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의 침묵 블랙 캣(Black Cat) 11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이미정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이 정신없이 노니는 생일파티에 생일을 맞은 아이의 동생인 아기가 입에 물고 있는 사람의 뼈가 발견된다.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외각 땅속에 묻힌 유골의 일부로 밝혀진다.

고고학부에서 유골을 발굴하는 동안 에를렌두르팀은 50년이상 묵은 유골의 유래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두가지 이야기가 교차한다.
오직 아내 앞에서만 힘을 휘두를 수 있는 약한 인간인 그리무르는 아내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하고, 툭하면 아이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그것이 협박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아는 여자의 영혼은 그렇게 조금씩 살해당한다. 첫째딸 미켈리나는 장애를 앓고 있고, 첫째 아들 시몬은 가족 중에 가장 힘이 센, 그래봤자 어린아이일 뿐이지만, 자신이 엄마를 지켜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다. 둘째 아들인 토마스는 그리무르와 비슷한 어두움을 지닌 아이다. 살아남기 위한 그들의 싸움은 때로는 단 한번의 말대답. 대부분은 인내와 도망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그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이 내밀어진다. 이들의 이야기는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의 이야기와 같은 비중으로, 그러나 더 무겁게 다루어진다.

또 다른 이야기. 에를렌두르는 유골이 묻힌 언덕에서 마약 중독자인 임신한 딸의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는다. 그녀를 겨우 찾아내지만, 그녀는 혼수상태에 빠지고, 당시 7개월이었던 뱃속의 아기는 죽는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가 낫는다고 하죠.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그렇습니다." 의사는 에를렌두르가 이성을 잃을 것 같아 보이자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라. 시간이 지나도 상처는 낫지 않습니다." 에르렌두르는 아기를 담요로 덮어주면서 말했다.

사건을 조사하는 틈틈이 딸을 찾아가 지난 세월동안 못 했던 이야기들, 유골 사건에 대한 이야기들을 혼잣말처럼 해나가기 시작한다.

사건은 천천히 결말을 향해 다가가는데, 그 페이스가 심상치 않다. 최근에 봇물 쏟아지듯 나오는 일본소설들의 페이스에 익숙해진 탓이리라.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이슬란드에서 온 이 소설은 독특하다. 이 소설은 근래 읽은 어떤 소설보다 더 독특한 여러가지를 남겨주었다. 꽉 짜인 플롯만으로도 읽고 나서 뿌듯함을 주는 이런 소설들은 몇번을 곱씹어 읽어도 좋은 책인 것이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아이슬란드라는 배경의 독특함

더 알고 싶은 고독하고 불행해보이는 남자 에를렌두르가 있다.

사방에 고독만이 가득했다. 끊을 수 없는 쇠사슬처럼 이어지는 단조로운 일상이 무거운 짐처럼 에를렌두르를 감싸고 억세게 옭아매어 숨을 막히게 했다.

마침표 하나하나가 묵직한 느낌을 주는 추리소설을 만났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연 2007-07-18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하나의 멋진 추리소설을 발견한 느낌이었죠...^^

홍수맘 2007-07-18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멋진 작품 추천받고 갑니다. ^^.

보석 2007-07-18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묘하게 매력적인 소설이지요.

perky 2007-07-19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들어갑니다. ^^
 
괴담 (양장) 기담문학 고딕총서 1
라프카디오 헌 지음, 심정명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살 책이 보관함에서 아우성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리뷰에 홀려서 이 책을 최우선으로 사 놓았더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 라프카디오 헌, 자신의 이야기를 빼 놓고는 어느것 하나 새로울 것은 없는 이야기였는데, 일본의 민간설화나 전설에서 따온 이야기들은 중국의 그것, 우리나라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고, 언제였는지 모르지만, 어린시절, 유년시절 어느 지점에서 들어왔던 옛날 이야기들, 혹은 전설의 고향류의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하는 길게는 열몇장에서 짧게는 한두장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서양인들에게는 동양의 낯설음을 동양인들에게는 아련한 낯익음을 가져다 준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호라이> 무릉도원을 묘사해 놓은 듯한 그 아련한 이야기는 늦은 오후 비몽사몽간에 읽어 더 몽롱하게 기억에 남는다.

'생각의 나무'의 기담문학 고딕총서 시리즈 기획에 높은 점수를 주고, 책 안의 삽화나 뒤의 부록과 작가에 대한 설명등에 굉장히 신경을 쓴 편집자에게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읽고 싶은 책은 아니지만, 소장하고 싶은 책이다. 시리즈의 다른 책에도 이렇게 신경을 썼다면, 내가 그닥 대단한 고딕/기담 문학의 팬은 아니지만, 관심이 간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7-17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종 그런 책들이 있어요. 알맹이 보다는 편집이, 혹은 활자 짜임이, 또는 이런 이야기들을 묶어낸 기획이 꽤 괜찮다, 싶은 책. 내 취향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쁜 옷을 볼 때의 심정이랄까요.

