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2년 5월
장바구니담기


역성혁명파가 농민적 성격이 강했던 반면 온건개혁파는 지주적 성격이 강했다. 특히 신분에 있어서도 정몽주 등 온건개혁파에 비하여 역성혁명파는 대체로 서얼의 핏줄을 잇고 있어서 중심부에서 한발 비켜난, 이를테면 변방 혈통이었던 셈이다.

-29쪽

스테판 에셀은 그의 작은 책 ‘분노하라’의 마지막 구절에서 "저항이야말로 창조이며 창조야말로 저항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서정분교는 저항이었으며 창조였다.
-47쪽

벽초 가문은 지금까지도 홍 판서댁으로 불리고 있을 정도로 마을 인심을 잃지 않았는데, 특히 벽초가 북으로 가면서 농지 17만평을 소작인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하고 떠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79쪽

경술국치를 당하여 자결한 선친의 뜻을 명심하고 항일운동에 투신한 이래 수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특히 신간회 창립 주역으로 좌우의 민족 역량을 결집했던 그의 업적은 높이 평가된다.
-82쪽

‘임꺽정’은 단 한 번도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는 천민을 소설의 ‘중앙’에 앉혀 놓은 작품이었다. 소설의 주인공, 캔버스의 중앙, 영화의 주연은 각광받는 자리이다. 이 중앙을 하층민이 차지한다는 것은 그것으로도 혁명적인 것이었다. 이 때문에 ‘임꺽정’은 계급적 저항 소설로 읽힌다. 근대적 문학평론의 오래된 준거 틀이다.

-86쪽

물론 임꺽정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가 ‘강자’의 면모로 읽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 이미지를 입히는 주류 이데올로기도 그렇지만 우리는 사회적 약자가 최소한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대응 방식에 관해서도 무심하지 않아야 한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기 때문에 결코 약하게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적 약자는 문신을 하거나 성깔 있는 눈빛을 만든다. 위악을 연출한다. 생각하면, 사회적 약자는 위악을 주 무기로 하고, 반면에 사회적 강자는 위선을 무기로 한다. 극적 대조를 보인다. 시위 현장의 소란과 법정의 정숙이 그것이기도 하다.

-89쪽

종소리는 긴 여운을 이끌고 가다가 이윽고 정적이다. 소리가 없는 것을 정(靜)이라 하고 움직임이 없는 것을 적(寂)이라 한다. 1만 문수보살은 다시 산천으로 돌아가고 세상은 적멸이다.

-100쪽

우리가 반성해야 하는 것은 깨달음마저도 소유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끊임없는 불화와 긴장 그 자체가 지혜인지도 모른다.

-105쪽

우리 시대가 잃고 있는 것이 바로 조화와 소통이 아닐까. 산수(山水)는 대우라고 한다. 산과 물은 오래된 친구라는 뜻이다. 물이 없이 어떻게 산이 수목을 키울 수 있으며 산이 없이 어찌 물이 흐를 수 있으랴. 북악과 한강이 서로 환포하듯이 서로가 서로를 감싸고 어루만져야 진정한 벗이 될 수 있는 법이다. 북악이 권력의 상징이라면 멀리 낮은 곳으로 흐르는 한강이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소통과 화해의 상징이다. 나는 서울시청이 북악이기보다 한강수이기를 바란다. 민초들의 애환과 함께 유정하게 흘러가는 700리 도도한 강물이기를 바란다. 우리 시대가 잃고 있는 공감과 소통의 다정한 공간이기를 바란다.
-13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장바구니담기


진로상담을 하다보면 학생들이 지닌 목표 또는 욕망의 상당부분은 부모에게서 빌려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도 서울대에 가고도 남을 실력이 있었다. 그런데 집안형편이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목표를 이룰 수가 없었다. 너는 할 수 있다. 공부를 위해서라면 너에게 무슨 지원이든 아끼지 않겠다." 많은 학생들이 이런 장탄식을 듣고 자라면서 은연중에 부모의 욕망을 그대로 모방합니다. -50쪽

모방욕망은 전염병과 같아서 순식간에 사람들을 동일한 욕망으로 몰아넣습니다. 일단 동일한 욕망에 사로잡히고 나면 그 욕망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앞사람의 욕망을 따라 전진할 뿐입니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을 선명하면서 동시에 그를 미워합니다. 남의 것을 부러워하다 못해 빼앗고 싶다는 욕망을 갖습니다. 방해물이 있으면 이 욕망은 더욱 강회됩니다. 경쟁자가 있으면 욕망을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욕망이 정당하다는 확신을 갖습니다. 모방은 경쟁을 낳고 경쟁은 모방을 강화합니다. 무제한의 야망과 과도한 경쟁은 사회를 파괴합니다.

-50쪽

위기가 절정에 달해 모두가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만장일치의 폭력이 시작됩니다. 평소에는 의견이 달랐던 사람들도 누군가를 죽여 위기를 해소해야 한다는 데 쉽게 합의합니다. 마녀사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우입니다. 고대사회에서는 가뭄이 극심한 상황에서 기우제를 지내며 왕의 목을 치기도 합니다. 이같은 만장일치적 폭력에는 희생자의 제자나 신하까지 배신을 통해 묵시적으로 가담합니다. 예수를 죽이는 현장에서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가 그런 예입니다.
-52쪽

이런 폭발적인 폭력과 희생을 통해 사회는 질서와 평화를 되찾습니다. 희생양이 진짜로 페스트를 치유하거나 자연재해를 물리치지는 못하지만, 개인 사이에 극대화되었던 불화를 정리함으로써 위기를 멈추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흐르면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에 대해 신성한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한 개인을 의심하여 살해하고 추방한 사람들이 이제 그 억울한 개인에 대해 과도한 숭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제 신화화의 과정을 거쳐서 신적인 존재로 부활합니다. 이게 바로 서양의 여러 신화에서 시작되어 예수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희생양 메커니즘’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신화화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52쪽

신문을 보든, 책을 읽든, 학벌주의를 옹호하든 비판하든, 대부분 이야기들의 중심에는 단지 몇 개의 대학만이 있습니다. 그 안에 있어서 누리는 것은 별게 없을지 모르지만, 그 밖에 있어서 누리지 못하는 것은 너무 많습니다. 학벌은 뜨거운 감자입니다. 누구나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해법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골칫거리입니다. 모든 사람의 모방욕망이 집중되는 핵이기 때문에 그걸 쟁취하기 위한 경쟁과 그에 따른 상처도 엄청납니다. 학벌사회에서 만들어진 과도한 자신감과 열등감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모방욕망과 과도한 경쟁 속에서 우리 내면에는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 때려죽이고 싶다는 분노가 자리잡습니다. 나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정신병동으로 변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학벌은 일종의 폭약 덩어리입니다. 어떤 계기로든 이 폭약에 불이 붙으면 무엇이라도 태울 수 있습니다.

