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8 - 헌종.철종 실록 - 극에 달한 내우, 박두한 외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8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11월
구판절판


사도세자의 서자 셋 중 은신군은 영조 말 제주에 유배되었다가 죽고 은전군은 정조 1년에 사사되었다. 은언군의 경우 그의 아들 상계군을 홍국영이 누이 원빈의 양자로 삼으려 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상계군을 내세운 역모사건이 이어지면서 이후 정순왕후를 필두로 신하들의 격렬한 처벌 요구가 있었지만 정조는 끝내 지켜냈다. 그러나 순조 시절 부인과 며느리가 천주교 신도임이 드러나고, 배소에서 탈출하려다 발각되면서 결국 사사되었다. 그에게는 군호를 받은 아들이 둘 있었는데, 장자인 상계군은 정조 10년에 의문의 죽음을 맞았고, 풍계군은 은전군의 양자로 입적되었다가 후사 없이 죽었다. 이광은 군호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서자였던 모양. 아비가 사사될 때 살아남아 순조의 적극적인 보호와 배려 아래 결혼도 했다. 그는 세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인 원경은 헌종 10년 민진용의 역모사건 때 이름이 거론되어 죽고, 둘째인 경응은 생존해 있었지만 세 살 아래인 막내 원범이 후사로 정해졌다.
-75쪽

헌종이 후사로 결정된 일을 안동 김씨의 음모로 보는 시각이 많다. 조선 왕실의 시스템을 무시한 해석이 아닌가 한다. 후사가 정해지지 않은 채 임금이 죽으면, 후사에 대한 결정권은 왕실의 큰 어른이 갖는다. 이때 왕실에는 세 명의 대비가 있었는데, 큰 어른은 두말할 것도 없이 순원왕후. 속마음이 어떻든 며느리인 신정왕후가 감히 경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실제로 헌종이 죽기 직전에 대보를 대왕대비전에 전했고, 마찬가지로 뒤에 철종이 후사 없이 죽었을 때는 대보가 조대비 신정왕후에게 전해졌다. 안동 김씨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헌종의 아저씨뻘인데도 원범을 후사로 삼았다고도 한다. 이 또한 지나친 해석이다. 후사는 가급적 선왕과 가까운 촌수에서 고르는 게 상례.
-79쪽

종친이란 신분은 안 그래도 책을 읽을 이유가 별로 없는데 농사짓는 강화 도령의 처지에서야 오죽했을까? 이제 종친도 농사꾼도 아닌 왕은 경연에 열심히 참여해 공부하고 대왕대비의 수렴청정을 보며 정치를 익혔다. 나이가 있어서인가? 철종 2년쯤 되니 곧잘 자기 의견을 말하기 시작한다. 왕은 제법 중심을 갖고 신하들을 달래거나 혹은 엄하게 제지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런 모습에 대왕대비는 그해 말 수렴을 거둔다. 그러나 친정이 시작되었어도 왕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각종 행사에 참여하고 신하들이 추천한 인물에 낙점하고 부임지로 떠나는 감사, 수령, 변장을 불러 잘 다스릴 것을 당부한다. 백성의 처지를 잘 아는 왕답게 수시로 삼정의 문란을 지적하고 수령들에게 경고하기는 했지만, 힘을 갖지 못했다. 왕이 그나마 자기 목소리를 내서 관철시킨 것은 죄안에 있는 이들의 사면 문제였다.
-98쪽

각지의 난들은 상당한 유사점들을 보여주었다. 우선 난은 삼정의 문란, 그중에서도 특히 환곡으로 인해 일어난 경우가 많았다. 원성이 집중됐던 토호, 아전들을 죽이고, 그들의 집을 불태웠으며 관아를 습격해 불을 지르거나 수령을 붙잡아 능욕했다. 난이 진행될수록 백성의 분노는 양반층 전체로 확산되는 경향도 띄었다. 그런데 삼남 일대를 온통 뒤흔들었는데도 지배 세력에게 안긴 충격은 그리 크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이웃 고을의 소식에 영향을 받고 자극되었지만 적극적으로 이웃 고을과 연계하려 한 움직임도, 여러 고을을 통일적으로 묶어내려 한 시도도 없었다. 전국적인 봉기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개별적이고 고립적인 봉기들의 릴레이였을 뿐이다. 그리고 관아를 습격하고 아전, 토호들을 거침없이 죽이면서도 수령은 욕보이기만 했을 뿐, 약속이나 한 듯이 한 고을에서도 죽이지 않았다. 그토록 분노가 컸으면서도 문제의 근원은 보지 못한 채 이런 인식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수령이 나쁜 놈이긴 해도 우찌 됐든 나라님이 임명한 사람 아이가?"
"하모. 수령을 직이모 나라에 선전포고 하는 거랑 같은 기라."
-127쪽

세도정치기를 거치면서는 삼정이 모두 문란할 대로 문란해져 외부적 요인 없이도 나라가 망할 충분조건이 구비되었다. 민란이 그 증거라 하겠다. 그런데 민란은 집권 사대부로 하여금 위로부터의 개혁을 실시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물론 집권 세력은 언제나 그랬듯이 이익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개혁의 기회를 무산시키고 말았다. (일관성은 있어.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탐욕스러운 것으로!) 이 사이 세계는 빠른 변화를 거듭했다. 백수십 년 전에 이미 북경이라는 제한된 창구를 통해서이기는 하지만 일각의 지식인들은 다른 세상을 보았고 실학의 발흥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는 체제 안으로 수렴되지 못했고 조선 사대부들이 다시 유교 경전을 뒤적이는 사이 외부 세계는 더욱더 빠른 변화를 겪으며 이때에 이른 것이다.
-184쪽

