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의 책장 - 어느 희귀서 수집가가 찾아낸 8명의 ‘숨은’ 오스틴
리베카 롬니 지음, 이재경 옮김 / 휴머니스트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베카 롬니는 희귀 서적을 모으는 콜렉터로 우리가 열광하는 제인 오스틴이 열광했던 여성 작가들을 탐험한다. 셜로키언인 그녀가 18세기 문학계에서 사라진 여성 작가들을 발굴해 내는 그 여정이 얼마나 스릴 있는지!


한 사람, 한 사람 넘어가는 것이 아까울만큼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모든 작가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들의 책을 읽고 싶어 갈급한 심정이 되었다. 읽지 않을 변명의 여지를 싹둑 잘라내듯 18세기 작가들의 작품들은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서 너무나 쉽게, 내 이북 리더기들로 다운 받을 수 있었다. 전자책으로 편하게 볼 수 있고, 예상외로 첫페이지부터 너무 재미있는 책들이 많았고, 읽고 싶은 마음 또한 충만했으나, 전자책 페이지가 만 페이지, 이만 페이지 훌쩍 넘어가는 것을 보고, 아, 길게 봐야하는구나. 그래, 18세기에는 스마트폰도 없고, 다른 오락거리도 없으니, 책이 재미있었겠지. 길수록 더 좋았겠지. (분량으로 돈을 받아서 더 길게 쓰기도 하고, 돈의 압박 받아서 분량을 미처 못 채우고 줄이는 일도 있어서 안타깝기도 하고) 언젠가는을 기약하며 고이 저장해두었다. 종이책 구하기가 비교적 쉬웠던 <우돌포의 미스터리>와 <피메일 키호테> 는 원서 종이책으로 샀고, 앤 래드클리프의 <숲 속의 로맨스>, <시칠리아의 로맨스>, <이탈리아인>과  엘리자베스 인치볼드 <단순한 이야기> 는 번역본으로 나와있다. 


각 여성 작가들의 작품과 생애, 제인 오스틴과의 관계와 왜, 어떻게 그들이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중간 중간, 책에 대한 사랑 고백과도 같은 글들이 줄줄 흘러나온다. 


“책은 마음 내키는 대로 펼치고 덮을 수 있다. 낙엽이 바람결에 뜬금없이 흩날리길 반복하듯이 자유롭게. 등장인물이나 작가와 교감하면 항상 맴돌던 외로움이 가라앉는다. 하지만 꼭 인물에 공감해야만 책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차이점도 대조를 통해 나를 되비춘다. 책은 남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창인 동시에 내 마음을 알게 해주는 거울이다.” (25)


저자는 오스틴의 시대의 당대 작가들을 파고들면서 18세기에 소설이 해악으로 인식됐다는 증거들을 지속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소설은 “위험한 것”이고, “지나치게 외설적”이었고, 당시 젊은 여성들에게는 품격, 예의범절, 취향을 가르치는 명분으로 품행서(conduct book) 이 유행했다. 


“여성들이 소설 때문에 남자 보는 눈이 너무 높아져서 결혼을 기피한다니.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여성이 늘어나고, 책을 쓰는 여성도 늘어났다. 


제인 오스틴의 책장에서 처음 소개되는 여성 작가는 당대에 비범한 천재성으로 유명했던 프랜시스 버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까지 사실주의 작가로 찬사받았으나 19세기 중엽, 제인 오스틴의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하자 버니는 오스틴과 비교되며 폄하된다. 


