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 입니다.


실질적 해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청원입니다.

동의합시다.


https://petitions.assembly.go.kr/status/onGoing/9C11598F598C39B3E054A0369F40E8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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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텔레그램 단속강화
    from 퀸의 정원 2020-02-09 13:19 
    다락방님이 텔레그램 메신저에서 생기는 음란물 유통과 관련해서 국회청원 사이트를 알려주셨지요.텔레그램에서이 음란물 유통이 범람해서인지 경찰이 칼을 뽑아들었다는 기사가 났네요.n번방잡는다 경찰 텔레그램 TF 가동 66명 검거외국에 서버를 둔 음란물 사이트를 적발하기도 쉽지않고 폐쇄하기도 쉽지 않다는데 경찰이 국제 공조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단속해 나가길 바랍니다.by caspi
 
 
단발머리 2020-02-05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원하는 건 청와대 홈에만 있는줄 알았는데 국회에서도 그런 제도가 있었네요.
동의하고 왔어요!

블랙겟타 2020-02-05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부끄럽지만 국회에 청원제도가 있는건 처음 알았어요.
동의해씁니다!

비연 2020-02-05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게 있었군요. 동의하고 왔어요!

카스피 2020-02-05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국회 청원제도가 있는줄 처음 알았네요.그나저나 텔레그램은 단순 메세시 프로그램인줄 알았는데 동영상도 볼수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몰카 범죄는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네요ㅠ.ㅠ
 

일전에 [이수정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에서 2020년에 이 프로그램에서 다룬 내용으로 책이 나올거란 얘기를 들었다. 그 프로그램을 몇 개 듣지는 않았지만 내용들이 다 좋아서 책 나오면 좋겠다, 읽어보고 싶다 하고 있다. 사실 그보다는 이수정 교수님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간 공부하는 과정, 그리고 일했던 것들을 써준 책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던 것. 이 나라에서 범죄심리학자로 살아간다는 것, 교수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써준 책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수정 교수님을 넣어 검색해 보았지만 이미 내가 읽었던 [사이코 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와 아마도.. 교재로 쓰이는 책만이 있는 것 같다.
















누가 이수정 교수님 에세이좀 내주세요...




어제부터 박완서의 책을 읽고 있다.
















이 책, [대범한 밥상]은 박완서의 단편집이다. 와, 진짜 너무 좋은게, 글이 담고 있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크- 글맛이 있는 거다. 이런건 내가 국내 작가의 책을 읽을 때 자주 느끼는건데, 진짜 처음부터 한글로 쓰여진 문장을 읽는 건 그것 자체가 주는 아주 큰 기쁨이 있는 거다. 내가 번역서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지만, 읽기는 번역서를 훨씬 더 많이 읽었고 그래서 내 문장도 사실 번역문에 더 가까울 거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어쨌든 이 한국어로 쓰여진 책이 주는 그 맛, 그 기쁨은 너무 최고되는 것이다. 게다가 박완서나 박경리, 이승우라면 한국어를 다루는 데 있어서 더 탁월한 것 같다. 막 문장 읽히는 데 되게 찰지다고 해야 하나. 제일 처음 단편 <부처님 근처> 읽으면서도 너무 좋았던게, 그 한국어 문장들, 그 맛깔나는 단어의 배열들로 인물의 섬세한 심리까지 드러내서 정말 크, 그래 이거야- 하고 감탄하면서 읽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단편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서는, 와, 할 말이 많아지는데, 그래서 결국 내가 이 단편집을 다 읽지도 않고 이렇게 페이퍼를 쓰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서 여자는 세번 결혼했다. 이 일은 동창들 사이에서도 비꼬는 화제가 되는데, 주인공은 세번이나 결혼한 여자를 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지긋지긋해하고 그러나 위축되지 않으면서 깐깐하게 맞선다. 이런 것도 너무 좋은데, 그간 결혼한 남편들에 얘기하는 건 또 어찌나 재미있는지.



집의 입을 덜기 위해 엄마가 후딱 결혼시켜버려 맞이했던 첫번째 남편.



신랑은 무식하고 교만했다. 나는 여직껏 자기의 무식과 자기의 돈에 그렇게 자신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자기 외의 딴 사람의 삶에 대한 상상력이 철저하게 막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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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불리 먹고 건강했는데도 나는 아기를 낳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시앗을 보았고 나는 시집을 떠났다. 남의 집에 들어와 애 하나 못 낳는 주제에 시앗 좀 봤다고 시집을 아사는 년이 그게 어디 성한 년이냐고 시집 식구들은 욕을 했지만 나는 그렇게 했다.

이혼이란 확실히 결혼보다는 경사스러운 일이 못 되지만 나는 그 일을 내가 선택했고, 내가 생전 처음 어떤 선택을 행사했다는데 기쁨마저 느꼈다. (p.59-60)




둘째 남편은 그녀 스스로 택한 남편이었다. 지방대학 강사였고 지방 신문에 칼럼을 쓰는 사람이었는데 그 글들이 참 좋았던 거다. 돈이나 명예나 하는 것에 매달리는 사람이 아닌 터라 반했던 것. 그래서 그와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곧 내가 속았다는 걸 알아야 했다. 그는 겁쟁이이고 비겁하고 거짓말쟁이였다. 순 엉터리였다. 그의 본심은 돈과 명예에 기갈이 들려 있었고 T 시와 T대학 강사 자리를 지긋지긋해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이런 곳에서 썩긴 너무 아까운 존재라고 억울해했고, 서울의 일류 대학에서 자기의 명성을 흠모하고 모시러 오지 않는 것에 앙심을 품기도 했다. 그의 명성에 대한 자신이란 것이 또 사람을 웃겼다. 자기의 전공 공부에는 게으르고 자신도 없는 주제에 잡문 나부랭이나 써가지고 지방 신문을 통해 매명賣名을 부지런히 해쌓는 것으로 그런 엉뚱한 자만을 갖는 것이었다. 더욱 웃기는 것은 그는 그의 글을 통해 결코 도시 돈 명예에 대한 그의 절실한 연정을 눈곱만큼도 내비치는 일이 없이 늘 신랄한 매도를 일삼는다는 거였다. 도저히 구제할 수 없이 비비 꼬인 남자였다. (p.61-62)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어떤 남잔지 알겠는 건 왜때문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특히나 글쓰는 남자를 싫어라 하는 이유인데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박완서님 만세입니다.


