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2 : 진중권 + 정재승 - 은밀한 욕망을 엿보는 크로스 2
진중권.정재승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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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로또’란 ‘확률상 당첨자가 나오기 마련이지만 그게 ‘나’일 확률은 거의 없는 ‘심심풀이 도박’이다. 희망 없는 현대인들에게 ‘일상의 탈출구’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탈출 확률이 낮은가를 보여주는 절망적인 도박이 바로 로또 아닌가?
-17쪽

아마도 시청자들은 ‘나는 가수다’에서 우리의 현실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세계화의 깃발이 펄럭이는 21세기 들어 신자유주의 시장 한복판에 내몰린 우리의 운명은 ‘꼴찌가 되면 탈락하는 가수들의 운명’과 너무도 닮아 있다. 자유주의 사회에선 개인에게 자유가 주어졌지만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자유는 우리의 몫이 아니라 시장의 것이다. 그 안에서 무한경쟁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무시무시한 적자생존의 원리는 ‘서바이벌 게임과 메이팅 게임이 결합한 이종격투기’ 링 안으로 날마다 우리를 내몰고 있다. 만신창이가 된 우리, 내일의 운명조차 알 수 없는 우리, 그것이 바로 일요일 프라임 시간대에 얼굴을 내비치기 위해 진검승부를 강요받은 ‘아이돌 시대의 가수들’이 지닌 운명인 것이다.
-41쪽

많은 젊은 가수가 ‘나는 가수다’에 초대받기를 은근히 희망하듯, 많은 젊은이가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의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라도 갖기를 절박하게 희망한다. 꼴찌한 자들에게 ‘재도전’이 사치이듯 그들에겐 ‘무대의 경쟁’ 또한 부럽기만 한 역전의 기회다.
-45쪽

자살은 인간만이 하는 행위로 알려졌다. 자살하는 동물로 알려진 레밍도 실은 자살하려는 의지는 전혀 없으며, 자살로 보이는 투신 행위는 이동 중에 겪는 사고일 뿐이다. 스트레스로 인한 자해 혹은 그로 인한 죽음은 동물에게서 종종 발견되지만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차원의 자살은 아직 다른 동물에게서 발견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자살에 대한 이해는 인간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0년 자살에 의한 사망자 수는 총 1만 5566명,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31.2명으로 OECD 평균자살률(11.3명)보다 세 배나 높아 회원국 중 1위를 기록했다. 특히 20대 사망 원인의 44.9%, 30대 33.9%, 10대 24.3%가 자살이라고 하니 이들 연령대에서 전체 사망 원인의 1/3이 자살인 셈이다.(자살률을 줄이려면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2005년 무렵까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던 일본은 매년 3000억 원을 투자해 자살의 사망 원인 비율을 19.7%로 줄여 유지하고 있다.)
-49쪽

내가 자살에서 각별히 관심을 두는 부분은 의사결정 과정에 어떤 특징이 내재되어 있는가다.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은 여성이 두세 배 더 많지만 자살에 성공하는 사람은 남성이 네 배 정도 더 많다. 성호르몬이 관여되어 있나 보다.
-50쪽

한때 자살은 법적으로 금지되었고(특히 노예의 자살!) 영웅적 자살은 국가적으로 추앙받기도 했으며 고대 스토아 학파처럼 자살이 권리가 아닌 ‘의무’에 가까운 시절도 있었다.
자살이 비극인 이유는 자살한 자가 겪어온 고통이 자살의 순간 살아남은 자들에게 고스란히 건네지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남은 인생 동안 그 고통을 짊어져야 한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죽음은 한 사람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비극이기에 죽음을 애도하는 종은 우리 모두를 위해 울리는 것이다.
-55쪽

서구에서 이타적 자살의 예는 보기 드물다. 하지만 기독교 문명 안에서도 ‘어떤’ 자살은 과거에 사회적 상찬의 대상이 되곤 했다. 동양의 열사에 해당하는 것이 서양의 순교자다. ‘순교’란 사실상 자살에 해당하나 순교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자신을 위해 죽는 것은 씻지 못할 죄에 해당해도 신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은 최고의 덕목이라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신처럼 이기적인 분도 없다.
-57쪽

키스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환대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고대 핀란드 사람들은 키스를 매우 불결하고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서 심지어 발가벗고 섹스를 하는 동안에도 키스만은 하지 않았다. 지금도 미국 인디애나 주에서는 콧수염이 있는 남자가 습관적으로 사람들에게 키스를 퍼부으면 폭력 행위로 간주해 체포한다. 또 믿지 못하겠지만 미국 코네티컷 주 하트퍼드 시에서는 아직도 남편이 아내에게 일요일에 키스하는 것을 불법으로 여긴다. 잡혀가는 사람이 실제로 있을까 싶지만 사실이다.
-74쪽

결과는 매우 명료했다. 2/3 정도 되는 사람들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여 키스를 하더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사람들 대부분이 오른손잡이이며, 태어나기 전 며칠 동안 엄마의 뱃속에서 고개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그 자세가 본능적으로 좀더 편하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두 연인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기울여 키스를 하고 있는, 구스타프 클림프의 작품 <키스>가 우리에게 그토록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이리라.
-78쪽

라디오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모든 기술은 제자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기술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요즘, 결국 살아남는 것은 우리 곁에서 우리 삶을 더욱 인간적이고 풍요롭게 해주는 기술들이다. 기술이 문화가 되는 순간 기술은 우리 삶의 동반자가 된다. 귓속말하는 친구 라디오가 꾸준히 우리 곁에 남아서 ‘과학의 시대에도 낭만이 있음’을 보여주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111쪽

추신 : 과연 라디오는 정말로 2020년 아니 2050년에도 우리 곁에 살아남을 것인가? 의외로, 오늘날과 같은 비디오 시대에 라디오를 그 존재만으로 기적이라 여기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인간 본성에 비추어보면 그 미래는 어둡지 않다. 정보 과잉은 사람들의 욕망을 거세하고 정보 결핍은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긴다. 라디오는 인간 두뇌의 정보처리 과정 중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시각정보의 결핍으로 비로소 그 생명력을 얻는다. 청각정보에만 의지해야 하는 라디오의 결핍은 시각적 욕망을 낳고, 충족되지 않는 욕망은 상상력의 여백을 메우면서 라디오의 수명을 조금씩 연장한다. 라디오가 처음 등장했을 때 수많은 음반회사들은 ‘음악을 공짜로 틀어주면 누가 음반을 사냐’며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결국 음반 홍보의 가장 강력한 매체로 라디오가 자리하게 되면서 ‘공생’이 이루어졌다. 이 관계가 계속 유지되는 한, 라디오는 ‘골골 할아버지’로 100년은 너끈히 버틸 것이다.
-111쪽

