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혐오 - 탈진실 시대에 공통진실 찾기
조정환 지음 / 갈무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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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 사건을 바라보는 두 종류의 눈, 두 종류의 전략이 있다. 하나는 권력자, 착취자, 가해자, 남성의 눈이다. 짧게 표현하면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눈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장자연 사건을 희화화하고 즐기면서 진실을 미궁 속으로 빠뜨리는 마약에 취한 눈, 초점 잃은 눈이다. 눈의 초점이 불분명할수록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그 성폭력 체제는 흐릿해진다. 그러면 이 체제의 수혜자들은 별장과 클럽에서의 성폭력을 지속하면서 축적과 치부 그리고 명령의 오르가슴을 반복할 수 있다.

또 하나는 다중, 저항자, 피해자, 여성의 눈이다. 짧게 표현하면 생명의 눈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장자연의 죽음에 대한 진실규명과 재발 방지를 열망하는 눈이며 무엇이 문제인가를 실사구시적으로 응시하는 부릅뜬 눈, 두려움에 떨면서도 봐야 할 것을 놓치지 않는 다초점의 눈이다. 초점이 분명해져야만 어디서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공격의 화살이 날아오고 어디에 자신을 빠뜨릴 함정이 있으며 어디로 생존의 출구가 열려있는지를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P.36)




최근에는 혐오란 단어를 어디서(누가) 먼저 선점하느냐에 따라 상대가 혐오자가 되는 경향이 있고, 그게 싫어서 혐오란 단어가 들어가는 제목은 쳐다보기도 싫었는데, 이 책의 소개를 읽다보니 윤지오의 증언에 관한 것이었다. 윤지오와 그녀의 증언에 관한 것이라면 지지하면서도 그 흐름과 자세한 사항을 깊이 있게 알지 못하던 터라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으로 알고자 했던건 매우 좋은 선택이었는데, 장자연의 사망부터 지금 현재 인터폴로 윤지오가 수배 내려진 것까지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으며, 그 사이사이 일어났던 말과 사건들에 있어서도 그리고 본인의 생각까지 논리적으로 알기 쉽게 써있기 때문이었다. 


저자 '조정환'에 대해서는 이 책으로 처음 접하는데, 시종일관 정확하게 사건의 본질을 궤뚫고 있어서 놀랐다. 그러니까 윤지오의 증언과 그 안에 담겨져있는 뜻을 날카롭게 짚어낸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그에 따른 여성에 대한 폭력까지도 정확히 인지한 터라 아마도 이런 책을 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현재의 상황과 문제를 인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윤지오와 그 증언에 대해서도 제대로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다. '자라'를 보고 놀란 경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솥뚜껑'을 보고도 놀란 것이다. 만약 자라로부터 놀란 경험이 없었다면, 솥뚜껑을 보고 놀랄 까닭이 없다. 경찰과 숱한 언론들은 솥뚜껑을 보고 놀란 윤지오를 향해, '놀란게 솥뚜껑 때문이었잖아, 자라가 아니었다고, 거짓말쟁이, 사기꾼!' 이라고 몰고 갔다. 그들은 아주 쉽게 윤지오가 놀란 게 솥뚜껑이었기 때문에 사기꾼이라고 말한다. 솥뚜껑 보고 놀랐던 까닭이 자라를 보았던 경험 때문이라고는 감히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걸까,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으려'하는 걸까.



저자 조정환은 솥뚜껑을 보고 놀란 이유는 그 전에 자라를 보았기 때문을 인지하고 있다. 그 점에 대해서 매우 상세히 기술해주고 있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거나 혹은 페미니즘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내가 아는 모든 남자사람들보다도, 더, 가부장제와 권력 그리고 성폭력에 대한 것을 가장 잘 인지하는 저자임에는 틀림없다.


지독하게 진부한 말이라 나는 가급적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 책을 다 읽고난 지금은 그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박훈이 윤지오가 있지도 않은 신변위협을 과장한다면서 신변위협의 실재성을 부정할 때, 고통에 대한 무관심이 뚜렷이 나타난다. 신변위협이란 긴장, 싫음, 떨림, 두려움, 공포 등으로 나타나는 고통의 감각이다. 이것은 결코 객관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의를 기울임을 통해 실천적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훈은 신변위협을 알고자 하는 방향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모르고자 하는 방향으로, 무시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주의를 기울인다. 신변위협을 모르고자 하는 마음이 표현되는 방식이 ‘신변위협은 없었다‘라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P22

윤지오가 개인 방송(인스타라이브)에서 협찬 화장품 파는 것에 경악하신다면 JTBC 방송에서 자동차를 파는 것을 보실 때는 어떤 느낌이신지요?- P66

나는 후원금 집단반환소송이 어떤 실효적(즉 돈을 돌려받기 위한) 사법행위라기보다는 수개월간 지속한 윤지오 죽이기의 일환으로서 윤지오의 이미지를 회복 불가능할 만큼 훼손하기 위한 정치재판으로 준비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장자연에 대한 가해자들의 입장에서는 윤지오의 향우 있을 수 있는 증언 투쟁을 예방하기 위해 이런 위협적 소송이 필요할 것이며, 윤지오에 대한 가해자들에게는 윤지오에 의한 사법 투쟁을 미연에 저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이런 소송일 것이다. 이 소송이 후원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준비된 것이 아니라, 비후원자인 김수민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속해서 촉구되고 홍보된 인위적 소송이라는 점도 이런 판단을 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P76

이 소송 준비를 지켜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순수주의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싶다.
증언자는 어떤 보호장치도 없이 희생을 무릅쓰고 목숨을 내걸면서 할 때만 그 증언이 진실한 것인가?
증언자가 개인으로건 단체로서건 후원을 받으면 그의 증언이 진실성을 잃는가?
증언자가 놀고자 하는 욕망, 성적 욕망, 사치와 쾌락에 대한 추구를 갖지 않을 때만, 즉 성자聖子이고 성녀聖女일 때에만 그의 증언이 진실한 것인가?
증언자는 증언 이외의 것에서도 오직 진실만을 말하고 일절 거짓을 말하지 않을 때만 그의 증언은 진실한 것인가?
증언자의 삶은 모든 부면에서 일관되고 통일되어 있어야 하며 어떤 부분에 카메라를 갖다 대도 모두가 아름답게 보일 때에만 그의 증언은 진실한 것인가?- P76

권력과 제도언론이 효과적인 무기로 훔쳐 사용한 것이 바로 윤지오의 저 ˝영리하게˝라는 말의 왜곡이었다. 제도언론에 앞서 김수민이 그것을 계산적 ˝영악함˝으로 굴절시켰고 윤지오의 증언 실천을 ˝가식˝의 프레임 속에 집어넣었다. 그 프레임은 ˝네가 네 욕심 없이 오직 장자연만을 위해서 증언한다고 모든 걸 걸고 말할 수 있어?˝라는 식으로 나타났다. 순수주의, 순결주의를 척도로 내세우고 ‘당신은 순수하지 못하다, 순결하지 못하다‘고 선동하는 순수주의적 혐오 프레임이었다. ‘증언자는 순결해야 한다. 증언자의 실천은 희생과 헌신이어야 한다. 순수한 자만이 증언할 수 있다‘는 프레임.


