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들
보후밀 흐라발 지음, 송순섭 외 옮김 / 민음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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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의 이야기꾼 에세이를 읽은 후 픽션을 읽을때마다 종종 이것은 이야기인가 소설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좀 더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는 이야기 같고, 자신의 경험을 변주 시키고, 나에게 전해진 이야기는 나 또한 전해야 한다. 

Who was Grim Brothers 를 읽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림 형제는 많은 페어리 테일의 저자(아닌 저자) 로만 알고 있었는데, 당대의 지식인들이 그리스 로마 고전들을 찾을 때, 그들은 독일어로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수집했다. 


얼마전에 읽은 고미숙의 '당신은 연결되어 있습니까' 도 당연하게 떠오른다. 말과 글과 쓰기로 연결되어 있는 것, 그것이 살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의 중심에는 '이야기'가 있다. 


보후밀 흐라발은 체코 작가로 작가의 다양한 경험들(기차역 배차원, 보험 대리인, 행상, 철공장 공원, 법학 박사, 무대 장치 담당자) 을 하고, 그 자신의 경험과 그가 그 일을 하면서 만났을 사람들의 경험을 그의 소설들에 '이야기꾼'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면서 풀어냈다. 


올해의 독서 계획 중 '책으로 세계여행' 이 있고, 다양한 국가의 책들을 시도해보려고 하고 있다. 막상 기록하며 보니, 몇몇 국가에 편중된 이야기들만 읽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름도 잘 안 붙는 보후밀 흐라발의 책은 상당히 문학적이고, 술술 읽히면서도 무슨 이야기인가 생각하게 만드는데, 체코라는 낯선 배경도 한 몫한다. 


그의 이야기보따리에서 풀려나오는 다양한 인물들이 흥미로워서 흐라발의 책들을 좀 더 읽어볼 생각이다. 가장 유명한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아직 안 읽어보기도 했고. 


이 소설집에는 여섯 개의 소설과 두 개의 작품 해설이 있다. 첫번째 소설인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가 중편 정도의 길이이고, 나머지는 다 단편이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 가던 1945년 체코의 소도시에 있는 작은 기차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엄혹한 전쟁 중에도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일어나는 소시민들의 생활이 기차역을 무대로 펼쳐지고, 간간히 지나가는 독일군 열차와 그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로 긴장감을 놓치지 않다가 거대한 폭발로 결말을 맞는다. 좀 이상한 사람들,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이상한 면들이 있는데, 그런 면모들이 합쳐지면 새로운 이상함이 생겨나고, 거기에 '전쟁'이라는 커다란 재난이 함께 할 때, 웃기네, 정도의 이상함이 어울리지 않게 비장해지기도 하고, 위대해지기도 한다. 


기차가 배경인 <다이아몬드 눈>, 카페에서의 자살로 시작되는 <간이주점, 세계>, 수류탄 소리가 끊이지 않는 중에 '장난꾸러기들' 추임새 또한 끊이지 않고, 화가의 다양한 그림들에 대한 설명을 듣는 <이야기꾼들> 정신병동이 배경인 <이온토포레시스> 등 좀 이상하지만,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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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연결되어 있습니까 교양 100그램 10
고미숙 지음 / 창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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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고, 생존 자체는 물론이고, 생기 있게 사는 것이 어려우며 '좋은 삶'을 꾸리기는 더더욱 어렵다. 나이들수록 관계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많이 봐왔다.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제일 좋은 나는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니깐, 니가 먹는 쌀을 위해 농부가..라는 곳까지 가지 않는 이상 말이다. 코로나 시절에야 혼자 집에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는 사람이 그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걸 알고, 사람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깨달았다. 


싫어도 함께 해야 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은 학교와 회사, 그리고 가족과의 시간 정도일텐데, 나는 그 모든 것에서 거의 벗어났다. 지금 내게, 싫어도 함께 해야 하는 사람들은 없다. 온라인, 오프라인 모두 그렇다. 온라인은 좋아도 함께 가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고, 사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끌어오지 않아도 오프라인도 사실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지금도 혼자인 시간이 제일 소중하지만, 연결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에서 사람 만나는 기회가 있다면, 기꺼이 나가는 편이다. 외향적인 사람들이 보기에는 한참 부족하겠지만, 사람과 만남으로써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는 것을 요즘 부쩍 느끼는 중이라서 더 그렇다. 평범하지는 않은 이유라고 생각되지만, 혼자서 무언가를 파고 들 때 깊이를 얻을 수 있지만, 그리고, 그 시간 또한 꼭 필요하지만, 타인과 함께 함으로서 새로운 무언가가 더해지고, 만들어진다. 이걸 뭐라고 해야할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여기까지는 왔다. 


