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호 <정희진의 오디오 매거진>을 듣는데, 쌤이 아줌마로 불렸던 일에 대해 언급하셨다. 쓰레기를 버리러 갔는데 '아줌마'라고 누군가 세 번이나 불렀고, 그동안 그것이 본인을 칭하는 말인지 알지 못했다는 것. '저 부르신 거예요?' 했더니 상대는 '여기 아줌마 말고 누가 또 있어요?' 했다는 거다. 쌤은 세 번이나 아줌마로 불리는 동안 그것이 자신을 칭하는 말임을 알지 못한 것은, 본인이 스스로를 아줌마로 정체화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선생님의 이 에피소드에 크게 동의했다.


2주전이었나, 주말에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가는데 누군가 내게 길을 묻기 위해 부른 호칭이 '아줌마' 였다. 아줌마, 하는데 나 역시도 그게 나를 부르는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두 번이나 더 불린 다음에야 쳐다봤고 그것이 나를 칭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물음에 답을 해주고 집에 와서 엄마에게 이 일을 얘기하며, '그런데 엄마, 나 아줌마 맞지 뭐' 했더랬다. 엄마도 '그치, 너 아줌마지' 라고 하셨다. 아줌마는 '아주머니'를 낮추어 부르는 말인데 어느 정도 나이 있는 여성을 대부분 아줌마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내가 어느 정도 나이 있는 여성인만큼 나 스스로를 아줌마로 정체화하는 것도 이상할 일이 아니건만, 나는 나를 그렇게 생각해본 적도 없고 누가 나를 그렇게 부를 거란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거다. 그것은 내가 겉보기에 20대로 보인다거나 해서가 아니라, 아가씨로 불리고 싶다거나 해서가 아니라(아저씨처럼 보임), 내가 아줌마로 불릴 일이 그동안 없었기 때문이다. 아줌마로 불릴만한 상황에 내가 놓였던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 평일에 나는 직장에서 직급으로 불린다. 직장에서 아무도 나를 아줌마로 부르지 않는다.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이름으로 불린다. 아무도 나를 아줌마로 부르지 않는다. 가족들을 만나도 마찬가지. 나는 이름으로 불리거나 언니, 누나, 이모, 고모가 된다. 나는 아줌마로 불릴 일이 별로 없는 시간들을 보내왔다. 그러니 그 호칭은 내게 익숙하지 않다. 만약 내가 직장을 그만둔다면, 그러면 나는 더이상 직급으로 불리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 때는 평생 들었던 말보다 더 많이 아줌마라는 호칭을 듣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길을 지나가면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알게 뭔가. 한 직장에서 어떤 직급을 가진 사람인지, 누군가의 고모인지 이모인지, 그걸 알게 뭐야. 그냥 아줌마 1 이겠지. 아니면 아기엄마 1 이거나. 한 번은 거래처에서 아이는 어떡하고 출근하시냐는 물음을 듣기도 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비혼이에요' 라고 답했더랬다. 상대가 크게 당황했다. 



요즘은 회사가 새로운 일로 크게 바빠 나 역시도 정신없이 일하고 있고 그러는 틈틈이 자꾸 새로운 사람들과 명함을 주고 받으며 미팅을 해야한다. 어제 오전에도 그렇게 미팅을 하나 끝냈는데, 오후에 다른 부서의 팀장이 전화를 걸었다. 안바쁘시면 잠깐 내려와달라는 거였다. 무슨 일이세요? 물으니 거래처에서 직원이 왔는데 나한테 인사하고 싶다고 했다는 거다. 평소 나 역시도 그 거래처 직원과 통화를 자주 했던 바, 그렇다면 나 역시도 인사를 하러 가야지, 하고는 명함을 챙겨 들고 갔다. 그런데,


앗!!


거기엔 내가 아까 '저 사람은 누굴까?' 했던, 바로 그 사람이 있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다른층의 접견실에서 주로 미팅이나 회의가 이뤄지고 나 역시도 오전에 거기서 미팅을 했던 바다. 그런데 오후에 내려갔더니 거기에 헬스 트레이너로 짐작될만한 훈남이 혼자 앉아있는 게 아닌가. 저렇게 젊은 훈남이 누굴 만나러 여길 온걸까? 갸웃하며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갔던 터다. 그런데 내가 늘 통화하던 바로 그 사람이었고, 나한테 인사를 하고 가겠다는 사람이 그 사람이었던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 나는 접견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며 그분의 이름과 직함을 불렀고, 그 분과 반갑게 인사했다. 사실,


그동안 통화하면서 딱히 막 기분 좋았던 적은 별로 없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으 별로야 … 늘 생각했던 사람인데, 막상 만나서 인사를 하고 보니 앞으로 통화를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 느낌? ㅋㅋ 내가 어제 쓴 것처럼, 내가 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합'이란 것은 실체로 만났을 때를 전제한다(미아가 고개를 옆으로 휙 돌리면 공기의 움직임이 느껴져요. 저는 미아를 보고, 듣고, 만지고, 그녀의 체취를 맡는 것, 이 모든 것을 동시에 할 수 있어요. 미아는 실체예요.). 글로만 보는게 아니라, 통화로만 보는게 아니라, 실체로서의 너와 나. 그래야 너의 에너지와 나의 에너지의 합을 알아볼 수 있는 거다. 아, 그렇다고 내가 그 잠깐 동안 뭐 그 사람과 합이 조화를 이뤘다던가 하는 건 결코 아니고, 만나고 나니까 그동안 통화를 하면서 품었던 어떤 부정적인 느낌이 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역시 사람은, 만나야 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이 직장에서 이토록 오래 근무하면서 같은 직장에 들고나는 사람들과 외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런 트레이너 체형 처음 봅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무튼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둔지는 오래된 터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읽을 수 업을 것 같아서 미루기만 했던 책. 그런데 며칠전에 트윗에서 이런 걸 본 거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미국에서 한 프로그램의 열혈 시청자가 뜬금없이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에 대한 트윗을 했는데, 어쩐 일인지 그게 이슈가 되어 신간도 아닌 이 책이 아마존 전체 순위 3위까지 올랐고, 작가도 그 트윗 유저에게 감사하고 있으며, 이걸 번역한 위의 국내 트윗 때문에 알라딘에서도 순위가 올랐다는 것. 

처음 트윗은 이것.




이 책 읽어본 사람들은 다들 극찬한다는데, 그래 그렇다면 나도 한 번 읽어볼까? 하고 꺼내들었다.















작가는 두 명인데, 언제나 그렇듯 작가 소개를 읽다가 '아말 엘모흐타르'의 소개에서 이런 구절을 본다.


현재는 남편과 함께 오타와시에 거주하며 소설을 쓰고 있고, 드물게 여가 시간이 생기면 차를 마시거나 역기를 들거나 친구들에게 손 편지를 쓴다. -작가소개 中


네? 여가 시간에 역기요? 오!! 멋진데?

