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 55
파트리크 라페르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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쫙 펼쳐든 두 손. 유리에 묻은 물방울을 닦으려는 건가. 무언가를 가리려는 것인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난 왠지 후자의 경우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두 손을 내민 이는 분명 애써 무언가를 가리려고 한다고. 그런데 대체 그게 무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그뿐이 아니다. 저자가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짧은 인생을 말하려는 걸까, 끝없는 욕망을 이야기하려는 걸까.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다소 철학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제목의 책을 손에 쥐고 한창 고민했다.


사실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는 출간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호기심이 일었던 책이다. 우선 이 책이 페미나 상을 수상했다는 것부터. 1904년에 창설된 프랑스 문학상인 페미나 상은 12명의 심사위원이 모두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남성 권력 위주의 콩쿠르 상에 대적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이것만 보자면 이 소설의 작가 파트리크 라페르는 당연히 여성이겠거니...싶지만 그게 아니다. 남성이다. 이거, 의외인 걸? 그렇담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책인가? 짐작했지만 그것 역시 잘못된 생각. 루이와 머피라는 서로 다른 두 명의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여 그들의 사랑과 욕망에 대해 털어놓는 남자들의 사랑이야기다.


소설은 뜨거운 태양이 내리 쬐는 가운데 자동차 안에서 잠자듯 숨죽이고 있는 남자 루이 블레리오가 한 통의 전화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가 자그마치 2년 동안이나 기다려온, 노라의 전화였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숨죽이고 있던 그는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동물처럼 순식간에 분주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한편 머피 블룸데일은 자신의 집에 노라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한 나머지 무기력에 빠진다. 노라가 사라진 공간에서 그녀의 흔적을 찾아 헤맨다. 같은 여인에게 매료된 나머지 삶의 활기마저 잃어버린 루이와 머피의 모습에 순간 궁금증이 일었다. 대체 노라는 어떤 여인일까? 얼마나 매력적이길래 두 남자가 이렇게 애타게 그녀를 그리워하는 걸까.


노라는...한마디로 종잡을 수 없는 여인이다. 머피와 사랑을 나누다가도 어느 순간 그에게 등을 돌리고 루이의 곁으로 날아든다. 그러다 또다시 루이를 떠나고 루피를 찾아 나서는데. 사실 루이는 유부남이었다. 이미 아내가 있음에도 그는 노라와의 뜨거운 사랑, 욕망을 저지하지 못했다. 하버드 출신에, 증권중개인으로 성공한 머피도 사정은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머피는 금욕적인 성향이 강해서 루이처럼 자신의 욕망을 우선시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그가 노라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열정적인 루이와 순수한 머피, 그 두 명의 남자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사랑과 열정에 자신을 내던지는 노라. 소설은 이 세 주인공의 사랑과 끊임없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에게 있어 사랑은, 욕망은 어떠하냐고. 나는 이렇소. 이게 나의 생각이요. 하고 명쾌한 답변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문득 <욕망해도 괜찮아>란 책에서 읽었던 대목이 생각난다. ‘인간의 내면은 아무리 파고 들어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복잡한 것’이라고. 욕망도 이와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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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아랑전
조선희 지음, 아이완 그림 / 노블마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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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마냥 동화가 좋았습니다. 착하고 아름다운 공주(소녀)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잘생긴 왕자를 만나 결혼하여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이야기를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읽었습니다. 착한 이가 악행을 저질러 온 이를 물리친다는 우리 옛이야기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알게 된 동화와 옛이야기의 숨겨진 이야기, 진실은 어릴 적 제가 알던 것이 아니었어요. 유리구두에 발을 맞추기 위해 딸의 발가락과 발뒤꿈치를 서슴없이 자르는 계모가 있는가하면 팥쥐는 콩쥐를 괴롭힌 벌로 젓갈이 되어 버리는, 그 어떤 것보다 잔혹하고 잔인한 이야기에 소스라치게 놀랐는데요.

 

몇 년 전 우연히 <모던 팥쥐전>을 읽을 때도 그랬습니다. 콩쥐팥쥐와 여우누이, 우렁각시, 선녀와 나뭇꾼 같은 옛이야기를 재해석해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한 것을 보면서 잊고 있던 두려움과 공포를 느낌과 동시에 저자의 뛰어난 상상력에 감탄을 했습니다. ‘작가 조선희’를 인식하는 계기도 되었는데요. 얼마전 ‘작가 조선희’의 새로운 작품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제목은 <모던 아랑전>. 제목으로 보나 표지의 분위기로 보나 여러모로 <모던 팥쥐전>을 떠올리게 하는 면모에서 단박에 결정했습니다. 읽자. 읽어야겠다.

