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열여섯 살 생일을 맞은 여름, 어머니는 취약 계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헤드 스타트류의 프로그램에서 교사 보조로 일하는 자리를 알아봐 주셨다. 학생 가운데 어니 로드리게스라는 여섯 살짜리 아이한테서 지독한 냄새가 났는데 심한 악취 때문에 아이들의 놀림을 받기까지 했다. 겉으로는 개끗하게 보였지만 자세히 검사하자 냄새의 원천이 드러났다. 양쪽 귀에서 진득하고 노리끼리한 것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어 한마디 못하고 차도 없고 복지 혜택을 받고 있지도 않고 의료 보험도 없는 아이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었다. 나는 우리 가족 주치의인 프랭크 마틴에게 전화를 걸어 공짜로 어니를 진찰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닥터 마틴은 역시 의사였던 삼촌 톰과 절친한 친구로서(1970년대 TV드라마에 나온) 닥터 마르크스 웰비처럼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정말 좋은 가족 주치의였다. 그는 어니를 봐 주었고 염증을 없애는 항생제도 무료로 넉넉히 처방해 주었다. 그 다음 그는 어니를 삼촌과 같은 병원에서 일하던 이비인후과 전문의에게 데려가라고 했다. 그 전문의는 어니의 양쪽 고막이 파열되어 속귀마저 감염될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염증은 재발할 위험이 있는데 염증이 재발하면 속귀의 뼈를 점점 갉아먹을 거라고 했다. 결국 청각을 완전히 상실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유일한 치료는 피부를 갖다 붙이는 수술을 해서 고막을 재건하는 것이다. 비용은 3천 달러가 들 것이라고 했다.

그 전문의는 어니에게 수술을 해 줄 수 없다고 하면서 조금도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삼촌 톰은 몇 주 걸려 해결책을 마련해 왔다. 그는 시립 병원에 순회차 와 있는 실력 있고 맘 좋은 의사를 알고 있었다. 나는 그가 응급실에 있을 때를 골라 어니를 거기로 데려갔고 그는 파열된 고막을 수술해 주고 필요한 만큼 병원에 머물 수 있게 해 주었다. 양쪽 귀를 고쳐 달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요구였다. 수술 뒤 한쪽 귀에 밴드를 붙인 어니는 꼭 한쪽 귀가 축 늘어진 미키 마우스 같았다. (p.184)





어제는 엄마랑 <낭만닥터 김사부>를 보았다. 나는 존재도 모르던 드라마였는데 조카가 요즘 이거에 푹 빠졌단다. 게다가 이건 시즌2란다. 1은 언제한겨... 아무튼 어제 채널을 돌리다가 김사부가 한다는 걸 알게 되어 '조금 보다가 들어가서 책 읽어야지' 했는데, 13~14부 연속 방송에 텔레비젼 앞에 앉았던 시간이 제법 길었다. 이게 드라마의 나쁜점이야. 한 번 앉아서 보면 계속 앉아있게 한다. 흐미..


내가 본 회차에서는 공장에서 일을 하다 한쪽 다리가 잘린 채로 응급실에 실려온 남자가 나왔다. 잘린 다리를 가져왔지만, 환자는 수술을 거부한다. 수술을 한 뒤에도 예전처럼 다리를 사용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괴사가 올 수도 있고, 또 설사 수술을 한다고 해도 그 뒤에 치료를 계속 해야할텐데, 자기에겐 그 비용이 없다는 거였다. 한쪽 다리가 없는 채로 살아가겠다고. 이에 김사부는 그에게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아들 앞에서 살아가는 의지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냐며 호통을 치고, 이에 환자와 환자의 아내, 환자의 아들까지 모두 울고, 어쨌든 그렇게 수술을 하게 된다.


이 환자가 다쳤던 공장에서는 뒤늦게야 직원이 도착한다. 임원으로 보이는 그는 환자의 아내에게 산재처리를 하지말자며, 공상처리를 권유한다. 마침 이 장면을 듣고 보게된 김사부는 사람이 다쳤는데 이제야 겨우 와보고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꼬득여 공상치료를 하게 하냐, 라며 나무란다. 그리고는 아내에게 '이사람 말 다 개소리니까 듣지 말고 반드시 산재처리를 하라'고 이른다. 산재처리하면 회사가 보험율이 높아져서 안해주려고 하는데 만에 하나라도 앞으로 혹여라도 부작용이 생긴다거나 치료를 받게될 때 환자에게는 산재처리된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거였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 장기적인 치료비는 무시하지 못할 금액일 것이다. 나였거나 혹은 내가 보호자였다면 망설임의 여지없이 수술을 선택했겠지만, 그러나 앞으로 살아갈걸 생각한다면 수술을 결정하지 않는 환자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나는 그보다 훨씬 간단한 수술임에도 수술 후에 계속 병원을 가줘야 했으니까. 아마 다리를 자르고 수술을 한 환자는 앞으로도 병원에 방문할 일이 훨씬 더 많아지겠지. 병원비도 계속 대야할 것이고 또 병원에 가는 만큼 일을 하지 못하니 벌어들이는 것도 적어질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환자의 마음은 이해할 수밖에 없다. 다리 없이 살고 싶은 마음은 그 환자라고 있겠는가. 그러나 그 편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병원은 무료봉사하는 곳이 아니다. 그러니 '낸시 폴브레'가 위에 언급한 것처럼, 고막이 아픈 아이를 치료해주지 않겠다고 한 의사에 대해서 글쎄, 무작정 욕할 수 있을까. 그가 선의를 베풀어주길 바라지만, 우리는 과연 타인에게 선의를 얼마만큼이나 기대할 수 있을까.

'영어 한마디 못하고 차도 없고 복지 헤택을 받고 있지도 않고 의료 보험도 없는' 사람에게 아이의 다친 귀는 차라리 그 원인을 모르고 싶은 것이었을 거다. 알면 고쳐야 하고 고치는 데는 비용이 들고, 그러나 돈은 없으니까. 낸시 폴브레는 다행히 한쪽 귀라도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주었지만, 이런 일은 그리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병원에서는 같은 시간에 돈을 내는 환자를 치료해주고자 하겠지. 우리는 순간순간 고민과 갈등속에 살고 있다. 낸시 폴브레도, 그리고 아이 어머니도, 그리고 책을 읽는 독자인 나도, '누군가가 이 어린아이를 좀 고쳐줬으면' 하지만, 내 마음대로 세상일이 되는 것이던가.




『비즈니스 위크』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는 경제학자 게리 베커는 복지에 대해 "매달 정부에서 돈이 나온다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아는 것은 아이에게 나쁘다. 아이의 자기 존중감이나 자긍심을 파괴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유족 보험금이나 생명 보험금으로 사는 가정에서 자라는 것도 아이에게 나쁜가? 아니면 조부모가 개설한 신탁금 계좌에서 매달 지급되는 돈으로 사는 것도 아이에게 나쁜가? 대중 잡지나 TV쇼는 다달이 지급되는 돈을 부끄러워하는 젊은 중산층 유족이나 부자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가?  (p.172)



어떤 경제학자들은 한부모에게 지급되는 복지수당에 대해 그것이 결코 좋지 않은 제도라고 말한다. 위의 인용문처럼 아이들의 자존감을 파괴한다는 거다. 아이들에게 일해서 돈을 버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러나 한부모 가정에서 혼자 사는 엄마가 일을 해서 돈을 벌어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내고 살아가는 것은 어렵다. 결코 쉽지가 않다. 복지수당은 나라에서 주는 것이고, 그것은 세금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어떤 경제학자들은 혹은 어떤 부자들은 그렇게 부자들의 돈을 가져가서 가난한 사람과 나눠쓰는 게 '그들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고 하는 거다.

학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대체적으로 비슷한 교육을 받게 하고자 가난한 학교가 요구를 하면 부자 학교는 왜 우리가 그래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그게 과연 누구를 위해 좋은것인지.



그들은 부자 학교에서 가난한 학교로 재정을 재분배하겠다는, 일명 로빈후드 플랜을 시행하겠다고 공표한 텍사스의 학교 재정 체계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팸플릿은 기금을 내면 세금으로 학교 재원을 충당하는 것과 달리 알라모하이츠 학교에만 전적으로 돈이 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일을 오해하길 원치 않습니다." 하고 기금의 회장은 설명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빼앗긴 것을 충당하려는 것뿐입니다." 이에 대해 어떤 해석과 판단을 내려야 할지는, 누가 '우리인지'와 무엇이 '우리'가 가졌던 것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는 것 같다. 어쨌거나 나는 지갑을 열지 않았다. (p.194-195)



낸시 폴브레는 자신이 다녔던 모교로부터 팸플릿을 받는다. 오로지 자기학교만을 위한 기금을 모집하겠다는 거였다. 그것이 '우리'를 위한 것이니까. 낸시 폴브레는 이에 지갑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여기서 낸시 폴브레가 한 말이 정말 중요하다고 본다.


