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의 진화 -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들려주는 성의 비밀 사이언스 마스터스 1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임지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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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이 책을 통해서 성행위를 더욱 즐겁게 만들어 줄 새로운 체위를 배울 수도 없고
월경이나 폐경의 고통을 감소시키기는 정보를 얻을 수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또한 여러분의 배우자가 외도를 한다거나, 아이 돌보기를 태만히 한다거나, 아이 때문에 당신 존재를 무시하는 데서 여러분이 느끼는 고통을 줄여 주지도 못할 것이다.

라고 한다. 정말? 그러니, 원제 Why Sex is fun에 혹할 필요는 없다.
들고다니며 읽기에는 제목이 좀 민망하긴 하다. 책은 근래 보기 드물게 예쁜데, 들고 보기는 근래 들어 최고로 불편하다. 작고 표지 완전 딱딱해서 책장이 안 넘어가도록 잔뜩 힘줘서 잡고 있어야 함.
20여권의 시리즈라고 하니, 주르륵 놔두면 정말 예쁠것 같다.

각설하고,

이 책은 1장 가장 특이한 성생활을 즐기는 동물 에서 7장 섹스어필의 진실까지
인간의 성적특성의 진화에 관한 물음과 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물음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왜 남성은 아이에게 젖을 먹이지 않는가?' '왜 여성은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폐경기가 오는가?' '왜 여성의 배란기는 감추어져 있는가?' '남성의 음경과 여성의 유방의 진화론적 이유는?' 등의 질문이다.

'인간'을 조사할 수는 없으므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이나 다른 포유류, 때로는 조류의 행동습성을 연구함으로서 진화의 실마리를 찾아낸다.

이런저런 흥미로운 예시와 그럴듯한 이야기들을 신문이나 주간지 칼럼수준 정도로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책의 결론이 결국  '따라서 가장 친숙하고 명명백백하게 보이는 인간의 성적 기구 역시 아직까지 풀지 못한 진화론적 의문으로 가득하다는 점에서 우리를 놀라게 한다' 는 것은 좀 허무하긴 하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를 읽기는 읽어야겠는데, 퓰리쳐상에 빛나는 그 대단한 '총,균,쇠'는 두껍고 크고, 최근에 나온 '문명의 붕괴'는 더 두껍고, 더 커서 쉽게 손이 안 갔다면, 가볍게 이 책으로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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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05-11-10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이 책 사놓은 지가 언젠데 아직도 못 다 읽었어용. 역시 들고 다니며 읽기는 좀 민망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ㅜㅜ 흐음. 보기 힘들지만 참 예쁘긴 하다는데 공감입니다. 하이드님 리뷰를 읽으니 이따 집에 가서 다시 시작해야겠단 생각이 불끈 드네요. ^^

하이드 2005-11-10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 술술 넘어가니깐, 금새 읽으실꺼에요^^ 전 요시리즈 두권 더 있는데, 더 읽어봐야겠어요.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카슨 매컬러스 지음, 공경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9월
절판


몇 차례 문이 열렸다 닫히며, 갑자기 손님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밤은 끝났다. 윌리는 테이블 위에 의자를 올리고, 바닥을 걸레질했다. 그는 퇴근할 준비를 하며 노래를 불렀다. 윌리는 게을러터졌다. 주방에서 늘 일손을 멈추고, 갖고 다니는 하모니카를 불었다. 이제 그는 졸리운 듯 느릿느릿 걸레질을 하면서, 쓸쓸한 흑인 노래를 흥얼거렸다.

카페는 아직 붐비지 않았다. - 밤을 지샌 사람들과 막 깨서 새 날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졸리운 여종업원이 맥주와 커피를 나르고 있었다. 혼자 온 손님들뿐이라 소음도 대화 소리도 없었다. 방금 깬 사람들과 긴 밤을 끝내려는 사람들의 상호 불신이 서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35쪽

오랫동안 계단에 앉아 있었다. 미스 브라운이 라디오를 켜지 않아서 사람들 소리만 들렸다. 믹은 오래도록 생각에 잠겨서 계속 주먹으로 허벅지를 때렸다. 얼굴이 조각조각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얼굴을 다시 제대로 붙이지 못할 것 같았다. 배가 고픈 것보다 불쾌한 기분이었지만, 그런 마음이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내 바람은..... 내가 원하는 것은.... 그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진짜 바라는 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57쪽