 

책에는 ‘영혼을 보는 형사’ ‘스미스의 바다를 헤맨 남자’ ‘버들고리에 담긴 소원’ ‘오소리 공주와의 하룻밤’ ‘오래된 전화’ ‘29년 후에 만나요’ 이렇게 여섯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요. 각각의 단편이 시작되기 전에 짤막하게 어떤 옛이야기, 전설을 원형으로 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면. 제목만 봐서는 짐작조차 불가능합니다.

 

이를테면 ‘영혼을 보는 형사’. 본문에는 이것이 ‘장화홍련전’을 모티브로 했다는 걸 밝혀 놓았지만 책을 읽다보면 그것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무언가 또 다른 것이 있다는 말이죠. 10년을 간격으로 개봉하는 영화의 주인공을 했던 배우는 모두 주목을 받는데 그 이유가 놀랍게도 주인공을 했던 이가 이후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세 편의 영화가 제작되고 네 번째 시리즈에 평범한 청년이 주인공으로 발탁되는데요. 놀라운 건 말을 더듬던 청년이 신기하게도 카메라가 돌아가면 술술 대사를 읊어댄다는 겁니다. 마치 청년 안에 또 다른 인물이 깃들어서 그가 연기를 하는 것처럼. ‘심청전’이 원형이라는 ‘버들고리에 담긴 소원’에서는 세 명의 소녀가 등장하는데요. 친구로 지내던 세 명의 소녀는 자신의 소원을 버들고리 바구니에 넣어 연못에 빠트립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소원을 적어야 하고 소원을 적은 세 명 중 한 사람이 죽어야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걸 알지만 소녀들은 멈추지 않습니다. 어차피 사람들은 언젠가 죽을텐데...그때 남은 두 명은 소원을 이룰 수 있으니 상관없다는 식인 거지요. 이후 실제로 한 명의 소녀가 죽습니다. 그러자 남은 두 명은 공포와 두려움에 떨면서도 한편으로 자신의 소원이 이뤄질거라 기대를 합니다. 그러나....

 

옛이야기의 어디서, 어떤 대목에서 이 이야기의 씨앗이 싹트게 됐을까...처음엔 나름 짐작하면서 읽었지만 그것 역시 점차 잊게 되더군요. 그만큼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문의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그림이 공포스런 분위기를 한껏 살려서인지 책 읽는 도중에 수시로 소름이 돋았구요. 잠자던 중에 화장실을 찾았다가 무심코 거울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하는 후유증을 겪기도 했지만 극심한 폭염 속에 잠시나마 더위를 잊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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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복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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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말, 마쓰모토 세이초를 처음으로 만났다. 국내에서 ‘미미여사’라고 불리며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가 다른 미스터리 작가의 작품을 선별을 맡은 단편집이 있다 해서 눈길을 끌었는데 그 작가가 바로 마쓰모토 세이초였다. 궁금하던 차에 마침 출간된 <제로의 초점>을 읽었지만 기대가 커서인지 이 작품이 왜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장이라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대표작이라고 하는지 공감할 수가 없었다. 흡족할만한 첫 만남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실망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글을, 이야기를 쓰는지 알고 싶었다.