뽀통령을 모시는 이들이라고 그분을 뽀느님으로 섬기기를 꺼리지 않고, 뽀느님을 섬기는 이들이라고 그분을 뽀통령으로 모시는 데 이견을 달지는 않을 것이다. 천년왕국이 도래하면 어차피 하느님이 세속의 군주들을 제치고 직접 이 땅을 통치하신다지 않는가. 한마디로 뽀로로는 제정일치의 수장, 단군왕검 이후 최초로 한반도에서 다시 정치적 군장과 종교적 수장을 겸하신 분이다. 이러다가 민족의 토템이 곰에서 펭귄으로 바뀌는 사태가 일어날지 모르겠다.
-131쪽

UFO를 목격한 역사는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수 탄생 1400여 년 전 이집트의 파라오 투트모세 3세의 문헌에 "불로 된 원들"이 며칠 동안 하늘에 떠돌아다녔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160쪽

성서에도 UFO를 연상시키는 구절이 다수 등장한다. 가령 "여호와의 신이 수면을 운행하시도다"는 <창세기> 구절,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 앞에 불기둥이 나타났다는 <출애굽기>의 구절을 생각해보라.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것은 에스겔 선지자가 목격한 이상한 장면이리라. "그 순간 북쪽에서 폭풍이 불어오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구름이 막 밀려오는데 번갯불이 번쩍이어 사면이 환해졌다. 그 한 가운데에는 불이 있고 그 속에서 놋쇠 같은 것이 빛났다(에스겔1:4)." 로마 작가 율리우스 옵세쿠엔스도 저서 《징조의 서》에서 "배", "둥근 방패", "불로 된 구체" 등 다양한 모양의 물체에 관해 언급한다. 16세기에 발간된 <뉘른베르크 전단>에 따르면 1561년 4월 뉘른베르크의 하늘에서 구, 십자가, 접시, 원통, 쐐기 등 다양한 모양의 물체들이 "서로 싸우기 시작"하더니, 한 시간 뒤 하늘로 치솟았다가 불타며 땅으로 추락해 하얀 김을 내며 사라졌단다. 뉘른베르크 시민들이 본 것은 UFO의 공중전이었을까?
-161쪽

UFO 목격담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광해군 시절에 강원도에서 목격된 UFO에 관한 기록이다. 이는 국가의 공식 문서인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었기에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광해군 1년(1609년)에 강원 감사 이형욱은 강원도에서 목격된 이상한 물체에 관해 보고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현상이 한 곳이 아니라 비슷한 시간에 간성, 원주, 강릉, 춘천, 양양 등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목격되었다는 점이다. "간성군에서 8월 25일 사시(오전 10시) 푸른 하늘에 쨍쨍하게 태양이 비치었고 사방에는 한 점의 구름도 없었는데, 우레 소리가 나면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해 갈 즈음에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 보니, 푸른 하늘에서 연기처럼 생긴 것이 두 곳에서 조금씩 나왔습니다. 형체는 햇무리와 같았고 움직이다가 한참 만에 멈추었으며, 우레 소리가 마치 북소리처럼 났습니다."
-161쪽

쉽게 보이던 메모지가 점점 사라지고 서류 종이가 세상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오늘날 20~30년만 지나면 ‘그 귀한’ 종이에 낙서하는 행위는 범죄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다들 전자책이 위용을 떨치고 태블릿 PC가 세상을 점령하는 시절이 와도 결코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나는 끝까지 종이책을 보리라 생각하지만 남미와 동남아시아에서 나무를 베어와 만든 종이책을 고집하는 것이 비윤리를 넘어 범죄가 되는 시절이 머지않았다.
-182쪽

5000년 전 선조의 동굴 낙서처럼 보존되기는커녕 빠르게 부수고 새로 지어지는 세상, 실제 현실이 가상현실과 교묘히 얽히고 때론 대체 되어버린 세상에서 우리가 편하게 자기 검열 없이 무의식적 흐름을 기록할 매체가 과연 세상에 남아 있게 될까?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낭만이 사라진 시대가 우울할 뿐이다.
-183쪽

요즘 한창 화두가 되고 있는 ‘지속 가능한 발전’은 사실 지금까지의 과학기술과 문명이 지속 가능하지 않은 ‘종말론적 기술’이었음을 고백한 내밀한 자기반성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단어는 과학 종말론이 범람하고 있는 현대사회의 민낯을 가장 절묘하게 보여주는 자기 고백일지 모른다.
-203쪽

현대사회에서 왜 종말론이 이렇게 득세하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개인의 종말을 집단의 종말로 믿고 싶은,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만들어낸 환상’일지 모른다. 그런 환상이 하필 요즘 더 득세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만큼 사람들이 현대 문명과 우리 사회에 대해 좀더 깊은 위기의식과 불안을 느끼고 있어서이리라.
-205쪽

자연현상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그래서 시속 160km로 달리는 (박찬호의 공보다 빠른!) ‘달’ 위에 정교하게 우주선을 착륙시키는 현대사회에서도 ‘일본 지진은 신의 노여움’이라고 믿는 어리석음이 공존하는 이상 우리 문명을 가장 위태롭게 하는 것은 ‘종말론 그 자체’다. 종말론은 그것을 제기하고 떠벌리고 외치는 자에 의해서 늘 현재진행형이다.
-208쪽

우리 신체 중에서 성기관을 제외하고는 신체 사이의 길이 비율이 남녀 간 차이를 보이는 곳은 ‘오른손 검지와 약지’뿐이다. ‘검지와 약지 길이비는 임신 13주차 때 자궁 내 남성호르몬의 농도가 높을수록 작아진다. 그래서 남자는 대개 약지가 더 길며, 여성이라도 남성적 성향이 강할수록 약지가 길어져 검지와 비슷하거나 심지어 더 길게 된다.

-237쪽

앞으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배우 고현정의 미래가 아니라 배우를 바라보는 대한민국 관객의 미래다. 우리가 준 애정으로 먹고살며, 그 덕분에 엄청난 부를 누리는 ‘스타’들에게 이따금씩 관객의 권력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그래서 적절한 꼬투리가 나타나면 스타의 권좌에서 그들을 냉혹하게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풍토에서 오랫동안 애정을 갖고 영화를 찍을 배우는 많지 않다. ‘스타의 개런티란 악플을 감당하라고 주는 정신적 맷값’이라는 의식이 팽배한 시대는 ‘자신이 하는 일에 애정을 가진 배우’를 얻지 못한다.

-240쪽

음악의 산업화는 어쩌면 불가피한 현상일지 모른다. 오늘날 케이팝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성장해 국제적 현상이 된 것도 실은 음악의 철저한 자본주의화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또 어린 시절부터 거의 ‘아동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혹독한 훈련을 거친 것이 케이팝 스타들이 지닌 음악적 기량의 바탕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고 아무리 대중의 취향에 맞더라도 ‘영혼’이 결여된 음악에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뮤지션은 음악의 생산자이지 생산품이 아니다.

-256쪽

피델 카스트로는 혁명 직후에 쓴 자신의 저서《양키들아, 들어라》에서 쿠바 혁명에 영감을 준 원천으로 한국의 4.19 혁명을 들었다. 영광스러운 일이나 우리에게도 혁명은 쉽지 않았다. 그 혁명 이후에도 민주주의가 올 때까지 27년을 더 싸워야 하지 않았던가.