보석 2007-07-18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말씀에 공감. 참 잘 만들어진 책인 것 같아요.(내용은 빼고;)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어쩌다 보니, 온다 리쿠의 책을 꽤나 많이 읽게 되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많이 읽게 된 맥락과 비슷하다. 양과 재미) 그닥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다. 추리 소설 팬으로서, 그녀의 작품들을 딱히 추리소설 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은 그런 내가 읽기에는 심통나는 책이었는데, 그나마 '재미'와 몇줄의 괜찮은 라인들을 바라고 읽은 나로서는, '재미'마저 빠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덮느냐, 읽어치우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재미없음의 가장 큰 이유는 소설이 희곡의 형식을 띄고 있다는건데, 소설의 반 이상이 연극 대본, 그것도 1인극 대본으로 이루어진다. 설상가상으로 한가지 사건이 계속해서 조금씩 다르게 끝도 없이, 지루하게 반복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고백>이란 작품은 천재 각본가가 여배우에게 살해당하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다른 여배우가 그 범인인 여자를 감싼다라는 내용이다. <고백>을 연기하는 여배우의 오디션을 하고 출연 발표 단계에서 실제로 <고백>을 쓴 각본가가 '호텔 정원'에서 살해당한다.

극 내부의 극과 극 외부의 극이 엇갈렸다 만났다 하다가 끝이 나는데, 물론 결말은 있다.
그 재미없는 책을 끝까지 읽어낸 독자들이 혹시 이해하지 못할까봐 친절하게 그럴듯한 문장들로 결말에 의미까지 달아 준다.

책 속에 등장하는 천재 각본가 가미야.

가미야는 치밀한 설정과 구성을 고집하는 작가다. 잘 짜여진 구성, 섬세한 복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클라이맥스. 다시 말해 이야기 만드는 재미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다. 젊은 시절부터 기발하고 재기 넘치는 작품으로 발표할 때마다 히트를 해왔지만, 흔히 이렇게 고집스러운 성격은 갈수록 복잡한 정도가 심해져서, 연극이 답답해지거나 집착하는 만큼 이야기가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가미야는 그렇지 않았다. 확실히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구성은 이중, 삼중으로 점점 더 복잡해지긴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의 가치를 높여주었다. 요컨대 '난해함'이라는 새로운 요소가 더해진 것이다. 47~48쪽

그것은 온다리쿠의 희망사항인 것일까. 그러나, 현실에서의 독자인 나는 그녀에게 더해진 '난해함'이라는 새로운 요소가, 그나마의 유일한 미덕인 '재미'마저 빼앗아 갔다는 점에서 나처럼 그녀의 소설에서 '재미'를 찾는 다른 독자들에게 이 책 정도는 패스하기를 권유한다.

사족을 붙이자면, 이 책에서 '온다 리쿠의 책은 재미있을 것이다' 라는 선입견을 빼고 본다고 해도, 이 책은 여전히 지루하고, 갑갑한 책일 것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ephistopheles 2007-07-17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1개를 예상했었는데...2개씩이나..

하이드 2007-07-17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끝까지 재미없었어요. 별한개는 혹시나 읽게 될지도 모르는 '짜증이 모락모락' 나는 책들을 위해 남겨둡니다. ㅋㅋ

비로그인 2007-07-17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별1개를 예상했는데...
 
그레이브 디거 밀리언셀러 클럽 66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전새롬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적한 공원, 각성제를 팔고 사던 중, 판매자와 구매자 간에 다툼이 일고, 판매자인 스물 일곱살 노자키 고헤이가 구매자인 마흔 일곱살 막일꾼 곤도 다케시를 칼로 찔러 죽이게 된다. 현장에 있던 열한명의 목격자의 증언에 의해 노자키는 체포되지만, 재판의 심리중 곤도의 시체가 사라진다. 사건은 감찰과로 넘어가 겐자키와 부하들에 의해 조사되나, 미결로 남는다.

거울 속에서 웬 악당 한 놈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뒤로 빗어 넘긴 새카만 머리, 좁은 이마, 그리고 평행으로 나란히 그려진 가느다란 눈썹과 눈꺼풀.

길거리의 건달, 사기꾼인 야가미는 그 동안의 잘못을 속죄하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 골수 기증을 하기로 결심한다. 이런저런 자잘한 죄로 경찰에 쫓기고 있는 그는 호스트인 시마나카와 방을 바꿔 지내고 있다. 시마나카를 찾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그는 알몸에 기괴한 자세로 욕실에서 죽어 있는 시마나카를 발견하고, 곧바로 그 방을 찾은 정체모를 네명의 남자에게 쫓기게 된다.