헌종 6년는 가파도에 정박한 영국 배가 포를 쏘고 소를 뺏어갔다. 철종 5년 함경도에 나타난 이양선이 포를 쏘아 백성이 죽은 일도 있었다. 헌종 12년 충청도 서안에 프랑스 배가 정박했다. 해당 변장, 수령은 두려워 찾아와 보지도 않았고, 인근 백성이 접촉해 문답을 나눴다. 그리고 그들이 건넨 문서 한 통이 올라왔다. 기해박해 때 처형된 프랑스 신부들에 대해 항의하는 글. 이듬해 과연 프랑스 군함이 다시 나타났는데 700명이나 실은 프랑스 군함은 좌초되고 말았다. 고군산도에 머문 그들이 보낸 편지는 공손하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상해에서 삯 낸 배가 그들을 싣고 떠날 때까지 한 달에 걸쳐 조선 측은 생필품을 제공하는 등 구호를 다했다. 이때 비변사의 대책은 여전히 외부와의 문제는 중국을 통해 해결한다는 입장. 비록 별 탈 없이 넘어갔지만, 조만간 더 강력한 외부세력의 접근이 있으리라는 것은 중국이나 일본의 경험으로 보아도 자명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비는 보이지 않는다. 개항에 대한 고려도, 척사에 대한 다짐도 논쟁의 흔적도 없다. 임진왜란 직전처럼, 정묘 병자호란 직전처럼. 아무런 대책 없이 그저 요행히 넘어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187쪽

삼정의 문란은 세도정치와 결합되면서 더욱 심화되었지만, 사실상 오래전부터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조선 사회를 바로 세울 수 없을 만큼 근본적인 문제였다. 서세동점의 물결에 대한 적절한 대응만큼이나 내부적으로 이 문제를 바로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리하여 민생을 편안케 하고 국가 재정을 넉넉히 해야 외생적 변수에 대한 대응책도 나올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 문제와 관련해 정조는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근본적인 수술을 시도하지 않았다. 다만 관리하고 단속하는데 부지런했을 뿐이다. 과연 이 문제를 제쳐놓고 조선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 개혁이 가능했을까? 그래서 필자는 정조의 개혁과 관련한 많은 해석들이 판타지에 가깝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흐름 속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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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의 하루 - 오늘, 일본 황궁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요네쿠보 아케미 지음, 정순분 옮김 / 김영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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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천황기》에 의하면 천황의 신장은 5척 5촌 4부였다고 한다. 약 165cm이니 당시로는 체격이 좋은 편에 속했다.
-37쪽

나이기는 천황의 기상인 '오히루‘를 신호로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오히루‘ 전달이 없으면 궁전의 하루 일과가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즉 메이지 천황은 그 존재 자체로 궁전의 시계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천황이라는 궁전의 시계에 그 누구보다도 구속을 받던 존재는 다름 아닌 메이지 천황 자신이었다.

-38쪽

흔히 일본 남성은 가부장적이어서 상대방을 위한 자상한 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습관이 없다고들 한다. 그것이 과연 일본 전통의 모습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헤이안 시대의 문학 작품을 보면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였다. 여성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당시 남성에게는 기본적인 미의식이었다. 메이지 천황도 주위의 여성들에게 배려하는 마음을 항상 잊지 않았다.

(...)

천황이 가장 좋아한 것은 도코노마(일본 건축에서 객실인 다다미방의 정면에 바닥을 한 층 높여 만들어놓은 곳으로, 액자나 꽃을 놓아두고 신성한 곳으로 여긴다)에 장식되어 있는 각종 검들이었다. 개중에는 천황 스스로 사 모은 것도 있었지만 신하들이 천황의 취미를 알고 헌상한 것들도 있었다.


-52쪽

이 시기 상류 계급에선 의외로 여성 끽연가가 많았다. 현재 우리가 전통적인 풍습으로 생각하는 것 중의 대부분은 중하급 무사의 생활습관을 기본으로 하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면 "여자가 담배를 피우다니"하고 눈살을 찡그리는 것도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생활풍습은 신분이나 계급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57쪽

황족이 알현을 왔을 때도 양쪽이 모두 기립한 상태에서 대화가 진행되었는데 예외적으로 의자에 앉은 인물들이 있었다. 아리스가와 다케히토 친왕과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이다. 보조가 특히 이토는 "어전에 나갈 때는 보통 검을 빼고 들어가는데 그 사람만은 찬 채로 들어갔습니다" "팔꿈치를 의자에 기대고 편안한 자세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메이지 대제의 일상을 추억하다》)라고 하는 것처럼 별격이었던 듯하다.

-69쪽

여관이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하는 것은 식사 당번 때만이 아니었다. 하반신은 인간의 몸에서도 대표적인 ‘차’의 장소이기 때문에 손이 더러워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여관은 자신의 양말이나 버선도 아랫사람의 손을 빌려 신었다고 한다. 다다미에 앉아서 엎드려 인사를 할 때도 발로 밟는 다다미 때문에 자신의 손바닥이 더럽혀질까봐 한 손은 손등을 바닥으로 향하게 하고 그 위에 다른 한 손을 포개놓는 식으로 했다. 만에 하나 손이 더럽혀지면 청정의 과정을 다시 되풀이해야 했다.

-104쪽

천황의 몸을 씻는 데도 청인 상반신은 권전시, 장시, 권장시가 씻고, 차에 해당하는 하반신은 명부, 권명부가 씻어야 했다. 천황은 신성한 존재이기 때문에 전신을 청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이다. 그리고 욕조는 물을 허리 정도까지만 채워서 하반신만 물속에 담그도록 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반신욕이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욕조 가득 물을 부으면 상반신까지 물속에 들어가 차인 하반신의 더러움으로 청인 상반신까지 더러워지기 때문이다.

