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나와 우는 우는 - 장애와 사랑, 실패와 후회에 관한 끝말잇기
하은빈 지음 / 동녘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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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다가 도서관에서 보고 빌려서 읽게 되었다. 우는 나와 우는 우는이라니, 우가 세 번이나 나오는데, 무슨 뜻이지. 우는 은빈과 우는 애인 우의 5년여의 연애를 돌아보는 에세이였다. 


책을 읽고 나서 우에 대해 좋고, 안타까운 느낌만 남았다면, 우는 멋진 사람이구나라는 느낌만 남았다면, 그건 책을 쓴 빈이 우를 그렇게 보았거나, 우에 대한 기억을 그렇게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거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마지막에 우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덜어냈다고 얘기하긴 했지만, 그리고, 이야기 사이에 어떤 이야기들이 채워질지 짐작하는게 그리 어렵지 않아서 책에 쓰인 힘듦과 비교도 안 되는 고단함이 있었을거라는 것을 알 수 있긴 하지만. 


가장 빛나고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잊지 않고, 돌아보고 남기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안 하고 싶지만, 안 하고 넘어갈 수 없는 근육병에 걸린 중증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연애 이야기이다. 


이 책과 따로 일라이 클레어의 <눈부시게 불완전한> 이라는 책 이야기도 많이 봤는데, 하은빈이 그 책의 번역가인건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고, 두 책을 떼어놓고 생각하지 못할 것 같다. 


아픈 몸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찾아 읽었다. 아픈 몸과 장애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찾아 읽는 주제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아픈 몸과 소수자 이야기에 대한 책들도 많다. 아니, 충분히 많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여튼, 이 책인가? 하고 들었다가 반쯤은 미루고, 반쯤만 읽었는데, 장애에 관해 읽은 책들 중에 <우는 나와 우는 우는>만큼 장애에 대해 다른 배리어 없이 평범하게 읽었던 책은 없었다. 왜 그럴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유도 바로 생각나긴 한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여서 그랬을거다. 그간 읽었던 책들이 장애인이 화자이거나, 온전한 돌봄의 대상이었다면, 이 책에서는 서로 주고 받고, 일견, 비장애인인 저자가 더 많이 받은듯 보이기도 한다. 옆에서 우는 가족들이나 친구들을 생각한다면 또 마음이 복잡해지지만, 독자라는 위치만큼 떨어져서 보는한 사랑하는 만큼 사랑 받았고, 혹은 더 큰 사랑을 받았고, 그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다 힘들었구나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니, 적어도 그만큼은 한 발 다가간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게 더 멀어진건지, 그냥 자리만 옮긴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쓴 사람이나 이 책을 읽는 사람이나 쓰는 동안, 읽는 동안 그만큼 더 생각할 수 있었다면, 그건 더 나아지는 일이지 않을까. 


저자가 글을 굉장히 절절하게 써서, 글을 읽는 내내 저자의 절절함이 절절하게 묻어나서, 이 이야기가 이야기거리로만 소비되고 잊혀지지 않고, 내내 기억할 것 같으니 말이다. 


어떤 페이지의 어떤 글을 옮겨도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페이지를 넘기며 보는 글마다 저자는 사랑에 감사하고, 그 사랑에서 벗어남에 기뻐하고, 기뻐한 자신에게 상처받고 있잖아. 그게 다가 아닐텐데. 


모두가 똑같이 살 수는 없잖아. 3월의 마지막에 읽은 책에서 이두온은 사람의 쓸모에 대해 고민했다. 

4월 첫 날 하은빈의 책을 읽는 동안 바로 전에 읽은 책의 '쓸모'라는 주제가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런건 없다. 쓸모라는 말이 사람에게 쓰이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쪽으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야겠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만큼 하는거지. 그렇게 일을 하는 동안 너무 힘들지 않게, 마음 다치지 않게. 마음 다치지 않게. 