자, 그러면 세번째 남편은 어떤가. ㅋㅋㅋㅋㅋㅋㅋㅋ


세번째 남편은 돈에 환장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남자였고, 여자는 위선적인 것보다 그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징그러..징그러운 것이다. 징그러...




"거 참 잘됐구려. 오래간만에 나가 바람 좀 쐬고 와요. 사람은 그저 사람을 많이 알아놔야 되는 거야. 다 써먹을 데가 있다구. 있구말구. 줄이나 빽이 별건가. 그렇구 그런 거지. 당신 동창 중에라도 재벌이나 고관 사모님 없으란 법 없잖아. 하다못해 세리稅吏 마누라라도 있어봐. 그게 어디게."

공현히 흥분해서 눈을 번쩍이고 삿대질까지 했다. 그러곤 엄숙하게 덧붙였다.

"어떡허든 우리도 한밑천 잡아 한번 잘살아봅시다."

나는 울컥 징그러운 생각이 났다. 그러곤 아아, 아아, 징그럽다고 생각했다. 내가 남편을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건 아주 나쁜 징조였다. 더 나쁜 것은 숨가쁘게 아아,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거였다. 첫 남편과 헤어질 때고 그랬었고, 두번째 남편과 헤어질 때도 그랬었다. 남들이 알기로는, 내가 첫 남편과 헤어진 것은 애를 못 낳아서 쫓겨난 것으로, 두번째 남편과 헤어진 것은 그까짓 일부종사 못한 팔자 두 번 고치나 세 번 고치나지 하는 팔자 사나운 헌 계집이면 으레 그렇게 하는 빤한 소행쯤으로 되어 있을 터였다. 내가 겪은 아아 징그럽다는 아무도 모른다. (p.48)



아아, 그러나 제가 알겠습니다, 그 징그러움. 아마 다른 많은 여자들도 그 징그러움을 알 것 같습니다, 박완서 님이여..



이 세번째 남편은 참... 꼴보기 싫은데(다른 남편들처럼) 조금 더 옮겨보겠다.




그의 눈은 의욕 과잉으로 핏발이 서 있었고, 몸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마디로 눈부셨다. 그는 나도 자기의 손발처럼 덩달아 바쁠 것을 강요했다. 그러나 나는 그게 잘 되지를 않았다. 나는 그의 분망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아홉시에 중요한 용건으로 만날 사람이 있으니 서둘러야겠다고 시계를 골백번도 더 보면서도, 별로 급한 것 같지도 않은 전화를 몇 통화씩 거는가 하면, 통화중인 곳에는 욕지거리를 해가면서도 끈질기게 돌리다가 아홉시를 삼십 분도 못 남겨놓고서야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를 질러대면서 옷을 주워입고, 내가 골라주는 넥타이를 마땅찮아하고, 다시 고른 것도 또 신통찮아하고, 거듭거듭 그 짓을 하면서 그는 교묘하게 자기가 이렇게 늦고 만 것이 마치 내 탓인 것처럼 뒤집어씌웠다. 그리고 겨우 고른다는 게 내가 처음 골랐던 것을 다시 고른 것도 모르고 만족해하다가, 다시 시계를 보고는 불난 집을 뛰쳐나가듯 곤두박질을 치면서 뛰어나갔다간 오 분도 안 돼서 숨이 턱에 닿아서 되돌아와서 중요한 서류를 잊고 나갔다고 찾아내라고 고함을 쳐댔다. 그럴 때 만약 내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보관했던 서류를 단박에 첫째 서랍에서 꺼내주면 도리어 남편은 나를 핀잔주려 들었다. 답답하다느니 안차고 다라지다느니 하면서. 그런 핀잔을 듣지 않으려면 나도 덩달아 "어머머, 큰일났네. 이 일을 어쩌누. 글쎄 그 서류를 어디 뒀드라. 에구구 …… 내 정신이야"하며 하던 일을 내던지고 뱅뱅 맴을 돌며, 발을 구르며 이 서랍 저 서랍 날쌔게 빼보고, 말을 안 듣는 서랍을 냅다 빼동댕이치며, 콩 볶듯이 날뛴 끝에 서류를 찾아내야만 했다. (p.45-4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 서류를 어디 뒀드라. 에구구 …… 내 정신이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소설이 쓰여진 게 1974년이다. 남편이 아니라면 경제적 능력을 갖추기가 힘들었을 것. 소설 속 여자는 행복해지고 싶고, 돈을 부족함없이 쓰고 싶어서 다시 결혼을 선택해 여기까지 온거다. 그러나 지금 남편도 너무 징그럽다. 그래서 거울을 보지만, 이제 다시 결혼하기엔 너무 늙어버렸다고 여자는 생각한다.

물론 이 소설은 이렇게 남편 얘기만 하다가 끝나는 건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 내용이 이렇게 진행되어 이렇게 끝나지, 하게 되는데, 박완서가 그려내는 남편들의 모습이 전혀 낯선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 재미있다.




<그 가을의 사흘 동안>은 바로 전에 실린 단편속 주인공과 달리 나이들어서까지 혼자 사는 여자가 주인공이다. 그녀에게 그게 가능했던 것은 그녀가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 그러나 전문의가 아니라서 동네 어디쯤 자리를 잡고 주로 소파수술과 성병치료를 하는 산부인과를 개업했다. 이 소설은 1980년의 소설이고, 주인공 역시 강간을 당해 낙태한 경험을 갖고 있는 걸로 되어 있다.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산부인과 의사가 되어 소파수술을 하게한 것. 한 자리에서 30년간 산부인과 의사로 일해오고 있지만, 그녀가 출산된 아이를 받은 건 처음 딱 한 번 뿐이고 지금까지 계속 소파수술과 성병치료만 해왔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에 치를 떨고 억울해 하면서 세상에 대해 보복하고 싶어한다. 친절하거나 다정한 것과 거리가 먼 성격의 여자인데, 그녀 스스로 그것을 잘 알고 있고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안달까. 이제 병원 폐업을 앞두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아이를 한 번 받아볼 수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여전히, 소파 수술과 성병을 치료하기 위한 여성과 포주들만 방문한다.

그리고 태반을 먹기 위한 동네 여자들과.