-303쪽

2009년 9월 9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의 한 인터넷 회사는 흥미로운 시합에 참여하게 된다. 영화 한 편 크기(4GB)의 데이터를 80km 떨어진 곳에 누가 더 빨리 전하는지 경기를 치르게 된 것이다. 누구와 했느냐 하면, 바로 비둘기와. 아프리카 대륙의 인터넷 전송 속도가 지나치게 느려 사용자의 불만이 극에 달하자 한 시민의 제안으로 이 시합이 성사되었다. 과연 승자는 누구였을까? 놀랍게도 비둘기였다. 평소 우편배달이 특기였던 이 비둘기는 2시간 6분 57초 만에 80km나 떨어진 곳에 데이터 파일을 무사히 전달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시간 동안 인터넷을 통해 전송된 데이터는 겨우 4%였다. 이 일화는 2009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의 인터넷 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해프닝(비둘기를 활용했던 수백 년 전만도 못한!)이라 할 수 있다.

-304쪽

컵라면의 편의성이 빛을 발하는 곳은 역시 PC방이다. 하지만 거기서 컵라면을 먹는 게 법적으로는 아주 복잡한 모양이다. 강원도의 한 지역에서는 라면에 물을 부어줘도 되나 가져다주면 안 된다. 충북의 한 지역에서는 물을 부어주거나 가져다주는 것 모두 불법이다. 제주도의 어느 지역에서는 PC방에서 컵라면을 파는 것 자체를 금한다. 반면 전남의 한 지역에서는 단무지만 주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 2011년 6월 민주당 이낙연 의원의 질의에 보건복지부는 "PC방에서 컵라면에 물을 부어줘도 된다"고 대답했다. 휴, 컵라면에 물 붓기 참 힘들다.

-334쪽

우리나라의 연간 라면 소비량은 무려 36억 개다. 국민 1인당 소비량이 연간 80개에 이르는, 2위와 큰 격차를 보이는 압도적인 세계 1위다. 1963년 국내 최초로 판매된 삼양라면 가격이 10원으로, 당시 김치찌개 백반 가격이 30원 정도였다니, 라면은 50년 전부터 허기진 서민들의 배를 채워주는 식사 대용품이었다.

-336쪽

소 한 마리를 키우는 데 사람 한 명이 먹는 곡물의 11배가 필요하고, 쇠고기 1kg을 생산하는 데 보리 1kg을 생산하는 데 드는 물의 1000배가 필요하다고 하니, 육류를 폭식하는 도시는 가히 농촌에 기생하는 삶의 형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340쪽

2006년 <타임>은 "올해 일어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온라인 백과사전, 영상파일 공유 사이트, 블로그 사이트를 비롯한 개인 미디어의 확산"이라며, 이 영역에서 활약한 ‘당신’을 ‘올해의 인물’로 뽑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타임>에서 밝히는 선정 사유. "‘당신’은 월드와이드웹을 파고들어 새로운 디지털 민주주의의 틀을 세우고, 대가 없이 그저 좋아서 하는 일임에도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신’을 우리의 정부는 탄압한다.
2008년 어느 포털 사이트에서 ‘올해의 인물’을 뽑는 인터넷 투표를 한 적이 있다. 투표 30분 만에 워스트 1위를 달린 것은 물론 이명박 대통령. 베스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투표는 중단되고 선정 방식이 바뀌더니, 결과도 수정되었다. 워스트 강병규, 베스트 김연아. 각하가 ‘당신’들한테 욕먹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3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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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놀이 -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공지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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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상처를 감춤으로써 서로를 위한다고 생각했던 가족들은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소통이자 서로에 대한 이해라는 것도.
-24쪽

자살 시도 중 삶의 의지가 거의 없는 가장 절망적인 죽음은 고층에서 몸을 던지는 것이다. 자살이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은 보통 사회에 메시지를 남긴다. 그것이 유서이든 문자 메시지이든 마지막 전화이든 말이다. 그런데 여기 22명의 사람들은 그것조차 남기지 않았다. 이것은 아마도 세계 정신의학회에 보고될 일이 아닐까 싶다. 하나같이 아무런 메시지도 남기지 않은 그들은 어쩌면 세상과의 소통에 완전히 절망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아주 절망하기 전에 실은 메시지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살고 싶다고, 살려달라고 외쳤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3년 동안 하루에 ‘7분’씩 100번이나 비명을 지르고 살려달라고 외쳐왔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을 우리는 무심하고 태연하게 스쳐 지나가 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는 대체 왜 죽음에 이토록 무감각해진 것일까?

-37쪽

"무리한 컨테이너 투입으로 무고한 경찰을 한 사람 잃고, 농성하던 시민 다섯이나 죽게 한 그 참사 앞에서 정부는 여론과 시민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명박 정권 초기였으므로 자칫 정권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울 수도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몇몇 비난 여론이 일었지만 그뿐이었다. 그러자 경찰은 쌍용자동차에 드러내놓고 컨테이너를 투입했다. 말하자면 용산에서 간을 본 것이었는데, 의외로 저항이 거세지 않자 이번에도 그걸 사용한 것이다 국민이 용산에 대해 국가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더라면 쌍용자동차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용산 참사는 국가에게 ‘이렇게 진압해도 된다.’는 몹쓸 교훈을 심어줬다."

-46쪽

어떻게 기업의 건축물과 기계장치, 설비 등이 일 년 만에 100분의 1, 1,000분의 1로 가치가 떨어져버릴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지진이 일어나거나 토네이도가 휩쓸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이들은 면허증을 가진 회계법인, 즉 권위 있는 전문가 집단이었고, 이들의 감정은 바로 법이 된다. 그들에게 부여된 면허증에 양심과 도덕이라는 항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75쪽

조합원들은 회사가 어렵다니까 이처럼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더라도 함께 살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정부와 채권단, 그리고 회사는 일방적인 해고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대화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들이 해고하려는 2,646명은 전체 노동자의 37%, 현장직 노동자의 43%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말했던 안진회계법인과 삼정KPMG, 즉 대형 회계법인의 작품이었다. "함께 살자!"는 노조의 외침에 "미안하지만 너희가 좀 죽어줘야겠어." 라는 대답일까?
이때부터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치워야 할 비용으로 보는 자들에 의한 보이지 않는 무자비한 폭력이 시작된다. 나는 22명이 자살한 원인을 이 순간부터 찾는 것이 옳다고 보았다. 이때부터 혼돈과 경계, 그리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이 죽어야 한다는 비인간적 폭력이 노동자들에게 가해지기 때문이다.
-87쪽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부모의 양육태도가 아이들의 정신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그중 아이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모호함이라고 한다.
-88쪽

일전에 가톨릭 피정을 갔다가 ‘악의 특징’이라는 정의를 배우게 되었다. 나는 그저 ‘나쁘고, 못되고, 잔인하고’ 같은 것들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아주 간단한 단어들이 나열되었다.
혼돈, 지연, 분열.
쌍용자동차에 대한 자료들을 읽었을 때 나는 가톨릭 피정에서 배웠던 세 낱말을 떠올렸다. 쌍용자동차의 노무관리는 이 모든 것의 종합선물세트 같았다.
-89쪽