책 마지막 장의 끝말잇기. 빈과 우가 하던 끝나지 않는 끝말잇기는 이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연결될 것이다. 


"우리는 자주 끝말잇기를 했다. 좀체 서로를 이길 생각이 없는 끝말잇기였다. 어쩌다가 '산기슭'이나 '나트륨'으로 상대를 끝장낼 기회가 와도 다른 재미없는 단어를 고르는, 혹은 '슭이로운 생활'이나 '륨어티스 관절염'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그러면 머리를 맞댄 채 승인 여부를 근엄하게 검토하곤 어쩔 수 없다는 듯 또 다른 지루한 단어를 찾아나서는, 얼렁뚱땅 멎었다가도 어물쩡 재개되곤 하던 무료하고 끊임없고 영원한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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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 쓰면 죽는 병 위픽
이두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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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 쓰면 

죽는 


"무슨 일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소설을 계속 쓰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 그리고 건강이 필요합니다. 작가의 삶을 꾸려간다는 것은 이 조건들을 감당해낸다는 의미일 텐데, 저는 이 문제에 있어 무력감을 느낀 지 퍽 오래되었습니다. 늘 돈, 돈이 문제였어요. 돈에서 시작된 문제가 다른 조건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이두온 같은 미친(positive) 작가가 돈이 없다니, 세상이 이래도 되냐.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돈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 것은 돈을 어느 정도는 벌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 '어느 정도'라도 되기까지 보잘것 없는 잔고가 널을 뛴다. 


단편이지만, 작가의 무한한 상상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장편을 바라요) 

치트키와 젠틀맨의 당근 만남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물품은 알랑뽕따ALRANGPPONGTTA 44 사이즈 원피스. 

젠틀맨은 한숨을 쉬고, 44 사이즈라곤 성인되고 입어본 적이 없는 치트키는 동생 주려고 한다고 하찮은 변명을 하지만, 젠틀맨은 도망가고, 치트키는 쫓아가는 웃긴 상황에서 치트키의 벙거지 모자가 벗겨지며 그녀 머리 꼭지의 종기, 주먹만한 그것이 노출된다. 


플람마FLAMMA, 돈 안 쓰면 죽는 병의 증상은 머리꼭지가 대머리가 되면서 혹이 자라는데, 성인 주먹에서 세 살 아이 머리 크기까지도 자라서 폭발! 머리와 함께 터져버림! 터지는 모양이 불꽃 내지는 횃불 같아서 이를 뜻하는 라틴어인 플람마라는 명칭이 붙었다. 


불치병이고, 과소비나 충동소비, 예쁜 쓰레기 소비와 같은 소비만이 이 병의 진행을 늦추거나 예방할 수 있다. 

그래서 혹자는 자본주의병이라고. 모두가 쓸모없는 소비를 하기 위해 일에 몸을 갈아 넣고, 쓸모 없는 소비를 하지 않으면 죽는다. 


쓸모 없는 소비와 사람의 '쓸모'와 '돈'을 기가막히게 연결시키며 이 사회를 굴절 겨울로 반사시켜 보여주고 있다. 

무쓸모가 쓸모인 세상에서 자신의 쓸모만을 좇으며 살아왔던 주인공은 당장 답을 내리지 않고 달아나며, 독자에게 공을 넘긴다. 이 다음에 이어서 바로 읽는 책이 <우는 나와 우는 우는> 이어서 정말 생각이 많아졌다. 생각이란 걸 하고 싶지 않아졌다. 하나마나 말을 하고 싶지도 않고, 당장 답이 보이지 않는 질문의 답에 매몰되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들을 읽고, 그냥 넘어가고 싶지도 않다. 


작가 인터뷰에서 건진 한 줄을 염두에 두고 생각을 멈추지 말 것. "쓸모는 말 그대로 제 상황에 따라 쓸 가치가 있는,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무언가일 거예요. 다만 쓸모의 대상이 저 자신이거나, 주변의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저자에게 요즘 가장 쓸모 있는 것은 기후동행카드와 커피, 가끔 먹는 팥빵이라고 한다. 


