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0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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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게네프의 자전적인 중편소설 '첫사랑', 그리고 장편소설 '귀족의 보금자리'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감동적인 단편 '무무'

세편의 각기 다른 개성의 장편,중편,단편이 종합선물세트.같이 묶여 있는 책이다.
러시아작가의 소설을 읽을때마다 '러시아적'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러시아인의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랑타령 소설을 읽을때, 그것은 거의 대부분 희극. 혹은 비극. 으로 클라이막스에서 끝이 난다.
소설 자체로는 클라이막스 바로 다음이 결말이겠지만, 인생에서야 뒈지지 않는 이상 어디 그런가?

사랑과 연애의 클라이막스 후에도 인생의 시계는 또깍또딱 흘러가고, 지구는 자전을 멈추지 않으며, 해도 매일 동쪽에서 떠서 서쪽에서 진다.

'첫사랑'
손님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자정이 넘어 한 방에 남게 된 주인을 포함한 세사람. '첫사랑'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말주변이 없는 블라지미르 페트로비치.는 다음번에 올때 수첩에 적어오겠다고 약속하고, 2주후 그들은 한 자리에 모인다. 블라지미르 페트로비치의 수첩에 적혀 있는 그의 첫사랑 이야기.

시작부터 보면, 자정이 넘었고, 파티는 끝났고, 남은 소수의 사람들은 램프블이 어른거리는 방의 오래된 소파에 앉아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먹다 남은 밤참은 치워지기만을 기다린다. 라는 분위기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파티를 끝내고 난 후 약간의 충만감과 피곤함과 허무를 잘 버무린 자정을 넘긴 시간. 첫사랑의 달콤함과는 다른 시간.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블라지미르의 열여섯 여름에 있었던 그의 온 몸과 정신을 쥐게 될 여신, 천사, 악마와의 만남으로.

투르게네프의 자전적인 소설이자, 우리나라에 가장 널리 알려진 소설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질풍노도시기의 주인공은 연상의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그 연상의 여인은 주변의 남자들에게 여왕처럼 떠받들어지는 도도한 존재다. 그러나 그 닿을 수 없는 천상 혹은 지옥의 여주인같은 그 여인은 그의 아버지와 사랑에 빠졌다.

"내 아들아, 여인의 사랑을 두려워해라. 그 행복, 그 독을 두려워해라...."

앞에 장황하게 말했듯이 사랑의 독에 열병을 앓고 난 후에도 인생은 흘러간다.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채 흘러가는 인생은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보다 더욱 더 잔인해 보인다.

 귀족의 보금자리
이 소설의 첫 장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화창한 봄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조그만 장밋빛 구름이 맑은 하늘에 높이 떠 있는데,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감청 빛 심연 속으로 잠겨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1842년에 있었던 일이다. 도청 소재지인 O시 변두리에 있는 아름다운 집의 활짝 열린 창문 앞에 여자 둘이 앉아 있었다. 한 여자는 쉰 살쯤 되어 보였고, 다른 여자는 벌써 칠순의 노파였다.'

게제오놉스키가 방문하여 '라브레츠키 표도르 이바느이치'가 왔다는 소식을 전하며 이야기는 드디어 시작된다. 아주 한참 후에야 깨달았지만(온 가족사가 다 나오는 서사적인 이야기다) , 이 이야기는 라브레츠키.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 서사적이고 짜증나게 도덕적인 등장인물들, 짜증나게 수다스럽고 경망한 등장인물들, 짜증나게 우유부단한 등장인물들, 짜증나게 교활한 동시에 멍청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정말 힘겹게 힘겹게 읽어내고 나면, 내가 생각하는 그 러시아 특유의 차가운 에필로그.가 나온다. 이 책에 등장하는 투르게네프의 소설들이 다 그렇긴 하지만, 특히나 이 소설에서는 가족사, 사랑, 도덕, 말고도 더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토론에 진하게 묻어나는 당시 러시아의 상황인데, 소설은 '농노제 하의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의 정신적 발달의 역사적 단계(볼테르주의, 영국 숭배, 낭만적 환멸, 서구주의와 슬라브주의 등) 와 직,간접적으로 연결' 되어 있다. 작품 뒤의 작품 해설을 읽고 나서 다시 읽는 에필로그.는 사랑, 인생, 허무, 역사, 러시아, 사람, 그 모든 것이 녹아 있는 내가 본 최고의 에필로그이다.