-57쪽

무슨 일이 터지면 너나 할 것 없이 가장 먼저 ‘전화 한통’ 해줄 지인을 찾습니다. 가족 중에 판검사가 나오기를 열망하는 것도 그 뿌리를 추적해보면 ‘전화 한통’ 해줄 권력자를 주변에 갖고 싶은 욕망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화 한통’의 욕망은 아무나 충족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분노와 갈등이 증폭됩니다. 내가 하면 ‘부탁’이고 남이 하면 ‘청탁’이 됩니다. 누가 청탁을 하거나 받았다고 보도되면, 우리는 그 한 사람이 마치 악마라도 되는 것처럼 맹비난합니다. 내가 숨기고 싶은 모든 어두운 면을 그 한 사람에게 투영하여 돌을 던집니다. 희생양에게 손을 얹어 우리 모두의 죄를 전가한 후, 그 희생양의 멱을 따고 불태우는 제사과정과 하나도 다를 게 없습니다. 그를 잡음으로써 우리는 평화를 얻습니다. 참 무서운 구조입니다.

-67쪽

중년 남성의 내면에 남아 있는 소년은 ‘지랄총량의 법칙’으로 알려진 ‘지랄’이기도 하고, ‘에너지’이기도 하며, ‘청춘’이기도 하고, 프로이트가 말하는 ‘이드’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색(色)’, 즉 욕망의 영역에 속한 힘이죠. 10대 중반부터 20대 후반까지 소년은 남성의 내면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춥니다. 조물주의 설계에 따르자면 바로 그 즈음에 가장 자연스럽게 분출되어야 하는 에너지입니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그랬던 것처럼 주로는 섹스를 통해서 말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습니다. 욕망을 찍어누른 사람만이 성공이란 달콤한 열매를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섹스를 통해 분출되어야 할 에너지는 엉뚱하게도 도서관, 고시원, 영어학원에서 대부분 소비됩니다. 그런 에너지 소비가 ‘건강한’ 것으로 권장되기도 합니다.
-89쪽

남녀 불문하고 다들 비슷한 형편이라 어차피 연애할 상대방도 시간도 공간도 찾기 어렵습니다. 취직, 고시, 유학 준비에 몰두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과정에서 젊은이들은 더욱 ‘계’에 속한 인간으로 변해갑니다. 그런 극심한 경쟁을 거쳐서 겨우 결혼할 여유를 갖게 되었을 때, 상대방을 고르는 기준도 ‘색’보다는 ‘계’에 속한 것들입니다.

-89쪽

이런 과정을 거친 뒤 규범적인 ‘계’의 남자들은 좋은 직장과 안정된 가정을 지닌 사회지도자로 자리잡습니다. 원래는 에너지를 충분히 사용하고 누린 다음에야 어른이 되는 것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그렇지 못한 사람만이 ‘훌륭한 어른’이 됩니다. 그저 ‘어른 행세’하는 법만 배운 소년들이 ‘훌륭한 어른’ 타이틀을 거머쥐는 셈이죠. 인간이 평생 써야 할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볼 때, 지랄이라는 실탄을 거의 사용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겉은 멀쩡한 어른인데 마음 깊은 곳 감성의 어느 한구석은 텅 빈 소년들입니다. 갈 곳을 잃은 ‘색’은 마음 한구석의 더 어두운 공간으로 숨어들어갑니다. 잠복한 것일 뿐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90쪽

세상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건 차가운 진실입니다. 그걸 알면 세상이 스산하게 느껴지죠. 그런데 그 진실이 주는 자유가 있습니다.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들의 반응에 일일이 신경쓸 필요는 없으니까요.

-105쪽

‘헤어질 수 있는 용기’를 갖는다는 것은 상대방과 독립된 인격체로서 자기 위치를 확보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런 용기 또는 에너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에게 전달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관계를 유연하게 지속시킬 수 있습니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관계를 끝장낼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이 원칙은 거의 모든 관계에 적용됩니다.

-120쪽

신학자 월터 윙크는 그의 책 『예수와 비폭력 저항』에서 여기 나오는 오른편, 왼편 뺨의 순서에 주목합니다. 먼저 얻어맞은 뺨은 왼편이 아니라 오른편 뺨입니다. 누군가 나의 오른편 뺨을 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왼편 손바닥이겠지요. 하지만 예수시대의 유대사회에서는 공적인 상황에서 왼손의 사용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상대방의 뺨을 때릴 때도 왼손은 쓸 수가 없었습니다. 마주본 상태에서 상대방을 때리려면 오른손을 써야 합니다. 오른손으로 오른편 뺨을 때려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른편 손바닥이 아니라 오른편 손등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른편 손등으로 상대방의 오른편 뺨을 때리는 것은 상해를 가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남편, 노예주인, 상관 같은 윗사람이 아내, 노예, 부하 같은 하급자에게 모욕을 주면서 ‘너는 나에게 꼼짝 못하는 존재이고, 나는 네 주인’이라는 걸 일깨워줄 때 오른편 손등을 사용합니다.
-122쪽

예수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층민중들이었기 때문에 이런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데 익숙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는 왼편 뺨도 돌려대라도 가르친 것입니다. 왼편 뺨을 돌려대는 것은 나약하게 "나를 한 대 더 때려달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왼편 뺨을 때리려면 주인은 오른편 손바닥을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른편 손바닥으로 상대방을 때리는 것은 대등한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의미합니다. 즉 노예가 주인에게 왼편 뺨을 돌려대는 것은 때릴 때 때리더라도 나를 더 이상 노예로 보지 말고 평등한 인간으로 인정해 달라는 반항입니다. 이 순간에 필요한 것은 역시 목숨을 건 결기입니다. 노예가 되지 않고 당당한 인간의 지위를 회복하기 위한 평화적인 저항수단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122쪽

그런데 이런 결기, 눈빛, 에너지는 한순간의 결단이나 기교로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헤어질 수 있는 용기, 관계를 끝장낼 수 있는 용기는 근본적으로 ‘혼자 서는 용기’와 연결됩니다. (...) 혼자서도 행복하려면 내면이 안정되고 튼튼해야 합니다.

-124쪽

‘계’는 불편한 경계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안락한 안전핀이기도 하지요. 단순히 규범이나 욕망의 문제만은 아니고 ‘중산층’이라는 삶의 기반과도 연결됩니다. 그 경계선 안에는 군필, 남성, 비장애인, 이성애자, 기혼자, 적당히 이상주의자인 교수·변호사·주류 종교인의 안정된 삶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131쪽

형은 이렇게 말합니다. "흔히 조기교육, 영재교육이 우수한 과학자를 만들어낼 거라고 생각하잖아. 그래서 과학고도 만든 거고. 근데 그거 완전히 착각이야. 너 창의성이 뭔지 아니? 남과 다른 생각을 하는 거지. 그런데 창의성이 과학고에서 만들어질 것 같아? 전혀 아니야. 창의성이란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남과 다를 수 있는 용기’야. 자연과학의 세계에는 정치가 없을 것 같지? 그런데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똑같아. 이전과 다른 새로운 이론을 만들 때는 누구나 상상할 수 없는 저항에 부딪혀. 새로운 이론을 주장했다가 학계에서 매장당하는 경우도 많아. 『싸이언스』나 『네이처』같은 학술지도 마찬가지야. 새로운 이론에는 늘 소극적이지. 창의적이 되려면 당연히 용기가 필요해. 그런데 조기교육, 영재교육이 그런 용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경기고 출신들이 그렇게 많은 우리 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못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야."