그런 여자들을 구경하노라면 진찰대에 치부를 얼굴처럼 쳐드는 자세로 누워 있을 때하곤 또 다르게 여자의 추악함이 그 극한까지 다다른 것을 보는 것 같은 잔혹한 쾌감을 느끼곤 했다. 그러니까 여자들에게 남의 미숙한 태반을 먹이고, 그 비릿한 입으로 음담을 지껄이게 하는 것도 내 나름의 여자들에 대한 박해의 한 방법이었다. 증오로써 할 수 있는 일 중 박해처럼 자연스러운 일도 없다. 이렇게 끊임없이 나는 내가 여자이기에 받은 치가 떨리는 박해의 기억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남에게 분배함으로써 나만의 억울함을 덜어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결코 덜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남을 비참하고 추악하게 만들어놓고 비교해도 역시 내가 더 비참하고 추악했다. (p.143)




나는 자신에 대한 어떤 의구심에 사로잡혔다. 왜 나는 내가 이렇게 이해할 수 없어지나? 자기로부터 가까운 사람일수록 이해할 수 없는 거동이나 기색을 보일 때 기분이 더 나빠진다. 하물며 자기 자신에 있어서랴. 하긴 그 우스꽝스러운 날림 결혼식 구경을 하면서 느닷없이 살아 있는 완전한 아기를 받아보고 싶단 생각을 품기 시작하고부터 나는 나로부터 떨어져나가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될 수 있는 대로 따지지 말고 내버려두자고 벼른다.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분리되는 수은처럼 자신이 산산조각날 것 같아 나는 두렵다. (p.140-141)




이 책에 실린 열편의 단편중 나는 아직 네 편의 단편밖에 읽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 가을의 사흘 동안>이 너무 인상적이다. 뒤에 실린 이야기들은 또 어떤 이야기들일까.

아직 내가 읽지 않은 박완서의 작품이 많다는 게 너무 좋다. 제대로된 한국어로 쓰여진 짜릿한 맛을 느낄 생각을 하니 너무 좋은 거다.




지난 설연휴에 친구와 만나 닭도가니탕을 먹으러 갔었다. 삶아진 닭과 죽이 함께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데, 그릇 가득 녹두가 담겨있었다. 노란빛이라고 하기에도 적절하지 않고 연둣빛도 아닌, 그 색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녹두를 모르는 사람에게 녹두를 설명하자면 노란 것보다는 빛이 바랬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흐린 노랑? 그러나 녹두를 아는 사람에게는 녹두색, 이라고 하면 금세 떠올릴 수 있을테다.

내가 한국어로 쓰여진 소설을 좋아하는 데는 바로 그 이유가 있다. 녹두색이라고 설명할 수 있고, 그걸 알아들을 수 있는 바로 그 지점.





대기실과 상담실을 겸해서 넓고 쾌적하게 꾸며진 방의 남으로 난 창가에 아직도 우단의자는 놓여 있다. 그 의자는 허구한 날, 내 눈에 거슬렸던 것처럼 오늘도 눈에 거슬린다. 손으로 우단천을 결과 반대방향으로 쓸면 다 바랜 잿빛 속에서 밝은 녹두색이 살아난다. 그 녹두색은 삼십 년 전의 쑥색의 잔재다. 그 의자는 쑥색이었을 적에도 녹두색이었을 적에도 잿빛이 된 후에도 나의 병원과는 안 어울렸다. (p.138)



위의 문장을 읽는데 너무 좋은 거다. 쑥색이라니, 녹두색이라니. 그리고 잿빛. 역시 한국어로 쓰여진 소설을 읽을 때 가장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문장이 다 쑥쑥 들어와. 눈앞에 선명히 그려진다. 정말이지, 아 이맛이야~ 이러면서 읽을 수 있다니까?


좋다. 좋아.



아 할일이 많은데, 그래서 어제도 요가하면서 내내 '내일 뭣도 해야 하고 이것도 해야하고' 하면서 일 생각했는데, 왜 회사 나오니까 책에 대한 얘기만 하고 있는가. 어쨌든 책에 대한 얘기를 이렇게 하였으니, 이제 페이퍼쓰기를 마치면 점심식사에 대한 생각을 하는 걸로 하겠다. 뭐먹나..








창녀의 사타구니와 정숙한 여자의 그것과를 감히 비교하는 것은 정숙한 여자에겐 모독이 되겠지만 나는 다만 외관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상식적으론 창녀의 것은 더럽고 정숙한 여자의 것은 깨끗한 걸로 돼 있지만 육안을 통한 관찰에 의하면 그와 정반대다. 어떤 창녀의 그곳은 거의 백치의 얼굴처럼 청결하다. 그러나 자기의 그곳이 가장 정숙하다고 믿는 여자일수록 그곳의 불결에 파렴치하다. 그것은 마치 뉘 집에서나 응접실이 가장 깨끗한 것과 같은 이치이리라. -<그 가을의 사흘 동안>-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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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2-04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박완서 작가님 소설책을 일곱 권이나 모아놓고 한 권도 안 봤네요. 스스로도 깜짝 놀람ㅎㅎㅎ. 다락방님 페이퍼 읽으니 읽고 싶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0-02-05 08:41   좋아요 1 | URL
우와 대박. 일곱 권이나 모아놓으셨다뇨!! 이제 읽는 일만 남았네요.
저도 사놓고 안읽은 책이 너무나 많지만, 나중에 읽을 책 많아지니 좋다..라는 긍정적 마인드를 자꾸 끼워넣으며 살고 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님은 아무때고 내킬 때 읽을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ㅎㅎ

slobe00 2020-02-04 1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완서님은 드물게도 남편과 제가 공통적으로 애정하는 작가님이셔요^^
저도 역시나 번역서 비중이 높다보니 외국어 좀 잘했음 하는 마음도 불쑥불쑥~

다락방 2020-02-05 08:41   좋아요 0 | URL
저도 번역서를 많이 읽고 그래서 원서로 읽고 싶은 욕심에 방통대 영어영문학과에 편입했다가..한학기 다니고 자퇴했지요. 공부는 내 길이 아닌것임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0-02-04 1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박완서 작가님 글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다락방 2020-02-05 08:42   좋아요 1 | URL
쟝쟝님도 읽어봐요! 세상에 읽을 책이 너무 많죠!!
 
