀 수 있는 따뜻함이 좋네요. 비주류의 문화를 올 곧게 전달하고 보듬어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근데 하이드님, 혹 저 책 표지 조혁준 씨가 했는지 봐줄래요. 포토그라피를 보면 절대 아닌 것 같지만 그새 디자인이 많이 바뀐 건가 의심도 가고.

돌바람 2005-10-06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잇, 일해야 되는디. 벌써 한 시간이나, 내 이래서 하이드님 방에 댓글을 못 남긴다니께.^^*

하이드 2005-10-06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디자인 sailing blu그린이 sylbia kim 디자인 mimuse 로 되어 있네요.

하이드 2005-10-06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 난 자야되는데, 왜 잠 안자고 이렇게 서재에서 .. -_-a

panda78 2005-10-06 0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게이더! 윌 앤 그레이스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었군요.. ㅎㅎㅎ

panda78 2005-10-06 0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원래 관심있던 주제기도 하고, 관련있는 인간들이 주위에 좀 있기도 하고 이래저래 읽어봐야겠습니다. ^^
낭기열라에 얽힌 이야기도 재밌네요. ㅋㅋ

아영엄마 2005-10-06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저 없을 때 리뷰단 모집하구, 알라딘 미워잉~ 어제 리뷰단 모집했던 페이퍼에서 출판사 이름보면서 책(사자왕 형제의 모험-저도 읽었어요!! ^^*) 읽어본 사람만 아는 이름을 지어서 좀 어려워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그런 경향이 좀 있지요? ^^

2005-10-06 0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주미힌 2005-10-06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끌린다.

울보 2005-10-06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받고 바로 보관함에 넣었습니다,,,

chika 2005-10-06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깐요!! 제가 사서 읽을 걸 알았는지 리뷰단에도 안뽑아주고 말이지요..ㅠ.ㅠ
추천이예요!(알라딘 서재팀에 땡투했었는데 바꿔야겠다. ㅎㅎㅎ)

moonnight 2005-10-06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리뷰를 읽으니 안 읽고는 못 배기겠네요. ^^

하이드 2005-10-06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다행입니다. 재밌고 의외로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어요.
치카니이이임~ 고롬요. 고롬요. 알라딘 서재팀에 뭐하러요. 저에게에에 땡투를~~
울보님. 재밌고 유익합니다. 모두가 꼭 읽었음 한다는 책 서문의 말에 120% 동의합니다.
라주미힌님/ 끌리죠? 사셔요~
아영엄마님! 오오 그렇군요. '사자왕 형제의 모험' 이라. 정말 읽어보고 싶어지는걸요.

로드무비 2005-10-23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올리고 나서 님의 리뷰를 읽어봅니다.
빨리도 읽고 쓰셨군요.
감흥에 겨워 쓰신 게 표가 납니다. 추천!^^

하이드 2005-10-23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심때 받아서, 집에가면서 읽고, 바로 썼지요.
 
변화의 땅 - 딜비쉬 연대기 2, 이색작가총서 3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너머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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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단편에 비해 장편 딜비쉬는 재미있다. 무척. 많이.
딜비쉬 단편에 목말라하던 팬들의 요청으로 젤라즈니 자신도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딜비쉬 시리즈를 장편으로 완결을 냈다.

변화의 땅을 관장하는 투알루아의 힘을 얻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그 길을 나아가는 마법사, 기사, 엘프. 모든 이들과는 다른 복수를 목적으로 변화의 땅에 나아가는 딜비쉬와 블랙.

전편에서 힘을 잃고 역시 힘을 되찾기 위해 투알루아에게로 향하는 젤라닉.

고대에서 불러낸 아름다운 여왕 세미라마.

젤레락과 딜비쉬의 대결은 밍숭맹숭하나 스팩타클하게 결말을 짓는다. 유머러스하고, 패러디가 많다.( 유명한 SF 작품들을 패러디 했다고 하는데, 작품해설을 보고야 알았으므로 패스) 그래서인지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세부묘사들이나 개념 묘사들은 때로는 너무나 자세하다.

전편에 비해 '블랙'이 덜 나오는 것이 불만이고, 장편을 읽었음에도 단편을 읽은 것 같은 뒷맛이 좀 찜찜하기는 하지만, 로저 젤라즈니의 팬이라면 딜비쉬 시리즈를 놓칠 수 없다. 물론 순서대로 읽을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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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10-05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에 비해 리뷰가 너무 허접해도 용서해주시와요. 막상 쓰려니, 쓸말이 없네요. -_-a

하루(春) 2005-10-05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요즘 판타지 되게 많이 읽으시네요

하이드 2005-10-05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_-a
다음에 읽을 책은 아직 안 정했는데, 편식은 그만해야죠.

비로그인 2005-10-06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젤라즈니에 입문할 예정입니다. 앰버연대기가 젤 평이 좋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