나에게 요즘 가장 쓸모 있는 것은 오더블과 도서관, 클린하우스(재활용과 쓰레기 버리는 곳)와 드립백 거치대( 세상에 이런 것이 있다니, 생긴거나 자리 차지하는건 별로지만, 컵에 담겨서 컵 두 개로 쇼하던 것에서 벗어나 컵 하나로 가득 내려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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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3-29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 안쓰면 죽는 병이라나 저 같은 가난뱅이는 절대 걸리며 안되는 후덜덜한 불치병이네요 ㅜ.ㅜ

하이드 2026-03-30 16:57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먼저 죽어요. ㅜㅜ 근데, 결과만 보면 현실과 같다는.
 
알리트 - 어느 작은 개구리 이야기
제레미 모로 지음, 박재연 옮김 / 웅진주니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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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트는 산파 개구리다. 산파 개구리가 뭔가 찾아보니, 정말 책에서처럼 개구리알들을 등에 붙이고 다니는 수컷 개구리였다. 

보라색과 분홍색, 초록색과 노란색을 오가는 환상적인 색감과 그림들로 시작하는 작은 개구리 이야기. 

시작하자마자 으아아악 되고, 올챙이에서 개구리가 되어 가는 알리트가 만나게 되는 친구들 이야기 나올 때마다 마음속으로 엉엉 울었다. 그림은 계속 예쁘고, 색깔은 환상적이었다. 


아름다운 그림, 먹이사슬의 자연스러운 죽음들, 그리고, 그와 비교도 안 되는 많은 죽음들을 야기하는 것은 살기 위해서가 아닌 더 많은 돈을 위해서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들, 그리고 개굴, 개구우우울. 작은 개구리는 지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작은 개구리들과 동물들의 현재와 미래를 알지. 어느 책 제목처럼 '지구는 괜찮아,우리가 문제'라면, 문제거리가 사라진 지구에서 작은 개구리와 동물들이 잘 살면 좋겠다. 


이 책에 나온 영양소 순환과 같은 주제는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것인데, 이 책이 청소년 소설로 분류된건 왜일까. 



미리보기 이미지를 훨씬 넘어서는 아름다운 종이책이다. 고맙게도 도서관 새로 들어온 책 코너에서 빌려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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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책장 - 어느 희귀서 수집가가 찾아낸 8명의 ‘숨은’ 오스틴
리베카 롬니 지음, 이재경 옮김 / 휴머니스트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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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롬니는 희귀 서적을 모으는 콜렉터로 우리가 열광하는 제인 오스틴이 열광했던 여성 작가들을 탐험한다. 셜로키언인 그녀가 18세기 문학계에서 사라진 여성 작가들을 발굴해 내는 그 여정이 얼마나 스릴 있는지!


한 사람, 한 사람 넘어가는 것이 아까울만큼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모든 작가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들의 책을 읽고 싶어 갈급한 심정이 되었다. 읽지 않을 변명의 여지를 싹둑 잘라내듯 18세기 작가들의 작품들은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서 너무나 쉽게, 내 이북 리더기들로 다운 받을 수 있었다. 전자책으로 편하게 볼 수 있고, 예상외로 첫페이지부터 너무 재미있는 책들이 많았고, 읽고 싶은 마음 또한 충만했으나, 전자책 페이지가 만 페이지, 이만 페이지 훌쩍 넘어가는 것을 보고, 아, 길게 봐야하는구나. 그래, 18세기에는 스마트폰도 없고, 다른 오락거리도 없으니, 책이 재미있었겠지. 길수록 더 좋았겠지. (분량으로 돈을 받아서 더 길게 쓰기도 하고, 돈의 압박 받아서 분량을 미처 못 채우고 줄이는 일도 있어서 안타깝기도 하고) 언젠가는을 기약하며 고이 저장해두었다. 종이책 구하기가 비교적 쉬웠던 <우돌포의 미스터리>와 <피메일 키호테> 는 원서 종이책으로 샀고, 앤 래드클리프의 <숲 속의 로맨스>, <시칠리아의 로맨스>, <이탈리아인>과  엘리자베스 인치볼드 <단순한 이야기> 는 번역본으로 나와있다. 