- P109

이 순수주의=순결주의는 남성이 여성을 착취하기 위해 여성에게, 자본이 노동을 착취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씌어온 굴레이면서 동시에 그 착취를 비판하고 그것에 대항해온 운동들이 스스로 내면화해 온 거울 이미지다. 국민이 영웅을 기대하고 민중이 지도자를 기대할 때 그 국민과 민중은 그 영웅과 지도자에게서 순수를 기대하는 만큼 오히려 자기 자신이 순수하고 가진 것 없는 가난한 백성이 되어버린다. 이것이 근대의 과정이다. 탈근대화의 과정에서 국민/민중과는 다른 다중이 출현하지만, 그것은 민중의 자기 전화이며 그 마음 깊은 곳에 근대적 백성의 습성은 유전자처럼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이 순수/순결주의의 정동은 영리함을 견디지 못한다- P110

착취, 수탈, 국가권력 남용 등 우리 사회의 모순과 권력 집단의 주요 문제를 고발하는 이 증언 내용 중 아직 어느 것도 증거에 의해 반박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사법부에 의해 사실로 인정되거나 여러 증언에 의해 뒷받침되거나 새로운 증거에 의해 보강되어 왔다. 문제는 권력자들의 폭압이, 그리고 사람들의 눈을 혼탁하게 하는 센세이셔널한 매스미디어의 선정적 보도들이 증언이 던지는 진실의 메시지를 시민사회 관심사의 후경後景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폭압자들의 목적이 윤지오의 진술을 무력화하고 그 증언으로 인해 위기에 처할 수 있는 권력 질서를 옹호하며 훼손된 질서를 재구축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이 증언들은 어떻게 판명되었고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가?- P184

2019년 6월 검찰은 전 법무부 차관 김학의를 뇌물 혐의로 기소했다. 오랫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김학의의 성범죄 혐의는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고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되었다. 어떤 마술로 검찰이 그 들끓던 여론을 잠재운 것일까? 김학의에 대한 특수강간 혐의를 ˝무죄˝처분하기 위해 검찰이 사용한 핵심 기술이 바로 ˝성폭력˝(성접대 강요, 성상납 강요)에서 강요를 제거하여 성접대, 성상납으로 바꿔치기함으로써 그것을 ˝뇌물˝로 간주하는 것이었다.- P243

2019년 3월 4일 실명 공개와 그것에 대한 일차원적 대응에서 비롯된 이 지각적 착시로 인해 사람들은, ˝지난 10년 동안의 영상자료 등을 보면 윤지오 씨가 대외활동을 공개적으로 한 사례들이 많은데, 왜 숨어 살았다고 말했는지, 그것이 거짓말이 아닌지?˝ 따져 묻거나 비난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나의 경우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사람만을 만나며 숨어 살았던 것이 가명의 나 혹은 필명의 나가 아닌 ‘실명의 나‘였듯이, 윤지오에게도 숨어 살았던 것은 ‘증언자 윤지오‘이지 본명의 윤지오, 가명의 윤지오, 예명의 윤지오, 이름 없이 기호화된 윤지오가 아니었다. 본명, 가명, 예명, 기호의 윤지오는 ‘증언자 윤지오‘가 장자연의 죽음에 대한 증언자가 된 이후 다양한 위험들과 위협들 때문에 숨직이며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이 다양한 이름의 윤지오들의 존재야말로 윤지오가 ˝숨어 살았음˝을 뚜렷이 증명하는 지표가 아닌가?- P274

지각적 착시로 인해 윤지오가 숨어 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2019년 3월 4일에 있었던 이름 공개와 얼굴 공개의 사건을 보고도 마치 수십 년 전부터 자신이 윤 씨, 김지연 씨, 이순자 씨, A 씨, Y 씨가 윤지오 이고 윤지오가 윤애영이라는 것을, 또 그들이 모두 증언자 윤지오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계속 착각한다. 착각은 착각을 부르고 기만은 기만 속에 녹아들며 환상은 환상을 연출한다.
바로 이 환상의 극장을 파고든 것이 장자연 사회적 타살 사건의 가해자들이다. 이들은 ‘윤지오는 숨어 살지 않았다‘는 환상을 근거로 ˝숨어 살았다˝는 윤지오의 말을 거짓말로 뒤튼다. 또 오래전부터 증언자 윤지오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느끼는 지각적 환상을 근거로 윤지오의 이름 공개와 얼굴 공개를 사기를 위한 포석으로 조작한다.- P277

자신의 검은 실체가 증언을 통해 폭로될 것을 두려워한 이들은, 윤지오 2019년 3월 4일에 처음으로 그간 숨어 살았던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했다는 사실을 고의적으로 건너뛰면서 ‘윤지오가 과거에 숨어 살지 않았다‘를 부동의 사실처럼 만들어 내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그래야만 3월 4일의 이름 공개와 어굴 공개를 미래의 사기를 위한 공개-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주체적 결단의 사건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거짓말과 미래를 위한 사기를 영리하게 편집하는 범죄 행위로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교활한 작태인가? 이 얼마나 간악한 집단범죄인가? 이 얼마나 끈질긴 n차 가해인가? 이 끈질김을 통해 우리는, 윤지오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들은 다름 아니라 바로 장자연을 죽음에 이르게 한 바로 그 가부장제 권력 집단임을 유추할 수 있다.- P278

장자연은 누가 봐도 증언자이자 동시에 피해자이다. 그런데 한국의 기자들은 가해자를 찾아내 처벌하도록 만드는데 에너지를 집중하기보다 취재라는 미명하에 피해자의 동료 배우를 찾아다니며 사건을 오락거리로 가십화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에 대한 검증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이상異常 경향을 보인다. 기자들의 태도가 이런 관심사에 의해 지배되는 한에서 장자연의 동료 배우로서 윤지오가 기자들의 취재에 응했을 때, 그에게는 ‘가해권력에 대한 고발자=증언자‘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피해자 장자연의 피해자다움 유무에 대한 증언자‘로서의 역할이 주어질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윤지오는 이러한 역할을 떠맡기를 거부했는데 그것이 (기자를 피해)˝숨어 살기˝를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가해자에 대한 ‘고발=증언‘이라는 공세적 태도가 어려운 상황에서, 피해자 장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동료 배우였던 자신에게 권력이 강요하는 피해자다움(숨어 살기)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 P282

시민 사회가 약할 때 가장 먼저 혐오 행동에 나선 것은 경찰과 군대였다. 국가기구가 혐오 행동의 선봉대였다. 하지만 시민사회가 두터워진 후 혐오 행동의 선봉대는 국가기구가 아니다. 시민사회 속에서 일상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최초의 대응이 이루어진다. 성폭력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최초 대응에는 ˝아내들˝이 앞장선다. 아내는 ‘안 것‘을 의미하는 ‘안 해‘에서 나온 말이다. 경상도 말 ‘니 해라‘가 ‘너의 것으로 하라‘를 의미하듯이, ‘해‘는 ‘물건‘, ‘소유물‘을 의미한다. 그것은 남성 가부장의 시선에서 파악된 여성, 남성의 소유물로서의 여성이다. 여성이 이 ‘아내‘관념을 내면화할 때, 이 여성은 가부장주의의 파수꾼으로 기능하게 된다. 아내 의식이 페미니즘의 옷을 걸칠 때도 있다. 그러한 유사 페미니즘은 다른 모든 여성을 위험한 여자, 이상한 여자로 보는 보편적 의심증과 결합된다. - P308

아내-페미니즘은 여성의 권익을 지키고자 하지만 그 노력은 꽃뱀으로 의심되는 모든 여자로부터 자신의 아내 지위를 지키고자 하는 방어적 투쟁으로 된다. 그 결과 남성 권력자들이 자행하는 성폭력은 위험한 여자들의 꼬임(사기)으로 인해 자신의 남편이 겪는 피해로 인식된다. 아내-페미니스트들이 여성 사회를 내전의 무대로 만들면서, 자신들이 이상한 여자들이라고 보는 사람들을 상대로 벌이는 시민사회 내 투쟁을 지켜보면서 성폭력 체제와 가부장주의는 아마도 흐뭇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푸코가 『광기의 역사』에서 서술하고 실비아 페데리치가 『캘리번과 마녀』에서 서술한 마녀사냥은 결코 과거사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여기에서 국가기구와 남성 권력자만이 아니라 아내주의-여성, 아내-페미니스트들에 의해서도 생생하게 되풀이되는 잔혹사이다.- P309

