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믿으면 그게 사실이 되는 거야.팩트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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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예술이 아니야. 현실 그 자체지. - P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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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친화력 을유세계문학전집 127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장희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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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 하지 말라는 행동을 아이는 꼭, 반드시, 기필코 하고 만다. 비단 아이뿐일까. 어른도 마찬가지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음에도 자신에게 금지된 것을 서슴없이 행하고 만다. 무모함인지 어리석음인지 알 수 없는 이런 행동 패턴은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문학작품 속에서 갈등과 파멸을 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요즘 즐겨 보고 있는 TV 드라마에서도 그랬다. “문을 열어주지 마라.”는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문을 열어주고 금지된 존재를 안으로 들이면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고 만다. “문을, 열었네?”


 

서두가 길었지만 에두아르크, 한창 좋은 나이 때의 한 부유한 남작을 그렇게 부르기로 하자.(9)’로 시작하는 괴테의 <선택적 친화력>을 읽는 초반의 느낌이 딱 그랬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열지 말았어야 하는 문.


 

에두아르트와 샤를로테는 젊은 시절 뜨겁게 사랑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헤어지고 각자 다른 상대와 결혼한다. 하지만 사랑보다 조건을 좇은 결혼에 두 사람은 모두 실패하고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부부의 연을 맺는다. ‘드디어 두 사람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면 좋겠지만 괴테가 어떤 작가인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같은 작품으로 독일 문학의 거장에 오른 그는 등장인물의 삶을, 인생 여정을 사정없이 비틀어버린다. 놀라운 건 그런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것.


 

시작은 에두아르트가 아내에게 친구 대위를 집으로 데려오고 싶다고 말하면서부터였다. 처음엔 극구반대하던 샤를로테도 어느날 에두아르트에게 양녀 오틸리에를 기숙학교에서 데려오고 싶다고 털어놓는다. 그러자 에두아르트, 너무나 흔쾌히 받아들인다. “당신은 오틸리에를 데려오시오. 난 대위를 데려오리다. 신의 이름을 걸고 한번 실험해 봅시다!(25)”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데 열두 살 먹은 애도 아닌 어른이 성인 남성과 젊은 처녀를 집으로 들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정말 모르는걸까? 너무나 어처구니없지만 실험한다고 했으니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니나다를까.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듯이 일은 결국 벌어지고 만다. 에두아르트는 오틸리에를 보자마자 단박에 빠져들고, 대위는 샤를로테에게 이끌리게 된다. 오틸리에는 샤를로테에게 감사한 마음을 느끼면서도 에두아르트를 거절하지 못하고 샤를로테 역시 대위를 가슴에 품게 된다.


 

불빛이 어두워지자마자 마음속의 애정과 상상력이 눈앞의 현실을 넘어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다. - 134


 

소설에 어울리지 않다고 여겼던 제목에 대한 궁금증은 본문에 들어가서 풀렸다. 같이 모여 있으면 얼른 붙잡아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자연 물질이 있다는 화학자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거였다. 인간도 물질이니 서로 끌리고 밀어내는 건 당연한 일이겠다 싶지만 금기시된 남녀 간의 불륜, 그것도 이중 불륜을 다룬 소설은 출간 당시 크게 논란이 되었다고 한다. ‘가장 난해하고 다의적인 작품이라는 <선택적 친화력>에 대해 막상 괴테는 경험하지 않은 것은 단 한 줄도 들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니 그의 삶과 작품이 얼마나 밀착되어 있는지 짐작케한다.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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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샤 창비청소년문학 117
표명희 지음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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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막내, 인자 느그 집 가나?”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친정과 시댁, 양가에 인사를 드리고 신혼집으로 향하는 내게 친정엄마가 말씀하셨다. 이제 니 집으로 가느냐고. 결혼했으니 앞으로 여기, 친정에 자주 못 올 거란 의미. 애정 표현에 서툰 엄마로선 이것이 막내딸과의 아쉬움을 표현한 최대치였다. 하지만 친정엄마가 간과한 것이 있으니 나의 살림 솜씨가 형편없다는 거다. 한동안 친정집 방문이 어려울 거란 예상과는 달리 거의 매일 내 집 드나들 듯 들락거렸다. 같은 도시, 버스로 고작 20분 거리에 불과하지만 사랑 하는 가족, 어릴 적 추억이 가득한 집을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내가 태어난 나라, 조국을 떠난다는 건 어떨까. 얼마나 큰 결심을 하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할까.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여기 한 가족이 있다. 한 쌍의 부부, 그리고 그의 네 아이 버샤, 텔민, 세실, 나즈.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아끼고 큰아이는 동생들을 세심하고 돌보는, 그야말로 다복한 가족이다. 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환경, 머물고 있는 공간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미래를 꿈꾸기 이전에 오늘 하루를 무탈하게, 내일도 무사하게 맞이할 수 있는지조차 장담할 수 없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은 하루에도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국제공항의 출국장이기 때문이다.