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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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편을 들면 있었던 사실을 없는 것으로 만들게 되고 심한 것을 그렇게까지 심한 건 아닌 것으로 만들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가해자의 편을 들까. 왜 가해자의 말을 피해자의 말보다 더 신뢰할까. 그건 아마도 가해자의 말을 신뢰하는 편이 방관자의 마음이 더 편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이 책에서 배움에서 오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런 걸 느끼기도 했고.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던 타라 웨스트오버가 대학에 가서 처음으로 역사라는 것과 대면하고 빨려들어가 공부하는 것이라든가,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서 자신이 자라온 환경과 접목시키는 순간들은, 내가 바랐던 바로 그 이야기였다. 공부하면서 예전의 나와 달라지는 바로 그 지점들. 



타라 웨스트오버는 모르몬교의 절실한 신자인 부모님 덕에 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면서 친구도 사귀지 못하고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폐철처리장에서 일을 하면서 학대당하고 위험에 노출된다. 게다가 그녀의 오빠중 한 명은 자라는 내내, 그녀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어마어마한 폭력을 휘두른다. 아버지가 가르쳐준 세계는 그녀에게 전부였으므로 세상에 나온 그녀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허우적댄다. 대학을 다니면서 자신이 그간 얼마나 다른 사람들과 다른 환경에 놓였는지 인지하게 되고 모든 학문들로부터 자신의 삶을 돌이켜 자신이 당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걸 알게되는 것은 그녀에게 결코 기분 좋은 일도 아니었고 또 힘든 과정이었다. 그녀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자꾸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그리고 자기에게 폭력을 휘두른 오빠가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어김없이 큰 실망만 안고 돌아와야 하고. 그녀는 아주 오래, 자신이 모든 걸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믿었다. 여전히 가족들을 사랑했고 또 가족들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자신이 당했던 학대와 폭력을 인지할 수 있었던 것, 그랬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은 배움 덕이라고 타라 웨스트오버는 말하고 있다. 그 결론은 충분히 묵직했지만,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내가 기대한 배움의 짜릿함 보다는 폭력의 거대함에 무력해졌다. 그녀가 홀로 자신이 집이라 불렀던 곳으로 돌아가는 걸 볼 때마다 너무 힘들었고, 대체 왜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어릴 때 제대로된 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예방 접종도 받아본 적 없지만 어쨌든 그녀는 하버드와 케임브리지를 거쳐 박사학위를 받아냈다. 그러나 박사학위를 받은 그녀는 결코 오빠의 사과를 받지 못했고, 그 때의 기억은 그녀에게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녀의 일기장 속에도. 배움으로 인해 그녀는 예전에 보았던 세상과는 아주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되었지만, 그러나 나는 무력함을 느낀다. 폭력의 힘이 너무 세서. 폭력의 힘이 너무 강해서. 그것이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서 너무나 무력하고 기운 빠진다. 



폭력이 존재하면 그 폭력의 기억은 피해자에게 내내 따라다닌다. 피해자는 그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그 기억을 조작해보고 미화해본다. 어쩌면 자신이 잘못한걸지도 모르겠다고, 어쩌면 그들이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자신의 탓을 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기도 힘들어지고 자기 자신과 타인을 믿는 것도 어려워지는데, 이 모든 것들을 거쳐나가는 그 오랜 시간동안 가해자는 이렇게 어려운 시간을 보내질 않는다. 



물론 타라 웨스트오버가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것, 더 나쁜 환경속에서 더 나쁜 일들에 맞닥뜨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그 과거의 폭력을 고발할 수 있었던 것은 배움의 덕이다. 배웠기 때문에 그녀는 이만큼 올 수 있었다. 그것은 다행한 일이고. 그렇지만 독자인 나도 책장을 덮고나서도 그 폭력에 대해서 잊을 수가 없는데 그녀가 다른 사람앞에서 느꼈던 그 수치심과 고통, 살면서 겪었던 외로움과 고독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괴롭다. 폭력 그 따위 것,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괴롭다. 폭력의 기억이 나를 후려치지 않게 해야한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괴롭다.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았던 학대에 대해 알고 읽었지만 폭력 또한 그녀를 내리치고 있을지 몰라서 괴로웠다. 이런 상황에 놓인 아이들이 그리고 여자들이 여전히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 때문에 괴롭다. 배움의 발견보다 폭력의 기억이 더 크게 다가와서 이 책을 읽는 것이 괴로웠고 책장을 덮은 지금도 괴롭다. 




산파 일은 엄마를 변화시켰다. 엄마는 일곱 자녀를 가진 성인 여성 이었지만, 이전에는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의심이나 도전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책임자 역할을 수행한 적이 없었다. 가끔 분만을 한 후 며칠동안 엄마한테서 주디한테서 느꼈던 무거운 존재감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머리를 고집스럽게 돌린다든지, 도도하게 눈썹을 추겨세운다든지 할 때 말이다. 엄마는 화장하는 일을 그만뒀고, 화장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하는 일도 그만했다.- P41

나는 그날 제닛이 입은 남색 블라우스를 머리에 떠올렸다. 블라우스의 목선은 쇄골에서 2센티미터밖에 내려오지 않았지만, 헐렁했기 때문에 몸을 수그렸으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 나는 초조해졌다. 블라우스가 더 딱 맞았으면 몸을 수그려도 속이 덜 보였겠지만, 딲 맞는 옷 자체가 덜 점잖아 보였을 것 아닌가. 의로운 여성은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여자들이나 하는짓이다.
내가 어느 정도 몸에 맞는 옷이 적당히 맞는 것일까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아버지가 말했다. ˝제닛은 내가 볼 때까지 기다려서 그 성가집을 주우려고 몸을 구부렸어. 내가 보길 원했던 거야.˝ 엄마는 못마땅하다는 듯 <쯧>하고 한 번 혀를 찬 다음 감자를 네 조각으로 잘랐다.
- P185