'죽을 때까지 농노 제도의 폐지를 위해 투쟁하고 농노 제도와는 결코 타협하지 않겠다.는 투르게네프의 이른바 '한니발의 맹세'는 투르게네프 창작의 주요한 특징인 휴머니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고 했다. ( 왜 한니발의 맹세인지는 못 찾았다)

가장 슬프고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라는 '무무'. '무무'과 '사냥꾼의 수기.는 알렉산드르 2세가 농노 제도의 폐지.를 결심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 이야기까지 있으니. 소설의 힘은 놀랍다.

'무무'는 거인의 이야기이다. 키는 1m95에 네사람분의 일을 혼자 하는 벙어리 귀머거리 거인의 이야기이다. '무무'는 거인이 죽을뻔한 어린것을 구해내고 애착을 가지고 키우게 된 강아지 이름이다. 러시아의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고 하는 이 단편.은 동화 같기도 하고, 그래서 더욱 심장에 한꺼풀 내려 앉는 것 같기도 하고,

러시아 작가들의 책을 읽을때마다 오는 이 허탈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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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5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07-12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한창 감수성이 풍부한 소녀시절, [첫사랑]을 읽고 같이 마음이 아팠지요. 그 책은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위의 책에 같이 포함된 작품은 못읽어봤는데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최고의 에필로그와 착한 거인과 강아지 이야기...저기 그런데 전 강아지가 죽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류는 절대 못읽는데 혹여 그런게 아닌가요? 그럼 못읽는데...ㅠ..ㅜ

반딧불이 2009-05-30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뒤져도 책이 없어 다시사려고요. 오래되긴 했지만 하이드님 리뷰를 읽으니 내용이 새롭네요. 아무튼 thanks to~

하이드 2009-05-30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번에 이사오면서 민음 세계문학이 1-2십권도 아닌데, 뭉터기로 안 보여요 -_-;;; 읽은 책은 거진 팔고, 안 읽은 책만 남았는데, 그나저나 저도 리뷰 읽으니 새롭네요. 대단히 감탄했던 '귀족의 보금자리' 에필로그는 궁금해지기까지 하네요, ^^;
 
지푸라기 여자 동서 미스터리 북스 56
까뜨리느 아를레이 지음, 이가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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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당신의 허수아비 노릇을 할 것 같아요?"

까뜨리느 아를레이의 '지푸라기 여자'는  추리소설에서 보기 드문 결말을 그럭저럭 훌륭하게 써냈다는 점에서 읽어볼만한 소설이긴하지만, 개인적으로 멍청한 희생자.보다는 똑똑한 범인.이야기를 좋아하기에, 그리고 그 희생자나 범인이 여자.일때 그 반감과 열광은 더해지기에 이 책은 나에게 그닥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이 책에는 '지푸라기 여자'와 '눈에는 눈'  두 개의 평균 이상의 퀄러티의 중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지푸라기 여자'에서 함부르크 출신의 히르데갈데는 전쟁의 폭격으로 모든 것을 잃고, 번역 일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몰두하는 것은 신문의 '구혼광고'이다. 부자 남편을 만나서 팔자를 고쳐보려는 그녀의 눈에 띈 막대한 재산을 가진 갑부의 구혼광고. 치밀한 계산 끝에 쓴 편지로 인해 그녀는 최종 인터뷰를 하기 위해 프랑스로 가서 갑부의 비서인 안톤을 만난다.

