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요. 날을 잘 잡았어요. 한창 꽃이 필 때고 이맘때면 캐츠킬도 그런대로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음악이 정말 색다르고 …… 완벽하네요. 모기도 한 마리도 없고 …… 워낙 고지대라 ……. 롱아일랜드에선 모기 때문에 …… 진드기도 없네요……. 전에 라임병을 앓아본 적이 있는데 얼마나 끔찍하던지 ……. 진단이 잘못되는 바람에 구역질이 나고 아프고 우울해지고 …… 죽고싶더라고요. 통증도 끔찍하고……."

거니가 소파에 앉아 있는 하드윅을 곁운질로 쳐다보았다. 한쪽 눈썹을 추켜올리며, 도대체 이런 대화를 왜 들어야 하냐고 물으려는 순간 처음올 서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p.76




거니는 은퇴한 형사이다. 그 전 실력이 워낙 출중하여 지금도 형사들에게 강연을 해주러 가끔 나가고 있는데, 최근에 일어난 신부(bride)살인사건에 협력해달라는 요구를 받게 된다. 결혼식 당일에 신부의 목이 잘렸다는 것. 그 날 결혼식 촬영한 비디오를 보는 중에 하객으로 참석한 부부들 중 아내가 바로 저 '라임병' 을 언급한다. 이 책이 진행되는데 있어서 저 대화는 사실 없어도 이야기의 흐름에 아무 지장 없지만, 굳이 작가가 넣은 이유가 무엇일까. 라임병에 대해 짚고 넘어가려고 했던걸까? 만약 내가 존 버든의 이 책, 《악녀를 위한 밤》을 읽기 바로 전에 '마야 뒤센베리'의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를 읽지 않았다면 그냥 무심히 넘겼을 부분이었다. 그러나 오, 존 버든이여, 라임병 언급했네요? 라임병은 의사들이 여성환자에게 '니가 아프고 싶어서 걸리는 병'이라고 말했던 병들중 대표적인 병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흔한 진드기 매개 전염병인 라임병은 검은다리 진드기를 통해 사람에게 전파되는 스피로헤타균인 보렐리아 부르그도르페리Borrelia burgdorferi가 원인균이다. 1992-2008년까지 미국에서 보고된 사례만 해도 두 배가 증가했다. 대부분 북동부, 중서부 상부 지역, 서해안 지대에서 발생했다. 질병관리본부는 현재 신규 라임병이 매년 30만 건 발생한다고 추정한다.

라임병이 수천 년 동안 존재했다는 증거가 있지만, 확실하게 질병으로 분류되고 보렐리아 부르그도르페리가 원인균으로 지목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미국에서는 코네티컷주의 작은 마을인 라임에서 1970년대 중반에 발생했던 의문의 질병에 대해, 주의를 이끌어내려 의학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했던 두 여성의 집요한 노력 덕분에 발견할 수 있었다. 예술가인 폴리 머레이Polly Murray는 20년 전 코네티컷 남부의 시골 지역을 처음 방문했을 때 두통, 발작, 관절이 부어오르는(결국은 가라앉았지만) 증상을 겪었다. 1960년대 중반에 머레이가 어린 자녀와 함께 코네티컷 지역에 살았을 때, 그녀의 건강은 다시 악화되었다. 피로감, 기억력 문제, 구역질, 쿡쿡 쑤시는 듯한 통증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지만 24명이 넘는 의사를 찾아가도 무슨 병인지 알 수 없었고, 그저 심인성 질환이라고만 했다. "머레이씨, 아시겠지만 무의식적으로 아프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답니다."라고 한 의사가 말했다. -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마야 뒤센베리, p.395


















'니가 아프고 싶어서 아픈' 거라고 잘못된 진단을 내려 환자를 계속 아프게 만들었던 대표적인 병 라임병이 존 버든의 소설에 등장하고, 소설 속에 잠깐 등장하는 단역의 입을 빌어 '진단이 잘못되는 바람에' 를 지적하고 있는 거다. 와, 너무 좋지 않나요? 게다가 짜릿하다. 몰랐다면 그냥 넘겼을 것을, 크- 여기서 존 버든이 라임병 얘기를 하네! 하며 알아볼 수가 있었어. 야, 역시 독서란 좋은 것이야. 여러분 책,책,책을 읽읍시다. 책이 이렇게나 좋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 다른 책을 읽을 때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확률이 쑥 높아진다. 그런데 책을 여러권 읽으면 어떻게 될까? 그 다음 책이 더 재미있어진다. 전혀 연관없을 것 같은 책 두 권이 이렇게 만나는거다. 그런데 이렇게 만나는 걸 누가 알까. 마야 뒤센베리도 존 버든도 몰랐겠지만, 내가 안다. 내가 이 두 권을 다 읽어서. 이 두 권을 다 읽은 독자인 내가! 이 내가! 안다!! 꺅 >.<


세상 좋구먼..

세상 똑똑한 여자다.. 누가? 내가......이 내가 그렇단 말씀이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내가 또 나 뽕 차오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소설은 언급한대로 결혼식날 살해된 신부에 대한 보고를 받고 범인을 찾으면서 그것이 연쇄살인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은퇴한 형사 거니는 수사에 큰 도움을 주는데, 사실 이건 범인을 찾고 잡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는 동시에, 부부간의 갈등에 대해서도 계속 얘기하고 있다. 40대후반의 거니는 아내 매들린과 함께 전원주택으로 이사와 살고 있다. 집앞뜰에서는 아스파라거스가 자라고 있고 저기 깊은 숲에서는 코요테 우는 소리가 간혹 들린다. 햇볕과 한가로움은 행복할 수 있는 최상의 요건이고, 그래서 매들린은 자신이 꿈꿔온 삶을 살게된 것 같아 행복하고, 그 행복에 남편 거니가 함께해주길 원하지만, 거니의 삶의 목표 거니의 즐거움 거니의 흥미는 전원에 있지 않다. 은퇴하고 아내와 전원주택에서 한가로이 살거라고 아내 매들린도 생각했고 거니 역시 생각했지만, 사실 거니는 아스파라거스가 어떻게 되든 크게 흥미가 없다. 대신, 그는 살인사건의 범인을 쫓는 것에 흥미가 있고 거기에 신경을 쏟는다. 아내와 점점 사이가 어색해지고 냉기가 감도는만큼, 또 그 전의 수사과정에서 아내를 위험에 휩싸이게 했던만큼, 자신이 이 사건을 맡지 않는 것이, 거절하는 것이 '맞다'고는 생각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그렇게 거니는 매들린과 점점 더 멀어진다. 살인사건의 범인을 쫓는것에만 온 신경이 다 몰려있어서 집에 손님이 오기로 한것도, 매들린의 스케쥴도 기억하지 못하고 만다. 그렇게 점점, 점점 더 멀어진다.




물론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인사건에 신경을 쓰고 나에 대해 소홀해지고 또 우리 가족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에 대해서라면 싫어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에너지를 쏟는다면 우리는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는게 좋지 않을까. 게다가 간혹 보이는 매들린의 모습은 대화를 나누기에 충분히 좋은 상대인 것 같다. 남편인 거니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아오 빡쳐 다 싫어 꺼져'할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말하지 않고, 감추고, 아내가 싫어할거라는 생각 때문에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사이를 더 멀어지게 하지 않나. 나는 거니가 이 일을 하기로 한이상, 맡은 이상, 아내와 의논을 하고 대화를 하는 쪽이 더 나을텐데, 하는 생각으로 수차례 안타까워했다. 오늘은 이런 일들에 대해 알게 됐어, 그런데 이렇게 됐지 뭐야, 하고 그 날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한다면 매들린 역시 흐음, 그건 이렇지 않을까 저러면 어떨까 하고 자신의 생각을 들려줄텐데. 물론 거니는 사건에 대한 얘기를 몇 번 언급하고 매들린 역시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지만 그게 약간 사이가 안좋은, 냉랭한 상태, 어색한 상태에서 하게 되는거다. 충분히 서로에게 다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들에게 있는데 그들이 그걸 캐치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거다.


뭐, 나의 이 안타까운 마음은 소설의 끝에 가면 풀어지긴 한다. 거니와 매들린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잃고 있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함께 사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한쪽은 간절히 원하는 일이 한쪽에겐 딱히 관심 없는 일이라면. 그것이 거주지에 관한 일이라면. 나비를 보고 아스파라거스를 심는 일이 나에겐 행복이고 기쁨이고 삶의 순간순간을 채우는 만족스런 일인데, 나랑 함께 사는 사람에겐 지루하고 따분한 일이라면,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애초에 그 뜻이 맞아서 결정한 일이 아니라, 함께 오래 살다가 한 쪽이 간절히 원하는 일이 되는거라면 그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거주지를 옮기는 것, 어딘가에 정착하는 건 인생에 있어서 매우 큰 일이다. 그런데 당신과 나의 뜻이 다르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그렇지만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오래라면 그리고 서로 다정하다면 충분히 이야기 나눠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딱히 전원생활을 열망하진 않는데, 아스파라거스... 는 좀 괜찮은 것 같다. 장보러 가서 베이컨 사와가지고 베이컨아스파라거스 볶음 해 먹으면 좋을 것 같아. 장 보러 마트갔을 때 와인도 싹슬이 해오고. 지금 집에 있는 와인 냉장고 12병 짜리인데, 전원주택에 살게된다면 200병 짜리로 사고싶다. 그래서 한쪽 벽에 두고 나는 집앞에 아스파라거스를 심는다..... 크- 좋구먼.......




거니와 매들린은 갈등의 최고조를 찍기도 하지만, 그러나 매들린은 '내가 원하는 걸 당신에게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다정한 부부가 된다. 소설의 끝에는 거니의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 나온다. 자신이 너무나 대단하게 생각하는 이 여자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라니! 크- 해피니스....



그녀는 그렇게 그의 손을 잡은 채로 그의 곁에 한참 동안이나 서 있었다.

그렇게 1분이 흘렀는지 한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동안 거니는 평화롭고 그를 이해하는 듯한 사랑이 깃든 그녀의 미소를 또렷하게 의식했다. 오직 그녀만이 갖고 있는 미소였다.

그 미소가 지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방식으로 그를 감싸고, 그를 따스하게 하고, 그를 기쁘게 했다.

놀라웠다. 세상의 모든 것을 그토록 선명하게 볼 줄 아는 여자가, 눈빛 속에 세상의 모든 빛을 담고 있는 여자가, 그런 미소를 지을 만한 무언가를 그에게서 발견했다는 사실이.

인생은 살 만하다고 믿게 만들기에 충분한 미소였다. -p.641




거니가 그런 걸 깨닫는 사람이라서 사랑 받는 거다. 사랑은 '날 사랑해줘'라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삶의 순간순간 일어나는 일들을 포착하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매들린이 거니에게 웃어주는 건, 거니가 그런 걸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다. 이 책의 살인사건은 너무 싫었지만(아동학대, 근친상간, 성범죄) 함께 오래 한 사람들이 서로 다정하고 신뢰하는, 결국은 다시 다정해지는 이야기를 보는 게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거니가 '이런 사람이 나를 좋아하다니!' 깨닫고 감동하는 건 너무 좋았다. 궁극적으로 느껴야 할건 그거 아닌가. '이렇게나 근사한 사람이 나를 좋아하다니!' 라고 깨닫는 거, 그리고 이내 '역시 내가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거. 사랑도, 베티 프리단이 자신의 책에서 말한 것처럼, 자아실현한 사람이 더 잘하는 것 같다. 사랑을 주고 받는 것도 자아실현한 사람이, 자존감 높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잘하는 거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결국은 타인과 나의 관계에도 집중하는게 가능해지는 것 같다. 샤라라랑~




살인사건이 일어난 마을은 부자들이 사는 마을이었고, 아내를 잃은 신랑은 집에 오두막을 갖고 있다. 그 오두막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건데, 거니가 다시 한 번 오두막을 살펴보러 가자 아내를 잃은 신랑은 거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알려주세요. 전 아버지와 도서관에 있겠습니다." -p.395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아버지와 도서관에 간다는게 아니라, 집 안에 있는 도서관에 있겠다는 거다. 집 안의 도서관이란 말이다. 서재가 아니라 도서관. 유 가 릿?