창비 교양 100그람 시리즈 궁금했는데, 고미숙의 이야기로 첫 스타트를 끊게 되었다. 내가 모토로 삼는 '쓰기 위해 읽는다' 는 이야기의 출처이고, 평생 공부를 설파하는 분이어서 내심 가까이 여기고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또 좋은 말 듣고 담아두었다. 


인생은 하루다. 

읽고 말하기, 쓰기가 연결의 첫걸음이다. 


"물질적 요소가 충분히 충족된 후, 즉 일의 성취와 화폐의 축적이 이루어지거나 혹은 충분히 늙은 다음, 그때가 오면 정신 혹은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겠다는 식은 패착입니다. 


그런 시간은 오지도 않을뿐더러, 설령 그런 때가 도래한다 해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미 물질과 소유만을 위해 전력질주한 다음이라 멈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는 겁니다. 가장 좋은 방법이 일상, 즉 하루를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느냐, 즉 오늘의 패턴과 방향이 인생 전체를 가늠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따라서 지금의 처지가 어떻든 하루에 단 1시간, 아니 단 10분이라도 정신활동의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54,55)


너무나 내가 좋아할만한, 내 입맛에 맞는 이야기라서 외려 더 말하기 힘든 이야기다.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느냐가, 오늘의 패턴과 방향이 인생 전체를 가늠한다." 


그렇거든요. 오늘을 뒤로 좀 늘린 어제, 오늘을 앞으로 좀 늘린 내일, 하고 싶은 일을 해내기 위해 늘 유지하는 마음. 

현재를 혹은 현재부터 가장 중요시하고, 아끼며 살아가는 것. 


연결되며 나오는 생기, 생명력 같은건 아직 모르겠다. 왠지 에너지 닳는 느낌인 내향인이긴하지만, 에너지 쓸 때는 써야 해서, 내 안에서 돌아가는 혼자를 위한 에너지 뿐만 아니라 연결될 때만, 부딪힐 때만 생기는 에너지들 또한 꼭 필요하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태어나서부터 죽기 전까지. 


이 책이 독자에게 건네는 질문이라면, '당신은 연결되어 있습니까' 라고 묻는 질문이냐면, 이전과 달리 연결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이 이렇게나 크게 바뀐거면 시작이 반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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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분 위픽
신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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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기 전에 개인적인 일들로 리뷰도 못 쓰고, 꼭 해야 할 일들만 해치우느라 책에 대한 감상이 많이 날아갔다. 고작 보름 정도로 이렇게 날아가는데, 그동안 뭘 믿고 기록 하나 안 남기고, 책만 읽고 깝쳤는지. 다시 한 번 shit 같은 글이라도 남겨야 겠다고 다짐하며 머릿속 어딘가 남아 있을 읽기의 기억들을 헤집어본다. 


애도의 글이었던 것 같다. 은조라는 친구가 죽었는데, 그 친구는 고라파덕을 좋아했다. 한 번 좋아한 것은 계속 좋아하는 친구였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을 넘어서 감정 쓰레기통이 되고 힘들어하며, 화자인 '나'는 은조를 세상이 너무 괴롭힌다고 생각했고, 자신만은 그렇지 않다고 믿었다. 


고라파덕을 파트너 몬스터?로 데리고 다니면서 (포켓몬 안 해서 잘 모르겠다.) 포켓몬 게임을 하느라 열심히 매일 7키로인가, 여튼 엄청 많이 걷는다. 이 책을 읽었을 시기에 스페셜 어쩌구로 서울숲에 포켓몬 하는 인구들이 너무 많이 모여 인파를 해산시켰다는 뉴스도 봤다. 포켓몬, 메이저인건가. 


걷는 것, 움직이는 것은 애도든 뭐든 도움이 된다. 내가 아침마다 눈물 질질 흘리다, 어느 날,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정말 평생 생각지도 않던 달리기를 시작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애도의 걷기, 애도의 달리기인 것일까. 


저자의 실제 경험이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다. 뒤에 나오는 작가의 말을 보니, 완전히 다른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도 썼던 걸 보면, 완전히 픽션일수도. 근데, 실제 경험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고, 이렇게 경험을 독하게 쏟아내면, 다음 책은 뭘 쓸까 생각하며 읽었다. (실제 경험인지 아닌지 전혀 모름) 


위픽 100 권 스티커 붙이기 키트를 위픽에서 받은 이후로, 원래도 얇아서 도서관에서 보이면 잘 빌렸지만, 더 적극적으로 빌리고 있다. 표지 스티커를 포스터에 붙이는건데, 포스터에는 제목이 나와 있고, 알다시피, 흰 띠지를 벗긴 표지에는 제목이 없고, 책에 나온 인용문구만 나와 있어서 맞춰보는 재미가 있었다. 


