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코스트 블루스
장파트리크 망셰트 지음, 박나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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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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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0-06-19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예욬ㅋㅌㅌㅌㅌㅌㅌㅌㅌㅋㅋㅋ

다락방 2020-06-19 14:03   좋아요 0 | URL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잠자냥 2020-06-19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 씨에게 낚이셨군요. 저런.....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6-19 14:13   좋아요 0 | URL
저는 몹시 까다로운 독자인 것입니다!!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06-19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이 이거 사신다고 하셨을 때 아차 했어요. 말릴까 했음... 락방 님은 재미없을 텐데.... 하고 말이지요. 그것은 전형적인 용두사미 남성액션판타지 ㅋㅋㅋㅋ

다락방 2020-06-19 14:18   좋아요 0 | URL
제가 빛의 속도로 구매해버렸습니다...누구도 날 막을 순 없어!! 의 마인드로다가 ...... 하하하하하하하하하

2020-06-19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9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0-06-19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팩트 최고입니다
느낌표 백만개 드립니다.하하

다락방 2020-06-22 07:54   좋아요 0 | URL
아주 얇은 책인데 어찌나 지루하던지요 ㅠㅠ

비연 2020-06-20 1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관함 넣었었는데 바로 뺍니다...

다락방 2020-06-22 07:54   좋아요 0 | URL
비연님 다른분들 평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재미있다고 해서 저도 산거라... 전 너무 재미 없어서 ㅋㅋㅋㅋㅋ
 


















마침 무료로 떴길래 벼르던 《월드워 z》를 보았다. 책으로는 추천받은만큼 좋지 않았는데 영화는 책보다 나았다. 언젠가부터 좀비 영화 다 보고 싶어져서 이것저것 찾아보는데, 넷플릭스에서 보게된 《좀비랜드》는 차마 끝까지 볼 수가 없더라. 그건 보다 말았고 더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월드워z 는 집중해서 끝까지 보았는데, 어쩌면 좀비가 그렇게 자세히 클로즈업 되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제리'(브래드 피트)는 UN소속 조사관인데, 전세계에 나타나는 감염증상 때문에 원인을 밝히기 위해 평택(그렇다, 한국이다) 미군기지에 파견된다. 그러나 거기서도 뚜렷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해 이스라엘로 가게 되고, 처음 제리가 살던 미국에 좀비가 나타났던 때부터 평택과 이스라엘로 옮기는 그 모든 과정에서 그가 날카롭게 관찰한 결과, 건강하지 못한 인간은 물지 않는다는 걸 파악하고 일단 해결책을 찾게 된다는게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제리에게는 아내가 있고 또 아이들이 있었다. 그가 UN소속 조사관인만큼 그의 신분은 어디에서나 보장이 되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정부는 그에게 헬기를 보내 그의 가족들을 구해준다. 물론 정부는 '너희 가족을 구해줬으니 가서 원인 파악해서와' 하고 그를 부려먹지만. 그런 제리를 보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우선, 내 아빠 혹은 내 남편(애인)이 능력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자랑스러울 수 있지만, 너무 잘났기 때문에 이런 위기 상황에 가족들과 떨어져야 한다는 것은, 가족들에게 과연 자랑스럽기만 한일일까. 차라리 존재가 희미한 사람이었다면 우리끼리 더 붙어있을 수 있었을텐데. 아내는 남편이 건네준 휴대전화를 늘 들고 다니면서 남편으로부터 연락이 오기를 기다린다. 남편이 잘 도착했는지, 무사한지 내내 걱정이 된다. 너무 잘난 남자랑 함께 사는건 그 나름대로의 피곤한 점이 있겠구나 싶으면서 역시 잘나지 않은게 정답인가..라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거다. 그게 남편이든 아빠든... 사실 흔치 않은 아빠기는 하지.

그런 한편, 그가 어느 나라에가서 누구를 만나려고 하든 그가 UN 소속 조사관이라는 것은 그의 신분을 보장해준다. 넌 누구냐, 왜왔냐, 란 물음에 미정부 사람 바꿔주며 내가 누군지 말해줘~ 하면 어느 나라든 그에게 도움을 주는 것. UN소속 조사관이라는 신분은 정말 좋구나, 싶으면서, 또 그게 되게 뿌듯한거다. 내가 아닌데 왜 내가 뿌듯하죠... 그러면서 나는 내 안에 권력에 대한 흠모를 본다. 나는 권력을 좋아해.. 어디서나 통하는 신분이라니, 너무 좋잖아.....



이들 부부는 처음 좀비들을 맞닥뜨렸을 때 한 아파트의 가정집으로 피하게 되는데, 거기에서 그들을 받아주었던 가족들 중에 아들인 '토니'(이름이 토니가 맞는지 기억이 안난다. 찾아봐도 이 아이 이름은 안나오네.)와 함께 도망치게 되는데, 이 아이의 미래에 대해서도 염려됐다. 제리부부의 아이들이야 무사히 부모가 살아남으면 부모랑 이 일들을 극복하며 살아가면 되지만, 토니의 경우는 지금 부모를 다 잃었고 제리네가족과 함께 다니고 있는데, 만약 세상이 안정되면 그 후에는? 이라는 걱정이 생기는거다. 아직 아이인데, 혼자서는 도무지 살 수 없는데, 그렇다면 그렇게 가족을 잃은 피난민 단체나 이런 곳에 보내지게 되는걸까. 제리 부부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할까? 내심 이 상황이 끝나면 제리 부부가 토니도 함께 살게 해주고 함께 돌봐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내가 그 입장이 아닌 타인의 눈으로 보고 타인의 생각일 뿐이지, '내 일'이 된다면 기꺼이 내가 토니를 맡을 수 있을까? 나는 자꾸만 상황이 안정된 뒤의 이 아이가 걱정되는거다. 이 아이는 어쩌나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 아이의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좀비 영화를 보면서 내가 가장 궁금해하는 건,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나 빨리 감염(?)되어 좀비로 변해가는데, 그 안에서 나는 모든 책이나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끝까지 맞서 싸우고 도망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월드워Z에서도 이스라엘이 좀비의 공격을 받지 않는건 높은 벽을 세워서인데, 결국 좀비들은 그 벽을 타고 넘어와 순식간에 나라 전체에 좀비가 들끓는거다. 제리를 비롯해 모두가 도망치는데 나도 그럴 수 있을까? 그러니까 어떤 마음이 드냐면, 여기저기서 좀비가 튀어나오고 쫓아오는게 너무 두려워서 차라리 걍 좀비가 되자, 라는 마음이 생겨버릴 것 같은거다. 그런 마음으로부터 나는 달아날 수 있을까? 뒤에서 옆에서 쫓아오고 문을 닫으면 문을 부수려고 하는 그 존재들 앞에서 내가 끝까지 살아남자, 도망치자, 물리치자,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물려버리는 게 속편하겠어,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도망이나 숨는게 계속되면 누구나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지난 주말에는 머리카락을 자르려고 미용실에 갈 계획이었다. 집 앞에 새로 생긴 식당에서 식구들과 밥을 먹자고 얘기해 두었었다. 그런데 트윗을 통해서 이번 주말과 다음 주말은 제발 외출을 좀 자제해달라는 어느 의사의 협조 요청을 보게됐다. 그래, 나가지말자, 나가지말고 제발 조심해달라는 당부를 나부터 지키자, 하고는 토요일에 잠깐 마트를 다녀오고는 외출을 전혀 하지 않았고, 일요일엔 집 밖으로 한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나부터 조심하고 외출을 자제해야지, 그런 마음이었다.


그리고 월요일에 출근했고 퇴근을 하는데, 퇴근길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은거다. 아마도 월요일 퇴근길이라 더했겠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 안에서 갑자기 무력해졌다. 내가 아무리 주말에 외출을 안하면 뭐하나, 밥벌이를 위해 출퇴근을 하는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뒤섞이게 되는데. 그러면서 너무 무력하고 기운 빠지는거다. 내가 사람 많은 곳에 가지 않으려고 해도, 외출을 부러 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위험은 내게 찾아올 수 있을 터였다. 이 모든게 다 무슨 소용이람. 피하고, 숨고, 도망치고, 조심하고... 이런 모든 것들이 정말 지치는거다. 언제까지라는 기간이 정해지기라도 했으면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니 오늘 또 하루가 지났구나 이제 며칠 남았다, 하면서 목적지에 가까워지는 기분이라도 느낄텐데, 이건 아무것도 약속할 수도 내다볼 수도 없으니 자꾸 지치는거였다. 언제까지 조심해야할까. 언제까지 마스크를 써야 하고, 언제까지 멀리 사는 친구와 만남을 미루고, 언제까지 외출을 자제해야 하나. 사람 많은 곳을 피해야 하는건 언제까지 해야할까. 마음속에서 순간순간 '차라리 걸려버리는게 속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차라리 그러면, 그렇다면 더이상 조심하고 피하고 자제하는 것들을 그만해도 되지 않나. 걸리지 않으려고 하니까 이렇게 하루하루 지쳐가는 거잖아, 하게된거다. 자꾸 그렇게 힘이 빠지고 기운이 빠지는거다.