“마치 여성 소설가에게 할당량이 있는 것” 처럼 제인 오스틴이 있으니 그 자리가 차서 다른 여성작가들은 비교의 대상으로만 여겨진다. 그리고 이 현상을 나타내는 말도 있다. ‘스머페트의 법칙’ 이 부분 읽으면서 정말 그러네! 속으로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문학 정전에서 밀려난 여자 작가들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또한 이 책의 다양한 환경의 다양한 작가들에게 공통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당대 여성들의 지위이다. 제인 오스틴을 포함해 당시에 인기 있었던 소설들을 ‘구혼 소설’이라는 장르로 부른다는 것을 알았고, 이전에 사랑과 결혼만이 인생의 전부인 것 같은 이야기들에 조금이라도 거부감이 들었다면, 그것이 18세기에는 더욱 더 법적으로 경제적으로 여성의 삶과 운을 옥죄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프랜시스 버니의 이름은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 패니 버니로 나와 있다. 영문학자 두디는 ‘패니’는 낮잡아 보는 약칭으로 무해하고 유치하고 내숭 떠는 어린 여성의 인상, 비평가 닫수가 그녀에게 바라는 이미지를 심는다고 지적했다. 헨리 필딩을 해리 필딩이라 부르지 않고, 제임스 보즈웰을 제미 보즈웰이라고 하지 않는데, 프랜시스 버니의 이름을 본인이 선호하지도 않았던 패니 버니로 책에 새겨버리다니. 뒤에 나올 여성의 이름을 지우는 다양하고 치졸한 방법들 중에 하나다. 


다음으로 나오는 작가는 제인 오스틴 외에 유일하게 낯익은 이름 ‘앤 래드클리프’이다. 고딕 소설을 좋아해서 낯익은 작가이다. <숲 속의 로맨스>, <시칠리아 로맨스>, <이탈리아인> 이 번역본으로 소개되어 있다. 


(.....) <우돌포>를 읽는 동안만큼은 누구도 나를 비참하게 하지 못할 것 같아.”
- <노생거 사원>의 캐서린 몰랜드 


여기 소개된 모든 이야기들을 읽어보고 싶었고, 그 중에 더 많이 읽고 싶었던 책들이 있었지만, 가장 읽어보고 싶은 책은 앤 래드클리프의 <우돌포의 비밀 The Mysteries of Udolpho> 이다. 제인 오스틴의 책장에 나온 책들 중 가장 먼저 주문한 책이기도 하다. 저자 또한 <우돌포의 비밀>이 자신의 평생 최고의 독서 경험 중 하나였다고 말하고 있다. <우돌포> 는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여성이 그것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내용이고, 자율성은 18세기의 여성에게 그랬듯, 21세기의 여성에게도 중요하다. 저자는 <우돌포의 비밀>을 읽은 후 고딕소설의 중심 요소인 풍경을 인물처럼 다루는 비법에 대한 심미안이 생겼다고 한다. “래드클리프는 작가가 풍경과 건축의 분위기 묘사를 통해 어떻게 인물의 정서를 드러내고 독자의 기분까지 지배하는지 보여주었다.” 


“ 나 이 책 너무 좋아! 평생 이 책을 읽으며 살고 싶을 정도야. 너를 만날 약속만 아니었으면, 천금을 줘도 책을 놓고 나오지 않았을 거야.” - 제인 오스틴, 노생거 사원


앤 래드클리프는 젠트리 계층 출신으로 웨지우드의 사업 파트너였던 삼촌 토머스 벤틀리의 후견을 받았다. 그는 여행 경험과 학식을 갖추고 있었다. 고미술을 연구했고, 어린 앤이 벤틀리의 피후견인이 되어 그의 집에 들어간 시기는 그가 고딕 건축 전시회를 위한 연구를 막 시작하였던 때라고 한다. 


고딕 건축과 관련한 온갖 서적과 판화, 주에 후기의 고딕 교회와 유적을 담은 그림들이 가득했던 집에서 자란 앤은 훗날 생생하게 묘사되는 고성과 수도원으로 고딕 소설의 붐을 가져왔다. 


이 외에도 저자가 가장 사랑하게 된 도발적인 샬롯 레녹스, “솔직히 말해 제게 얼마간 야망이 없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는 샬록 레녹스 소설보다 더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도발적인 글을 쓴 그녀의 책들 중에서 주문한 책은 <여자 돈키호테 Female Quixote> 이다. 기사도에 심취한 돈키호테가 풍차를 적으로 착각해 달려들었다면, 이 책의 애러벨라는 기사답게 행동하지 않는 모든 남자를 자신을 납치하려는 악당이라고 믿는다. 정말 재미있을 것 같은 이야기이다. 여자 키호테! 