각 여성 작가들의 작품과 생애, 제인 오스틴과의 관계와 왜, 어떻게 그들이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중간 중간, 책에 대한 사랑 고백과도 같은 글들이 줄줄 흘러나온다. 


“책은 마음 내키는 대로 펼치고 덮을 수 있다. 낙엽이 바람결에 뜬금없이 흩날리길 반복하듯이 자유롭게. 등장인물이나 작가와 교감하면 항상 맴돌던 외로움이 가라앉는다. 하지만 꼭 인물에 공감해야만 책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차이점도 대조를 통해 나를 되비춘다. 책은 남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창인 동시에 내 마음을 알게 해주는 거울이다.” (25)


저자는 오스틴의 시대의 당대 작가들을 파고들면서 18세기에 소설이 해악으로 인식됐다는 증거들을 지속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소설은 “위험한 것”이고, “지나치게 외설적”이었고, 당시 젊은 여성들에게는 품격, 예의범절, 취향을 가르치는 명분으로 품행서(conduct book) 이 유행했다. 


“여성들이 소설 때문에 남자 보는 눈이 너무 높아져서 결혼을 기피한다니.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여성이 늘어나고, 책을 쓰는 여성도 늘어났다. 


제인 오스틴의 책장에서 처음 소개되는 여성 작가는 당대에 비범한 천재성으로 유명했던 프랜시스 버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까지 사실주의 작가로 찬사받았으나 19세기 중엽, 제인 오스틴의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하자 버니는 오스틴과 비교되며 폄하된다. 


“마치 여성 소설가에게 할당량이 있는 것” 처럼 제인 오스틴이 있으니 그 자리가 차서 다른 여성작가들은 비교의 대상으로만 여겨진다. 그리고 이 현상을 나타내는 말도 있다. ‘스머페트의 법칙’ 이 부분 읽으면서 정말 그러네! 속으로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문학 정전에서 밀려난 여자 작가들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또한 이 책의 다양한 환경의 다양한 작가들에게 공통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당대 여성들의 지위이다. 제인 오스틴을 포함해 당시에 인기 있었던 소설들을 ‘구혼 소설’이라는 장르로 부른다는 것을 알았고, 이전에 사랑과 결혼만이 인생의 전부인 것 같은 이야기들에 조금이라도 거부감이 들었다면, 그것이 18세기에는 더욱 더 법적으로 경제적으로 여성의 삶과 운을 옥죄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프랜시스 버니의 이름은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 패니 버니로 나와 있다. 영문학자 두디는 ‘패니’는 낮잡아 보는 약칭으로 무해하고 유치하고 내숭 떠는 어린 여성의 인상, 비평가 닫수가 그녀에게 바라는 이미지를 심는다고 지적했다. 헨리 필딩을 해리 필딩이라 부르지 않고, 제임스 보즈웰을 제미 보즈웰이라고 하지 않는데, 프랜시스 버니의 이름을 본인이 선호하지도 않았던 패니 버니로 책에 새겨버리다니. 뒤에 나올 여성의 이름을 지우는 다양하고 치졸한 방법들 중에 하나다. 


다음으로 나오는 작가는 제인 오스틴 외에 유일하게 낯익은 이름 ‘앤 래드클리프’이다. 고딕 소설을 좋아해서 낯익은 작가이다. <숲 속의 로맨스>, <시칠리아 로맨스>, <이탈리아인> 이 번역본으로 소개되어 있다. 