그런 차에 최근 다시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제목은 <잠복>, 마쓰모토 세이초 단편 미스터리 걸작선의 첫 번째 책으로 표제작인 ‘잠복’을 비롯해 ‘얼굴’ ‘귀축’ ‘투영’ ‘목소리’ ‘지방신문을 구독하는 여자’ ‘일 년 반만 기다려’ ‘카르네아데스의 널’ 이렇게 모두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의 추리소설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트릭이나 숨겨진 단서를 찾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데 <잠복>은 달랐다. 사건이 왜 일어나게 됐는지 당시 상황이나 동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런 걸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표적인 형식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가장 먼저 수록되어 있는 ‘얼굴’의 주인공. 그는 개성 있는 얼굴로 주목받기 시작한 연극배우인데 과거 자신이 저지른 범죄, 관계를 가진 술집 여종업원이 임신을 하자 살해했던 것을 떠올린다. 누구나 한 번만 보면 기억하는 개성적인 얼굴이 연기생활에 큰 발판이 되지만 족쇄가 된다는 걸. 이에 남자는 자신의 과거,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인물을 정리하는 수순을 밟기 시작한다. 표제작인 ‘잠복’에서는 강도 살인 사건의 범인이 옛 연인을 찾을 거라고 추측한 형사가 옛 연인의 집에서 잠복하면서 벌어지는 일, 감시당하는 인물의 상황과 일상을 이야기한다. 그런가하면 ‘귀축’은 전직 접대부인 첩의 세 아이를 학대하는 주인공의 아내와 아내에게 떠밀려 아이들을 한 명씩 버리는 우유부단한 남자의 이야기는 동화 ‘헨젤과 그레텔’이나 옛이야기 ‘장화 홍련’을 떠올리게 했다. ‘지방신문을 구독하는 여자’는 지방신문을 구독 신청한 여자가 뜬금없이 해지 통보를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글을 쓰는 작가들의 상상력과 추리력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이렇게 저자는 작품 속에서 범인이 얼마나 악랄한 범죄를 저질렀으며 그것을 수사팀이 어떻게 추적하는지 강조하지 않는다. 그보다 오히려 사건을 범한 범인,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그가 어떤 심리상태인지를 전달하는데 주력한다. 지금까지 읽었던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미스터리 소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어서 ‘이게 무슨 미스터리야’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 인간의 복잡한 심리였다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니까.


마쓰모토 세이초와의 두 번째 만남은 장편과 단편이라는 차이점이 있긴 했지만 일단 성공적이었다. 다만 이야기 곳곳에 술집 여종업원이나 외도에 대한 대목이 있어서 마음에 걸린다. 물론 출신의 비밀이나 불륜, 외도는 막장 드라마에서도 단골 메뉴이고 또 일간지에서 심심찮게 만날 수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쾌하진 않았다. 등장인물을 좀 더 다양하게 할 수도 있었을텐데...라는 생각도 들고.


여하튼 마쓰모토 세이초. 그는 좀 더 만나고 싶은, 알아낼 것이 많은 작가임은 분명하다. 앞으로 그의 작품이 계속 출간된다니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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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맷하시겠습니까? - 꿈꿀 수 없는 사회에 대한 여덟 가지 이야기
김미월.김사과.김애란.손아람.손홍규.염승숙.조해진.최진영 지음, 민족문학연구소 기획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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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둘째를 낳고 장만한 컴퓨터는 툭하면 말썽을 일으켰다. 갑자기 멈추는가 하면 인터넷이 꺼지고. 지난달엔 아예 전원조차 들어오지 않고 먹통이 되어 버렸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진갑 다 지난 셈이라 이번 기회에 새 컴퓨터를 장만하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본체에 모니터의 전원까지 고장이 난 컴퓨터를 들고 아침 일찍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문제의 그 날 부품 교체를 설명하던 직원이 말했다. “포맷하시겠습니까?”라고.


“포맷하시겠습니까?”라는 말이 부품을 교체해봐야 금방 또 고장날텐데 뭐하러 애써서 수리하느냐. 그냥 새 컴퓨터를 장만하라는 의미인 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난 ‘포맷’이란 말을 순진하게, 단순하게,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포맷하면 상황이 개선될 거라고. 실상은 그렇지 않은, 임시방편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꿈꿀 수 없는 사회에 대한 여덟 가지 이야기’라는 부제의 <포맷하시겠습니까?>란 책을 앞에 두고 내 낡은 컴퓨터가 떠올랐다. 지금의 상황이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악화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조차 힘겨워서 ‘인생도 컴퓨터처럼 포맷이란 걸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 삶이, 현실이 아이들의 판타지 동화가 아닌 이상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언제나 현재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내내 고심했다. 책은 바로 그런 이들, 현재의 상황을 벗어나고 개선하기 위해 고심하는 인물들을 이야기한다.