그들은 각각 싱어의 방에 찾아와서 저녁 시간을 같이 보냈다. 벙어리 사내는 늘 사려 깊고 차분했다. 여러 색이 섞인 눈동자는 마법사의 눈처럼 침울했다. 믹 켈리와 제이크 블라운트, 닥터 코펠랜드는 조용한 방에 와서 이야기를 했다. - 그들은 무슨 말을 하든 싱어가 알아듣는다고 느꼈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고. -101쪽

그때 믹은 아버지에 대해 알아차렸다. 새로운 사실을 안 게 아닌 듯했다. 오래 전부터 온몸으로 알았지만 머리로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이제 문득 아버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는 외로웠고 늙었다. 자식들이 와서 말을 붙이지 않았고 돈도 별로 못 버는 형편이고 보니, 가족에게 소외당하는 기분을 느꼈다. 고독을 느낀 그는 자식 하나와 가까워지고 싶었다. 하지만 다들 바빠서 그걸 몰랐다. 그는 자신이 아무에게도 소용이 없는 존재라고 느꼈다. -108쪽

코펠랜드는 몸이 굳어서, 근육이 뻣뻣하게 긴장했다. 그는 듣지도, 주변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눈멀고 귀먼 사람처럼 구석에 앉아 있기만 했다. 곧 모두 식탁으로 갔고, 노인이 기도를 했다. 하지만 코펠랜드는 먹지 않았다. 하이보이가 술병을 꺼내자, 다들 웃으면서 술병을 돌려가며 진을 마시는데도 그는 사양했다. 그는 입을 다물었고, 마침내 모자를 들고 인사도 없이 떠났다. 기나긴 진실을 다 말할 수 없다면,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157쪽

'우리가 바다에 있다면 좋겠어. 해변에서 오가는 배를 보면. 넌 어느 여름에 바다에 갔었지? 바다는 어떻게 생겼어?'
해리의 목소리는 투박하고 낮았다. ' 글쎄.... 파도가 있어. 어떤 때는 파랗고 어떤 때는 초록색이고, 밝은 태양빛 속에서 유리처럼 보여. 모래밭에서 작은 조개를 주울 수 있어. 시거 상자에 넣어 가져온 것 같은 조개야. 물 위로 흰 갈매기가 날아. 우린 멕시코만에 갔는데, 계속 시원한 바람이 불고 여기처럼 찔 듯이 덥지 않아. 언제나...'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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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카슨 매컬러스 지음, 공경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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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까페의 노래'로 우리나라에 먼저 소개되었던 카슨 매컬러스의 23세 처녀작이자 2004년 오프라북클럽 선정 도서였던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을 이 계절에 읽는 것은 당신의 외로움에 치명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이 책을 차마 외로운' 당신'에게 권할 수는 없다.

'슬픈 까페의 노래' 에서 나는 기이한 외모를 가진 두남자와 한 여자 안에 우리처럼 평범한 외로운 영혼이 들어 있어서, 까페라는 공간에 들고 나며 사랑하고 미워하고 외로워하는 이야기를 보았다.

슬픈 까페 전에, 훨씬 전에 '뉴욕까페'가 있었다.
그 까페는 슬픈가?
미국 남부 가난한 사람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이 일을 마치고 지친 발걸음을 까페로 돌린다.
사람이 소통하는 곳. 비록 그 안에 소통은 없을지라도, 외로운 영혼들이 그 안에서 조우할 수 있는 까페다.

흑인들의 인권과 교육에 사명을 가진 흑인의사 코펠랜드. 자신의 네명의 아이들에게 자신이 했던것처럼 교육과 사명을 심어주고자 했으나, 그 초월적인 엄격함에 딸 포티아를 제외한 모두와 서먹해지고, 혼자 남는다. 사회주의자 제이크. 여러주를 떠돌고, 책을 많이 읽은 그는 사람들을 선동해, 자본주의자들에 대항하고자 하나 실패한 주정뱅이일뿐이다.
가족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빨리 자라버린 감수성폭발의 선머슴같은 소녀 믹.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시계공 아버지를 둔 작가의 어린시절의 모습이기도 하다.
까페주인 비프. 어린아이와 장애인 등의 부족한 모습을 가진 사람들에게 언제나 동정적이고 다정하다.