집 안에 서재가 있는 사람도 있고, 집 안에 도서관이 있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라고 거니는 생각했다. 미국이 계급 없는 사회라고 누가 말했던가. 이런 영국풍의 대저택에 살면서 아버지 이름이 호바트 애슈턴인 사람은 분명 아닐 것이다. -p.395



ㅎㅎ 나는 지금도 집에 내 서재가 있긴 하지만 거기에 있는 책은 몇 권 안되고 그래봤자 작은 방의 한쪽 벽면만이 책으로 채워져 있다. 나중에 혼자 혹은 누군가랑 함께 산다고 해도 어쨌든 더 큰 집으로 이사가서 더 큰 방을 큰 서재로 만들 야망을 갖고 있었는데, 애슈턴의 '도서관' 보는 순간, 아아, 나의 야망은 얼마나 찌끄러기인가...하는 생각을 했다. 서재라니, 야망이 너무 귀요미가 아닌가! 그래, 도서관 정도는 가져야되는 거 아니냐! 도대체 저 저택 안의 도서관은 어떤 사이즈인지, 어떤 책을 보유하고 있는지 한 번 보고싶다. 집의 어느만큼을 투자해야 도서관이 되는가.. 나처럼 방 한 칸 기꺼이 내어주는, 으로 되는게 아니겠지. 집 안의 도서관이라니. 아아, 먼훗날 언젠가 나는 나의 집에 찾아오려는 누군가에게 '응 도서관으로 와, 거기 있을거야' 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나의 동거인에게 '무슨 일 있으면 문자메세지 보내, 도서관에 좀 가있을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날이 내게 올것인가.. 도서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 조카들 놀러와서 안보이면 흐음, 하고 도서관 가서 찾아볼 수도 있고. 조카야, 여기있니? 그러면 저기 어딘가에서 응 이모 나 여기있어! 하는거지...


집 안의 도서관이여... 아아, 야망은 자고로 크게 가져야 된다. 서재 따위로는 안돼, 도서관을 목표로 하자!! 여자로 태어나서 야망이 그렇게나 쪼꼬미이면 어떡하냐. 크게 가져, 크게! 서재 대신 도서관이닷!!




아무튼 앞으로 내 삶의 도서관을 위해 오늘도 여러권의 책이 올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 내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 책을 사는 거라니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점심엔 물냉면 먹어야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시뻘건 물냉면으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심하기는. 미루지 말고 해치우면 될 것을. 미루는 것은 장기적 문제를 유발하는 단기적 회피일 뿐이었다. 그래봐야 두뇌 영역이 더 많이 잠식당할 것이고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해질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생각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었다. 이성적으로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삶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불운은 불편한 일을 회피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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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5-21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안의 도서관? 집안의 도서관? 흠... 작은 서재 하나 겨우 마련한... 찌끄러기... 라지만 그래도 저도 책을 주문하기로!
근데 냉면과 이것은 어떤 연관이? 흠흠? 아니 냉면이 먹고 싶어지네요 .. 흠냐.

다락방 2020-05-21 12:10   좋아요 0 | URL
냉면과 이것은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그냥 냉면 먹고 싶어서 쓴거고요 ㅋㅋ 그런데 점심 먹으러 갈 시간이 가까워오니 크림소스스파게티를 먹고 싶네요? 갈등중입니다. 물냉면이냐 스파게티냐...점심에 스파게티 먹고 저녁에 물냉을 먹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도 들고. 아 너무 혼란의 구덩이에 빠져있어요...

점심 지나면 제 책들이 올겁니다. 너무 기다려져요! 커피도 올거라서 오면 내려마실 거에요. 움화화핫.

비연 2020-05-22 14:4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페이퍼 읽고 냉면 계속 먹고 싶어서 오늘 결국 비냉 먹었네요. 냠냠..ㅎㅎㅎ

다락방 2020-05-22 14:54   좋아요 0 | URL
저는 어제 결국 파스타를 먹는 바람에 ㅋㅋㅋ 오늘 저녁에 고기 먹을건데 후식으로 냉면 시켜 먹을까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은빛 2020-05-21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권의 책에서 라임병을 찾아내 이렇게 재밌게 설명해 주시다니!

이런 다락방님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수 있을까요? ㅎㅎ

어제 저녁 독서 모임을 가서 만난 선배 두 분은 정말 책을 많이 읽는데, 항상 책을 구매해서 읽으시는 분들이세요. 책은 빌려 읽는 게 아니라고. 두 분 집은 아마 도서관이라고 불러도 될 듯.

그 중 친한 형의 집엔 직접 가본 적도 있는데 어지간한 작은 도서관보다 책이 많아요. 요즘은 집에 책을 꽂아둘 공간이 없어서 사무실 구석에 박스로 쌓아두고 있대요. 그런데 집 이사는 절대 생각할 수 없대요. 책이 너무 많아서 이사를 갈 수 없다고. 평생 그 집에서 살아야 할 것 같다고. ㅎㅎ

다락방 2020-05-21 15:22   좋아요 0 | URL
그쵸? 제가 정말 짱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진짜 짱인 것 같아요. 이 세상에 저같은 저사람은 진짜 저밖에 없을 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미치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https://youtu.be/3cS964_AlMY


집 안에 도서관을 만들려면 일단 공간확보가 되어야 하고, 공간확보가 되려면 집이 커야 되는데..집이 크려면 돈이 많이 들고... 책 사느라 돈 다 써서 집 살 돈은 없는데..... 도서관은 역시 저같은 찌끄레기의 너무나 큰 꿈인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그냥 책이나 사고 소주나 마시면서 살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국에서 사는 내내 … 흑인여성은 한편으로는 인종에 대한 충성심과 다른 한편 여성으로서 느끼는 연대감 사이에서 분열을 느낀다.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자신의 자아를 분열시키고 자신을 억압하는 편을 드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녀들은 거의 언제나 여성보다는 흑인인종을 선택했다. 인종의 편을 들면서 여성으로서 자신들의 자아와 온전한 인간성을 희생한 것이다. (McKay 1992, 277-78) -p.221




집단적으로 이성애자 흑인여성은 유독 흑인 레즈비어니즘에 대해 이상스레 침묵해 왔다. 바바라 스미스는 설득력 있는 한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이성애 특권은 흑인여성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이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인종이나 성에 따른 특권을 누리지 못한다. 우리들 거의 모두가 계급특권을 누리지 못한다. '동성애자가 아니라서 똑바른 처지'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다"(Smith 1982b, 171). 백인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으로서 자신이 겪은 피해를 규명하면서도 인종차별주의로 부여되는 특권을 무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흑인남성이 인종차별주의를 비난하면서도 성차별주의를 별로 반대하지 않았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이성애 흑인여성도 인종억압, 젠더억압을 인식하면서도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에게 고통을 가할 수 있다. p.223-224




인종단결을 초점으로 보면, 힐은 증언대에 서서 학대를 일삼는 흑인남성에 대한 흑인 "가족의 비밀"을 누설한 셈이다. 많은 흑인남성과 흑인여성이 보기에, 힐은 "더러운 세탁물"을 공공연히 방송에 내보냄으로써 흑인으로서 그녀의 주장이 지닌 진정성을 떨어뜨렸다. 어떤 사람은 토마스가 성희롱을 했다고 하더라도 힐은 흑인남성에 대한 연대심을 갖고서 입을 다물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문화비평가 리사 존스는 흑인들이 흔하게 보인 반응을 이렇게 지적한다. "텔레비젼에 나온 힐의 얼굴보다 그녀에게 일어났던 일이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말한다고 보상받는 것이 아니다. 성희롱을 당한 여성은 이중적 피해자가 되며 목소리를 내는 비판적 흑인여성은 여전히 흑인인종의 배신자로 낙인찍힌다."(Jones 1994, 120) -p.224




국민학교(그렇다, 나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6학년 때 다니던 교회에서 어린이예배 반주자를 1년간 했었다. 중학교 2학년까지 나는 꽤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다. 나름 큰 규모의 교회였고, 무슨 행사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어떤 행사를 할 때는 어른 예배 반주자와 함께 행사 반주자를 같이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맡은 건 피아노였고 어른 반주자가 맡은건 전자 오르간이었다. 그 뒤로는 공중 목용탕을 가도 아는척 하는 어른 분들이 꽤 많았다. 그전부터 반주자여서 또래 아이들에 비해 나를 아는 아이가 많은 편이었는데, 이젠 동네 어른들도 나를 아는거였다. 인생 뭘까.. 아, 그런데 그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

반주자였던 만큼 성가대 연습에도 계속 나가 성가연습의 반주를 해야했다. 일요일 오후 예배가 끝나면 남아서 성가대 연습을 해야했는데, 성가대 지휘를 맡은 남자 집사님은 본인이 극본을 써서 어린이 연극을 만들 정도의 '나름의' 실력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아이들을 성추행했다. 그 당시에는 그게 '성추행'이라는 용어를 붙여 부를 수 있는건지도 몰랐다. 어쨌든 국민학교 아이들의 볼에 자꾸 뽀뽀를 하는거였다. 아이들은 당연히 싫어했고.

그 날도 마찬가지. 연습에 앞서 가장 앞에 앉았던 4학년 여자아이에게 집사님은 뽀뽀를 했다. 그 여자아이는 그게 너무 싫어서 하지말라고 소리를 지르고 볼을 닦으며 울었다. 나는 피아노 의자에 앉아있다가 벌떡 일어나 그 아이의 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끌고 나와 아이의 손에 가방을 쥐어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집에 가."


아이는 가방을 들고 울면서 집에 갔고, 나는 다시 피아노 의자로 돌아가 앉았다. 그 날 연습이 끝나고 집사님은 나를 불러 앉혀놓고 더럽게 혼냈다. 싸가지 없다고, 버릇 없다고, 예뻐서 그런건데 그걸 애를 돌려보내냐고. 나는 거기에 대응하지 못하고 울었다. 엉엉 울었다. 콧물까지 날 정도로 엉엉 울었다. 그런 후에 바로 집에 갈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나는 반주자였고, 다음주 예배 반주를 위해 항상 남자 전도사님을 만나 다음주 찬송을 의논하고 가야했다. 그렇게 울면서 전도사님께 가서 다음주 찬송을 골라달라 했다. 전도사님은 너 왜 우냐고 말을 해보라고 했지만, 나는 끝내 말하지 못했다. 그 일을 부모님께도 말하지 못했고 교회의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오늘 이 일을 생각하면서, '그런데 말한다고 뭐가 달라졌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주가 지나 성가대 지휘자인 집사님은 학년별로 상담을 하겠다고 했다. 6학년은 나를 포함해 세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 때 집사님께 '아이들 예뻐한다고 그런식으로 표현하지 마시라'고 말했다. 집사님은 알겠다고 하셨다.



나는 중2때까지 교회를 다니다가 그 뒤로 다니지 않고 있다. 교회를 꼴도 보기가 싫어졌다.




몇해전 일이다. 아마 이 일은 전에도 언급한 적 있을지 모르겠는데, 회사 내에서 임원1이 여직원의 볼에 뽀뽀를 했다. 다른 부서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나는 보지 못했는데 내 귀에 그 일이 들려왔다. 나는 그 부서의 여자과장에게 '그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임원에게 얘기를 하라'고 했지만, 여자과장은 '그건 당사자가 거절을 똑바로 했으면 될 일이다'라는 답을 들었다. 나는 다른 부서에서 일어난 일이라 내가 나서는게 오지랖일것 같아 그 부서에 말한 거였는데, 안되겠다 싶었다. 나는 그 부서로 가 더 높은 임원실에 들어가 임원2를 만났다. 그리고 가해자임원과 직급있는 여자들 다 불러달라 말했다. 임원2는 놀라서 너 왜그러냐고 하며 다 불러모았다. 나는 거기서 말했다. 오늘 가해자임원이 여직원을 성추행하는 일이 일어났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는 이 일이 일어나지 않을거라는 약속을 반드시 받아야겠다, 만약 이 일이 또 일어난다면 나는 바로 보쓰에게 가 얘기해 저 임원의 직업을 잃게할 것이다, 고 말했다. 임원2는 놀라서 가해자임원에게 사실이냐 물었고, 가해자 임원은 죄송하다고 다시는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그간 가해자 임원의 이런 성추행은 계속 있어왔고, 그때마다 여직원들이 '하지마세요'라고 했지만, 가해자 임원은 '장난이다'라고 했던 터다. 그렇다면 그 '장난'을 왜, 남자 직원에게는 하지 않는가. 왜 그 '장난'은 보쓰의 딸에게는 하지 않는가?