그런참에 본 월드워Z 에서 제리는 끝까지 싸운다.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옮겨가면서 이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도망치고 싸운다. 도대체 그런 에너지가 어떻게 나올까. 그는 자신의 가족과 세상의 안위를 걱정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걸까. 그런 것들이 그를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을까. 누구보다 더 많이 좀비를 맞닥뜨렸으면서도, 좀비의 눈앞까지 갔으면서도 '아, 차라리 물려버리는게 속편하겠다, 더이상 도망치지 않게' 라는 생각을 어떻게 머릿속에서 몰아냈을까. 자꾸만 지치고 약해지는 나를, 나는 어떻게 달래야할까. 나만 그런건 아닐텐데, 지금 이 상황이 나에게만 닥친 건 아니니 모두가 지치고 약해질텐데, 다들 좀비들에게 쫓기면서 차라리 물리는게 낫겠다, 하는 수시로 찾아드는 마음을 다들 어떻게 달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언제까지 이렇게 도망쳐야 해 그냥 물려버리자, 언제까지 숨어야 해 그냥 물려버리자, 하는 마음... 더이상 도망치기도 숨기도 싫어, 하는 마음..다들 어떻게 다스리고 있는걸까. 정신줄 꽉 잡고 약해지는 마음 다잡다보면 결국 제리가 그랬듯이 감염되지 않는 약도 찾아내고, 혼돈에 차있는 세상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그 순간에 함께할 수도 있겠지. 어떻게 정신줄을 꽉 잡나, 어떻게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나. 휴.



기운냅시다. 좀비로부터 끝까지 도망치자. 빠샤.





그나저나 브래드 피트 디게 멋지더라. 예전에 쥴리아 로버츠랑 나온 영화의 포스터에서(그 영화는 안봄) 브래드 피트가 면티셔츠 입고 있는 거 보고 되게 멋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영화에서도 머리는 ... 그러니까 헤어 스타일은.... 그 누구도 소화할 수 없는 헤어스타일인데... 너무 멋진것. 참 멋지구나, 브래드 피트는, 저 머리 누가 소화하냐 싶었던 거다. 내가 아는 남자한테 다 대입해봐도 노노... 브래드 피트니까 가능하다. 저런 단발 대체 누가 할 수 있는가.... 내가 좀 더 길러볼까, 브래드 피트 단발하게... 나도 좀 더 길면 단발 될 수 있어!




어제 페이퍼 쓴 《스펙타큘라 나우》의 주연들이 모두 다 본 사람들이라서, 아 근데 어디서 봤지, 어디서 봤지, 계속 생각해야 했다.





남주인 '마일즈 텔러' .. 분명 주연으로 본것 같은데 대체 어디서 본걸까... 해서 검색했더니, 맙소사, 내가 별로 안좋아하는 영화 《위플래쉬》그 남자였어. 아. 그래서 내가 본거구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주인 '쉐일린 우들리'가 너무 매력폭발하는데, 분명 이 여자도 어디서 봤는데, 주요하게 봤는데, 하고 하나도 생각이 안나는거다. 그래서 필모를 봤더니, 오호라, 내가 페이퍼 쓴 적도 있던 《어드리프트》의 주연이었다. 꺅 >.<

그리고 조연인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도 계속 어디서 봤지 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 《버즈 오브 프레이》의 석궁 킬러였어! 으하하하. '브리 라슨'이 고등학생으로 나오길래 대체 이게 언젯적 영화냐 봤더니 2013년 영화였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 다들 어릴 때였군요. 2013년... 꼬꼬마 시절에 다들 함께 모여 이 영화 찍었네요? 저는 2013년에 세기의 명저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를 냈지요....... 우걀걀걀걀


















좋은 시절이었다.....




책을 또! 샀다. 오늘 친구에게 '나 이거 병인걸까?' 묻기도 했다. 책이 또 왔다.




나는 여름이 좋은데 여름은 나를 별로 안좋아하는 것 같아서 슬픈 시간을 살고 있다. 그렇지만 여름에게는, 여름이 좋아할만한 것들을 좋아할 권리가 있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권리도 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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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6-18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사는 것이 병인양 하여라... 알라딘에 이런 병 걸린 사람들 많은... including me.. ㅠ
월드워Z는 저도 예전에 심지어 극장에서 보았는데, 브래드 피트가 잘 생겼다 와 좀비 무서워.. 라는 감상만 남은.
저도 오늘.. 책 삽니다... (휘릭)

다락방 2020-06-18 11:30   좋아요 0 | URL
비연님, 책 사는거 화이팅이요! ㅎㅎㅎㅎㅎ

좀비가 들끓는 세상에서 생을 포기하게 될것 같아요, 저는 ㅠㅠ 그러지 말아야지 ㅠㅠ
브래드 피트 멋있어서 브래드 피트 나오는 영화 좀 더 봐야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꼬마요정 2020-06-18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 샀어요!!! 우하하하 이젠 모르겠어요. 책에 파묻혀 살다가 죽죠 뭐 멋진 죽음일 것 같아요 ㅎㅎㅎ

인간의 생존본능이라는 게 정말 무서운 것 같아요.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도 일단 살려고 발버둥치는데, 그렇다고 인간성을 버리면서까지 살아남으려는 사람은 또 안 좋아하죠. 인간이 인간이게 하는 어떤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여튼 좀비는 무섭고, 브래드 피트는 좋아요!!

다락방 2020-06-19 08:25   좋아요 0 | URL
저 방금 또 샀어요. 오늘 내일 계속 책 박스가 도착합니다. 저는 미친것 같아요.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도 본능적으로 살려고 발버둥칠것 같긴 하지만, 어느 순간 지쳐서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좀비 영화 볼 때마다 해요. 어떻게 주인공들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이 세상이 좀비 영화의 축소판이라면 저는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되진 못할 것 같아요. 아, 이런 비극적인 생각 하지말고 기운내야지.. 휴..

저도 좀비 영화 너무 무서운데, 좀비 영화에는 무서운 것 말고 뭔가 더 있는것 같아요. 무서워서 그동안 보지 않고 부러 피하고 다녔는데 요즘엔 계속 보네요. 하하하핫.
브래드 피트 너무 멋있어서 어제 줄리아 로버츠랑 함께 나왔던 영화 <멕시칸> 봤어요. 둘이 연인인데 겁나 싸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브래드 피트, 줄리아 로버츠 너무 좋아요 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0-06-18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인사드려요. 잘 지내셨죠? 앗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안나실려나? ㅎㅎ
저는 브래드피트 얼굴에 무조건 몰표입니다. ^^

다락방 2020-06-19 08:2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바람돌이님! 오랜만입니다. 아니, 왜 기억이 안나겠습니까! 후훗. 우리 오래된 사이잖아요.
오랜만에 오신만큼 앞으로 자주 오실건가요?
브래드 피트 멋져요 우후후훗. 면티셔츠 입었을 때 제일 멋진 것 같아요. 으흐흐흐

blanca 2020-06-18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젠 지쳐요. 마스크 쓰는 것도 힘들고요. 그런데 더 힘든 사람들 생각하면 더 우울해져요. 평범하게 생각했던 일상이 이젠 꿈처럼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책을 끄응 더 많이 사고 있어요. ㅋㅋㅋ 2013년 다락방님 명저 나온 해 헉 저도 좋은 시절이었어요. 다락방님. 흑 우리 나이 올해 진짜 너무 힘들지 않나요?--;; 좋은 시절 또 한번 오겠죠?

다락방 2020-06-19 08:48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말씀처럼 더 힘든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무거워지는데, 그러다가도 불쑥불쑥 언제까지 이래야하나 싶고 그래요. 어서 빨리 코로나가 종식돼서 새로운 일상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그동안 살아왔던 일상이 한순간에 파괴될 수 있다는 걸 이렇게 깨닫네요.

블랑카님, 저도 이번 해 너무 힘들어요. 안그래도 어제 친구에게 ‘올해 뭐가 이렇게 힘들어 ㅠㅠ‘ 이러면서 징징 거렸어요. 언제 좋아질까요, 우리는? 친구는 그런 제게 이제 나이들수록 고독과 힘든 것을 끌어안고 함께 가야 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야 하는걸까요? ㅜㅜ

바람돌이 2020-06-19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년간 너무 바쁘고 마음에 여유도 없으니 팩도 딱히 안끌리더라구요. ㅎㅎ 올들어서는 마음이든 시간이든 왠지 좀 제 몸에 쌓여있던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아요. ㅎㅎ 거기다가 각잡고 컴퓨터 켜기는 귀찮은데 북플은 딱이네요. 앞으로 자주 오도록할게요. ㅎㅎ

다락방 2020-06-19 13:55   좋아요 0 | URL
네네네네 저는 책 읽는 게 아직까지도 제일 재미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중간중간 읽기 싫어서 안읽을 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책이 제일 좋아요. 히히히히히
 



spectacular 를 네이버 사전에 검색해보면 '장관을 이루는', '극적인' 이라는 뜻이란다. 그렇다면 이 영화 《spectacular now》는 '장관을 이루는 지금' , '극적인 지금' 정도의 뜻이 될텐데, 주인공 '셔터'(마일즈 텔러)가 언제나 현재를 즐기려고 하기 때문에 붙은 제목인 것 같다.