신변위협의 문제에서 현실성은 행사의 차원이며 잠재성은 존재의 차원이다. 혼자 밤길을 걷는 여성에게 남성으로부터의 신변위협이 행사되지 않을 때도 여성이 신변위협을 느끼는 것은 신변위협이 잠재적으로 실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 신변위협이 행사되고 있을 때 신변위협이 실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신변위협이 행사되지 않고 있음이 현실일 때조차 신변위협은 잠재적으로 실재한다는 것이 사실이다. 윤지오는 지난 10년 동안 자신이 경험한 현실적 신변위협과 잠재적 신변위협에 대해 여러 차례 진술해 왔다. - P322

경찰 응답은 언론이 주장하고자 하는 것과 정반대의 것을 입증한다. 이것들은 현장조사와 탐문, 그리고 과학수사 후에 나온 것으로, 윤지오가 없는 사실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말했고 윤지오가 제기한 문제점들이 그 상황에서 일상적 지각과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의심할 만한 것들이었음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하물며 윤지오가 ˝보복이 우려되는 중요범죄 신고자˝였고 ˝국민적 공분이 큰 사건의 주요 증인˝이었음을 고려하면 반드시 의심될 만한 것이 윤지오에 의해 의심된 것임을 보여준다. - P329

경찰의 실제 발표문이었던 ˝신변위협 시도로 볼 범죄혐의점은 파악되지 않았다˝는 신변위협이 없었다˝와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전자는 신변위협의 행사를 부정하는 것이며 후자는 신변위협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북한이 남한을 위협하는 시도(침범 행동)를 하지 않는 순간에도 북한의 위협은 상존한다고 말한다. 칼을 든 사람이 칼을 휘두르는 위협 시도(범죄 행동)를 하지 않는 순간에도 사람들은 신변위협이 있다고 느낀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어두운 밤거리에서 지나가는 남성이 성폭행이나 성추행과 같은 신변위협 시도(범죄 행동)를 하지 않을 때도 여성은 신변위협을 느껴 심장이 뛰는 경험을 한다. 그런데 『조선일보』, 『뉴시스』, 『머니투데이』는, 변호사 박훈이 고발장에서 그랬던 것과 유사하게, ˝신변위협 시도로 볼 범죄혐의점은 파악되지 않았다˝는 경찰청의 발표를 ˝신변위혐이 없었다˝는 말로 왜곡한다.- P329

대한민국 경찰은, 증언자를 보호하려는 국민, 국민을 대의하는 대통령, 증언자를 변호하는 변호사, 그리고 증언자 자신등에 떠밀려 마지못해 증언자에 대한 신변보호에 나섰으나 증언자의 신변을 왜 보호해야 하는지,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타율적이고 무책임한 기관의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것은 반만 옳다. 왜냐하면 이들은 가해권력자들에 대해서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서 그들의 잘못을 은폐하고 먼저 나서서 보호하는 식으로 책임을 스스로 떠맡는 자발적이고 기민한 기관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경찰은 국민의 생명보호 의무에 속하는 증언자에 대한 신변보호 조치를, 시민사회에 ˝진실을 밝힐 힘˝을 증여하는 증언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답례행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은 윤지오의 신변보호 요청을 증언자를 자처하는 윤지오가 과장으로 꾸며낸 일대 소동처럼 발표함으로써 증인에 대한 불신감을 부추겼다.- P400

윤지오는 2009년에 사법경찰을, 2018년에 검찰을 경험한 후에 2019년에는 행정기관과 입법기관을 경험했다. 언론기관과의 마주침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누누이 이야기했으므로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 2009년 사건 직후부터 10년간 지속적으로 윤지오를 추적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국가기관과 친밀한 접촉이 있었던 셈이다. 2019년의 경험이 말해주는 것은 청와대가 검찰의 과거사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엄정한 조사를 요구하면서도 결코 엄정할 수 없는 검찰 자신에게 과거사 조사를 맡기고, 국회의원이 표면적으로는 증언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동행을 약속하면서도 증언자가 여론의 공격을 받을 때는 연락을 끊고 침묵하며, 행정경찰이 증인의 신변보호를 책임지겠다고 하고서도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을 증인에게 전가한다는 것, 즉 국가기관들의 보편적 위선이었다.- P403

국가의 위선과 이중성 때문에 윤지오는 10년 만에 다시 사법경찰과 접속하게 된다. 이번에는 참고인으로서가 아니라 피의자로서다. ˝10년 동안 일관되게 진술한 유일한 증인으로 걸어온 지난날이 드디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희망˝은 절망으로 곤두박질쳤다. ˝진실이 침몰하지 않도록 여태껏 그래왔듯 성실하게 진실만을 증언˝하려고 했지만, 변호사·작가·기자·유튜버·인스타그래머 등의 고소·고발자들은 윤지오의 새로운 ˝증언은 고인을 이용해 돈을 벌기 위한 사기˝라고 주장하면서 제소의 릴레이를 전개했다. 일찍이 ˝조선일보 방사장과 그 아들˝이 누구인지 안개 속으로 감추어 최초 증언자 장자연의 증언조서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고 그것을 허위 문건으로 만들고자 했던 대한민국 사법경찰은 이제 윤지오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함으로써 후속 증언자인 윤지오의 증언도 허위라는 고소·고발자들의 제소에 힘을 실어주고 장자연 사건 전체를 미궁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것이 나라인가? - P404

경찰의 답변과 이호영 변호사의 해석을 통해 우리는, 윤지오 증언자가 일반적인 적색수배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경찰이 ˝특별히˝윤지오 증언자를 적색수배 요청했으리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 ˝특별˝한 요청에 따르는 판단은 윤지오 증언자를 ˝사회적 파장이 크고, 수사 요구가 높은 중요사범˝이라고 본것이다. 나는 여기서 경찰이 오히려 ˝중대한˝범주 혼동, 범주 착오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증언과 범죄를 혼동한 것이다. 윤지오 증언자의 증언이 사회적 파장이 컸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의 재계·언론계·연예계·정치계·법조계를 망라한 모든 권력층의 부패와 성폭력 관행에 대한 기록인 장자연 문건과 리스트에 대한 증언이었기 때문이다. 이 증언이 가지고 온 사회적 파장은 분명히 컸고 증언이 지목하는 권력자들에 대한 ˝수사 요구가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P455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증언이 지목하는 가해 혐의자들에 대한 수사는 이 ˝큰 사회적 파장˝이나 ˝높은 수사 요구˝에도 불구하고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증언자의 증언으로 기소된 조O천조차 1심에서는 무죄선고되었다. 이러한 사법현실의 불합리함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경찰은 돌연 여기서 ˝수사 요구˝를 가해 혐의자가 아니라 증언자에게로 돌리는 불합리함을 계속한다. 윤지오의 ˝증언˝이 ˝사회적 파장이 크고˝ 증언이 지목하는 ˝가해 혐의자˝에 대한 ˝수사 요구가 높았다˝는 사실을, 경찰은 윤지오의 ˝범죄˝가 ˝사회적 파장이 크고˝˝윤지오˝의 범죄혐의에 대한 ˝수사 요구가 높다˝는 생각으로 바꿔치기 한다. 증언과 범죄, 증언자와 가해자를 순식간에 바꿔치기하는 이 마술을 통해 윤지오에 대해 내려진 적색수배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P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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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3-30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윤지오씨는 처음 증언하러 나섰을 때 몇 번 인터뷰를 보았는데 좀 시끄러지고 나서는 저도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거 같아요. 인용해주신 거 읽어보니까 ‘피해자다움’을 미끼로 윤지오씨의 입을 막으러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다락방 2020-03-30 17:03   좋아요 1 | URL
내용적으로는 참 답답한데요 작가가 되게 글을 잘 썼더라고요. 날카롭고 정확한 시선을 가지고 피해자의 편에서 얘기를 하려고 한달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더 방향이 잘 잡히고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자 조정환이 글쎄, 실비아 페데리치랑 마리아 미즈의 책을 낸 출판사의 대표더라고요?! 남자이면서 가부장제로 인한 성폭력에 대한걸 인지할 수 있다니 좀 놀랐어요. 단발머리님, 꼭 읽어보세요. 저에게는 정말 좋은 독서였어요.