누가 '우리인지'와 무엇이 '우리'가 가졌던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나는 이것이 '결과적으로 누구를 위한'것인가에 닿는 것이라 본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단순히 지금의 현상을 보기보다는, 자, 그렇다면 내가 내리는 이 결정은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그 결과는 누구에게 좋을 것인가, 하는 것. 그건 낸시 폴브레가 지적한대로 내가 누구를 '우리'라고 생각하는지에 달렸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속해있다고 생각하는 '우리'가 가진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낸시 폴브레에게 자신의 학교만을 위한 기금을 모집하겠다는 팸플릿을 보낸 학교가 어떤 나쁜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우리' 학교 좋은 학교 되게 도와줘, 였으니까. 그러나 낸시 폴브레가 그 팸플릿을 받고 생각한 자신은 그 '우리'에 속하지 않았다. 낸시 폴브레가 생각하는 '우리'는 다른 우리였다. 그렇다면 낸시 폴브레는 팸플릿의 말에 따를 수가 없다.

어쩌면 많은 학부모들 그리고 많은 졸업생들이 '내가 다닌 학교를 위한 일'이라며 '정말 잘하는 거지', '옳은 선택이야' 라고 기금을 기꺼이 낼 수도 있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도 '악하다'고 뭐라고 할순 없을 것이고. 그들이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그것이 선함이라고, 그것이 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하기에 내린 결정이니까.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다들 '악한 결정을 해야지' 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자신의 기준에서 더 나은 방향, 더 옳은 결정, 더 선한 것을 위한 결정을 내리지. 그러나 모두에게 선한 게 과연 있기나 한가. 또한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지금의 내가 내리는 선한 결정이, 아니, 내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결정이, 정말 선한 결과를 가져올지는 더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결국 이것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내가 어떤 것에 대해 결정을 내리고자 한다면, '자, 나의 이 결정은 결국 어떤 결과를 불러올 것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는 것.





일반적으로 부유층 가정은 자기 아이가 주요한 수헤자이기만 하면 좋은 학교를 세우는 데 세금을 많이 내고 싶어 한다. 학교 제도에 인종과 계급이 통합되지 못하게 만드는 법적 장애를 줄여 나가면서 대신 경제적 장애를 설치하려는 노력이 부활하고 있다. 바우처(무료 수강권)를 통해 기존의 공립학교를 사립화하려는 열망과 더불어 사립학교로 들어가는 자원이 점차 증가하고 있음은 '남의 아이'에게는 돈 쓰기를 회피하려는 노력을 반영한다. 가난 속에서 자란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은 특히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이 문제는 앞장에서 논의된 내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p.195-196)




좋은 학교를 만들었기 때문에 자신이 낸 기금이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며 좋아할 수 있다. 역시 이 학교에 투자하기를 잘했다고, 이렇게나 보람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낸시 폴브레가 궁극적으로 원한 것은 하나의 좋은 학교를 더 좋은 학교로 만드는 게 아니었다. 가난한 아이들, 교육의 질이 낮은 곳에 있는 아이들에게 교육의 질을 높여주는 것이 낸시 폴브레가 원하는 것이었다. 좋은 학교, 부자학교를 더 부자학교로 만들어 계급을 발생시키는 게 아니라, 교육의 질이 낮은 곳의 아이들에게 더 재정적으로 도움을 줘서 결국은 이동네의 교육과 저 동네의 교육의 수준을 비슷하게 맞추는 일. 낸시 폴브레가 옳다고 생각하는 건 그것이었고, 그건 부자학교에 기금을 내지 않게끔 했다. 누구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최선의 결과를 바라며 선택을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내가 내리는 결정, 내가 옳다고 생각해 내린 결정이 모두에게 선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끝까지 가져가야 할 갈등이 아닐까.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말을 가져오지도 않고 모두에게 선하지도 않다.







사랑의 포로는 사회 정책이라는 쇠창살 뒤에도 있다. 1990년대에 엄청난 에너지를 들인 복지 개혁을 생각해 보자. 어머니들은 임금 노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무책임하다는 공격을 받았다(이에 대해서는 5장에서 자세히 얘기할 것이다). 이 논쟁에서 전반적으로 간과되었던 부분은 빈곤속에서 살고 있는 어머니들 대부분은 아버지들에게 아이 양육권을 넘겨주거나 딴 집으로 입양시키거나 고아원에 데려다 놓기만 하면 바로 훨씬 좋은 경제 여건에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빈곤 여성에게 돌아가는 공적 부조의 아돌 일인당 비용은 고아원에서 쓰는 아동 일인당 비용의 10분의 1 수준이다. 그러나 가난한 엄마들은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과 같이 있고 싶기 때문에 아이를 버리겠다는 위협을 좀처럼 하지 않는 것이다.- P77

사회적 관심이라는 개념은 서방 세계의 연대라는 오래된 개념과 흡사하다. 이것은 가치 있는 대의명분에 사람들이 다 함께 모일 수 있는 좋은 것을 말한다. 나는 좀 우습기는 하지만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연대가 표현된 방식이 너무 좋다. 거대하고 못생기고 구원받을 수 없이 못된 벌레가 외게에서 침입하겠다고 위협하자 파국으로 가던 결혼 관계가 회복되고 인종 갈등이 극복되고 적에 대항하여 무용수, 주정꾼, 모범생, 전사들이 성공적으로 단결한다는 이야기다.- P123

직접적 도움이 필요한 노인을 돌볼 책임을 어떻게 할당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형제들은 종종 어머니나 아버지를 위해 누가 무엇을 할지를 두고 싸우곤 한다. 여기서도 착한 자녀의 딜레마가 있다. 자발적으로 먼저 도움을 제공하는 사람은 영원히 그 일에 묶여 버릴지 모른다.- P72

그러나 미덕은 항상 보상을 수반하지는 않는다.- P73

19세기 프러시아 법은 얼마나 오래 모유를 수유할 것인지 결정할 권리가 남성에게 있다고 정해 두기까지 했다.-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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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2-24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침부터 부지런히(?) 읽고 있어요. 의료보험과 복지에 대한 이야기는 다락방님 글 읽으면서 생각하니 더 가깝게 느껴지네요.
선한 의도와 선하지 않은 결말,이라는 제목도 아주 근사하고 좋아요.
좋은 글, 좋은 사유 잘 읽고 갑니다^^

다락방 2020-02-24 14:06   좋아요 0 | URL
저 너무 다른책 읽고 싶은데 ㅋㅋ 2월이 얼마 안남아서 안돼, 이걸 읽어라! 하고 오늘도 들고 나왔습니다. 낸시 폴브레는 아주 따뜻한 마음의 경제학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우리가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하면서 이렇게 경제학자들도 만나게 되잖아요? 경제의 원리를 이해하고 또 전망하는 걸로 그치는 게 아니라, 이 여성 경제학자들은 거기에 따뜻한 마음까지 가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을 두루 살피는 눈이랄까요.
일전에 서프러제트 읽을 때 여성의 참정권을 원한 이유중의 하나가, 남자들이 보지 못하는 곳까지 여자들은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구절을 읽은 기억이 나요. 가난한 아이들, 교육받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해서까지 신경을 쓰고 그것에 대한 제도를 만들고자 하니 여자들의 참정권이 꼭 필요했다고요. 낸시 폴브레의 이 책을 읽으면서도 더 깊은 곳까지 더 꼼꼼하게 살피는 경제학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뭔가 명징하게 확 잡히는 구절들만 있는 건 아니라서, 역시나 두 번 세 번 읽는 문장들도 존재하지만,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에요.


우리는 모두 자신이 내리는 결정이 더 옳은 결정이라고, 더 선한 결정이라고 생각하잖아요. 나중에 가서야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하면서 나쁜 결말을 맞닥뜨리고 후회하는 일들도 많고요. 의도가 선하다고 결과가 선한 건 아니라는 생각을 요즘엔 참 많이 해요.
 

내가 잘 못해서, 잘 몰라서 끈질기게 시도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아동문학과 시 이다. 봐도 봐도 잘 모르겠어서 '그래도 언젠가는 알게되겠지' 싶어 계속 시도하는데, 역시 그래도 잘 모르겠다. 얼마전에도 신간인 시집을 호기롭게 샀다가 바로 중고로 팔아버렸다.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어. 아동문학도 그렇다. 좋다는 그림책, 동화책을 읽어도 내가 너무 어른의 눈으로 봐서인지 제대로 감동을 할 수 없는 거다. 나는 항상 예술이란 제대로 감상하는 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면에서 볼 때 아동문학은 나랑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분야였어. 어쩌면 어릴적에 엄마가 내게 책을 읽어주지 않아서 이런건지도 몰라, 생각했지만, 엄마는 읽어줬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기억이 안나? 게다가 나는 어릴 때부터 어른들 책을 주로 읽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중학교때 읽었단 말이다, 나는... 나란 여자... 나란 어른... 아무튼,


그래서 아동문학은 나랑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지만, 봐봤자 나는 이해도 못해, 하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말자, 라고 생각하고 있다. 시...는 내가 이제 포기한다. 잘가라, 사요나라. 굿바이- 그렇지만 아동문학은 포기하지 않겠어. 왜냐하면 나에게는 조카들이 있으니까.



지난주말에 조카보러 갔는데 조카랑 책 이야기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나: 이모 해리포터 읽기 시작했어.

조카: 정말?

나: 응. 아직은 마법사의 돌만 읽었어.

조카: 나는 지금 아즈카반의 죄수 읽어.

나: 아 그렇구나.

조카: 이모 해리포터 재밌어?

나: 음.. 아니. 이모는 막 그렇게 재밌지는 않아.

조카: 나는 해리포터가 제일 재밌는데!

나: 이모는 막 그렇게 재밌지는 않은데 그건 좋아. 머글이 뭔지 알게 된거.

조카: 이모 머글이 뭔지 알아?

