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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宮 13
박소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궁은 연재 초반부터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왕실이 존속하고 있다는 '설정' 자체는 신선했지만 그에 대한 준비는 부족해 보였다. 작가 나름대로 고심은 했다지만 단지 왕실에서 사용하는 '용어'만 나열한다고 해서 왕실이 재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문제들이야 애교로 넘어간다고 치면, 작가가 올인해야 했던 것은 무엇일까? 청소년들의 인기에 힘입어 이만큼 성장했으니, 그들에 맞추어 학원 로맨스?로 갈 수도 있었겠다. 그게 작가 뜻이 아니라면 궁중 암투를 빙자한 정치 투쟁... 뭐 이런 것을 원했을까? 어느 쪽이든, 작가는 모두 살리지 못했고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식상함과 진부함, 그리고 짜증만 안겨 주고 있다.
진부함을 보자. 궁중 암투... 요새는 사극에서도 잘 안 다루려고 노력한다. (없진 않다.) 어쨌든 왕위 문제를 둘러싸고 싸움이 벌어졌으니 치열한 싸움을 보여줘야겠는데, 대비의 행태란 유치뽕짝을 넘어서 수준이하다. 많이 배우고 좋은 가문이라고 입이 닳도록 얘기하면서 그 어처구니 없는 품위란. 인신모독에 열 받아 왕이 되어 줘... 라는 채경, 그녀야 워낙에 생각 없이 등장하니(솔직히 너무 생각 짧다.) 그럴 수 있다 치지만, 아무리 봐도 주인공이 너무 모자라다ㅡ.ㅜ
가장 황당한 것은 국왕이다. 난 차라리 그가 율이가 내 아들이다!라고 했으면 용서가 됐을 것 같다. 그럼 뻔한 전개이긴 하지만 적어도 '설득력'은 있다. 그가 대비를 너무 사랑했어서 그렇게 몰염치해졌다고 한다면 그것도 웃기지만 그래도 넘어갈 법 하다. 그러나 그가 신에게 제시한 이유는 얼토당토 하지 않아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율이는 또 어떤가. 아무리 '사랑' 앞에 물불 못 가리는 청춘이라지만 이 정도면 병이고 스토커다. 다들 멀쩡히 생겨서 머리 속에 돌아가는 생각들은 함량 미달 뿐이다. 그리 된 되에는 당연히 작가의 탓이 가장 크다. 도대체 그녀의 주변에 '궁'의 전개에 직언을 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단 말인가. 아니면 이미 작가로서도 손 댈 수 없을 만큼 너무 멀리 나간 것일까.
의회 연설의 내용도 멋만 잔뜩 부린 것일 뿐 작가 나름의 정리된 철학은 보이지 않는다. 이후 펼쳐질 이야기의 전개는 또 얼마나 억지스러울까. 월담하는 신이만큼이나 작가가 대책 없다.
일단 보기 시작한 것은 완결이 날 때까지 보자가 내 주의지만, 갈수록 실망만 앞선다. 게다가 그림은 얼마나 날림이던가. 표지 어색해, 첫 페이지 컷의 신의 다리 길이는.ㅡ.ㅡ;;;; 게다가 목이 어깨에 딱 붙어버린 채경이, 20쪽의 국왕은 머리를 떼어서 어깨에 붙여놓은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가 후기 비스무리하게 등장인물들을 정리해 놓았는데 인수대비를 태조의 며느리로 써 놨다. 오타일까? 아무도 틀렸다는 것을 못 찾아낸 것일까? 다른 왕들이야 그렇다 치지만 '태조'로 착각하는 건 어이 없다. 작가가 '궁'을 쓰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고 알고 있으니 말이다.
읽고 기분이 좋아져야 하는데 스트레스를 받았다. 무조건 해피엔딩이야!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연성은 있게 전개했으면 한다. 드라마 궁 2탄도 난항을 겪는 것 같더만 원작의 작가는 더 거센 폭우에 시달리는 듯 하다. 스스로 불어넣은 폭풍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