(.....) <우돌포>를 읽는 동안만큼은 누구도 나를 비참하게 하지 못할 것 같아.”
- <노생거 사원>의 캐서린 몰랜드 


여기 소개된 모든 이야기들을 읽어보고 싶었고, 그 중에 더 많이 읽고 싶었던 책들이 있었지만, 가장 읽어보고 싶은 책은 앤 래드클리프의 <우돌포의 비밀 The Mysteries of Udolpho> 이다. 제인 오스틴의 책장에 나온 책들 중 가장 먼저 주문한 책이기도 하다. 저자 또한 <우돌포의 비밀>이 자신의 평생 최고의 독서 경험 중 하나였다고 말하고 있다. <우돌포> 는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여성이 그것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내용이고, 자율성은 18세기의 여성에게 그랬듯, 21세기의 여성에게도 중요하다. 저자는 <우돌포의 비밀>을 읽은 후 고딕소설의 중심 요소인 풍경을 인물처럼 다루는 비법에 대한 심미안이 생겼다고 한다. “래드클리프는 작가가 풍경과 건축의 분위기 묘사를 통해 어떻게 인물의 정서를 드러내고 독자의 기분까지 지배하는지 보여주었다.” 


“ 나 이 책 너무 좋아! 평생 이 책을 읽으며 살고 싶을 정도야. 너를 만날 약속만 아니었으면, 천금을 줘도 책을 놓고 나오지 않았을 거야.” - 제인 오스틴, 노생거 사원


앤 래드클리프는 젠트리 계층 출신으로 웨지우드의 사업 파트너였던 삼촌 토머스 벤틀리의 후견을 받았다. 그는 여행 경험과 학식을 갖추고 있었다. 고미술을 연구했고, 어린 앤이 벤틀리의 피후견인이 되어 그의 집에 들어간 시기는 그가 고딕 건축 전시회를 위한 연구를 막 시작하였던 때라고 한다. 


고딕 건축과 관련한 온갖 서적과 판화, 주에 후기의 고딕 교회와 유적을 담은 그림들이 가득했던 집에서 자란 앤은 훗날 생생하게 묘사되는 고성과 수도원으로 고딕 소설의 붐을 가져왔다. 


이 외에도 저자가 가장 사랑하게 된 도발적인 샬롯 레녹스, “솔직히 말해 제게 얼마간 야망이 없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는 샬록 레녹스 소설보다 더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도발적인 글을 쓴 그녀의 책들 중에서 주문한 책은 <여자 돈키호테 Female Quixote> 이다. 기사도에 심취한 돈키호테가 풍차를 적으로 착각해 달려들었다면, 이 책의 애러벨라는 기사답게 행동하지 않는 모든 남자를 자신을 납치하려는 악당이라고 믿는다. 정말 재미있을 것 같은 이야기이다. 여자 키호테! 


다양한 개성과 형편의 여성 작가들, 열정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글을 써서 크게 성공했던 여성 작가들을  제인 오스틴 한 명만 남기고 지워버린 이들은 누구인가? 이와 같은 의도된 망각에 맞서기 위해서는 책을 읽는 수밖에 없다. 리베카 롬니 이전에도 제인 오스틴의 편지나 소설에 쓰였던, 제인 오스틴이 읽었던 이 여성 작가들을 발굴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 씨앗을, 더 나아진 읽기 환경에서, 리베카 롬니가 아주 훌륭하게 이어 주었다. 이 다음은 독자의 몫일 것이다. 


제인 오스틴이 포함된 문학의 계보, 세월이 지나면서 정전에서 밀려나 우리가 알지 못했던 작가들과 소설들을 이제야 알게 되는 것은 분하고, 억울하고, 정신이 번쩍 드는 동시에 반갑고, 신나고, 엄청 기대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소파와 고양이와 담요 사이에 몸을 묻고, 제인 오스틴이 애독했던 책을 읽기 시작했다.”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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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 - 국경선은 어떻게 삶과 운명, 정치와 경제를 결정짓는가
존 엘리지 지음, 이영래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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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최초로 기록된 인공적인 국제 경계선을 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 국경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47계의 경계(border, boundary) 로 본 세계사.라는 제목부터 너무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는 지도와 도시, 국경의 역사를 주제로 글을 써 온 영국의 저널리스트인데, 도서 전문 웹사이트를 창간하기도 했고, 지도와 경계를 주제로 한 팟캐스트를 기획하고 진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도와 도시와 국경에 진심. 100회 이상 발행한 뉴스레터를 모아 총 세 권의 책을 출간했고, 이 책도 아마 그 책들 중 한 권인 것 같다. 