시간이 흐른 후 피해자는 나에게 말했다. 나를 원망했노라고. 괜히 내가 그 일을 얘기해서 자기는 계속 사무실에서 일해야 하는데 분위기 불편해졌다고. 한참 후에야 '만약 그때 그걸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당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되긴 했지만, 처음엔 자신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알려 분위기를 흐린 것에 대해 나를 원망했노라고, 피해자는 내게 말했다. 그때 내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를 기억한다. 이 일은 아직까지도 내게 혼란으로 남아 있다. 나는 성추행 피해 당사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일을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걸까? 이 일은 오지랖이었던 걸까?? 그리고, 그 일이 공론화되어 사무실 분위기가 흐려지고 어색해졌다면, 그건 그 일을 공론화한 내 잘못인걸까? 애초에 성추행을 하는 가해자가 없었다면, 가해자가 성추행을 하지 않았다면 사무실 분위기는 계속 좋지 않았을까? 나는 좋은 사무실 분위기를 위해 입을 닥쳐야 했고, 피해자는 계속 피해를 당해야 했을까? 계속 좋은 분위기의 사무실에서 일하기 위해서? 누군가의 피해를 가져가면서 얻는 평화란, 평화일까?



이런 일은 이렇게 주변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최근에 일어난 부산시장 오거돈의 일도 마찬가지. 피해자는 혹시라도 며칠 후에 있을 선거에 영향을 줄까봐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는 것에 대해 참아야 했다. 한 여성이 성폭행의 피해자가 됐다는 건, 일단 '대의'를 위해서라면 닥쳐야 할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성폭행의 피해는 그렇게 뒤로 미뤄도 되는 것인가?


SNS 에서 레즈비언 여성이 고추 달린 트랜스 남성에게 성폭행 당한 사실을 공론화 했다가 뭇매를 맞은 일도 있었다. '트랜스젠더 혐오자'로 낙인 찍힌 피해자는, 그 일을 왜 공론화해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나쁜 인식을 주느냐고 공격받았다. 이 사건에서 압박을 받고 사라져야 했던건 피해 여성이었다. 성폭행 피해자는 이 여성이었는데, 사라지는 것 역시 피해자의 몫이었다. 퀴어, 성소수자에 대한 나쁜 인식을 바깥으로 드러내면 안되는데, 피해자가 그걸 드러내버렸기 때문이다. 조직의 안위와 이미지를 위해 성폭행 피해자는 역시 성폭행 피해 사실에 입을 다물어야 하는가? 여성이 당한 성폭행 피해는 이렇게 늘 뒤로 미뤄도 되는 것인가? 좀 참았다가 나중으로 미뤄야할 것인가?




'패트리샤 힐 콜린스'는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 이 모든 일들에 대한 언급한다. 여성이 인권을 생각하면 어김없이 나올 수밖에 없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와 여성의 대표성 그리고 성매매와 포르노까지 모든 것을 언급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을 내가 여자로 태어나 살아오며 익히 보아왔던 또 경험했던 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간 여성주의책을 읽어왔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걸까? 위의 인용문에서처럼, 패트리샤 힐 콜린스는, 흑인 집단 내에서 흑인여성이 흑인남성에게 성폭행 당할 경우 그것을 공론화하는 것에 대한 압박 그리고 갈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백인남성이 흑인여성을 강간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흑인남성이 흑인여성을 강간하는 것도 빈번하게 발생했던 일이다. 그러나 흑인남성이 흑인여성에 대해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흑인여성이 입밖에 내어서는 안된다는 무언의 압박이 발생한다. 우리는 인종이 같고, 그러므로 한 가족인데 그것을 입밖에 내서 되겠느냐는 것. 흑인여성을 강간하는 건 백인남성, 흑인남성, 모두에게 있는 일인데 그러나 그런 일을 저지르는 건 백인남성으로만 드러나야 했다. 내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쉬쉬해야 하는 것. 여성의 성폭행 피해는 이렇게 '조직을 위해' 그리고 '대의를 위해' 감춰져야 하고, 뒤로 미뤄야 하고, 참아야 하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도대체 언제 피해를 당한 일을 공론화하고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가. 가해자에게 도대체 언제 정당한 처벌이 내려지게 되는가. 왜 여성은 어느 집단에 어떤 식으로 속해도 뒤로 밀쳐지게 되는가. 진보 집단 내에서도, 성소수자 집단 내에서도, 인종 집단 내에서도, 회사라는 집단 내에서도, 왜 여성은 뒤로 물러서야 하는가.




흑인여성들은 알고 있었다. 흑인 남성들도 백인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을 '여성으로서' 괴롭힌다는 것을. 흑인여성들에게 있었던, 그러니까 나에게도 없고 백인여성들에게도 없었던 '다른 표현'은 '블루스'라는 음악 장르였다. 블루스라는 음악 장르를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옛날부터 흑인 여성들에게 그런 식의 작용을 하는건지 몰랐던 터라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 좋고 짜릿했다. 이 책장을 넘기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흑인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겪어야 했던 일들은, 인종적인 면에서는 나랑 달랐을지언정 '여성으로서'는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흑인여성은 인종으로도 젠더로도 가장 '나중'인 집단이었다. 그러니 '패트리샤 힐 콜린스'가 대부분 흑인 여성들의 입을 빌어 인용문을 가져오는 것은 당위성을 갖는다. 내가 <알쓸신잡>이란 프로그램에 남성 패널들만 나오는 걸 싫어했던 이유와 통한다. 남성들에게만 발언하게 하면 그 후에 인용되는 것도 남성들의 발언이다. 패트리샤 힐 콜린스는 흑인여성들의 말, 흑인 여성들의 책, 흑인 여성들의 노래를 가져와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말한다.




일부 흑인여성이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여러 억압에 수반되는 성정치를 비판했지만, 흑인과 백인의 남성성을 둘러싼 지배적인 관념을 수용하는 흑인남성을 직접적으로 비판했던 흑인여성은 극소수였다(Wallace 1978). 1992년에 애니타 힐이 클래런스 토마스의 성회롱을 공개석상에서 고발했던 기념비적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흑인여성이 오랫동안 흑인 남성에게 "변화"를 요구해 온 통로는 블루스 전통이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흑인여성은 블루스를 통해서 흑인남성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괜찮은 여자, 괜찮은 남자>라는 노래에서 아레타 프랭클린(1967)은 여성은 장난감이 아니라 남자와 똑같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인간이라는 서저너 트루스의 주장을 내세운다. "남자들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녀는 여성을 이용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식으로 남자임을 "증명"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프랭클린은 남자가 함께 있는 한, 그의 존중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노래한다. 그녀의 입장은 분명하다. 만약 그가 "긴 밤을 함께 보낼 괜찮은 여자"를 찾는다면, 그도 역시 "긴 밤을 함께 보낼 괜찮은 남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프랭클린은 지배적인 성정치에서 말하는 "괜찮은 남자"가 되기 위해서 "남자들 세상"이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거부하라고 촉구한다. 흑인여성을 존중하고 "긴 밤을 함께 보낼 남자"라면, 관계에 충실하고 경제적으로 탄탄하고 성적으로 적극적인 남성이라면, "괜찮은 여자"를 만날 수 있다는 말이다. -p.269




사실 블루스를 잘 알지 못해서 이 책속에 인용되는 노래들도 내가 아는 노래들이 없다. 흑인여성 가수라고 했을 때 나는 비욘세밖에 떠오르질 않네. 이 책속에 인용되는 가수들에 대해서 어떤 가수들은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사실 노래는 잘 모른다. 흑인 감독 '스파이크 리'도 이 책속에서 언급되는데, 스파이크 리 감독 영화중에 [정글 피버]를 보았었고, 당연히 영화속 장면이 떠올랐다. 흑인 남주가 백인 여주랑 사랑에 빠졌는데, 백인 여주의 아버지는 그 사실에 크게 노여워하며 혁대로 딸을 때리는 거다. 내가 이걸 아주 오래전에 보았는데 그 장면이 너무 인상깊었다. 내가 그렇게나 놀랐던 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대해 내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지금은 든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아는 흑인 여성의 영혼 담긴 노래라고는 'harlem blues'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역시 '스파이크 리'감독의 영화이고 내가 이 영화를 보진 않았기 때문에(굿 다운로드가 되지 않는 작품이다 ㅠㅠ), 이 노래가 어떤 상황에서 불려진 건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그런데 내가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하는 노래다. 이 노래만 반복해 듣기도 정말이지 여러번 했더랬다.






노래 너무 좋지 않나요? 목소리가 정말이지... ㅠㅠ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총 520 페이지의 책이고 나는 오늘 아침 출근길에 269쪽까지 읽었다.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멤버들 중 한 명은 이미 완독했고, 한 명은 300 페이지 넘겨서를 읽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번 달에는 모두가 완독하기를 목표로 달리고 있는데, 이 책 완독 가능할것 같다. 너무 재미있다! 이걸 재미있다고 표현하는 건 적절한 표현이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정말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겠어서 막 뭔가 흑흑 ㅠㅠ 하는 기분이 되어버리는 거다. 진짜 책 읽는 거 너무 좋다. 진짜 좋아. 여러분 책을 읽자. 너무 좋아요. 책 읽는 거 책 사는 거 너무 좋아서 오늘 나 책 겁나 많이 올거다. 어제 많이 샀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책 만세다 진짜로. 회사 임원이 내가 항상 책 들고 다니는 거 보고 '책 많이 읽는 여자 싫어'라고 했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책 많이 읽는 여자 싫어하는 남자가 진짜 재수없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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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5-21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23-224쪽의 인용문은 저도 어제밤에 생각했던 부분이에요. 페이퍼를 짧게 썼는데 마무리가 맘에 안 들어 아직도 생각중이고요. 흑인 공동체를 위해 흑인남성의 성폭력에 침묵을 강요당했던 흑인여성들의 괴로움을 누가 알아줄까요ㅠㅠ

그나저나 다락방님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한결같네요! 어린 다락방님도 멋지지만 임원집합시키는 다락방님도 멋져요! 😍

다락방 2020-05-21 15:18   좋아요 0 | URL
왜 여성의 성폭력 피해는 공동체를 위해 감추고 미뤄두고 참아야 하는 것이 될까요. 얼마나 많은 여성들의 발언이 그렇게 막혔을까요. 그런면에서 보면 설치고 떠들고 말하는 걸 그토록이나 싫어하는 것과 다 연결되는 것 같죠? 그래서 우리는 더 설치고 떠들고 말해야 하는것 같아요. 더 설치고 떠들고 말하려면 열심히 읽고 생각해야 할테고요.

어릴때부터 숱하게 성추행하는 놈들을 봐왔습니다, 단발머리님. 그때는 그게 성추행인지도 몰랐지만, 그런 놈들이 아주 많았어요, 아주, 아주요. 하아- 너무 엿같은 세상이네요 ㅠㅠ 제가 직장생활하면서 남자들한테, 그것도 저보다 나이도 많고 직급도 높은 남자들한테 그러지말라고 일일이 가르쳐야 하는건가요? 남자들 왜이렇게 모자란가요? 다 머저리 등신들이에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비연 2020-05-21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수많은 성추행 속에서 느꼈던 감정이란.... 다락방님 페이퍼 보니 다시 떠오르며 화가 치밀..
저도 곧 관련 페이퍼를 써야겠다 싶네요...ㅜ
흑인여성은 ‘흑인‘이면서 ‘여성‘이라는 위치 때문에 정말 여러가지 통제장치와 이데올로기와 정치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라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합니다. 그들이 이제까지 해온 역사에 경의를 표하게 되구요. 이 책 재미있습니다. 글자 사이가 빡빡해서.. (편집은 좀..) 처음엔 아구야 했는데 읽을수록 읽고 싶어지는 책이에요. 냐하하.