위픽 시리즈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나는 위픽 시리즈를 좋아한다. 처음부터 좋아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예쁜 책으로, 다양한 한국 작가의 소설을 읽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격대비 이야기 나오지만, 좋아하는 책이라면, 그게 무슨 소용있는 말인가. 요즘 밖에 나가서 뭐 먹으면, 진짜 별거가 다 만원, 이만원인데. 어떤 책이든 누군가는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가능성이 있다고 치고, 이 책도 리뷰 보니 제일 좋아하는 사람 있더라. 나도 나쁘지 않았다. 


위픽의 소설들 중 기억에 남지 않는 소설들은 있었을지언정, 읽으면서 이게 뭐야, 진짜 별로야 싶은 책은 딱 한 권밖에 없었다. 좋았던 책은 꽤 많다. 열 권 넘을 것. 읽은 책은 100권 포스터에 스티커 붙이면서 보니 4,50권 쯤 되었던 것 같다. 괜찮은 승률이지. 야구 3할 승률보다 높다. 


책 이야기 좀 더 하면, 글도 이야기도 나쁘지 않았고, 기억에 남은 것들도 있었다. 내가 원하는 애도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작가가 이 글을 쓰면서 (실제 경험이라면)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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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탐구 생활
이다 지음 / 창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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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을 기억하는 당신, 건강검진 하셨나요? 


아마도 탐구생활 시대의 작가 이다가 연재본을 모아 <어린이 탐구 생활>이라는 멋진 책을 내줬다. 

어른을 타겟으로 한 어린이 책들 많았지만, 이 책은 그림 위주의 어린이와 어른 같이 읽을 수 있는 책이어서 더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술술 읽히지만, 마음에는 진득하게 내려앉는 글들. 


이다 어린이는 한 말썽했을 것 같다. 근데, 돌이켜보면, 책읽기만 좋아하는 하이드 어린이도 돌이켜보면, 말썽 부리며 자랐던 것 같다. 어른으로 어린이였던 마음을 돌아보고, 지금 어린이들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다. 


엊그제는 어린이날이었고, 운동회, 체육대회 소식이 많았다. 같이 들려오는 믿을 수 없는 뉴스로 운동회때 아이들 시끄럽다고 민원 들어가는 것, 그리고, 지금 돌이켜봐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사정 알고 나면 씁쓸할 것 같은 부모님 못 들어가서 밖에서 구경하는 사진, 아이들이 운동회 전에 동네 주민들에게 읍소하는 전지 크기의 포스터들을 학교 담벼락을 따라 진열해둔 것 등등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어른이 운동회 날, 시끄럽다고 민원을 넣는 걸까. 하수구 막는 담배꽁초 같은 무쓸모하고 해로운 인간들, 같은 어른으로서 정말 미안하다. 


그렇게 어른들이 아이들을 소음 만들어내는 존재로만 보는가하면, 그 반대편에는 싸고 도는 것이 과도한 어른들이 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운동회때나 체육대회때나 100미터 달리기를 하면 늘 꼴지였다. 그게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쓰면서도 믿을 수 없는데, 요즘은 지면 아이가 마음의 상처 받으니깐 동점이나 비기는 경기들을 한다고 한다. 

진짜 뭔 소리지. 그렇게 져서 창피하고 분한 마음, 더 잘 하고 싶은 마음, 더 열심히도 해보고, 포기도 해보고, 이긴 친구를 축하하는 마음 같은 건 어디에서 배우지? 


평범하게 좋고 나쁜 사람들이 다수인 것처럼, 평범하게 좋고, 나쁜 많은 어른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어떤 진상과 어떤 과보호의 목소리가 커지면, 그 얼룩같은 존재들이 전체를 물들이고, 그 얼룩들로부터 어린이도 사회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듯 하다. 


'어린이' 라고 전체를 불러버리는 그 안에 다양한 어린이들의 모습이 있다. 그 모습들을 이 책에서 끄집어내고 있다. 지금의 어린이, 그리고 나였던 과거의 어린이들까지. 