셔터는 고등학생이고 곧 졸업을 앞두고 있다. 주변에서는 셔터가 똑똑하다고 하는데 기하학 선생님이 하는 말이 무슨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도대체 이 학문을 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그는 술취해 쓰러졌다 깨어난 길바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학교의 모범생 '에이미'(쉐일린 우들리)에게 자기의 공부를 도와달라고 한다. 공부도 잘하고 이미 대학에 합격도 해놓았고 미래에 나사에서 근무하겠다는 꿈까지 가진 에이미는 그간 셔터가 만나온 여자들과는 달랐다. 셔터는 늘 현재가 제일 중요했고 미래가 없다는 듯 살았다. 그러니 매일 파티에 파티에 파티 연속이었고, 그 파티의 주인공이었다. 어느 파티에서나 셔터는 자신의 여자친구인 '캐시디'(브리 라슨)과 화려한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즐기는거다.


마침 캐시디랑 헤어지기도 했던 터라 그렇다면 에이미랑 파티에도 같이가자고 셔터는 생각한다. 그간 셔터를 보아왔던 친구는 왜 너랑 어울리지 않는 아이랑 사귀냐, 너가 그동안 만나왔던 아이랑 다르지않냐, 고 묻는데 이에 셔터는 여태 한 번 남자친구를 사귀어보지 않은 에미이를 '도와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쇼를 한다 진짜... 남자 없는 여자를 내가 도와주겠어..같은 그런 마인드는 상대에게도 못할 짓이지만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마음은 사실 에이미에게 끌리면서 폼 잡으려고 그렇게 말한거라면, 그건 그것대로 개멍청이.. 아, 그런데 내가 이래서 셔터를 비난하려는 건 아니고, 남자들의 후까시야 뭐 두말하면 입아프니까.


매력은 개인적인 것이다. 매력을 가진 내 개인을 말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매력이 내게 다가서는 순간, 상대로부터 매력을 느끼는 순간이 개인적이란 거다. 극중 '셔터'는 정말 내가 안좋아하는 타입이다. 미래가 없다는듯 파티를 즐기는 것도 그렇지만, 가장 싫은건 그가 허구한날 술을 마신다는 거였다. 그는 일자리에도 술을 가져가서 홀짝홀짝 마시고 운전을 할 때도 술을 마신다. 술을 마셔본 적 없던 에이미에게도 술통(뭔쥬 알죠, 그거 이름이 따로 있을 것 같은데 모르겠다..)을 선물하고 에이미도 홀짝홀짝 아무때나 술을 마신다. 저렇게 운전하기 전에 술마시는 거 진짜 너무 싫다, 생각하는데 결국 술도 마시고 감정도 격해져있던 어느 날에는 사고도 낸다. 사실 사고도 한두번도 아니지..


그런데 셔터는 나름 인기남인거다. 게다가 학교 내에서도 유명하고. 그래서 공부를 너무나 잘하고 똑똑하지만 스스로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남자친구도 한 번 사귀어본 적 없던 에이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셔터가 나같은 여자를 정말 좋아서 만날 리가 없다는 생각을 수시로 한다. 키스를 한 뒤로는 연락도 없어서 좌불안석(아아, 나 그거 알아. 나도 키스한 다음날 연락 오기전까지 이불킥을 수천번 했던 그 여름이 있다). 오늘은 공부를 하겠다는건지 어쩐건지도 연락도 없고... 어쩌면 졸업파티에 같이 가자고 한 것도 술김에 한 말일지도 몰라, 진심은 아니겠구나, 라고 당연히 생각하는 거다. 나로서는 도대체 이런 놈이 뭐가 좋다고, 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내가 여기 사는 이 나이의 나이기 때문이고, 저 나이또래의 학생들에게 학교의 인기남은 너무 핫한 동경의 대상이겠지. 어쨌든 그렇게 좀 위축되어 있는 거다. 나사에 들어갈 희망을 가진 여학생이 인기남이 자신과의 약속을 잊을까봐 기죽다니..



이게 남일이 아닌게, 나에게도 저런 일이 있었다. 오래전의 일인데, 나는 와 이렇게 멋진(?) 남자가 어떻게 나를 알게 되고 나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를 알고 지내기 시작하면서 나는 좀 위축되어 있었다. 나는 상대와 나를 비교했고 나에 비해서 상대가 훨씬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다 부끄러운 과거 몇 개쯤은 있는 거잖아요...


어느날 그와 메신저로 대화를 하다가 다가오는 금요일에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금요일이 될때까지 그로부터 별 말이 없길래, 장소도 정할겸 어디로 할래, 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그로부터는 '음, 혹시 우리가 오늘 만나기로 했어?' 라는 답이 왔다.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그때 내맘 뭔쥬 알죠... 나는 그 날을 기다렸는데, 그 약속 조차 잊고 있었다니... 그때의 실망과 절망을 도대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체념했다. '그럼 그렇지, 이 남자가 나를 만날 리가 없지' 라고. 나는 그에게 그렇다고 하자 그는 미안하다며, 자기가 그때 무슨 일이 있어 정신이 없던 까닭에 오늘 만나기로 했다는 사람이 세 명이나 있었다는 거다. 자신도 당황스럽다며 정말 미안하다고, 이미 처음에 말한 사람과 약속이 되어있다고 해서 오케이, 하고는 그 날 그를 만나는 것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포기했다. 그의 말이 거짓일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만, 그러나 내가 그에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 역시 사실이잖아. 그런 오전을 보내고 매우 서운하던 차에, 하아, 평소에 만나자고 했던 다른 남자1에게 갑자기 연락을 했다. '혹시 오늘 보는 거 가능해?' 라고. 그러자 그는 콜! 하고는 선물까지 사들고 나를 만나러 왔다. 그렇게 남자1과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웃고 떠들면서도 '이게 이게 아닌데..'하는 씁쓸한 마음을 도무지 다스릴 수가 없었고, 앞에 앉은 남자에게 집중도 되지 않았고, 술을 다 마시고 집에 바래다 준다는 남자에게 한사코 거절을 했다. 술자리에서 그가 화장실에 간 틈을 타 다이어리에 그 때의 감정을 시로 쓰기도 했는데(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졸라 문학여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문학적이다. 슬픔을 시로 승화시킨다. 예술인이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나에게도 저런 찌질한 과거가 있기 때문에, 에이미가 혹시나 하고 쪼그라들어 있는걸 보는데 '알아, 알아, 내가 그 마음 안다' 이렇게 되어버려.... 하아-



누구나 그렇지만 셔터는 셔터 나름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특별히 어떤 사건이 그에게 벌어진 건 아니었지만, 그는 오래전에 부모가 이혼하고 아빠를 그리워했던 것. 엄마는 아빠가 바람을 피웠다고 했지만 그건 엄마 말이고, 셔터는 아빠의 말도 들어보고자 오만년간 연락없던 아빠의 연락처를 알아내어 만나러 간다. 아빠를 그리워하는 셔터에게 아빠에게 연락해보라고 말해준 것도 그의 여자친구 에이미였고, 그런 아빠를 만나러 먼 길을 갈 때 동행해준 것도 에이미였다. 가서는 돈도 없고 여자에게 껄떡대기만 하고 한시간 뒤에 돌아오겠다는 약속도 깜빡하는 아빠를 보고 엄마의 말이 맞았다는 걸 깨달으며 좌절할 때 옆에 있어준 것도 에이미였다. 에이미는 그의 애인이면서 동시에 그를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해보지 못한 것을 시도해보게 하는 친구이기도 했다. 모든걸 다 알고 모든걸 함께 하는 사람. 셔터는 자신이 아빠와 똑같은 것 같아서 두렵고 에이미의 미래를 위해서는 에이미를 놓아주어야 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혼술을 할때면 텔레비젼을 보려고 채널을 돌리게 되는데, 평소에 텔레비젼을 보지 않았던 터라 무슨 프로그램이 있는지 잘 모른다. 지금 이때는 어떤게 방송하고 있나, 하고 편성표를 눌러보다 보면 보고싶다는 생각이 드는게 1도 없어서, 결국 유튜브의 운동뚱... 을 찾아보게 되는데.... 편성표에서 최근에 자주 봤던 제목이 <저녁 같이 드실래요> 였다. 편성표에서는 제목만 볼 수 있어서 제목만 보고 나는 <한 끼 줍쇼>같은 먹는 방송 예능일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엊그제 월요일, 갈비찜과 김치찜에 소맥을 말아 먹으면서(네?) 채널을 하나하나 돌리다가, <저녁 같이 드실래요>란 제목이 떠있는데 송승헌과 서지혜의 투샷을 보고, 오오, 이거 드라마야? 하게된 것. 그러다보니 얼마전에 송승헌이 제주도에 내려가 <나 혼자 산다>방송을 찍으면서 드마라 촬영차 왔다고 햇었는데, 이것이 그것?


송승헌은... 참.... 너무 잘생겼지만 매력없는 대표적인 인물인데, 아까도 얘기했지만, 매력이라는 것은 느끼는 사람에게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에게 잘생긴 것은, 잘생겼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매력이기도 할테니까. 그러나 나에게 다가서는 매력은 그것이 아녀...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결코 잘생김과는 거리가 먼..........(그만 두자, 보고 있으면 어떡해.)