안톤은 그녀와 손잡고 갑부와 결혼시켜 죽으면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될 세계에서 손꼽히는 괴팍한 갑부의 재산을 가로채고자 한다. 오래도록 갑부를 보아와 그 복잡한 인간을 그 자신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는 안톤의 시나리오와 히르데갈데의 재치로 히르데갈데는 갑부의 맘을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결말을 제외하고는 평이한 전개의 평범하지만 흠잡을 곳 없는 소설이다. 흠 좀 잡더라도, 박력있고 재미있고 개성있는 소설이 내 취향인지라, 이 책은 뭐랄까. 읽을만은 하고, 평균이상이다. 라는 말 정도밖에 못하겠다.

'눈에는 눈' 은 주요등장인물인 네 명이 돌아가면서 사건을 서술하는 작품으로
아기 같은( 그러니깐, 잠자리 날개 찢어죽이며 노는 나이브한 아기) 아가트.의 성격과 동생을 보호하고자 하는 시한부 인생의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밴 의사 마르트. 두 강한 개성의 여자들의 대결구도가 재미있다.
결말도, 범인도, 등장인물들도 흥미로운 중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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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10-12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지푸라기 하면 얼마전에 봤던 "지푸라기 개"라는 영화가 종종 생각난답니다..
 
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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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얼마나 관심이 가는가?
시대는 19세기 빅토리안.이다. 찰스 디킨스의 시대. 작품의 첫 장면은 올리버 트위스트 연극이고,
박력있는 등장인물들은 찰스 디킨스의 등장인물에 빚을 졌다.
배경은 런던의 뒷골목 도둑 소굴, 정신병원, 외설 소설서점, 음산한 시골 대저택
 
호오를 떠나서,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독자를 달라지게 하는 책.이 있다.
다자이 오사무가 그랬고, 사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가 그랬다.
 
내가 지금부터 당장 19세기 빅토리안 레즈비언 미스테리( 라고 해봤자, 사라 워터스 말고 또 어떤 작가를 찾아봐야할지 깜깜하지만)의 광팬.이 되겠다는게 아니라, '나는 19세기 빅토리안 레즈비언 미스테리'를 읽었다. ' 라는 명제가 섰다.는 것이다.
 
사라 워터스의 19세기 빅토리안 레즈비언 미스테리 3부작. 두둥 - 티핑더 벨벳( 여성구강성교의 19세기 은어), 여자 감옥과 강신술을 소재로 한 고딕스타일의 Affinity(끌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핑거스미스( 19세기 소매치기를 가리키는 은어) 이 작품을 끝으로 작가는 2006년 나이트워치에서 1940년대 배경의 스펙타클한 작품을 발표해 작가의 역량이 한 시대와 소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잡설이 길었다.
워낙에 처음 접해 보는 종류의 소설이었는지라.
열린책들의 빡빡한 편집으로 700페이지를 넘는 짧지 않은 분량이다.
그러나,    
그러나 '그 시절, 내 이름은 수전 트린더였다. 사람들은 날 <수>라고 불렀다.' 로 시작하는 이 대단원을 시작하면, 중간에 손을 놓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712페이지.의 긴 소설의 첫줄에 등장하는 주인공. 수전 트린더. 즉 수.는 고아이다.
위탁모인 석스비 부인이 어머니 같은 존재이고, 자물쇠점을 하는 장물아비 입스씨는 아버지역이다.
석스비 부인이 맡은 갓난아기들과 수 또래의 존과 데인티와 함께 렌트 스트릿에 살고 있다.
 