문득 나도 작가소개에 저런 걸 넣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물게 여가 시간이 생기면 술을 마시거나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를 한다.

드물게 여가 시간이 생기면 술을 마시거나 머리서기를 한다.

드물게 여가 시간이 생기면 술을 마시거나 까마귀 자세를 취한다.

드물게 여가 시간이 생기면 술을 마시거나 메뚜기 자세를 한다.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 머리서기, 까마귀 자세, 메뚜기 자세 … 다 못하는 거라 한 번 넣어봤다.



아,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일단 장르가 SF 다. 저는 SF 랑 심리적 장벽이 있기도 하지만 아이큐 장벽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시간의 실 위와 아래, 잡고 전쟁을 일으키고 역사를 바꾸고 … 그래서 몇 장 안읽고 포기할까? 하다가, 아니 남들 다 읽는데 내가 왜 못읽어! 하고 여하튼 가까스로 절반 가량 읽고 있다. 그런데 읽으면서 점차 나아진다. 상황 자체를 내가 이해한 건 아닌데, 어쨌든 서로 적인 '레드'와 '블루'가 각자의 방식으로 상대에게 편지를 쓰면서 관계가 좀 달라지는 거다. 둘다 '그녀'라고 칭해지는데, 편지는 좀 더 길어지고 편지가 진행될수록 그 사이에 상대에 대한 애정도 깃든다. 그러면서 편지가 아름다워져. 아, 사람에 대한 애정의 감정은 문장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내가 이해를 못해도 끝까지 읽어보기는 하겠다. 





끝에 막 열나 아름다울까봐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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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6-09 09: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크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저씨처럼 보인다는 말에 전철에서 웃다 쓰러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6-09 09:03   좋아요 4 | URL
오늘도 잠자냥 님을 웃기면서 시작하는 상큼한 하루. 샤라라랑~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6-09 11:50   좋아요 1 | URL
전 아이큐 장벽 에 웃다 쓰러짐요 ㅋㅋㅋ

다락방 2023-06-09 11:57   좋아요 0 | URL
SF 쪽으로는 제 아이큐가 심각하게 낮은듯 해요. 하하하하하

잠자냥 2023-06-09 12:32   좋아요 1 | URL
웃다가 쓰러져서 지금 다시 일어나서 마저 읽음.....

거리의화가 2023-06-09 1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혼녀이지만 아줌마라는 호칭이 어색하고 심지어 싫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40대 넘고 주름도 생기고 군살도 붙고 이러니 누가 보면 아줌마라고 보겠구나 싶으면서도 그 말 듣는 건 역시 싫어. 그렇다고 아가씨 소리를 듣는다면 간지럽겠지만요. 불특정 다수가 보기에는 그저 일반인일 뿐이고 그럼 ˝저기요!˝라는 호칭 말고는 딱히 없구나 싶기도 합니다만 복잡하네요. 아무튼 옆지기가 그렇게 부를때조차도 싫더라구요. 아줌마라고 부르지마!!! 했다는^^;;;
제가 요즘 보는 중드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데 아이가 엄마에게 이름을 불러주더라구요. 그게 참 좋더군요. 엄마도 그저 엄마가 아니라 이름이 불리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다락방 2023-06-10 19:45   좋아요 1 | URL
아줌마라는 호칭이 저도 참 싫은데요 그런데 그게 왜 싫은걸까요. 이미 어떤 부정적 이미지로 굳어져서 그런 것 같아요. 멸칭으로 들리잖아요. 뭔가 무시하고 비하하는 것 같은. 그러고보면 저는 나이든 여성을 부를 때 아줌마 라고 안하는데요. 요즘엔 ‘선생님‘ 이란 호칭을 여성에게도 남성에게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낯설었는데 쓰다보니 익숙해지더라고요.
엄마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저는 나쁘지 않아 보여요. 실제로 제가 본 적은 없지만요. 저도 한 번 보고 싶네요.

햇살과함께 2023-06-09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SF 소설이었군요!
제목만 보면 시간관리에 관한 자기계발서인 줄요...
아줌마도 싫고, 어머니도 싫고(내가 왜 당신 어머니야?), 사모님도 싫어요(남자는 사장, 여자는 사모라는 이분법) 진짜...

다락방 2023-06-10 19:47   좋아요 1 | URL
제가 이 책을 오늘 다 읽었는데요 이 책은 SF 의 탈을 쓴 로맨스입니다! 사랑 이야기였어요! 하하하하하.
저도 병원 갔을 때 어머니란 호칭 들었는데, 아이들이 많이 오는 이비인후과 였던 만큼 당연히 저를 누군가의 어머니로 상정하고 부르더라고요. 고쳐줄까 하다 말았어요. 아 정말 피곤합니다 ㅠㅠ 내가 누구의 어머니라고 왜 자기 마음대로 생각을 하나요 ㅠㅠ

은오 2023-06-09 1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사진을 제가 봤는데 아저씨라니 아저씨들이 다락방님 같았으면 전 아저씨들 따라다녔습니다 헐 ㅋㅋㅋ
아니 근데 그냥 아줌마라는 호칭 쓰는 거 자체가 무례하지 않습니까 정말?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으면 저기....나 저기요!를 하라고요 인간들아. 사장님 아닌 거 알아도 사장님 하는 좋은 문화도 있잖아. 아가씨도 별로라고!!

근데 제가 아까 합 페이퍼를 읽고 왔는데 또 합이 나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이게 합이라기보단.... 그 사람이 훈남이라 아니 근데 훈남이면 합 맞기가 쉽기도 한데.... 뭔지 알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6-09 12:3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세상 아저씨들 다락방님처럼 생긴 걸로 상상하니까 웃겨서 다시 쓰러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6-10 19:48   좋아요 1 | URL
제가 그나마 아저씨가 아닐 수 있는건 큰 가슴 때문입니다. 저는 이 큰 가슴만 아니었으면 진짜 딱 아저씨에요 ㅋㅋㅋㅋㅋ 그나마 가슴이 아저씨 때신 아줌마로 보이게 하는것 같습니다. 아짜증나 ・・・ㅋㅋㅋㅋㅋㅋㅋ

네네, 훈남이면 일단 합이 맞을 가능성이 더 높긴하지만, 진지한 버젼으로 가자면, 그것은 또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제가 이 페이퍼에서 말하고자 했던 바는, 보지 않으면 합을 알 수 없다, 봐야 알수 있다, 봤을 때 훈남이면 잘 맞을 확률은 더 높다 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털보형 2023-07-16 19:02   좋아요 0 | URL
근데 아줌마나 아저씨가 아니면 나이가 적당히 드신 분들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아줌마가 무례한 호칭이라고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요. 이름도 모르고 직급도 모르고
신분을 모르면 아줌마가 제일 적당한 호칭 아닌가???
음식점의 젊은 여성이 아가씨라고 불렀다고 화를 냈다는 신문기사가 있었지요.
사회적 합의를 이룬 호칭이 없으면 통상적인 호칭이 제일 무난한건 아닌가 생각됩니다.
댓글이 토론장은 아니지만 은오님 생각엔 선뜻 동의하기 어려워서요.