-208쪽

악의 평범성, 진부함을 이해하지 않고 히틀러만 악마라고 생각해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이 만들어 유지하고 있는 수많은 악마적 씨스템의 가면을 벗겨낼 수 없습니다.

-240쪽

마지막 순간까지 엉터리 사법씨스템에 충성하는 사냥꾼들의 모습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공통점은 바로 ‘어떤 경우에도 법과 질서는 지켜져야 한다’는 믿음입니다. 출전도 찾을 수 없는 "악법도 법"이라거나 "나쁜 법도 무법보다는 잣다"는 말들은 오랜 세월 이런 믿음을 대변해왔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어려서부터 그런 믿음을 갖도록 교육받았습니다. 그러나 규범에 대한 과도한 신뢰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상실한 싸이코패스 못지않게 위험합니다.

-247쪽

길거리 범죄가 보여주는 외형상의 폭력성 때문에 사람들은 화이트칼라 범죄보다 길거리 범죄를 훨씬 흉악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버스에서 10만원을 소매치기한 절도범은 구속되고 수백억을 빼돌린 대기업 회장은 불구속되어도 당연하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수사기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직폭력배가 상대방 조직의 결혼식장에 난입해 칼부림을 벌이면, 검찰이나 경찰은 붙잡힌 조직원들이 "보스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아무리 부인해도 어떻게든 조각을 맞추어 보스를 공모공동정범으로 엮어넣습니다. 그런데 대기업 범죄에서 넘버투인 고용사장이 "모두 내 책임으로 이루어졌고, 회장님은 모르는 일"이라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아, 그러시냐"고 고개를 끄덕이며 넘버투만 잡아넣습니다. 회장님을 잘 보호한 넘버투는 잠깐 징역살이를 마치고 나와 기업에 화려하게 복귀합니다.

-260쪽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근본적으로 법을 만드는 사람도, 집행하는 사람도 모두 화이트칼라이기 때문입니다. 법을 만드는 데는 늘 이해관계의 충돌이 있기 마련인데,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의 로비력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그 친구들도 모두 화이트칼라이다보니, 일상에서 보고 듣는 게 ‘기업하는 어려움’입니다. 눈 씻고 찾아봐도 노조운동하다가 쫓겨난 블루칼라 친구가 주변에 없으니 그런 목소리는 입법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화이트칼라 범죄는 법률에 규정되기도, 법에 정해진 형량을 높이기도 어렵습니다.

-261쪽

모텔의 존재가 직접적으로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청소년 보호를 내세운 정책이나 법률 중에는 유난히 근거가 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게임, 만화, 비디오, 학생인권조례 등을 청소년문제의 주범으로 몰아붙이지만, 입시지옥이라는 죽음의 씨스템을 빼놓고는 우리 청소년문제를 설명할 수 없죠. 아이들의 눈앞에서 모텔을 모두 없애버리기에 앞서 왜 이렇게 모텔이 많은지부터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미혼의 청춘들이 사랑을 나눌 곳이 마땅치 않고, 사회경제적 원인으로 결혼 연령이 지나치게 높아졌으며, 부모에게서 빨리 독립하는 게 불가능한 현실에서 모텔만 잡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죠. 청춘들만 모텔을 찾는 게 아니라고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왜 이렇게 혼외의 사랑이 넘쳐나는지, 결혼생활은 왜들 그렇게 불행한지, 제도로서의 결혼이 과연 법률이나 의무감만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결혼제도만이 아이들에게 최선의 양육환경을 제공하는지, 불행한 부모 아래 성장하는 것보다 이혼했어도 책임을 다하는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이 더 나은 것 아닌지도 토론해볼 만하죠.-266쪽

근본주의 기독교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성서에 오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목사님이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의심, 동성애가 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 예수 외에도 구원의 길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입니다. 근본주의자들은 이런 의심이 기독교 신앙과 절대로 공존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1)만약 이런 의심 중 한가지라도 사실이라면, 즉 성서에 오류가 있거나, 목사님에게 잘못이 있거나, 동성애가 죄가 아니거나, 예수 외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면, 2)성서는 더 이상 진리가 아니고, 3)성서가 진리가 아니라면 하나님도 존재하지 않으며, 4)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구원도 있을 수 없고, 5)구원이 없다면 나는 곧 지옥으로 간다고 믿습니다. 의심이 곧 지옥행 특급열차라는 논리체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조금의 의심이라도 품으면, 그는 더 이상 기독교인이 아니고, 더 이상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지옥에 가야 합니다. 언제나 결론은 지옥입니다.

-272쪽

교리는 딱 한가지뿐이고 거기서 파생되는 규범은 모두 지켜져야 한다는 세계관은 상상도 못 할 불관용적 태도와 끝없는 불안을 낳습니다. 이런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작은 불행을 만날 때마다 자기 삶 전체를 돌아보면서 혹시 의심을 품었기 때문에 불행이 닥친 게 아닌지 점검합니다. 나의 실패는 늘 나의 잘못이고, 나의 불행은 늘 의심의 결과입니다. 여기에 ‘하면 된다’는 긍적적 사고방식까지 합쳐지면 ‘안되면 모두 내 의심 탓, 잘되면 모두 하나님 은혜’라는 긍정적 태도가 만들어집니다. 물론 자기를 성찰하고 절대자에게 감사하는 태도가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언제라도 예기치 않은 불행이 찾아올 수 있는 게 우리 인생입니다.

-273쪽

이런 단순한 프레임에 갇혀 사는 사람들은 작은 불행을 겪어도 우울, 불안, 편집증, 공황상태에 빠지기 쉽습니다. 모든 불행은 내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불안은 근본주의 교회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의심할 줄 모르는 근본주의자들은 이런 불안의 노예가 되어 이미 충분한 벌을 받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런 근본주의 기독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분명히 다른 신앙의 길도 있습니다. 성서의 규범이 갖는 역사적 한계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받아들이고도 충분히 좋은 기독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근본주의자로 자처하는 사람들도 어차피 매일 의심하는 삶을 삽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성서의 무오류성을 의심하면 기독교인이 아니고 기독교인이 아니면 지옥 가고 이땅에서 불행을 겪는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런 의심을 드러내지 못할 뿐입니다. 그런 두려움을 걷어내고 의심을 솔직히 나누는 공동체가 오히려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근본주의는 자기에게도 남에게도 결국은 불행입니다.

-274쪽

규범 이야기를 길게 했는데, 요약하자면 딱 한마디입니다. "의심하라!" 근엄한 얼굴을 한 수많은 규범들이 오늘도 자기 존재의 근거로 온갖 이유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허세로 가득 찬 그 가면을 벗기는 작업은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기 위한 필수 과제입니다. 기득권층이 우리 눈을 돌리려고 만들어내는 각종 스캔들에 속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희생양이 만들어질 때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돌팔매질인지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사랑과 연대의 공동체를 일구어내는 출발점은 바로 규범에 대한 의심입니다. 의심의 도움으로 쓸데없는 규범들이 사라지고 나면, 꼭 지켜야 할 규범은 오히려 힘을 얻습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의심이 규범을 무너뜨리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의심이야말로 규범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토대입니다. 히틀러의 마지막 순간이 그랬던 것처럼, 의심이 없는 사회의 종착역은 아노미, 즉 규범의 몰락이기 때문입니다.