어느 음산한 밤. <똑- 똑-똑>  불청객의 노크 소리. 그리고,  젠틀먼.으로 불리우는 남자.의 등장.으로 이 모든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골의 대저택에 특정 종류의 책을 광적으로 모으는 삼촌과 함께 사는 릴리 모드.는 결혼함과 동시에 유산을 물려받게 된다. 그러나 악당과도 같은 삼촌은 절대로 릴리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젠틀먼은 수잔에게 릴리의 하녀로 들어가 자신이 수잔과 결혼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한다. 결혼하자마자 릴리 모드를 정신병원에 넣을 것이고, 수잔에게는 평생 가도 구경도 못할 돈을 나누어 주기로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이 책에서 만나는 첫번째 음모이다.
양파껍데기 벗겨져나가듯, 하나씩 벗겨지는 음모와 비밀들은
꽉짜인 플롯안에서 어느 한 문장 버릴 수 없는 촘촘한 이야기의 그물들 안에 그렇게 얽혀 있다.
두 명의 고아 소녀.
수잔 트린더와 릴리 모드.
각각의 1인칭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 소설.은
비슷하게 전개되는 다른 어떤 소설과도 다르다.
그 흡입력.은 '1인칭 시점 소설'의 위대함과 박력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오늘날 살아 있는 최고의 이야기꾼 중 한 명인 사라 워터스의 19세기 빅토리언 레즈비언 미스터리.
오. 오. 오.

 
 
작가는 이 작품을 읽을 독자를 상상하며 웃음 지었다고 한다. 역자도 역시,
그리고 이 작품을 읽은 나도 역시, 이 작품을 읽으며 놀랄 독자를 생각하며 사악한 미소를 지어본다. 씨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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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6-10-08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굉장히 기대하고 주문했는데, 하이드님이 재밌게 보셨다니 어쩐지 잘산것같다는 느낌이 팍팍..^^ 책이나 좀 빨리 왔음변...ㅠ ㅠ흐흑...

BRINY 2006-10-08 14: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 읽지, 언제 읽지. 지금 읽는 거 다 읽으면 이걸 손대봐?

비로그인 2006-10-08 15: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bc 삼부작 드라마로 먼저 접했는데 미스 모드가 너무 예뻤어요.

하이드 2006-10-08 1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요. 굉장히 복잡한 캐릭터이고, 섬하고 예쁜 외모에요. 책 보고 드라마 봤는데, 재밌더군요. ^^ 믈론, 책이 훨씬 더 박력있긴 합니다만.
브라이니님, 이 책 페이지수가 만만치 않지만, 시도해보시길 ^^
애플님, 좋아하실꺼에요. 멋진 책입니다.

바람돌이 2006-10-09 0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또 관심이 가는데.... 일단 찜만 해두고요. ^^

moonnight 2006-10-09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 녀석이군요. 하이드님께 강추의 영광을 받은 녀석이 ^^ 와, 일단 712페이지에서 한번 버닝해주시고, 바로 보관함으로 날아갑니다. 음. 못 읽고 쌓아둔 책들은 또 한 번 모른 척 -_-;;;; 멋진 리뷰입니다. 제대로 질러주시는. 추천!!! ^^

비로그인 2006-10-09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맘에 드셨군요. 그런데 시골저택에서 삼촌은 어떤 특정 종류의 책을 광적으로 모으는걸까?? ^^
저는 Night watch도 봤지요~~~ 캐릭터에의 몰입은 덜합니다만 구성이 너무너무 멋져서 두고두고 생각납니다.
 
미션 플래츠
윌리엄 랜데이 지음, 최필원 옮김 / 북앳북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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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네개와 다섯개를 망설이다가.
이 정도면은. 몇가지의 이야기와 반전과 550페이지를 넘는 긴 호흡에도 불구하고, 독자가 흥미 잃지 않도록 하는 이야기의 전개. 읽고 나서의 찜찜한 기분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소설.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면,
이 책 별 다섯개 아깝지 않다.  

 

마지막 장까지 별 상관 없다고 생각하던 모든 이야기.들은 모두 연관되어 있었다. 벤을 임신한채 노란 수영복을 입고 호수에서 웃음지으며 즐거워하던 애니 트루먼의 영화 필름이 나오는 프롤로그 마저도.
 