단발머리 2020-03-30 17:07   좋아요 1 | URL
게다가 저자가 용감하기까지 하네요. 윤지오를 미워하는 세력의 거대함을 생각하면 더더욱이요.

다락방 2020-03-30 17:09   좋아요 2 | URL
네, 보통의 남자들이 선택하지 않는 걸 선택했죠. 윤지오의 말을 듣는 것 외에도 이렇게 책으로 써내는거요. 이 책 읽으면서 윤지오도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조정환도 참 명민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유부만두 2020-03-31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에 서민 교수가 윤지오 씨 사태(?)에 대해 책 내지 않았었나요? 그건 어떤 시각이었을까 궁금하네요.
그런데 게을러서, 더하기 속터지기 싫어서 찾아읽게 되진 않아요.
요샌 뉴스 보기가 너무 버거워요. 너무 화가 나서 현실의 가족들에게 퉁명스럽게 대하게 되고 매일 힘들어요.

다락방 2020-03-31 14:17   좋아요 1 | URL
읽어보진 않았지만 서민 교수님은 윤지오가 사기꾼이라는 주장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읽은 책에서도 서민 교수님이 언급되면서 비판하고 있고요.
조정환의 책은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희망적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에요.

개학 미뤄져서 더 힘드실텐데, 기운내세요 유부만두님 ㅠㅠ
전 마스크 쓰고 오랜만에 스벅가서 화이트초코모카 사가지고 왔어요. 달달하니 맛있네요..

공쟝쟝 2020-04-01 0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자에 대한 정보가 눈에 들어와요. 오홍!! 갈무리 출판사 좋은 책 많이 낸다고 생각중이었는데 ㅡ

다락방 2020-04-01 09:09   좋아요 1 | URL
최근에 본 정말이지 드문 남자사람이었어요. 뭐 직접적으로 아는 남자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후훗. 앞으로도 기대가 돼요.
 


처음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시작할 때는 이렇게나 오래 하게될 줄은 몰랐다. 언제까지 할것이다 라고 정해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오래 할 줄은 몰랐는데, 1년을 함께 하고 참여했던 사람들이 모여 '이걸 앞으로 더 해야할까 이제 그만둬야할까' 의견을 물었을 때, 모두가 계속하자고 답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 한 달에 한 권,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아니라 '읽자고 약속한' 책을 읽는 것은 사실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모두가 알겠지만, 시험기간에는 텔레비젼도 더 재미있고, 소설책은 더 읽고 싶어지는 거 아닌가.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시작하고 나서는 소설 읽을 때마다 얼마나 꿀맛인지 모른다. 으앗 너무 재미있어~ 하면서 읽게 된다니까?


그러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했기 때문에 엄청나게 두꺼운 분량의 책들도 읽어낼 수 있었다. 만약 이 같이읽기가 아니었다면, 백래시를,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를, 페미사이드를 한 달 내에 완독하는 일은 아마 없었을지도 모른다. 시도하다 던져두고 시도하다 던져두었겠지. 아, 특히나 보부아르 제 2의성!! 그건 정말 완독을 못했을 거다. 으...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는 단순히 우리가 같이 읽는다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글도 써야 한다. 페이퍼든 리뷰든 읽으면서 또 읽은 후에 글을 쓰다보니, 아무래도 그런 독후활동이 다음 독서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다른 책을 읽으면서 '아 그 책에서도 그랬지' 하고 떠올릴 수 있는 건, 나는 이 독후활동이 한 일이라고 믿는다.


얼마전에 3월도서를 완독한 신입멤버는(응?) 이 같이읽기 도서로 읽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책이 올해 최고의 도서라고 한다. 물론, 올해는 아직 9개월이나 남아있으니 얼마든지, 언제든지 번복 가능하지만. 

게다가 한 멤버는 요즘 글솜씨가 너무 좋아졌는데, 그걸 언급하자 그게 다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던 터였다. 우리랑 같이읽기 하고 또 글로 써내는 걸 하다보니 글솜씨가 점점 더 좋아지는구나, 하는 걸 그 분의 글을 읽으며 내가 느낀거다. 

이렇게 여러모로 좋은 점만 가득한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러니 어쨌든 2020년에도 계속 해보기로 하겠다.









자,

4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는, '베티 프리단' 의 [여성성의 신화] 입니다. 너무나 유명한 책이지만 아직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책. 여성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시작하게 되면 아마도 제일 처음 접하게 되는 이름이 베티 프리단이며 또 이 책일 것 같은데요, 같이읽기 하는 멤버중 한 명이 이 책을 아직 안읽었고 읽고 싶다고 해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저도 안읽었고... 그러니, 같이 읽어봅시다.


당연히,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던 분들도 이번에 참여해도 됩니다. 이 책 평소에 읽어보고 싶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이번 기회에 같이 읽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석 포함 7백 페이지가 넘는 책이라 같이 읽는 게 아무래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8백쪽 넘는 책들은 같이읽기를 했기 때문에 다 읽을 수 있었거든요. 


참여방법은 특별히 어려운 거 없습니다. 참여하겠다는 댓글 한 줄 달고 4월 내로 이 책을 완독하시면 되고요, 처음 같이읽기 할 때는 일주일헤 한 번 글 쓰기가 원칙이었으나 사실 아무도 안지키고... ㅎㅎ 쓰고 싶을 때, 그러나 반드시 한 번 이상은 이 책과 관련된 글을 써주시면 됩니다. 페이퍼, 리뷰, 백자평 모두 좋습니다.  관련 글을 쓰실 때에는 앞에 '[여성성의 신화]' 라고 붙여주시고요.


전자책도 있으니 이 무거운 책 가지고 다니기 힘들다 하시는 분들은 전자책으로 읽어도 좋겠지만, 제 경험에 의하면 두꺼운 책은 종이책으로 읽으면서 페이지가 점점 조금 남게 되는 걸 느끼는 게 좀 짜릿할 것 같아..... 네, 뭐 그렇습니다.



4월,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 입니다. 함께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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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겟타 2020-03-29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두꺼운 책을 읽을때 만큼은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더 선호하네요. 다락방님 말씀대로 어느정도 읽었는지가 눈으로도 확연히 느낄 수 있고 읽다가 바로 이해가 안갈땐 앞장도 휙휙 넘겨 보기가 아직까진 종이책 만큼은 아니어서요.. 그래서 이 책도 종이책으로 살 예정입니다. ㅎㅎㅎㅎ

다락방 2020-03-30 08:05   좋아요 1 | URL
그치요? 특히나 두꺼운 책은 종이책이 짱인것 같아요. 이 책도 꺼내보니(구입해둔지 오래) 정말 두껍더군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일찍 시작해야겠어요. 7백 페이지가 넘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어쩐지 두렵지만, 또 열심히 읽어봅시다. 화이팅!!