아무튼 그래서 소맥을 홀짝이면서 이 드라마를 보게 됐는데, 내가 보고 있는 상황에서 파악한 바로는 김해경(송승헌)과 우도희(서지혜)는 자기들이 정한 '디너 메이트' 였다. 서로의 직장도 본명도 모른 채로 가끔 저녁을 함께 먹는 사이인 것. 그 전 회차들을 보지 않아서 도대체 어떻게 이름도 직업도 모르는 남자와 디너 메이트 같은 걸 할 수 있나, 나로서는 전혀 생각할 수도 없다 싶었지만, 서로의 요구가 맞아떨어진다면 뭐,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다. 그러니까 각자 그 당시 어떤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이러저러한 다른 관계 필요없고 가끔 밥이나 같이 먹을 사람이 필요했는데, 나도 그런데 너도 그래? 이러면 뭐, 그럴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별로 그럴 생각은 없다. 이름도 소속도 모르는 남자와 디너 메이트? 흐음.


아무튼 그런데 우도희 에게는 우도희에게 집착하는 전남친이 있다. 오 신이시여, 대체 왜 전남친들은 그렇게나 찌질한 집착남에 머저리들인가요? 왜 하나같이 그렇게 되는건가요? 왜죠? 아무튼 이 전남친은 자신과 우도희가 헤어질 수 없다고, 우도희도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해서 집착하는데(개새끼), 그 날도 우도희의 집앞에서 우도희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그를 거절하는 우도희의 손을 잡고 강제로 끌고 가려고 하는거다. 우도희는 그의 손을 뿌리치며 '이렇게 불쑥 집앞에 오는 것도, 팔을 잡는 것도 해서는 안되는 짓이다' 라고 얘기한다. 그렇지만 그 남자는 다시 우도희의 팔을 잡고, 아아, 우리의 백마탄 기사님인 송승헌 님께서 '그 손 놓으시지' 이러면서 등장하시는 겁니다.... 어이가 사라졌다..... 그러니까 '이러는 거 아니야, 이러면 안되는거야' 까지는 말할 수 있지만, 어쨌든 이 남자로부터 나를 구해주는 다른 남자..... 라니요. 그러다가 좀 씁쓸해졌다. 그럴 때 이 남자를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거, 나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하게 주춤하게 만드는 게 다른 남자여야만 가능하다니. 만약 혼자였다면 나는 그 위기를 피할 수 있었을까. 너무 좆같은 상황 아닌가. 약속도 없이 찾아오는 거, 싫다는데 붙드는 거, 모두 구질구질한 전남친의 잘못인데, 그런데 그 상황에서 피하기 위해서는 나 혼자만의 힘으로 안된다는 거, 너무 엿같잖아. 결국 다른 남자가 등장해야만 쪼그라들어서 사라지다니...



아무튼 이 전남친과 전여친은... 참... 뭐랄까... 그러니까 김해경에게도 전여친이 있다. 오래 사귀어온 전여친인데, 이 전여친 역시 자신이 허락하면 김해경이 자신과 다시 잘 될거라고 생각해. 어제 본 방송에서 다시 잘해보고자 하는 전여친에게 김해경은 '나는 너에게 화가 남아 있지도 않고 미련이 남아 있지도 않고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데, 와, 그 말에 진짜 공허해지는 거다. 정말 아무것도 없구나, 아무것도. 그러면서 나 자신에 대한 반성모드로 들어갔다. 나도 결국은 그런 전여친 중에 하나가 아닌가. 상대는 내게 화도, 미련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데, 나 혼자 뭔가 잔뜩 남아서 터뜨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살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거다. 김해경의 전여친에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정리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내가 이걸 지금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주제인가 싶었던 것. 가슴이 시리네요...



우도희는 알고자 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김해경의 이름과 직업을 알게 되고, 그가 이름과 직업을 가짐과 동시에 그와의 관계가 그려진다. 그러니까 그는, 우도희가 함께 일하는 사람의 전남친이고, 그여자는 전남친에게 죽고 못살고...그렇다면 이 관계는 더 진행하지 않는게 맞고..해서 김해경을 불러내 이제 밥먹는 사이 그만두자고 말한다. 우도희에게도 그리고 김해경에게도 상대에 대한 마음이 생겨나고 있는 터에 이런 결정이라니, 우도희도 마음이 아프고 영문을 모르는 김해경도 마음이 시리다.


내가 어제 본방을 보기로 결정했던 건, 그 후에 김해경의 태도 때문이었다. 김해경은 이대로 디너메이트를 끝내고 싶지 않다. 그녀에게 마음이 생긴 까닭이고 자꾸 생각나는 까닭이다. 그래서 우도희를 찾아가 자신의 명함을 건넨다. 이 이름이, 이 번호가 나다, 이 사람과 다시 연락하고 싶다면 이 명함을 보고 연락하면 된다, 고. 나는 이 장면이 너무 좋은거다. 나는 거짓말을 싫어하고 숨기는 걸 싫어한다. 내가 누군가를 숨기는 것도 싫고, 누군가가 나의 존재를 숨기는 것도 지독하게 끔찍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가 누군가를 만난다면 나는 그 일에 대해 세상 당당하고 싶고, 상대 역시 그러하기를 바란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숨겨야 할일이 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진 않다. 살다보면 그러나 그런 일이 있게 마련이고, 나 역시 숨겨야 하는 몇몇 관계들이 있었다. 그런 관계들 틈에 놓여있을 때는 만족과 행복을 크게 가져갈 수가 없다. 만족과 동시에 한 편에 우울함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환한 대낮에 만날 수 있는 사람, 누군가가 물었을 때 머릿속에서 이것저것 지우고 꾸며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이 나는 좋다.


김해경이 환한 대낮에 우도희를 찾아와 명함을 건네는 것은 이 모든것의 상징으로 느껴졌다. 나는 여기에 속해있어, 이런 일을 해, 이런 이름을 가졌어, 이것이 내 번호야, 앞으로 니가 나를 만나게 된다면 이렇게 나를 표현하면 돼, 라는 모든 것들의 상징. 나는 명함을 건네는 것이 너무너무 좋았다. 업무적으로 만난 것도 아니고 그간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했던 사이에서 건네는 명함은, 내게 예의바름이었다. 그 장면이 너무 좋았고, 그 장면이 마지막이어서 그 뒤가 궁금해지는 거다. 정장을 입고 찾아와 명함을 건넬 때의 김해경은 무척 매력있는 남자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예의바른 사람을 좋아했다. 깍듯한 사람, 숨길 것도 없이 정중한 사람. 그러나 나는 숨겨야 했던 사람도... 그만두자, 이런 얘기는.




















수이와의 연애는 삶의 일부가 아니었다. 수이는 애인이었고, 가장 친한 친구였고, 가족이었고, 함께 있을 때 가장 편하게 숨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수이와 헤어진다면 그 상황을 가장 완전하게 위로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수이일 것이었다. 그 가정은 모순적이지만 가장 진실에 가까웠다. - <그 여름>, 최은영,  p.253




최은영의 <그 여름>에서 위의 구절은 정말 핵심적인 구절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애인, 나의 연인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사람, 모든 얘기를 나눌 수 있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내가 애인과 헤어졌다는 얘기, 이렇게나 좋은 친구와 헤어졌다는 얘기를 가장 잘 들어줄 사람도 이 사람인데, 그런데 그 사람과 헤어진거라 더이상 말할 수 없는 상황.

연인과 가장 친한 친구가 한 사람인 것은 그렇다면 축복인가, 아닌가.



















작아. 귀여워. 엉덩이가 예뻐. 진짜 반투족이야. 슈그는 나한테 모든 걸 다 말하는 데 버릇이 들어서 쉬지 않고 이야기를 쏟아냈는데, 갈수록 더 들뜨고 사랑에 빠진 사람 같아 보였어. 그녀가 그의 앙증맞고 작은 발이 춤을 출 때에 대해 이야기를 마친 뒤 다시 금갈색 곱슬머리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내 기분은 진창에 처박혔지.
그만해, 슈그. 나 죽을 것 같아. 내가 말했어.
그녀는 하던 말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어. 슈그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고 얼굴이 일그러졌지. 아, 셀리. 슈그가 말했어. 미안해. 그냥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던 건데, 나는 늘 너한테 이야기하니까.
말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면, 나는 이미 앰뷸런스를 탔을 거야. 내가 말했어. -《컬러 퍼플》, 앨리스 워커, P321




셀리는 슈그를 사랑했고 슈그도 셀리를 사랑했다. 이들은 오래 사랑했고 앞으로도 오래 사랑할거라 생각했는데, 슈그에게는 '새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새로 사랑하게 된 귀여운 사람에 대해 슈그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셀리에게 조잘조잘 수다를 늘어놓는다. 슈그와 셀리는 서로의 마음속 얘기까지 다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가장 좋은 대화상대, 그리고 연인. 연인이면서 가장 좋은 대화상대였고, 늘 모든 걸 이야기 나누던 사람이라서, 슈그는 했던대로, 습관처럼, 새로운 사랑에 대해 셀리에게 수다를 떠는거다. 그러나 여전히 슈그를 사랑하는 셀리는 어떤 기분이 되어야 했을까. 늘 나에게 수다 떠니까 이 모든 걸 다 열심히 들어주는 대화상대가 되어야지, 할 수 있었을까. 여전히 슈그를 사랑하는데, 슈그가 새로운 사랑에 빠진 얘기를 대체 어떻게 대화상대로서만 들어줄 수 있단 말인가. 셀리는 너무 아프다. 너무 아프고 괴롭다. 너무 아프고 고통스럽고 슈그의 사랑에 대한 말들이 자신을 죽이는 것만 같다. 죽을 것만 같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가장 친한친구이기도 하다는 것은 축복인가 아닌가.