회사 임원이 내가 항상 책 들고 다니는 거 보고 ‘책 많이 읽는 여자 싫어‘라고 했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책 많이 읽는 여자 싫어하는 남자가 진짜 재수없다... --> 그리고 이 대목, 이백퍼 천퍼 동감입니다. 그 뒤통수에다 대고 얘기하고 싶네요. 책 좀 읽어라 짜샤.

다락방 2020-05-21 15:21   좋아요 2 | URL
성추행 피해도 피해지만 피해자의 입을 막으려는 시도들도 너무 참담하죠. 피해자의 입을 막는 사회라는 걸 알기 때문에 성범죄가 그간 계속 일어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피해자의 입을 막으려는 사람들도 결국 성폭행이 일어나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이고, 그게 바로 강간문화인거죠.
저도 제목에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라니, 뭔가 멀고 어렵게만 느껴졌었는데 막상 읽으니까 너무 재미있어요, 비연님. 언제나 그랬지만, 이 책도 역시 읽기를 잘한 것 같아요. 저는 2020년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들 중에서 현재까지는 이 책이 제일 재미있고 좋아요!


책 읽는 여자 싫다고 말하는 건 저는 말하는 순간 진짜 부끄러울 것 같아요. 자기 얼굴에 침뱉기죠. 어휴, 하긴 쪽팔림을 모르니까 저런 말을 하는 거겠죠. 어휴 부끄러.. 왜 부끄러움은 제몫인가요...

우리 남은 부분도 열심히 읽어요! 같이 읽으니까 정말 좋아요, 비연님!

공쟝쟝 2020-05-29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물같은 페이퍼(!)
저두 지금 생각하면 성추행이었던 어린시절 기억들이 많아요.. 그딴식(!)으로 예뻐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걸 진짜 예뻐한다고 (하나도 그렇게 생각 안했겠지만 지들 사회생활 잘하려고)오히려 집사놈 역성들어 분란 조장 어쩌도 한 어른들 역겹네요..(치를 떤다)
진짜 그런 어른 되지 말아야지!!!!!
그나저나 다락방님은 어렸을 때 부터 책임감이 남다르셨네요. (울면서 반주를 마저 하러 갔다고요??) 패미니즘 독서모임을 이끄는 사람에 걸맞는 책임감이예요 우흐흐흐흐

다락방 2020-05-29 07:46   좋아요 0 | URL
예쁘니까 이러는게 당연한 거라고 자신들의 성추행,성희롱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한 어른들이 너무 싫어요, 쟝쟝님. 아직 판단력이 미숙한 아동들은 그 상황에서 ‘어른말이 맞겠지‘, ‘이 사람이 틀리지 않겠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저도 어릴적에 성추행 당할 때 아닌것 같아서 반항하다가 예뻐서 그러는거라는 말에 ‘가만 있어야 되겠다‘ 라고 ..아 그만 쓰자 숨이 막히네요. ㅠㅠ 또 나온다 재경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책임감은 정말 중요하잖아요, 쟝쟝님. 어른이 책임감을 가졌다면 아이들을 존중했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지 꼴리는대로 성추행 하는게 아니라요. 범죄자 새끼들 진짜 ㅠㅠ
 















저기 있는 저 남자 분은 여성은 마차에 탈 때 도움을 받아야 하며 구덩이에서 나올 때도 남자가 들어 올려 주어야 하고 모든 곳에서 가장 좋은 곳을 차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내가 마차를 타거나 진창을 지나야 할 때 도와주지 않으며 아무도 내게 가장 좋은 곳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입니까? 나를 보십시오! 이 팔을 보십시오! 나는 어느 남자보다도 더 많이 쟁기를 끌었고 씨를 뿌렸으며 곡물을 거두어 곳간에 넣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입니까? 나는 남성과 똑같이 일할 수 있고, 충분한 음식이 있다면 남자만큼이나 많이 먹고, 채찍질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입니까? 나는 열세 명의 아이를 낳았으며 이 아이들 모두가 노예로 팔려나가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내가 어머니로서 슬픔에 겨워 울 때 주님 말고는 아무도 제 슬픈 울음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입니까?(Loewenberg and Bogin 1976, 253) -p.44




시험 점수를 잘 받는 것은 딱히 머리가 좋지 않아도 가능하다. 물론, 머리가 좋으면 더 잘받겠지만. 외우라는 부분을 달달달 외워서 정답이 무어냐, 물어보면 정답에 동그라미 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쉽진 않더라도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더 많은 정답을 맞힌 사람은 시험 점수가 높고, 그 사람은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지게 되고, 그리고 좋은 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전공을 선택하고, 역시나 교수님의 설명을 잘 듣고 교과서를 달달 외워서 높은 학점을 받고 졸업해서 보란듯이 사회의 좋은 위치를 차지할 수도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잘했던 학생은 명문대를 나온 엘리트가 되어 높은 연봉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사회는, 그렇게 살아도 되게끔, 아니 그렇게 살아야 잘 살게끔 설계되어 있다.


얼마전 읽었던 '마야 뒤센베리'의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에서는 의사들이 여성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많은 사례들이 나온다. 그들이 호소하는 고통과 증상은 의사들이 그동안 알고 있던 것과 달랐기 때문에, 여성환자들은 '머릿속으로 아픈' 사람이 되어서 돌려보내진다. 그 의사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의사들이,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은 여성환자들의 증상에 대해 몰랐기 때문이다. 아마 대부분의 평범한 의사들이 같은 반응을 보일것이다. 그러니 여성환자들은 첫번째 의사를 찾아갔다 돌아오고 두번째 의사를 찾아갔다 돌아오고 세번째 의사를 찾아갔다 돌아오고...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일테다.


이럴 때 의사에게 필요한 건 '이건 무얼까'일것이다. 어? 내가 알던 것과 다른데 어디에서 뭐가 다른걸까, 그렇다면 알려지지 않은 무엇이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이 사람은 아픈것일까, 하는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려는 사고다. 그게 있었다면 많은 여성환자들은 더 많이 생존했을 것이다.


얼마전에는 SNS에서 누군가의 비판의 말에 '나 사회학 전공했고 석사과정이다' 라면서 자신의 말이 틀릴 리가 없다는 증거로 자신의 학력을 가져오는 것을 보았다. '사회학을 전공했고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남자'는,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살아온 사람보다 과연 여성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있는가? 페미니즘에 대해 '사회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기' 때문에, 더 잘 아는가?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교과서에 있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석사가 되고 박사가 되는데 도움은 될지언정, '깨어있는' '열린' 사람이 되는 걸 보장하지는 못한다.



위의 인용에서 '남자들은 여자들을 대우해줘야 한다고 하는데 흑인인 나는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여자가 아니냐'라는 당연한 물음을 던지는 사람은 '읽고 쓰는 법을 결코 배운 적이 없는 노예'이다. 나는 이 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의문을 갖고 원인을 파악하려고 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 이걸 하는 사람이 깨어있는 사람이고 열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이 결국 사회가 바뀌는데 하나라도 더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읽고 쓰는 법을 결코 배운 적이 없는 이 노예신분의 흑인여성이 '니네가 말한 대로라면, 나는 여성이 아닌거잖아?'라고 의문을 갖고 던지는 데에서 너무 짜릿했다. 그러면서 안타까웠다. 이렇게 모두가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의문도 품지 않고 살아가는 사회의 명제에 대해서 교육을 받지 않았으나 스스로 깨달아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이, 그런데 만약 교육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여자가 아니란 말이냐, 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 사람의 세계는 이미 확장되어 있고 또 이미 섬세하고 날카로운 시선을 가지고 있지만, 만약 읽고 쓰기를 배운다면, 교육받는다면, 그렇다면 이 사람의 세계는 대체 얼마만큼이나 확장될까. 너무 기대가 되지 않는가. 그렇게 넓어질 세계가, 갖게될 의문이, 그래서 저항하게 될 그 잠재력이 무서워서, 남성중심 사회는 그리고 백인중심 사회는, 흑인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인종분리정책으로 흑인 여성도 교육을 아예 받지 못하는 건 아니었으나, 백인들이 받는 교육과는 달랐다. 이들이 유모로 규정되어지고 노예로 살아가는 대신 백인 남성과 같은 교육을 받았다면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스스로 보고 의문을 가지는 눈을 가진 사람이 교육을 받는다면 대체 이 세상은 얼마나 휘청거릴까.



주어진대로의 세상을 사는 것보다, 그 안에 존재하는 부조리를 짚어내고 지적하고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매력을 느낀다. 결국은 그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흑인여성은 명백하게 타자화 되어 대표성을 갖는다. '유모', '복지수당 어머니'가 흑인 여성에게 부여된 이미지였다면, '흑인 숙녀' 역시 마찬가지. 흑인 여성들이 교육 받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기존과 다른 신분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역시나 그런 여성들은 후려쳐진다. 세상은 밑바닥에서 주는 거나 받아 먹으며 굽신거려야 된다고 생각하는 약자가 꿈틀거리는 것을 어떻게든 막고자 한다.



흑인숙녀 이미지는 또한 가모장 명제의 여러 측면과 닮아있다. 즉, 흑인숙녀는 모든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직종에서 일을 하느라 남자를 만나거나 돌볼 시간이 없거나 남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잊어버린 여성이다. 그녀는 너무나 일상적으로 남성들과 경쟁하면서 이러한 경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여자답지 못하다고 여겨진다. 고등교육을 받은 흑인숙녀는 자기주장을 너무 강하게 펼친다는 것이다. 또한, 그녀들과 결혼하려는 남성이 없다고들 한다. (P.149)




메갈을 메퇘지라고 칭하는 것도,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에게 사랑 받지 못하는 못생긴 여자들이라는 것도, 흑인숙녀에 덧씌워진 이미지와 맥을 같이한다. 세상이 여성을 외모로 평가하는데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여성의 최고가치는 외모가 되었다. 거기에 휩쓸리느라 굶어가며 다이어트를 하고 화장하는데 시간을 쏟는다. 남성에게 예쁘게, 섹시하게 보이는 것이 최고 가치인 것처럼 한목소리로 외쳐왔다. 그래서, 그렇지 않은 여자들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폄하하려고 애를 쓴다. 자기 주장을 하는 여자들에 대해서 못생겨서, 뚱뚱해서, 남자에게 사랑받지 못해서, 라고 공격한다. 하하하하하하하하. 물론, 어쩌면, 아직도, 저런 공격에 휘청거리며 더 예쁘기 위해서, 더 사랑받기 위해서 노력하는 여성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하려는 남성이 없다'는 것은, 여성들에게 더이상 공격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치명적인 약점이 아니다. 여성들은 남성과 연애하지 않아도, 남성에게 예쁘게 보이지 않아도, 남성과 결.혼.하.지.않.아.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오히려 그 편이 더 행복할 확률이 높기도 하고.



이 책은 1990년에 초판이 나오고 2000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이 책에는 그래서 초판과 개정판의 서문이 다 실려있는데, 저런 공격, 그러니까 '너 그렇게 자기 주장 강하면 남자들이 너랑 결혼 안해줘'라는 걸로 공격하는게 너무 웃겼다. 그렇다고 다 옛날일이라고 할 수도 없는게, 일전에도 내가 뉴욕에 이민간 남자로부터 '너 그렇게 생각 많이 하면 시집 못가'라는 말을 직접 듣지 않았는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불과 몇 년전의 일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시집 못간다고 협박하면 내가


'아이쿠 이런. 큰일났네. 내가 시집을 못간다니. 이를 어쩌면 좋아. 아 죽고싶다. 어떻게 해야 시집가지? 나는 머저리야, 빨리 시집갈 수 있는 여성으로 탈바꿈하자.'