-176쪽

몸에서 가장 더러운 발이 이불에 직접 닿으면 이불을 타고 더러움이 온몸에 퍼진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나이기의 잠옷에는 특수한 장치가 되어 있었다. "옷의 끝자락을 길게 해서 발을 감쌌다"고 하므로 발이 이불에 닿지 않도록 하얀 비단 잠옷으로 크레이프처럼 온몸을 싸도록 만든 것이다. 천황 부처와 여관들 모두 그런 잠옷을 사용했다고 한다.

-218쪽

다이쇼 시대의 나이기는 메이지 시대에 비해 크게 달라진 점이 있었다. 그것은 실질적으로 일부일처제가 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메이지 시대와 마찬가지로 궁정에 황후 사다코의 ‘대리인’인 공가의 미혼의 딸들의 재적하고 있었지만 실제적으로 ‘비妃(후궁)’로서의 역할은 없었다.

-231쪽

저녁 식사 때는 메이지 천황 부처가 각각 다른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한 것과 달리 다이쇼 천황 부처는 하나의 테이블에 마주 앉아서 식사를 했다.

-235쪽

해설
메이지 천황과 근대 천황제 (신명호)
1867년 12월에 이른바 ‘대정봉환’이 있었다. 에도 막부의 쇼군이 메이지 천황에게 권력을 되돌린 것이 대정봉환이었다. 이는 일본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가마쿠라 막부 시대부터 에도 막부 시대까지 8백 년 가까이 권력에서 소외되었던 천황이 갑자기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다. 대정봉환 이후 메이지 천황은 종교적 권위는 물론 세속적 권력까지 장악한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대정봉환이 이루어지기까지 일본은 10여 년 이상 격심한 혼란을 겪었다. 1853년 6월 3일, 미국의 페리 제독이 네 척의 함선을 이끌고 도쿄 앞바다에 입항했다. 페리 제독은 일본과 수호통상을 요구하는 미국 대통령의 국서를 휴대하고 있었다. 페리 제독의 출현은 에도 막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에도 막부는 전쟁을 해서라도 페리 제독의 요구를 거절해야 한다는 쇄국파와, 전쟁을 해봐야 이길 수 없으니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는 개항파로 갈렸다. 스스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에도 막부는 전국의 영주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영주들 역시 개항파와 쇄국파로 갈렸다.

-260쪽

결국 에도 막부는 고메이 천황에게까지 의견을 구했다. 천황의 권위를 빌리려는 생각이었다. 고메이 천황은 개항에 절대 반대였다. 개항으로 서양의 문화가 들어오면 신국神國 일본이 더럽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의 페리 함대에 이어 8월에는 러시아 함대 네 척이 나가사키에 입항했다. 에도 막부의 입장에서는 쇄국을 고집하기가 더욱더 어려워졌다. 쇄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 러시아 등과 전쟁을 각오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다. 1854년 3월, 에도 막부는 고메이 천황과 논의도 없이 미국과 가나가와에서 수호조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일본은 서구열강에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다. 에도 막부의 개항 결정은 격심한 저항을 불러왔다. 당장 고메이 천황이 강력한 거부감을 표명했다. 하급 무사들은 에도 막부가 신국 일본을 서양 오랑캐에 팔아버렸다며 막부 타도 운동을 전개했다. 그들은 서양 오랑캐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천황을 중심으로 뭉쳐 에도 막부를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쓰마 번, 조슈 번 등 거대 번들이 동조하면서 이른바 ‘존왕양이’ 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졌다. 막부파와 천황파 사이에서 유혈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261쪽

결국 에도 막부의 쇼군은 권력을 천황에게 되돌려서 궁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1867년 10월 14일에 에도 막부의 쇼군은 상서를 올려 대정봉환을 요청했다.. 다음 날 에도 막부의 쇼군은 입궁하여 메이지 천황의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12월 9일에 왕정복고가 정식으로 공포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메이지 유신의 시작이었다. 형식적으로 볼 때 메이지 천황은 1867년 12월의 대정봉환으로 세속적 권력까지 장악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형식일 뿐이었다. 일본은 여전히 수백 개의 번으로 나뉘어 있었고, 세속적 권력은 번 지사들의 손아귀에 있었다. (...) 반면 메이지 천황에게는 직속된 토지나 인민이 없었다. 군대도 없었고 자금도 없었다. 이런 상태로는 천황 주도의 유신이 성공할 수 없었다. 전국의 토지와 인민을 천황이 직접 장악해야 군대와 자금을 직접 장악할 수 있었다. 그것은 폐번, 즉 번을 폐지함으로써만 가능했다. 가마쿠라 막부 이래로 8백여 년간 일본 사람들은 번주를 주인으로 알고 살아왔다. 비록 쇼군이 있었지만 실제적으로 세금을 걷고 군대를 징발하는 권한은 번주에게 있었다. 번은 곧 일본 사람들에게 나라였다.

-262쪽

1870년 12월, 메이지 천황의 핵심 측근인 이와쿠라 도모미는 당시의 대표적인 웅번인 사쓰마 번, 조 슈 번, 고지 번을 방문하여 폐번치현의 협력을 약속받았다. 이로부터 폐번치현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마침내 1871년 7월 14일, 메이지 천황은 폐번치현의 조칙을 선포했다. 폐번치현은 8백여 년간 지속되던 막부체제의 종말이자 지방분권체제의 종말이었다. 일본은 군현제에 의해 명실상부한 중앙집권체제로 탈바꿈했다. 그 체제의 정점에 메이지 천황과 하루코 황후가 있었다.