셀리는 슈그를 사랑한다. 슈그가 사랑하는 사람, 가장 마음을 열었던 사람, 모든 대화를 나눴던 사람. 그렇다면 나는 여전히 슈그의 친구로서 슈그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는가. 그러나 다른 사랑에 빠졌다는 그 말은 이토록이나 고통스러운데!

그러나 셀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모든 폭력적인 전남친과 다르다. 그러나 셀리는 집착적인 전남친과 다르다. 셀리는 사랑에 대해 성숙한 태도를 지닌다. 그녀는 슈그가 다른 사랑에 빠진 것이 몹시도 고통스럽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질 권리가 슈그에게 있음을 '안다'. 슈그가 사랑해야 할 사람을 자신이 정해줄 수 없다는 것도 역시 '안다'.


나도 슈그하고 같이 다니고 싶기도 하지만 슈그라도 그럴 수 있는 게 다행이야. 때로는 슈그에게 화가 나기도 해. 슈그의 머리카락을 홀랑 뽑아버리고 싶을 만큼. 하지만 그러고나서 생각하지. 슈그는 자기 인생을 살 권리가 있다고 말이야. 내가 슈그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런 권리를 빼앗을 수는 없지.-《컬러 퍼플》, 앨리스 워커, P346



너무 좋은 친구였던 터라, 다른 사랑에 빠져 다른 사랑과 함께 있는 슈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그 우정이 그립다. 셀리와 슈그는 가장 좋은 친구였으니까. 셀리는 슈그가 돌아오길 바란다. 그 우정이 너무나 그립다.



유일하게 괴로운 건 슈그가 돌아온다는 말을 안 한다는 거야. 나는 슈그가 보고 싶어. 슈그와의 우정이 어찌나 그리운지 슈그가 저메인을 데리고 오겠다고 해도 두 사람 모두를 환영해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려고 애쓰다가 죽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뭐라고 슈그에게 누구를 사랑하라 마라 할 수 있겠어? 내가 할일은 그저 스스로 진실되게 그녀를 사랑하는 것뿐이야.-《컬러 퍼플》, 앨리스 워커, P346



아아, 나의 연인이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이기도 하다는 것은 축복인가 아닌가.




연인이 가장 좋은 친구이기도 하다는 것은 축복일 것이다. 그런 행운은 좀처럼 찾아올 수 없으니까. 연인이 가장 좋은 친구이기도 하다는 것은 가장 궁극적인 관계가 아닌가.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게 아닐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은, 마땅해야 하는게 아닌가. 그게 어려워도 실은 그래야 하는거잖아? 그러나 이건 위험이 너무 크다. 연인과 헤어졌을 때 가장 좋은 친구 역시 동시에 사라져버려. 리스크가 너무 크다. 고위험.. 최은영이 단편에서 말했듯이, 연인과 헤어지고난 후의 슬픔이나 고민을 가장 잘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친구 관계인 것을 유지하면, 셀리처럼 내 사랑의 새로운 사랑에 대한 얘기를 듣고 고통에 몸부림 쳐야해. 아아, 어쩌란 말인가.

나는 연인과 친구를 분리해둔 채로 살았었고 그것이 정신건강에 더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연인과 가장 좋은 친구가 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건 그 당시에 극도의 행복과 안정감을 주지만, 헤어지고 난뒤에 멘탈 찢기는게 장난이 아녀.. 최은영의 소설처럼, 내 모든 슬픔과 아픔을 다 잘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는 그와 헤어지기까지 내가 겪었던 고민들과 그와 헤어지고 나서 아팠던 일들, 그를 기다리는 마음, 새로운 사람을 만났던 시간들, 새로운 남자를 만났는데 섹스가 즐겁지 않았던 것들까지, 이 모든 얘기를 가장 잘 들어줄 사람이 그였는데 그 사람과 헤어져버려서 리스크가 너무 커... 나는 아직까지도 내 생각과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이 없다. 동성의 친구들조차 이해하지 못할 것들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그사람일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이 없다. 연인과 가장 친한 친구가 동시에 사라져버리는 건 인생에서 너무 치명적이야.. 그래서 친구만 가져올까, 생각해보지만, 그랬다가 셀리처럼 그의 말들로 나를 죽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아니야, 이제 좀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그런 것들을 다스릴 수 있다, 고 생각해보지만 그렇다면, 친구는 과연 나 혼자의 마음먹기에 따라 할 수 있는 것인가. 연인이든 친구든 나 하나의 의지로는 되지 않는다. 내가 내민 손을 상대가 잡아야 가능한 것인데, 나는 과연 무엇을 잃은 것인가...



그러니 연인과 가장 좋은 친구가 따로 있다는 것은 또 그런대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것이다. <저녁 같이 드실래요>에서 우도희는 전남친의 집착이 짜증나고 새로운 남자에 대한 호감이 자라는 시점에 항상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자신의 편이 되어주는 친한 친구가 있다. 혼자 침대에서 뒤척이기도 하고 혼자 중얼대기도 하지만 그래도 연락해주는 친구가 있다. 썸남때문에 고민이라고 하면 '저질러버렷!'하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다. 다쳤다고 하면 죽을 싸들고 오는 친구가 있다. 어쩌면 우리가 좀 더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연인과 가장 좋은 친구를 분리해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아 모르겠다. 연인이 가장 좋은 친구가 아닌건, 사실 연인으로도 별로라는 거 아녀? 그냥 다들 알아서 잘 살자. 마음대로 살아요.. 연인이 가장 좋은 친구이든 아니든, 건강한 관계 여러개 만들어놓고 한 사람에게만 몰빵하진 말자. 그것은 하이 리스크에 다름 아니여... 우리는 살아가야 할터이니...



제이슨 므라즈는 <Lucky>에서 가장 좋은 친구가 연인이 되다니, 이 얼마나 행운인가, 노래하지만, 오오, 제이슨 므라즈여, 그것은 하이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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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6-17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 시간 축복이라 생각했지만, 축복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 페이퍼를 읽고 나서 하게 됐어요. 한 사람이 나의 모든 면를 이해할 수 없다고도 생각하구요. 오후에 읽은 <빌레뜨>에도 셀리 같은 마음이 그려져서 전 무척 괴로웠다죠.
락방님 페이퍼 전체적인 내용은 좀 슬픈데 그런데도 전 몇번이나 웃었답니다. 남자들의 후까시야~ 뭐 이런 명문장 덕분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6-17 16:31   좋아요 0 | URL
연인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과 가장 좋은 친구가 되는게 너무 당연한 거잖아요.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연인이 되겠어요? 그런데 그걸 한사람이 다해주면 그 사람이 사라졌을 때.. 전 어떡해요? 오 마이 갓 영혼이 박살나는거죠. 제가 제 삶을 잘 지탱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래서 단단한 관계를 여러개 만들어두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단단한 관계는 그러나 원한다고 다 되는게 아니죠. 제가 상대에게 다정하고 마음을 열어야 상대 역시 저한테 그럴테니까요. 저는 여성주의 책 같이읽는 분들이 계셔서 너무 좋아요.. 우리 다정한 똑똑이들....

페이퍼가 슬픈데 웃음이 나는건 우리 삶이 그렇기 때문일겁니다. 살다보면 슬프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뭐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이 페이퍼는 삶을 녹여낸 뛰어난 페이퍼다, 뭐 그런 말이 되는겁니다. 엣헴.

단발머리 2020-06-17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제가 땡투했어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9월 도서에요. 부자되세요! 😤

다락방 2020-06-17 16:28   좋아요 0 | URL
네? 벌써 9월 도서를 사셨다고요? 8월 도서도 이미 준비된걸로 아는데, 아니, 비연님에 이어 단발머리님도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에 진심인 부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땡투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부자가 되는데 이렇게 도움을 주시네요. 복받으세요, 단발머리님. 샤라라랑~~

2020-06-18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8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8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8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셀리'는 열네살에 '엄마를 대신해야' 한다며 아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그 일로 아이를 둘을 낳게 된다. 아이들은 낳자마자 다른 집으로 입양보내지는데, 그렇게 스무살이 된 셀리는 이제 자신의 아이들을 돌봐줄 다른 남자에게로 '시집보내진다'. 그 결혼은 셀리가 원한 것이 아니었지만, 아빠의 손에서 이제 남편의 손으로 셀리는 넘어가게 된거다. 결혼해서 아빠를 피하게 됐지만 아직 아빠랑 같이 살고 있는 여동생 '네티'가 너무 걱정되고, 남편은 셀리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남편의 아이들은 말을 잘 듣지도 않고 셀리는 하루종일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남편은 몇 번 자기 위에서 움직이지만 이 섹스는 섹스가 아니고 셀리는 이것이 전혀 즐겁지 않다. 그러다 마을에 '슈그'라는 가수가 찾아온다. 아름다운 외모와 화려한 옷차림의 그녀는 남편 '앨버트'의 애인이었고, 남편은 여전히 슈그를 사랑하고 있으며, 몸이 약해진 슈그를 돌봐줘야 한다며 집으로 데리고 오기까지 한다. 셀리는 남편의 애인을 간호하는 일까지 떠맡게 됐는데, 그런데 셀리는 슈그를 돌보는 것을 전혀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동경한다. 못생긴 자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 아름다운 여자이며 인기많은 여자에 대한 동경인걸까, 생각했는데, 내 예상과는 다르게 셀리는 슈그를 사랑하게 된거다. 게다가 셀리가 알지 못했던 섹스의 기쁨을 알려주는 것도 슈그다. 셀리가 슈그를 사랑하는만큼 슈그도 셀리를 위하고 사랑하게 된다.