사람들은 남는 명단에 있을 사람을 ‘산 자’, 나가야 한다고 지적당한 사람을 ‘죽은 자’라고 불렀다. 자조 섞인 농담이었으리라. 그러나 평택 시내에는 아이들까지 산 자와 죽은 자를 알았고,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가느다란 도랑이 파이고 졸졸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중에 시냇물이 되고 폭포가 되어 대양처럼 넓어져 정말로 산 자와 죽은 자처럼 다시는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91쪽

의자놀이가 생각났다. 어렸을 때 하던 그 놀이. 의자를 사람 수보다 하나 덜 놓고 노래를 부르며 빙글빙글 돌다가 노래가 멈추는 순간 재빨리 의자에 앉는 놀이. 행동이 굼뜬 마지막 두 명은 엉덩이를 부딪치며 마지막 남은 의자를 차지하려 하고, 대개는 한 명이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것으로 끝이 난다. 정말 그럴 생각은 없지만, 마지막 순간이 되면 술래가 되지 않기 위해 친구를 밀어버리고 내가 앉아야 하는 그 의자놀이. 쌍용자동차 관리자들은 이 거대한 노동자 군단에게 사람 수의 반만 되는 의자를 가져다 놓고 마치 그런 놀이를 시키는 것 같았다. 기준도 없고, 이유도 납득할 수 없고, 즐겁지도 않으며, 의자를 놓친 자들에게는 죽음을 부르는 그런 미친 놀이를.
-92쪽

일터는 단지 먹이를 구하기 위해 가는 장소가 아니다. 돈만 벌면 어디든지 다 좋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터, 우리에게 생활을 보장해주고, 우리에게 밥과 의복을 주며, 사람들을 엮어내서 인간의 사회적 욕구를 펼치게 해주는, 우리의 품위와 자부심, 그리고 긍지를 주는 내 인생이 펼쳐지는 현장이다. 가정과 직장, 이 두 들판이 우리의 인생인 것이다. 그리고 가정이 무너지면 가끔 직장생활도 무너지지만, 일터가 무너지면 가정은 거의 대부분 무너진다. 아무런 사회안전망, 즉 재취업과 실업보험, 혹은 무상교육, 무상의료, 주거 등에 대한 약속 없는 정리해고는 삶에서 해고된다는 말과 같다.
-93쪽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물의를 빚은 점은 인정되나"라던 판사에게 김진숙 씨는 말했다. "물의라도 빚지 않으면 누가 우리의 말을 들어줍니까?"
-94쪽

회사는 "재들이 죽어줘야 우리가 산다."라는 말을 노골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쟤들이 살면 우리는 함께 죽는다."라는 말도 했다. 살아남은 인간이 가진 여러 속성 중 하나인 죄책감이 서서히 ‘죽은 자’들에 대한 분노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에서나 밖에서나 모든 노동자는 공통된 한 가지를 경험하는데, 그것은 ‘인간에 대한 환멸’이었다.

-109쪽

어떤 이는 평택의 상황을 제2의 용산사태로도 말하지만, 용산사태는 무리한 공권력의 집행으로 발생한 사고이며, 결코 경찰이 시민을 죽이려는 의도가 있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평택에서는 가진 자와 공권력이 의도를 지니고 시민을 죽음으로 몰고 있다. 이것은 약 30년 전 광주에서 있었던 시민 학살의 또 다른 모습이다. 단지 총칼만 없을 뿐이지 우리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낸 그 폭력의 모습이 다시 일상의 얼굴로 되돌아온 것을 말한다. 언제나 공공질서를 내세우는 경찰과 정부가 용산에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이제는 시민에 대한 살인 방조에까지 참여하는 모습이 21세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인 한국의 현실이다. 약자의 생존이 위협받는 행위가 있을 때 이를 제지하지 않는 경찰과 정부는 과연 누구를 위한 국가 권력인가. 보호는커녕 기득권을 위해 또 무력 진압을 시도하고 있다. -우희종, <한겨레> 2009년 8월 4일자
-138쪽

녹색병원과 전국금속노조는 이 무렵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정신건강 상태를 검진한 결과를 발표했다. 노조원 257명의 정신건강 상태를 연구한 임상혁 노동환경연군소 소장은 "처음에는 콤마를 잘못 찍은 줄 알았다. ‘정상’인 사람이 7%밖에 안 된다. 심리 상담이 필요한 중증도 우울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50년간 미군의 폭격으로 물적·정신적 피해를 입은 매향리 주민들보다 3배나 높다."고 말했다. 파업에 참가한 쌍용자동차 노동자 중 48.2%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고 있고, 전체 중 71%가 심리상담 등의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우울 증세를 보이고 있었으며, 이는 인명사고를 경험한 기관사나 성폭력 등 각종 폭력에 노출된 서비스 노동자보다 6~7배 높다는 것이다.
-147쪽

또 다른 보고서인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노동자 3차 정신건강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90명의 80%가 중증 이상의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1년간 자살률은 일반인의 3.74배, 심근경색 사망률은 18.3배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도 이들은 계속 진압당하는 악몽을 꾸고, 헬기 소리는 물론 선풍기 소리에도 비명을 지르는 등의 엄청난 후유증을 보이고 있으며, 농성이 계속된다고 생각해 집 안에 비상식량을 쌓아두고 새총을 장전하는 등의 정신이상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혼으로 깨진 가정이 수없이 생겨났다. 거의 모든 사람의 삶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147쪽

정혜신 박사는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인구 10만 명당 31명이 자살하는 최고 자살국이다. 그러나 쌍용자동차의 경우 해고 노동자 2,646명 중 22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자살자는 12명이다. 국내 자살률의 15배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쌍용자동차 팀은 "내가 만난 환자들 중 최악"의 우울증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148쪽

정 박사는 이를 고문 피해자에 빗대 "극한의 고문을 당했던 분들에게 ‘무엇이 가장 고통스러웠느냐.’고 물어보면 놀랍게도 고문당했던 경험보다 감옥을 나와 사회생활을 하면서 받은 상처가 가장 끔찍했다고 얘기한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해고자들 또한 옥쇄파업을 하고 구속당하는 것보다 그다음 이어지는 삶이 이들에겐 더 큰 형벌이다.
그리고 이들은 아직도 죽음 앞에 서 있다. 희망이, 정의가 없는 까닭이며, 그것이 회복될 가능성은 더더욱 없기 때문이며, 자신들을 폭도로 몰아가는 힘센 정권과 언론과 여론이,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그들에게 억울함을 이야기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 출연했던 한 노동자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사회가 우리보고 죽으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이 사회에서 나가달라고."
-149쪽

