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지만, 가을이면 두번이라도 다시 들춰보고 싶은 책들.
쌀쌀해진 날에 팔에 돋는 소름을 음미하다 스웨터 하나 걸치고, 진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책장을 넘기기.
가을을 타는 책들을 추천합니다.
로멩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바다, 그 바닷가에 와서 죽는 새들이 연상되는 책이다.
로멩 가리는 내가 전작주의로 다 읽는 작가 중에 하나인데, 이 책이 아마도 처음 접한 그의 책이었을 것이다.
단편집이고, 이 단편집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극과 극으로 갈리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허영에 차 있거나, 고독하거나, 변절하거나, 아무 생각 없거나, 지나치게 열정적이거나, 잔인하거나, 순진하거나, 다양한 모습들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실패하고, 울부짖는다.
글의 마지막 문장. 마지막 장면의 잔상은 꽤나 오래도록 남아 망막 어딘가에서 흔들거린다. 그 잔상이 나쁘지만은 않다. 해피앤딩은 아니지만, 상황에 대한, 체념과는 다른 수긍. 인정. 지독한 위트에 어쨌든 쓴웃음 짓게 만드는 이야기들.
이 책의 기가막힌 반전들이 고프다.
쟝 모르의 여행기. <세상 끝의 풍경>
그 여행기는 '세계의 끝'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 곳곳에 남긴 그의 발자욱이기도 하지만,
그의 한생을 돌아보는 '삶이라는 여행' 의 정리이기도 하다. 존 버거와 공저로 되어 있는데, 존 버거의 글은 서문에서만 볼 수 있다. 쟝 모르를 알게 된 것은 물론 존 버거를 통해서였다. 존 버거의 소울메이트인 쟝 모르.독일의 출판사에 서문만 쓴 존 버거가 왜 공저자로 올라 있는지 문의하였더니, 존 버거의 요청에 의해서라고 한다. 그 둘의 고귀한 우정이 빛나는 에피소드다. 쟝 모르의 글은 그의 사진만큼이나 멋지다.
킴 윌슨의 <그와 차를 마시다>
제인 오스틴과 그녀의 소설, 그녀의 실생활에 나온 '차tea'이야기이다.
그녀의 소설의 조각들 뿐 아니라, 종종거리며 홍차를 사러 가는 제인의 모습까지,
그리고, 17세기부터 시작되어 19세기 무렵에는 전 계층에 없어서는 안 될 식품이 된 '홍차' 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책 읽는 것이 오후의 티타임 같지 않은가.
알랭 드 보통의 <동물원에 가기>
보통의 책 중 어느 것을 고를까 하다가 뽑아낸 책. 호흡이 짧은 책을 읽고 싶었고, 호흡은 짧되, 엑기스로 한글자, 한글자, 마침표까지도 재미있는 책이어야 했다. 그래서 고른 책.
마르크 레비의 <너 어디 있니?>
마르크 레비의 책을 참 좋아했었는데, 마지막에 나온 신간은 보관함에 오래오래 있다가 결국 삭제되는...
마르크 레비의 책은 내가 좋아하기에는 너무 사랑스럽고, 희망적이지만, 거기에 이르는 언뜻언뜻 드러나는 격렬함과 의외성이 맘에 쏙 든다. 그의 책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이 언제나 내 이상형이기도 하고.
수잔과 필립, 어릴때부터의 소울메이트인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로맨스 소설의 탈을 쓰고 있지만, 예상치 못한 전개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노지마 신지의 <스코틀랜드야드 게임>
위는 프랑스 작가, 그리고 노지마 신지는 일본의 유명한 드라마 작가지만, 왠지 비슷한 느낌이다.
한판, 한판 돌아가는 보드판 위의 게임과 보드판 밖의 게임. 인생은 게임이다. 그 게임의 승자가 되는 한가지 방법.
너세네이얼 웨스트의 <미스 론리하트>
슬슬 다시 읽을 때가 되었다. 나는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낫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지만,
책을 첫번째 읽을때보다, 두번때 읽을때 훨씬 많은 것을 알 수/볼 수 있다는 것은 안다.
수많은 의문부호를 남겼지만, 뭔가 튠이 맞아버려, 가슴 쿵했던 소설.
기억에 남는 결말 탑3에 드는 책이기도 하다.
카슨 매컬러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the heart is a lonely hunter,
이 책을 꺼내면서, 이 페이퍼를 쓰기로 했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이라니,
제목부터 '외로워' '외로워' 외로움을 뚝뚝 훌리고 있지 않은가.
경고 : 가을 심하게 타는 책이니, 아주 즐거울 때 읽어야 상쇄됨.
아사다 지로 <장미 도둑>
아사다 지로가 있는 책꽂이 칸에서 이 책을 골라냈다. 누가 뭐래도, 아사다 지로는 내가 생각하기에 최고의 이야기꾼이고, 그의 책은 무조건 재밌다. 그 중에 이 책이 가을을 타는 것 같아서 꺼내 주었다.
각기 다른 인간 군상의 각기 다른 이야기이지만,하나의 메세지가 있다.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어.없을 수도 있지만.'
가와카미 히로미의 <니시노 유키히코의 연애와 모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책 중 하나, 니시노 유키히코씨를 만나보라.
여자의 여자에 의한, 여자를 위한 책이다. 아, 니시노 유키히코씨는 남자다.
당신의 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