다락방 2023-07-16 20:06   좋아요 1 | URL
제 경우엔 ‘선생님’ 으로 호칭합니다.

은오 2023-07-16 20:17   좋아요 2 | URL
일단 성별과 세대에 따라 호칭에 대한 느낌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20대 여성으로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아줌마‘라는 호칭이 무례하지 않은 중립적인 호칭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사전에도 ’아줌마‘는 ’아주머니‘를 낮춰 부르는 말이라고 명시되어 있고요. ’아줌마‘라는 호칭이 무례하게 사용되는 상황을 그렇지 않은 상황보다 더 많이 접한 것도 제가 그 호칭을 무례하게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되고요.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훨씬 자주 직업과 역할에 대한 존중 없이 ’아줌마‘나 ’아가씨‘로 불리기 때문에(병원에서 간호사들을 아가씨라고 부르는 걸 얼마나 많이 봤는지) 그런 호칭을 지양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아가씨’는 그리고 이미 너무나 오염됐죠. 성매매를 경험한 성인 남성이 50%인(이것도 사실 설문 주제상 경험이 있음에도 없다고 답한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나라에서 특정 업종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아가씨’라고 부르고 거기서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다 아는데, 젊은 여성들이 ‘아가씨’라는 호칭을 들으면서 기분이 좋을 수 있을까요? 식당에서 직원을 부르려면 ”사장님“이나 ”직원분“ 아니면 그냥 ”여기요“ 하면 되지 않을지.
신분을 모르는 사람을 부를 일이 딱히 많지는 않아서 보통 뭐 식당에서는 “사장님” 택시에서는 “기사님” 하고 딱히 호칭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는데, 가까이 가서 호칭을 생략하고 말하거나 불러야 한다면 ”저기요“ 하거나 “선생님” 합니다. “아저씨”도 써본 적이 없네요. 제 또래들은 거의 저랑 비슷한 것 같아요. 상대의 직업을 안다 -> 직업에 ‘님’ 붙여서, 모른다 -> ‘저기요’, 모르는데 나보다 나이가 많다 -> ‘선생님’ 이런 식입니다.

물감 2023-06-09 10: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남자들은 스무살 때부터 아저씨 소리 듣고 산다는 위로 아닌 위로를 해봅니다 ㅠㅠ

감은빛 2023-06-09 12:44   좋아요 1 | URL
어, 저 20대 때부터 아저씨 소리 들었다는 얘기 하려고 했어요. 심지어 30대 중반 이전의 저는 엄청 동안이었거든요. 성인 남성은 그냥 무조건 아저씨가 되나봐요. 나이에 관계없이.

감은빛 2023-06-09 12:46   좋아요 1 | URL
그런데 ˝드물게 여가 시간이 생기면 술을 마시는˝ 것이 사실과 어긋나는 것 같네요. ㅎㅎㅎㅎ

물감 2023-06-09 14:23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근데 또 아저씨 소리에 발끈해하면 미친넘 취급받는 게 현실이죠. 그런 사회적 분위기(?)때문에 존잘들도 아저씨 소리 들으면 반박을 못합니다. 제 주변에 존잘이 몇 있어서 잘 압니다 ㅋㅋㅋㅋ

잠자냥 2023-06-09 17:50   좋아요 1 | URL
물감 아재! ㅋㅋㅋㅋㅋ

물감 2023-06-09 18:20   좋아요 1 | URL
발끈ㅋㅋㅋㅋ

다락방 2023-06-10 19:4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녕 물감아저씨? 안녕 감은빛 아저씨? 아저씨들이 넘쳐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6-09 1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진쌤 저 방송은 아직 못 들었는데, 그런 이야기가 있었군요.
아줌마라..... 저도 아줌마로 정체성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아줌마 소리 들으면(이제까지 살면서 딱 두번 들어봄, 몇 년전까지만 해도 학생 소리 들었는데..... 주르륵. ㅠㅠㅋㅋㅋㅋㅋㅋ ) 주변을 둘러보게 되더라고요.
한 번은 어린 조카 데리고 놀이터 나가서 벤치에 앉아 있는데 왠 꼬마가 달려오더니 ˝아줌마, 누구 엄마에요? 쟤 엄마에요?˝ 이래서 2번 놀람. 아줌마와 엄마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 꼬마가 손으로 가리킨 곳을 보니 제 조카는 아닌데 저랑 존똑으로 닮은 꼬마가 있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빵터짐. 꼬마들이 아줌마, 엄마라고 부르는 건 뭐 애들 눈에는 다 그렇게 보이겠거니 싶어서 그냥 넘어갔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6-10 19:51   좋아요 1 | URL
꼬마들이 아줌마나 엄마라고 부르는 건 밉지 않잖아요. 아이들 세계에서는 아직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건 아이들일 때의 이야기이고 사람이말이야 자라면서, 성장하면서,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렇게 막 아무 호칭이나 갖다 붙인다고 되는게 아니라는 걸 좀 알아야 하지않습니까? 자신을 높이는 방법으로 상대를 낮추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대체로 그런 사람들이 멸칭을 사용하는 것 같아요. 사실 아줌마가 비하의 호칭이 된 것 부터가 짜증나지만・・・ 아무튼 아줌마란 호칭은 이래저래 충격이에요. 정체성이란 뭘까 싶기도 하고요・・・

치니 2023-06-09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줌마도 괜찮고 저기요 여기요 뭐 대충 다 괜찮은데, 어머니...이게 너무 싫어요. 나는 너의 어머니가 아닌데 왜? 물론 그런 뜻으로 부르는 게 아닌 줄 너무 잘 알지만, 결혼 안했을 수도 아이가 없을 수도 있다는 전제가 1도 없는 호칭이라서 너무 싫어요. ㅠ (하지만 최근에는 항상 어디 가면 주로 이렇게 불립니다...)

다락방 2023-06-10 19:53   좋아요 0 | URL
저도 어머니란 호칭을 병원에서 들어본 적 있어가지고 기분이 너무 나빴는데, 치니님 말씀대로 아줌마 보다 더 나빴어요. 그런데 따지지도 못했네요. 너무 욱하는 바람에 ・・・ 에휴. 다 큰 성인이 알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상대가 나이가 있어 보인다고 해서 반드시 결혼을 했으리란 보장도 없고 아이가 있으리란 보장도 없다는 것을. 왜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어머니라고 불러요 ㅠㅠ

댄스는 맨홀 2023-06-09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 괜찮은데 치니님 말씀처럼 어머님은 정말 아닌듯, 딱봐도 저랑 나이차이도 별로 안나는데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뭘까요? 그냥 넘어갑니다. 호칭 따져서 뭐하나 싶고 스쳐지나가는 사이에 뭘~ 그러고 맙니다.