아주 오래전에 이 작품을 영화로 봤던 기억이 나고,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저러고 어떻게 사냐고 엄청 억울해했던 것 같다. 언제 한번 책으로 읽어봐야지, 하고 계속 미뤄두었던 책인데, 최근에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에서 함께 읽었던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 수차례 '앨리스 워커'가 언급되어 이번에는 읽어보자, 하고 드디어 만났다. 나는 이 책이 '인종 차별'에 대한 걸 중점적으로 다룰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여성차별에 더 많이 집중해서 놀랐고, 게다가 동성애가 나올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셀리와 슈그의 사랑에도 놀랐다. 시작부터 열네살 흑인 소녀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강간당하는 책의 책장을 넘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넘길때마다 힘든 얘기만 나와서 대체 이걸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했지만, 그러나 교육도 짧고 약하기만 한 셀리에게 싸워야 한다고 강해져야 한다고 너의 편이 되겠다고 말하는 여자들이 자꾸 등장하는 바람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당연히 드러나지만 성차별에 대한 것은 더 집중해 다뤄졌는데, 그래서 이 작품이 발표되었을 당시 상당한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컬러 퍼플』은 출간된 후 많은 찬사를 받는 한편으로 상당한 비난도 받았다. 작품이 출간된 1982년은 흑인민권운동이 타오른 1960년대에서 이십 년가량 지난 시기였다. 법적 평등은 이루었어도 현실의 인종차별은 엄연히 위력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흑인 작가가 인종문제보다 남녀문제를 더욱 두드러지게 제시하고, 흑인 남자는 '미개하고 폭력적'이라는 편견을 강화한다는 비판이 주였다. 하지만 그것은 워커가 흑인 중에서도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시대 흑인 여성이 겪는 직접적인 억압은 가까이에 있는 흑인 남성에게서 비롯되는 사회적 경향을 인식한 결과였을 뿐이다. 이는 워커 자신이 경험한 것이기도 했다. -해설, 고정아, p.376



흑인 남성에 대해 나쁜 면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비난이 가해진 셈인데, 흑인 남성의 나쁜 면을 앨리스 워커가 억지로 꾸며낸 것도 아니었다. 실질적 억압 앞에서 그녀는 소리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했고, 그러나 그것이 이미 사회적 약자인 흑인에 대한 나쁜 점이라면, 입을 다물도록 강요되는 거다. 이건 '패트리샤 힐 콜린스'의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 이미 지적되어졌던 바다.



인종단결을 초점으로 보면, 힐은 증언대에 서서 학대를 일삼는 흑인남성에 대한 흑인 "가족의 비밀"을 누설한 셈이다. 많은 흑인남성과 흑인여성이 보기에, 힐은 "더러운 세탁물"을 공공연히 방송에 내보냄으로써 흑인으로서 그녀의 주장이 지닌 진정성을 떨어뜨렸다. 어떤 사람은 토마스가 성희롱을 했다고 하더라도 힐은 흑인남성에 대한 연대심을 갖고서 입을 다물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문화비평가 리사 존스는 흑인들이 흔하게 보인 반응을 이렇게 지적한다. "텔레비젼에 나온 힐의 얼굴보다 그녀에게 일어났던 일이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말한다고 보상받는 것이 아니다. 성희롱을 당한 여성은 이중적 피해자가 되며 목소리를 내는 비판적 흑인여성은 여전히 흑인인종의 배신자로 낙인찍힌다."(Jones 1994, 120) -《흑인 페미니즘 사상》, 패트리샤 힐 콜린스, p.224


















가끔, 아니 자주, 사람들은 자신이 하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에 대해 깨닫지 못한다. 폭로가 있었다면 그 전에 폭로해야 할 사건이 있었다. 비난받아야 할 것은 사건인데, 화살은 폭로를 향한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통해 읽게된 컬러 퍼플인만큼,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 언급한 모든 것들이 이 소설 한 권에 다 들어가 있다. 책 속의 슈그와 메리 애그니스는 노래를 하는 사람들이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는 흑인 여성들이 블루스를 통해 자신들이 할 말을 그 안에 녹여내 부른다고 언급했던 바다. 슈그가 노래하고 또 조용히 혼자 흥얼대던 메리 애그니스에게 노래를 부르도록 제안하는 것 모두 그녀들이 위치한 자리에서 할 수 있었던 그녀들의 목소리 내기였다.



1992년에 애니타 힐이 클래런스 토마스의 성회롱을 공개석상에서 고발했던 기념비적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흑인여성이 오랫동안 흑인 남성에게 "변화"를 요구해 온 통로는 블루스 전통이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흑인여성은 블루스를 통해서 흑인남성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괜찮은 여자, 괜찮은 남자>라는 노래에서 아레타 프랭클린(1967)은 여성은 장난감이 아니라 남자와 똑같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인간이라는 서저너 트루스의 주장을 내세운다. "남자들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녀는 여성을 이용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식으로 남자임을 "증명"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프랭클린은 남자가 함께 있는 한, 그의 존중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노래한다. 그녀의 입장은 분명하다. 만약 그가 "긴 밤을 함께 보낼 괜찮은 여자"를 찾는다면, 그도 역시 "긴 밤을 함께 보낼 괜찮은 남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프랭클린은 지배적인 성정치에서 말하는 "괜찮은 남자"가 되기 위해서 "남자들 세상"이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거부하라고 촉구한다. 흑인여성을 존중하고 "긴 밤을 함께 보낼 남자"라면, 관계에 충실하고 경제적으로 탄탄하고 성적으로 적극적인 남성이라면, "괜찮은 여자"를 만날 수 있다는 말이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 패트리샤 힐 콜린스, p.269





뿐만 아니다. 책 속의 소피아는 인종 차별에 맞서 시장 부부에게 대드는데, 그 일로 12년의 감옥형을 선고받았다가 결국 시장 부부의 집에서 일을 하는 벌로 대신하게 된다. 소피아는 시장 부부의 아이들을 잘 돌보는데 그렇다고 그 아이들을 사랑할 수는 없다. 부모님이 오빠인 아들만 좋아해서 소피아를 유독 따랐던 시장 부부의 딸 '엘리너 제인'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소피아를 찾고 소피아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러나 소피아는 엘리너의 아들을 결코 사랑으로 봐주지 않고, 이에 엘리너는 흑인 여자들은 아이들에게 더 잘해야 하지 않냐고 말하는거다.



이해가 안 돼요. 엘리너 제인이 말했어. 내가 아는 흑인 여자는 전부 아이들을 사랑해요. 아줌마가 그러는 건 뭔가 부자연스럽다고요.

나는 아이들을 사랑해. 소피아가 말했어. 하지만 흑인 여자들이 네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다 거짓말이야. 그들도 나만큼이나 레이놀즈 스탠리를 사랑하지 않아. 그렇지만 네가 그런 질문을 계속하면 그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어떤 흑인들은 백인이 너무 무서워서 면화 기계마저 사랑한다고 말하는걸.

하지만 레이놀즈는 아직 아기라고요! 그 말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엘리너 제인이 말했어. -p.341-342



흑인들은 아이들을 사랑해야 하는데, 왜 소피아 아줌마는 내 아이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묻자, 소피아는 답한다. 네 아이는 자라서 똑같은 백인이 될거잖아.



나도 내 나름대로 문제가 있어. 소피아가 말했어. 레이놀즈 스탠리도 자라면 똑같은 백인 중 한 명이 되겠지.

.

.

내 말은 내가 네 아들을 사랑할 수 없다는 거야. 너는 네가 사랑하고 싶은 만큼 네 아들을 사랑할 수 있어. 하지만 결과는 감당해야지. 흑인들은 그렇게 살아. -p.343



흑인에 대한 모성 신화, 흑인은 특별히 더 모성이 발달되어있다는 이 만들어진 신화, 이에 대해서도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는 얘기하고 있었다. 흑인의 모성, 그리고 대드는 여자에 대한 이미지까지. 책속에서 소피아는 남편의 폭력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선다. 게다가 덩치도 커서 남편에게 맞는것보다 더 때릴 수 있다. 남편은 도대체 자신의 아내가 왜 고분고분하지 않은지, 자기 어머니는 아버지한테 맞고 고분고분하던데, 왜 이 여자는 엄마랑 다른지 너무 고민이 많고, 그런 아내에게 맞서기 위해 엄청나게 먹어대며 덩치를 키우려고 한다. 모성이 가득한 어머니, 대들지 않는 아내.