나: 응. 마법사들이 마법을 부리지 못하는 인간을 부르는 말이잖아.

조카: 응, 맞아.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내가 해리포터 내 취향 아니라고 던져둘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해리포터 읽으면서 몇 번이나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읽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여.... 그래서 2부부터는 안읽을거야, 했지만, 조카랑 저런 대화까지 한 마당에 내가 또 안읽을 수 있나. 휴...




조카: 이모, 푸른사자 와니니 알지?

나: 응, 이모가 사준거잖아!

조카: 응 맞아. 나 그거 2권 샀어!


조카는 제방으로 달려가더니 푸른사자 와니니 2권을 가져온다.


나: 우와. 이모가 이거 타미 사주려고 했거든. 이모도 나온 거 알고 있었어.

조카: 응 우리반 친구가 이거 읽고 있는데 나도 너무 읽고 싶은거야! 그래서 엄마한테 사달라고 했어.

나: 아, 이모가 사줄라고 했는데! 다 읽었어?

조카: 아니, 아직 안읽었어.

나: 응. 다 읽었다고 하면 이모가 빌려가려고 했어. 다 읽고 빌려줘.

조카: 응. 빌려줄게.

나: 음... 이모 2주후에 또 올건데..그때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

조카: 응. 그때까지 다 읽을 수 있어. 그 때 빌려줄게.



세상 행복하고 아름다운 대화가 아닌가... 럽....... 사랑이 넘치는 이모와 조카다.




그래서! '김지은'의 《거짓말하는 어른》을 읽었다. 아동문학에 대해서 좀 더 잘 알고 싶어서. 내가 좀 더 잘 알아야 그림책이며 동화책이며 더 잘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잘 읽을 수 있게 된다면 더 많이 읽을 수 있을테고, 그러면 아이들과 좀 더 잘 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내심 이 책이 재미없으면 어쩌지, 라는 걱정도 했다. 아동문학에 대한 평론집이 과연 재미있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매우 재미있었다. 이건 시작부터 재미있어. <책머리에>부터 이미 명문들로 가득하다. 코끝이 찡해지는 구절들로 가득해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아동문학을 사랑하면서 아동문학을 많이 읽고, 어린이를 위해 생각할 줄 아는 어른이 있다는 게 너무 좋은 거다. 나는 못하고 있는 걸 어딘가의 누군가가 해주고 있다는 게 너무 감사했다. 이런 어른들이 있어서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 세상에 참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게 다행스러운거다.


평론집이니만큼 아주 많은 아동문학이 이 책에 등장하는데 읽으면서 몇 권이나 보관함과 장바구니에 쑤셔넣었다. 장바구니엔 당장 살 책들이 들어갔는데, 너무 많아서 몇 권 추려야 할 것 같다. 그중에 몇 권만 일단 사서 읽은 후에 조카 가져다줘야지. 조카야, 이거 읽어봐, 하고 주고 싶다. 그러면 우리는 또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될테니까.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내가 어린이의 시점으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에 대해서라면 사실 그렇지 않다..라고 밖에 답할 수가 없다. 사람이 책 한 권 읽었다고 막 또 달라지고 변하고 그러는 건 아니잖아? 그래도 김지은 평론가가 언급한 책을 읽노라면 그전보다 이해의 폭은 좀 더 넓어지고 깊어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긴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아이들만의 공간에서 생활해도 이미 상처받는다. 그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갈등이 일어나고 고민이 생기는가. 우리도 다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잘 알잖아. 다음날 눈뜬 후에 학교가기 싫다, 고 생각하면서 울었던 날들도 있고, 학교가 지옥 같았던 날도 있고, 싸운 친구랑 사이 어색해서 그냥 다 싫기도 하고, 공부하기도 싫고, 체육시간도 싫고, 어른들 잔소리도 싫고..그냥 아이들 삶 만으로도 이미 힘들고 상처받는 게 허다한데, 어른들이 거기에 짐을 더 얹어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세상 제일 싫은 게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다. 아, 이렇게까지 얘기하고 싶었던 건 아닌데...아무튼.


나는 아이들이 가급적 상처 받지 않으며 자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자라면서 상처를 받지 않을 순 없다. 상처주지 않으려는 사람들만 주변에 가득하다해도 알게 모르게 어떤식으로든 각자의 이유로 상처받기 마련이다. 어떤 상처는 작고 어떤 상처는 매우 클텐데, 나는 궁극적으로 아이들이 상처를 극복하는 법을 배우기를 바란다. 어른이 되어서도 필요한 건 내 상처를 가지고 안으로 숨어들기보다는, 그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게 최종목표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상처를 스스로 들여다보고 극복할 수 있는데 책이 정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른들이 제 때에 제대로된 말을 해주지 못해도 책은 그걸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혼자 책을 읽는 시간, 그 자체로도 아이에게 힘이 될 수 있고, 책 속 이야기나 등장인물들을 만나면서도 한뼘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궁극적으로 좋은 어른이 되고 싶고 내가 좋은 어른으로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딱히 많은 것 같질 않은 거다. 그렇지만 나 역시 책을 많이 읽고 아이가 읽은 책에 대해 같이 이야기나누는 건 내가 할 수 있지. 또는 아이가 어떤 일로 힘겨워할 때 어쩌면 적절한 책을 건네는 것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내리는 대부분의 결정은 내 조카들과 조카의 친구들을 기준으로 한다. 나는 이 아이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가, 나는 이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주고 싶은가.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좋은 어른이 될 수 없다. 물론 마음을 먹지 않는 것보다야 훨씬 낫겠지만. 김지은은 좋은 어른이 되는 방법을 알고 또 실제로 그런 어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동문학을 사랑하고 그래서 어떤 아동문학이 있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것일테고. 아동문학에 대한 이만큼의 애정으로 글을 쓸 수 있으려면 기본적으로 아동에 대한 애정도 있어야 가능하다고 본다.



어린이에게 어른의 짐을 지우는 사회는 온당치 않다. 누구라도 어린이의 건강한 유년을 착취하지 않아야 하며, 약자인 그들을 보호하는 것은 어른의 의무다. 동화 속 어린이들이 굳이 어른의 짐을 나눠서 지지 않아도 되게 하는 것은 작가의 목표이며 우리 공동체의 목표이기도 하다. (p.218)



일전에 김소영의 《말하기 독서법》읽으면서도 이런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었는데, 이 평론집을 읽으면서도 김지은 같은 평론가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동문학에 대한 정교하고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결과적으로는 아이들에게도 더 좋을테니까.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나쁜 사람일 리 없어, 라는 생각 때문에 나는 기분이 무척 좋다. 세상에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좀 더 많아져야 한다. 아이들이 있는 곳은 시끄럽고(당연하다!), 어지럽혀지고(역시 당연하다), 정신 사납다고(지나치게 당연하다!) 생각해서 아이들이 들어올 공간을 제한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그런 건 당연한 거니까 너희들도 우리 어른들과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자고 하는 어른들이 가득한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잘하는 어른들이 가득한 세상이라면 결국 그 아이들이 자라서 또 아이들을 사랑하는 어른들이 되지 않겠는가. 아무튼 그러니까 내 말은 김지은 평론가가 너무 좋고 곁들여서 얘기하자면 김소영 선생님도 좋고, 뭐 그렇다는 말이다.



엣헴.




오늘 서민교수님의 신간이 나왔다는 걸 알게 됐다.















워낙 책을 많이 내는 분이시라 다 따라 읽지는 못하고 있는데 이 서평집은 냉큼 읽어야겠다. 마태우스님의 서평집 신간이라니... 재밌을 것 같잖아?





내가 사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우리는 별다른 노력없이 이제 알 수 있게 되었다.

어제는 내가 당신의 안부를 궁금해했다면,

오늘은 당신이 나의 안부를 궁금해할 수밖에 없겠구나,

라고 어제 오늘의 뉴스를 보면서 생각한다.


안부가 궁금하다면, 물어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궁금해하지만 말고, 너는 괜찮으냐고, 잘 지내고 있느냐고, 물어야 한다.

물었다가 몇 달간 씹히는 한이 있더라도 ㅜㅜ 묻는 걸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그것이 용기.. 나는 용기있는 사람이야. 

역시 이럴 때 생각나는 건, 이 시대의 명저, 잘 지내나요...


















그럼 이만..