다양한 개성과 형편의 여성 작가들, 열정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글을 써서 크게 성공했던 여성 작가들을  제인 오스틴 한 명만 남기고 지워버린 이들은 누구인가? 이와 같은 의도된 망각에 맞서기 위해서는 책을 읽는 수밖에 없다. 리베카 롬니 이전에도 제인 오스틴의 편지나 소설에 쓰였던, 제인 오스틴이 읽었던 이 여성 작가들을 발굴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 씨앗을, 더 나아진 읽기 환경에서, 리베카 롬니가 아주 훌륭하게 이어 주었다. 이 다음은 독자의 몫일 것이다. 


제인 오스틴이 포함된 문학의 계보, 세월이 지나면서 정전에서 밀려나 우리가 알지 못했던 작가들과 소설들을 이제야 알게 되는 것은 분하고, 억울하고, 정신이 번쩍 드는 동시에 반갑고, 신나고, 엄청 기대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소파와 고양이와 담요 사이에 몸을 묻고, 제인 오스틴이 애독했던 책을 읽기 시작했다.” (1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하이 폭스트롯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8
무스잉 지음, 강영희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30년대 상하이는 당시 동양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였다. 1840년 중국이 영국과의 아편전쟁에 패해 난징 조약을 체결하면서 상하이에 조계가 생겨났고, 영국, 미국, 프랑스 조계지가 생겨나면서 서구의 온갖 문물들이 빠르게 들어와 근대적이고 화려한 국제도시로 변했다. 화려함이 유별날수록 그 화려함 아래 깔린 어둠 또한 깊었고, 화려함을 쫓는 사람들과 화려함을 만드는 사람들, 혹은 그 양극을 오가는 사람들로 인한 이질성들이 혼재했고, 거기서 생겨나는 이중성을 포착하는 신감각파 작가들이 생겨났다. 


저자인 무스잉은 10대 후반에 본격 창작 활동을 시작해 이십대 초반에 이미 소설집들을 펴내기 시작했고, 이십대 후반에는 반대파의 협박을 받다가 1940년 상하이에서 집으로 가던 중 암살되어 생을 마감하였다. 


이와 같은 당시의 시대상과 젊은 나이에 이와 같은 작품을 쓰고 죽은 저자를 생각하면 저자 또한 이 작품집 속의 가장 화려한 촛불과 같은 삶을 살았던게 아닌가 싶다. 


책을 읽는 내내 계속 반복되고 중첩되는 문장들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폭스트롯과 같은 리듬' 의 글이라는 해설을 보고 아, 그렇구나 싶었다. 동양의 파리라고 불리었던 상하이에서 저자는 상하이의 밤무대를 좋아했다고 하고(결혼도 상하이에서 유명한 댄서와 했다.), 작품의 배경으로도 클럽들이 많이 나온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폭스트롯 영상들을 찾아봤는데, 빠르게 끊임없이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왈츠같은 느낌이다. 왈츠는 뭔가 부웅- 부웅- 이런 느낌이면 폭스트롯은 슈악- 슈악- 이런 느낌. 


그렇게 멈추지 않는 열차에 탄 것처럼 그 앞을 가로막는 것은 다 치어가며 앞으로 나가다 벽에 박는 그런 느낌의 시대상과 잘 맞는 표제작의 제목이었던 것 같다. 


책에는 '심심풀이가 된 남자', '상하이 폭스트롯', '나이트클럽의 다섯 사람', '거리 풍경', '팔이 잘린 사람', '검은 모란', '공동묘지' 일곱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기억에 남는건 '팔이 잘린 사람' 벽돌공장에서 일하면서 늘 사고를 보고, 자신도 팔이나 다리가 잘릴까 걱정하던 남자는 어느 날 공장 기계에 팔이 잘린다. 아이와 아내와 오손도손 살던 가족은 처참하게 해체된다.

벽돌 공자의 벽돌들로 세워진 번쩍번쩍한 상하이는 그 벽돌들을 만드는 사람들의 팔과 다리를 끊임없이 자르고, 버린다. 생활고를 비관하여 자살하고, 생활고로 죽고, 가족이 해체되기도 한다. 