화면이 바뀌어 경찰을 살해한 두 명의 범인이 나온다. 어느 추리소설에서건, 영화에서건, 경찰을 죽인 자.는 모든 경찰을 단결시키는 '적'으로 떠오른다. 그 두 범인 역시 비참하게 최후를 맞는다.
 
다시 바뀐 화면은 10년 후 미션 플래츠에서 마약상 아지트를 검거하려는 두 명의 열의에 찬 형사와 지원부대들을 보여준다. 빨간 문. '문은 차이나 레드 래커로 칠해져 있다. 문틀엔 두 개의 구멍이 눈높이에 맞춰 뚫려 있다. ... 이제 이 아파트는 미션 파시라는 크루의 은신처로 사용되고 있다. '  문을 부수던 트루델은 빨간 문 맞은편에서 조준된 총에 맞아 즉사한다.
 
미션 플래츠.는 가상의 도시이름이다.
마약거래자들의 천국. 범죄의 온상지. '도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모든 것을 뜻했다. 어두운 밤에 절대 길을 잃어선 안 될 것 같은 동네. 도난당한 차가 버려진 채 발견되는 동네. 빗나간 총탄이 주방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동네. 마약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동네.'
 
검사 댄지거가 베르세일스.라는 메인의 작은 마을에서 총에 맞아 죽은 시체로 발견되고, 그를 살해한 용의자로 브랙스턴이라는 미션 플래츠의 거물.이 지목된다. 그는 빨간문 저쪽편에서 트루델을 쏘아 죽인 용의자이기도 하다.  베르세일스라는 작은 마을의 경찰서장은 벤자민 트루먼.  은 범인을 찾아 보스톤으로 간다.
 
길고 긴 이 이야기 속에서 벤은 여러번 변한다. 그의 복잡한 캐릭터.는 이 소설에 별 다섯개.를 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큰 사건이라고는 마리화나를 지닌 아이들을 잡는게 고작인 작은 마을의 경감.인 그는 한때 최연소 서장으로 신문에 나기도 했었다. 역사를 공부하던 그가 마을로 돌아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찰서장을 하게 된 것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 때문이었다.
 
살인사건 현장에서 어리버리하던 그는 보스톤경찰국에서 30년이상 형사로 근무하고 은퇴한 베테랑 전형사 켈리를 만나게 된다. 켈리를 따라 보스톤으로 사건 해결을 쫓아 가게 되면서, 그가 만나게 된 시련. 들은 그를 변화시킨다. 스릴러영화나 책 속의 주인공처럼 극적이고 통쾌한 변화는 아니다.
그는 어쨌든 '훌륭한 역사가가 훌륭한 형사가 될 수 있다' 라고 믿는 구석이 있는 애송이 서장.이었을 뿐이니깐.
 
범인이 있고, 피해자가 있고, 형사가 있다.
 
이 작품 속에서 우리는 그 어느 것에도 확신을 가질 수 없다. 불확실은 책을 덮고 나서도 여운으로 계속 남는다. '미션 플래츠'의 빨간문 뒤의 진실이 마침내 드러나 독자에게 질문을 던질때 나는 답변할 수 없었다.
'형사가 용의자들을 한데 모아 놓고 오점 없는 명쾌한 해답을 보란 듯 내놓는 영화 같은 장면은 결코 연출되지 않는다. 세상은 그보다 훨씬 더 지저분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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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수집광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60
존 딕슨 카 지음, 김우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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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침한 전설에 찬 런던 탑을 무대로 영국의 명물인 짙은 안개, 낮에도 어두운 그 탑 안에서 실크햇을 쓰고 중세기 무쇠 화살을 등에 맞은 채 죽어 있는 사나이. 모자도난사건 괴마를 쫓는 펠 박사의 명쾌한 추리'

이 이야기도 언제나 일어나는 사건과 마찬가지로 펠 박사가 술 한잔 마시는 사이에 막이 올랐다.