어린이의 감정이 흐르는 길에도 순한 것과 거친 것이 함께 있다. 웃음 뒤에는 비탄이 있고 호기심의 끝에서 공포를 직면하기도 한다. 어린이의 마음에 버젓이 있는 다양한 감정을 어른의 경험 위에서 바람직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고 바람직한 것 중심으로만 재편하려는 태도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린이들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골을 따라 문방구에서 산 잔혹한 이야기 시리즈를 찾아 읽는다. 동화가 공포감을 외면한 결과다.- P79

주목할 만한 장면 또하나는 「이놀 로꾸거」의 마지막이다. 모든 것을 거꾸로 하는 놀이에 집중하던 기찬이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따라서 거꾸로 걷자 그 놀이를 중단한다. 그리고 다시 바로 걷기 시작한다. 모두가 거꾸로 걷는다면 바로 걷는 게 거꾸로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이른바 우리가 ‘객관적 참‘이라고 믿는 각종 법칙이나 원칙에도 구성적인 측면이 있음을 알려준다. 애초부터 그것이 변함없는 참이었다기보다는 많은 사람이 따라함으로써 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다수가 했다는 이유로 그에 따르지 않은 소수가 거짓으로 몰려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일이 많다. 강자가 마련한 진리의 기준이 객관적인 참이 되어 약자에게 주입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찬이의 상상력이 값진 이유는 그가 기존 질서에 대해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기찬이는 상상력 천재일 뿐 아니라, 자유로운 어린이인 셈이다.- P153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 변화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책을 가진 자, 책을 만든 자를 처벌하여 잠잠하게 만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책은 그것이 비록 물리적인 모양을 갖췄으되 읽는 즉시 정신으로 다운로드된다. 책을 불태우고 책을 쓴 사람을 잡아들일 수는 있었으나 책을 읽은 사람들의 정신까지 가두지는 못하였다. 어떤 책을 처벌하면 처벌할수록 그 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높아졌다. 이른바 ‘금서의 원리‘다.- P204

어린이에게 어른의 짐을 지우는 사회는 온당치 않다. 누구라도 어린이의 건강한 유년을 착취하지 않아야 하며, 약자인 그들을 보호하는 것은 어른의 의무다. 동화 속 어린이들이 굳이 어른의 짐을 나눠서 지지 않아도 되게 하는 것은 작가의 목표이며 우리 공동체의 목표이기도 하다.-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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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2-21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해리포터를 읽으시기에, 읭? 했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전 20대에 만나던 사람이 해리포터 광이라 그 사람을 이해해 보려고 해리포터 1권 꾸역꾸역 읽고 결국 집어던진 아련한 추억이....... -_-;;; 뭐 암튼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위해 어떤 책을 읽어보려는 노력은 숭고하지 않습니까?! ㅎㅎㅎㅎ
<거짓말 하는 어른>은 꼭 한 번 읽어볼게요~ ㅎㅎ

다락방 2020-02-21 15:39   좋아요 1 | URL
잠자냥 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 해리포터 읽기 싫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별로 재미도 없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2권 회사 동료로부터 빌린지 한참인데 저쪽에 있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읽기 싫어요 ㅠㅠ 사랑 뭘까요?


네, 이 책은 좋아요. 이 책 덕분에 어린이책 몇 권 사게 생겼어요, 저는 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2-21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카가 조금 더 자라면 맞춰주기 좀 편할 것 같아요. 청소년문학은 그래도 읽을 만한 게 있더라구요. 얼른 성인되서 같이 맥주잔 기울이고 (흡연자의 경우 맞담배 피우면서) 서로 연애 상담해 주면 세상 행복하겠지만 ㅎㅎ (조카랑은 해도 자식이랑은 안 될 것 같아 슬픔...딸아 맥주나 한 잔-엄마 나 바쁨 저리 가셈 할 것 같은...)
해리포터 영화도 재미 없고 책도 하나도 안 본 사람 추가입니다. 오랜만에 겹치네요 ㅎㅎㅎ

다락방 2020-02-21 16:21   좋아요 1 | URL
해리포터는 전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인데 우와 너무 신기하게도 이렇게 제 알라딘 즐찾님들은 재미없어 하고 안보고 막 그러네요? 신기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리는 걸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지금 엄마랑 같이 술 잘 마셔요(어제도 엄마랑 술마셨어요 ㅋㅋ). 반유행열반인님도 자녀분께 좋은 술친구가 곧 되어주실 겁니다. 후훗.

비연 2020-02-21 1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 전 해리포터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흠흠.... 영화는 그냥 그랬지만서도. 환타지나 sf 이런 거 좋아해서 ;; ;
그나저나 다락방님의 조카는... 영특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아주 사랑스러운 아이인 듯^^

다락방 2020-02-23 12:02   좋아요 0 | URL
저는 환타지를 잘 읽지를 못하더라고요. 환타지나 sf 를 재미있게 읽으려면 작가가 그 안에서 창조해낸 세계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제가 그 상상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서 빠져들지를 못하는 것 같다는..
조카 너무 좋아요! 조카가 자랄수록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많아지는 것도 너무 좋구요. 그래서 열심히 해리포터 읽어야 해요. 하하.

마태우스 2020-02-21 2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잘 지내나요! 아동문학은, 제가 조카는 있지만 자녀가 없다보니, 저도 관심이 없어지네요. 다락방님처럼 조카랑 친하지 않아서요. 제가 어릴 적엔 잘해줬는데 커보니까 이것들이 전화도 안하고 해서 좀 서운합니다. 삼촌, 술 한잔 사줘, 뭐 이런 날을 기다렸는데 그런 날은 오지 않더군요. 참 이상해요. 전 저같은 삼촌 있으면 살갑게 대할 거 같은데, 제 잘못도 있겠죠?? 글구 서평집 소개하려고 그 글 올린 거 저얼대 아닌데 ㅠㅠ 날카롭게 캐치해주셔서 감사드려요.

다락방 2020-02-23 12:04   좋아요 0 | URL
저도 나중에 제 조카들이 어른이 되면 저랑 술도 한 잔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조카들이 절 찾아줄지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지금은 현재에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이모,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답니다.
서평집이라니,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제가 꼭 읽어보겠습니다, 마태우스님. 제가 서평집을 특별히 더 좋아하는 건 아닌데 마태우스님의 서평집은 기대가 됩니다. 후훗.

단발머리 2020-02-22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리포터는 그 시대를, 그 시대의 어린이들을 아우르는 어떤 특별한 힘이 있다고 전 생각해요. 물론 한글로는 2권의 상, 영어로는 1부도 마치지 못한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요. 저희집에 같이 사는 청소년 둘에게는 그랬던 것으로 보입니다. 읽고, 또 읽고 또 읽었어요.
큰아이는 번역 상 틀린 부분 말하고, 상징의 의미, 작가가 놓친 부분까지 말하고 또 말하는데.... 거의 1년을... 해리포터를 읽고 같이 이야기 나누고 아이 말을 노트에 적어놓고 그랬어야 했는데, 전 그냥 성의없이 응~~ 응~~ 이랬거든요.
후회됩니다. 그냥 그렇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다락방 2020-02-23 12:0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단발머리님. 제 조카도 해리포터를 너무 좋아해서 해리포터에 대해 자기가 알고 있는 것들을 다이어리에 따로 적고 그러더라고요. 얘는 이렇게 적어둘만큼 이 책을 좋아하는구나, 놀랐어요. 제가 위에 비연님의 댓글에도 적었지만, 제가 상상력이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상력이 풍부했다면 이런 환상적인 세계에 대해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저는 무조건 현실파..인듯 합니다. 저에게는 재미없지만 ㅠㅠ 아이와 대화를 위해서라도 아무튼 끝까지 도전해볼 생각인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 계속 도전할거에요!

noomy 2020-03-02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둘 다 노래는 줄창 들었지만 뮤비는 첨 보는데 진짜 좋네요~!!

다락방 2020-03-02 10:09   좋아요 0 | URL
크- 좋지요? 제가 참 좋아하는 노래들입니다. 후훗.
 
거짓말하는 어른 - 김지은 평론집
김지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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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중)오늘 출근길 지하철에서 시작한 책이라 아직 38쪽까지밖에 못읽었지만 책 펼치자마자 읽게 되는 <책머리에> 부터 너무 좋다, 너무너무. 책머리에, 만으로도 소장해두고 가끔 꺼내보며 내 안에 아름다운 마음을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이모가 잘할게, 좋은 어른이 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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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0-02-20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죠?!!!!!!!!!!!

다락방 2020-02-20 10:15   좋아요 1 | URL
너무 좋아요! 저 이거 도서관에서 빌린 책인데 사려고 장바구니에 넣어뒀어요. ㅎㅎ

유부만두 2020-02-20 10:18   좋아요 0 | URL
사세요!!! 보고 또 보는 책이에요!

다락방 2020-02-20 10:21   좋아요 1 | URL
필사하고 싶다던 만두님의 느낌이 뭔지 너무 잘 알겠어요. 이거 땡투 들어오면 제가 드린 줄 아세요 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0-02-20 10:24   좋아요 0 | URL
저 매년 (그래봤자 1번만 했지만) 만우절 이브 3/31에 이 책 읽습니다;;; 땡투 땡큐!

잠자냥 2020-02-20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책이 있었군요. 아동문학평론가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궁금하네요.

다락방 2020-02-20 11:42   좋아요 1 | URL
몇페이지 안읽었는데도 강력히 추천드릴 수 있을만큼 정말 좋아요. 읽어보세요, 잠자냥 님!

유부만두 2020-02-20 23:54   좋아요 0 | URL
추천!!! 강추입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2편이 나왔다. 이거 포스터 가져올라고 영화 검색했다가 밑에 달린 영화감상 후기를 보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사람들 2편 다 너무 싫어해. 별 하나씩 주면서 '노아 입금 안됐냐'고 달고 ㅋㅋㅋㅋㅋㅋㅋ스토리 왜이러냐고 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 꽁냥꽁냥 하지 않느냐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슨 말인지 잘 알겠지만 내가 느낀 감상과는 매우 다르다. 나는 어제 이거 보면서 주옥같은 말들이 쏟아져나와 무슨 열여섯살짜리들이 인생 이렇게 깊은 깨달음을 이나이때 벌써 얻어.. 했던 것이다. 그래서 좋은 영화였다, 나는.