 

나누고 가르는 거라면 정말 지긋지긋하다. 우리가 이런 처지에 내몰린 것도 알고 보면 그런 구분 때문이다. 같은 무슬림도 시아파와 수니파로 나뉘고, 같은 수니파도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고…… 그뿐인가? 군인도 정부군과 반군으로 나뉘고, 뒷배가 되는 나라도 미국과 러시아로 나뉘고……. 사소한 나누기에서 시작한 불씨가 결국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는 내전으로 치달아 사람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까지 내몰지 않았나. -36.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언어도 통하지 않는 땅에 발을 디딘 그들은 출국장 한 켠에 여행 가방과 휘장을 둘러 임시로 거처를 꾸렸다. 조국에선 부유한 명문가에서 태어나 풍족한 생활을 누렸던 그들이지만 지금은 한 달이 넘는 동안 오직 난민 심사에서 무사히 통과하는 것만 바라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나라는 웬만해선 난민을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거기다 무슬림에 대한 인식도 최악. 때문에 그들의 난민신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희박했다. 국경을 몇 차례 넘으면서 자금사정도 악화되었다. 그들에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사회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 온순한 사람들이란 인상을 주기 위해 어떻게든 우선 사람들 눈에 띄면 안되었다. 그것이 유일한 생존수칙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불회부결정이 내려지고 마는데……


 

어느새 출국장 끝이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의 마지막 지점에 이른 것이다. 어릴 적 화려한 미로 같던 통로를 지나 이르던 황금 지붕의 모스크처럼 이곳도 내겐 해방구나 다름없다. 유리 벽 너머로 보이는 바깥세상이라야 드넓은 활주로가 펼쳐진 공항 마당이 전부지만……. -190


 

공항 출국장에서 난민처럼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를 읽으며 순간 톰 행크스가 출연했던 영화 <터미널>이 떠올랐다. 모국에서 갑자기 터진 쿠데타로 오갈 데가 없어지자 주인공이 어쩔 수 없이 공항에서 지내는 줄거린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고 해서 인상적으로 봤던 기억이 난다. 그 영화처럼 소설 속 가족도 공항에서 살아가기 위해 어렵게 끼니를 해결하고 책을 구해 낯선 언어를 익히고 자신들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 다가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명쾌한 해결책은 쉽게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설상가상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세계는 공포의 도가니가 되고 마는데...


 

거대한 우주에서 보자면 한낱 벽촌에 지나지 않을 이 지구 위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은 신의 눈에 얼마나 가련하고 가소로운 존재일까. 한쪽에서는 테러와 전쟁으로 울부짖고 다른 쪽에서는 축제와 파티로 환호하는, 어수선하고 모순투성이인 이 행성이 말이다. 엄밀히 따지면 우리는 기껏 지구의 껍데기에 달라붙어 아등바등 살아가는 가련한 피조물 아닌가. -110

 


수수께끼를 푸는 기분으로 소설을 읽었다. 버샤가 실어증을 앓게 된 어떤 이유일까. 이 가족이 안고 있는 비밀은 대체 뭘까. 무슬림에 대한 선입관, 고정관념을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어질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장 넘기는 속도가 빨라졌지만 결국 묵직한 숙제가 남겨졌다.

 


국경을 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건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살아갈 나라의 국경선 앞에 우리는 여전히 희망을 갖고 서 있다.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어 우리를 맞아줄 날을 기다리며…….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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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우연 - 제13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3
김수빈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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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방학이었으면 좋겠다.”


3월의 첫날 저녁을 먹으면서 아이들이 말했다. 새 학년이 시작되는 날을 하루 앞두고 벌써 방학 타령이라니. 고등학생인 둘째는 그렇다 쳐도 대학생인 첫째까지? 아이들에게 학교는 그렇게나 가기 싫은 장소였던가. 잔뜩 침울해 있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만, 대학 졸업한 그해의 3월이 제일 슬펐어.”

왜요?”

