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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리 4 : 리플리를 따라간 소년 ㅣ 리플리 4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 / 그책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꺄~악!!"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해변으로 밀려온 시체와 여인의 날카로운 비명소리. 한때 전세계 여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꽃미남 배우 알랑 들롱의 <태양은 가득히>를 지금까지 아마 열 번은 넘게 봤을 겁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궁금하더군요. 진짜 이게 결말인가? 리플리는 잡혔을까? 아니면 친구인 디키로 깜쪽같이 변신할 때처럼 교묘히 빠져나갔을까? 의문이 들었는데 지인이 그러더군요. 영화의 원작소설이 있다고.
그래서 만났습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리플리 시리즈, 그 중의 1편인 <재능있는 리플리>가 바로 영화 <태양은 가득히>와 <리플리>의 원작소설인데요. 아들을 찾아서 데려와달라는 친구 아버지의 부탁을 받은 리플리가 이탈리아에서 디키와 함께 지내다가 결국 그를 살해하고 자신이 디키가 되어 살아가는 아슬아슬한 이야기를 책으로 만나니 느낌이 무척 새롭더군요. 물론 영화 속 장면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라 느낌이 배가된 점도 있겠지만 화면에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인물의 심리나 감정의 흐름은 영화 그 이상이었거든요. 누구보다 다정하고 매력적이면서도 차갑고 냉혹한 살인마의 모습으로 돌변하는 인물 리플리. 그를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리플리 시리즈가 모두 다섯편이 된다니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읽을 생각에 모처럼 흥분이 되더군요.
그런데 제가 너무 느긋했나 봅니다. 1권을 읽고 잠깐 쉬는 사이에 어느새 4권이 출간되는 바람에 저의 작전에 차질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어쩐다지? 갈등이 생기더군요. 원래 계획대로라면 순서대로 읽어야겠지만 4편에서 십대의 소년이 등장한다니 이번엔 과감하게 반칙, 아니 새치기를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책은 시작부터 리플리의 전면전을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보금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종국에는 삶의 터전을 무너뜨릴지도 모르는 무리를 처단하기 위해 리플리는 전전긍긍합니다. 하지만 거대한 조직의 무리를 혼자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지요. 리플리는 어쩔 수 없이 백기를 들고 실패를 선언합니다. 왕개미 무리에게.
어이없는 패배의 아픔을 안고 카페에 찾은 리플리에게 누군가가 접근합니다. 그는 빌리 롤린스. 자신을 미국인이며 열아홉 살이라고 소개한 소년은 리플리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데요. 매사에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빌리는 보면서 리플리는 생각합니다. 평범한 십대 소년이 아니라고. 어떤 목적이나 이유가 있어서 자신에게 접근한 것이 틀림없을 거라고. 그런 와중에 그는 한 잡지에서 미국의 식품업계 거물인 존 피어슨이 절벽에서 떨어져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그의 아들 프랭크 피어슨이 사라져서 행방이 묘연하다는 기사를 보게 됩니다. 리플리는 순간 며칠전에 만난 금발의 소년 빌리가 혹시 프랭크 피어슨이 아닐까? 의문을 갖게 되는데요. 아니나다를까 리플리의 짐작은 적중했습니다. 거기다 소년이 잠시 머무는 집을 의문의 사람들이 감시하는 것으로보아 소년이 몸값을 노린 이들에게 납치될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것도 말입니다. 이에 리플리는 소년에게 자신의 집으로 몸을 숨기라고 제안합니다.
이후 책은 소년이 아버지의 죽음에 어떻게 관계가 있는지, 소년을 감시하는 인물이 누구이며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요. 1편에서 치명적일만큼 매력적인 카리스마를 내뿜던 리플리와 다소 달라진 모습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는데요.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부유하지만 결코 행복하지도 자유롭지도 못한 프랭크를 보면서 리플 리가 불우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고 연민의 정을 느낀 건 어쩌면 당연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편, 3편을 빼먹고 과감하게 4편으로 뛰어들면서 문제없으리라 여겼는데요. 역시 시리즈는 순서대로 읽어야 제 맛인 것 같습니다. 본문 곳곳에 이전의 이야기를 언급하는 대목이 나오는데다가 리플리가 아내인 엘로이즈를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도 궁금하더군요. 리플리 시리즈의 마지막 5편이 출간되기 전에 뛰어넘은 2편과 3편을 얼른 펼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모습의 리플리를 만나게 될까요? 2편과 3편, 그리고 마지막 5편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