라라 진(라나 콘도르)과 피터 케빈스키(노아 센티네오)는 전편에서 썸타면서 갈등했던 시기를 지나 2편에서 본격적으로 연인 사이가 된다. 이들은 열여섯살이다. 열여섯살의 라라진은 이게 자신의 '첫 연애'라고 말한다. 그러니 피터는 라라의 '첫 남자친구' 되시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첫 연애상대였던 적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라라 진에게 그게 열여섯에 찾아왔다면 내게는 그보다 훨씬, 훨씬 늦게 찾아왔다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차이는 그것뿐. 나 역시 누군가의 첫 여자친구이면서 여자친구 노릇을 대체 어째야 하는지 잘 몰랐던 것 같다. 비단 첫 연애에서만 그런건 아니었다. 반복되는 그 다음 연애, 그 다음 연애에서도 그랬고, 나이 들어 하는 연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누군가의 여자친구라는 정체성에 그다지 열중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떤 상대에게 나는 확신을 주지 못했고,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주지 못했다. 사랑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어떤 상대에게 나는 서투른 사람이었다. 이렇게나 나이를 먹어도. 그리고 이렇게나 서투르기 때문에 했던 실수들이 있다.



라라 진이 내가 삼십대 후반...에 했던 실수를 이 영화 속에서 한다. 그러니까 열한살에 좋아했던 남자, '존'에게 보냈던 편지에 답장을 받게 되고 거기에 다시 답장을 보낼 생각을 하면서 이 일을 첫 남자친구인 피터에게 말하지만, 결국 존과 같이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피터에게 말하지 않는 거다. 또 자신에게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존에게는 자기에게 남자친구 피터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여기에 어떤 대단한 악의는 없다. 라라 진은 존에게 말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 얘길 꺼내지 못했고 피터에게도 역시 마찬가지. 거기에는 말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과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니까 말하지 않아도 되지' 라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고, 이걸 굳이 말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어느 것이 '맞는'것인지 고민하는 시간도 있었을 것이고. 그러나 이렇게 말해야 하는 걸 뒤로 미루다가 상대가 먼저 알아버리면, 나는 당연히 거짓말 한것밖에 안된다. 내게도 정확히 이런 일이 있었다. 그러니까 '미리', '제때' 말하지 않아서 상대로 하여금 빡치게 만들었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거 풀어주느라고 내가....

아니, 근데 다른 이성이 관여된 일이라면 사실 일찍 말하나 늦게 말하나 빡치지... 늦게 말하면 더 빡치긴 하지만.

그러니까 나는 막 관계가 시작될랑말랑하는 사이에 상대가 '이렇게 저렇게 알게된 여자가 나한테 밥 같이 먹자고 했다' 이 말만 듣고도 딥빡이 와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때 내가 열여섯살이었냐 하면 서른여섯도 넘었을 때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란 여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내가 나 때문에 짜증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응? 무슨 초심?) 라라 진의 얘기를 하자면, 다시 말하지만, 이 커플은 열여섯살로 고등학생이다. 그러니까 '교내 연애'를 하는 거다. 이들이 커플이 된건 학교가 다 알고 그래서 이들이 교내에서 어깨동무를 한다던가 손을 잡고 다닌다든가 하는 것 역시 모두에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참... 여러가지로 이 상황에 대해서 낯설다. 물론 외국영화 보다 보면 흔하게 등장하는 장면이긴 하지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애정표현을 스스럼없이 하는 것은.. 나는 너무 거시기한게.. 아니 어떻게 다른 학생들 다 보는 앞에서 막 뽀뽀폭탄 응? 막 그런거 하고? 막 그래? 물론 나라고 해서 길거리에서 막 그런 것도 안하고 막 그랬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 내일되면 또 볼 사람들인데 나처럼 길 한가운데에서 아무도 나를 모르고 그만 나를 알고 나만 그를 아는 그런 상황도 아닌데... 


나는 여중,여고,여대를 나왔고, 여중여고여대를 차례로 졸업하는 동안 이성과 연애를 해본적이 없다. 다시말해, 교내에서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는 얘기다. 대학때 그 흔한 캠퍼스커플이라도 해봤으면 좋았겠지만, 그걸 해보지도 못했고 이성애자여서 대학에선 불가했지. 사실 남녀공학이었어도 했을 것 같진 않다. 나의 성격상 씨씨하면서 꺄르르꺄르르 교내에서 뽀뽀하고 다니는 건 진짜.. 아 이 나이 먹고 생각해도 못하겠어. 오히려 젊을 땐 했으려나. 취업하고 직장에서 사내연애를 한 적은 있고, 사내에서 키스를 한 적은 있지만 그건 아무도 없을 때, 다른 사람들은 출근하기 전이였고..


그만두자, 이런 얘기는...



아, 그러니까 무슨 얘기를 하려던 거냐면, 

라라 진에게 이 연애는 첫 연애다. 교내에서 어깨동무를 하든 키스를 하든 모두 처음이란 얘기다. 그리고 이 연애는 교내에서 다른 아이들에게도 알려지는 연애이다. 누가 누구와 커플인지는 교내에서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일. 이들이 사귀는 와중에 발렌타인 데이가 있었고, 아아, 이 학교를 보라지, 이들은 교내 아카펠라 그룹을 서로에게 선물로 보내 노래를 들려준다. 쉬는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수업시간에도 이 그룹들은 누군가를 찾아가 사랑의 노래를 불러주는 거다. 라라 진 역시 그런 광경을 목격하게 되는데, 교내의 누군가가 라라 진에게 다가와 얘기하는 거다.



"기대해, 라라 진. 작년에 피터가 젠에게 매 시간마다 노래 보내줬어."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내가 이 연애가 첫 연애라고 할 때, 그러나 상대에게 나는 첫 연애상대가 아닐 때. 상대에겐 연애 경험이 있고 나에겐 없을 때. 상대는 연애가 익숙하고 나는 아닐 때. 당연히 여기에서 오는 고민들은 천가지 만가지도 넘을 것이다. 그런데 라라 진과 피터에겐 그보다 더한 문제가 있었으니, 피터가 누구와 사귀었었는지를 라라도 알고 교내 모든 아이들도 안다는 것이다. 라라 진을 사귀기 전에 피터는,'젠'과 사귀었다. 발렌타인 데이에 노래를 보내주고, 지금 라라 진과 했던 모든 것들을 이미 젠과 다 해본 것이다. 라라 진에게는 처음인 것들이 피터에게는 처음이 아닌 것. 라라 진은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까' 하고 궁금해하는 것이 다른 애들에게는 '작년에 피터가 젠에게 한거니까 너도 해줄거야' 같은 이미 '아는 것'인 거다.


라라 진과 피터의 첫데이트에 고급 레스토랑에 갔다. 라라 진은 너무 설레인다. 예쁘게 차려입고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오늘이 나의 첫데이트야, 라고 말하며 두근거리는데, 다음날 젠은 라라 진에게 말한다. '너 인스타 보니까 어제 그 레스토랑 갔더라, 나 한참 가서 거기 그 음식 질렸어' 라고. 이 때 라라 진은 어떤 감정을 느껴야할까? 라라 진은 자신에게 처음인 모든 것들이 피터에게는 이미 젠과 한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속이 쓰리다. 그렇다고 피터에게 '젠하고 갔던 레스토랑은 안되고, 젠하고 했던 놀이는 안되고' 라며 요구를 해야할 것인가.



이건 정말이지 미치는 상황인거다.

때로 내가 지금 사귀는 현재의 내 애인에게 있었던 과거의 여자 때문에 고통스러울 때가 있지 않나. 나는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를 더러 했었다. 그의 전여친이 나보다 더 젊었다거나 나보다 더 예뻤다거나 하는 것들을 떠올리면서 '지금 나랑 사귀는 걸 후회하진 않을까', '지금 나랑 사귀면서 전여친과 비교하진 않을까' 같은 것들을, 나도 모르게 생각하며 고통스럽지 않나. 그거 바보같은 생각이란 거 알면서도 그럴 때가 있잖아. 게다가 전여친과 연락을 계속하고 있다면? 상황상 계속 보고 지내고 있다면? 내가 쿨하게 그걸 넘길 수 있을까? 괜찮아, 저 여자는 전여친이고 현재의 여친은 나니까, 나는 그의 사랑을 확신해, 세상 씐나, 브라보! 하고 살 수 있을까? 이건 스물여섯, 서른여섯, 마흔여섯이 되어도 골치 아픈 문제다. 물론 마흔 여섯쯤 되면 어느정도 '인생은 그런것이니 함께 끌고 나갈 수밖에..'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이 막 그렇게 쉬운 건 아니라는 거다. 그런데 라라 진은 열여섯이고, 심지어 지금 내 남친의 전여친을 학교에서 만나고, 이전에 베스트프렌드이기도 했어. 대환장할 노릇인거다. 여기에서 어떻게 성숙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섹스 때에도 나타난다. 그러니까 차 안에서 애정행위를 하던 도중, 그의 입술이 나의 입술에서 목으로 내려갈 때쯤, 아 너무 좋다 진짜 짱이야 아랫배가 저릿저릿하다 이런 거 느껴야 할 그 때, '얜 어쩜 이렇게 잘할까, 어쩜 이렇게 능수능란할까' 같은 거 생각하게 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갑자기 옆에 젠의 모습이 등장해서 '걔가 왜 잘할까?' 이런거 속삭이고 있어. 와 진짜 대환장... 이걸 어쩌면 좋으냐 말이다. 나는 처음이라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상대는 능숙하면, '오 너가 능숙하니 나를 이끌어줘'이게 어디 되느냔 말이다. 이새낀 어디서 뭐하다 왔길래 이렇게 잘하는거지.. 이렇게 되어버릴 수밖에 없는 거잖아. 잘한다는 것은 많은 시간을 들여 반복된 경험이 있었다는 증거가 아니고 뭐겠는가. 그렇다면 '처음'인 나는 또 그 앞에서 쪼그라들 수밖에 없고. 휴.. 이 고통의 시간을 열여섯 라라진이 겪고 있는 거다. 