'경계' 책에서는 border와 boundary 두 가지를 같이 사용하고 있다. 뭐가 다른가 했는데, border 는 국경, boundary는 경계이고, (책 제목은 border) 더럼대학교 IBRU 국경연구센터 소장 필립 스타인버그에 따르면 "경계란 두 국가의 영토가 만나는, 두께가 전혀 없는 선"이다. 그리고, 국경은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넘어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선이다. 전자는 분할을 의미하고, 후자는 연결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로 공항 내부, 즉 물리적 경계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국경을 곧 넘게 됩니다."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책의 첫 문장이자 리뷰의 첫 문장인 최초의 인공적 국제 경계선, 사라진 국경은 기원전 3,100년경 사라진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였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아이들용 역사책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아는 내용! 거기서 더 나아가서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구분은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존재해왔고, 이러한 경계가 실제 지리적 요소를 반영하지만, "경계선이 정치적 정체성을 형성한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정체성이 경계선을 형성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사라진 경계선이라해도 그 의미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감정에 남아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책을 읽다보면, 그동안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던 '국경', '나라와 나라의 경계'가 놀랄만큼 어설프고, 누군가의 의지가 반영되기도 했으며(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흥미롭다.  


지난 달에 '역사주의'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인지하게 된 '유럽',그 중에서도 '영국인' '백인', '남성' 의 시점의 역사 이야기를 어느 정도 경계하게 되었는데, 저자가 자신의 정체성과 한계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는 것도 좋았다. 이 책이 과거에서 현재까지 단순하고 직선적인 역사 소설이 아닌 것이 한계인것 처럼 이야기했는데, 나는 그 점이 오히려 좋았다. 


책은 역사 파트, 유산 파트, 외부효과 파트로 나뉘어져 있고, 역사 파트는 거의 연대기 순, 유산 파트는 현재까지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국경, 외부 효과는 땅 위의 통제권을 나누는 문제와 다른 유형의 경계 (날짜와 시간대 사이의 시간적 경계, 바다나 상공의 경계, 우주의 경계) 로 이어진다. 목차에 '유산'하고 '역사'하고 바꿔 썼는데, 이거 너무 큰 오류라서 2쇄때는 꼭 시정되길 바란다. 


역사 파트는 아는 이야기들의 모르는 부분들 나와서 제일 재미있게 읽었고, '유산' 파트는 어쩐지 전쟁날 것 같은 으시시한 기분으로 읽었다. 모든 파트가 그렇긴 했지만, 외부효과는 특히나 상식을 시험 당하며 상식을 쌓으며 읽었다. 


47개의 이야기로 각각의 이야기를 끊어 읽기 좋고, 각각의 이야기에 역사와 지리와 정치, 심리 등이 꽉꽉 차 있어서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나와 지금 또한 역사의 한 부분이 되고 있지만, 요즘같은 시기에는 역사가 단순히 지난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고, 역사 속 아픈 과거를 반복하는 것이 두렵고 생생하게 느껴진다. 책의 부제처럼 국경선이 어떻게 삶과 운명, 정치와 경제를 결정짓는지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다양한 역사책을 읽고 있고, 최근에 읽은 '지도로 보아야 보인다'와 함께 지리와 역사를 함께 이야기해주는 이 책은 바로 그 '지리'와 인간이 그은 '선' 때문에 일어나는 수많은 불행한 갈등들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그래봤자 더 괴롭기만 하지만. 그거라도 해야지. 


* 출판사 제공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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