아버지의 말은 그전에 수백 번 들었던 비슷한 내용의 설교와는 다른 형태로 내 뇌리에 박혔다. 그 후 몇 년동안 나는 무척 자주 그 말들을 머리에 떠올렸고, 그 의미를 곱씹을수록 내가 잘못된 부류의 여자로 변화해 가는 게 아닐까 걱정이 커졌다. 어떨 때는 <그들처럼>걷거나, 몸을 숙이거나, 쭈그리고 앉지 않는 데 너무 신경을 쓰다가 거의 방도 못 지나갈 지경이 됐다. 그러나 아무도 얌전하게 몸을 숙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몸을 숙이는 방법이 잘못된 방법일 거라고 짐작했다. - P185

내 몸을 마비시킨 것은 두려움뿐 아니라 연민이기도 했다. 그 숙난 나는 오빠를 증오하고 있었고, 오빠 얼굴에 대고 오빠가 증오스럽다고 외치고 싶었다. 내 말과 자기혐오의 무게에 눌려 구겨지고 부서져 버릴 오빠의 모습을 상상했다. 당시에도 나는 진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내가 오빠를 아무리 증오해도 오빠 자신이 스스로에게 느끼는 혐오감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진실 말이다.- P197

오빠는 나를 모욕하고, 과거로 시간을 돌이켜서 과거의 내 이미지로 나를 가두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 단어는 내 주제를 깨닫게 하기는커녕, 나를 먼 곳으로 도망가게 만들었다. <야, 깜뚱이, 기중기 팔 좀 올려> 혹은 <수평자 좀 가져와, 깜둥아>할 때마다 나는 대학의 대강당으로, 인간의 역사가 내 앞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면서 그 속에서 내 자리는 어디일까 생각했던 시간으로 돌아갔다. 에멧 틸, 로자 파크스,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이야기는 숀이 <깜둥아, 다음 줄로 옮겨>하고 소리칠 때마다 내 마음 속에 떠올랐다. 그해 여름 숀 오빠가 용접으로 고정시킨 모든 도리들보 위에는 그들의 얼굴이 겹쳐서 떠올랐다. 그 일이 끝날 무렵에야 나는 처음부터 불 보듯 바로 알아차렸어야 할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평등을 향한 대장정에는 누군가 반대했을 거라는 사실 말이다.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누군가의 손에서 자유를 쟁취해야만 했던 것이다. - P286

내 계좌에는 1천 달러가 들어 있었다. 입에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생각하기에도 이상했다. 1천 달러. 여윳돈. 내가 즉시 필요하지 않은 돈. 그 사실에 적응하는 데 몇 주가 걸렸다. 내가 즉시 필요하지 않은 돈. 그 사실에 적응하는 데 몇 주가 걸렸다. 그러나 적응을 하고 나니 돈이 갖는 엄청나게 강력한 장점을 경험하게 됐다. 바로 돈 말고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교수들이 갑자기,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학비 보조금을 받기 전까지는 마치 흐릿한 렌즈를 통해 그들을 본 느낌이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 꼭 필요한 것 이외의 참고 서적도 읽기 시작했다.- P327

나는 역사 기록학에 관한 이야기를 우물쭈물 꺼냈다. 역사 자체가 아니라 역사학자들에 대한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이런 관심은 홀로코스트와 미국 흑인 인권 운동에 대해 배우면서 내게 근거나 기초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고 절감했던 경험에서 나온 것 같다. 누군가가 과거에 대해 아는 바는 항상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로부터 제한받게 될 거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잘못 알고 있던 사실을 바로잡히는 일이 어떤 느낌인지 안다. 잘못 알고 있던 규모가 너무도 커서 그것을 바로잡으면 세상 전체가 변할 정도 였다. 이제 역사를 이해하는 길로 통하는 문을 지키는 위대한 문지기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무지와 편견을 해결했는지를 알아야만 했다. - P373

그날 밤 나는 그 소녀를 불렀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떠난 것이다. 그 소녀는 거울 속에 머물렀다. 그 이후애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는 내리지 않을 결정들이었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P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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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2-02 2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던 어떤 무협소설 중에, 어릴적부터 엄마에게 학대받고 자란 멍청한 아이가 기연을 만나서 천하제일의 무공을 얻고 무림을 종횡무진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 작품은 만화로도 나왔는데요, 원작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만화에서는 결말부분만 살짝 바꿔서 굉장한 충격을 줬어요.

그러니까, 그 아이가 이제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어서 당당하게 엄마를 찾아간 거에요. 엄마 나 좀 보라고, 근데 미친 엄마가 어린 시절에 학대했던 것처럼 채찍을 들고 주인공을 때리기 시작하니까, 주인공은 별안간 어릴적 트라우마에 사로잡혀서 아이때처럼 잘못했다고 빌고 빌면서, 그 천하제일의 무술을 하나도 발휘해보지 못하고 그대로 엉엉 울면서 계속 맞고 바닥을 뒹굴어요. 맞아서 죽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지만, 주인공을 기다리던 정혼녀가 그후 오랜 세월 계속 그를 기다리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걸로 봐서 주인공은 아마 엄마한테 맞아 죽었나보더라구요.

그 만화는 진짜 충격이었어요. 잊히지가 않네요. 천하제일의 무술도 무용지물로 만드는 어떤 폭력의 경험.....

캐모마일 2020-02-03 00:29   좋아요 0 | URL
혹시 고 김용 작가님의 협객행 아니었을까요. 아마 엄마가 개잡종이라면서 학대를 했던 거 같네요.

다락방 2020-02-03 08:01   좋아요 0 | URL
아이고 세상에.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까.
듣는 것만으로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폭력의 경험은 그것을 경험이라고 말하기 미안할 정도로 강하게 남는 것 같아요. 그것을 경험이라 말해도 되는걸까 싶을만큼요. 경험이란 단어를 거기에 써도 되는걸까.

[배움의 발견]에서 타라 웨스트오버는 집에 가면 그 무서운 오빠가 있는데도 자꾸 집에 가요. 그럴 때마다 미치겠더라고요. 가족들에게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또 잘못된 걸 바로 잡고 싶고..그 모든 마음이 뭔지 알겠으면서도 계속 집에 가고 그리고 또 폭력에 노출되고, 아무도 타라의 폭력피해를 인정해주지 않고 오히려 타라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고.. 타라는 나중에 공황발작을 일으키고 공부도 손에서 놓게 되는데, 지금은 이렇게 책을 써서 어느정도 밖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 일이 없던 것처럼 살 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걸 읽고 있는게 너무 고통이었어요.