그렇게 경찰서로 병원으로 돌아서 집으로 돌아온 이들에게 또 하나의 살인적인 무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4명의 부상자들에게 총 3,000만 원의 보험급여 환수가 통보되었다.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에 기인하거나 고의로 사고를 발생시킬 때에는 보험급여를 하지 아니한다."는 국민건강보험법 제48조 제1항을 들어서 의료보험료를 환급하라는 것이었다. 이들은 모두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척추가 손상되는 등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이다. 이는 쌍용자동차뿐 아니라 용산 참사 피해자들에게도 마찬가지,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광주항쟁 부상자들에게까지 이어진다. 잔인하고 잔인한 일이다.
-150쪽

물리적 폭력은 가시적이기 때문에 공분의 대상이 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구조적 폭력은 비가시적이기 때문에 무심코 지나가고, 그 폭력에 신음하면서 보내는 구호 요청의 신호에 전혀 응답하지 않는다.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 구조적 폭력은 국제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면서 많은 사람이 무관심과 순응의 자세로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당연히 이 자살은 자살이 아니라, 구조적 타살이며 사회적 타살로 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희연, <한겨레>, 2012년 4월 16일자
-151쪽

이제는 철학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 다시 온 것 같다.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삶이 무엇 때문에 지속된다고 생각하는지, 인간의 노동이 무엇인지, 인간은 진정 무엇으로 고난을 이겨내는지 그런 철학 말이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생애를 통틀어 어떤 때 가장 행복했을까? 그리고 어떤 때 인간은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할까? 이 연설문을 보면 그는 자동차가 한 대 생산될 시간에 세 대가 생산되면 행복하다고 믿나 보다. 그런데 그 자동차는 누가 탈까? 한 명씩 죽어가는데.
-156쪽

생각해보라. 삶은 파탄 나고 하루아침에 빈민으로 전락했다. 상처의 후유증은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져 하루 종일 쓰리다. 희망이라고는 아무 데도 없는데 폭도, 빨갱이라고 손가락질마저 받는다. 그런데 미워할 대상이 없다. 친구도 끊어지고 동료들도 뿔뿔이 흩어진 날, 곰곰이 생각해보니 더 공부 많이 해서 출세하지 못한 내가 바보고 내가 죄인인 것만 같다. 부모만 잘 만났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이제 나 만나서 아내와 아이들도 고생하는 것 같다. 다 내가 못난 탓이다, 내가 죄인이다, 그렇게 생각해버리는 게, 남 탓 해보지 못하고 평생을 산 착한 그들에게 가장 쉬웠을 것이다.
-167쪽

2012.3.12
경찰 수사 우수 사례로 쌍용차 사태가 선정되었다. 전국 수사경찰관을 대상으로 최근 3년간 주요사건 중 ‘베스트 10, 워스트 10’ 후보를 공모했는데 1,192명이 참여한 설문에서 ‘평택 쌍용차 점거농성 사태 조기 해결’이 베스트 5위로 선정되었다.
-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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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밭에서 - 가난한 농사꾼의 노래
박형진 지음 / 보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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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절염 2
-콩밭 김

아직 멀었지
한 방울의 이슬을 얻기 위해
달팽이는 온 우주를 등에 지고
새벽을 향해 밤새
배밀이를 하는데

앉았다가 섰다가
두 발이다가 세 발이다가
끊어진 지렁이처럼 뒹굴며 기는
네 발의 이 무릎걸음은

아직 멀었지
해는 신음처럼 달아올라
팔 다리 어깨 허리, 붙잡힌 육신은
이미 너의 것
뜨거운 고통만이 차라리 희열인 채
밭둑은 저 멀리
천 리도 더 남았어
-20쪽

꼭 한 번은

꼭 한 번은 콩밭에서 하고 싶어
칠칠이 우거진 콩밭 고랑
아내와 내가 김을 매다가
꼭 한 번은 콩밭에서 하고 싶어
나는 장난스레 옆구리를 찔렀네
우리 한번 하고 하자 응?
아내는 뚱한 표정
뭔 소린지 처음에는 몰랐나 봐
보는 사람 없을 때 한 번만 응?
그제사 내 등을 꼬집으며 이 사람
미쳤어 미쳤어 한마디
하지만 나 어릴 적 어머니
저 밭뚝 감나무 그늘 밑 콩밭 매다 땀 들이실 때
아버지 옆에 앉아 다정하게 구셨다네
그래서 내가 생겼는지도 몰라
아마 그런 건지도 몰라
콩들도 낯 붉히며
우리도 어서 익자 어서 익자
지들끼리 속삭였는지도 몰라
-28쪽

함성

콩 한 말이 땀 한 말이다
숨이 턱턱 막히는 콩밭 고랑
태울 듯한 햇빛 속에 김을 매면
뚝뚝뚝 떨어지는 땀과 눈물

콩 한 말이 눈물 한 말이다
우리 아버지의 그 아버지
또 그 할머니의 할머니까지
콩 한 말이 한숨 한 말이다

콩 한 알의 땀!
콩 한 알의 눈물!
콩 한 알의 한숨이

수천수만 알의 아우성으로 한 말이다

-33쪽



쌀을 팔아다 쌀독에 부어주는 일은
뭔가 항상 가슴 벅찬 일이다
사십 킬로그램 한 가마면 팔만 이천 원
우리 식구 달포 먹을 양이다
논농사는 지어온 지 이제 십 년이 되지만
상환료 갚느라 쌀은 다 돈사야 하고
일 년 열두 달
다시 빚일 수밖에 없는 돈으로
이렇게 한 가마씩 팔아먹어야 되는 일
아랫니 빼서 윗니 박는 꼴이다
그 희디흰 쌀이 방앗간에서 다
팔려 나갈 때
나는 기껏 손으로 한 줌을 쥐어 본다
일 년의 수고가 주마등처럼 손안에 잡혔다가
스르르 스르르 힘없이 빠져나가면
나는 또 기껏 자투리 쌀이나 몇 킬로 혹은 몇십 킬로
집으로 가져와 쌀독에 붓지 않고
"농사지은 것잉게 밥인 한 끼 하소."
아내에게 쌀을 건낼 땐 눈물이 난다
쌀 한 톨 줄 수 없는 형제들 얼굴이 스친다
이번에도 설을 앞두고 쌀은 떨어졌다
며칠을 두고 눈은 쌀밥처럼 내리지만
어찌할꺼나 헤치고 나갈 수 없는 이 안타까움을
어찌어찌 겨우 한 포 구해다 부려놓고
쏟지 않고 부러 한 됫박씩 빈 쌀독에 부어 보는데
그 흰쌀이 더없이 곱다
내 비록 빚 중에 들어도 이 밥해서 상에 받쳐
어머니 살아계시면 얼머나 좋으냐마는 방 안에선
설이라고 내려온 새끼들 소리만 우당탕
-54쪽

이팝

부러진 가지 하나
갈라진 속살 틈에서도

저 소스라치는 환희와
몸 떨리는 푸른 각오

피워 올리는구나 나무여
이 깜깜한 세상 향해
-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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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2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구판절판


죽은 자들을 묻는 것은 산 자들의 몫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언 땅을 파는 것으로 죽은 자의 마지막 주먹밥을 챙겨먹은 값을 치렀다. 얼어붙은 손으로 삽질을 하며 그들은 생각했다. 내일이면 자신들이 파고 있는 무덤 옆에 자신도 나란히 묻힐지도 모른다고.