다락방 2023-06-10 19:54   좋아요 0 | URL
저도 아줌마 보다 어머니란 호칭에 더 열받았었는데 그 때 갑자기 욱 하고 올라오는 바람에 이를 악물고 참았네요. 내가 왜 어머니냐, 나는 누구의 어머니냐. 그렇게 누군가를 어떻게 호칭하느냐에 따라서 자기자신이 더 후져 보인다는 걸 사람들이 많이 모르는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2023-06-09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 책 저도 읽고 싶다고 넣어뒀다가 까먹었네요. 저는 sf 좋하는데말입니다. ㅎㅎ
저는 다락방님 작가 소개에 드물게 여가 시간이 생기면 술을 마시거나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를 한다. 요 구절 추천입니다. 뭔가 알아들을 수 없으면서 멋져보여서요. 적어도 메뚜기 자세보다는 좋잖아요. ^^

사람은 만나봐야 안다는데도 동감입니다. 더더구나 헬스 트레이너삘이라니.... 부럽습니다. ㅎㅎ
저는 요즘 일 하나를 크게 처리하면서 사람들의 그 보고싶지 않은 면을 자꾸 보게 돼서 실망과 짜증과 에휴 인간이 뭐 원래 그렇지 이런 넋두리를 무한반복하고 있습니다. 길게 얘기하면 인간들 욕을 계속 퍼부어야 하기 때문에 그냥 생략입니다. ㅎㅎ
결론은 훈남을 만나신 다락방님이 부럽다는..... ^^

다락방 2023-06-10 19:56   좋아요 0 | URL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는우리 말로 바꾸면 ‘거꾸로 하는 활자세‘ 이고요, 영화 엑소시스트에서 악마 들린 꼬마 아이가 이 자세로 게단을 내려오는 장면이 아주 유명합니다. ㅋㅋ 메뚜기 자세는 제가 아사나 이름을 외우지 못해서 메뚜기 자세라고 했어요. 지금 검색해보니 ‘살라바아사나‘ 이네요 ㅋㅋㅋㅋㅋ 이렇게 썼으면 이것도 있어보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직장생활 하면서 훈남을 만날 일이 거의 없었는데 또 이런 일도 있네요? 역시 직장생활은 오래하고 볼 일이고 사람은 많이 만나고 볼 일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3-06-09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수리 냄새 나는 아저씨들 틈바구니에서 잭 리처같은 헬스트레이너 체형의 남성을 만나다니!!!
일단 몸매가 다락방 님 이상형에 적합하군요.
앞으로의 이야기에 기대를 해봐도 되나요?ㅋㅋㅋ

아줌마 소리를 요즘 들어봤던가? 헤아려 봅니다.
요즘은 그 단어가 실례가 될 것이란 생각에 잘 쓰지 않는 분위기인 것 같은데 말입니다. 보통 ˝저기요~~˝ 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 어린 학생들은 한 번씩 아주 큰 소리로 아줌마라고 부르긴 하더군요. 이젠 뭐...아줌마라고 부르면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몹쓸 고개를 가졌네요! ㅋㅋㅋ
옛날엔 아무리 나이 어린 애들이라도 아줌마라고 부르면 속으로 분노하여 눈으로 욕하던 나였었는데 말입니다ㅋㅋㅋ
저는 몇 년전 지하철에서였던가? 백팩을 메고 있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길을 물어보신다고 뒤에서 학생이라고 부르셨는데 나는 못알아듣고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ㅋㅋㅋ
나랑 눈 마주치니까 그 할아버지 흠칫 놀라시고 나도 민망했던 적 있었네요. 아...적고 보니 좀 슬프네요.ㅋㅋㅋ
또 한 번은 모자 쓰고 츄리닝 입고 마스크까지 쓰고 동네 언니랑 산책하다가 쓰레기를 좀 줍고 있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아가씨들이 좋은 일을 한다며 가까이 와서 보시더니 눈가에 주름이 보였던 걸까요? 어 아가씨가 아닌가 보네? 하시더군요...그 언니랑 둘이서 모자 쓰고 마스크를 써도 아가씨랑 아줌마를 구별할 수 있나 보다? 하며 좀 씁쓸하게 웃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어떤 할머니는 지나가시면서 좋은 일 한다며, 우리 아파트 주민이냐고 물으시던데...지금 생각해보니 차라리 그 호칭이 더 나았던 것 같네요.^^

다락방 2023-06-10 19:59   좋아요 1 | URL
앞으로의 이야기는 기대하시면 안됩니다. 제가 그 훈남 청년보다 스무살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줌마 소리를 들을 일이 좀처럼 없던 터라 아주 낯설고 그리고 이렇게나 오래 기억에 남네요.마침 정희진 선생님도 같은 일을 겪었다 하니 또 생각이나기도 했고요. 사람이 자신이 존중 받고 싶다면 자신 역시도 상대를 존중하면 되는 것인데 그런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일방적으로 상대를 하대하고 또 비하하면 자신이 그와 동시에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아주 멍청한 생각이죠.

뭐 아줌마든 아저씨든 뭐든, 누가 저를 어떻게 호칭하든간에 저라는 사람은 저라는 사람이니 저는 저대로 살아가겠습니다. ㅋㅋㅋ 아 토요일이 지나고 있어서 너무나 슬퍼요. 꽈배기 먹고 있습니다.껄껄.

DYDADDY 2023-06-14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간 바쁜 사이에 놓친 페이퍼가 있어 이제야 읽었어요. 갑자기 SF를 읽으신다 하셔서 의아했는데 이제야 알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호칭격은 결국 타자가 나를 누구로 규정하느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에 대한 부름의 목적은 어떤 단어를 써도 달성이 가능하지만 호명의 대상이 된 사람의 입장에서 어떤 호칭으로 불리느냐는 정체성과 관계되는거죠. 그렇기에 부정적인 느낌의 단어로 호칭됐을 때 정체성과 충돌이 있어 불쾌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더 넓게 보면 국가 혹은 사회와 나의 관계도 그런 것부터 시작하겠지요.
거래처의 그 분이 책도 좋아하시면 다락방님의 호감도는 더 상승하겠지요. 서로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해 언젠가 업무를 빙자한 티타임이라도 가져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

다락방 2023-06-14 09:44   좋아요 1 | URL
SF 영역은 제 뇌에서 발달이 덜되어 있어서 읽기가 매우 난해합니다. 읽으면서도 내용 파악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의심하게 돼요. 어렵습니다. 흑흑.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 소설의 경우, 로맨스 여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한 번도 마주한 적 없고 같이 지내지도 못했지만, 그러나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건 무척 흥미롭지 않습니까. 안타깝고 응원하게 되면서 또 이해도 하게 되는.

저는 페미니즘을 알고 나서부터, 제가 페미니스트라고 저를 정체화했더니 그 점에 대해 저에게 무언가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부터, 타인이 나를 규정하게 두지 말자, 나는 내가 옳다는 방향으로 나아가자 고 생각했고 또 결심하고 있습니다. 타인들이 만들려는 내가 너무 피로해요. 저는 저인데 말입니다.
 