어떡해야 어릴 적에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우리가 구해낼 수 있을까요? 어떻게 거기에서 보호할 수 잇을까요? 너무 무력합니다. ㅠㅠ

단발머리 2020-02-03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자꾸 가정으로 돌아가는, 돌아가려는 타라의 모습이 제일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것만이 그녀가 아는 익숙하고도 유일한 세상이니까요.
어쩌면 가족이, 가정이 가장 질긴 악연이 될 수도 있다는 걸 확인하는 건, 슬픈 일이죠.
괴로웠다는 다락방님 감상에 동감합니다. 저도 그랬어요 ㅠㅠ

다락방 2020-02-03 08:02   좋아요 0 | URL
저는 으앗, 역시 공부 좋아 공부 짜릿해!! 이걸 느끼고 싶어서 이 책을 읽은건데, 읽다보니 그 느낌 보다는 답답하고 두렵고 안타깝고 괴로운 마음이 몇 배 더 컸어요. 다 읽고나서도 그랬어요. 너무 괴로웠어요, 단발머리님 ㅠㅠ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2월 도서는 '낸시 폴브레'의 《보이지 않는 가슴》입니다. 자, 부지런히 함께 갑시다.

2월 짧아요!!



**1월도서 완독하고 글도 써주신 분들,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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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0-01-31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월 하루 남았어요! (5장 낑낑... 담달에 일찍 시작해야지 결심) 참 2월 윤달이네요?! 29일까지 있어요! ^^

다락방 2020-01-31 11:11   좋아요 0 | URL
네, 1월 아직 다 안갔고 또 넘겨서 읽으셔도 됩니다. ㅎㅎ
2월 도서는 1월 도서보다 좀 쉽지 않을까, 라고 아직 읽기도 전에 생각해봅니다만, 읽어봐야 알 수 있겠지요.
힘내세요, 유부만두님. 뽜샤!

수연 2020-01-31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내일부터 바지런히 읽어보려고 해요 다락방님! 1월 도서 넘 어려웠는데 다시 꼭 읽어보고싶어요.

다락방 2020-01-31 11:11   좋아요 0 | URL
1월 도서 저도 너무 어려웠어요. 그래도 3,4장은 아주 씐나게 읽었어요. 후훗.
2월 도서는 덜어렵지 않을까 기대하는데 어떨지 모르겠어요.
자, 힘내서 2월도 같이 읽읍시다!

단발머리 2020-01-31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월 읽기 준비하고 있어요. 먼저 읽으신 분이 어렵다, 안 어렵다 알려주심 어때요? ㅎㅎ
전 1월책 일찍 시작했다가 완전 좌절.... 나만 어려운 거야 ㅠㅠ 이랬거든요.

비연 2020-02-01 12:41   좋아요 0 | URL
전 1월 책 이제 거의 막바지.. 2월 첫 주말은 1월 책에 쏟고 (흑흑) 담주부터 2월책 미리 시작...
좀 기다렸다 읽을까? 라는 마음도 생기네요 ㅎㅎㅎㅎ 누가 알려주면 각오라도 ~

다락방 2020-02-02 15:18   좋아요 0 | URL
2월이 29일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중순 지나서 시작해야지 했다가 그보다는 좀 빨리 시작해야겟다 싶고요. 누가 먼저 시작하려나요. 겟타님이 하실까... 비연님이실까... ㅋㅋㅋㅋㅋ 아마도 위에 수연님 댓글 보면 수연님이 가장 먼저 시작하실지도 모르겠어요. 후훗. 화이팅!
 

<밀레니얼의 시사친구, 듣똑라> 라는 오디오파일 프로그램이 있다. 나는 팟캐스트나 오디오파일을 거의 듣지 않는 편인데, 요즘은 혼밥을 자주 하는 편이고 그 때 함께하기에는 독서나 영화보기 보다도 이렇게 '듣는' 프로그램이 딱이다. 영화는 화면(자막)을 봐야 하니까. 듣똑라 라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그 프로그램 명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얼마전 트윗을 통해 이 프로그램에 이수정 교수님이 출연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래서 오오, 하고 이수정 교수님 편을 듣게 되었다.





이수정 교수님이라면, 뭐랄까, 딱히 페미니스트 라고 본인을 정체화하지도 않으시고, <이수정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에서 이다혜 기자랑 얘기하는 걸 들어도 '나는 무조건 여자편이다' 라는 식의 뉘앙스로도 전혀 얘기하지 않는 분이시지만, 그 분이 애초에 범죄심리학을 공부하고 또 지금도 계속 열심히 일하고 있는 이유는 피해를 당하는 약자의 편을 들기 위해서라고 누누이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런 피해는 여자나 아동들이 많이 당하고. 요즘은 아주 열심히 채팅앱의 미성년자 성폭행 피해를 알리고 막기 위해 힘을 쓰고 계신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하는 사람을 보는 것도 힘이 되지만, 한 여성이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누구보다 앞서 나가고 또 정상의 자리에 있는 걸 보는 건, 그것대로 아주 큰 의미가 있다. 얼마전에 '한나 아렌트' 전기를 읽고 생각했던 것처럼, 여성이 이 사회에서 당당하게 정상에 있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다른 여성들에게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욕망과 실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거니까. 그런 점에서 요즘 이수정 교수님은 내가 매우 응원하는 분이고 또 감사히 생각하는 분이다. 작년에는 BBC 의<올해의 여성 100인>에 선정되기도 하셨는데, 아, 얼마나 롤모델로 적합한가.



그저 정상에 계신 그 존재만으로도 감사하고 그래서 듣똑라를 듣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마침 공부 얘기를 하셨다. 국내에서 박사학위까지 따고 정부의 일을 하게 되었지만 데이터분석으로 어떻게 강력범죄위험성을 알 수 있을까 싶어 재소자 면담을 신청한다. 그러나 너무 위험한 범죄자라 만나게 해주지를 않았고, 이수정 교수님은 이렇게 데이터 분석을 하는 것도 의미있지만 더 잘 알려면 재소자를 만나보는 게 맞는거다 싶어 해외파견을 신청한다. 여전히 사형제도가 존재하고 엄벌주의인 텍사스 헌츠빌로 가 그곳 대학에서 오전엔 대학원생들과 재소자들을 만나 심리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오후에는 대한민국에는 없는 형사정책 학부수업을 들었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듣는데 너무 짜릿한거다. 누군가 정상에 있다면 정말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달까. 게다가 여자라면 더하다. 남자들이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고 뒤를 봐주고 하는 것에서 멀어져있고, '여자라서'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는 순간들이 수시로 닥쳐올텐데 정상에 올랐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인걸까.