'검은 모란' 의 검은 모란 괴물 같은 여자도 기억에 남고, 소심한 남자가 엄마가 죽은 공동묘지에서 사랑을 찾게 되는 '공동묘지'도 여운이 길었다. 뻔한 이야기인데, 왜 여운이 길었을까. 공동묘지에서 만나 공동묘지에서 데이트해서? 모든 작품들에 공통되게 남자 주인공들이 소심하고 찌질한데, 마지막 작품에서 그 총합같은 인물이 나와서? '심심풀이가 된 남자'의 여혐과 그를 심심풀이로 만든 고양이와 뱀 같은 룽쯔. 그러고보니 룽쯔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싱클레어 루이스라고 했는데, 싱클레어 루이스 읽고 싶다. 


첫 단편에 나왔던 룽쯔는 바로 전에 읽었던 서머셋 몸의 로지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였다. 케이크와 맥주, 쾌락과 유희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26-01-05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세계 문학들은 무스밍처럼 우리가 그간 몰랐던 작가들을 소개해서 좋은 것 같습니다.다만 이렇게 새롭게 소개회는 책들의 경우 자국에서 인지도가 상당히 높은 작가들의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무스밍의 경우 친일적 성향으로 40년대 암살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그러다보니 현대 중국에서는 그닥 선호되지 않을 작가란 생각(즉 사망이후 공산화된 중국에선 출판이 불가하지 않을까 여겨짐)이 드는데 어떻게 발굴되었을지 무척 궁금해 집니다.

하이드 2026-01-05 10:30   좋아요 0 | URL
흄세에서 주제별로 큐레이션해서 나오는건 알고 있었는데, 각 콜렉션 (무스잉은 방탕, 자유 뭐 이런 콜렉션에 속해있는) 작품들이 궁금해지는 책이었어요. 저도 처음 읽는 작가, 현대 중국 작가 중에 읽은 것이 거의 없어서 뭐라 말하기는 힘들지만, 좋았습니다. 30년대 상하이도 무스잉의 글도 더 알고 싶어지는 책이었습니다~
 
케이크와 맥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4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케이크도 맥주도 딱히 좋아하지 않지만, 이 표현은 셰익스피어의 <십이야>에 처음 등장해서 


"자네가 도덕적이라고 해서 케이크와 맥주가 더는 안 된단 말인가?" 


쾌락과 유희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한다. 이 소설의 테마들 중 하나이자 제목이다. 


1930년대 당시 문단의 거장 (아마도 토마스 하디) 과 몸 주변 인물들을 모델로한듯한 등장인물들로 인해 센세이셔널 했다고 한다. 재미있었겠네. 시간이 많이 흘러 몸이 거리를 두고 보던 거장처럼 자신 또한 거장이 되었다. 이 책을 발표한건 몸이 60살 정도일 때였고, 아흔 한 살에 죽었다. 


위대한 작가의 가치는 "긴 수명"에 있다고 해서, 몇 살까지 살았나 찾아봤다. 


"예로부터 노인들은 그들이 젊은이들보다 더 현명하다고 젊은이들을 끊임없이 세뇌했고, 젊은이들은 그것이 허튼소리임을 깨달을 즈음엔 이미 늙은이가 되어 그 기만적 행태에 편승해 이익을 봐 왔다. (...) 작가들은 왜 나이가 들어 갈수록 존경을 받아야 하는지 나는 오랫동안 의구심을 품어 왔다. 만약 이십 년째 주목할 만한 작품을 쓰지 못하는 노작가라면 경쟁자로서 젊은 작가들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하므로 그의 가치를 극찬해도 괜찮다는 점에서 합리적 찬사라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 그러나 이는 인간성을 너무 폄하하는 시각일 수 있고 ( ...) 진짜 이유는 지식인들이 서른 살이 넘으면 글을 전혀 읽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젊었을 때 읽은 책들은 화려한 빛을 발하기 마련이니 그 책을 쓴 저자의 가치는 해마다 높아진다. "  (144) 



화자인 어셴든은 노장 에드워드 드리필드의 전기를 쓰게 된 출세 지향 동료 작가 엘로이로부터 그와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어린 시절 숙부네 마을에 머무르면서 에드워드와 그의 첫 번째 부인 로지와 친분이 있었던 어셴든은 어린 시절, 그리고, 젊은 시절 다시 만난 로지에 대해 떠올린다. 로지는 이 책에서 '케이크와 맥주', '쾌락과 유희'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로지와 함께 있을 때의 작품들이 걸작으로 칭송받는 걸 보면 드리필드의 뮤즈이기도 했던 것 같다. 