수연 2020-03-29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입했습니다! 다락방님 :)

다락방 2020-03-30 08:05   좋아요 0 | URL
저도 아직 읽지 못한 책이지만, 이 책은 수연님께 무척 좋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4월에도 열심히 읽어봅시다. 뽜샤!

유부만두 2020-03-31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여성주의 책 계속 읽으시는 분들 응원하고 존경합니다.
전 하라고 시키면 도망가는 청개구리과 인가봐요. 아니면 1월의 책이 너무 힘들어서 화들짝 놀랐는지도 몰라요.


다락방 2020-03-31 14:19   좋아요 0 | URL
이게 근육운동 처럼 계속 읽어야 더 읽을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3월의 도서였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경우, 같이 읽었던 분들 중 세 분이나 매우 인상적인 책이라고 해주셨어요. 수연님은 올해 최고의 책, 단발머리님은 상반기 최고의 책, 블랙겟타님은 손에 꼽을만한 책. 하하하하.
저희랑 같이 읽는 거랑은 관계없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부만두 2020-03-31 16:20   좋아요 0 | URL
제 근육은 두부근육 .. ㅜ ㅜ
추천하신 도서는 챙겨보겠습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 여성, 자연, 식민지와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 아우또노미아총서 45
마리아 미즈 지음, 최재인 옮김 / 갈무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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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읽어왔던 여성주의 책들이 이 한권안에서 반복된다.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 세상이 여성을 어떻게 취급해왔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책. 1986년에 나온 책인데 여전히 유의미하다는 것은 씁쓸하지 않은가. 이미 그 당시에 마리아 미즈가 분석해낸 문제점들이 여전히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결국 여성이 처한 상황의 문제다. 가사노동이 보이지 않는 걸 얘기하고, 페미사이드가 세계 곳겟에 만연한 걸 얘기한다. 그 오래전 마녀사냥에서부터 남성은 여성을 이용하여 자본을 축적하고 노동을 시키기 위해 일어났던 일들과 그리고 지금 일어나는 일들. 아니, 가부장제랑 자본주의 얘기할 줄 알았는데 왜 페미사이드가 나와? 이 모든 건 한통속이기 때문이다. 다 연결되어 있어.



그간 숱하게 읽어왔던 것들의 반복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짜릿하다. 게다가 이미 많은 젊은 여성들이 깨닫고 주장했던 것들이기도 하다. 마리아 미즈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체제를 뿌리째 흔들기 위해서 길게 보고 가야한다고 제시한 방법중에 하나가 바로 '소비에 대한 자율권'이다. 여성은 중요한 소비 주체이고 소비의 기둥이니 이 소비를 멈춤으로써 바로 시작할 수 있고 또 자본주의를 작동할 수 없게 할 수 있다는 것. 너무 짜릿하지 않은가. 바로 위에도 썼지만 마리아 미즈는 이것이 단시일내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소비하고 어떤 것을 소비하지 않을 지에 대해서 결정을 내리려면, 그 상품이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이것이 제3세계의 여성들을 착취함으로써 내게온 게 아닌가, 내가 잘 살게 됨으로써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더 못살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을 관찰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사치품의 보이콧을 얘기하면서 그리고 의류나 화장품에 대한 보이콧도 얘기한다. 나는 특히 이 부분이 짜릿했다.


페미니스트들이 탈코르셋을 주장했을 때, 그래서 화장품을 부수면서 그것을 인증했을 때 얼마나 많은 비아냥을 들었는지는 수시로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화장하는 게 탈코르셋이야'라는 주장 역시 나왔던 것도 알고 있다. 아름답게 보이려는 건 사람의 본능이지, 라는 말과 함께 '아름답게 보일 필요 없으니 꾸미지 말고 탈코르셋하자'는 주장을 얼마나 많이 까내렸는가. 그러나 누군가에겐 화장하지 않는게 탈코르셋이라면 누군가에겐 화장하는 게 탈코르셋이야, 라는 것 자체가 타당하지 않음을, 그것이 결국은 여성을 자유롭게 만드는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1986년의 '마리아 미즈'도 얘기하고 있다. 마리아 미즈는 '여성이 화작품과 새로운 섹시한 패션 유행을 공개적으로 보이콧한다면(p.459)'성차별적인 이미지와 여성을 규격화된 모델에 맞추려는 사회를 성공적으로 방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자율권은 소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어렵겠지만 생산에 대한 자율권을 이내 언급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삶과 몸에 대한 자율성을 요구한다. 당연히 이루어야 하는 것이지만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오지 못했던것처럼 수많은 방해공작들이 있을 것이고 또 단시일내에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여성이 여성의 소비,생산, 삶과 몸에 대한 자율성을 찾는 것이 함께 가야할 길이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체제를 서서히 무너뜨리는 일.




여성주의책을 그간 계속 읽어온 사람이라면, 다른 책들에서 했던 얘기들이 이 책에서도 반복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가부장제에 대해 읽었다면 여기에 그것이 있고, 자본주의에 대해 읽었다면 이 책에 그 내용이 있다. 우리가 강간과 페미사이드에 대해 읽었던 것들이 이 안에 있고 보이지 않는 노동에 대해 읽었던 것, 여성이 왜그렇게 오래 힘들게 일해야 하는지에 대해 읽었던 것, 우리가 왜 아름답게 보여야 하는지를 읽었던 그 모든 것들이 바로 이 책 안에 있다. 우리가 그간 읽어왔던 것들은 결국 다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이거봐, 이렇게 연결되어 있잖아' 하고 한 권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도 짜릿하게 제시해주고.



결론을 읽는 순간 짜릿해져서 좋았다. 그러나 이 책에 자꾸 튀어나오는 오타는 옥의 티다. 개정판으로 알고 있는데 개정판으로 내기 전에 다시 한 번 읽어보지 않았단 말인가. 갈무리 출판사는 다시 읽으면서 오타들 잡아내기를 바라고, 그리고 최근의 개정판에는 그 누구냐, 《혁명의 영점》, 《캘리번과 마녀》의 저자 '실비아 페데리치'의 서문도 추가되었다는데, 그걸 좀 가져와서 번역해주고 개정판 다시 내주길 바란다. 물론 이미 서문 너무 많지만 많은 거에 페데리치 꺼 더해도 나쁘지 않다.









오늘날에도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자율권을 갖지 못한 여성은 자신에게 강요된 것을 자발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 밖에는 심리적으로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다. 인간으로서 자기존엄을 모두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이 자신들을 억압하는 이들과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가장 깊은 이유이며, 강간당했을 때, 자신의 ‘명예‘와 가족의 명예가 침해당했다는 인식을 받아들이는 이유이다.- P353

강간은 기존의 계급과 기존의 남녀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된다. 사실 일어나는 투쟁은, 유력한 남성과 무력한 남성 사이의 투쟁이다. 여성은 이 투쟁에서 유력한 남성의 남성다움, 그들의 힘을 증명하기 위한 대상으로 사용된다.- P358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강압적인 노동관계를 통해 여성 노동을 갈취하는 것은, 따라서,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부분인 셈이다. 폭력은 자본주의적 축적 과정에 필수적인 것이지, 주변적인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그 축적 모델을 유지하기 위해 가부장적 남녀관계를 이용하고, 강화시키고, 심지어 발명해내야 했다. 세계 모든 여성이 ‘자유로운‘임금 노동자, ‘자유로운‘ 주체가 된다면, 이윤을 착복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제3세계에서부터 제1세계까지 가정주부, 노동자, 농민, 창녀 등 모든 여성이 공유하는 점이다.- P363