뭐 이럴 줄 알았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너 그렇게 공부 많이 하면, 책 많이 읽으면, 생각 많이 하면, 똑똑하면' 시집 못가, 를 협박으로 쓰는 새끼도 웃기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 여자랑 연애도 결혼도 안하겠다는 남자는 너무 진짜... 부끄럽다. 쪽팔린 줄 알아야 돼.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쪽팔리지 않게 사는게 가장 중요하다. 아니 세상에 교육받은 여자랑 결혼 안해, 자기 주장 강한 여자랑 연애 안해, 이러는 건 지가 등신이라고 인증하는 거 아닌가.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어떤 사람과 만나는지로도 보여지는 것이다.




아무튼 여자들이 계속 계속 더 공부하고 더 생각했으면 좋겠다. 남자랑 결혼 안해도 삶에 있어서 아무 지장 없으니께롱.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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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5-19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 그렇게 공부 많이 하면, 책 많이 읽으면, 생각 많이 하면, 똑똑하면‘ 시집 못가, 를 협박으로 쓰는 새끼도 웃기고.... ㅠㅠ 아 이 아침 막 화나네요, 이 생각 저 생각 들어서. ㅜ

예전엔 정말 이런 말 하는 사람 많았죠. 사실 지금도 제 친구가 딸 대학 갈 때가 되니 시어머니가 여자애를 뭘 대학을 보내냐고 해서 거의 거품물고 쓰러질 뻔 한 일이 있었던 걸 보면... 여전히 많이 배운 여성에 대한 편견은 남아 있는 듯. 그래서 더 공부하고 더 생각하고 더 대화하고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진심.

여성의 최종 목적은 ‘시집‘ (전 이 단어도 무지하게 싫어하는데..ㅜ) 이라고 생각하는 것. 좋은 남자 만나 애 낳고 가사일 하며 가정을 잘 돌보는 것‘만‘이 진정한 여자의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게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여성에게 이런 한계를 ‘지맘대로들‘ 짓고는 평가해대는 사람들에게 분노가 치밀어요.


다락방 2020-05-19 09:15   좋아요 1 | URL
네, 제가 직접 들었다니까요. 그것도 동갑의 남자로부터. ‘너 그렇게 생각 많이 하면 시집 못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처구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안간다 새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같은 놈 만날까봐 안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집 못가는 게 뭐 큰일이라고 그걸 협박으로 쓰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오히려 여성들이 나서서 더 비혼을 주장하고 더 배워야 하는 것 같아요. 그딴 거 협박으로 쓰지 못하게.

다락방 2020-05-19 10:43   좋아요 1 | URL
아, 비연님. 그리고 저도 ‘시집가다‘는 표현 진짜 싫어요 ㅋㅋ 너무 모욕적이에요. 기분 나빠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종종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자꾸 일어난다'고 말하곤 한다. 주말만 해도 그렇다. 나는 토요일 저녁에 고요히 훈제오리를 구워 먹을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찾아오겠다는 여동생 식구들 덕에 모든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오리와 와인 대신 삼겹살이 찾아들었달까. 오리 대신 삼겹살인 것은 나쁘지 않지만, 그러나 조카들이 찾아왔기 때문에 '고요한' 저녁은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동생과 조카들이 보고 싶었고 만나고 싶었지만, 그 식구가 찾아들면 내가 바라는 고요함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려... 아아, 역시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야..... 내가 혼자 살면 내가 계획한 대로 되겠지만 내가 혼자 사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예측불가한 것으로 바뀌고 또 바뀐다.



영화 《콘스탄트 가드너》역시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만난 예상하지 못한 사람 때문에 인생이 확 바뀌어 버리는 사람들이 나온다. 우리가 타인을 만나 관계를 시작하게 되는 것, 그리고 그 관계가 흘러가게 되는 것은 내 예상대로 될 확률은 매우 낮다. 그보다는 아, 이럴 줄은 몰랐는데, 하게되는 경우가 더 빈번하지. 사랑에 빠지는 것도 그렇고 결국 헤어지게 되는 것도 그렇다.



외교관인 '저스틴(랄프 파인즈)'은 다른 사람을 대신해 강연하러 간 자리에서 인권운동가 '테사'(레이첼 와이즈)를 만나게 된다. 지루한 강연이 끝나고 테사가 질문을 퍼부은 것. 저스틴은 거기에 모두 대답하지 못했고 테사는 질문과 비난을 이어간다. 강연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테사에게 그만하라고 하지만, 테사는 외교관과 정부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고, 결국 모두가 떠난 자리에 저스틴과 테사, 둘만 남게 된다.


테사는 자신이 무례했다며 사과하고 둘은 그렇게 차를 한 잔 마시기로 하는데, 그렇게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직 서로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저스틴은 케냐로 발령받게 되는데 이에 테사는 자신도 데려가라고 한다. 정부이든 아내든 뭐든, 어떤 자격으로도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둘은 결혼해서 함께 케냐에 가고 공적인 자리에 함께 가기도 하지만, 저스틴은 테사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테사는 그곳에서 영국의 큰 제약회사와 영국 정부가 케냐 사람들을 대상으로 신약실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열약한 환경에 놓인 케냐 사람들은 먹을 음식도 충분하지 못하고 당연히 병에 대한 치료약도 충분하지 못한 상황.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신약실험에 동의한다는 조건에 서명해야 한다. 그렇게 아프리카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앓고 있는 병으로부터 치료받기 위해서라도 신약 실험에 이용된다.

그런데 이 신약은 치명적인 부작용을 갖고 있었다. 이 부작용 때문에 사람들이 사망했으나, 그러나 아무도 이 시신을 제대로 처리해 주지도 않고 그들의 사망 원인도 알려지지 않는다. 그저 이름없이 죽어갔을 뿐. 사후에 그들에 관한 기록은 남겨지지 않는 거다. 이 과정에서 테사가 알게 되고 그래서 제약회사와 정부의 관계에 대해서도 알게된다. 테사는 정부에 계속해서 재차 얘기한다. 부작용이 있으니 실험을 중지하고 새 약을 만들라고. 제약회사는 이 결핵에 대한 신약이 엄청난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판매만 시작하면 큰 돈을 쓸어담을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새 약을 만들라는 인권운동가의 경고가 달갑지 않다. 부작용에 대한 걸 해결하고 새로운 약을 만드는 과정은 2년 정도가 소요될텐데 그 2년을 더 투자할 수가 없는 거다. 이미 들어간 비용도 상당한데다, 그 2년동안 경쟁사에서 더 좋은 치료약을 만들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부작용으로 사람들이 사망할 수도 있는 약을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제약회사와 정부는 판매하려고 하는 거다.


이 과정을 추적하고 진실을 알게된 테사는 그래서, 살해당한다. 그녀는 살해당하고, 그녀와 함께 그 과정을 추적하던 케냐의 흑인 의사는 린치당한다. 그 장면이 얼마나 처참한지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저스틴은 취미와 특기가 식물가꾸기인 다정하고 조용한 남자였다. 아내는 혁명전사 같았고 뜨거웠지만, 저스틴은 실내에서 화분에 물을 주는게 가장 큰 기쁨인 사람이었던 거다. 그런 저스틴은 아내를 잃고 힘들어하다가 아내가 살해당했고 거기에 음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추적한다. 추적하는 과정에서 살해 협박을 당하면서 저스틴은 자신이 진실에 근접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제약회사와 정부의 추악한 관계를 폭로할 방법을 찾아낸다.




이 영화의 존재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그래서 DVD 를 사둔지 꽤 되었지만 보지 않고 얌전히 꽂혀만 있었다. 그런 참에 며칠 전에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를 읽다가 이 영화가 생각나는 거다. 책에서는 남자에게 생기는 질병들에 대해 연구하고 그 질병의 대표적 증상들이 교과서에 실리는 걸 언급하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약의 임상시험도 남성들에게만 행해지는 것까지. 그렇게 그들을 대상으로 만들어낸 약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여성들에게는 부작용을 가져오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증상의 발현부터가 여성들에게 일어나는 것은 남성들의 것과 달랐는데, 여성의 것은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비전형적인' 증상이라 처음부터 제대로된 진단을 받기도 어려웠다. 어쨌든 약은 남성들 위주로 만들어졌고, 여성들에게 그 약은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그러나 임상시험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았다. 오죽하면, 여성 호르몬 치료법에 대한 것도 남성을 대상으로 했다. 연구에 여성을 완전히 배제한 것.




남성만을 기본값으로 설정한 연구는 모순에 빠지기도 했다. 1960년대 초에 ‘에스트로겐 농도가 낮아지는 폐경기가 오기 전까지는 여성이 심장질환에 걸릴 위험이 낮다‘는 사실을 관찰한 연구자들이 여성 호르몬 치료법이 심장질환에 효과적인 예방법인지를 연구했는데, 연구에는 남성 8,341명과 여성 0명이 참여했다. (의사들은 폐경 후 여성에게 에스트로겐을 무더기로 처방해서 1970년대 중반에는 여성의 1/3이 호르몬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도 여성을 대상으로 호르몬 치료의 임상연구를 최초로 실시한 것은 1991년 이후였다.)-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마야 뒤센베리, P45




위의 부분을 읽다가 케이스가 다르긴 하지만, 신약 실험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을 '이용'했던 백인들이 생각났던 거다. 그래서 자연스레 오래전부터 보려고 별렀던 영화를 보게된 셈이다.

케냐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어떤 처지인지.

그들은 아프리카는 이미 없는 사람들 취급을 당한다고, 영화 속에서 말한다. 백인들은 흑인들을 무시한다.


마침 오늘 시작한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는 미국에서 살아가는 흑인 여성들이 얼마나 많이 차별을 당하는지부터 언급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백인들과 함께 살면서 인종분리정책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나뉘어있고, 게다가 허락된 직업 자체가 정해져있는데, 그 안에서 분투하는 여성들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백인들과 섞여 사는 사회에서 그토록이나 차별을 당한다면, 그렇다면 백인들과 함께 살지 않는 곳에서는 상황이 더 나아야 하는게 아닐까. 같은 인종만 있다면 더 나아야 하지 않나, 라는 의문을 당연히 가질 수 있는데, 영화 《콘스탄트 가드너》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흑인들만 살고 있는 곳에 백인들이 침투하니까. 선진국의 백인들은 그들이 가진 풍부한 물적자본을 가지고 들어온 이방인이면서, 그러나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 대해 지배력을 행사한다.



















영화 《콘스탄트 가드너》는 네이버 굿다운로드 '대여 1,200원'으로 감상할 수 있다. 참고하시길.




자, 그러면 좀 다른 얘기를 해볼까. 청결, 에 대한 얘기다.

청결.

청결이란 무엇인가.

깔끔함이란 무엇인가.

깨끗함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저마다 청결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 그것은 오직 각자의 몫이라서 타인의 눈으로 보기엔 이상한 상황이 종종 일어난다. 자기 손은 비누로 삭삭 닦으면서 컵을 씻을 때는 그냥 물 틀고 휙 한번 휘두르고 끝나는 사람을 직접 눈으로 보았을 때 내가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컵은 그렇게 닦으면 안된다고, 입이 닿는 부분을 수세미로 박박 닦아주라고 얘기했지만, 알았다고 대답만할뿐 전혀 달라지지도, 달라질 생각도 없는 사람을, 나는 보았다. 너무 대충격이었어.

아무튼 청결.