흑인숙녀 이미지는 또한 가모장 명제의 여러 측면과 닮아있다. 즉, 흑인숙녀는 모든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직종에서 일을 하느라 남자를 만나거나 돌볼 시간이 없거나 남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잊어버린 여성이다. 그녀는 너무나 일상적으로 남성들과 경쟁하면서 이러한 경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여자답지 못하다고 여겨진다. 고등교육을 받은 흑인숙녀는 자기주장을 너무 강하게 펼친다는 것이다. 또한, 그녀들과 결혼하려는 남성이 없다고들 한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 패트리샤 힐 콜린스, P.149



그러나 담론이 아니라 미국 흑인의 현실을 살펴보자면, 어머니를 찬양하는 흑인남성 중 너무 많은 이가 자기 자녀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 남성들은 점점 더 빈곤에 시달리는 흑인아이들의 양육을 아내나 여자친구에게 떠넘긴다(Nightingale 1993, 16-22). 미국에서 흑인어머니를 위한 경제적 사회적 지원이 약화되고 있는데, 많은 흑인 청년은 흑인남성의 과잉섹슈얼리티 신화를 신봉하고, 미혼의 십대 여자 친구에게 미래를 보장하지도 않으면서 아이를 낳으라고 부추긴다9Ladner 1972; Ladner and Gourdine 1984). 이들 역시 자신들이 관계를 맺어 온 여성들이 직면한 빈곤과 어려움을 잘 알고 있지만, 가모장과 강인한 흑인 어머니라는 통제적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미셸 월리스Michelle Wallace 가 지적한 대로, 많은 흑인남성은 흑인여성이 어머니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 패트리샤 힐 콜린스, p.301




흑인 여성은 백인의 아이까지 사랑하는 건 불가능했고 계속 남편한테 맞고 살 생각도 없었다. 소피아는 주인공 셀리보다 젊었고 셀리의 며느리였는데, 셀리는 이 강인한 며느리, 할 말을 하고 맞서 싸우는 이 젊은 흑인 여성을 질투하지만, 그녀로부터 싸워야한다는 것을 배운다. 아프리카에 선교활동을 하러간 똑똑한 여동생 네티도 셀리에게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노래를 부르며 돈을 많이 버는 슈그는 그녀에게 사랑을 알려준다. 다름 많은 흑인 여성들의 도움으로 셀리는 남편에게 맞설 수 있었고 피할 수 있었고 결국 남편과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읽고 이 소설을 읽게 됐으니 이 소설을 읽으면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떠올리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하겠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 책을 읽자마자 나는 6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인 《에코 페미니즘》도 생각났다. 남성의 여성에 대한 강간, 그리고 백인들의 흑인 땅에 대한 침략까지, 컬러 퍼플은 아직 다 읽지 못한 에코 페미니즘을 숱하게 떠올리게 만들었다.


















'반다나 시바'와 '마리아 미스'가 쓴 《에코 페미니즘》은 시작부터 너무 재미있는 책이다. 자, 일단 서문에 실린 글을 잠깐 훑어보자.



인터넷 폭력이나 인터넷 전쟁은 '파괴의 아버지'들이 개발해낸 새로운 발명품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 유전공학과 재생산기술이다. 둘 다 우리의 세계관과 인류학을 완전히 탈바꿈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유전학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주로 우리의 유전자가 결정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남성의 폭력은 그들의 유전적 구성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전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남성은 천성적으로 '전사'(戰士)인 것으로 간주된다. 전사가 아니라면 진정한 남자가 아니다. 하지만 여성과 기타 '적'들에 대한 남성의 폭력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남성은 천성적으로 강간범도 아니며, 모든 생명의 원천인 어머니 자연의 살해자로서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것도 아니다. 이 폭력은 약 8천년 전에 시작되었던 사회적 패러다임의 결과물이다. 그 이름은 가부장제다. -《에코페미니즘》,서문, p.34



컬러 퍼플에서 셀리는 아버지로부터 강간을 당하고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당한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그러니까 이 남자들은 딸과 아내인 여성에 대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 이 폭력이 유지되어지고 다음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그리고 이 남자에게서 저 남자에게로 전달되는 것은 다름 아닌 가부장제의 탓이다. 이 가부장제는 그렇다면 여자들만 파괴하느냐, 그 안에서 남성들도 파괴한다.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려고 혹은 자신의 강함을 드러내 남자임을 뽐내기 위해서 그들은 자신의 인격 또한 파괴하고 있고,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거스르지 않음으로써 그 안에서 굴복하는 것. 아내를 때리는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에게는 반항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컬러 퍼플에서도 나온다.



가부장제와 폭력의 관련성을 에코페미니즘을 통해 조금 더 살펴보자.




전통적 가부장제 구조가 자본주의 가부장제 구조와 혼종(混種)되면서 여성에 대한 폭력은 새롭고 더욱 사악한 형태를 띠어가고 있다. 우리는 불공정하고 지속불가능한 경제체제의 폭력과, 여성에 대한 폭력이 더 잦아지고 잔인해지는 현상 사이의 연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떻게 전통적 가부장제 구조가 점점 더 커져가는 자본주의 가부장제 구조와 결합하여 어성에 대한 폭력을 심화하는지 볼 필요가 있다. -《에코페미니즘》,서문, p.15


나는 지구에 대한 강간과 여성에 대한 강간은 밀접하게 연계된 것이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해왔다. -《에코페미니즘》,서문, p.17




반다나 시바와 마리아 미스는 여성에 대한 강간의 사례를 가져오면서 또한 빈민층과 자연에 대한 폭력도 가져온다. 여기의 것을 해결하기 위해 저기의 것을 망가뜨리는 일.




진작에 레이첼 카슨은 토양의 오염이 결국에는 사람들이 먹는 식품, 특히 모유에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는 점을 지적했는데, 이제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 북의 많은 여성들을 경악시키고 있다. 얼마 전 한 여성이 내게 전화를 해서 모유가 오염되었으므로 이제 독일에서 3개월 이상 모유를 먹이는 것은 안전하지 못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해결책으로 그는 인도 남부에서 안전하고 건강에 좋은 유아식을 생산하자는 계획을 제시했다. 그곳 건조한 데칸고원에는 '라기'(ragi)라는 특수한 기장이 자라는데, 생육에 물도 별로 필요 없고 비료도 필요 없어서 빈민층으 값싼 주식이라고 한다. 이 기장은 유아가 필요로 하는 모든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녀의 제안은 이 기장을 가공하여 통조림으로 만들어 독일에 유아식으로 수출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하면 모유의 오염으로 절망에 빠진 독일 여성들의 문제도 해결하고 가난한 인도 남부에서도 새로운 수입원을 얻게 된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개발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나는 빈민층의 주식인 라기를 세계시장에 내놓아 수출상품으로 만든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더이상 그것을 사먹지 못하게 되리라는 점을 설명하려 했다. 가격이 급등할 것은 물론이고, 그 계획이 실현된다면 북의 시장에 라기를 더 많이 공급하기 위해 머지않아 살충제 등의 농약이 사용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라기가 오염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사람들의 손에 생산을 맡기면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환경식민주의의 한 변형이라 할 만하다. 그에게 그것보다는 독일의 농업방식을 바꾸고 살충제 사용을 금히자는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자 그 방법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모유의 오염 문제는 비상사태라고 대답했다. 불안한 마음에 독일 여성들의 이익만을 생각한 나머지 그녀는 인도 남부 빈민여성들의 이익을 기꺼이 희생하려 하는 것이다. -《에코페미니즘》, 마리아 미스, p.144-146




마리아 미스의 글은 1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였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와 여러차례 겹치는데, 그래서 읽기가 더 수월하다. 위의 부분에 대해서도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서 비슷한 사례들이 나왔던 터다. 그리고 이 일이 컬러 퍼플에서도 등장한다. 네티가 아프리카로 선교활동을 하러 갔는데, 그녀가 도착한 마을에 백인들이 도로를 놓는 공사를 시작하는거다. 도로를 놓으면 다른 곳으로의 이동이 용이해지니 마을 사람들은 이를 환영했다.




그런데 올링카인들이 도로 건설이 '끝났다'고 생각한(어쨌건 그게 마을까지 이어졌으니까) 다음날 아침에도 인부들은 계속 일을 했어. 도로는 50킬로미터나 더 이어질 계획이었던 거야! 그리고 현재의 경로를 이어나가면 올링카 마을을 관통하게 되어 있었어. 우리가 잠에서 깨어 나왔을 때는 이미 도로가 캐서린이 새로 심은 양 밭으로 들어오고 있었어. 당연히 올링카인들은 들고 일어났지. 하지만 건설 인부들에게는 진짜 무기가 있었어. 그들은 총이 있었고, 발포 명령도 받았어, 언니!

정말 안타까웠어, 언니. 사람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어! 하지만 자기들 밭과 집이 무참히 파괴되는데도 아무런 대책 없이 서 있기만 했어-옛날에는 부족전쟁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일을 거의 생각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싸우는 법을 몰라. 그래, 건설 인부들은 작업반장의 지시를 한 치도 어기지 않았어. 도로가 지나가는 경로에 있는 오두막은 모두 철거됐어. 그리고 언니, 우리 교회, 우리 학교, 내 오두막도 몇 시간 사이에 더 철거됐어. 다행히 우리 살림은 챙겼지만, 아스팔트 도로가 마을 한복판을 관통하니 마을 자체가 내장이 뚫린 느낌이야. -p.226



하지만 최악은 그다음 이야기였어. 올링카가 이제 마을의 소유권을 잃었으니 땅에 대한 임대료를 내고 살아야 하고, 물에 대한 소유권도 없으니 물도 물세를 내고 써야 한다는 거였어.