-275쪽

투석형에서 중요한 것은 첫 번째 돌을 던지는 사람입니다. 일단 첫 번째 돌이 날아가고 나면 군중심리에 의해 두 번째 세 번째 돌을 던지는 것은 한결 쉽습니다. 한 사람이 던진 돌멩이가 무시무시하고 엽기적인 집단폭력으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이런 희생양 사냥과 만장일치적 폭력이 거의 매일처럼 벌어지는 곳이 인터넷 공간입니다.

-298쪽

조금 늦게 돌을 던진다고 큰일나지 않습니다. 이런 기다림의 정신이 녹아있는 것이 무죄추정의 원칙입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우리편뿐 아니라 상대방에도 적용됩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딱 그 만큼의 책임만 지면 됩니다. 너무 빨리, 너무 자주 "저 새끼 죽여라!"를 외치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쯤 그를 의심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아무한테나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있을 수 있지만, 법과 정의는 원래 시끄럽지 않게 조용히 구현되는 겁니다.

-299쪽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내면에 꿈틀거리는 욕망을 잘 다독이며, 자신만의 공간을 지키고, 깊은 내면을 이웃과 나누다보면, 나도 모르는 새 주변에는 같은 길을 걷는 친구들이 하나씩 늘어납니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 혼자서도 행복할 줄 아는 개인, 사냥꾼의 광기 속에서 남을 지켜주려는 따뜻한 이웃,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서로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동지 들이죠. 그런 개인들과 아주 작은 연대가 싹트고 나면, 이 험한 정글 속의 삶도 한결 견딜 만합니다.
-30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기자 :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
주진우 지음 / 푸른숲 / 2012년 3월
장바구니담기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한데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결국 강자 편을 든다는 뜻 아닌가. 똑같은 룰로 링에서 싸우면 당연히 힘센 놈이 이긴다. 그 룰이라는 것도 힘센 놈들이 만들지 않았나.
나는 중립, 균형을 찾기보다 편파적으로 약자의 편에 서겠다. 내가 이런다고 약자들이 이기지도 못한다. 세상이 바뀌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힘을 함부로 쓰는 자들에게 짱돌을 계속 던질 것이다. "넌 정말 나쁜 새끼야." 쫓아가서 욕이라도 할 것이다. 그래서 깨지고 쓰러지더라도 말이다. 나는 17살 주진우다.
-7쪽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면 검찰이 부당한 특권을 내려놓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독립을 소외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달려든 거다. 검찰은 정권의 개가 되고 싶었다. 개 노릇 그만해도 된다니까 안 예뻐한다고 물어뜯은 거다.

-43쪽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은 재벌이고 재벌의 가장 큰 리스크는 총수다. 총수가 저지르는 온갖 범죄를 처리하는 데 회사는 모든 역량을 퍼부어야 한다. 총수는 기업의 엑스맨이다.

-79쪽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자기들이 잘해서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고, 국가를 먹여 살린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싼 이자로 돈 빌려주고, 세금 탕감해주고, 독점 주고, 부동산 투기 눈감아주는 특권이 재벌 성공의 핵심이었다. 삼성이 부동산 투기, 사카린 밀수 등이 없었다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수입차 규제가 없었다면 현대자동차가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 재벌의 성공에는 국민들의 희생이 있다. 그런데 이익공유제에 대해 이건희 회장은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오만하고 뻔뻔하다. 이게 천재 경영이다.

-80쪽

한국교회는 대기업을, 목사는 총수를 꿈꾸고 있다. 일부 대형 교회는 재벌의 못된 형태를 그대로 따라한다.

-105쪽

깔때기는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표현할 방법을 찾다 떠오른 말이다. 설교를 듣다가 언제쯤 돈 얘기 하겠다 생각하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헌금 얘기가 나온다. 어떤 내용의 설교를 하든 어김없이 이 깔때기가 들어온다. 천국에 가려면 십일조를 내야 한다고. 정봉주보다 더 자주 들어온다. 그러니 깔때기의 원조는 조용기 목사다. 막상막하로는 오직 조중동 깔때기가 있다. 이들은 어떤 사안이든 나쁜 일이 생기면 북한 때문이다. 아니면 DJ나 노무현 탓이든지. 조중동은 북한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나라처럼 돈을 뜯는 십일조는 전 세계적으로 없다. "모든 버는 돈의 십일조, 월급의 십일조를 내라. 그래야 천국 간다." 이건 성서에 있는 게 아니라 한국 목사들이 개발한 수익 모델이다. 돈을 내라고 이렇게 깔때기를 들이대는 목사도 전 세계에 없다. 조용기 목사는 우리나라 교회의 대형화·금권화·만능화의 출발점이다. 프랜차이즈 분점 교회를 만들어 비디오를 보면서 ‘아멘’ 하는 교회가 다른 나라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114쪽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거대한 마피아는 어디일까? 바로 천주교다. 교회에 비해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천주교도 크고 작은 문제로 시끄럽다. 문제가 있어도 내부에서 처리하는 관습 때문에 외부로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특히 천주교 고위직 사제들은 보수적이고 정치적인 행보로 교계에 오명을 남겼다.
우리나라 천주교 신자 수는 4백만 명가량 된다. 신자 수에 비해 우리나라 천주교는 큰 영향력을 갖고 있고 존경을 받는다. 신자가 늘고 있는 유일한 종교이기도 하다. 이는 이 땅의 민주화가 정착하는 데 횃불 역할을 한 천주교 사제들의 헌신과 희생이 바탕에 있었다. 사제와 평신자들에 의해 조직된 단체들은 1970년대 이후 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천주교 지도부와는 별개의 일이었다.
-119쪽

지하철에서 조선일보를 보는 시민을 보면 안쓰럽다. 조선일보에는 지하철을 타는 서민을 위한 기사는 없다. 조선일보는 친일파·독재 세력·수구·재벌의 기득권만을 대변하려는 것 같다. 어떤 사안이라도 그들을 위한 깔때기 기사가 나온다.

-151쪽

이들이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게 돈 뺏기는 거다. 그래서 난 5백 원이라도 뺏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당하게 쌓은 부에 대해서는 뭐든지 해서 추징해야 된다. 이명박 대통령 주변 사람들은 욕먹는 것, 칼을 씌워 광화문 앞에서 석고대죄시키는 것보다 5만 원을 뺏으면 더 슬퍼할 거다. 명예라는 건 애초에 없어서 부끄러운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부당하게 얻은 돈을 다 뺏어야 한다.

-203쪽

강금원 회장 "삼성이 언론사 간부, 고위 공무원, 판검사들을 왜 그렇게 많이 고용한다고 보는가? 나쁜 짓을 해서 그렇다. 정정당당하게 사업을 하면 그럴 필요가 없다." "기업이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 광고 나눠주고 돈 장난을 하고 있다. 비겁한 일이다. 기업은 기업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야 한다." "첨단 기술을 가진 중소·벤처 기업들은 대단히 어렵다. 그런데 삼성은 철저히 장사 논리로 국내 기업 제품을 오히려 안 쓰고 있다. 1원 차이만 나도 수입한다. 삼성과 거래해서 망하는 회사 많다. 이건 기업인의 치욕이다. 삼성은 중소기업과 상생, 그런 것 안 한다. 혼나야 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국민의 존경을 받으려 하는가?"