-263쪽

하루코 황후는 곧바로 황후에 책봉된 것이 아니었다. 일단 후궁인 여어어방에 책봉되었다가, 혼례식을 치른 후 황후에 책봉되었다. 천황의 황후가 애초부터 황후에 책봉되는 것이 아니라 후궁에 책봉된 다음에야 책봉된다는 사실은 황후나 후궁이 신분적인 면에서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았음을 뜻했다. 천황의 배우자는 황후이든 후궁이든 기본적으로 5섭가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황후는 어느 후궁이나 승진해서 올라갈 수 있는 자리에 불과했다. 사실 대부분의 천황은 아예 황후를 책봉하지 않기도 했다. 메이지 천황의 부친인 고메이 천황도 그랬다. 고메이 천황의 정실부인인 구조 아사코는 황후에 책봉되지 못하고 후궁 중에서 최고인 준후에 머물러야 했다. 준후는 말 그대로 황후 다음이라는 뜻으로서 엄격히 따지면 후궁이었다.

-265쪽

일본의 여관은 천황과 황후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육체노동을 제공하는 여성 관리였다. 조선으로 치면 궁녀에 해당했다. 하지만 일본의 여관과 조선의 궁녀는 전혀 달랐다. 무엇보다도 신분이 달랐다. 조선의 궁녀는 근본적으로 내수사 소속의 노비 출신이었지만, 일본의 여관은 공경의 딸들이었다. 따라서 일본의 여관은 명색만 여관이지 실제로는 후궁도 될 수 있었고 황후도 될 수 있었다. 신분적으로 여관은 후궁이나 황후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천황의 황후도 처음에 여관으로 시작했다.

-267쪽

(역자후기)
일본국 헌법에는, 천황을 일본국과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이라고 규정하고 있어서 천황 및 황족이 최상의 대우를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되어 있다. 황실의 호위만을 전문으로 하는 황궁경찰본부가 있고, 천오백 명에 달하는 궁내청 직원이 황실의 모든 생활을 관리하며, 황족에게는 소득세 납부 의무도 면제된다. 천황 및 황족은 말하자면 갖가지 국가의 특혜를 받는 세습제의 ‘고위직 국가 공무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만큼 그들이 포기해야 하는 인간적인 삶 또한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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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구판절판


죽음은 생물학적인 필요 때문에 삶에 꼭 달라붙는 것이 아니다-시기심 때문에 달라붙는다. 삶이 워낙 아름다워서 죽음은 삶과 사랑에 빠졌다. 죽음은 시샘 많고 강박적인 사랑을 거머쥔다. 하지만 삶은 망각 위로 가볍게 뛰어오르고, 중요하지 않은 한두 가지를 놓친다.

-17쪽

아버지는 매표소 바로 뒤 벽에 선홍색 글씨로 ‘동물원에서 가장 위험한 건 뭘까요?’라고 적고, 작은 커튼이 있는 곳으로 화살표를 해놓았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답을 보느라 커튼을 걷는 바람에, 정기적으로 커튼을 바꿔야 했다. 커튼 안에는 거울이 있었다.

-47쪽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신은 ‘궁극적인 실체’이자 존재를 떠받치는 틀이건만, 마치 신의 힘이 약해서 자기가 도와야 된다는 듯 나서서 옹호하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자들은 정작 나병에 걸려 동전푼을 동냥하는 과부는 못 본 체 지나고, 누더기 차림으로 노숙하는 아이들 곁을 지나면서도 ‘늘 있는 일’로 치부한다. 하지만 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점을 보면 난리라도 난 것처럼 군다. 얼굴을 붉히고 숨을 몰아쉬면서, 화를 내며 말을 쏟아낸다. 얼마나 분노하는지 놀라울 뿐이다. 그 단호함이 겁난다. 이런 자들은 겉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신을 옹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분노의 방향을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는 걸 모른다. 바깥의 악은 내면에서 풀려나간 악인 것을... 선을 위한 싸움터는 공개적인 싸움장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 있는 작은 공터인 것을...... 과부와 집 없는 아이들의 운명은 너무 힘들다. 그러니 독선적인 자들이 편들어주러 달려갈 곳은 신이 아니라 그런 이들인 것이다.
-96쪽

기도 카펫이 마음에 들었다. 고급은 아니었지만 내 눈에는 아름답게 빛났다. 그걸 잃어버려서 안타깝다. 어디에 펴든, 그 밑의 땅과 주변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느껴졌다. 땅은 신이 창조한 피조물이며 모든 것이 똑같이 신성하다는 점을 되새기게 해주는 것이 좋은 기도 카펫 아닐까. 빨간 바탕에 금색 줄이 섞여 있었다. 폭 좁은 직사각형 위에 삼각형의 꼭짓점이 기도하는 방향을 가리켰고, 그 주변에는 소용돌이무늬가 연기나 알지 못하는 언어의 부호처럼 새겨져 있었다. 털은 포근했다. 기도할 때 이마가 닿는 부분 조금 옆에는 술이 달려 있었다. 발끝이 닿는 곳 조금 옆에도 술이 달려 있었다. 이 넓은 세상 어디에서든 편하게 해주는 크기였다.

-104쪽

가여운 녀석, 인간처럼 멀미를 하다니! 동물에게서 인간의 흔적을 보는 것은 특별한 재미가 있다. 특히 원숭이나 유인원에게서는 인간의 모습을 찾기 쉽다. 유인원은 동물 세계에 사는 인간의 거울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머리를 가슴팍까지 숙이면서 밀려드는 감정에 놀랐다. 이런! 웃음이 내 안에서 행복의 화산을 폭발시킨 것 같았다. 오렌지주스는 내게 원기만 찾아준 게 아니라, 멀미까지 없애주었다. 이제 기분이 괜찮아졌다. 다시 수평선을 찬찬히 바라보자 희망이 샘솟았다.