존 딕슨 카의 팬이 되기에는 '황제의 코담뱃값' 에 이어 이제 겨우 두 작품 읽었을 뿐이지만, 두 작품 모두 엄청 재미있고 신선하다. 는 공통점이 있다.

이 소설에서 웃기는 점은 등장인물들이 끊임없이 '추리소설에서는 어떻지만, 현실은... ''영화나 소설 속의 탐정 흉내를 내려나본데...' 하는 식으로 추리소설 아닌척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가장 큰 이유는 카리스마 있는 독특한 탐정.이다. 이 작품에서는 기디온 펠 박사가 사건을 해결하는데, 내가 맘에 꼭드는 펠 박사를 드러내는 문구는 '펠 박사는 본디 프랑스 요리를 좋아했다. 더 적절하게 표현한다면, 프랑스 요리뿐 아니라 어떤 레스토랑에서든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쟁반들을 계속 먹어치우고 술병을 비워 죽 늘어놓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동안에는 범죄 이야기는 금물이었다'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 목소리는 기차 화통 삶아먹은냥 대따 크고, 보통의 경우는 왁자시끌한 거구의 인물이다. 사건을 해결할때는 '추리소설 속의 명탐정인냥' 분위기 잡고 경감이 열심히 추리해 놓으면 마지막에 '사실 범인은...'다. 라고 결말짓기/뒤집기를 즐기는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 등장인물중 하나인 비튼양의 말에 의하면 '바다 코끼리' 같은 외모.

미국청년인 렌폴이 왓슨처럼 나오기는 하지만, 더 웃기는 존재감의 해드리 경감.이 있다.
'추리소설에서 언제나 그렇듯이' 명탐정에게 뒤통수 맞는 역할이면서도 꽤나 존재감이 있는 재미있는 캐릭터이다. 238쪽에 나오는 플라톤의 철학자와 탐정소설의 탐정 비교관같은건 정말 그 재치가(본인은 심각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기발해서 뒤집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렌폴의 존재는 조금 우둔한 독자와 같아서
"잠깐만요.!" 랜폴이 외쳤다. "너무 속도가 빨라서 나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군요. 왜 그렇게."
"그런 결론이 나오게 되었느냐는건가?" 박사는 지루한 듯이 대답했다. "나는 아까부터 설명하고 있었는데 이해를 못하는 것은 자네의 머리가 나쁘기 때문일세."
친절한 펠박사님.

황제의 코담뱃값에서도 대단한 사건은 아니였다. 이 책 '모자수집광 사건' 역시 책선전문구처럼 음침한 런던탑, 중세의 화살, 어쩌구 할만큼 음침기괴하지는 않다. 런던에 모자도둑놈이 활개를 치고, 그 모자도둑에게 세개나 모자를 도둑맞은 윌리엄경은 이번에는 세계소설사를 바꿔 놓을 에드가 알렌 포의 첫 추리소설.을 도둑맞는다. 그 와중에 조카이자 기자인 드리스콜이 도둑맞은 실크햇을 쓰고 중세의 화살 맞고 안개 짙은 런던탑에 죽어 있다.

여러가지 사건들이 샛길로 새지 않고, 끈끈한 개연성으로 결말을 향해 차곡차곡 나아간다.

'에드리, 이거 문제가 너무 심각해져 버렸는걸, 나는 이미 사건의 성질을 아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오후에 심문할 때 모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우스워서 못 견디겠더군. 사건의 대부분은 장난에 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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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hand 2006-10-12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펠박사가 나오는 작품으로 <연속 살인 사건>이나 <세개의 관>이 이 작품보다 괜찮다고 슬쩍 운을 띄워봅니다.

하이드 2006-10-12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평들이 별로더군요. 이런 결말과( 우연이 겹친 허무한) 런던탑의 음침함에 아마 제가 점수를 더 주었을꺼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