처음에 사람들은 웃었어. 너무 말이 안 되잖아. 이곳은 그들이 까마득한 옛날부터 살았던 땅인데. 하지만 족장은 웃지 않았어. 우리는 그 백인과 싸워야 해. 그들이 말했어. -p.227



소설속에서 발생한 저 일들에 대해 반다나 시바는 에코페미니즘에서 실제 사례를 숱하게 가져오며 이렇게 얘기한다.



자국의 환경과 경제와 사치스런 생활양식을 유지하려는 부유한 나라들 때문에 간드마르단에 사는 부족들의 생존이 위협받게 된것이다. - 《에코페미니즘》, 반다나 시바, p.192



앨리스 워커는 컬러 퍼플을 통해 빈민국에 폭력을 가하는 부유한 국가를 얘기하고(총을 들어!), 흑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백인을 얘기하고(나한테 대들었으니 감옥에 가!),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남편과 아버지를 얘기한다(고분고분하게 내 말을 들어!). 이렇게 답답하고 가슴 아픈 와중에도 셀리는 기다리고, 기대를 하고, 사랑을 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런 셀리의 사랑에 대한 성숙한 태도였다.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한 사람이 이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할 때 셀리는 가슴 아파하면서고 '그 사람에겐 그 사람이 원하는대로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아마도 그런 식으로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은 사람들이 그녀의 주변으로 모여들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편지로만 구성된 소설이라 고통스럽지만 책장은 빠르게 넘어간다. 안에 담긴 이야기들이 많아서 휘둘리다보면 정신없이 마지막이 되어있고, 그렇게 결말을 만나고나면 훌쩍훌쩍 울게된다. 그렇다. 나는 오늘 아침부터 울어버리고 말았다. 사실은 할 말이 더 있는데, 너무 길어지니까 다른 얘기는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이 소설 뭐 이래, 나는 최은영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그건 다음에 다시...






어쨌건 내가 기도하고 편지를 썼던 신은 남자야. 내가 아는 다른 남자들하고 똑같이 행동해. 찌질하고 게으르고 비열하지.
그녀가 말했어. 셀리, 조용히 해. 하느님이 듣겠어.
들으라고 해. 내가 말했어. 그 남자가 불쌍한 흑인 여자의 말에 한번이라도 귀를 기울였다는 세상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 거야.- P255

슈그! 내가 말했어. 성경은 하느님이 쓴 거고, 백인하고는 아무 상관 없어.
그런데 왜 하느님이 그 사람들처럼 생긴 거지? 그녀가 말했어. 덩치만 더 클 뿐이잖아? 털이 좀더 많고. 왜 성경도 백인들이 만드는 다른 것들하고 똑같은 거지? 어째서 자기들은 온갖 짓을 다 하는데 흑인이 하는 일은 저주만 받는 거야?- P257

작아. 귀여워. 엉덩이가 예뻐. 진짜 반투족이야. 슈그는 나한테 모든 걸 다 말하는 데 버릇이 들어서 쉬지 않고 이야기를 쏟아냈는데, 갈수록 더 들뜨고 사랑에 빠진 사람 같아 보였어. 그녀가 그의 앙증맞고 작은 발이 춤을 출 때에 대해 이야기를 마친 뒤 다시 금갈색 곱슬머리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내 기분은 진창에 처박혔지.
그만해, 슈그. 나 죽을 것 같아. 내가 말했어.
그녀는 하던 말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어. 슈그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고 얼굴이 일그러졌지. 아, 셀리. 슈그가 말했어. 미안해. 그냥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던 건데, 나는 늘 너한테 이야기하니까.
말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면, 나는 이미 앰뷸런스를 탔을 거야. 내가 말했어.- P321

나도 슈그하고 같이 다니고 싶기도 하지만 슈그라도 그럴 수 있는 게 다행이야. 때로는 슈그에게 화가 나기도 해. 슈그의 머리카락을 홀랑 뽑아버리고 싶을 만큼. 하지만 그러고나서 생각하지. 슈그는 자기 인생을 살 권리가 있다고 말이야. 내가 슈그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런 권리를 빼앗을 수는 없지.- P346

유일하게 괴로운 건 슈그가 돌아온다는 말을 안 한다는 거야. 나는 슈그가 보고 싶어. 슈그와의 우정이 어찌나 그리운지 슈그가 저메인을 데리고 오겠다고 해도 두 사람 모두를 환영해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려고 애쓰다가 죽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뭐라고 슈그에게 누구를 사랑하라 마라 할 수 있겠어? 내가 할일은 그저 스스로 진실되게 그녀를 사랑하는 것뿐이야.- P346

그만둬도 괜찮아. 소피아가 말했어. 그애가 안 도와준다고 나한테 큰일이 나는 것도 아냐. 하지만 비난에 맞서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엘리너는 자기 인생을 살 수 없어.
어쨌건 난 널 응원해. 하포가 말했어. 그리고 네가 내린 모든 결정을 존중해. 그는 다가가서 그녀의 코에 있는 꿰맨 상처에 입을 맞추었어.
소피아가 고개를 들었어. 누구나 살면서 무언가 깨닫기 마련이지. 소피아가 말했어. 그리고 그들은 웃었어.- P362

슈그가 돌아오겠다는 편지를 보냈어.
이런 게 인생일까?
나는 하나도 들뜨지 않아.
슈그가 온다면 나는 기쁠 거야. 하지만 오지 않아도 괜찮을 거야.
이게 내가 깨달아야 하는 교훈인 것 같아.- P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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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6-16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권의 책이 이렇게 얽히는군요! 이렇게 다른 두 권이 주장하는 바가 골고루 담긴, 그것도 문학으로 탁월하게 엮어낸 <컬러 퍼플> 정말 위대한 작품입니다.

아니 그런데 최은영이 떠오르기도 했다니, 다음 이야기도 기대할게요. ㅎㅎ

다락방 2020-06-16 10:38   좋아요 0 | URL
잠자냥 님 이 책 읽고 안울었나요, 혹시?
어휴 저는 막 조마조마하다가 ㅠㅠ 그리고 다 읽고나서는 ‘읽기를 잘했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어요. 역시 끝까지 읽어야하는 책이었어요.

최은영이 떠오르는 건, 최은영이 자신의 단편에서 사랑과 우정에 대해 말했기 때문이었는데요. 저는 셀리와 슈그의 사랑에서 그걸 느꼈어요! 가장 사랑하는 연인이 가장 좋은 친구이기도 한거요.

2020-06-16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6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0-06-16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인 여성이 이중으로 겪는 고통에 대해선 머리속에서 상상하는건 쉬운 일이지만 <컬러 퍼플>의 저자는 그걸 입체적으로 보여준 듯 해요. 흑인 여성의 위대함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됩니다.

이 책을 읽으며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떠올리는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인데, 다락방님 페이퍼 읽다보니 <에코 페미니즘>과도 정확하게 닿아있네요. 본질을 꿰뚫는 다락방님의 혜안에 박수를 치게 됩니다. 잘 읽고 가요, 다락방님! 이제 <컬러 퍼플>을 읽게 될 모든 사람들은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 더해 <에코 페미니즘>도 떠올리게 될거 같아요^^

다락방 2020-06-16 10:50   좋아요 0 | URL
에코페미니즘과도 말씀하신 것처럼 너무 닿아있어서, 저는 에코페미니즘 읽기를 너무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결국 페미니즘과 환경운동은 같이갈 수 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에코페미니즘은 저도 아직 200쪽 가량밖에 읽질 못했지만, 환경운동에 관심있는 사람들과 여성운동에 관심있는 사람들 모두가 읽으면 좋을 책인것 같아요.

그런한편, 이렇게 주장하는 글이 실린 책들도 제 역할을 다하지만, 소설은 소설대로 자신의 일을 다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컬러 퍼플을 읽으면서 했어요. 소설 한 권안에 흑인 페미니즘 사상도 에코페미니즘도 다 들어있잖아요. 좋은 글은 소설로 쓰이든 인문서로 쓰이든 자신이 할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책 읽는 거 너무 좋지 않나요, 단발머리님?

그리고 제 혜안에 저도 감탄합니다. 전 정말 짱인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20-06-16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른 <컬러 퍼플>을 읽어야겠어요!

다락방 2020-06-16 19:19   좋아요 0 | URL
비연님도 재밌게 읽으실겁니다. 그간 여성주의 책 읽었던 것들이 마구 떠오를거에요!
 
에티오피아 시다모 디카페인 - 200g, 핸드드립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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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냉 텀블러에 얼음 가득 넣고 에티오피아 시다모 디카페인 내려마시면 너무 맛있어... 올여름은 너와 함께 지낼게!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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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6-16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완벽한 여름 ㅋㅋㅋ

다락방 2020-06-16 10:38   좋아요 0 | URL
저 아이스커피는 커피가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너무 맛있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 앞으로 당분간은 아이스커피 중독될듯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간 역시 모르는거에요... 하하하하하

보슬비 2020-06-17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카페인이라 패쓰했는데 급궁금해져버렸어요^^

다락방 2020-06-19 14:04   좋아요 0 | URL
보슬비님, 이거 찐커피에요!
그런데 어제 오늘 정신이 안차려지길래 오늘 아침엔 맥도날드에서 아메리카노 사가지고 왓습니다. 엣헴.
그리고 오늘 시다모 원두 주문했어요. 카페인 있는걸로... 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