-252쪽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겨놓은 재산이 10조 원가량 된다는 부분은 무엇이 잘못됐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박정희 대통령은 재임 중 취득하거나 강탈하여 정수장학회, 영남대, 육영재단 등을 남겼다. 박근혜 의원은 세 재단의 이사장을 지냈다. 전국에서 캠퍼스가 가장 큰 대구의 영남대학교도 박정희 대통령이 남긴 재산이다. ‘교주’ 박 대통령이 출연한 돈은 ‘0원’이다. 박근혜 전 이사장이 출연한 돈도 ‘0원’이었다.

-260쪽

괴테는 역사의 의무는 진실과 허위, 확실과 불확실, 의문과 부인을 분명히 구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63쪽

"과거의 범죄를 반성하지 않는 것은 미래의 범죄를 용인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대문호 알베르 카뮈의 말에서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의 발간 의의를 찾았다. ≪친일인명사전≫이 세상에 나오는 데는 광복 후 64년 세월이 필요했다. 8년 동안 학자 150여 명이 편찬에 참여했다. 먼저 문헌자료 3천여 종에서 인물정보 250만 건을 취합했다. 그리고 20여 개 전문분과 심의와 편찬위원회의 50여 차례에 걸친 면밀한 검토를 거쳐 친일 인사 4389명을 수록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편찬위원들에게 "우리 할아버지를 명단에 올린다는 생각으로 선정과 서술에 신중을 기해달라"고 말했다. 감수에 참여한 한 교수는 "고증에 고증을 거듭했다. 친일파가 사전에 빠질 수는 있지만 친일 행적이 없는 사람이 올라가거나 내용이 틀린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265쪽

호남의 정서는 지역적·패권적 지역주의가 아니라 저항에 가까웠다. 특정 지역에서 20년 넘게 한 사람에게 90% 넘는 몰표를 던졌다는 것은 지역정치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일이다. 한화갑 전 대표는 "표가 적은 지역은 지역주의를 조장해서 대결하면 무조건 불리하다. 무슨 이득이 있다고 DJ가 지역감정을 조장하는가"라고 말했다.
DJ에 대한 가장 흔한 비방 중의 하나는 그가 대통령병 환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통령 자리를 지키기 위해 18년간 독재한 박정희 전대통령과 12년간 독재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 이러한 비난은 없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291쪽

독립유공자 유족 6천여 명 가운데 직업이 없는 사람이 60%가 넘고, 봉급 생활자는 10% 남짓이다. 중졸 이하 학력이 55% 이상이다. 이들은 대부분 비참하게 산다. 광복을 맞은 조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이 죄가 되고, 자자손손 불행으로 이어질 줄은 그들도 몰랐을 것이다. 친일파들은 권력을 유지하면서 자기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독립투사와 그 가족들을 ‘빨갱이’로 낙인 찍고 못살게 굴었다.

-299쪽

마을 주민 정태화 씨는 "대추리는 아픔이 서린 동네다"라고 했다. 정 씨는 "1940년대 일본 해군 비행장이 들어서서 동네 사람들이 쫓겨났고, 1952년 미군이 비행장을 넓히면서 또 쫓겨났다. 손톱, 발톱 빠져가면서 논을 만들어놓았더니 이제 다시 나가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한 노인은 "내 땅에서 내가 농사를 짓겠다고 하는데 나를 돈을 더 뜯어내는 파렴치범 취급을 하고 있다. 지진이 나서 평택만 뒤집어놓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313쪽

나는 청소년들이 일탈하면 어느 선까지는 봐주되, 선을 넘는 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죗값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은 범죄라고 눈감아주면 감화되는 게 아니라 죄의식이 무뎌질 뿐이다.

-342쪽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은 그런 게 아니라고. 강하면 부러진다고. 나도 편히 사는 법을 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의미도 안다. 이러한 합리적인 이성은 실패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동시에 나를 꿈에서도 떼어놓으려고 한다. 나는 사랑하는 가슴으로 불가능한 꿈을 꾸면서 살겠다. 그 가슴은 영원히 상처받지 않고, 신의 보살핌을 받는다고 주문을 외우면서. 이성을 넘어 가슴을 따르고 가슴으로 판단하겠다. 깨지고 부서지더라도 충동을 믿고 도전하겠다. 강자에게는 당당함으로, 약자에게는 겸손함으로 세상에 보탬이 되겠다. 이상과 정의 그리고 진실을 위해서는 그 어떤 타협도 하지 않겠다.

-345쪽

나는 안다. 세상을 뜻대로 살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웃으면서 가겠다. 철들지 않고 살겠다. 소년으로 살다 소년으로 가겠다. 오늘도 비굴하지 않은 가슴을 달라고 기도한다.

-34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철수의 생각 -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
안철수 지음, 제정임 엮음 / 김영사 / 2012년 7월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선진국들보다 훨씬 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눈부신 성과를 이뤘지만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들이 인권이나 민주화를 무시했던 산업화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화의 성과를 부정했던 민주화 논리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것들이 구체제적 사고죠. 또 우리 사회의 발전과정에서 우리가 간과했던 문제들, 예를 들면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외면하는 태도도 구체제이고, 성장과 효율성만을 앞세워서 경제력 집중과 양극화를 방치하는 것도 구체제이며, 청년들이 기회를 잃고 국민들이 불안에 떠는 현실을 도외시하는 것도 구체제. 다시 말해 국민의 생각을 받들지 못하는 정당들,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증폭시키는 정치시스템, 계층 이동이 차단된 사회구조,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는 경제 시스템,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지 않는 기득권 과보호 구조 등이 구체제. 새로운 체제는 이런 구체제를 극복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대적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통과 합의’가 필요하고요.
-37쪽

저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게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득의 과정, 공감의 과정이 핵심이죠. 그래서 민주주의가 전제군주제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결국은 장기적으로 더 큰 힘을 발휘하지 않습니까. 소셜미디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도 마침 때를 맞춰 확산되면서 이런 민주주의의 요소들을 강화시키고 있고요.
-41쪽

자살률이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는 수치라고 생각하는데요, 불행히도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전체 중 1위입니다. OECD 회원국 중 자살률이 가장 낮은 나라에 비해 10배나 높아요. 거의 매일 40여 명 정도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1년이면 1만 5,500여 명이 비극적 선택을 합니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각박한가를 보여주는 수치죠. 출산율이란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낳은 아이가 앞으로 얼마나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가 하는 기대에 따라 출산율이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거의 세계 최하위 수준입니다. 자살률이 가장 높고 출산율이 낮은 나라. 한마디로 지금 가장 불행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얘기가 아닐까요?

-83쪽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복지국가 건설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경제는 기존의 제조업만으로는 성장의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제조업의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일자리 창출이 쉽지 않게 됐거든요. 새로운 산업동력의 창출 차원에서 지식정보산업의 발전과 창업활성화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한 번 실패하더라도 재기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주거와 보육, 의료 등에서 사회적 안전망이 튼튼해서 기초적인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면 실패한 사람도 다시 도전할 의욕을 가질 수 있죠. 복지는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을 돌봐주는 사후처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산업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토대라고 할 수 있어요. 아이디어와 지식이 부를 창출하는 구조에서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새롭고 과감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지식경제 사회에서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란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로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들고 잠재성장률이 추락할 위기에 놓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도 복지 강화는 필수적-85쪽

실리콘밸리의 본질은 성공의 요람이 아니라 실패의 요람입니다. 100개의 기업이나 기업주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고, 열심히 성실하게 했는데도 실패했다면 그 사람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게 실리콘밸리의 미덕입니다. ‘개인 실패의 사회적인 자산화’ 지식정보산업의 발전이나 창업의 활성화는 이런 토대가 없으면 잘 생겨나지 않습니다.