현대 기술을 통해 주간, 일간 혹은 연간 노동시간이 줄어들어도 남성은 가사노동을 분담하지 않는다.- P444

이런 해방의 과정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남성이 같은 방향으로 운동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가부장적 관계의 울타리를 깨고 나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가부장제에 반대하는 남성의 운동은 시혜적인 온정주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인간적 존엄과 존중을 되찾으려는 갈망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남성이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자기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겠는가?- P454

우리는 이 체제에 대한 우리의 충성과 공모를 당장 거부하기 시작해야 한다. 여성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희생자일 뿐 아니라, 다양한 수준에서, 질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이 체제의 협력자 역할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 세계 중산층 여성과 산업화된 국가의 백인 여성에게 특히 그러하다. 우리의 몸과 삶 전반에 대한 자율권을 다시 획득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가부장제에 대한 이런 공모를 거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P457

페미니스트 소비자해방운동은 이런 눈먼 상태에서 벗어나 눈을 뜨는 것에서, 상품의 실체를 보는 것에서, 상품 속에 있는 여성, 자연, 식민지에 대한 착취를 재발견하는 것에서, 그리고 우리를 말 그대로 여성,남성,동물,식물,지구 등으로 연결시키고 있는 시장관계를 진정한 인간적 관계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는 추상적인 상품 뒤에 있는 구체적인 사람을 재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가 어떤 상품이 우리 식탁이나 우리 몸에 닿기까지 어떤 길을 거치는지를 추적하다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 여행의 끝에서, 우리는 많은 경우 저개발 국가에 사는 가난한 남녀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P462

서구 노동계급이 생산 결정들, 예를 들면 생산의 자동화, 무기생산, 위험한 화학물질과 사치품 생산등을 받아들인 것은 정말 어리석다. 이를 받아들인 것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진보라는 추상적 생각에서 이루어졌다. 이런 전략으로는 일자리를 유지할 수도 없고, 파괴적인 생산을 피할 수도 없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남성 노동자는 ‘식구를 먹여 살려야‘하기 때문에 선택권이 없다는 주장을 내놓곤 한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핑계다. 왜냐하면 여성이 남성만큼 가족을 먹여 살리기 때문이다.- P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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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3-27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록달록 무수한 플래그가 멋집니다.

다락방 2020-03-27 12:14   좋아요 1 | URL
흑백을 다 써버리는 바람에 책상 위에 있던 칼라를 가져다 썼습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

반유행열반인 2020-03-27 13:06   좋아요 0 | URL
흑백이 조금 더 책표지에 어울리네요. 전 책에 저런 멋진 걸 붙여본 적이 없는...그러니 읽고 나면 남는 게 없고...

다락방 2020-03-27 15:19   좋아요 1 | URL
정리 잘해서 리뷰 잘 쓰시잖아요. 독후 활동으로는 리뷰 만한 게 없는 것 같아요. 리뷰 쓰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니까요. 계속 읽고 쓰세요, 반유행열반인님!

수연 2020-03-27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히 올해 최고의 책이라고 부를 수 있을듯 해요, 다락방님. 아직 2020년은 많이 남아있지만요.

다락방 2020-03-28 15:35   좋아요 1 | URL
맞아요, 우리는 남은 2020년에 더 좋은 책을 읽게 될지도 모릅니다. 힘내서 같이 읽어요, 수연님!
같이 읽기로 완독한 첫 책이 수연님께 강한 인상을 주어서 저는 너무나 뿌듯합니다. 하핫.

공쟝쟝 2020-04-01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어제 꿈벅꿈벅 졸며 인도의 지참금 살해를 읽다 잠들어서 완전 악몽 꿨어요. 암담함을 지나 저자가 초대하는 실천의 길로 어서 돌입하고 싶습니다 빠샤!
 

지난 주말에는 엄마와 함께 앉아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았다. 나는 그런 프로 잘 안보려고 하는데 엄마가 좋아하셔서.. 어쨌든 봤는데, 정작 엄마는 못보겠다고 들어가시고 나만 남아 끝까지 보았다. 그간 내가 존재도 알지 못했던 '벗방'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여자들이 벗는 방을 운영한다는건데, 그걸 보던 남자들은 메뉴에 쓰여진대로 어떤 행위를 요구할 수 있고, 그대로 bj가 해주면 거기에 따른 돈을 지불한다는 거였다. 그 안에서는 꽤 많은 돈이 오고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여자들은 그 많은 돈을 다 자신이 벌어들여야 했다. 그러나 그녀들이 거기서 가져가는 수입은 극히 일부. 그 방송의 직원을 모집했던 방송사가 수입의 일부를 가져가고, 기획사가 또 일부를 가져가고, 또 누가 일부를 가져가고...


그저 소통하는 방송일 줄 알고 들어갔다가 벗어야 한다는 걸 알고 여자들이 빠져나오려고 했을 때는 이미 계약서에 묶인 몸이었다. 남은 계약기간 동안 벌어들일 돈을 모두 지불해야만 그 계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인터뷰에 응했던 피해자중 한 명은, 돈도 안되고 계약서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어 눈감고 딱 한 번 벗는 방송을 찍었는데, 그 영상이 외국에도 유포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수습할 수 없었다고.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읽다보면 성매매 여성에 대해 나오는데, 성매매여성이 일반 여성들과는 다른 사람임을 알리기 위해 신발에 노란끈을 묶었다는 역사가 나온다. 성매매 여성, 너희들은 일반 여성들과는 급이 달라, 하고 그들을 무시했던 성구매 당사자인 남자들은, 그런 여성을 달리 취급하면서 정작 그들 자신은 떳떳했는데, 주말에 본 그알에서도 그랬다. 방송국과 기획사 모두가 떳떳했다. 애시당초 처음 그 벗방의 이상함을 찾게됐던 남자는 그 방송을 시청하던 도중 자신의 약혼녀를 보게 되었다고 했다. 제보자로 나왔던 또 한 남자는 이 벗방은 사기라고 분노했다. 그가 분노한 이유는 여성들의 성을 팔아서가 아니라, 그가 그 방송을 보면서 돈을 많이 잃었기 때문이었다. 돈을 잃게끔 하는 가짜 아이템과 가짜 회원들이 있다는 것. 그는 그것에 분노했다. 거기에 분노해서 제보를 하고 인터뷰에 응한다는 게 나로서는 당황스러웠다. 안부끄러워? 여자들한테 벗으라고 돈을 줘놓고서, 그건 안부끄러워?



벗는 것도 여자고 그 영상이 유출됨으로써 자살을 시도하는 것도 여자다. 숨어 사는 것도 여자고 빠져나오려고 애를 쓰는 것도 여자다. 그런데 그 일로 인해 오고가는 돈은 남자로부터 나와서 남자에게로 간다. 나는 '레이첼 모랜'의 《페이드 포》를 떠올렸다.






남성에게 자신의 몸을 파는 것보다 더 모멸적인 것이 있다면 또 다른 남성의 이득을 위해 남성에게 몸을 팔아야 할 때이다.- 《페이드 포》, 레이첼 모랜, P124












오늘 구독하고 있는 <뉴닉>에서는 엔번방 소식을 보내왔다. 엔번방 가입자 모두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청원은 백만명 이상이 동의를 했다.








여자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에 남자들이 돈을 쓴다는 게 너무 괴롭다. 남자들에게서 나온 돈이 남자들에게로 흘러간다. 여자들을 벗기고 괴롭히면서. 그리고 여자들을 협박하면서.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


그러나 이런 일은 지금이 처음도 아니고 유일한 것도 아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남자들은 여자들을 죽이면서 살았다. 여자들을 죽이고 괴롭히면서 만족을 느끼고 돈을 벌었다. 어제,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읽는데, 그 오랜 역사, '마녀 사냥'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이미 숱하게 다른 책들에서 읽고 아는 바이지만, 역시나 괴롭다. 반복해본다고 해서 괴로움이 적어지는 것도 아니고 약해지는 것도 아니다.