‘죽일까. 말까’ 다소 섬뜩한 말로 시작한 김미월의 [질문들]은 등단을 꿈꾸는 소설가 지망생이 등장한다. 거리에서 앙케트 조사 요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는 ‘나’는 결혼하는 오빠의 방 보증금을 빌려달라는 말에 차마 거절하지 못한다. 정작 중요한 자신의 미래는 ‘죽일까. 말까’ 망설이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무엇 하나 정해진 것 없이 불안한 상태이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을 진심으로 알아주지 않는다. 질문을 가장한 강요과 명령만이 있을 뿐. 김애란의 [큐티클]에서 주인공은 매끄럽게 다듬어진 손톱을 열망한다. 친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경쟁심을 느끼는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주인공은 애써 ‘표나지 않게’ 멋을 낸다. 거기에 보드랍고 매끈하게 다듬어진 손톱은 화룡점정으로 꼭 필요하다고 여긴 그녀는 생전 처음으로 네일 샵을 찾는다. 하지만 현실은 세련되고 당당한 커리어우먼을 꿈꾸는 그녀의 의도에 부응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어긋날 뿐. 그런가하면 염승숙의 [완전한 불면]에서 사람들은 잠을 위해 대가를 지불한다. 최상, 상, 중, 하 네 단계로 나누어진 것 중에서 최상급의 잠을 자려면 그만큼 돈을 지불해야 하지만 돈이 없으면 며칠이고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잠을 자지 못하는 이야기는 마치 꿈속을 헤매는 듯 몽환적이면서도 충격적이었다.


책은 이외에도 김사과, 손아람, 손홍규, 조해진, 최진영의 작품까지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서른 즈음의 작가들이 털어놓는 이야기, 그들의 시선에 비치는 사회의 모습은 삭막하고 위태로웠다. 그래서일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도 언제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불안한 모습들이었다. 여덟 편의 단편 모두에 공감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몇 몇 작가와 인상적인 첫 만남을 가질 수 있어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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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왕국
현길언 지음 / 물레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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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아시나요? 여행을 좋아하던 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낯선 산골 마을에 들어선 그는 우연히 한 노인을 만나게 됩니다. 노인은 나무 한 그루, 잡초 하나 자라지 않는 드넓은 황무지에 나무를 심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땅은 아니지만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거였지요. 이후 벌어진 전쟁에 참전했던 남자는 종전 후 다시 마을을 찾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라게 되지요. 몇 날 며칠을 걸어도 거친 황무지 벌판만 펼쳐져 있던 곳이 숲으로 바뀌어 있었던 겁니다. 울창한 나무숲은 더욱 많은 생명, 갖가지 식물과 여러 동물들, 사람들까지 불러들였습니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던 황무지를 한 명의 양치기 노인이 낙원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이야기는 짧지만 가슴에 큰 감동으로 다가왔는데요.

 

이번에 <숲의 왕국>을 읽으면서 문득 <나무를 심은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은 고향이 허허벌판으로 변해버린 사실에 충격을 받습니다. 이후 청년은 쓸모없는 돌산이 되어버린 곳에 나무를 심기 시작합니다. 청년의 행동에 마을 사람들도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고 바람 불면 먼지가 날리던 황무지도 어느덧 숲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60여 년이 흘렀습니다. 그 옛날 숲을 가꾸던 청년은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노인은 이상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숲이 왕을 세우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숲이 왕을 세운다고? 믿기 어려운 얘기에 숲에서 오랫동안 생활하여 나무들의 대화도 알아듣는 목 상무는 노인에게 대책을 세우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노인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평화로운데 뭐하러 왕을 세우겠냐고. 그건 사실이 아닐거라고. 또 왕을 세워도 무슨 큰 일이 생기겠냐고.

 

숲에도 왕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숲에 질서가 바로 선다. 나무들은 모여서 의논을 합니다. 누구를 첫 번째 왕으로 세울 것인지. 여러 나무가 숲의 왕으로 거론되고 밤나무와 잣밤나무, 벚나무를 찾아가 왕이 되어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숲의 왕이 필요하지 않다며 거부합니다. 결국 탱자나무를 왕으로 추대하기로 하는데요. 탱자나무가 왕이 되면서 숲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노인이 평생 가꾸어 온 숲은 더 이상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왜일까요?

 

숲의 나무들이 왕을 세우는 것과 그렇게 왕이 된 떡갈나무의 행위를 보면서 순간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등장인물이 등장‘나무’로 바뀌었을 뿐, 책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지금 우리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치 아이들 동화를 읽는 듯 빨리 읽히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결코 쉽지 않은, 무심코 넘길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이와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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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8-05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숲해설가 공부한 후로, 나무와 숲에 대한 책은 무조건 궁금합니다.
이 책은 읽어보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