-87쪽

선진국들의 경험을 보면 복지국가는 정치·사회 세력 간에 대립이 아니라 소통과 합의가 이뤄져야만 가능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실 보수, 진보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저는 이 두 진영이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상호보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수라는 것은 그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는 세력이고, 진보는 새롭게 도전하고 발전하게 만드는 세력이죠. 양쪽이 소통하고 타협해야 한 사회가 안정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도전과 발전의 기회도 가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사회는 상식과 비상식의 대립이 보수와 진보의 건전한 협력을 막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누가 봐도 절실한 복지 확충, 경제 민주화 같은 과제에 대해서도 ‘좌파’의 딱지를 붙이며 색깔 공세를 펴는 비상식적 세력이 건전한 보수와 진보의 소통을 방해하거든요. 이제는 우리가 상식을 회복하고 합리적인 소통과 합의를 이뤄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90쪽

전쟁과 정치는 적과 싸운다는 점은 같답니다. 그런데 전쟁은 적을 믿으면 안 되는 것이고, 정치는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상대방의 궁극적인 목적이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 있다는 기본적인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적을 믿으면서 싸우는 것, 기본적인 믿음은 가지면서 대결하는 것이 정치라는 얘깁니다. 이런 믿음 위에서 소통의 정치를 추구해야겠죠.

-91쪽

보편적 복지는 내가 낸 세금의 혜택을 실감하고 ‘함께 누리는 복지’를 확대할 수 있는 체제라고 하겠습니다. 반면 선별적 복지만 고수한다면 부유층과 중산층의 ‘반(反)복지 동맹’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요. 세금 내는 사람 따로, 혜택 보는 사람 따로이니, 사회적으로 증세와 복지 확대에 대한 저항이 커질 수 있을 것입니다. 선별적 복지는 또 ‘낙인 효과’를 만들어 사회통합에 금이 가게 하죠. 국민을 ‘시혜자’와 ‘수혜자’로 구분하니까요. 예를 들어 학교급식의 경우 가난한 아이들에게만 무상급식을 하면 ‘얻어먹는 아이’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경제적 효율을 따질 문제가 아니라, 자라나는 아이들의 인권과 정서라는 측면에서도 배려가 필요한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선별적 복지를 하다 보면 수혜 자격, 즉 가난을 입증하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행정 비용이 든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고요.

-95쪽

유시민 전 의원이 TV 토론에 나와서 그러더군요. "그렇게 세금을 많이 냈는데 먹여도 되지 않나."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부유층 자녀는 부모, 조부모가 이미 많이 낸 세금의 혜택을 당당히 누리는 것이지 결코 ‘공짜’로 먹는 게 아니죠. 가난한 집 아이들은 사회적인 부조를 받는 것이고요.

-98쪽

남유럽국가들의 복지 수준은 유럽에선 하위권에 불과합니다. 복지 지출이 많아 재정위기를 맞았다면 훨씬 수준이 높은 북유럽이 먼저 망했어야 했겠죠. 그런데 스웨덴 등 북유럽국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안정된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복지의 안전망이 오히려 위기에서 경제를 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죠. 남유럽의 문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유증, 즉 부동산시장 붕괴와 구제금융, 재정지출 확대가 원인이었고 유로 통화 통합으로 환율의 경기대응 기능을 잃은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특히 재정 수요가 늘어나는데 무리한 감세 정책을 써서 조세 수입이 줄고 재정적자가 늘어난 것, 탈세가 만연한 것, 복지 설계가 사회 서비스 확충 대신 현금소득 지급 위주로 잘못된 것 등에 원인이 있다고 분석되고 있죠. 복지를 늘릴 때 재정 건전성을 함께 생각하는 자세는 꼭 필요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복지 지출 수준이 OECD 평균의 절반도 안 되는 형편에서 좀 늘리자는 얘기를 두고 ‘재정위기’를 운운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해요.

-99쪽

현재 국내 국공립 보육시설의 수용 능력은 아동수를 기준으로 전체의 10%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럽 선진국은 70~80%에 이른다고 합니다.

-100쪽

꼭 아파트를 새로 지으려고만 하지 말고 민간의 다세대주택을 사들여서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정책 같은 것을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연금이 많은 재원을 갖고 있는데 국민의 소중한 자산을 가지고 미래가 불안정한 오피스빌딩을 매입하기보다 국가 보증하에서 안정적이고 공공성이 높은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투자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106쪽

스웨덴에 대해서는 "부자라서 복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를 해서 부자가 되었다"는 평가가 있더군요. 독일 등 대다수 선진국들이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정도일 때 복지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과감하게 했다고 합니다. 스웨덴은 그보다 훨씬 가난할 때 복지제도를 갖추기 시작했고요. 노령연금이 도입된 게 1919년, 기초수급제가 도입된 게 1930~40년대랍니다. 가난할 때부터 차근차근 복지안전망을 늘려왔기에 부자나라가 될 수 있었고, 지속 성장이 가능했다는 얘기죠. 이런 탄탄한 복지 안전망이 지금 스웨덴의 산ㅇ넙 경쟁력의 토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지금 우리의 소득 수준에서 복지 제도를 확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의지가 없는 것이지 불가능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 정치가 지금처럼 편을 갈라 싸우면 복지 국가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스웨덴도 사민당이 야당과 대통합, 협력해서 복지 국가를 만들 수 있었고, 독일도 우파정권이 사회대통합으로 야당을 끌어들이면서 복지체제를 완성했어요. 우리가 선진 복지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념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과제가 시급합니다.

-107쪽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스스로를 위해서도 공생하는 파트너의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세계적인 기업 혁신의 90%가 중소기업에서 나옵니다. 산업생태계를 통해 믿을 만한,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들이 쑥쑥 성장해야 대기업들도 더욱 발전할 수 있어요.

-121쪽

저는 시장만능주의를 경계하는데요, 시장만능주의에 빠지면 탐욕을 통제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규제를 줄이는 것은 좋지만 감시는 강화해야 하고, 시장이 정글이 되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125쪽

우리나라에서 창업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대표이사 연대보증제 때문에 실패한 기업인의 재기가 어렵게 돼 있기 때문인데요, 실패의 경험임 사회적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금융제도도 개선해야 합니다.

-129쪽

미국이라는 나라는 자본주의의 모든 장단점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고 사실 많은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지만 부패에 대해 엄격한 법과 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아름의 건강성을 유지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자본시장이나 기업 범죄, 탈세 등에 대해서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나 병합선고, 즉 모든 죄의 형량을 합산해서 처벌하는 방식으로 엄벌을 내리죠. 기업 간의 공정거래를 해치는 범죄행위도 강력하게 처벌하고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대통령까지도 하야시킬 수 있는 법으로 부패를 막고 있죠. 우리나라는 미국의 제도를 많이 들여왔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 같아요.