그러니까 영화속에서 저스틴과 테사가 처음 만나고 격렬하게 싸우고 차를 한잔 마시기로 하면서 그들은 테사의 집으로 향한다. 아니, 까페에서 마시면 되지 집으로는 대체 왜 데려가. 영화는 2005년 개봉한 영화인데, 그 당시에는 처음 본 남자를 집으로 데려가는게 괜찮은건가.. 뭐, 이렇게 말하는 나도 이런 식의 행동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테사와 저스틴은 그 날 처음 만나서 어쨌든 호감을 느끼게 되고, 그렇게 차를 한 잔 같이 마시기로하고, 그렇게 테사의 집에 가게 되는데, 그러고나서는 섹스로 이어진다. 성인 남자와 성인 여자가 만나서 서로에게 호감을 품게 되고 만난 바로 그 날 섹스를 하게 된다는 것은, 그들이 아침에 눈을 떠 각자의 일터로 가면서 상상하거나 기대했던 일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일어날 수 있다. 아무렴. 첫 눈에 반할 수도 있고, 또 욕망을 가질 수도 있고, 서로의 욕망이 일치해 섹스를 할 수도 있지. 그런데, 일을 하러 나왔을 때 테사는 가디건에 치마를 입고 있었고 무릎까지 오는 부츠를 신고 있었다, 그 말이다. 그 상태로 일터에서 만난 저스틴과 함께 테사의 집으로 들어갔을 때, 그 때 그 차림 그대로, 장면이 나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밖에 있다가 집에 들어갔으니 손은 씻었겠지? 아무튼 그차림 그대로 섹스를 하게 되는거다. 섹스라는 게 분위기가 형성되면 그렇게 이어지기도 하는 것이니까 놀랄 것은 아니지만, 내가 경악했던 것은, 아아, 테사여...저스틴이여... 그러니까, 저스틴이 테사의 부츠를 벗겨주는 거다. 무릎까지 오는 부츠. 지퍼가 있는 부츠. 그 지퍼를 내리고 무릎까지 오는 부츠를 벗겨냈단 말이야.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너무 싫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침에 집에서 나서면서 신었던 신발을 저녁에 집에 돌아와 벗는데, 그게 섹스바로 직전이라니. 부츠 안에 갇혀있던 발...을 나는 남자에게 보이고 남자는 그런 내 발을 만지고.... 냄새 어쩌나요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냄새가 많이 나진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안나지는 않을텐데, 일단 지금 우리 둘이 섹스를 하기에 앞서 바로 직전에 내 신발을 네가 벗겼다 하는 것은, 내가 발을 씻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잖아. 아 세상 불결하다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너무 싫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건 물론 청결에 대한 각자의 기준이겠지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나는 밖에 있다 들어와서 손도 안씻은 사람이 내 맨 살을 만지는 게 진짜 지독하게 싫다. 가서 손씻고와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너무 싫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어딜 만져 진짜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런데 씻지 않은 발을... 만지잖아. 만지기만 해? 그 발은 남자의 온 몸 곳곳에 닿을텐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너무 싫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씻고 합시다 진짜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진짜 현기증난다. 너무 ㅠㅠ

그러니까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고 미래는 예측불허니까 오늘 갑분섹스가 있을 수 있지. 오케이. 아이 가릿. 그렇지만..발은 씻고 와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분위기를 깨기 싫어서 둘다 참았는지도 모르겠다. 왜, 미셸 파이퍼와 조지 클루니 주연의 영화 [어느 멋진 날]을 보면 둘이 분위기가 무르익어서 키스를 하고 그래서 섹스로 이어질 때쯤 미셸 파이퍼가 잠시만 기다려달라며 욕실로 가서는 씻을 데는 좀 씻고 매무새를 정돈하고 그런 후에 나와서 남자 앞으로 다시 간단 말이야? 그런데 남자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뭐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긴 부츠를 신은 발을 남자와 여자는 모두에게 허락했는지도 모르겠다.

난...글쎄 ..... 아무튼....좀 그렇다.

이건 각자의 기준 문제일 것이다.

그런 냄새를 참아가며 섹스를 선택할지, 그런 발로는 섹스하기 싫은지. 이건 각자의 몫이겠지. 그렇지만 이것도 둘이 좀 맞아야지, 나는 발냄새 섹스 못견디는데 상대는 분위기 깰까봐 그냥 고고씽 하자고 하면, 우리의 미래는 어둡다...암흑이여...미래 오브 다크니스.....



티비 채널을 돌리다가 며칠 전에 <나 혼자 산다> 송승헌의 제주살이 편을 잠깐 보게 됐다. 역시 정말 잘생겼지만, 너무 잘생겼지만 매력 없는 놈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보고 있는데, 송승헌이 자신의 집에 친구들을 초대한거다. 그래서 친구들이 오기 전에 자기가 차려낼 음식들을 준비하는데, 그가 하려고한 요리는 '돼지고기김치찌개'였고...나는 보았네, 송승헌이 한 손으로, 그러니까 맨 손으로 고기를 잡고 가위로 슥슥 고기를 잘라 냄비에 넣는 것을. 그 손으로 그대로 또 김치도 잡아서 가위로 슥슥.... 내가 여기서 잠깐 뭐랄까...약간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거든? 그런데 다음은 더 놀랐다. 아니, 그러니까 마트에서 회를 사온거다. 그리고 자기가 잡아서 내놓은 것처럼 하려고 포장된 용기에서 꺼내 접시에 담는데, 아아, 그것을 맨손으로 담는거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나는 너무 기절했습니다. 그런데 나 혼자 산다 멤버들이 아무도 그걸 지적을 안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손님에게 접대할 회를 맨손으로 옮겼다니까?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너무 싫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거 보면서 생각했다. 역시 잘생긴 거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아무리 잘생겨도 저렇게 행동하면 나는 매력을 1도 느낄 수가 없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아...힘들다....... 싫어......회를...... 맨손으로 옮겼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 남자 싫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뭐, 나 하나 싫어한다고 그의 인생이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겠지만... 킁킁.





나는 손잡는 걸 너무 좋아한다. 손은 내게 아주 중요한 신체 부위다.

이십대 시절 여러명의 여자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남자친구와 하는 스킨쉽중에 가장 좋은게 무언지 각자 묻고 대답했던 적이 있다. 다들 19금 얘기를 하는데 나는 '손잡는 거'라고 얘기했다. 친구들이 모두 놀라며 19금 행동들을 하나씩 언급하면서 '그걸 했는데도 손잡는게 가장 좋다고?' 라고 몇번이나 되물었다. 끝까지 믿을 수 없어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손잡는 게 제일 좋다.


손잡는 건 그 관계의 가장 시작임과 동시에 끝 또한 극명하게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나의 경우는 섹스는 사랑 없이도 할 수 있지만, 손 잡는 건 좀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손도 어떤 경우 사랑 없이 잡을 수 있기는 하지만, 잡을 때의 감정이나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나는 사귀면서도 손 잡기가 싫었던 남자들이 분명히 있었고, 손 잡은걸 누가 볼까봐 신경쓰였던 적도 마찬가지로, 있다. 섹스한 남자랑 손잡기 싫은 게 뭔지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한편 손잡았던 게 너무 좋았던 적도 있다. 심장이 바깥으로 나오진 않을까 두려울 정도로. 그런 사람들과는 손잡고 있었던 그 순간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되고 또 떠올리게 된다. 그 사람과 손잡고 걷는 나를 좀 누가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옆의 이사람 좀 봐줘,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좀 봐줘.

그래서 나는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들과 손잡았던 기억을 종종 떠올린다. 내가 자주 생각하는 것은 손잡는 행위다.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일 중에 많은 비율도 역시 손잡는 게 차지한다. 손잡고 걸었으면 좋겠다, 손잡고 있었으면 좋겠다, 같은 것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하고 가장 하고 싶은 건 손잡는 것이니까. 이렇게 손 잡는 행위를 떠올리고 상상하는 건, 비단 연인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나는 조카에 대해서도 그렇다. 조카들의 그 작은 손을 잡고 걸었던 순간들을 많이 떠올리고 또 앞으로 그럴 것에 대해서도 떠올린다. 아주 많이, 아, 조카 손 잡고 싶다, 같은 걸 정말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주말에 조카들이 왔다!

조카들과 일요일 아침 일찍 동네 허브공원엘 갔다. 아이들이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바깥에 나가 놀지도 못하니, 이번에 야외 공원에서 뛰어 놀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우리 엄마와 나, 그리고 조카1 조카2가 허브공원으로 향했는데, 일찍부터 산책 나온 어른들이 몇 분 계시긴 했지만 가는 길도 사람이 없었고 도착해서도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 놀았다. 우리가 준비해간 수박과 참외를 먹다가 뛰다가, 그렇게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면 나는 손수건으로 아이들의 이마와 목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 그렇게 공원에서 허브향 맡으며 뛰던 조카들과 나는 다시 손을 잡고 이번엔 일자산으로 향했다. 그간 관심있게 보지 못했는데 아이들을 위한 공원이 작게 있었고 그곳에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카들은 거기에서 또 신나게 뛰어놀았다. 산으로 들어가서는 올라가는 길이 힘들다고 했지만, 야호~ 하고 신나게 소리를 질렀다. 정상까지 간 건 아니지만 우리는 산을 제법 오래 걸었다. 아이들은 중간에 철봉에 올라타서 나무늘보가 되어보기도 하고 움막집에 들어가보기도 했다. 그렇게 걷는 내내 조카들은 나와 손을 잡았다. 조카1이 잡고 걷다가 조카2가 잡고 걷다가 했는데, 그렇게 손을 잡고 걸으면서 '애네들하고 손잡고 걷고 싶었는데 지금 그러고 있네' 하면서 가슴속 가득 만족감이 차올랐다. 이런 게 바로 충족일 것이었다.



예상외로 우리는 많이 걸었고 그래서 힘들었다. 조카들이 온 토요일 오후에 <나 혼자 산다>재방송에서는 손담비가 자기 어머님과 함께 길동 복조리시장을 찾는 장면이 나왔다. 조카들은 흥분했다. 우리집에 오면 가는 시장이 바로 거기였다. 게다가 손담비 모녀는 그 시장에서 떡볶이를 먹는게 아닌가. 일요일, 조카들과 신나게 산책을 하고 뻐근해진 다리도 쉴겸, 또 배도 채울겸, 우리는 손담비가 갔던 떡볶이집을 찾아 갔다. 떡볶이와 순대, 어묵을 시켜서 차려두고는 조카들과 함께 먹었다. 배고프고 힘들었던 조카들은 떡볶이도 매울텐데 잘 먹었고 순대도 잘 먹었다. 어묵도 잘 먹었어! 엄마와 나는 먹다가 몇 번이나 조카들이 잘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았고, 다 먹은 뒤에 조카들은 '정말 잘먹었다'고 했다. 조카들이 제 집으로 돌아갔고, 여동생은 조카2에게 '주말 동안 뭐가 제일 좋았어?' 라고 물으니, '다같이 힘들게 걷고 떡볶이 함께 먹는 순간 행복했어. 그런 거 좋아'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런 조카들과 내가 손을 잡고 걸었다. 정말이지 완벽한 순간이었다.



물론, 육체적으로는 너무 고단하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조카들이 간 다음에 청소를 하고나서 씻고 뻗어버렸다. 주말 내내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시작하고 진도 좀 나가야겠다 생각했지만, 크-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는 않았다.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나쁘지는 않다. 책은 또 오늘부터 부지런히 읽으면 되니까. 조카랑 손잡고 걸었던 순간을 아마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조카들을 만나고나면 내가 사랑을 줘서 너무 행복하지만 또 사랑을 받아서 행복하기도 하다. 가슴 가득 뭔가 채워지는 그 느낌이 있어. 여동생은 조카들이 우리집에 왔다가고 나면 '사랑받고 왔다'고 하는데, 나 역시 주기만 하는 건 아니다. 아이들이 내 손을 꼭 잡고 걷는 순간들이 내 가슴을 가득 채워줬다. 정말이지, 더 좋은 이모가 되어야지. 더 사랑을 주는 이모가 되어야지. 히히. 아이들하고 손 잡는 거 진짜 좋아 짱 좋아!! >.<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고 심오한 관계를 맺는 사람, 더 포용하고 더 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물론, 나는 이미 그러한 사람이지만.