피해자가 마녀라고 자백해도 죽지만, 마녀라고 자백하지 않아도, 자신의 무죄를 주장해도 어차피 죽는다. 마녀라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고문하고 또 고문한다. 심한 고문에도 마녀라는 자백을 하지 않으면, 마술 때문에 고문을 이겨낼 수 있는 거라고 한다. 고문에 못이겨 나 마녀 맞아, 해도 죽는것이고 나 마녀 아니라니까, 해도 죽는다. 어차피 '저 여자 마녀인 것 같다'고 찍히는 순간, 그녀는 죽는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그 마녀의 재산도 다 몰수당한다.



교회법에 따르면, 마녀의 재산은 상속자가 있건 없건 간에 몰수해야 했다. 몰수된 재산의 절반 이상을 정부가 전유했다. 재판에 든 비용을 공제하고 남은 모든 것은 정부 재정으로 들어갔다. 1532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가 공포한 '형사법전'에 따르면 이런 몰수는 불법이었다. 그러나 이 법은 그저 종이조각일 뿐이었다.

마녀 사냥이 돈과 재산을 모으는 욕망의 원천이라는 사실은 특별 위원회로 이어졌고, 특별위원회는 더 많은 사람을 마녀와 마술사로 모함했다. 피고가 유죄 선고를 받으면, 가족은 모든 재판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위원회 위원들이 매일 먹는 식비와 술값에서부터 시작해서, 화형에 쓰이는 땔감까지 이들이 지불해야 했다. 또 다른 돈을 버는 방법은 마녀 혐의를 받은 이를 가족으로 둔 부자집에서 그 가족을 석박 시키기 위해 학벌있는 판사와 변호사에게 주는 비용이었다. 이는 또한 가난한 사람이 유독 많이 처형된 이유이기도 했다. (p.195)



봉건계급(특히 좀 더 작은 공국의 제후로, 도시의 신흥 부르자우나 더 큰 공국의 제후와 경쟁하기 힘든 이들)뿐 아니라 도시의 자산가 계급도 마녀재산의 압수를 통해 자본을 축적했다. (p.197)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남자가 여자들을 죽여서 살았음을, 남자가 여자를 죽여서 부를 축적했음을. 벗방에서도 엔번방에서도 그 어떤 여자도 이익을 보지도 않았다. 부를 축적할 수 없었고 기쁨을 얻지도 못했다. 도망칠 기회를 잡아야 했고, 숨어야 했다. 죽는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자들은 웃고, 유출하고, 유포하고, 즐거워하고, 돈을 벌었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죽여서, 여자들을 괴롭혀서 살아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엔번방 26만명의 신상공개를 요구한다. 돈 내고 본 게 무슨 잘못이냐고 말하는 남자들이 누구인지, 그렇게 뻔뻔하다면 신상을 공개해 두려울 게 무어랴. 여자들을 괴롭히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자본을 축적한 게 누구인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동안 그런 삶을 산 자들이 누구인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면서, 이제 그 일을 더는 못하게 해야 한다. 손가락질 해야 한다. 저거봐, 여자들 괴롭히면서 즐거워한 남자야. 저 남자가 바로 여자를 죽음으로 이르게 하고 자본을 축적한 남자야. 우리는 그렇게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해야 하고 비난을 해야 한다.

어제는 국가공무원 5급 공개채용 합격후 연수 도중 여성 연수생의 신체를 몰래 촬영해 적발된 남자가 연수원에서 퇴학당한 걸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내 승소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여성의 신체를 불법촬영해놓고 퇴학이 과하다며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하다니, 그 뻔뻔함은 대체 어디에서 나올까.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들.

벗방의 남자 제보자들도 자신들이 입은 피해 때문에 빡쳐서 나온거지, 여자들의 고통에 죄책감을 느껴서가 아니었다. 불법촬영 당한 여성이 얼마나 괴로울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는 남자는, 자신의 퇴학이 과하다고 한다. 무엇이 과하고 무엇이 덜한가. 더이상 여성들이 죽음으로써 남자들이 살고, 남자들이 자본 축적하는 걸 방치해서는 안된다.



엔번방 가입자 전원 신상공개를 요구한다. 그리고 전원 처벌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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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3-23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엔번방 가입자 전원 신상공개 요구합니다.
앞으로도 벌어질 범죄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더라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다락방 2020-03-23 10:33   좋아요 1 | URL
시간이 지나도 왜 그들은 나아지지 않는걸까요, 단발머리님...
마녀사냥 부분 읽는데 너무 빡쳐서 ㅠㅠ

스타브로긴 2020-03-23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시패스한 놈이 성범죄 저지르고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소송까지 제기했었군요. 저런 고시 후배 들어올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군요..

다락방 2020-03-23 12:05   좋아요 1 | URL
같은 직장에 근무하게 될 여자들은 두려움과 분노를 느낄테죠.

스타브로긴 2020-03-23 12:59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남자 여자가 아니라 인간으로 분노하여야 합니다.

공쟝쟝 2020-03-23 22:26   좋아요 0 | URL
우리 남녀 편가르지 말아요 웅앵웅... 이 이슈가 가시화되고 처벌이 논의 되게되는 과정까지의 여성주의자들의 분노와 목소리를 스킵하면 안되죠 ㅋㅋㅋ 인간으로 분노하기 전에 맥락 살피세요 ㅋㅋㅋ

공쟝쟝 2020-03-23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구한다 요구한다 요구한다!

다락방 2020-03-24 07:41   좋아요 0 | URL
여자 죽이지 말라는 게 왜이렇게 힘든건가요 쟝쟝님. 여자들은 계속 부르짖는데 결과가 되어 나오기는 너무 오래 걸리네요. 그나마 지금도 총선 때문에 부랴부랴 반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아닌지...

공쟝쟝 2020-03-24 08:55   좋아요 0 | URL
그래도 계속해서 공론화하고 목소리 낸 여성들 덕에 이정도의 처벌논의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예전부터 엔번방 함께 청원해달라고 다락방님도 올리고 하셨잖아요!! 저들은 안바뀌겠지만 우리 힘을 키워요 빠워!!!! 다 뚝배기 깨자!!

잠자냥 2020-03-23 2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주빈과 26만명 다 까발릴 때까지!!!

다락방 2020-03-24 07:42   좋아요 0 | URL
어제는 여러가지로 기운없고 속상하고 그랬는데, 그래도 지치지 말아야겠지요. 지치지맙시다, 잠자냥 님!
 

나는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 《시인》의 첫문장을 외우고 있다. 아주 강력하고 짧아서 외우기에 전혀 어렵지 않았다.




'나는 죽음 담당이다' 라는 첫문장. 첫문장만 보면 도대체 어떻게, 왜, 죽음 담당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으면서 확 빨려들어가지 않나.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나는 죽음 담당이다'라는 강렬한 첫문장으로 책을 시작할 수 있는건지는, 책을 읽어보면 알 일이다.



















세상에는 아주 유명한 첫문장들이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게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일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문장은 알아두고 있으면, 다른 많은 책들을 읽을 때도 도움이 된다. 수시로 안나 카레니나의 첫문장은 여기저기 인용되고 응용된다. 만약 그것이 안나 카레니나의 첫문장임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 문장들 속에서 각주를 찾아 읽어야 하거나, 제 때 감탄하고 웃거나 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나 일단 알고 있다면, 다른 책들을 읽을 때도 제대로 제 때에 감탄할 수 있다. 그러니 안나 카레니나 만큼은 읽는 것이 앞으로의 독서 생활에도 좋을 것이고, 최소한 첫문장만큼만이라도 알아두는 것이 앞으로의 독서 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하는 문장.




