요즘의 나는 한 인간과 다른 한 인간의 '합'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합'을 국어사전에 넣어 검색해보면 '여럿을 한 데 모음' 이라고 나오고 또 '개개의 관념 개념 따위를 결합시켜 새로운 개념을 구성하는 일'이라고 나온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합은 후자에 가까운데, 이것은 아마도 요즘 말로 케미라고 해도 많이 다르진 않을 것같다. 사실 그보다는 아마 사주명리학 쪽에서 더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분명 명리학에는 내가 생각하는 합을 설명하는 단어가 있을거야. 혹은 합을 제대로 설명해줄 문장이라든가.


그러니까 처음은 '까닭 모를 미움'에서 시작했다. 나는 어떤 일에 대한 답을 찾고 싶은 사람이고, 그래서 답이 나올 때까지 계속 생각해야 하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경우 답은 구해진다. 나는 어떤 미움을 갖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그 사람을 왜 미워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거다. 왜 미운가, 나에게 잘못을 했는가? 나에게 해를 입혔는가?

이를테면 범죄자의 경우, 남에게 상해를 입힌 경우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아마 다들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상해를 입힌게 아닌게 밉다면, 그것은 왜그런가.

왜, 우리 살면서 그런 말들을 종종 하지 않나. '주는 거 없이 미워' 라든가, '목소리도 듣기 싫어' 같은 말들. 그렇다면, 왜?



자, 내가 만약, 'A 너무 싫어, 입술 잡아뜯는 거 으 너무 싫어' 라고 했을 때, 내가 싫어하는 건,

'입술을 잡아뜯는 행위'인가? 그렇다면 B 가 입술을 잡아 뜯으면 나는 그럴 때에도 역시 '으 B 싫어' 할것인가, 라고 하면 그게 아닌 것이다. 내가 이걸 얻어내기까지 얼마나 많이 머릿속에서 사람과 상황을 대입시켰었는지 모른다.

한 사람의 어떤 행위가 싫었을 때, 그래서 그 행위 때문에 그 사람을 싫어한다고 했을 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행위를 머릿속에서 똑같이 대입시켜 보았다. 그러자 답이 나왔다.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 행위를 한다고 그 사람이 싫어지진 않았다. 그렇다면 그 행위, 내가 A 를 싫다고 말하게 되는 그 행위는 나에게 '절대적으로 싫은 행위'가 아니었던 거고, 그렇다면 '그 행위 때문에' A가 싫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면 그것은 단지 애정의 크기 때문일까? 이를테면 A 는 별 애정이 없고 B 는 애정이 크기 때문에 A 를 그 행위로 싫다고 말한 것인가? 라고 보면 그것도 아니었다.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이 그 행위를 해도 나는 그 사람을 싫다거나 말하지 않으니까.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에너지를 쓰는 일이어서, 나는 이 일에 대한 답을 얻고 싶었다.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도대체 왜 미운걸까, 왜 예쁘질 않은걸까. 묻고 묻고 또 물었다.


나에게 잘못을 했나? 아니.

나에게 해를 입혔나? 아니.


그래서 이건 매력의 탓인가도 생각해보았다. 그 사람에게 매력이 부족한가? 그러나 그 사람은 나름대로 누군가에게는 사랑 받는 사람일 것이었고 나름의 친구도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 사람의 매력은 내게 매력으로 다가오지 못했나? 이게 단순히 매력의 문제일까? 그렇다면 내가 문제인가? 그런 사소한 걸 미워하는 나의 탓인가? 그렇지만 나는 다른 사람을 그렇게 미워하지 않는데?


이 이유, 저 이유를 다 대보아도 그 사람을 미워할 만한 딱히 어떤 정확한 답, '이거다' 하는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사람이 내가 뭘 했는가 혹은 뭘 안했는가의 문제가 아닌 것 같은 거다.


그러다 나는 작년에 《미 비포 유》를 재독했다.

왜 루이자에게 6년간 연인이었던 남자는 루이자의 상처를 치료해주지도 못하고, 루이자를 세상 밖으로 꺼내놓지도 못했나.

왜 윌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루이자로 하여금 안하던 외국 영화를 보게 하고, 안하던 클래식을 듣게 했나. 

루이자의 애인이 루이자를 사랑하지 않았나? 루이자의 애인이 루이자를 사랑한 시간은 더 길지 않았나? 그런데 왜 루이자는 연인이 같이 하자는 걸 해본 적은 없으면서 윌이 같이하자는 건 다 같이 했는가. 이게 왜, 어떻게 가능해지는가.


종국에 나는 '합'이라는 답을 얻어냈다. 너와 내가 일으키는 합.


일례로, 거래처 직원과 통화를 할 때마다 우리는 말이 꼬였다. 그 직원은 아주 젠틀하고 친절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인상도 좋았는데, 이상하게 대화를 할라치면 대화가 매끈하지 못한것 같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향한 표정이나 말투는 공손했는데, 그러나 뭔가 명쾌하진 않았다. 그 직원의 후임으로 들어온 직원은 그 전직원에 비해 젠틀함도 친절함도 덜했다. 그러나 대화가 아주 잘됐다. 업무 처리하는 시간이 더 짧아지고 대화를 마쳤을 때는 에너지 소모를 느끼지 않았다. 호감도로 치자면 나는 전직원에게 더 호감이 있었는데 대화하고나면 기분이 좋은건 그 후임이었다. 이건 내가 누구를 더 좋아해서 일어난 일도 아니고, 누가 내게 잘못해서 일어난 일도 아니었다. 



사람에겐 그 사람 고유의 성향이 있다. 거기엔 체취도 있을 것이고 소리도 있을 것이다. 다들 좋아하는 목소리를 나는 안좋다고 할 수도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 근처에 가면 그 사람이 풍기는 냄새가 싫을 수도 있고,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그 냄새가 좋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나의 에너지와 상대의 에너지와 맞을 때, 그 사람의 어떤 행동들은 이해할만한 것이 되고 또 받아들일만한 것이 된다. 일전에 친구를 만나 얘기했을 때, 친구가 연인으로부터 들었던 감동깊었던 말이, 나 역시 연인으로부터 듣고 짜증났던 말이었던 적이 있다. 어떤 말이 누구를 통해 나오느냐에 따라 듣는 사람에겐 다르게 들린다. 이건 좋아하고 싫어하고보다 더 이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좋아하고 싫어하고도 바로 이 합으로부터 도출되는 것 같다. 합이 맞으면 좋아하기가 더 쉬워지는 것이고 합이 맞지 않으면 끝내 좋아할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아 너무 좋아' 할 수는 없게 된달까. 내가 누군가를 이유없이 미워하는 것 같아서 그게 못내 찜찜했더랬다. 아무리 내게 수없이 이유를 물어도 마땅한 답을 내릴 수 없었고, 심지어는 내가 그 사람 입장에서의 변명이나 핑계조차도 댈 수 있었던 거다. 그러니 내가 미워하는 일이 몹시 마음에 걸릴 수밖에. 그러다 합이라는 답을 얻어내자 좀 평안해졌다. 나는 그 사람을 싫어하는 게 아니고,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게 아니다. 그 사람과 내가 단지 맞지 않는 것 뿐이다. 그 사람의 에너지와 나의 에너지는 서로 제대로 섞여내지 못하고 밀어낸다. 그것은 나의 잘못도 아니고 그 사람의 잘못도 아니다.