-157쪽

그날 아침 내가 생명을 구한 것은, 갈증이 나서 문자 그대로 죽을 지경이었던 때문이라고 믿는다. ‘갈증’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르니, 다른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 말 자체가 짭짤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 생각을 할수록 결과는 더 나빠졌다. 공기가 부족한 것이 물에 대한 갈증보다 다급하게 느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몇 분간만 그럴 것이다. 몇 분 후에는 죽을 테고, 질식의 고통은 사라지니까. 반면 갈증은 느릿느릿 일어난다. 보라. 십자가의 예수는 질식해서 죽었지만, 그가 유일하게 불평한 것은 갈증이 아니었던가. 갈증이 인간의 모습으로 온 신까지 불평하게 만들 만큼 힘든 것이라면, 보통 인간은 어땠을지 상상해보기를. 나는 미쳐서 펄쩍펄쩍 뛸 것 같았다. 입에서 썩은 맛이 나고 끈적끈적한 것처럼 고약한 게 있을까. 목구멍 뒤쪽에 달라붙어 있는 참을 수 없는 이 압박감. 이 피가 걸쭉해져서 잘 돌지 않는 느낌. 사실 그런 고통에 비하면 호랑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173쪽

그와 거리가 3미터도 되지 않았다. 그의 머리, 가슴, 발...... 정말 컸다! 무지무지 컸다! 이빨은 입 안에 군부대 하나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이제 방수포로 뛰어들 터였다. 나는 죽은 목숨이었다.

-194쪽

여러분에게 비밀을 털어놓겠다. 마음 한편으로 리처드 파커가 있어 다행스러웠다. 마음 한편에서는 리처드 파커가 죽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가 죽으면 절망을 껴안은 채 나 혼자 남겨질 테니까. 절망은 호랑이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 아닌가. 내가 아직도 살 의지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리처드 파커 덕분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가족과 비극적인 처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나를 계속 살아 있게 해주었다. 그런 그가 밉지만 동시에 고마웠다. 지금도 고맙다. 이것은 분명한 진실이다. 리처드 파커가 없다면, 난 오늘날 이렇게 살아 여러분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을 것이다.

-207쪽

인체는 전투에서 영웅이 될 수 있다. 조난자가 부상당한 경우, 뜻은 좋지만 정확한 근거 없는 치료법을 조심할 것. 무지는 최악의 의사인 반면, 휴식과 잠은 최고의 간호사다.

-210쪽

지나가는 배에 구조되리라는 희망을 너무 많이 갖는 것도 그만둬야 했다. 외부의 도움에 의존할 수 없었다. 생존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내 경험상 조난자가 저지르는 최악의 실수는 기대가 너무 크고 행동은 너무 적은 것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데서 생존은 시작된다. 게으른 희망을 품는 것은 저만치에 있는 삶을 꿈꾸는 것과 마찬가지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텅 빈 수평선을 내다보았다. 물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나는 혼자였다. 완전히 혼자였다.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가슴에 팔짱을 끼고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아무 희망도 없는 처지였다.
-212쪽

슬쩍 내려다보고서도 나는 바다가 ‘도시’임을 알아차렸다. 내 바로 아래에, 사방에 상상도 못 했던 고속도로, 대로, 좁은 도로, 교차로가 있었다. 해저 통행객이 우글우글했다. 복잡한 바다에는 얼룩 반점이 있는 번들거리는 플랑크톤 수백만 개가 점점이 박혀 있었다. 트럭, 버스, 승용차, 자전거, 보행자처럼 정신없이 내달리는 물고기 떼는 경적을 울리고 소리를 질러댔다. 주조색은 초록빛. 눈이 닿는 곳까지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물속에서 물고기 떼가 속도를 내느라 물을 흔들면, 인광을 내는 초록색 거품으로 이루어진 길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 길이 사라지면 곧 다른 길이 나타났다. 이런 길들이 사방에서 생겼다가 사방에서 생겼다가 사방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꼭 노출 시간을 길게 해 찍은 사진 같았다. 밤에 도시를 찍은 사진을 보면, 자동차 불빛이 꼬리를 이은 광경이 긴 빨간 줄들로 보이지 않던가. 다만 여기서는 차들이 서로의 머리 위와 몸 아래로 달리고 있었다. 십 층짜리 고가도로 같달까.

-220쪽

나는 허리를 숙여 물고기를 집어, 리처드 파커 쪽으로 던졌다. 호랑이를 길들일 좋은 방법이었다! 쥐가 간 곳에 날치도 따라가게 되겠지. 그런데 날치는 휙 날아가버렸다. 공중에서, 그러니까 리처드 파커의 벌린 입을 살짝 빗나가 그대로 바다에 떨어졌다. 빛이 날아가는 것 같은 속도였다. 리처드 파커는 머리를 돌리고 턱을 깨물며 입을 다물었지만, 날치가 너무 빨라 잡지 못했다. 그는 놀라고 또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리처드 파커는 다시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내 먹이는 어디 있지?’라고 묻는 표정이었다. 나는 공포와 슬픔에 사로잡혔다. 호랑이가 덮치기 전에 뗏목으로 뛰어내릴 수 있을까. 반쯤 자포자기하여 맥이 빠졌다.

-226쪽

만새기는 죽어가면서 아주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빠른 속도로 온갖 색으로 빛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버둥거리는 몸이 파랑, 초록, 빨강, 금색, 보라색으로 바뀌며 네온 불빛처럼 번뜩였다. 무지개를 내리쳐서 죽이는 기분이었다(나중에야, 만새기가 죽음 직전에 무지개 빛깔을 내는 어류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침내 만새기는 뻗었고 탁한 색깔로 변했다.