-72쪽

전쟁은 아이들을 군인으로 만들었고, 응석받이들을 천덕꾸러기로 만들어 버렸다. 아이들은 필요 이상으로 과묵해졌고, 완고하던 어른들은 더욱 냉정해졌다. 소년들은 지성을 갖추기도 전에 지성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고, 인간의 존엄을 깨닫기도 전에 인간의 존엄을 몽둥이로 망가뜨리는 법을 배웠다. 얼굴에 젖살이 빠지기도 전에 그들의 마음은 주름투성이 노인이 되어 버렸다.

-75쪽

내가 기댈 유일한 것은 책이었다. 책은 내가 믿는 단 하나였고 모든 것이었다. 모르는 것을 알려 주는 스승이었고 슬픔을 달래 주는 주술사였고 아픔을 치유해 주는 의사였다. 나는 곤궁할 때마다 책 속에서 길을 찾았고,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책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하지만 이 출구 없는 미궁 속 같은 형무소에서 수수께끼를 풀 책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누군가의 서재에서, 하숙방에서, 은신처에서 압수한 책들이 진실을 말해 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해도 다른 방법은 없었다. 책은 허술하고 미덥지 않을지 모르지만 허무맹랑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84쪽

공습은 점점 자주, 오래 이어졌다. 일본은 거대한 병영이었고, 후쿠오카는 미 공군의 앞마당이었다. 음산한 경계경보와 다급한 공습경보는 죽음과 파괴의 전조였다. 경보음에 이끌려 따라온 것 같은 B29 편대는 한순간에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뒤늦은 사이렌 소리는 잿더미가 된 도시와 잿더미에 깔린 영혼들을 위한 진혼곡이었다. 양동이를 든 여자와 불 끄는 빗자루를 치켜 든 아이들이 전선으로 간 남자들 대신 잿더미가 된 거리를 달렸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 벌 떼 같은 비행기 소리, 폭음과 비명 속에서 사람들은 한때 그 거리를 가득 메웠던 다른 소리들을 떠올렸다. 찌그러진 깡통 하나가 굴러도 까르르 터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빵빵대던 자동차 경적 소리, 레코드 상점에서 흘러나오던 재즈음악, 여자들의 반짝이던 웃음소리. 하지만 전쟁은 거리의 풍경을 잿빛으로 바꾸어 놓았다. 쥐들과 어깨뼈가 드러나 고양이들 사이로 무거운 군홧발 소리가 떠도는 거리, 문을 닫은 상점들, 무섭게 내달리는 군용 트럭. 트럭 뒤에 웅크린, 겁에 질린 젊은이들. 그들 대부분은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115쪽

죽음은 일상처럼 무감각했고, 사람들은 공포라는 등짐을 지고 살았다. 살아남는 것 자체가 목적인 시대였다.
-115쪽

심문실로 들어서는 동주는 얼굴에 재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하지만 심문이 시작되면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생기가 돌았다. 그는 존재하지 않지만 인식할 수 있는 것들과, 보이지 않지만 유추할 수 있는 것들, 사라졌지만 기억에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지지 못하지만 원할 수 있는 것들, 다다르지 못하지만 소망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부러진 뼈와 뱉어 낸 이가 뒹구는 심문실에 마주 앉아 우리는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그를 마주볼 때 나는 더 이상 그를 감시하는 간수가 아니었으며 그 또한 죄수가 아니었다. 우리는 문장을 꿈꾸는 공모자, 사라진 작가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쫓는 추적자였다. 수많은 시인과 소설가, 철학자와 화가, 작품 속 주인공들이 우리와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133쪽

하지만 그것은 그가 마음대로 가지라 마라 할 수 없는 압수물이었다. 한때 그것은 나만의 책이었지만 이제는 나의 책도, 그의 책도 아닌 빼앗긴 책이 되고 말았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책이 아니라 릴케의 영혼이라면? 누구도 영혼을 소유할 수는 없고 당연히 그 영혼을 빼앗을 권리를 가진 자도 없을 것이다. 나는 다시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겼다. 한때 누군가의 손길을 거쳐 나의 것이었던, 한 젊은 시인의 손에 이르렀다가 다시 내게로 돌아온 책. 릴케의 영혼은 그렇게 정처 없이 세상을 유랑하며 상처 입은 마음들을 보듬고 치유했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아주 조금 더 성장한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143쪽

"겨울이면 흰 눈이 마을을 뒤덮고, 먹이를 찾는 노루와 멧돼지들이 손님처럼 마을로 내려왔어. 아이들은 하늘 한가득 연을 날리고, 어른들은 매사냥을 나갔지. 우리 집은 학교 정문 쪽의 큰 기와집이었어. 마당에는 자두나무가 있고, 뒤에는 살구나무 과수원이 있고, 동문 밖에는 커다란 오디나무와 깊은 우물이 있었지. 뽕나무에 열린 오디는 다디달았어. 우물 속을 들여다보며 소리를 지르다 고개를 들면 햇살이 교회당 종탑의 까마득한 십자가를 비추었지. 나는 마을길을 산책하길 좋아했어.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이는 그 길……."

-146쪽

"고흐 화집이 들어오면 연락해 주게."
나는 그 일을 어머니에게 말씀드리지 않았다. 어두운 서가 틈에서 몰래 고흐의 화집을 펼칠 때마다 가책이 책갈피를 뛰쳐나왔다. 입영 영장을 받은 날 나는 모서리가 닳은 그의 명함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리고 희미하게 닳은 주소를 찾아가 그에게 내 영혼의 일부를 건네주었다. 그날 밤 나는 밀거래 식료품들로 차린 밥상을 앞에 두고 울었다. 잃어버린 내 영혼의 조각이 슬퍼서였다. 기름진 밥을 넘기지 못하고 자꾸만 내 그릇에 덜어 주시던 어머니.
"고흐는 별의 화가였어. 별을 사랑했고 별을 즐겨 그렸지. 그는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별에 대해 썼어. 들어 봐!"
-149쪽

그는 웃었지만 나는 슬펐다. 하얀 입김이 그의 창백한 얼굴을 더욱 창백하게 감쌌다. 숨을 쉴 때마다 그의 내부에서 차가운 영혼이 빠져 나오는 것 같았다. 먼 곳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항구의 배에서 굵고 낮은 무적이 울렸다. 풀벌레가 우는 것처럼 작은 알전구가 찌르르 울었다. 그는 나직한 음성으로 자신의 시를 외웠다. 문장들과 단어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리기 전에.

-151쪽

간수장은 눈빛으로 내 멱살을 잡아끌고 책 무더기 앞에 팽개쳤다. 고개를 들자 죽음을 기다리는 책들의 거대한 무덤이 보였다. 고뇌하는 햄릿과, 떠도는 랭보와, 모험하는 톰 소여와, 한쪽 다리를 잃은 에이허브와, 릴케와, 키르케고르……. 문장 속에서 살았고 책갈피 속에 은거했던 사람들. 나의 손에 그들을 살해할 불씨가 들려 있었다. 나는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 더러운 금서들을 얼마나 혐오하는지 증명해야 했다. 그것만이 내가 한때 연루되었던 위험한 음모에서 벗어나는 길이었다.