책소개와 별개로 몸의 책을 읽고 뻔한 결론을 내게 되지는 않는다. '몸은 이 작품을 통해 유희와 쾌락을 좇는 삶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현명한 작가는 마땅히 성공을 경계해야 함을 일깨운다.' 와 같은 결론 말이다. 


드리필드든 누구든 인생의 한 부분에 '쾌락과 유희'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시절이 있고, 그것이 외부에서 오는 한 한 때이기 쉽고, 강력한 감정의 격동을 겪는 시기가 창작의 고점일 수도 있겠으나 꼭 그렇게 연결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읽힌다. 드리필드는 워낙에 소박한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었고, 그 때 옆에 로지가 있었고. 


로지의 인생은 어떠한가. 현실에 있을법하기보다 어떤 '개념'을 형상화한 것만 같아서 책을 읽는 내내 잘 상상되지는 않았지만, 인생의 마지막 장을 사는 모습과 과거의 행동에 대한 이유가 매우 유쾌하여 그제야 땅에 발을 디디고 사는 어떤 인물로 여겨졌다. 


위선적인 대중 작가로 그려지는 엘로이는 그냥 기대치가 그 정도라서 놀랍지도 씁쓸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읽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26-01-03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책 표지가 정말 직관적이ㅔ요.책 제목이 케이크와 맥주라고 책 표지에 각종 케이크가 그려져 있는데 책 표지만 보면 무슨 케익 관련 요리책으로 착각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이드 2026-01-04 13:47   좋아요 0 | URL
네 ㅎㅎ 작품 속에 실제 ‘케이크와 맥주‘라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쾌락과 유희를 상징하는 말이라는 것은 저도 책 다 읽고 알았네요.
 
두고 온 여름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해나 작가의 <두고 온 여름> 책을 다 읽고, 제목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된다.


이야기는 사진관을 하던 아버지와 둘이 사는 재하가 그의 생의 4년간을 새 엄마와 그의 아들 기하를 가족으로 맞이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기하의 이야기와 가정폭력범인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아버지와 형의 옆에 있게 된 재하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온다.


재하는 친아버지에게 학대 당했지만, 살가운 아이였고, 재하의 엄마도 기하에게 좋은 엄마가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기하는 모나 있었고, 가족에게서 멀어진다.


가족들이 기하를 품으려는 노력들이 헛되게 돌아가는 장면들이 기하가 두고 온 여름일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 모났던 기하는 닳아서 그 모가 깎이고,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재하를 찾아간다.


괴물이라며 학대당했던 곳에서 모났지만, 같이 병원에 다녀주는 형과 챙겨주는 아빠를 만나게 되었던 재하는 세월이 지나, 풍파에 갈려 그만의 모난 구석들을 만들게 된다.


작가는 기하와 재하의 변화를 아래와 같이 말한다.


"사람이 유동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은 언제든 변할 수 있고, 그 변화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변화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과정이라는 생각이요.

생 안에서 고투하고 화해하며 기하의 뾰족함은 그리움과 넉살로 바뀌고, 재하는 유년에 비해 조금 쓸쓸해졌죠."