-231쪽

나는 태양 증류기에 대고 소리쳤다.
"귀여운 바다 젖소 같으니! 젖을 만들었구나! 얼마나 맛좋은 우유인지. 고무 맛이 좀 나긴 해도 불평할 처지가 아니지. 내가 마시는 걸 보라구!"
-234쪽

처음에는 줄곧 지나가는 배가 있는지 내다보며 지냈다. 하지만 대여섯 주쯤 지나자 그것은 거의 완전히 접어버렸다. 그리고 망각에 기대 목숨을 부지했다. 내 이야기는 달력 위의 날짜에서 시작해서-1977년 7월 2일-달력 위의 날짜로-1978년 2월 14일-끝나지만, 그 사이에는 달력 같은 것은 없었다. 나는 며칠인지, 몇 주일인지, 몇 달인지 헤아리지 않았다. 시간은 우리를 갈망하게 할 뿐인 환영인 것을. 내가 살아남은 것은 시간 개념 자체를 잊은 덕분이었다.

-239쪽

내가 바다에서 동물을 조련하고 목숨을 건졌다면, 그건 리처드 파커가 날 공격하고 싶어하지 않은 덕분이다. 호랑이는, 아니 모든 동물은 우위를 가리는 수단으로 폭력을 쓰려 하지 않는다. 동물이 맞붙어 싸울 때는 죽이려는 의도가 있는 경우고, 이때 자신이 죽을 수도 있음을 잘 안다. 충돌에는 큰 희생이 따른다. 그래서 동물들은 최후의 대결을 피할 의도로 경계하는 신호체계를 갖추고 있다. 경계해야 한다는 신호가 감지되면, 그들은 얼른 뒤로 물러난다. 호랑이는 경고 없이 적을 공격하지 않는다. 보통 적수에게 정면으로 달려들 때는 으르렁대는 소리를 낸다. 하지만 달려들기 직전에 목구멍 깊은 곳에서 위협하는 소리를 쏟아내면서 꼼짝 않고 대치한다. 그러면서 상황을 가늠한다. 상대가 위협적이지 않다는 결론이 나면, 호랑이는 싸울 필요가 없다고 느끼고 몸을 돌린다.
-257쪽

내 가장 큰 바람은-구조보다도 큰 바람은-책을 한 권 갖는 것이었다. 절대 끝이 나지 않는 이야기가 담긴 긴 책. 읽고 또 읽어도 매번 새로운 시각으로 모르던 것을 얻을 수 있는 책. 아쉽게도 구명보트에는 성서가 없었다. 나는 크리슈나의 말이라는 은혜 없이 부서진 전차에 탄 서글픈 아르주나 꼴이었다.
-258쪽

일기를 썼다. 지금 필체를 알아보기는 어렵지만. 최대한 글자를 작게 썼다. 종이가 떨어질까 두려웠다.
-259쪽

생존 식료품이 점점 줄어들자, 책자에 적힌 그대로 여덟 시간마다 비스킷 한 개씩만 먹을 정도로 급식량을 줄였다. 계속 배가 고팠다. 강박적으로 음식 생각을 했다 적게 먹어야 될수록, 공상 속의 음식량은 많아졌다. 상상 속의 식사는 인도만 하게 커졌다. 갠지스 강 분량의 콩 수프. 라자스탄만 한 따끈한 차파티. 우타르 프라데시(인도에서 다섯 번째로 넓은 도시)만 한 쌀밥그릇. 타밀나두 지역에 넘쳐나는 삼바. 아이스크림이 히말라야 산처럼 높이 쌓이고...... 백일몽은 음식 전문가의 경지로 올라갔다. 음식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는 늘 싱싱하고 풍족했다. 오븐이나 프라이팬은 항상 적당한 온도로 맞춰져 있고, 음식의 조화는 언제나 딱 알맞았다. 타거나 설익는 것도 없고,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찬 것도 없었다. 식사마다 완벽했다. 다만 내 손이 닿지 않을 뿐.
-263쪽

여러 가지 하늘이 있었다. 바닥은 평평하지만 윗부분은 둥글고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흰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잿빛 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아 숨 막히게 자욱하지만 비는 올 것 같지 않은 하늘도 있었다. 얇게 내려앉은 하늘. 작고 흰 양털 같은 구름이 피어오른 하늘. 솜 덩어리를 늘어놓은 것 같은 얇은 구름이 높게 끼기도 했다. 형태 없이 희미한 아지랑이 같은 하늘도 있었다. 짙고 거센 비를 머금은 구름이 지나만 갈 뿐 비는 뿌리지 않는 하늘. 모래톱처럼 생긴 작고 평평한 구름으로 자욱한 하늘. 수평선에 걸쳐진 덩어리로만 보이는 하늘. 태양빛이 바다에 밀려들면, 빛과 그림자의 경계가 확연히 드러났다. 하늘은 내리는 빗줄기로 된 머나먼 장막이었다. 하늘은 층층이 있는 구름이었다. 어떤 것은 짙고, 뿌옇고, 또 연기 같았다. 하늘은 검은색이었고, 내 웃는 얼굴에 빗줄기를 뿌렸다. 하늘은 떨어지는 물일 뿐 아무것도 아니었다.