-160쪽

한 권의 책은 누군가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 낱말과 조사와 구두점이 모인 문장은 누군가에게 읽히는 순간 삶을 시작한다. 책은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고, 헌책방과 도서관으로 긴 여행을 한다. 누군가의 가슴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고 거대한 우듬지를 이루는 동안 책장은 찢어지고 표지는 낡고 글자들은 바랜다. 그리고 어느 날 먼지와 어둠 속에서 숨을 거두지만 그 영혼은 우리 가슴속에 살아남는다. 그러므로 책은 죽지 않는다.

-172쪽

방공호는 깊고 견고했지만 부끄러움으로부터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 그들을 죽음의 한가운데에 내버려두었다는 사실, 그러고도 살기를 바라며 방공호로 달려와 숨었다는 사실. 비겁하다고 하기에는 부끄러웠고, 양심의 가책을 말하기에는 염치없었다. 내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은 부당했다. 나의 목숨이 소중한 만큼 그들의 목숨도 소중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왜 나는 보호받고 그들은 내팽개쳐졌을까? 그들이 죄인들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나에겐 죄가 없을까?

내가 폭탄 아래에 방치했던 사람들. 나는 그들을 죽음의 먹잇감으로 던졌고, 그들의 목숨을 요행의 주사위판에 걸었다. 나는 그들의 운명을 상상할 순 있었지만 그들의 고통을 내 것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그들의 두려움에 연대하지 않았고, 그들의 운명을 동정조차 하지 않았다. 해제 경보가 울리면 간수들은 살아남아 행복하다는 듯 시시덕대며 우르르 방공호를 빠져나갔다. 짦은 숨바꼭질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처럼.
-177쪽

나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었다. 모든 존재는 심연의 상처를 가지고 있으며, 위악은 억압된 선이 스스로를 지키려는 몸부림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위악은 선의를 가진 자만이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악한 자들은 악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위선을 행할 뿐이다. 하지만 선의를 강변하는 가장 극단적인 그 방식은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고 결국 자신 또한 파멸시키고 만다. 그렇다면 스기야마는 선한 사람이었을까? 그에게 선의가 있었을까? 있었다면 어떤 선의였을까?

-191쪽

전쟁은 기진맥진한 채 계속되었다. 더 많은 청년들이 전쟁터로 끌려갔고 더 많은 청년들이 죽어서 돌아왔다. 훨씬 더 많은 청년들은 죽어서도 돌아오지 못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은 남은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굶주리고 헐벗었으며 두려움에 질식당했지만 후쿠오카 형무소에는 알 수 없는 설렘이 넘실댔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음악회는 모두를 들뜨게 하는 후쿠오카 형무소 최대의 행사였다.

-193쪽

어두컴컴한 무대 뒤에 나는 있었다. 견고한 목소리는 약간의 슬픔을 담고 있었다. 소리들은 일제히 나의 어깨를 밀치며 달려들었다. 그것은 단순히 귀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향기로, 움직임으로, 떨림으로 눈과 귀와 코와 모든 감각기관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것이 꽃이라면 나는 그 향기에 숨이 막혔을 것이고, 술이었다면 엉망으로 취했을 것이고, 마약이었다면 파멸해도 좋았을 것이다. 음악은 아름답고도 슬펐다. 내가 그것을 향유할 자격이 있는지 망설여질 만큼. 모든 선의가 빛을 잃고 강렬한 사랑에도 냉담해질 만큼. 그 순간 나는 인간이라는 아름다움, 삶이라는 기쁨을 발견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 나의 삶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나의 심장은 풀무처럼 헐떡거렸다. 나는 나를 달래야 했다.

-200쪽

나는 그를 잃어야 하는 것이 분했다. 그를 잃어야 할 사람은 나만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였다. 나는 친구를 잃어야 하겠지만 조선인 죄수들은 현명한 동료를, 간수장은 용서를 빌 대상을, 간수들은 온화한 모범수를 잃을 것이다. 태어나지 않은 조선인들은 위대한 스승을 잃을 것이고, 태어나지 않은 일본인들은 부끄러운 과거를 증언할 지식인을 잃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가지지 못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가지지 못할 순결한 시인을 잃어야 할 것이다.

-240쪽

나는 얼어붙은 형무소 뜰을 갇힌 짐승처럼 돌아다니며 시간을 견뎠다. 열흘이 지난 후 전보를 받은 그의 아버지와 숙부가 도착했다. 그들은 먼 타국에서 숨을 거둔 아들의 시신을 메고 바람 속으로 떠나갔다. 나는 형무소를 나서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고개를 숙였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의 한조각, 마지막 한마디 만이라도 전하고 싶었다.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을 아름다운 청년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한참 후에야 나는 고개를 들었다.
"아…… 동주가 죽었어요.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마지막 순간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외마디 소리를 질렀어요."
나는 돌아서 걸었다. 나의 눈물이 그들에게 죄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245쪽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밖에 없었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할 정도로 비겁하지 않지만 죽음을 무릅쓸 만큼 용감하지도 못했다. 나는 살고 싶었다. 최치수의 말처럼, 윤동주의 부탁처럼 살아남고 싶었다. 살아남는다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몰랐지만 그래도 살아남고 싶었다.

-281쪽

나는 달아나듯 원장실을 뛰쳐나왔다. 그는 왜 내게 연구동의 가장 은밀한 비밀을 말했을까? 더 이상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그의 생각대로 된 것이다. 엄청난 비밀에 압도당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 비밀을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사람이 없었다. 말한다 해도 믿어 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믿는다 해도 분노할 사람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설사 분노한다 해도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인간에 지나지 않을까?
-282쪽

왜 아무도 말하지 않고, 드러나길 원하지 않는 일에 대해 집필했습니까?
누군가는 그것들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고 들은 것들을 절대 망각 속에 사라지게 할 수 없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무, 심지어는 거짓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과거의 잘못을 다시 곱씹을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새 출발 하자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잊지 않아야 돌이켜 볼 수 있고, 돌이켜 보아야 과오를 찾을 수 있고, 과오를 찾아야 잘못을 인정할 수 있고, 잘못을 인정해야 용서를 빌 수 있으며, 용서를 빌어야 용서받을 수 있고, 용서받아야 새롭게 출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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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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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적 병사를 총검으로 찔러 죽이는 병사를 백안시하는 한편, 적기를 10기나 격추한 파일럿은 영웅으로 추앙했다.