이게 라라 진이 열여섯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일까?

노.

아니다.

이건 다시 말하지만, 서른여섯에도 찾아오는 문제다. 



섹스를 두려워하는 라라는 결국 입밖으로 내고 만다. "너랑 젠은 많이 했었지?" 라고. 피터는 그 이야기는 하지 말자며, 자신이 재촉하는 것처럼 느껴졌느냐고 되묻는다. 라라진은 절벽에서 점프하는 걸 비유하는데 '넌 해봤지만 난 해보지 않아서' 라고 두려워하자 '너가 떨어져내릴 결심을 하면 같이 가주겠다, 무서울 테니까' 라고 말한다. 피터 역시 열여섯살이고, 물론 이것은 영화이지만, 한국의 웬만한 마흔살 남자보다 훨씬 성숙하다 하겠다. 성숙한 건 물론 피터 뿐만이 아니다. 라라 진도 마찬가지. 라라 진은 결국 자신의 앙숙이 된 친구 젠을 불러 이야기를 나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피터는 젠을 극복하지 못한 것 같아 속상했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젠을 극복 못하는 건 나였다, 라는 이야기를. 그리고 할머니가 '정'이란 걸 알려준 적이 있다며, 이런 독백을 덧붙인다.



'두 사람 사이에 끊어질 수 없는 연결을 말한다.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어도 그 사람을 향한 애정이 마음속에 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마음속 어딘가에서 항상 서로 연결돼 있을 것이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피터와 젠 사이에 정이 있다고 피터 탓을 해서는 안 된다'



아니 이것이 무슨 열여섯의 깨달음이여... 서른여섯도 하기 힘든 것인데..... 만약 내 애인이 내 눈앞에서 전여친과 다정한 모습을 본다면, '저건 저들 사이의 정이야, 정이 있다고 그걸 탓하면 안돼' 같은 걸 내가 깨달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으앗 생각만 해도 너무나 괴롭다... 그러니까 내가 내 애인의 여사친의 존재를 아는 것과는 좀 다른 거잖아. 전여친은.. 나랑 애인이랑 지금 하는 걸 이미 나보다 먼저 해본 사람이잖아. 그런데 그 존재를 여전히 만난다고 하면... 나랑 사귀는데.......아 골치가 아프다 진짜. 이런 거 생각하기 싫어. 피곤하다... 연애란 무엇인가..




라라 진은 연애란 게 참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첫 데이트도 성공적이고 두번째 데이트도 마음에 들었던 날, 스노우볼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는 거다.


'연애라는 게 참 재미있다. 한순간 모든 게 뒤집혔다가도 마법처럼 온 세상이 반짝거린다. 그리고 차분히 가라앉으면 다시 바로 동화속이다.'



연애, 너무 재미있지. 그런데 고정된 '여자친구'의 역할을 내가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골치 아파지기 시작하지. 여자친구란 무엇인가, 여자친구라면 으레 이렇게 해야하나, 같은 것들이 압박을 해오면 다 때려치고 싶어지지. 역시 자유가 중요하다... 프리덤!




나보다도 훨씬 철든 연애를 하는 이 열여섯 커플을 보는 건 참 재미있고 좋았지만, 나는 참... 첫장면부터 의문이었던게, 이 열여섯 고등학생 커플들이, 딱히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렇게 고급레스토랑에 가서 데이트를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게다가 피터는 이 고급 레스토랑을 작년에 젠 하고도 여러번 왔었어. 그 돈 어디서 났냐? 엄마가 준거야? 용돈 받아 쓰는데 그렇게 좋은 레스토랑에 막 가도 돼? 나는 이것이 너무 걸리는 것이다. 열여섯에 내가 데이트를 했다면 나는 끽해야 죠스떡볶이나 그 뭣이냐 롯데리아 가지 않았을까. 삼십대 중반에 했던 연애들에서도 내가 사귀었던 남자들은 내가 스테이크 먹으러 레스토랑에 데려갔을 때 '스테이크는 너가 처음이야' 했었는데(세명이나!) 내가 유독 경험치 없는 남자들만 사귀었던건가..이 남자들 내가 처음 사귄 여자도 아니었는데도 스테이크는 처음이래. 니네 대체 뭐 먹고 살았냐... 피터는 열여섯에.. 아니 열다섯에...... 쓰벌. 내가 피터랑 사귀었으면 나의 경험치는 어디까지 갔을 것인가.

아 빈곤한 나의 연애경험이여..... 슬픔이 파도가 되어 덮쳐온다 ㅠㅠ



그리고 계속 걸리는 게...

여차저차해서 피터와 라라 진이 헤어졌는데, 라라 진에게는 계속 애정을 표현하는 '존'이 있었단 말야? 그래서 존하고 같이 봉사활동 하다 뒷마당 눈밭에 있다가 키스를 하게 되는데, 키스를 하면서 깨달음을 얻는 거다. '내가 사랑하는 건 피터야!' 하고. 존에게 미안하다 말하고 이제 피터를 찾으러 가는데, 그래, 여기까진 알겠어, 이것이 로맨스 영화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 보러 지금 당장 가고 싶지, 더 늦기전에 사랑한다 말할거야! 이거 당연히 해야지. 이건 당연한거야. 그런데,


라라 진.. 너 지금 존하고 봉사활동 하는 중이었잖아. 니가 갑자기 그렇게 뛰쳐 나가버리면... 봉사활동 시간 어떻게 채우려고? 그거 나중에 채울거야? 뭣보다, 너랑 존이랑 둘이 멤버 전부인데 니가 가면 뒷정리 존이 혼자 다해야하잖아? 내가 여기서 딥빢이 오는 거다. 아니... 남자 찾아 사랑 찾아 간다고 뒷정리 존에게만 맡기는 거 너무 내 타입 아니어서... 하아-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불렀을 것 같다. 너 가긴 어딜 가, 뒷정리 다 하고 니 할일 다 하고 가야지! 하고. 아 너무 .. 일을 대하는 자세가 내 타입 아니어서... 막판에 엄한 데서 스트레스 받아버린 나여............. 얄짤없다, 맡은 바 일은 다 하고 가라.



















재미있게 봐서 그런지 영화가 너무 짧았다. 이렇게 갈등들만 나오면 어쩌나 싶지만 사실 연애란 게 갈등의 연속이다. 라라 진은 반쪽짜리 연애는 싫다고 하지만 온전히 가지려면 갈등과 고통까지도 모든걸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걸 깨닫고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할건지는 당사자의 몫일 것이다. 모든 걸 감수하고 너랑 함께 하는 걸 택하든지 이런 걸 감수하면서까지 연애를 지속하고 싶지 않아 뒤돌아설 것인지.



피터와 라라가 싸우는 것도 나는 좋았다. 싸움은 당연히 피곤한 거지만, 이들에게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 있고 존중이 있다. 그러니까 다른 남자랑 있었다고, 그것을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가서 염산을 들이 붓는다든가 발가벗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다든가, 사람들한테 헛소문을 퍼뜨린다든가 하는 행위를 일절 하지 않는 거다. 그건 범죄니까. 범죄를 전여친에게 하는 건 솔직히 사람이 할 짓은 아니지 않는가.

어제 리뷰 썼던 정희진 선생님 책 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몇 달 전 거리에서 ˝자연의 섭리˝를 외치며 ˝짐승도 그 짓은 안 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동성애 반대 서명운동을 하는 이들을 만났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자연의 질서를 지키려면 환경운동이 먼저 아닐까요.˝ 실제로 ‘짐승도 안 하는 짓‘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이성애자 남성이다. -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정희진, P69




당연하게도 피터는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다. 보통의 인간. 그러므로 피터와 라라 진은 서로가 원망스러 싸울 때 조차도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이들은 열여섯 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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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2-20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임 계정 파놓고 묵혀둔다고 레벨 업 저절로 되지 않듯...나이 먹는다고 연애 레벨이 자동으로 오르지는 않는 것 같아요...경험치는 쌓이는데 왜 레벨업은 안 되니...영화감상문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다락방 2020-02-20 16:33   좋아요 1 | URL
맞아요, 열반인님. 분명 어느 부분은 어느만큼 성숙하고 성장하기도 했겠지만 감정을 조절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서투른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연애에 있어서는 더 그런것 같기도 하고...
연애 레벨도 만렙 찍고 내려왔으면 좋았겠지만 저는 앞으로도 만렙을 찍을 것 같지도 않고 만렙 근처도 못갔는데 이제 내려온 것 같아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다락방 2020-02-20 17:00   좋아요 1 | URL
정말 맞네요. 연애에 만렙이 존재할까요? 사람이 다 다른데 이 사람과 사귀면 이런 연애가 저 사람과 사귀면 또다른 연애가 진행이 될테고 그러니 만렙이란 건 존재할 수 없겠어요. 스스로가 만렙이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기꾼이겠어요. 거짓말쟁이거나. 강연 듣는다고 해도 연애 혹은 사랑이 나 혼자 하는 게 아닌이상 강연은 과연 어디까지 먹힐 수 있을 것인가...