누군가 별 이유없이 나를 미워할 수도 있다. 실제로 누가 나를 미워한다는 말을 듣기도 여러번이고, 거기에는 그 사람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기도 하고 또 이유가 없을 것이기도 하다. 그저 내 존재 자체가 거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쟤는 이유없이 싫어, 으, 그냥 꼴도 보기 싫어,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고 또 당신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우리는 우리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서로 충돌할 뿐이다. 이건 미움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맞지 않을 뿐. 맞지 않는 상대를 만나고나면, 아무리 나처럼 다른 사람들로부터 에너지를 받는 사람이어도 모든 에너지가 빨리고 만다. 이런 일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일전에 좋아하는 친구 D를 만나 이야기를 했다. 결국은 합의 문제인 것 같다고. 모든게 정리된 상황에서 말을 했다.

그 사람의 이런 행동이 싫어, 라는 나의 말에 D는 나도 그런 행동 했잖아, 라고 답했다. 


응 그래서 이제 알게 됐어. 나는 그 행동이 싫은게 아니라, 그 사람이 나랑 맞지 않으니까 뭐든 잘 흡수가 안돼, 라고. 놀랍게도 D의 경우에는 '강헌'의 <사주명리학>을 봤을 때 나랑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었다.


일간(日干)이 기토(己)인 사람과 일간이 무토(戊)인 사람은 함께 있어야 한다. 물론 둘 사이는 좋지 않다. 그러나 함께 있어야 조화를 이룬다. 기토(己)는 우물 안의 개구리다. 세상을 넓게 보지 못하고, 자신이 경험하고 본 대로만 세상을 바라본다. 무토(戊)인 사람이 옆에서 "네가 경헙하지 못한 이런 세계도 있다"고 말해주며 다른 세상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거꾸로 무토(戊)인 사람에게는, 아무리 세계를 호령할 기질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일단 호령할 세상으로 가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근거지를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을지를 알려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기토(己)인 사람은 그런 컨트롤에 매우 능하다. -'강헌' 의 《명리》中


내가 무토(戊)의 사람이다. D와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르다.그런데도 주기적으로 함께 있고 싶어진다. 나는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하는 만큼이나 D 와 호캉스를 하고 싶어진다. 같이 있으면 서로 많은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호텔 침대에 나란히 누워 티비를 보기만 할 때도 있는데, 그건 그런대로 너무 좋다. 이 친구가 내 옆에서 쉬고 있는게 좋고, 내가 그 친구 옆에서 자고 있는 게 편안하다. 친구가 말을 해도 편안하고 말을 안해도 편안하다. 나는 이게 그 친구와 나의 합인 것 같다. 조화를 이루는 합.


여러분, 누군가 미워진다면 밉다, 싫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린 합이 안맞는구나' 생각하세요. 평안이 찾아옵니다.



내가 왜 이 아침부터 합에 대해 긴 얘기를 했냐면, 결국 누군가와 합이 맞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게 누구냐, 사강이다!! 나는 사강하고 안맞아!! 아오 안맞아!! 일전에도 사강 책 두 권인가 읽고 으 사강 안읽어 하고 밀어뒀다가 최근에 시간도 흘렀으니 어디 다시 한 번, 하고 사강의 책 《패배의 신호》읽었는데, 읽는 내내 나는 증맬루 프랑스 영화랑 프랑스 책이랑 사강이랑 안맞는다, 했다. 사강 다시 시도하지 않아도 되겠어. 으 안맞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되어 법정에 섰던 프랑수아즈 사강은 이후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런 말을 남겼다. 그녀의 소설을 읽어보 지 않은 사람들도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책머리에 中



그렇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사강의 말은 틀리지 않다. 자기가 자기 파괴를 한다는데 누가 뭐랄 것이냐. 그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과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좋아라 할 순 없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결국 타인을 사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보면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하는 사람이 타인을 파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건 참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아무리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고 또 자기 선택이라 할지라도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하는 사람을 딱히 가까이 하고 싶진 않다.


'루실'은 서른살의 여성이며 직업 없이 한가하게 보낸다. 그녀에겐 아주 부유한 오십살의 남성 애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루실이 서른 살의 직장인 남성 '앙투안'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앙투안 역시 마흔살의 부유한 여성 애인을 갖고 있었다. 루실도 앙투안도 자신들의 애인을 딱히 사랑하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애인으로 지내면서 그들의 파티에 참석하고 연주회에 함께 가고 연회에 참석하고 뭐 그런다. 그러다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어서 결국 부유한 애인 버리고 자기들끼리 살게 되는데, 루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즐기는 사람이고 그러므로 노동도 하지 않고 수입도 없다. 얼마 안되는 연봉을 벌고 있는 출판사 직원 앙투안은, 돈도 돈이지만 그래도 언제까지고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 아닌가 해서 일자리를 소개시켜주지만, 그런데 루실은 한달도 못버티고 튀어나온다. 난 역시 일을 못하겠다고! 하면서. 



"말했었잖아, 난 일을 하게 생겨먹질 않았어 …. 못하겠어. 그만두지 않았으면 난 죽거나 추해졌을 거야. 난 불행했어, 앙투안. 네가 날 비난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야." -P.222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내가 진짜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을 루실이 했다.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 '나는 조직생활이 안맞아', '나는 규칙적인 생활이 안맞아', '나는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게 안맞아', 그리고 '나는 일을 하게 생겨먹질 않았어'.


장난하냐?