한 편 도쿄의 다른 쪽에서는 시마나카 외에 똑같은 기괴한 자세로 죽어 있는 다가미 노부코를 발견한 경찰의 조사가 시작된다. 하룻밤 안에 벌어지는 연쇄살인의 줄기를 쫓아가는 경찰들. 노련한 고참 수사대원인 후루데라와 감찰과의 겐자키는 수사 과정에서  희생자들이 모두 도너기증자임을 알게 되고, 기괴한 살인 방식이 중세 암흑기에 마녀사낭을 하던 이단고문관들을 죽이던 그레이브 디거( 무덤에서 살아돌아온 사람) 의 방식을 따라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다시 야가미, 사건의 중요참고인 혹은 범인으로 경찰에게 쫓기고, 동시에 정체모를 집단의 남자들에게 쫓긴다. 오랜동안 야가미를 알아온 후루데라에 의하면, 도주 올림픽을 하면 금메달도 딸만한 야가미는 도쿄를 가로질러 병원에 입원하기 위한 그만의 싸움을 시작한다. 동시에 범인도 찾고, 사건도 해결하는 야가미.

연쇄 살인범인 그레이브 디거와 먹이를 쫓는 그레이브 디거.경찰과 정체불명의 집단, 그리고 그레이브 디거에 의해 쫓기는 거리의 악당 야가미, 그들을 쫓아 사건을 해결하는 경찰과 경찰의 내부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단독으로 움직이는 겐자키와 후루데라.

다카노 가즈아키는 단 하룻밤동안 일어나는 긴박한 쫓고 쫓김에 검찰, 정치 비리에 대한 문제제기를 버무려 꽤 읽을만한 한 편의 책을 써냈다. 다만, 열심히 뛰고, 헤엄치고, 기고, 나는 야가미를 제외하고는 현실에서 살짝 동떨어진 캐릭터들과 사건들, 그리고 스토리와 겉도는 느낌을 피할 수 없는 문제제기는 그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와 약간의 망설임을 동시에 준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박사 2009-09-03 0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3계단에서 만점을 주고나면 별 한개 정도 뺄 수 밖에 없는 그레이브 디거.
 
종신검시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어디나 있는 거지 같은 인생.'
'단 한 번뿐인 인생.'
'검시로 얻을 수 잇는 건 뿌리까지 캐내라.'
그것이야말로 졸업시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조사해야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치노세에게는 지금 이 비좁은 아파트 실내가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광활한 황무지처럼 느껴졌다.

종신검시관은 구라이시라는 천재 검시관이 나오는 여덟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다. 어느 것 하나 빼 놓을 것이 없는 수작들이어서,  '오랜 새월 굳어진 장인 기질과 야쿠자 같은 말투' 의 천재 검시관이라는 구라이시의 강렬한 캐릭터에 기대지 않고도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읽히는 단편들이다. 아, 감동 하니깐 생각났다. 내가 감동주는 추리소설, 뻔하지만 읽고 싶은 추리소설이라고 했던 책이 '사라진 이틀'이다. 요코하마 히데오. 같은 작가이다. 자신의 스타일을 전혀 다른 소설에서 묻어나게 하는 좋은 역량의 작가이다.

이런 것이 일본의 현실에 맞는지는 모르겠다.
굉장한 능력을 지녔지만, 그렇다고 사교성이나 아부성이 좋고, 정치력이 대단한 것도 아닌 일개 조직의 개미가, 자신보다 높은 자리의 수사과장, 형사부장을 일에 있어서만은 거침없이 대하는 것은 보기에는 재미있으나,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다고 누누히 배워왔으니깐, 심지어는 소설책들에서 조차 말이다. 그렇기에 더욱 더 읽고 싶어지고, 그렇기에, 이렇게 멋진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긴 시리즈로 못 가고 한 권으로 끝나는 걸까?

다 재미있었지만, 그 중에서 '붉은 명함'과 '전별' '한밤중의 조서' '실책'이 특히나 더 감동적이었다.

"바보 같은 녀석, 사건마다 일일이 눈물을 찔끔거리면 글쟁이는 못할 텐데."

사건이라는 것은 어짜피 사람이 사람에게 행하는 것이고, 그것을 해결하는 자 또한 사람이다.
요코야마 히데오의 책에서는 좀 심하다 싶을정도로 사람냄새가 나긴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따뜻한 추리소설도 재미있지 않은가 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7-12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저 자신에게 그러는데요, 바보같은 너구리, 일일히 반응하면 제 명에 못살터인데..라구요..따뜻한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나 보군요

하이드 2007-07-12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로 그렇지는 않은데, 이작가 책은 좋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