상처 받은 모자를 밀어내기만 하다가 탈출한 기하를 생각하면, 변한 모습이라도 재하가 더 마음이 쓰인다.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야 겠다는 생각이 등장인물들에게 있었을까? 그게 평범함 것일 수 있겠지만. 그렇기에 작가는 재하의 편지를 통해 그들이 잘 살기를 바라는 것 같다.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그동안 저를 둘러쌌던 불안과 염오가 조금씩 옅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 - 국경선은 어떻게 삶과 운명, 정치와 경제를 결정짓는가
존 엘리지 지음, 이영래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최초로 기록된 인공적인 국제 경계선을 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 국경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47계의 경계(border, boundary) 로 본 세계사.라는 제목부터 너무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는 지도와 도시, 국경의 역사를 주제로 글을 써 온 영국의 저널리스트인데, 도서 전문 웹사이트를 창간하기도 했고, 지도와 경계를 주제로 한 팟캐스트를 기획하고 진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도와 도시와 국경에 진심. 100회 이상 발행한 뉴스레터를 모아 총 세 권의 책을 출간했고, 이 책도 아마 그 책들 중 한 권인 것 같다. 


'경계' 책에서는 border와 boundary 두 가지를 같이 사용하고 있다. 뭐가 다른가 했는데, border 는 국경, boundary는 경계이고, (책 제목은 border) 더럼대학교 IBRU 국경연구센터 소장 필립 스타인버그에 따르면 "경계란 두 국가의 영토가 만나는, 두께가 전혀 없는 선"이다. 그리고, 국경은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넘어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선이다. 전자는 분할을 의미하고, 후자는 연결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로 공항 내부, 즉 물리적 경계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국경을 곧 넘게 됩니다."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책의 첫 문장이자 리뷰의 첫 문장인 최초의 인공적 국제 경계선, 사라진 국경은 기원전 3,100년경 사라진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였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아이들용 역사책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아는 내용! 거기서 더 나아가서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구분은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존재해왔고, 이러한 경계가 실제 지리적 요소를 반영하지만, "경계선이 정치적 정체성을 형성한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정체성이 경계선을 형성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사라진 경계선이라해도 그 의미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감정에 남아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책을 읽다보면, 그동안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던 '국경', '나라와 나라의 경계'가 놀랄만큼 어설프고, 누군가의 의지가 반영되기도 했으며(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흥미롭다.  


지난 달에 '역사주의'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인지하게 된 '유럽',그 중에서도 '영국인' '백인', '남성' 의 시점의 역사 이야기를 어느 정도 경계하게 되었는데, 저자가 자신의 정체성과 한계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는 것도 좋았다. 이 책이 과거에서 현재까지 단순하고 직선적인 역사 소설이 아닌 것이 한계인것 처럼 이야기했는데, 나는 그 점이 오히려 좋았다. 


책은 역사 파트, 유산 파트, 외부효과 파트로 나뉘어져 있고, 역사 파트는 거의 연대기 순, 유산 파트는 현재까지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국경, 외부 효과는 땅 위의 통제권을 나누는 문제와 다른 유형의 경계 (날짜와 시간대 사이의 시간적 경계, 바다나 상공의 경계, 우주의 경계) 로 이어진다. 목차에 '유산'하고 '역사'하고 바꿔 썼는데, 이거 너무 큰 오류라서 2쇄때는 꼭 시정되길 바란다. 


역사 파트는 아는 이야기들의 모르는 부분들 나와서 제일 재미있게 읽었고, '유산' 파트는 어쩐지 전쟁날 것 같은 으시시한 기분으로 읽었다. 모든 파트가 그렇긴 했지만, 외부효과는 특히나 상식을 시험 당하며 상식을 쌓으며 읽었다. 


47개의 이야기로 각각의 이야기를 끊어 읽기 좋고, 각각의 이야기에 역사와 지리와 정치, 심리 등이 꽉꽉 차 있어서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나와 지금 또한 역사의 한 부분이 되고 있지만, 요즘같은 시기에는 역사가 단순히 지난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고, 역사 속 아픈 과거를 반복하는 것이 두렵고 생생하게 느껴진다. 책의 부제처럼 국경선이 어떻게 삶과 운명, 정치와 경제를 결정짓는지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다양한 역사책을 읽고 있고, 최근에 읽은 '지도로 보아야 보인다'와 함께 지리와 역사를 함께 이야기해주는 이 책은 바로 그 '지리'와 인간이 그은 '선' 때문에 일어나는 수많은 불행한 갈등들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그래봤자 더 괴롭기만 하지만. 그거라도 해야지. 


* 출판사 제공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