:)




(매슬로는) 자아를 실현한 사람들은 관계를 맺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사랑하게 되고 성적 만족도도 증가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성관계는 예전보다 더 나아졌으며 항상 더 나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이런 사람들에게서 밝혀지는 매우 평범한 보고다.˝) 이런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 자신이 되고 스스로에게 진실해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더 깊고 심오한 관계를 맺고, 더 포용하고 더 큰 사랑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더 완벽하게 식별할 수 있고, 자신의 경계를 더 많이 초월하며, 자신의 개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 《여성성의 신화》, 베티 프리단,  P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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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5-18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요히 훈제오리를... 에서 크크 한 사람! 따따 따따따! 🖐🖐 🖐🖐🖐

다락방 2020-05-18 11:22   좋아요 0 | URL
고요히 훈제오리를 먹는 계획은 다음주로 어쩔 수 없이 미뤄야 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슬비 2020-05-18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향이 나고, 관심없는 사람에게 냄새가 나는것 같아요.

사람뿐만 아니라 강아지들도 그래요. 저는 카푸와 은비가 목욕오래동안 안했을때 꼬순내가 너무 좋아서 털에 코를 박고 좋아라하는데... 가족들이 자꾸 목욕시키라고 성화라서 어쩔수 없이 시켜요... 절대 절대 목욕시키는것이 힘들어서가 아니여요.

다락방 2020-05-19 07:32   좋아요 0 | URL
회사 직원이 퇴근하고 애인 만나러 가면 자기 정수리 냄새가 그렇게 신경쓰였대요. 그런데 애인은 ‘열심히 일하다 온 증거 아니냐, 나는 니 정수리 냄새 좋다‘고 했다더라고요. 전... 이런 정서에 공감은 안돼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사랑하니까 더 확장 범위가 넓어지고 견디는 것도 더 많아지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냄새가 향기가 되진 않더라고요. 냄새는 냄새고 향기는 향기... 저는 남자들 땀냄새도 그게 누구든 싫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전 향기나는 사람이 좋아요. 여자든 남자든. 정말 향기요. 사랑한다고 냄새가 향기가 되진 않더라고요? 냉정한 인간인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 은밀하고 뿌리 깊은 의료계의 성 편견과 무지
마야 뒤센베리 지음, 김보은.이유림.윤정원 옮김 / 한문화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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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은 그 자리에 남자들이 더 많기 때문에, 라는 결론이 나온다. 남성 의사들과 연구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관심 분야를 연구한다. 그러니 남성들에게 흔한 질병을 연구하고 거기에 따른 약을 만들어내고 또 교과서에 싣는다. 생리적으로 남자와 다른 여자는 그렇게 교과서에 실린 증상과는 다른 증상을 보이기 때문에 질병으로 진료되지 못하고, 설사 병명이 나오더라도 그 약이 여성에게 맞지 않을 확률도 높다. 여성에게 임상시험한 약이 아니기 때문에. 


여성들이 호소하는 많은 고통, 통증을 의사들은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것'이라며 환자들을 집으로 돌려보냈고, 그렇게 집으로 돌려보내진 여자들은 다른 의사를, 또 다른 의사를, 또 다른 의사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돌려보내진 환자들은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이십년까지 자신의 병에 대한 진단을 받지 못한 채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 드디어 자신이 앓던 고통에 대한 병명이 나오면, 그것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것인가. 이에 여성들은 '나처럼 돌려보내지고 병명을 진단받지 못한 채 이 병으로 고생하는 여자들이 또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른 곳에 있는 여성 환자들과 연대하며 단체를 만든다. 그 단체들이 활동하고 연구 기금을 끌어 모으고 그렇게 그 병은 '여성들이 앓는 히스테리'에서 하나의 병명을 갖춘 채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활동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지만, 그러나 저자는 끊임없이 재차 강조한다. 그 일은 의료계에서 해야 하는 일이라고, 그러니 여성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여성들의 통증들이 히스테리라고 진단 내려지는 것은 명백히 의사들의 오진이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게다가 여성들은 아프지 않으면서도 아프고 싶어서 아픈 척을 한다는, 말도 안되는 편견을 그들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그런 생각을 하게되면 자신을 찾아온 이 여성환자 역시도 그런 시선으로 보게 된다. 자신이 아는 증상이 아니기 때문이 이 여자는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이군, 하게 된다는 것. 그렇게 여자들은 고통을 당하다가 제대로된 약을 써보지도 못하고 죽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울증이나 정신과쪽 약을 처방받는 여성환자들 중의 일부는, 아마도 정말 어떤 신체적인 질병을 갖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됐다. 의사들이 그동안 보았던 교과서에 없던 증상이라 단순히 '머릿속 증상'이라고 오해하는 게 아닐까. 이 책에서 가장 처음 언급되는 심장질환도 여성에게 더 많이 일어나지만, 그러나 '비전형적'이기 때문에 심장질환으로 진단받기까지 무척 오래 걸린다는 사례가 나오는거다. 심지어 진단 받지 못하기도 하고. 왜 여성의 증상은 교과서에 나오는 증상과 다를까? 왜 여성의 증상은 의사들에게 익숙하지 않을까. 왜 '비전형적'일까. 그것은 환자의 기준이 남성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몸이 아픈 것도 힘든데 의사들은 환자의 고통이 가짜라고 말한다. 내가 아프다는데 왜 날더러 가짜라고 하는거야. 가짜라고 말하는 의사들 때문에 여자들이 죽었다. 여자들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참 다양한 방식으로 죽는구나.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으로만 죽는게 아니라, 비전형적인 증상을 나타내서 제대로 된 진단도 받지 못한채, 자신이 앓는 병이 어떤 건지도 모르는 채로 죽어가기도 해. 


이 책은 당연히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읽어봐야겠지만, 보통의 여자들도 읽어보기를 바란다. 어쩌면 내가 앓고 있는 병이 의사가 말한 우울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환자의 입장에서 다른 환자들과 연대하며 자신이 앓고 있는 고통을 알리고 이것이 병이라는 걸 인정받는 길은 힘들고 고되다. 의사나 박사라면 어떤 질병에 대해 밝혀내고 연구하기가 환자들보다 수월한것은 너무 당연할 터. 역시 제약회사를 포함한 의료계에도 더 많은 여자들이 자리잡아야 할 것 같다.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의사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여성혐오가 우선 사라져야 하지만, 교과서의 내용도 달라져야 할테니까. 애초에 공부할 때부터 기준은 여성환자도, 남성환자도 모두 포함해야 한다. 그래야 한다. 

하아. 너무 빡쳐서 글을 잘 못쓰겠다. 이만 쓴다 ㅠㅠ




"나는 인터넷을 찾아 헤매면서 스스로 진단을 내렸고,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의사를 만났으며, 인터넷으로 다른 환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우리는 자주 댄스 수업 같은 곳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먼저 진단받은 후, 인터넷 환자단체에서 추천받은 의사를 찾은 환자들을 만난다. 인터넷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처음 발견한 이후 이십 년 넘게, 혹은 시작점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150년으로도 볼 수 있는 시간 동안 극심한 고통을 일으키는 흔한 질병이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환자가 진단부터 주치의 교육, 질병을 밝혀내고 치료하는 데 필요한 과학연구 지원금 모금까지 모든 일을 스스로 해야 했다. 환자는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 (p.393-394)


지식의 간극과 신뢰의 간극이 상호작용하면서 고치기 어려운 수준까지 고착되었다. 여성에게 더 많이 생기는 질병과 증상, 그리고 여성의 몸에 대해 의사가 단순히 잘 모르기 때문에 여성 환자가 질병을 호소해도 무시하는 것일까? 아니면 의사에게 여성 환자는 신뢰할 수 없다는 무의식적인 선입견이 있어서 여성의 증상을 무시하는 걸까? 지식의 부재일까, 신뢰의 부재일까? 내 생각에는 양쪽 모두다. 지식의 간극과 신뢰의 간극은 이 지점에서 너무나 긴밀하게 얽혀 있어서 동전의 양면이나 다름없다. 의학은 여성의 몸이나 건강 문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여성의 질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성의 질병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의학은 여성의 몸이나 건강 문제에 대해 잘 모른다.- P28

남성만을 기본값으로 설정한 연구는 모순에 빠지기도 했다. 1960년대 초에 ‘에스트로겐 농도가 낮아지는 폐경기가 오기 전까지는 여성이 심장질환에 걸릴 위험이 낮다‘는 사실을 관찰한 연구자들이 여성 호르몬 치료법이 심장질환에 효과적인 예방법인지를 연구했는데, 연구에는 남성 8,341명과 여성 0명이 참여했다. (의사들은 폐경 후 여성에게 에스트로겐을 무더기로 처방해서 1970년대 중반에는 여성의 1/3이 호르몬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도 여성을 대상으로 호르몬 치료의 임상연구를 최초로 실시한 것은 1991년 이후였다.)- P45

여성건강운동 활동가들은 더 나은 신약 규제와 정보에 대해 충분히 알고 사전 동의하는 것을 연구 대상자의 권리로 요구하는 청원을 했다. 여성에게 잠재적으로 혜택을 줄 수 있는 치료법에 대한 임상시험에, 여성이 스스로 위험을 가늠하고 참여할 수 있는 여성의 ‘행위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정책은 가상의 태아에게 미칠 이론적인 상해를 논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런 태도는 환자 개개인을 가르치려 드는 것일 뿐만 아니라 여성 전체가 안전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탈리도마이드와 디에틸스틸베스트롤의 대참사는 1977년 식품의약국이 발표한 금지 조항의 기폭제가 되었고, 가임기 여성 전체를 연구 대상자로 꺼리는 상황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사건 모두 가임기 여성 전체가 아닌 임신부만 금지했더라도 막을 수 있는 사건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이런 약을 대중에게 판매하기 전에 충분히 연구하지 않았으며, 위험도에 대한 증거를 무시했다는 점이다. - P52

여성을 배제하고 남성에게만 임상시험을 하고서 약을 여성에게 판매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논의의 중심이 보호주의 쪽으로 기우는 현상을 신약 임상시험에서는 여성의 과소 대표성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외에 다른 생의학 연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심장질환은 여성의 주요 사망 원인이기도 한데, 심장질환의 위험 요소에 대한 미스터피트(다중위험요소조정실험) 연구에서 여성이 배제된 이유를 보호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다. 또 노인 인구의 2/3에 해당하는 여성이 왜 ‘인간의 정상적인 노화 현상‘연구에서 배제되었는지도 해명하지 못한다. (사실 우리는 이에 대한 해답을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연구자의 해명에 따르면 연구소에 여성 샤워실이 없어서 남성만 연구 대상으로 뽑았다고 한다.)- P52

여성에게 주로 영향을 미치는 질병이 연구 의제에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된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지만 고치기는 쉽지 않다. 여성 건강운동 활동가들은 역구 계획을 제안하고, 연구 자금을 지원하고, 연구 결과를 출판하는 사람이 대부분 남성이기 때문에 자연히 남성의 관점과 관심사를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국립보건원에 있던 소수의 부인과 의사 중에 한 명이었던 플로렌스 하셀틴Florence Haseltine박사는 로런스와 와인하우스에게 "나는 이 현상이 악의적이거나 고의적인 결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의사들에게 각자 관심 주제에 대해 연구하라고 하면, 50대이고, 남성인 의사라면 모두 심장질환을 연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의학 연구에서 연구자가 ‘관심 있는 주제‘는 연구자 자신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주제이기 마련이다. - P54

1990년에 슈뢰더 대변인이 "사람은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에 자금을 쓴다. 남성이 대다수인 연구 집단은 유방암보다는 전립선암을 더 걱정하기 마련이다."라고 언급했듯이 말이다.- P55

당시 성·젠더의 차이를 그저 ‘일상적인 관행‘으로 무시하거나 하찮게 여기고 승인받아 시장에 나온 약은 수없이 많다. 여성건강연구 사무국장 클레이턴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이 사례는 비단 엠비엔Ambien(졸피뎀의 상표명-편집자)뿐만이 아니다. 이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수많은 약이 성·젠더의 차이를 보이며, 그중에는 잘 알려진 것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도 많다."라고 밝혔다. 수많은 약이 여성을 대상으로는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았거나, 여성을 대상으로 했더라도 차이점을 드러낸 증거가 무시됐다. 그러니 남성과 비교할 때 여성의 50~70%가 약의 부작용을 더 많이 겪는 것도 당연하다.- P71