이에 버금갈 정도로 유명한 첫문장이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두 도시 이야기를 읽으려고 책장을 펼치고 이 문장을 읽자마자, 아 좋다! 하고 감탄했으니까. 바로 이런 문장이었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무엇이든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알라딘 서재에서도 몇 번이나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읽어두는 것이 앞으로의 독서생활을 좀 더 낫게 만들어줄거라고 얘기한 바 있지만(박정현은 미스 그리샴으로 노래도 만들었다니까?), 두 도시 이야기도 마찬가지. 이 첫문장을 알아두는 것은 참으로 유용하다. 내가 이 책을 읽었고, 이 첫문장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팝송 가사를 검색해보다가 딱, 생각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그러니까 이 첫문장 얘기가 왜 나왔냐면, 그러니까 두 도시 이야기를 왜 했느냐 하면, 바로 이 가사 때문이었다.

너는 빛이고 밤이라고, 너는 치유이고 고통이라고 말하는 가사.


<Love Me Like You Do>  by Ellie Goulding


You're the light, you're the night
You're the color of my blood
You're the cure, you're the pain
You're the only thing I wanna touch
Never knew that it could mean so much, so much
You're the fear, I don't care
'Cause I've never been so high
Follow me through the dark
Let me take you past our satellites
You can see the world you brought to life, to life
So love me like you do, lo-lo-love me like you do
Love me like you do, lo-lo-love me like you do
Touch me like you do, to-to-touch me like you do
What are you waiting for?
Fading in, fading out
On the edge of paradise
Every inch of your skin is a holy grail I've gotta find
Only you can set my heart on fire, on fire
Yeah, I'll let you set the pace
'Cause I'm not thinking straight
My head spinning around, I can't see clear no more
What are you waiting for?
Love me like you do, lo-lo-love me like you do
Love me like you do, lo-lo-love me like you do
Touch me like you do, to-to-touch me like you do
What are you waiting for?
Love me like you do, lo-lo-love me like you do (like you do)
Love me like you do, lo-lo-love me like you do (yeah)
Touch me like you do, to-to-touch me like you do
What are you waiting for?
I'll let you set the pace
'Cause I'm not thinking straight
My head spinning around, I can't see clear no more
What are you waiting for?
Love me like you do, lo-lo-love me like you do (like you do)
Love me like you do, lo-lo-love me like you do (yeah)
Touch me like you do, to-to-touch me like you do
What are you waiting for?
Love me like you do, lo-lo-love me like you do (like you do)
Love me like you do, lo-lo-love me like you do (yeah)
Touch me like you do, to-to-touch me like you do
What are you waiting for?



아, 여러분. 글 너무 좋지 않은가. 정말 좋지 않은가. 나는 죽음 담당이다, 부터 시작해서 몇 개 안되는 단어들로 최고의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고, 서로 반대되는 것들을 나란히 써서 가슴을 들끓게 하고. 아니, 이거봐, 너는 빛이면서 밤이래.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이게 너무 말도 안되는 것 같지만, 그러나 우리는 익히 알지 않나. 누구나 저런 경험 있지 않나. 천국이면서 동시에 지옥이기도 한 경험. 그래, 줌파 라히리도 <지옥 천국>이라는 단편을 쓴 적이 있잖아. 위의 노래에서처럼 빛이면서 밤인 그런 감정을 누구나 경험해보지 않나. 허공에 떠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가 이내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 같은 그런 기분.


이 노래는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삽입된 곡인데, 이 영화에 삽입되기는 정말 적절했다 보인다. 주인공 '아나스타샤'는 그레이를 사랑해서 설레이고 행복했지만, 그러나 그레이가 변태라서...(응?) 괴로웠다. 그레이는 성관계시 가학적 성향을 갖고 있었고 다정한 로맨스는 자신에게 없다고 했더랬다. 아나스타샤는 그레이가 좋아서 그의 가학적 성향을 맞춰주고자 했었지만, 맞으면서 기뻐할 수는 없었다. 결국 맞고 눈물 흘리면서 '이게 니가 원하는거냐'고 묻고는 그를 떠난다. 사람에게는 언제나 선택의 순간이 주어지고, 그 때 우리는 행복과 불행중에서라면 당연히 행복을 선택하기 쉽지만, 그러나 불행과 더 큰 불행 앞에서라면 계속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울 것인가, 저것이 괴로울 것인가....


아나스타샤는 그레이를 사랑했으므로 헤어지기는 싫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남자한테 맞는 것을 사랑이라고 감내하며 살아가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못할 짓이다. 그것이 그의 '성적 취향'이라 해도 변명의 여지는 없다. 너만 웃고 내가 불쾌하면 그것은 농담이 아니듯이, 너는 즐겁고 나는 눈물나는 그것이 섹스일 리 없다. 그것이 섹스일 수 없다.


아, 근데 이런 얘기 하러던 거 아닌데.. 나는 문학의 위대함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데. 단어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이렇게나 좋은 문장이 되기도 한다는 걸 말하려고 한건데 변태 때문에 또 빡쳐버리고 말았네... <하이에나>의 김혜수가 주지훈에게 그런것처럼, 나 뜨거워질 때마다 누가 나 좀 남산에 데려가서 식혀줬으면 좋겠다.....




다시 본래의 의도로 돌아가서,

나는 문장의 기교 같은 것, 그러니까 문장을 잔뜩 꾸미려고 하거나,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 글을 읽는 것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도 않고. 그러나 위의 첫문장들처럼, 몇 개 안되는 단어들로 졸라 멋진 문장을 만드는 것은 너무 부럽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나는 쓰지 못할 문장들이 아닐까.

팝송 가사도 그런 면에서 좋다.


You're the light, you're the night


아 너무 좋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는 빛이고 밤이래. 무릇 사랑이란 이런 것이 아니던가. 그저 계속 저녁무렵이면 그저 계속 낮이면 그것은 열정적 사랑이 아니라 그저 꾸준한 관계 아닌가. 나는 사랑이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는 빛이면서 밤인 것. 그래서 나를 들끓게 만드는 것. 아아, 그러다 내가 망했지.. 그래서 내가 사랑에 망한거야... 그저 저녁무렵인것이, 그저 새벽인것이 더 나았을거야. 빛이면서 밤인거 좋아하다가 망했어...

괜찮다.. 나는 그저 봄날을 살면 되니까.



그나저나 내가 사랑했던 남자가 그레이도 아니었는데(그렇게 돈이 많지도, 그렇게 젊지도 않았다) 나는 왜 아나스타샤만 보면 나같은지 모르겠다. 아나스타샤에 내가 훅- 들어가버려. 나는 아나스타샤, 아나스타샤는 나... 어째서, 왜 때문에 그런가..나는 수시로 아나스타샤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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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03-23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는 빛이면서 밤.
빛일때 황홀함뿐 아니라 밤일때 절망스러움도 기꺼이 감수해야하는 것이군요 사랑은.
이 페이퍼 저는 정말 좋습니다 ^^

저는 다음부터 소설의 끝문장만 모아볼까요~

다락방 2020-03-23 10:23   좋아요 0 | URL
너는 빛이면서 밤, 너무 좋지요? 이렇게 몇 개 안되는 단어로 근사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건 정말 마술 같아요. 작가들이 괜히 작가들이 아니구나 싶어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아마도 단어를 잘 만지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좋다고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나인님. 쓰면서 저도 좋았습니다. 훗.

2020-03-25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25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