더이상 학생이 아니란 걸 알았거든. 엄만 지금도 학교에 가고 싶어. 정 그렇게 싫으면 엄마가 대리출석이라도 해줄까? 고딩은 몰라도 대학 강의실은 가능할 것 같은데?”

에엑? 엄마! 농담도 되는 소리를 해야지! 학교 보내려고 별소릴 다 하셔.”

사차원 엄마가 학교에 와서 무슨 엉뚱한 짓을 할지 모른다고 생각한 걸까? 좀전까지 학교 가기 싫다고 투덜거리던 녀석들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 난 살짝 아쉬웠다. 그렇게 어처구니 없는 소리였나?

 


청소년 소설을 읽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아주 오래전에 지나온, 당시엔 두 아들처럼 하루하루가 지겹고 힘들기만 했던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기에 설레기까지 하다.

 


온통 짙은 초록의 숲이 그려진 <고요한 우연>. 표지만 언뜻 보고 숲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인가 했다. 그러다 표지 아래쪽, 계단에 앉은 소녀가 고양이 두 마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 호기심이 일었다. “나는 네가 궁금해졌어. 아주 많이.”라는 부제처럼. ‘가 누굴까? 혹시 고양이?


 

이쪽으로 와서 앉을래?”

괜찮아.”

긴장할 것 하나도 없어.”


책장을 넘기자마자 마주하는 것은 심상찮은 분위기. 학교에서 무슨 일이 생겼다. 아니, ‘누구에게 심각한 일이 발생했다. 즉각 해당 학생과 같은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는 담임 선생님, 학생부장 선생님의 호출을 받고 상담실로 향한다. 음료수를 내어주며 선생님은 그 아이와의 관계에 대해 묻기 시작한다.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던 그 아이가 마치 증발이라도 해 버린 것처럼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극도로 말을 조심해서 건네는 선생님들의 의중은 단 하나. 넌 뭔가 아는 게 없냐는 것.

 


는 머리가 새하얘진다. 외모도, 성적도, 성격도 어느 것 하나 특별하지 않은, 평범하다 못해 스스로도 심심하다고 여기는 자신에게 선생님들의 관심이 쏠리니 어느 때보다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 아이가 사건 사고에 휘말렸을 가능성도 있다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가운데 순간 떠오른 것. 그 아이가 새벽에 자신이 보낸 SNS 메시지를 확인했다는 사실.

 


단 두 장에 불과한 초입 부분을 읽으며 많은 의문이 떠올랐다. ‘그 아이는 대체 누굴까. 왜 사라졌을까.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이가 사라진 지 나흘이나 지났다고? 그 아이는 무사한 걸까?


 

사라진 아이의 행방을 찾는 것으로 시작한 소설은 (이수현)’의 서술로 진행된다. 같은 반 아이들에 대해서, 교실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그런 가운데 왠지 자꾸만 시선이 가고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끌리는 아이들을 알기 위해 는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한 아이의 SNS 계정을 통해 그들과 조금씩 가까워지는데...

 


책은 한 번 잡으면 바로 끝으로 내달릴 만큼 몰입감이 높은 작품이다. 교실 바로 앞뒤로 앉아 있으면서도 카톡으로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요즘 아이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얼굴을 마주하고 눈을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나 전화통화 보다 SNS가 친숙한 아이들. 그렇기에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첨엔 고요한 우연이란 제목이 무슨 의미일까. 의문을 품었다. 무엇을 강조하기 위한 것일까. ‘고요함일까. ‘우연일까. 궁금증은 본문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오늘 일을 장난이라고 해도 되는 걸까. 이건 명백한 괴롭힘이었다. 아이들은 고요가 먼저 미움받을 행동을 했다고 말한다. 미움받을 행동을 하면 괴롭혀도 괜찮은 걸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면 상대를 괴롭힐 권리가 주어지는 걸까.- 59


 

열일곱, 내 인생에 주어진 가장 큰 행운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지아, 내 친구 서지아. - 178


 

스스로 빛을 내지 않아도 밝게 빛나는 별이 있다고 말해 주던 다정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자신은 스물세 번째 피규어라고 했던 이우연의 말도 떠올랐다. 나 또한 그 어디쯤 서 있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엄마의 특별 한정판은 아니지만 엄마에게 꼭 필요했던 피규어다. 그걸로 됐다. 그러면 충분했다. - 188~189쪽


 

사람들은 달을 올려다본다고만 생각하지, 달이 지구를 보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달인데 말이야. - 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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