-144쪽

우리 사회도 그동안 효율성을 앞세우면서 부패에 관대한 문화를 키웠죠. 그러나 앞으로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궤도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합니다. 국제투명성기구에서 조사한 우리나라의 부패인식지수는 세계 43위로, 경제규모 10위권의 국격과 비교하면 매우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145쪽

선거에 의한 견제도 있지만 정권의 변화와 상관없이 견제되는 장치도 필요합니다. 미국은 종신제가 적용되는 대법관 등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관들이 선거로 뽑힌 공직자들을 견제하죠. 지금도 총리제의 입법 취지를 잘 살리면 어느 정도의 분권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149쪽

북한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인 동시에 우리의 미래를 위한 선물일 수도 있습니다. 북한과 평화적인 경제협력이 활성화되면 내수시장이 확장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어요. 우리 경제는 현재 성장이 정체된 상황인데 북한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죠. 북한 내 지하자원, 관광자원, 인적자원을 활용할 수 있고요. 동북아 경제권 형성을 위한 길이 열릴 수 있고 육로를 통해 부산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연결될 수도 있죠. 지금은 북한에 막혀서 남한이 사실상 섬나라와 같은데, 대륙이 연결돼 원자재와 수출품 등의 수송이 쉬워지는 거죠. 그러면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남북이 경제협력을 통해 격차를 줄여나가면 서독과 동독이 교류협력을 통해 통일 비용을 줄인 것처럼 장기적으로 한반도의 통일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거예요.

-152쪽

외부에서 북한을 경제적으로 봉쇄해도 중국의 지원이 있기 때문에 고립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히려 북한을 고립시키려다 북한 광물자원의 선점 등 북한경제의 중국 예속만 급진전될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남북경제협력이 위축되자 북한은 중국과 경제협력을 확대했고 북한의 경제지표는 그리 악화되지 않았습니다.

-153쪽

남북이 대화의 공간을 마련하고 평화체제를 정착시켜야 북한이 핵에 의존할 명분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을 하려면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말했죠. "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 누구든 기본적으로 생존이 가능해야 변화를 희망할 수 있을 겁니다.
-157쪽

기업들이 ‘고용 없는 성장은 자본에도 독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노동자는 비용인 동시에 기업이 생산한 상품의 수요자이기 때문이죠. 고용이 따르지 않는 성장은 궁극적으로 상품에 대한 수요를 위축시켜서 파괴적인 결과를 낳게 됩니다.

-167쪽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질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죠. 제가 전에 강연에서 "대기업은 내버려둬도 잘하고 있으니 더 이상 성공한 맏자식 걱정에 계속 매달리지 말고 그동안 희생한 둘째를 돌봐야 할 때"라고 말했는데 바로 이런 뜻이었죠.

-169쪽

유럽연합은 회원국들에게 최저임금을 근로자 평균임금의 60%로 하도록 권고하고 있고, 우리나라 노동계는 50%를 요구하고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 최저임금 수준은 30%를 조금 넘는 정도입니다. 노동계가 요구하는 평균임금의 50%까지 점진적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한계기업들이 도산하고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실제 연구결과는 다릅니다. 적절한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구매력을 높여서 일자리를 늘린다는 연구결과도 있거든요. 물론 영세자영업자 등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타격을 받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삶의 존엄성 측면에서 이 문제가 가야 할 길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173쪽

대출을 해준 은행 등 금융회사가 만기를 연장해주고 변동금리를 장기고정금리로 전환해주는 등 부채 구조조정에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득 범위 내에서 갚아나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이죠.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주택 대출도 선진국처럼 20~30년 만기의 장기대출 형태로 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187쪽

소위 영재라고 불리면서 뛰어난 학습 능력을 보이는 학생들에게 ‘속도’, ‘문제해결’, ‘결과’만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서 학생들이 학습의 과정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죠. 이미 해답이 나온 것을 찾는 데만 익숙해지면 답이 나오지 않는 불확실한 환경에 대한 대처가 서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사실 세상일은 참고서나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딱 부러지게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게 오히려 드물죠.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는 남들이 먼저 만들어놓은 것을 좀 더 세련되게 모방해서 1등을 하는 것에는 탁월하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데는 취약하죠.

-193쪽

국사뿐 아니라 세계사도 필수과목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동물의 경우 주어진 그 순간만 생각하고 반응하지만, 사람은 그전에 일어났던 일과의 맥락 속에서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점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리고 세계 시민으로서 국사와 세계사를 모르고 지금 당장 필요한 지식만 익히는 접근방법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197쪽

우리가 내는 수신료 중에서 EBS는 2.8%인 162억 원, 한국전력이 6.8%인 391억 원을 가져가더군요. 국민이 내는 수신료를 정당한 사용목적에 포함된 EBS보다 수수료 징수를 대행하는 한전이 더 많이 가져가는 상황, 이건 비합리적이죠.

-200쪽

눈앞의 이익이라는 논리로만 따지다 보니 우리나라가 사람 목숨 값이 싼 나라가 됐는데요, 지금은 국민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거나 사람들에게 위해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을 국가가 경제논리만으로 일방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204쪽

대전에 여러 정부기관이 있는데, 이 기관장들 상당수가 서울에 자주 오가면서 길에서 시간을 다 보낸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윗사람과 일을 하려면 얼굴을 직접 봐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고요. 국회에서도 질의응답을 위해 관련 직원들이 하루 종일 대기하고 있죠.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정책 결정권자의 자리에 있으면 지역 균형발전이 표류할 수밖에 없죠.

-223쪽

공공재로서 언론의 기능에 충실하기 위해 편집권의 독립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뀐다고 언론의 논조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에 비해 언론자유도가 아주 낮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죠. 올해에도 세계 87위, 중하위권으로 평가받거나, 부분적 언론자유국 정도로 분류되고 있으니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에 비하면 아주 부끄러운 일이지요.

-227쪽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 사람 모이는 것은 대개 잔치이고 좋은 일이라 여겨왔습니다. 오늘날 정부가 사람 모이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정통성이나 정당성에 대해서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열린 마음으로 들으려는 정부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29쪽

옆에 있는 친구가 아니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세요. 스스로 실력을 키우고 더 가치 있는 자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세요. 동시에 이 정도의 경제적, 문화적 여건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준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굶주리는 아프리카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빚을 진 것입니다. 내가 받은 것을 장차 일부라도 돌려줘야 할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 중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 바랍니다.