그리고 그 넷이 찾아가 위로를 얻는 곳은 귀머거리이자 벙어리인 존 싱어의 방이다.
날렵한 눈에 호리호리하고 언제나 말끔하며 지성미를 풍기는 그는 보석상점의 은세공기사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기 안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외로움을 달랜다. 위안을 얻는다. 평안해진다. 는 것은 '삶은 힘들다' 라는 명제를 다르게 표현하는 같은 이야기일지 모른다.

카슨 매컬러스의 묘사는 보이는 상황 뿐만 아니라, 그 상황의 분위기. 그 분위기를 만드는 영혼의 이야기. 장소와 사물의 이야기에까지 이르며, 군더더기 없는 그녀의 글은 독자의 마음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The Heart is lonely hunter
책을 덮고 제목을 다시한번 가만히 되뇌어본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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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5-11-09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간되었을때부터 눈여겨 보던 책인데
슬슬 읽어야 겠군요
땡쓰투는 하이드님께 하겠어요 ^^

chika 2005-11-09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로운거 너무 외롭쟎아요. ㅡ.ㅡ

hnine 2005-11-09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 공통의 화두는 외로움...뭐 이런 제목으로 마미페이퍼에 올린 적이 있답니다. 외로움을 잠시 잊을만큼 극한 상황이 아닌 다음에야 사람들은 작게 크게 늘 외로움을 안고 사는 것 같아요.
읽어보고 싶어요. 리뷰 읽다가 왜 갑자기 Go tell it on the mountain 이 생각 났을까요. James Baldwin이었던가...작가요.
천상천하 유아독존...음..
리뷰 잘 읽었습니다.

moonnight 2005-11-09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안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 하이드님이 내려주신 결론이 가슴에 찡 와닿습니다. ㅜㅜ

하이드 2005-11-09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밑줄긋고 오는 사이에,
문장 한줄한줄이 절절한 책입니다. 스물 세살 데뷔작이라니, 정말 작가는 타고 나는건가봐요.

앨런 2005-11-10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벼르고 있다가 헌책방에서 구했답니다. 뿌듯하더군요.

하이드 2005-11-10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 신간인데, 정말 뿌듯하셨겠어요.^^

앨런 2005-11-12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러니까 오래전에 나왔다가 잠시 쉬고 다시 돌아온 신간이어서, 전에 나온 책을 구입하게 된거 같아요. 헌책방에서 구한 그야말로 따끈한 신간들-쇼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악마의 시-은 어찌나 감사한지.^^.뿌듯.^^.
 
츠바이크가 본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나누리 옮김 / 필맥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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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츠바이크보다 더 흥미롭게 사람을 읽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 

'세계의 거장들' 시리즈,  마신과의 싸움(- 휠덜린, 클라이스트, 니체), 서사적으로 세계를 재창조한 사람( 발자크, 디킨스, 도스토예프스키) 를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첫번째 유형이 무한성의 세계로 이어지고, 두 번째 세 거장들이 현실세계로 이어졌다면 이 책의 세 거장은 자신이라는 '소우주' 의 탐험의 수단으로서 예술을 시도하였다.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 단계적으로 나아가는 것은 그들의 서로 다른 세 층위, 점차 높아지는 세 단계를 상징한다.
   카사노바. 원초적 단계로 소박한 자기묘사를 대표하며, 스탕달은 자신에게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하며, 탐구한다. 톨스토이에 이르러서는 심리적 자기 관찰에 더해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자기묘사를 함으로써 최고의 단계에 도달한다.



카사노바


'귀족 족보에 올라 있지 않아 법적 권리와 지위가 없는 식객이었고, 문학계에서도 아웃사이더였다. 초라한 최후를 맞는 그 순간까지 그는 보잘것없는 배우의 아들로, 파문당한 사제로, 퇴역 군인으로, 악명 높은 사기도박꾼으로 황제나 왕들과 교류하며 파란만장한 모험을 감행했다.'

 도덕심이라곤 눈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고, 사기와 기만을 예술로, 도덕을 초월하는 의무로까지 여겼던 무법자. 오직 한가지에만 열중하며, 돈도 명예도 초개같이 여겼다.