-267쪽

여러 가지 바다가 있었다. 바다는 호랑이처럼 포효했다. 바다는 비밀을 털어놓는 친구처럼 귀에 속삭였다. 바다는 호주머니에 든 동전처럼 쨍그랑댔다. 바다는 산사태가 무너지는 소리를 냈다. 바다는 사포로 나무를 문지르는 소리를 냈다. 바다는 사람이 토하는 소리를 냈다. 바다는 죽은 듯 고요했다.
그 둘 사이에, 하늘과 바다 사이에 온갖 바람이 있었다.
또 온갖 밤과 온갖 달이 있었다.
-268쪽

상반되는 것 중 최악은 권태와 공포다. 우리 삶은 권태와 공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추다. 바다가 주름살 하나 없다. 바람의 속삭임조차 없다. 시간이 영원까지 계속될 듯하다. 어찌나 권태로운지, 의식불명에 가까운 상태로 빠진다. 그러다 바다가 거칠어지면 감정은 광풍에 휩싸인다. 그러나 이 두 상반되는 것조차 명확하게 남지 않는다. 권태 속에는 공포라는 요소가 있다.

-269쪽

어느 날 오후, 폭풍우가 천천히 들이닥쳤다. 바람에 앞서 다가온 구름이 겁에 질려 비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어서 바다가 비틀거렸다. 바다가 위로 솟았다 밑으로 떨어지자 내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279쪽

새벽녘에 뗏목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묶은 노 두 개와 그 사이에 매놓은 구명조끼만 남았을 뿐이었다. 타버린 집에 남아 있는 기둥을 바라보는 가장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수평선을 꼼꼼히 살폈다. 아무것도 없었다. 내 작은 해양 마을은 사라지고 없었다.

-282쪽

새는 모두 여섯 마리를 봤다. 가까이에 육지가 있다고 알려주는 천사로 보였다. 하지만 그것들은 바다에 사는 새여서, 날갯짓도 별로 하지 않고 태평양을 날 수 있었다. 나는 경외감을 품고 그들을 쳐다보았다. 부러워서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했다.

-285쪽

나무가 계속 서 있어서 나도 계속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파란색만 물리게 보다가 초록색을 보니, 눈에 음악을 쏟아붓는 것 같았다. 초록색은 예쁜 색이다. 이슬람교의 색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기도 하고.

-320쪽

그것은 나무였다. 바다에서 오래오래 헤맨 사람에게 얼마나 축복 넘치는 광경인지. 나는 나무의 영광을, 그 단단하고 서두르지 않는 순수를, 천천히 꽃피우는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아, 나도 저렇게 땅에 뿌리를 내리고 모든 손을 공중에 들어올려 신을 찬양할 수 있다면!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324쪽

나는 안간힘을 쓰다가 모래사장에서 쓰러졌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완전히 혼자였다. 가족도 없는데 이제 리처드 파커도 없이 혼자가 되어버렸다. 신마저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신도 없었다. 보드랍고, 단단하고, 드넓은 이 해벼은 신의 뺨 같았고, 내가 거기 있자 어디선가 두 눈이 기쁨으로 번득이고 입에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353쪽

"왜 조난 신호를 보내지 않았는지 그가 몰랐을까요?"
"만일 신호를 보냈다면요? 내 경험으로 시꺼먼 삼류 고물 배가 가라앉는 경우, 운이 좋아서 그 배가 기름을 운반한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요. 아무도 그 배의 사정을 듣지 않는다구요. 생태계 전체를 망칠 만큼 많은 양의 기름이 실려 있지 않다면. 녹슨 고철덩어리 배는 알아서 해야 한다구요."
-3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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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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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란은 궁금했다. 병아리를 키우는 남학생이 사는 집은 어떨까. 어떤 부모와 어떤 형제가 사는 집일까. 어떤 집에서 어떻게 자라야 달걀에서 병아리를 떠올릴 수 있을까. 지란에게 달걀은 그저 손쉽게 해먹을 수 있는 음식 재료일 뿐이었다. 그런데 해일은 달걀에서 병아리를 보았다. 부러웠다. 평화롭고 따뜻한 집일 것 같아서. 그런 집에 한 번이라도 가 보고 싶었다.-141쪽

'시원'과 별 차이도 없는데 이놈의 '쿨'은 뭔가를 강요하는 면이 있었다. 쿨하지 않으면 왠지 촌스럽고 질척한 인간처럼 만드는 요상한 말이었다. -143쪽

아이들은 해일의 말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담임뿐만 아니라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그렇지 않은가. 한없이 기대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쪼르르 달려가 폭 안길 만큼 편안한 존재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어떤 곤란한 일이 닥쳤을 때 "무슨 일이냐?"하고 등장한 선생님처럼 든든한 존재가 또 있을까?-152쪽

부릅뜬 지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달걀로 병아리를 부화시키는 동생, 외출하고 돌아와 병아리의 안부를 묻는 형, 아들이 부화시킨 병아리에게 꼬박꼬박 먹이를 챙겨 주는 어머니, 그것들에게 집을 지어 주겠노라 재료를 모아 둔 아버지. 그런 가족이 지란의 집에는 없었다. 갈기갈기 찢긴 종이처럼 너덜한 상처만 남은 집. '나'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이라는 말만 쏟아지게 만드는 집, 지란은 이 끔찍한 집이 싫었다.-178쪽

늦은 밤 닭갈비집은, 배부르고 맛있게 따뜻했다.-195쪽

남들과 너무 다르다는 말은 어린 해일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잔인한 억압이었다. 다르다는 말을 틀렸다는 말로 알고, 자신을 늘 틀린 아이로 생각했다. 그런데 감정 설계 전문가 형이, 남들과 아주 똑같다고 했다. 형이, 형이 그랬다. 너무 오래 기다린 말인 탓에 눈물이 나고 말았다.-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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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구판절판


아버지에게선 편지 한 통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편지를, 아버지를 기다리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를 잊었다. 잊히지 않으려면 내가 먼저 잊어야 했다. 1%의 기적을 기대하며 99%의 삶을 저당 잡히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외롭고 나는 슬펐지만 우린 불행하지는 않았다. 책으로 지은 성채는 모든 것으로부터 보호되는 절대적 안전지대였고 피난처였다. 그리고 만주의 전쟁터 속으로 걸어 들어간 아버지가 우리들에게 남긴 목숨 값이었다. 그 사실을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알았다. 그것을 영원히 몰랐다면 좀 덜 슬프고, 덜 아팠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언제나 너무 늦게 오거나, 아니면 너무 빨리 온다. 우리는 언제나 너무 빨린 만난 사랑 때문에, 너무 오래 만나지 못한 사람 때문에, 그리고 너무 늦게 알아버린 진실 때문에 아파한다.