듣똑라는 기자 세 명이 진행하는 프로니만큼, 기자라면 누구나 이수정 교수님께 전화해 의견을 듣지 않은 적이 없을 거라 했는데, 바쁜데도 어떻게 그렇게 기자들에게 대답을 잘해주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수정 교수님은 언젠가의 여름에 '강간을 피하는 방법'에 대해 기자가 묻는 걸 듣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해주기로 했다 하셨다. 강간, 성폭행을 피하는 방법이 어디있냐고, 그런 멍청한 질문이 어디있냐고. 그걸 자신이 말해주지 않으면 모를 것 같아서 계속 말하기로 했다는 거다. 최근에는 민주당에서 영입하려고 했다는데 5분 고민해보고 거절했다고 한다. 비비씨에서 자신을 선정한 건 자신의 지위때문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열심히 떠들고 있었기 때문일거라며, 그동안 하는 일이 잘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일거라는 거다. 그러니 자신은 앞으로도 솔잎을 먹는 송충이처럼 하는 일을 계속 열심히 할 거라고.



인터뷰가 다 참 좋았는데 특히나 외국가서 공부하는 얘기를 듣는 게 너무 좋았다. 짧게 나오긴 했지만, 국내에서도 이미 박사 학위를 땄으면서도 부족함을 느끼고 더 공부하는 부분이 너무 좋은 거다. 게다가 외국에서 공부하는 건 한국에서 모국어로 공부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을텐데. 내가 부족하고 그러니 더 해야한다, 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많은 걸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사고방식인 것 같다.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니까. 내게 필요한 게 뭔지도 파악하지 못하니까. 그저 자신이 아는 게 최선이고 최고라고, 전부라고, 옳다고 생각하니까. 으으, 역시 공부하는 여성 그리고 자신이 맡은 바 일을 꾸준히, 한결같이 열심히 해 정상에 오른 여성의 이야기를 듣는 건 정말 큰 힘이 된다.



















이수정 교수님 인터뷰 때문에 '공부'에 대해 또다시 생각하게 됐고, 그래서 사두고 미뤄뒀던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을 읽기 시작했다. 아직 156쪽 까지밖에 못읽었고, 이 책의 주인공이자 작가인 '타라'는 열한살 무렵이다.


타라의 아버지는 절실한 모르몬교 신자이며 학교와 병원을 불신한다. 그곳은 사탄이 잠재해 있는 곳..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도 않고 병원에 보내지도 않으면서 아프면 아이들의 엄마가 약초로 치료해주는 방법으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다. 폐철 처리장에서 폐철을 회수하고 그걸 팔아 돈을 버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들로 하여금 그 일을 돕도록 한다. 아직 어린 타라도 그렇게 폐철처리장에 가 일을 하는데, 하아, 그곳에서 다른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크게 다친다. 폐철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던지기도 하고 떨어뜨리기도 하면서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이 빈번히 일어나는 거다.


어린 '타라'는 그곳에서 크게 다치고 다시는 폐철 처리장에 가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제대로된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는 타라는, 자신이 그곳에 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언니처럼 다른 곳에서 돈을 버는 것' 이라 생각하고 마을로 가 베이비시터 자리를 구하고, 마카다미아 포장하는 일을 구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베이비시터 임금을 받지 않을테니 내게도 피아노를 가르쳐달라'고 요구하며 피아노를 배우게 된다. 처음 피아노 독주를 들었을 때의 짜릿함과 강렬함, 그래서 배우고자 하는 욕망이 어린 타라에게 저절로 생겼던 거다. 이건 오빠가 들려준 교회 성가 합창 레코드에서도 느꼈던 경이로움. 그렇게 타라는 자신의 욕망으로 피아노를, 댄스를 배우게 되는데 댄스복장은 아버지가 '창녀이며 사탄'같다고 한 복장이라 중간에 그만둘 수밖에 없게 되고, 이번에는 노래를 배우게 된다.



내가 읽은 부분에서는 아직 타라가 학교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다. 학교를 다녀본 적도 없는 타라가 여전히 아버지의 생각이 자신을 많이 휘두르고 있어 발레하는 또래 아이들을 보며 '어린 창녀들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러나 새로움과 놀라움에 이끌려 배우고자 하는 건 경이롭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타라의 아버지는 고집이 세고 본인만의 신념에 갇혀 있다. 운전하기 위험하다는 할머니의 조언에도 이동을 감행해 큰 사고를 한 번 내고서도, 다음에 또다시 감행해 또 큰 사고를 낸다. 할머니는 그런 타라의 아버지에게 실수로부터 배우지 못한다고 하는데도 타라 아버지의 고집은 꺽이지 않는다. 1999년 12월 31일에 종말이 올거라 식량과 총을 잔뜩 준비해두지만, 그러나 그 날 종말은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라의 아버지는 '내가 잘못된걸까'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타라의 오빠는 아버지를 도와 일을 하는 과정에서 크게 화상을 입는다. 아버지에게는 막강한 권력이 있어 아직 어린 아이들은 아버지가 허락한 세상에서만 살아야 한다. 학교도 병원도 금지되고 어린 나이에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올 수가 없다. 그저 이것이 세상이려니, 하고 살아가야 하는데, 그렇게 다쳐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걸 보는 게 너무 괴로웠다. 자기 신념, 자기 고집으로 아버지는 어린 아이들을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으니까. 그 어린 자녀들에게 폐철 처리장에서 일하도록 시키다니, 아동학대가 아닌가.



타라 웨스트오버는 열여섯살까지 학교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면서, 병원에 가본 적이 없으면서 그러나 현재는 케임브리지 박사가 되었다. 이 과정이 어떨지 너무 궁금해 빨리 읽고 싶다. 열살, 열한살의 타라가 성가의 합창 레코드를 반복해 듣고자 했던 그 욕망,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던 욕망, 댄스를, 노래를 배우며 열심히 했던 그 욕망이 다른 학문에 어떻게 적용되어 실현됐는지 너무 궁금하다.