어린이가 주변에 없는 사람들의 오해, 어린이를 이용해 자신의 감정을 발산하는 나쁜 어른들이 사회를 완전히 물들이기 전에 경각심을 가지고, 보호해야 할 존재이자 함께 이 사회를 이루어나갈 존재로 '어린이'에 대한 시각을 바꿔나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른도 읽을 수 있는 어린이가 주인공인, 어린이애 대한 책들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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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일기 세라 망구소 에세이 2부작
세라 망구소 지음, 양미래 옮김 / 필로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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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았다. 그게 내가 가진 가장 큰 문제였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을 기록하지 않고 하루를 마감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아름다운 돌빛, 물빛 표지의 작고 예쁜 책이다. 책표지는 언뜻 미로와도 같고, 무언가가 섞이고, 흩어지는 끝없는 과정을 보는듯 하기도 하다. 이것은 아무것도 읽고 싶지 않아 쓰기에, 일기에 강박을 가지게 된 저자의 일기를 종말을 말하는 일기이다. (부제, The End of a Diary) 


"나는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다가 정신이 마비되고 싶지 않아서 나 자신에 관해 썼다. 그렇게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관한 생각을 멈추고 하루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내가 진심으로 삶에 열중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어서 썼다. 경험 그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일기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정신을 차렸을 때 내가 뭔가를 놓쳤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을 막기 위해 동원한 방어기제였다." 


보통은 하루를 마치는 저녁에, 가끔은 이른 오후나 낮시간에 찾아오는 '오늘 뭐 했지' 라는 질문은 내가 하루에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얼마나 잘, 얼마나 못 보냈는지와는 상관 없이 떠오르는 질문이다. 그 질문 뒤에는 아마도, 불안감, 시간을 낭비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시간을 낭비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뒤에는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다는 불안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다는 불안감은 중요한 급하지 않는 일들을 미뤄버리는 내 게으른 습성을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는 불안감이지 않을까. 


오늘 뭐 했지병이라고 스스로 진단 내린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그 날 한 일을 써본다. 오늘 뭐 했지? 내심 오늘 뭐 한거야. 오늘 하루를 또 왜 이렇게 허투루 보냈어. 라는 자신에 대한 비난이 담겨 있고, 그 날 한 일들을 써보면, 이것 저것 많이 했네. 잘 했네. 머리로나마 약간 해소된다. 아주 가끔, 정말 많은 일을 한 날을 빼고는 머리로만 대충 이해하고, 그리고, 또 가끔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날에는 잘 쉬었다. 하고 정신승리를 하면서 감정을 해소하려 노력한다. 


바쁜 것과는 좀 다르다. 지금은 시간을 더 많이 만들어 놓았긴 하지만, 정신 없이 바쁠 때도 어김없이 찾아드는 질문이었다. 

그 외에 과거를 반추하지 않는 걸 넘어서 묻어 버리는. 그렇다고 미래를 불안해 하기 보다는 현재만을 중요시하며, 현재가 과거도 바꾸고, 미래를 바꾼다고 진심으로 믿는 현재주의자라서 과거를 돌아보는 회고 또한 현재의 것이라서 일기를 쓴다. 


저자는 기억하기 위해, 동시에 망각하기 위해 일기를 쓴다. 기억과 망각 두 가지 반대의 속성을 지닌 것이 일기 "쓰기" 라는 행위를 통과하면서 해결 된다. 기억하고, 망각하고. 


그렇게, 저자의 일기 강박에 내 나름의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일기 없는 삶을 상상하면, 단 일주일이라도 일기 없이 사는 삶을 상상하면 순식간에 공황 상태에 빠져들었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일기를 써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쓰기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쓰지 않고는 시간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을 단 한 가지도 떠올릴 수 없었다." 


"일기 쓰기는 무엇을 생략할지, 무엇을 잊을지를 솎아내는 선택의 연속이다." 


무언가 잘 한 것, 생산적인 것, 미루던 것을 해낸 것에 대한 좋은 감정,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한 나쁜 감정들로 일기를 채우며 살아왔는데, 근래에는 좋은 것들을 딱 하나 남겨서 기록해보고 싶어졌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중요한 것, 아름다운 딱 하나. 하루를 압축할 수 있는 딱 하나. 


저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육아를 시작하면서 어떻게 해도 기억할 수 없고, 기록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늘어나자 일기를 포기하게 되고, 일기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난다. 


기억하고, 망각하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지만, 기억과 일기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생기자 망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쓰기가 좀 더 커진다. 


나의 일기는 어떻게 변해갈까. "ㅇㅇ는 고정적인 경험이 아니다. ㅇㅇ는 지속적인 경험이다. ㅇㅇ는 형태를 바꾸지만 언제나 한결같이 제자리에 있다. 얼어붙은 수면 아래로 흐르는 시냇물처럼." 


저자는 ㅇㅇ 자리에 '결혼'을 넣었지만, 그 감정은 내가 모르겠고, 나는 그 자리에 '일기'를 넣어본다. 


일기는 고정적인 경험이 아니다. 일기는 지속적인 경험이다. 일기는 형태를 바꾸지만 언제나 한결같이 제자리에 있다. 얼어붙은 수면 아래로 흐르는 시냇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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