그 하나는 '카사노바' 하면 누구나 다 알듯이 물론 '여자' 다.
학문, 예술, 외교, 사업, 종교 어느 분야에서나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던 그이지만, 그 어느것도 선택하지 않고, 얽매이지도 않고, '자유' 에만 몸을 맡겼다. '나의 가장 큰 보물은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며,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카사노바는 여성에게 헌신했다. 단지 그들이 '여성' 이라는 이유로. 여성의 기쁨이 카사노바의 기쁨이었다. 모든 종류의 상상할 수 있는 모험을 '한 사람' 이 '한 시대' 에 겪었으나, 공평하게도 그의 회고록은 소설이라기보다는 통계적인 보고이고, 문학이라기보다는 현장체험의 기록이다.  카사노바가 남긴 가치는 질이 아니라 양에 있다. 라고 츠바이크는 분명히 말한다. 회고 내용의 다양함에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거기에 더해서 도덕이나 명예를 '가치'로 취급하지 않았던 그에게 자기 검열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였고, 덕분에 가장 적나라하고, 자세한 성에 대한 묘사와 육체의 세계를 꾸밈없이( 문학적 소양이라곤 없었으니) 다큐멘터리처럼 묘사할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그 시대의 어떤 정신적이고 문학적으로 고양된 인물들보다 길이길이 역사에 남았고, 앞으로도 남을 것이다. 불멸성은 도덕이 아니라 오직 밀도에 의해서만 좌우된다.

   

스탕달



스탕달보다 거짓말을 잘하고 열정적으로 세상을 현혹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대로 그보다 정확하고 심오한 진실을 말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앙리 베일( Henri Beyle)은 결코 순순히 본명을 대는 법이 없다. 가면을 쓰고 자신을 숨겨야만 마음이 편했던 그는 평생 자기 자신을 감추며 살았다.

'파르마의 수도원' 서문에 이 책을 1830년 파리에서 1200마일 떨어진 곳에서 썼다고 하는데, 장난이란다!
철들기 전부터 유언으로 자기 묘의 가짜 비문을 남길때까지 끊임없이 위장하고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그토록 많은 고백성 진실을 말한 사람이 이세상에 있을까?'

자기 자신을 무섭도록 관찰하고 표현하는데 있어서 , '혹시라도 저항감이 느껴질 때면 그 저항감을 움켜쥔 다음 끄집어내서 하나하나 완전히 분해해 버렸다' 고 한다. 
자신을 포착하는 스탕달의 잘 단련된 '심리학'은 동시대인중에서도 오직 발자크만이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잘난구석이라곤 한군데도 없는 그의 외모. 저속하고 천박한 부르주아의 모습에 짧은 다리와 볼록 튀어나온 배. 그.러.나. 이 튼튼한 농부같은 육체 안에 '아주 섬세하고 거의 병적인 감수성을 지닌 예민한 신경다발이 파르르 떨고 있다. 이를 알게 된 의사들은 모두 그를 '감수성의 괴물' 이라고 부르며 놀라워했다. 그토록 나비같은 영혼이( 이것은 저주다!) 이렇게 크고 뚱뚱한 몸에 깃들여 있다니,' 

그는 아버지로부터 계산적이고 융퉁성없으며 지극히 현실적인면을 어머니로부터 감수성과 열정을 물려받았으며, 그로 인해 죽는날까지 자신 내부의 두가지 극과 극의 모습에 분열되지 않도록 온갖 노력을 다 해야 했다. 그의 감수성과 현실성은 냉정과 열정사이를 오고가는 그의 책의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글 쓰는 것은 자신을 관찰하는 수단의 하나로만 여겼고, 돈벌이로 여겼고,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에 목말라하며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벼르고 단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예술은 목적이 아니었고, 그의 유일하고 영원한 목적인 자아의 발견과 자기인식의 즐거움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스탕달이 최초로 쓴 글. 돈이 궁해 썼다는 3/4은 베꼈다는 그 날림 책은 아니겠지?

 

 

톨스토이



톨스토이의 책들에 손이 가지 않는 것은 그 소설의 방대한 양과 명정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엄격한 도덕주의자로서의 말년의 모습 때문이기도 하다.

어느것 하나 부족한 것 없이 풍족한 백작.
건강과 힘이 넘쳤고, 열렬히 사랑하던 여자를 아내로 맞았으며, 슬하에 열세 명의 자식을 두었다.
그의 작품은 살아 생저에 이미 불후의 명작이었고, 지나가는 모두가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전 세계가 그의 명성에 고개를 숙였다.