그러면 나는? 나는? 나는 일을 하게 생겨먹었냐? 나는 남의 밑에서 일하기 위해 태어났냐? 태어날때부터 나는 노동자 자질 뿜뿜이었냐? 어디 노동하는 사람 앞에서 일을 하게 생겨먹질 않았어 같은 말을 운운하는거지? 그래, 진심으로 자기 자신이 일을 하게 생겨먹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도저히 도무지 죽어도 안되겠다 생각할 수도 있지. 그러나 그 사람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먹고 자고 옷을 입고 마시기 위해서, 게다가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전시도 보잖아?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노동으로 인한 돈이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닌가.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루실의 부자 남자애인은 그런 루실이,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원하는, 순전히 자기의 자유만을 원하는 루실을 알고 이해하고 사랑한다. 그리고 지원해준다. 아낌없는 지원과 사랑을 뿜뿜 준다. 루실은 이 부자 남자 애인하고라면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침대에서 자면서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차려주는 밥을 먹을 수 있다. 세상엔 그런 팔자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손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누군가 다 해다 바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타고난건지 모르지만 그럴 수 있고,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빛나 보일 가능성이 큰 것도 사실이다. 뭐 고생을 했어야 시들기를 하지. 어쨌든 사강 책 읽는데 내가 공감할 수 있거나 이입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이야기 바깥에서 타인이 되어 짜증만 난다. 루실도 싫고 앙투안도 싫고 ㅋㅋㅋㅋ 그 부자 애인들도 다 싫고, 그 중간의 조연인 게이 늙은 남자도 싫다. 이 돈많은 사람들의 연회 분위기도 싫고 가십 만드는 것도 싫고, 그러다가 우리둘만 있는 세상 이러면서 좁은 원룸 침대에서 섹스하는 것도 싫다. 아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나랑 안맞아. 읽으면서 도대체 이 책의 의미는 무엇인가? 했다. 세상엔 무위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거? 모르겠다. 한나 아렌트 생각만 났다.


인간의 태어남이 인간의 파멸을 구하는 기적이라고 말하는 한나 아렌트.















이 위협에 직면해서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The HumanCondition에서 삶에 대한 맹렬한 방어를 구축한다. 소비주의의 생기론적 결정론과 ‘생명 활동‘ vital process에 대한 현대 과학기술의 헌신 속에서 단지 틀에 박힌 듯이 재생산되는 삶에 대한 정반대 극단에서 아렌트는 그녀가 기꺼이 ‘삶의 기적‘ the miracleof life 이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 각각의, 그리고 모든 탄생의 고유함에 대해 찬양을 올린다.


세계, 인간사 영역을 그 통상적이고, ‘자연적인‘ 파멸로부터 구하는 기적은 궁극적으로 탄생성이라는 사실인데, 그 안에 행위능력이 존재론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새로운 인간의 탄생이고 새로운 시작이며, 그들이 태어남으로 인해서 가능해지는 행위인 것이다. - P15



아무것도 하지 않음도 일단 태어난 이상 그 사람이 선택한 행위 그 자체일 수 있을 것이지만, 그냥 난 … 사강이 별로입니다.


사강,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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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먼지 2023-06-08 10: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이 페이퍼 읽으면서 너무너무 웃었어요!! 체력 바닥나서 거의 기어서 출근했는데 너무 기분 좋아져 버렸습니다!! 가만가만 주변인들 떠올리면서 다락방님 이야기 쫓아가고 있었는데 이게 사강과의 이별을 위한 초석이었다니!!! 저는 <패배의 신호> 읽다 너무 답답하고 짜증나서 중간에 포기했거든요.. 인용해주신 “일을 하게 생겨먹질 않았어” 부분까지는 가지도 못했는데 읽었으면 화병날 뻔.. 본인이 저렇게 사는 건 상관 없는데 어떤 식으로든 주변에 민폐를 끼치니까 루실 같은 인물이 더 싫은 것 같아요ㅠㅠ

잠자냥 2023-06-08 11:01   좋아요 4 | URL
굿바이를 이렇게까지 웃기게 쓸 일인가......

다락방 2023-06-08 11:05   좋아요 3 | URL
제가 사강이 그려놓는 그 부자들의 연회 장면 같은거 보면서 으 너무싫어 너무 싫어 했는데, 그렇다면 부자들이 모여 밥먹는게 싫은가 하면 그게 아니더라고요. 수많은 사교파티 장면 등장하는 외국 소설이나 영화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 역시 사강과 뭔가 안맞아요. 등장인물이 별로라고 꼭 작가가 별로가 되리란 법은 결코 없지만, 그런데 저는 루실도 싫고 사강도 이제 그만 만나고 싶습니다. 이 부자 늙은 애인들과 가난한 젊은 애인들과 그들이 얽히면서 그려내는 신경전과 사랑한다 생각하면 언제나 격렬한 섹스로 이어지는 이 총체적 분위기가 그냥 죄다 저랑 안맞아요. 으.. 저는 대한민국 사람인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뼛속까지 대한민국 유교중년 …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6-08 11: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다부장님은 제가 입술 너덜너덜 뜯어도 좋아할걸요?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제가 프랑스 영화 많이 보는데도 좋아하면서....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저도 이 <패배의 신호>에 패배하고 말았어요.
도서관에서 두 번이나 빌렸다가 결국 두 번 다 읽다가 포기하고 반납.....
사강도 그만 읽어야겠다 뭐 이런 생각하게 해준 책이라능.
녹색광선 이 시리즈 중 (현재까지는) 유일하게 안 읽은 책이 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이 책 좋아하는 물감 님하고 우리의 합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6-08 11:57   좋아요 4 | URL
예시를 입술 뜯는 걸로 들긴했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입술 뜯는 행위에 대해 별 생각은 없습니다.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당연히 차이가 발생할텐데, 왜 제가 잠자냥 님은 좋아할거라 생각하시죠? 왜죠? ㅋㅋㅋ

저는 이 합이라는 것은 이렇게 글만으로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만나서 실체의 우리가 뿜어내는 에너지를 확인해야 가능해지는 것 같아요. 보이는 것부터 시작해서 들리는 것과 냄새 맡는 것까지. 그 사람의 실체가 가진 에너지가 나의 에너지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인데, 서로 좋아하는 책 취향이 같아도 이 합은 어긋날 수 있고 서로 책에 대한 취향이 달라도 합은 샤라라랑 거릴 수 있고요. 그렇다고 보면 물감님과 저희의 합은 어떨것이냐,

‘이렇게는 알 수 없다‘

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만 총총.

물감 2023-06-08 1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그럴수 있죠. 사강은 싫어할 수가 있는 사람이에요ㅋㅋㅋㅋ저도 작품이 주는 인사이트가 좋은거지, 작품이 좋진 않아요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6-09 08:27   좋아요 1 | URL
제가 대체적으로 프랑스 쪽하고 안맞는 것 같아요. 프랑스 영화도 별로 안좋아하고 책도 별로 안좋아하고 그래서 사강도 별로 … ㅋㅋㅋㅋㅋ 그리고 저는 기본적으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별로 안좋아합니다. 하핫.