-254쪽

살육 병기의 개발은 적을 얼마나 멀리, 보다 간단하게 대량의 희생자를 내느냐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 맨손으로 때려죽이는 것보다는 날붙이를, 그리고 총기류를, 포탄을, 폭격기를, 결국 핵탄두를 탑재한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이런 식으로. 거기다 미국의 경우 이건 나라를 지키는 기간산업 중에 하나가 되었어. 그래서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 거야.
전쟁 당사자 중에서 가장 잔인한 의사를 가진 인간, 즉 전쟁 개시를 결정하는 최고 권력자만큼 적으로부터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었다. 백악관에서 만찬회에 출석하고 있는 대통령은 적이 흩뿌린 피를 뒤집어쓰지도, 육체를 파괴당한 전우가 내뱉는 단말마의 외침을 듣지도 않는다. 살인에 뒤따르는 정신적 부담을 거의 받지 않는 환경에 있기에 날 때부터 갖고 있는 잔학성을 더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군대 조직이 이러한 형태로 진화하고 과학 기술 덕에 병기가 개선되고 있는 이상, 근접전에서 살육이 격렬해지는 것이 당연했지만 전쟁의 의사결정자는 아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대규모 공중 폭격을 명령할 수 있는 셈이다.
-255쪽

전쟁의 심리학은 권력자의 심리학이라고 바꾸는 것도 가능했다. ‘사람은 어째서 전쟁을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명령하는 인간의 정신 병리를 먼저 해명해야 했다.

-256쪽

반대 의견의 문제점은 꼬치꼬치 따지면서 배제하고, 찬성하는 사람들만 주위에 가득하게 채워 가는 것. 민주적인 결정으로 보이는 독재였다. 번즈 정권은 이렇게 해서 이라크 국민들의 살육도 주도했던 것이다.

-276쪽

예거는 드디어 전투의 대의를 손에 넣었다. 조국을 위해서도, 이데올로기를 위해서도, 아니면 돈을 위해서도 아닌, 자식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304쪽

이라크군과 합동으로 8000명의 병력을 조직하여 반미 세력의 거점이 되었던 이 지방 도시에 총공격을 개시했다. 격렬한 시가전이 전개된 결과, 네 사람의 보복을 위해 1800명의 병사와 시민이 사망했다. 게다가 미군이 많은 열화우라늄 탄을 사용했기 때문에 방사성 물질에 의해 오염된 이 지역에서는 암 환자나 기형아가 증가하고 있을 터였다. 전부 이 행성에서 최고의 지성을 가졌다고 자부하고 있는 생물들이 한 일이었다.

-313쪽

무서운 것은 지력이 아니고, 하물며 무력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입니다.

-415쪽

군산 복합체의 중심에 있다 보면 지배 논리란 것이 굉장히 단순하다는 사실에 놀라고는 했다. ‘공포’였다. 전쟁으로 돈을 벌고 싶은 정책 결정자는 다른 나라의 위협을 과장하여 국민에게 크게 퍼뜨리기만 하면 됐다. 판단의 근거를 국가 기밀이란 벽으로 감춰 버리면 매스컴도 확인 없이 이 위협론에 올라탔다. 그저 그것만으로 막대한 자금이 세금에서 국방 예산으로 흘러들어 군수 기업 경영자들에게 갈 대가가 순식간에 뛰어올랐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심어진 공포는 국경 밖으로 전파되어 다른 나라도 미국을 따라서 군사 예산을 늘렸다. 이런 국가 간의 긴장은 의심 때문에 현실에 비해 훨씬 고조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진짜 전쟁으로 이어져 특정인만 이득을 얻는 무한한 금맥이 형성됐다. 게다가 위정자로서는 외적을 만들면 덤으로 지지율이 오른다는 이익이 생겼다. 이 사태를 예견한 아이젠하워는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연설에서 군산 복합체의 위험성을 국민에게 경고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세계 각국에 전쟁으로 이윤을 얻는 기업이 존재하는 이상, 이 세상에서 전쟁이 사라질 일은 없을 터였다.

-462쪽

인간에게 선한 측면이 있다는 것도 부정하지는 않네. 하지만 선행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위배되는 행위이기에 미덕이라고 하는 걸세. 그것이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행동이라면 칭찬 받을 일도 아니지 않은가. 국가의 선은 다른 국민을 죽이지 않는 행위로밖에 드러나기 어렵지만, 그것조차 불가능한 것이 지금의 인간이야.

-475쪽

현생인류는 탄생한 지 20만 년이나 지나도 서로 죽이는 걸 멈출 수 없는 딱하디 딱한 지적 생명체네. 살육 병기를 모아서 서로를 위협하지 않으면 공존할 수 없는 이 현재 상황이야말로 인류가 가진 윤리의 한계였던 거지. 슬슬 다음 존재에게 이 행성을 넘겨줘도 좋을 때라고 생각하네.

-475쪽

역사학만은 배우지 말게. 지배욕에 사로잡힌 멍청한 인간이 저지른 살육을 영웅담으로 바꿔서 미화하니까 말이야.

-481쪽

네오나치나 백인 지상주의자 등 자신의 폭력 행동을 정치사상으로 탈바꿈하는 가짜 우익에는 공통적인 심성이 있었다. 비뚤어진 자존심의 발로였다. 그들은 자란 환경 등의 문제로 자신을 직접 긍정하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소속된 집단을 무턱대고 긍정하며 그 집단의 구성원인 스스로가 훌륭하다는 논법을 취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관심은 자기 자신에게 밖에 향하지 않는 것이 명백했다. 그 증거로 가짜 우익의 공격은 자신들의 주장에 이의를 다는 동포들, 심지어 그들의 의견에 무턱대고 긍정했던 구성원에게도 향할 수 있다.

-503쪽

루벤스는 이라크 전쟁을 모의할 때마다 신에게 기도를 해 왔던 남자를 바라보았다. 자타가 공인하는 경건한 기독교인. 천상에서 내려오는 빛을 받고 있는 그의 발치에 불관용이라는 이름의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번즈가 내세우는 것이 이상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전지전능한 존재를 꿈꾸며 이교도를 적으로 간주하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널리 보이는 습성이었다. 피부색이나 언어의 차이뿐만 아니라 어떤 신을 믿는지도 적과 아군을 식별하는 장치로써 기능했다. 그리고 신은 회개했다고 말하기만 하면 대학살의 죄악도 사라지게 해 주는 편리한 존재였다.

-506쪽

과거 20만 년에 걸쳐 서로 죽이는 것을 되풀이해 온 인류는 항상 다른 집단의 침략에 떨었고 그 공포심이 더 큰 두려움을 초래하여 피해망상 직전의 상태를 유지하다가 국가라는 방위 체제를 만들어 현재에 이르렀다. 이 이상한 심리 상태는 인류 전체가 보편적으로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상이 아니라 정상이라고 여겨지고 있었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상태’였다. 그리고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위험하다는 확고한 증거를 서로가 이미 자신의 내면에서 보았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모두 다른 사람을 상처 입혀서라도 식량이나 자원, 영토를 빼앗고 싶어 했다. 이 본능을 적에게 투영하여 공포를 느끼고 공격하려고 했다. 그리고 죽음을 초래하는 폭력의 행사에는 국가나 종교라는 세력이 면죄부가 되었다. 그 궤도 바깥에 있는 것은 에일리언, 즉 적이기 때문이었다.

-5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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