타라 위로 오빠인 타일러도 어느 순간 아버지에 반대하며 집을 떠났다. 대학에 가고 싶다며. 타라 역시도 아버지에게 무서움을 무릅쓰고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을 한다. 그러니까 이런 순간들. 어린 자식들이 자라서 결국은 옳지 못한, 강압적인 아버지에게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다' 라고 얘기할 수 있는 순간들은 얼마나 짜릿한가. 어린아이들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만큼 약하지만, 자라서 혹여라도 겪었던 부당한 일들에 목소리를 낼 수 있을만큼 강해지는 순간이 온다. 결국 아이들은 부모보다 힘이 세지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타라가 어떻게 아버지에게 더 목소리를 높일지, 어떻게 학교로 가게 될지 너무 궁금하다. 여기까지 온것만도 너무 대단한데, 그 다음은 또 어떻게 진행될까.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래서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는 게 나는 너무 좋다.



내가 타라였다면 나는 어땠을까.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으면서 나는 타라처럼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을까. '폐철처리장에 가기 싫으니 다른 방법을 찾자'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저 아버지가 보여주는 세계가 전부인양 살면서 그렇게 늙어가진 않았을까. 사람이 자라는 데 환경은 분명 큰 영향을 미치지만, 그러나 자신의 본성 역시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아, 정말이지,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보는 건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좋다.




아 맞다. 그래서 책을 샀다...(응?)

배움은 소중하니까..




프랑스어 첫걸음 펴본 적도 없는데 베트남어 첫걸음 산 나를 어찌해야 할까... 정말이지 답이 없다.





「난 완전히 머리가 텅 빈 여자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단다.」 나와 오드리 언니에게 그 이야기를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자신감이 깃들었다. 「남자들은 곤경에 빠진 바보 같은 여자들을 자기가 구하고 있다고 생각하길 좋아한단다. 엄마는 그냥 비켜서서 그 사람이 영웅 역할을 하도록 해주기만 하면 됐지!」-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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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1-30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타라였다면,의 다락방님의 질문을 저도 수차례 했던 것 같아요. <배움의 발견> 읽으면서요. 읽으면서 타라의 아버지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느꼈거든요. 우리 모두, 현대인이라면 거의 대부분 일정 정도의 강박이 있잖아요. 근데 타라의 아버지 정도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이 개입해야 하는지 전, 그게 참 안타깝고 궁금하더라구요. 타라의 어머니가 다 받아들이니까요. 그걸 자신의 삶이라고, 인생이라고 받아들이며 살고 있으니까 그 아이들이 스스로 탈출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건지 그 지점이 참 그랬어요.
다락방님 페이퍼 기다리고 있을께요, 기대만발, 개봉박두!

다락방 2020-01-30 09:45   좋아요 2 | URL
단발머리님, 저도 아이들이 학대 당하는 상황에서 결국 아이들 스스로의 힘으로 탈출할 수밖에 없는 건 너무 끔찍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잖아요. 타라의 할머니도 타라를 데리고 도망치려고 시도하지만 그러나 타라의 아버지는 너무 셌죠. 타라의 어머니도 나름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편이 되어주려고 하지만 타라의 어머니 역시 남편의 피해자이며 동시에 아이들에게 가해자였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스스로 아버지에게 맞서며 학교가고 싶다, 고 말할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결국은 해야할 말이었지만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그런 상황에 아이들을 놓아두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싫어요.

게다가 엄마도 처음의 교통사고로 뇌를 다치잖아요. 그것도 빨리 병원 갔으면 어디가 잘못됐는지 알고 고칠 수 있었을텐데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게 너무 짜증났어요. 아 정말 너무 속상해요. 결국 가부장제에서 아버지에게 너무 힘이 실린 게 진짜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지 뭡니까. ㅠㅠ

2020-01-30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30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n22598 2020-01-31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이 언급하셨듯이..우리 모두에게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타라 아버지처럼 자기만의 신념과 강박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정도의 차이는 인정할 수 있는데, 하지만 어느정도가 사회에서 용납할 것인지는 고민해야할 문제인것 같아요. 또 그리고 개입이라는 부분...타라 아버지의 행동은 의도성을 봤을때는 악의가 없어요...과연 이러한 행동과 신념을 무작정 비판하고 개입할 수 있을지....참 어려운 문제인것 같아요... 다양성이라는 컨테츠로 봤을때는 그 스페트럼이 넓은 미국에서는 사실 타라 아버지 같은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타라 스토리를 그 다양성의 측면으로 소비하고 있는 것 같고요...


다락방 2020-01-31 07:38   좋아요 0 | URL
개입이란 게 쉬운게 아니니까요. 내 선의라고 해도 상대에게 선의로 다가갈지도 알 수 없는 부분이고요. 만약 제 주변에 타라가 있다면 제가 타라 아버지에게 이런식은 안된다 라면서 그 사람에 개입할 수 있을지... 아마 못할것 같더라고요. 그렇지만 분명 아이들에게 폭력적인 환경이 주어지잖아요. 저는 타라 아버지가 어떻게 살든 그건 상관없는데, 그 삶이 강제적으로 주어진 아이들 때문에 미치겠더라고요. 지금 읽는 부분에서는 타라가 오빠로부터 폭력을 당해요. 이런 환경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와야 하는 게 옳은 게 아닌가. 폭력은 어떤 경우든 ‘안되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내가 그 가족으로부터 그 아이를 데리고 나올 수 있을까... 너무 어려운 문제더라고요. 설사 데리고 나온다면, 그 다음은? 역시 쉽지 않은 문제고요.

지금은 타라가 막 수학공부를 시작했어요. 얼른 더 성장한 후의 이야기를 읽고 싶어요. 아이들이 고통 당하는 얘기는 너무 괴로워요 ㅠㅠ

han22598 2020-02-01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비슷하게 읽고 계시네요 ㅎㅎ 다 읽고 나서 저도........리뷰 한번써볼까해요..글쓰기는...두렵고. 못하고...영 아닌데 말이죠. 그런데 할 이야기가 많네요 ㅎㅎ

다락방 2020-02-02 15:19   좋아요 0 | URL
앗 이 댓글 읽으니 오늘 오후는 이 책 읽기에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다 읽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될지 모르겠네요. 다 읽고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