저는 사랑을 포기하진 않았고요, 연애를 그저 놓았을 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2-20 17:00   좋아요 1 | URL
아니 댓글 달았는데 반유행열반인 님의 댓글이 사라졌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2-20 17:09   좋아요 0 | URL
써 놓고 창피해서 지웠어요...죄송해요... 사기꾼이라도 궁금하니 자칭 연애 만렙 있으면 데려다 놓고 구경하고는 싶네요...아 사기꾼 관상은 이런 거구나 ㅋㅋㅋ하고... 놓은 연애 다시 들어올려야 할 날이 오겠지요. 어떻게 사랑스러운 다락방님을 감히 안 사랑하겠어요 ㅎㅎ창피하다고 지우고 더 창피한 거 올림...사랑 고백...

다락방 2020-02-20 17:18   좋아요 1 | URL
사랑고백은 창피한 게 아닙니다!!!!! 창피해하지 마시고 앞으로 더 사랑해주세요!!!

=3=3=3=3=3=3=3=3=3=3=3=3=3=3=3=3=3=3=3=3=3=3=3=3=3=3

단발머리 2020-02-22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읽었고 영화를 보지 않았습니다. 넷플릭스 신청하면 피폐해질 제 삶이 너무 예상되서 아직까지 미루고만 있어요.
레스토랑 신 같은 경우 영화에서는 젠이 도발하는 걸로 나오나봐요. 책에서는 라라진이 상상하는 걸로 나오거든요.
우리 동네에는 데이트하러 갈 만한 장소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피터는 젠이랑 이미 여기에 왔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요. 더 쓸쓸하다고 할까요.
현재 나의 남친이 내가 알았던 사람, 혹은 이전의 베프와 사귀는 사이였다는 건 여러모로 불편한 일일 거 같기는 해요.
제일 격렬한 전쟁터는 머릿속이겠죠. 라라진의 생각과 상상 속.

그래도 보고 싶네요. 꽁냥꽁냥, 고딩들의 러브스토리!!

다락방 2020-02-23 12:09   좋아요 0 | URL
대체적으로는 라라진이 자꾸 의식하고 상상하고 그러는데요, 레스토랑 신은 젠이 직접 도발을 해요. 아, 이 사랑 진짜 피곤하고 괴롭겠다.. 생각했어요. 교내의 누구나가 다 알수 있는 공개적인 연애는 너무 하드코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열여섯에게 공개연애는 너무 하드코어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아이들의 대처는 굉장히 성숙해요. 다투다가도 난 이렇게 다투기 싫어, 하고 말하는 게 정말 너무 좋았어요. 무엇을 극복해야 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스스로 깨닫고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거든요. 한국의 성인 남성들보다 훨씬 성숙한 자세를 피터는 갖고 있었어요. 그게 참 좋았어요.
제일 격렬한 전쟁터는 머릿속이라는 말, 진짜 그러합니다. 정말 그래요 단발머리님. 저는 그 머릿속 생각 때문에 지쳐나가떨어질 것 같았어요. 으으...

재미있었어요 단발머리님. 저는 어서 3편을 보고 싶습니다!! (책은 사뒀지만 안읽고 있....)

공쟝쟝 2020-02-24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주말에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감상문을 읽는 지금 기뿌군요..... 저는 1화가 쫀쫀하니 (흑역사 대공개) 재밌었어요. 2화는 역시 매력적인 라라진에 매혹되어 봤답니다! 영화보는 내내 와 애들이 소통 참 성숙하게 한다~ 이랬어요. 진정한 소통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예의차린 소통도 희귀한 현생에서 무지 부러웠습니다. 네네, 마치 비싸뵈는 레스토랑 데이트 처럼욬ㅋㅋㅋ

다락방 2020-02-24 09:28   좋아요 1 | URL
저는 이 고딩들의 연애가 너무 좋았습니다! 정말 성숙하지요. 싸우면서도 이러고싶지 않다는 것을 서로 얘기하잖아요. 물론 그들이 바랐던 것이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기였던 것도 그렇고요. 이 열여섯 라라진이 마지막에 온전히 한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면 그것이 가져오는 모든 감정들도 감수해야 한다고 깨닫는 것도 그렇고요. 저는 정말 만족하며 봤습니다. 어록 대방출이다... 이러면서 봤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심심할 때 보려고 넷플에서 [하우 투 비 싱글] 다운받아놨어요. 존재도 모르는 영화였는데, 넷플 들여다보며 ‘자 다음 영화는 뭘로 할까~‘ 하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0-02-24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근데 스테이크는 네가 처음이야... 는 뭐죠? ㅋㅋㅋㅋㅋㅋㅋ 나에게 이렇게 버릇없이 구는 여잔 니가 처음이야!도 아니구...?? ㅋㅋㅋㅋ ㅋㅋ 웃엇어요 ㅋㅋ

다락방 2020-02-24 09:29   좋아요 1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전.... 걍 혼자가 좋은것 같아요. 혼자 가서 평양냉면에 소주 시켜먹고 혼자 가서 스테이크에 와인 시켜먹고... 그게 최고인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0-02-24 15:14   좋아요 0 | URL
참 읎어보이는 네가 처음이야....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1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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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의 글은 여전히 좋고 또 여전히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하지만, 이 책으로 가장 먼저 정희진의 글을 접한 사람이라면 그렇게까지 정희진에 열광할 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간 정희진이라면 닥치고 읽어! 라고 마음먹었던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는 '여전히 좋지만 그렇게까지는 좋지 않네' 하였으니까. 사람들이 왜 그렇게 정희진을 좋아할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정희진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그 열광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저마다 약한 지점이 있다. 같은 사건, 같은 이야기에 그래서 더 건드려지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고. 열 개의 사건에서 같은 감정을 공유하다가도 열한개째에서 삐끗할 수 있는데, 정희진에 대해서라면 나는 한 칠십칠개쯤 열광하며 공유하다가 칠십팔개째에서 삐끗하는 것 같더니 그 다음에는 어긋나는 지점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 같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전작 『혼자서 본 영화』에서도 영화 《무뢰한》좋아한다고 했었는데 이 책에서도 무뢰한 너무 좋다고 또 언급하길래 그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말야? 나는 20분도 못보고 '이걸 다 볼 수 있을까..' 했다. 다 보고 나면 나도 좋아지려는지 모르겠어. 시작부터 걍 싫은 영화였다... 뭐, 더 봐야 알겠지만.



예전에 강연에서 정희진 쌤은 '나에게 필요한 모든 지식은 책으로부터 얻는다'고 하셨던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싶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니 '이 분은 그게 충분히 가능하시다!' 생각했던게, 읽는 책의 리스트도 남다를뿐더러, 좋은 책은 여러차례 반복해 읽는 거다. 이런식이라면 세상의 알아야할 모든 것들을 책으로부터 습득하는 게 가능하지 싶다.


알라딘에서야 보잘 것 없는 독서가라고 해도, 알라딘을 벗어나면 그래도 나름 책 좀 읽는다고 하는 사람이 난데, 그런 내가 감히 도전하지 못하는 책들도 정희진 쌤은 엄청 읽었더라. 목민심서, 도덕경, 신약성서... 정말이지, 나 따위..하찮은 독서가에 불과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이 다진다. 나도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 내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책으로부터 얻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빠샤!


최근에 한나 아렌트와 시몬 베유 읽으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 방향이 잡히기도 했다. 한나 아렌트는...너무 인상적이었어 진짜. 한나 아렌트 전기 읽은 후부터 내 머릿속에서 한나 아렌트가 잠시도 떠나지를 않는다. 대단한 사람..



갑분한나아렌트..



마음, 표현도 번역도 어려운 우리말이다. 마음은 몸의 부위인데(뇌, 심장, 흉부……), 보이지 않는 의미(영혼, 마음 씀, 정신……)에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의 이분 논리가 문제의 근원. 마음 심(心) 자는 사람의 염통 모양을 본뜬 것이지만 실제 마음을 관장하는 기관은 뇌이고, 의미는 가슴(heart, 심장)으로 통용된다. 그러므로 흔히 말하는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P29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에게 《지젝이 만난 레닌-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읽어주고 싶다. 영어 원제(Revolution At The Gates)가 기가 막히다. 레닌 입문서로도 안성맞춤이다. 책 표지 문구는 왜 혁명이 인간의 영원한 신앙인지를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 ˝레닌을 반복한다는 것은 회귀가 아니라 그 안에 구현할 유토피아적 불꽃이 있다는 것을, 그가 하지 못한 일을, 그가 놓친 기회를 반복한다는 뜻이다.˝ 6백 쪽에 가까운데 문장마다 가슴이 뛴다.- P50

어떤 올바름은, 필연적으로 다른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보편적이고 일률적인 올바름은 없다. ‘PC‘는 불가능한 개념이자 문제를 한 가지 원인으로 축소하는 환원주의의 산물이다. 책에 따르면, 환원론은 실천 없는 이들의 무의식적 위치 이동이다. 어차피 안 될 일, ‘올바르게 보이는‘ 주장이나 해보자는 것이다.- P51