츠바이크가 말하는 것처럼 '하룻밤' 만에 모든게 변한 것은 아니였겠지만,
소년시절부터, 아니 그가 기억하는 가장 분명하고 오래된 기억인 두살때부터(믿기 힘든 일이지만!) 해온 자기 자신에 대한 채찍질. 엄한 기준. 반성. 고뇌.들은 쌓이고 쌓이다 어느날 갑자기. 이제 그만. 쌓이길 거부하고 튀어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생의 즐거움에 빛이나던 '그'는 갑자기 '빛'을 잃고 침통해지고, 불행해졌다. 왜?
사실 그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이보다 더 무서운 대답은 없을 것이다.

건강, 유례없는 생명력을 지니고 태어난 거친 농부와 같은 털보 남자. 그의 내면이 타고난 잘 단련된 감각으로 충만해 있다는걸 누가 그를 보고 짐작이나 하겠나.

츠바이크의 세 인물에 대한 극적이고, 화려하고, 감동적인 평가는 그 대상이 카사노바이건, 톨스토이이건간에 그 인물의 위대함 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침과 콤플렉스와 퇴보에 대해서도 서술한다.  고전의 저자, 혹은 가쉽의 주인공으로만 알고 있는 그들 자신을 '읽는 것' 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는 것은 다 츠바이크 때문이다.

이제 나는 카사노바 평전을 읽으면서 그가 남긴 것을 떠올릴 것이고, 스탕달의 적과 흑을 읽으면서 줄리앙의 모습에서 스탕달을 떠올릴 것이며, '안나 까레리나'를 읽으면서 도덕적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한 톨스토이를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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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11-08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궁금했더랬어요. ^^ 살 때 잊지 말고 땡스투할게요.

chika 2005-11-08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는 정말 사람을 흥미롭게 해주는거 같아요. '카사노바'와 '톨스토이'가 한 책에 들어있는게 참 의아했는디... ㅎㅎ (낼 살꺼예요오~ ^^)

사마천 2006-02-10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은 리뷰입니다. 사진도 풍부해서 좋군요. 저는 게을러서 사진은 절대 넣지 못합니다. ^^
 
소년, 세상을 만나다 카르페디엠 20
시게마츠 키요시 지음, 오유리 옮김 / 양철북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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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물어봐도 어짜피 가르쳐주지도 않을 거고, 지금 든 이 생각, 나는 정답을 모르겠는 이 생각에 그다지 중압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포기한다든가 방치한다든가 그런 게 아니라, 조절하는 방식을 익히게 됐다고나 할까. '모르는 것'도 있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에이, 몰라.

도쿄 근교의 신도시. 여자들의 뒤를 노려 몽둥이로 치고 달아나는 '길위의 악마'로 떠들썩하다.
'길위의 악마'는 다름아닌 나와 같은 반 아이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길위의 악마' 가 아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어. 중학생이 될 사람과 중학생인 사람과 중학생이었던 사람' 세상이 떠들석한 것은 '중학생' 이 그와 같은 범죄를 무차별적으로 저질렀다는 것이다. 어떻게 중학생이!  미디어에서는 '여자친구 A에게 무시당해서 여자에 대한 증오범죄' 라는 식의 기사가 나기도 하지만,그 원인은 끝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이 책은 다만 '소년' 이 범죄를 저지르고, (14살 이전의 소년은 법적으로 구속을 받지 않고, 어른이 되어서도 범죄의 기록이 남지 않는다고 한다. ), 비슷한 충동과 악의를 느끼는 주인공. 그리고 그 무차별적인 악의를 두려워하는 주인공의 껄렁껄렁한 친구. '선의'와 '악의' 에 대해 뚜렷한 생각을 이미 가지고 있는 애늙은이 친구 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굉장히 세세하게 그들의 심리를 따라갔기에
예전 생각이 났다. 중학교때라고 하면 아무 생각이 안난다.
고등학교때라고 하면 역시 추억으로 미화할 기억따위도 없다.
밑도 끝도 없는 '충동'을 나 말고 다른 친구들도 가지고 있었을까? 그 충동들은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고 이해가지 않는다.
아무리 철이 덜들었다고 해도, 그 앞이 막막하고 하루하루를 셀러리맨인 나와는 또 다른 종류의 쳇바퀴를 굴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의 시절. '소년'의 시절은 이미 너무 멀어졌다.

희미하고 애매하게 나의 '질풍노도의 시기' 를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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