-51쪽

간수장은 "전시 상황에서는 모든 인쇄물이 국가의 이익에 반하는 불온문서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아니라도 나는 알고 있다. 국가라는 괴물이 책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증오는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다. 모든 국가와 체제는 책을 두려워했고 책과 불화했다. 책 때문에 나라는 망하고 군주는 쫓겨났으며 귀족들은 망명했다.

-63쪽

그때 나는 알았다.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모든 군인들은 문장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것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총탄도 포탄도 아니었다. 그것은 글이었다.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사람들을 죽이는 데에는 한 줄의 글로 족했다. 몇 개의 단어와 숫자, 구두점에 의해 소년들은 병사가 되고, 전장으로 이동하고, 전투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인두처럼 달구어진 총탄에, 차가운 적의 총검에, 고막을 터뜨리는 폭발음에 고통을 느끼지도 못한 채 죽어 갔다.

-100쪽

그는 결코 알지 못했다. 읽는다는 것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는 것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감각이라는 사실을. 한 줄의 문장을,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한 인간을, 혹은 그의 세계를 읽는 행위라는 것을.

-169쪽

스기야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을 찾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은 없다. 신은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으니까. 힘 있는 자들은 신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고, 신의 영광을 빌미로 전쟁을 일으킨다. 힘없는 자들은 신의 뜻이라는 핑계로 불의를 눈감는다. 하기야 지금 같은 시절이라면 신을 믿지 않는 자만보다 신을 믿는 어리석음이 나을지도 모를 테지.

-178쪽

사내들은 침을 튀기며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가끔은 머리가 터지고 이가 부러졌다. 히라누마는 그들을 경멸하지 않았다. 그들은 경멸받아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이었다. 폭력은 불안에 지친 그들의 어쩔 수 없는 몸부림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방식대로 시대의 쇠바퀴에 맞섰을 뿐이었다. 무식꾼은 무식한 대로, 야비한 자는 야비한 대로, 거친 자들은 거친 방식으로.

-187쪽

스기야마의 눈빛은 날이 무뎌졌다. 그는 행복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약한 낭만주의자들의 지껄임이라고 외면해 왔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애써 부정해 왔던 일상의 작은 평화. 하지만 그것은 가질 수 없었기에 더욱 간절한 꿈, 꿈꾸지 못했기에 외면해야만 했던 동경은 아니었을까? 그는 한참 후에야 검열도장을 내리쳤다. 탕! 푸른 글씨가 새겨졌다. 검열 필. 엽서는 고베 항 뒷골목의 초라한 판잣집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는 소년에게 날아갈 것이다. 소년은 프랜시스 잠을 읽을 것이다. 엽서는 소년에게 삶의 무게와 전쟁의 고통을 이길 의지를 전할 것이다. 검열은 실패했다.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으니까.

-212쪽

스기야마는 주먹을 부르르 떨며 분명히 인식했다. 자신이 변했다는 것을. 다시는 변하기 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변해 버린 자신이 두려웠다. 어떤 책을 읽은 사람은 그 책을 읽기 전의 사람이 아니다. 문장은 한 인간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불치의 병이다. 단어와 구두점들은 몸 여기저기에 세균과 바이러스처럼 스멀스멀 기어 다닌다. 문장들은 뼈에 새겨지고 세포 속에 스며들고 자음과 모음은 혈관을 타고 흐른다. 수많은 상징과 비유는 뇌세포를 물들이고 영혼을 재구성한다. 그는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으며 돌아가서도 안 된다.

-220쪽

동주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것은 스물여섯 젊은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었다. 세상이 친절하지 않으며 세월이 다정하지 않음을 알아 버린 노인의 웃음. 기대는 배반당하고, 꿈은 이룰 수 없음을 받아들인 자의 웃음.

-225쪽

스기야마는 입술을 달싹였다. 승전? 전쟁에 이긴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전쟁과 싸워 이기는 인간은 없다. 죽음과 싸워 이기는 인간이 없는 것처럼. 전쟁이 끝나면 모두가 패자다. 승자조차도 자신이 얻은 승리 때문에 고통 받고 파멸당한다. 그러니 이기는 자에게도 지는 자에게도 위로는 필요하다. 전쟁으로 상처 입는 것은 똑같으니까.

-259쪽

스기야마는 몽둥이로 그의 몸 이곳저곳을 더듬어 무사함을 확인했다. 자신의 몽둥이에 찢어진 이마와 부어오른 눈두덩과 터진 입술.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때로 말은 소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순간의 눈빛, 짧은 숨소리, 손가락 끝의 떨림이 말을 대신한다. 침묵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대화다. 스기야마의 눈빛은 수십 마디의 미안하다는 말보다 절실했다.

-269쪽

결핍은 고통스럽지만 때로 인간의 영혼을 정화하고 고양시키는 법이다. 감옥은 살기엔 고통스러웠지만 꿈꾸기에는 좋은 곳이었다. 그곳엔 자유가 없었기에 자유를 꿈꿀 수 있었고, 희망이 사라졌기에 희망을 꿈꿀 수 있었다.

-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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