-260쪽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지적하면서 ‘나만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그 경고의 이면에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주변의 문제에는 눈과 귀를 닫으라는 이기적 주문이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결코 혼자만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나의 행복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라도 주변의 도움은 필수적이죠. 사회와 개인, 나와 타인의 관계는 어느 한쪽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닌 공생의 관계라는 것을 알고, 사회와 더불어 행복할 길을 찾겠다는 의지를 단단히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26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권력과 인간 - 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2
정병설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구판절판


영조는 "그만한 일을 혼자 결단치 못하여 내게 번거롭게 취품하니 대리시킨 보람이 없다" 꾸중했고, 그래서 이런 일을 묻지 않으면 "그런 일을 어이 내게 취품치 않고 스스로 결정하리" 하며 나무랐다.
(...)
심지어 영조는 백성들이 얼어 죽거나 주려 죽거나 가뭄 같은 천재지변이 생겨도 "소조에게 덕이 없어 이러하다"고 꾸중했다. 이 때문에 사도세자는 날이 조금 흐리거나 겨울에 천둥이라도 치면 임금이 또 무슨 꾸중이라도 할까 사사건건 두려워하며 떨었다.
-142쪽

영조는 특별히 중요한 일로 질책하지도 않았다. 간병하는 세자의 옷매무새나 행전 친 모양 등을 가지고 꾸짖었다. 어머니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울부짖으며 정신을 못 차리는 세자에게 영조는 사소한 트집을 잡았다.
-145쪽

궁궐이 피로 물든 시기였다. 영조는 이렇게 좋지 않은 자리에는 꼭 세자를 불렀다. 자기가 일을 끝내고 들어갈 때 세자가 없으면 늦은 시간이라도 꼭 불러 인사를 받았다. 그때 영조가 던진 인사는 고작 "밥 먹었냐"였다. 이는 영조가 그날의 불길한 기운을 씻으려는 행동이었다.
-154쪽

영조는 세자의 외출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았다.
-161쪽

사도세자는 스물두 살이 되도록 능행 수가를 한 번도 못했다.
영조는 사형죄인을 심문하거나 죽이는 불길한 일에는 자주 세자를 불러 곁에 앉혔지만, 밝고 빛나는 경사에는 부르지 않았다.
-162쪽

평소 영조는 미신적인 조짐이나 금기를 강하게 믿었는데, 그 속에서 세자는 늘 ‘재수 없는 존재’였다. 어쩔 수 없이 불길한 세자를 거둥에 끼웠더니 아니나 다를까 재변이 생겼다. 이에 세자를 향해 "날씨 이런 것이 다 네 탓이라, 도로 돌아가라"고 크게 화를 냈다는 것이다.
-166쪽

『이재난고』 등에 의하면 영조는 환궁하면서 개선가를 연주하게 했다고 한다. 자식을 죽여놓고는 마치 적국을 평정한 것처럼 승전가를 연주하게 한 것이다. 신하들이 극구 말리는데도 영조는 듣지 않았다. 서울 사람들은 아들을 죽여놓고 역적을 토벌한 것처럼 개선가를 울리며 대로를 행진하는 득의양양한 영조를 보았다.
-227쪽

영조는 정조를 자주 곁에 두었는데, 그러고는 신하들 앞에서 걸핏하면 세자 걱정을 했다. 걱정 끝에는 종묘와 사직을 위해서 나라를 세손에게 맡겨야겠다는 말을 곧잘 했다. 세자가 아직 멀쩡히 살아 있는데, 그것도 대리청정으로 국정의 일부를 맡고 있는 판에 손자에게 나라를 넘기겠다는 중대 발언을 한 것이다. 사도세자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었다.
-268쪽

권력자에게는 친구처럼 친근한 사람은 있어도 친구는 없다. 더욱이 영원한 친구는 없다. 이 점을 명심해야 권력을 오래 누릴 수 있는데 홍국영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홍국영은 1779년 9월, 조정 내의 논란을 뒤로 하고 벼슬에서 물러났다. 정조는 쫓겨나는 홍국영을 봉조하로 만들어주었다. 은퇴한 노대신에게 내리는 명예직을 서른두 살의 젊은 신하에게 내려준 것이다.
-305쪽

유일한 벗 홍국영까지 떠난 조정에서 정조는 이제 아무 간섭도 받지 않는 절대 권력이 되었다. 철저한 고독만이 그의 벗이었다.
-306쪽

영조는 늘 임금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걸핏하면 전위를 선언했다. 하지만 영조의 전위 선언을 진정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임금이 나라와 백성에 대한 걱정을 표현하는 한 그는 결코 권력을 벗을 수 없다. 권력에서 벗어나려면 나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믿어야 한다. 후계자를 믿어야 한다. 후계자를 믿으니 이제 물러나겠다고 해야 한다. 세자에게 국정의 일부를 맡긴 대리청정은 권력욕을 버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권력에 대한 더 강한 집착을 보여준다. 세자까지 직접 자기 권력 아래에 두겠다는 표시다.
-326쪽

죽음이 두려워 평생 죽을 사(死) 자와 돌아갈 귀(歸) 자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던 영조도 죽었다. 권력은 때가 되면 놓아야 하는 것이지만, 사람이 죽을 때를 모르는 것처럼 권력도 놓을 때를 알지 못한다.

절대 권력자는 자기 것을 뺏으려드는 자도 공격하지만, 권력을 뺏을 힘을 가진 자도 미리 싹을 자른다. 권력의 존립을 위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다. 권력의 비정함은 여기서 나온다. 영조는 평소 사도세자에게 냉정하고 엄격했다. 자식을 죽일 정도였으니 더 말이 필요 없다. 영조는 종묘와 사직을 위한다면서 자식에게 죽음을 요구했다. 하지만 본질을 보면 그가 말한 사백 년 종사는 다름 아닌 자신의 권력이다. 권력의 핵심인 자기 자신에 대한 도전은 털끝만 한 것이라도 용서하지 않는다. 자식이라도 봐줄 수 없다.
-327쪽

나누지 않는 권력은 외롭고 위태롭다.
-329쪽

경희궁은 현재 복원했지만 원형은 거의 찾을 수 없다. 심지어 정전인 숭정전은 뜯겨서 조계종에 팔려 현재 동국대학교 내의 법당인 정각원이 되었다.
-391쪽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길 건너편에는 서울대학교 병원이 있다. 이 자리에는 원래 왕실의 정원인 함춘원이 있었다. 사도세자가 죽은 다음 그 한쪽 편에 세자의 사당인 경모궁이 들어섰다. (...) 경모궁은 개인 사당으로는 조선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데, 어림잡아 볼 때 역대 임금의 신주를 모두 모신 종묘의 절반 크기다. 이는 아버지에 대한 정조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임금의 생부로서 사도세자처럼 오랫동안 추존되지 못한 사람이 없었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399쪽

정조는 자신이 직접 참배하지 못할 때도 아버지를 뵐 수 있도록 경모궁 망묘루에 자신의 초상을 걸어두었다.
-401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12-12-28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권력은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이죠.근데 일설에는 사도세자가 소론세력을 뒤에 얻고 아버지를 쫒아내려는 친위 쿠테타를 벌이려고 했다는 설이 있지요.실제 실록에도 사도세자가 평안도로 암행을 갔다는 이야기가 있다는데 평안도는 조선의 정예부대가 있어 영조도 신경이 날카로와 졌다고 하는군요.

마노아 2012-12-28 21:44   좋아요 0 | URL
뭔가 군사 행동을 보였다는 정황이 분명 보이는데, 그걸 이덕일은 노론의 공격에 대비하는 것으로 보았고 정병설은 역모라고 이야기했죠. 그런데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본인이 세자이고 십수년 째 대리청정을 하고 있고, 연로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자연스럽게 왕위를 이어 받는데, 세자가 왜 그런 짓을 할까요? 그러니 양보해서 사도세자가 정말 정신병이 있어서 말도 안 되는 짓을 했다 하더라도, 그 책임은 첫째도 둘째도 영조에게 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