녹색당의 당비 납부율은 전체 정당 중 최고이며 여성 당원의 비중이 가장 높다. 나는 당비만 내는 당원이지만, 녹색당은 집에서도 24시간 정치를 할 수 있는 민생 정당이다. 나는 냉장고, 화장품, 핸드폰, 드라이기, 다리미, 자동차, 샴푸, 냉난방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의류, 신발도 구입하지 않는다. 대단한 철학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최대한 축소된 삶을 살고 싶다.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 이런 생활 습관이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아니 아예 믿지 않는 독재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서다.- P57

몇 달 전 거리에서 ˝자연의 섭리˝를 외치며 ˝짐승도 그 짓은 안 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동성애 반대 서명운동을 하는 이들을 만났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자연의 질서를 지키려면 환경운동이 먼저 아닐까요.˝ 실제로 ‘짐승도 안 하는 짓‘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이성애자 남성이다. - P69

˝저들을 용서하소서!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옵니다.˝(<루가복음> 23장 34절) 이 구절은 상대방과 말이 안 통할 때 위로가 된다. 나는 주로 남들이 ‘사소하다‘고 하는 일에 분노하는 편이라 이 말에 의지하며 살아왔다. 억울하고 분할 때 ˝쟤는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를 거야.˝라고 중얼거리며 참았다. 대화한들, ‘가르친들‘, 설득한들 알까? 소통 불가능 상황에서 최선의 지혜는 기대를 접는 것이다.- P79

《몸의 일기》는 구구절절하다.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 한 줄의 인생. 개미가 성(城)을 공략한다. 가장 급진적인 개미는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다. ‘이등 시민‘이 몸의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 문명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다. 사회가 이들이 말하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이유다. 저자는 여성의 일기가 몹시 궁금하다고 했지만, 여성의 일기는 ˝엄마 배 속에서 죽었어요.˝(여아 낙태)로 시작될 것이다.- P136

흔한 대화. ˝환자분, 통증이 1부터 10까지로 쳤을 때 어느 정도 아프세요?˝ 고통을 수량화한 척도(尺度) 질문인데, 고통이 계량화될 수 있겠는가. 이 물음은 필요하지만 환자를 위한 말이 아니라 치료자를 위한 것이다.- P161

연령주의적 표현이지만 두 사람 모두 인생의 ‘절정기‘였다. 그러나 젠더는 명확했다. 1948년생 여성이 1925년생 남성보다 나이듦, 죽음, 치매, 돌봄에 대한 염려와 사유가 훨씬 깊다. ‘여자의 정년‘은 생물학적 나이인 마흔, 남자의 정년은 사회적 일을 그만두는 시기다. - P174

《이야기 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는 여성주의 철학자인 저자 자신이 겪은, 살인 미수를 동반한 성폭력을 계기로 삼아 자아 개념을 재해석한 빼어난 책이다. 번역은 유려하지만 우리말 제목에는 약간 아쉬움이 있다. 원제는 《여진(餘震)-폭력과 자아의 재구성(Aftermath:Violence and the Remaking of a Self)》.
모든 문장이 깊고 지성이 넘친다. 그래서 치유적이다. 대개 치유를 마음의 평화나 감정적 위안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치유는 사고 방식의 근본적 변화, 인간 행동 중 가장 인지적인 과정이다. 종교든 인문학이든 일시적 ‘부흥회‘로는 치유가 불가능한 이유다.- P180

어떤 이에겐 평화로운 것이 어떤 이에겐 부정의일 수 있다.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사건의 효과는 없다. 그러므로 ˝당신은 무엇을 걱정하는가?˝보다 ˝이 걱정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더 효과적이다.(257쪽, 만들어진 우울증)
한국 사회가 싫어하는 인간형은 진보다 여성주의 이런 쪽(?)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문제 제기, 정확한 질문이 많은 사람도 공격적이라고 기피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모나거나 어두운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다. 사유는 인간 본성(호모 사피엔스!). - P215

‘평화주의자‘들은 이에 반대한다. 대화와 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노를 관리하라고 권한다. 타임 아웃, 나 전달법, 분노 조절 프로그램 따위가 그것이다. ‘평화주의자‘인 내 생각은 다르다. 이 말은 분노와 무관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정의의 기본 법칙이다.
분노의 시작은 억울함이다. 물론, 세상에 억울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문제는 ˝누구의 억울함인가, 정당한 억울함인가?˝ 이다. 분노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부정의하다. 가해자의 피해의식이나 권력자의 분노는 규범이고, 약자의 억울한 감정만 분노로 간주된다. 분노를 표출해도 되는지를 고민하는 사람은 대개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다. ‘남성‘은 이런 의문 자체가 없다. 자기 뜻은 분노가 아니라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P226

권력은 다수의 억울한 마음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멘토, 치유자를 자청하는 자들을 불러(?) 고결한 가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비열한 폭력인 용서와 화해 이데올로기로 약자의 상처를 짓이기고 미성숙한 인간이라는 죄의식과 자책까지 떠넘긴다. 그래서 우아함은 가진 자의 성품이요, 흥분과 분노는 약자의 행패가 되었다. - P227

유교의 장례인 삼년상(三年喪)은 ‘好‘, 즉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 …… 일상의 질서가 무너지는 느낌에 주목하는 것. …… 상실감의 고통, 황폐한 심정, 다시 만날 수 없는 공허감을 느껴보길 촉구하는 의례가 삼년상˝(63쪽, 한 칸의 사이)이다. 어미와 자식이 껴안고 있다가 한 사람이 사라졌다. 부정하고 싶은 이 상황을 실감하는 과정이 삼년상이요, 시묘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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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2-19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이 책 읽고 있는데요, 이 책으로 정희진 쌤 처음 입문하는 분들은 정희진에 그렇게까지 열광할 순 없을 거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었을 때의 그 짜릿함을 기대하긴 어려운 책 같아요. ㅎㅎ
일간지에 기고했던 글들 모음이라 좀 더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요.

다락방 2020-02-19 14:24   좋아요 1 | URL
네 전 뭐랄까, 약간..음 좀 당황스럽더라고요? 흐음.. 갸웃하면서 5권까지 다 읽어말어...하고 있습니다. 예전만큼 흥분이 안되는 건 내가 변한 탓인가, 뭐 그런 생각도 좀 했고요. 킁킁.

2020-02-19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9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0-02-19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책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저는 이 분 책 아직 읽은게 없는데
다른 책부터 시작하는게 맞는건가요?

다락방 2020-02-19 15:42   좋아요 1 | URL
저는 정희진 쌤이라면 일단 [페미니즘의 도전]이 제일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만,
이 책이 일간지 짧은 칼럼을 모은 책이라 읽기에 더 수월할 것 같긴 합니다. 시리즈로 5권까지 나온다고 하니 일단 이 책 1권만 사서 먼저 읽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만족스러우시다면 이 책 시리즈로 다 읽으시면 될 것 같고요, 뭔가 살짝 부족한데 싶으면 그 때 [페미니즘의 도전] 이나 [정희진처럼 읽기]로 가시면 될듯 합니다.
:)

북다이제스터 2020-02-19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희진에 열광하는 사람으로서 글에 공감합니다. ^^
전 근데 한나 아렌트 생각에는 쫌... ㅠ

다락방 2020-02-20 07:55   좋아요 1 | URL
저는 얼마전에 한나 아렌트 전기를 읽고 완전 반했어요! 결국 스승보다 더 유명하고 더 큰 교수가 되었다는 지점이 제일 좋았고요. ㅎㅎ
한나 아렌트 생각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나, 시몬베유]를 읽으셔도 좋을것 같아요. 거기서 시몬 베유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비판하거든요. 아마 시몬 베유쪽이 더 맞지 않으실까, 짐작해봅니다.

그나저나 정희진 선생님 이 책은 5권까지 있다는데 저는 다 살지 말지 망설이게 되네요..

단발머리 2020-02-22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지면의 칼럼을 모은 글이라서 전 한겨레 신문에서 매주 읽었던 글 중 일부가 있더라구요.
전 다시 읽어도 좋아요. 아직은 하트뿅뿅!

다락방 2020-02-23 12:11   좋아요 0 | URL
그동안엔 무조건 정희진이라면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었다면 이제는 그 마음에서는 조금 사그라들긴 했어요. 그렇지만 정희진의 책이 나온다면 여전히 흥분하고 궁금해할 것 같아요. 저는 아직도 강연에 갈 때마다 반드시 놀랐던 순간들을 기억해요. 와 진짜 대단하다 이렇게 또 내 생각을 열게 해주셨네, 하면서요. 라라진이 말했던 것처럼 저는 이제 정희진 선생님과 정이 들어버린 것 같아요. 물론 이 정은 선생님 쪽에서는 알지 못하는 저 혼자만의 정이지만요... 후훗.

마태우스 2020-03-01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희진샘 왕팬이고 가장 존경하는 분 1위긴 하지만, 글이 제겐 쉽지 않더라고요. 그냥 송강정철의 후손이다, 정도만 기억에 남아요.

다락방 2020-03-02 08:00   좋아요 0 | URL
오. 정희진샘이 송강정철의 후손인가요? 몰랐어요. ㅎㅎ
저는 정희진샘 글 너무 좋아요! 앞으로도 나온다면 계속 읽고 싶습니다. 벌써 몇년전인가요, 정희진샘 강연을 마태우스님과 함께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련...

마태우스 2020-03-04 05:07   좋아요 0 | URL
아 네.. 그 책에 그 말이 나오더라고요 ^^ 맞아요 다락방님과 정희진샘 강의 같이 들었죠 진짜 아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