19세기 말에는 또 다른 새 전공이 히스테리와 신경장애 치료법에서 부인과와 경쟁했다. 바로 신경과다. 초기 미국 신경과 전문의들은 부인과 치료법을 무시하면서 전기요법, 비소나 아편 등의 약물, 실라스 위어 미첼Silas Wier Mitchell 박사의 악명 높은 ‘휴식 요법‘등을 실험했다. 미첼 박사의 환자로 치료에 불만을 품었던 작가 샬럿 퍼킨스 길먼Charlotte Perkins Gilman은 자신의 유명한 단편 소설 <누런 벽지(The Yellow Wallpaper)>에서 미첼 박사의 휴식 요법에 대해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환자는 몇 주 동안 어두운 조명이 켜진 방 침대에 누워 의사와 간호사만 만날 수 있고, 살찌는 음식을 먹는 일과 편지를 받는 일 외에 독서나 글쓰기 등 다른 활동은 금지당한다. 이 치료법은 너무나 ‘쓰디쓴 약‘이라 미첼 박사가 환자에게 치료가 끝나고 병이 나았다고 말했을 때, 환자는 미첼 박사의 말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도 있다.- P100

오랫동안 비평가들은 히스테리든, 신체화든, 스트레스로 인한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이든 심인성 질환이라는 개념에 오진의 위험이 크게 내재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논쟁은 영국 정신과 의사 엘리엇 슬레이터 Eliot Slater 가 1965년에 쓴 사설에서 한 경고다. 히스테리 진단을 너무 자주 내리는 의사는 자신이 수수께끼를 풀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의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경고했다. 슬레이터 본인을 포함한 런던 국립병원에서 1950년대에 히스테리를 진단받은 환자 85명을 추적한 결과, 9년 후 환자의 60%이상이 뇌종양과 뇌전증 같은 기질성 신경계 질환을 진단받은 것이다. 이 중 열두 명은 사망했다. "히스테리 진단은 무지를 위장하려는 것에 불과하며, 풍성한 임상 오류의 원천이다. 사실 착각일 뿐만 아니라 유혹이기도 하다."라고 슬레이터는 결론 내렸다.- P120

이쯤 되면 여성은 자기 충족적 예언의 실현을 위해 붙들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체적으로 보면 의학이 여성 증상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여성은 실제로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상‘으로 더 많이 진단받는 듯하다. 이런 증상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약물 부작용일 수도 있고, 남성만 대상으로 연구한 질병의 비전형적인 증상일 수도 있으며, 여성에게 더 흔하다는 이유로 심인성 질환으로 추정해 의학이 거의 연구하지 않은 기능성 신체화증후군 증상일 수도 있다. 의학계에는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을 심인성 질환으로 보는 경향이 깊이 파고들어 있다. 이 지식의 간극은 여성이 히스테리나 건강염려증에 걸리기 쉽고 신체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고정관념을 만들었다. 이 고정관념은 다시 여성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설 때, 환자가 자신의 증상을 설명할 수 있든 없든 간에 의사가 여성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P136

여성을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상에 빠지기 쉬운 환자로 분류하는 순간, 의사는 여성의 증상이 ‘스트레스를 받아서‘라고 빠르게 결론 내리고, 의학적 원인을 밝히기 위한 정밀검사를 하는 대신 항우울제를 처방하며 이 끝없는 순환을 악화시킨다.- P136

그러나 불확성실의 시대에 일단 환자를 믿어주고,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이 실제라는 가정이 기본이 되며, 환자가 말하는 증상을 믿고, 만약 이것이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증상이라면 이를 설명할 의무는 의학이 맡아야 할 것이다. 여성에게는 이런 기본적인 신뢰가 너무 오랫동안 주어지지 않았다.- P152

실제로 2000년에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실린 논문은 심장마비 증상으로 미국 응급실 열 곳에 실려 온 수천 명의 환자 기록을 분석해서 오진으로 퇴원당환 환자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이 추정에 따르면 매년 미국에서 오진받은 심장마비 환자가 최소 1만1천 명이라고 한다. 55세 이하의 여성은 다른 환자들에 비해 집으로 돌려보내질 확률이 7배나 높았다. 오진의 결과는 대단히 심각했다. 집으로 돌아간 환자의 사망률이 두 배나 높았기 때문이다.- P165

이는 심장마비의 증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증상은 교과서를 벗어나 더 다양하게 나타난다. 남성 연구를 통해 도출된 대표적인 증상은 극심한 가슴 통증과 왼쪽 팔을 타고 흐르는 통증으로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나이 지긋한 과체중인 백인 남성이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고 의자에 털썩 쓰러지듯 앉는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할리우드 심장마비‘로 알려지면서 문화적인 인식 속에 스며들었다. 이 상황은 의학 교과서에도 수십 년 동안 그대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여성, 특히 폐경 전 여성이라면 심장마비가 왔을 때 ‘비전형적인 증상‘을 더 많이 보이며, 증상이 며칠에서 몇 주 동안 이어지기도 한다. 목, 목구멍, 어깨, 등 위쪽의 통증이나 체한 증상, 숨이 차는 증상, 메스꺼움이나 구토, 발한, 불안감, 눈앞이 깜깜해지는 증상, 어지럼증, 일상적이지 않은 피로감이나 불면증을 들 수 있다.- P171

1996년 국가 차원의 설문조사에서는 의사의 2/3가 증상에서 성·젠더의 차이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2년 미국 여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1/5 이하만이 메스꺼움이나 피로감 같은 심장마비의 비전형적인 증상을 알고 있었다.
증상의 차이는 여성이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동안 치료받을 시기를 더 늦춘다. - P172

심장질환에서 젠더 격차의 근거가 분명하게 드러나는지 더 이해하기 쉬운 이유가 있다. 이것은 결국 자명하게도 여성은 처음부터 심장마비로 진단받을 가능성이 적기에 심장마비로 치료받을 가능성이 적은 것이다. 베리 메르츠는 트로포닌 검사법의 문제점에 대해 "여성이 치료받지 못하는 좋은 이유와 나쁜 이유가 있다. 좋은 이유는 그 원인을 우리가 해결할 수 있기에 좋은 것이다. 여성과 남성은 다르며, 그로 인해 진단에 차이가 생긴다는 중요한 변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여성의 증상이 교과서적인 사례가 아닌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여성의 위험 요인을 그저 ‘비전통적인‘ 요인으로 인식하고, 여성의 증상을 ‘비전형적인‘ 증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의학이 오직 남성만을 표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P173

전형적인 자가면역질환 환자가 전형적인 자가면역질환 환자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았는데, 이는 여성이 이미 다른 방식으로 정형화됐기 때문이다. 젊은 여성이나 중년 여성이 피로감이나 다른 모호한 주관적인 증상을 호소한다면? 이 환자는 스트레스를 받아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을 신체화한 것이다. 사실 의사가 스트레스를 줄이라는 권고와 함께 항우울제를 처방해서 집으로 되돌려 보내려는 모든 여성 환자를 대상으로 자가면역질환을 의심해보기만 해도, 최첨단 신기술 진단센터나 수련의 과정의 개선 없이도 자가면역질환 진단율이 크게 개선될 것이다. 자가면역질환이 여성에게 얼마나 흔한 질병인지, 의사들이 이를 얼마나 많이 놓치고 있는지 고려한다면, 이는 상당히 믿을만한 주장일 수 있다.- P213

물론 고통의 심각성을 더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목적이라면, 통증을 가볍게 보이게 하는 전략에는 명백한 위험이 따른다. 만성통증을 앓는 여성은 종종 히스테릭하지 않게 보이려고 통증이 얼마나 심한지를 의료진에게 숨기는 지경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만성통증 관리법에서 의사와 환자 간의 의사소통을 연구한 2007년 논문의 저자들은 "여성 환자는 자신의 통증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과 부정적인 젠더 전형성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그들의 진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더해 로런의 충수염 오진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의사들은 남성 환자에게나 통증을 축소하는 태도를 예상하지 여성 환자에게는 기대하지 않는다.- P266

의료계, 그리고 문화 전반에는 환자의 90%가량이 여성인 섬유근육통 환자를 특히 치명적으로 업신여긴다. 여성 혐오로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외음부통과 섬유근육통 환자인 작가 에이미 베르코위츠Amy Berkowitz는 저서 [압통점(Tender Points)]에서 온라인에서 수집한 섬유근육통 환자에 대한 댓글을 공개했다. "섬유근육통 환자는 장애인 수당을 챙기려는 끔찍하고 뚱뚱한 여자다. ‘일하는 건 피곤하니까, 돈을 주든지 약을 줘!‘라는 식이다. 다른 사람이 열심히 일할 때, 집에 앉아 리얼리티 쇼나 보는 게으른 자들이다. 이들의 71%는 뚱뚱한 여자로,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본 적이 없다. 인정하기 싫어도 이것이 사실이다." "인터넷 기사를 읽을 수 있고 ‘아야!‘라고 11번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 - P286

"직장에서 이런 괴짜들과 일하는데, 그 사람 얼굴에다 대놓고 사기꾼이라고 말해버렸다. 그 뚱뚱한 엉덩이를 움직여서 일해야 한다. 그들은 그저 ‘아프고 싶어서‘ 우는 소리를 하는 것뿐이다."
섬유근육통을 향한 오랜 불신은 의학계가 역사적으로 이런 환자를 어떤 시각으로 봐왔느냐의 맥락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섬유근육통과 관련해서 2012년 기사는 다음과 같이 썼다. "섬유근육통 환자는 의사가 진료하기 싫어하는 환자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계속 의사를 찾아오는 단골 환자다. 유명한 류며티즘내과 과장인 의대 교수가 우리에게 말했듯, ‘이 환자들은 제정신이 아니‘며 이런 시각이 일반적이다."- P286

여성 체중에 대한 불균형적인 우려는 특히 부당하다. 만약 의사들이 성차별적 편견이 아니라 과학에 근거해서 체중을 우려한다면, 반대 현상이 나타나야 정상일 것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더 뚱뚱해도 건강할 확률이 높다는 점을 여러 논문이 계속 입증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누군가의 건강을 체중으로 판단하는 일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2016년 분석에 따르면, 체질량지수를 바탕으로 신진대사 건강을 판단한다면 미국 성인 7,490만명에 대한 그릇된 진단을 초래할 것이다. 특히 여성은 잘못 판단된다. 2008년 연구에서는 과체중인 남성 48.8%와 비교할 때 과체중인 여성의 57%가 대사적으로 더 건강했고, 29.2%의 비만 남성보다 35.4%의 비만 여성이 대사적으로 더 건강했다. - P343

여성의 생식주기와 관련지어 병의 증상을 정상이라고 치부하는 현상은 자국내막증, 외음부통, 그 밖의 만성 골반 통증을 일으키는 환자만 고통스럽게 한 것이 아니다. 어떤 통증이든 ‘아래쪽 그 부분‘이면 얼마나 통증이 심각하든지 간에 월경통으로 치부하고, 성관계 중에 생기는 어떤 통증이든 와인 한 잔으로 완화하라고 한다면, 모든 질병에서 ‘오진 왕국‘이 펼쳐진다. 어쨌드 생식기관은 생명에 ㅈ기결된 다른 기관들과 아주 가까이 있다.- P346

스타일스가 세계자율신경장애협회를 설립한 이유의 가장 큰 부분은 한 번도 제대로 된 진단을 받지 못한 환자들에 대한 생각에 몸서리쳤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스타일스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백인이었고, 뉴욕시 근처에 살았으며, 지지해주는 가족이 있었고, 연봉이 높고 의료보험이 있는 변호사였으며, ‘돈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병원‘에 갔다. 그래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내가 가난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라고 스타일스는 물었다. "내가 시골에 살았다면? 의사 한 명만 보장해주는 의료보험이었다면? 온종일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하는데, 병원에 데려다줄 가족이 없었다면? 첫 번째 의사에서, 두 번째 의사에서, 세 번째 의사에서 멈춰야 했던 대부분의 다른 여성들을 생각해보세요. 계속 의사를 찾아다닐 돈과 시간이 충분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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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9 19: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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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0 08: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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