책읽는나무 2023-06-08 1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사강, 굿바이....ㅋㅋㅋ
근데 왜 또 훗날 사강 책을 또 읽고 있을 것 같은 다락방 님 모습이 연상되죠?^^

사강의 세계는 조금 높은 벽을 타고 넘어가야 합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직 몇 권 읽어보진 못했는데 어??? 하면서 물음표가 생기긴 했었어요. 그래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구요.
이 책은 좀 더 긴장하며 읽어야겠구나! 싶군요.
‘합‘이란 건 말씀처럼 누군가 끌리는 사람이 하는 행동과 그냥 싫은 사람이 하는 각각의 두 행동이 완전 다른 체감으로 다가오는데 전자의 경우가 편애가 아닌 나와 그 사람의 ‘조화로운 합‘이었단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오네요.
어제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학창 시절 나와 단짝였던 친구얘기가 나와서 잠깐 기억을 떠올렸는데 그 친구와 전 정말 성격이 정반대여서 어떻게 친하게 지냈을까? 갸웃해지더군요. 지금도 서로의 삶이 이해가 안되어 때때로 ‘넌 왜 그렇게 사니?‘하고 충고를 대놓고 얘길 하는데도 또 만나면 편하고 좋아요.
이 마음은 뭘까? 편애인가? 생각했었는데 오늘 다락방 님 글을 읽으면서 깨닫네요.
조화를 이루는 합이었단 것을요!!!!
감사하네요^^

다락방 2023-06-09 08:29   좋아요 2 | URL
저는 사강을 앞으로도 좋아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이건 문화 차이도 있을 것이지만 인간 기본적인 성향 차이가 저랑 어긋나는 것 같아요. 글을 잘 쓰고 못쓰고 이런 개념이 아니라, 사강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과 또 그 사람이 살아온 문화가 저와 아무것도 접점을 이루지 못하고, 그렇다면 공감하거나 동의를 해야하는데 그도 안되고 … 어떤 거부반응 드는 그런 식의 기운이 있습니다, 사강에게는. 하핫.

좋아하는 작가의 책만 읽어도 시간이 부족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고 살아도 시간이 부족한데, 우리 좋아하는 것을 잔뜩 취하면서 살기로 합시다, 책나무 님. 조화를 이루는 사람들과 더 자주 만나고요!!

Falstaff 2023-06-08 16: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자주 했던 말이고요, 지금도 백수로 돌아온 둘째 새끼한테 아주 가끔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나는? 나는? 나는 일을 하게 생겨먹었냐? 나는 남의 밑에서 일하기 위해 태어났냐?˝

다락방 2023-06-09 08:30   좋아요 2 | URL
전 진짜 그런 말 듣는게 너무 싫더라고요. 이건 아마 너무 오래 노동자로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조직생활이 안맞아‘ 이런 말 들으면 나는 그러면 조직 생활 겁나 잘 맞아서 돈 벌고 있냐 싶고 말이지요. 욱 하는 마음이 생겨버립니다. ㅠㅠ

은오 2023-06-09 07: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안그래도 이거 읽으려고 했는데 다락방님이 이렇게 사강한테 굿바이 인사까지 하시는거 보니까 궁금해서 빨리 읽어야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저는 슬픔이여 안녕 좋았어서 패배의 신호도 좋게 느낄 가능성이 더 큰데 암튼 읽어보고 오겠습니다!

다락방 2023-06-09 08:31   좋아요 2 | URL
저도 은오 님은 사강을 좋아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은오 님이 좋지만, 좋은건 좋은 거고 은오 님과 저는 아주 다른 성향의 사람이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걸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싫어할 수도 있고, 제가 싫어하는 걸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할 수도 있고, 그런게 인생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런 점을 이해하고 있는 바, 은오 님이 누구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없이 은오 님이 예쁩니다. 흠흠.

읽고 감상 써주세요, 은오 님!

은오 2023-06-11 03:1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랑 저 그렇게 다른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주 다른 성향의 사람ㅋㅋㅋㅋㅋㅋ네.... 다른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서로 좋아한다은 점은 같으니 다행입니다 ㅋㅋㅋㅋ

다락방 2023-06-11 12:02   좋아요 0 | URL
은오 님이 지금 제 책상을 보신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실 겁니다. 이렇게까지 지저분할 일인가, 하고 말이지요. 하하하하하.
책상인데 정작 읽을 책 놓을 자리가 없는 건 왜일까요? 껄껄.

꼬마요정 2023-06-09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강이랑 안 맞아요 ㅋㅋ 커피 마시면서 읽다가 웃겨서 뿜을 뻔 했어요 ㅋㅋ 나는? 나는? 거기서 왜 심하게 이입이 되는거죠? ㅋㅋㅋ 커피를 뿜어서 서류가 다 젖어서 다시 일을 해야 한대도, 다락방 님이 웃겨서 그래가 아니라 내가 칠칠치 못해서 그래 할만큼 다락방 님이 좋네요 ㅋㅋ 아, 물론 커피를 뿜지는 않았어요 ㅎㅎㅎ

꼬마요정 2023-06-09 10:08   좋아요 0 | URL
아 맞다 다락방 님!! 저도 무토예요 ㅎㅎ

다락방 2023-06-10 20:02   좋아요 1 | URL
오오 꼬마요정 님도 무토세요? 반갑습니다! 혹시 일간은 어떻게 되시나요? 저는 무술일주 입니다! 으하하하. 이것도 저랑 맞으시려나요? 어쩐자 같았으면 좋겠다.ㅋㅋㅋㅋㅋ 그런데 아닐 것 같아요.

저는 사강 뿐만 아니라 프랑스적인 것들하고 좀 안맞아요. 소피 마르소 주연 프랑스 영화 보다가도 아오 이게뭐야 막 이랬어요. ㅋㅋ 그들의 연애에 대한 태도랄까 이런것도 너무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그렇습니다. 사강은 이제 작별인사 하고 보내드리는 걸로. 안녕~

꼬마요정 2023-06-10 21:34   좋아요 0 | URL
전 무신일주랍니다. 쪼끔 다르네요 ㅎㅎ 사강 안녕~
 

쉬는날은 가만있질 못하고 어디로든 나갔다오곤 했는데, 어제는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았으니 집에서 꼼짝 않기로 하자, 하고는 아침 먹고 책 읽고 점심 먹고 책을 읽었다. 참다 못해 저녁에는 샤워도 하고 저녁도 먹고나서 시장을 한바퀴 돌고왔지만, 어제 외출은 시장을 돌고 한시간 가량 걷고온 게 전부였다. 


시장에 나간 건 산책(걷기)이 가장 큰 목표이긴 했지만, 사실 꽈배기를 사고 싶어서였다. 시장에서 파는 꽈배기, 따뜻한 꽈배기가 먹고 싶었다. 저녁을 먹었지만 꽈배기 간식으로 먹어야지. 그렇게 나갔는데 시장의 꽈배기집이 문을 닫았더라. 아뿔싸.. 괜찮아 다른 곳에 꽈배기 가게가 또 있으니까. 그리고 그곳까지 도착했는데 휴일이라 그런지 거기도 문을 닫았더라.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꽈배기 가게가 저쪽에 또 있었지. 나는 왔던 길을 얼마간 되돌아 다른 골목으로 꺾어서 기억에 의지하며 꽈배기집을 드디어 찾아냈는데, 그 꽈배기집도 문을 닫았다. 이쯤되니 오기가 생겨서 꽈배기를 꼭, 반드시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꼭 시장표 꽈배기가 먹고 싶었지만 하는수없지, 양보하자, 그래서 동네 뚜레쥬르로 갔다. 꽈배기를 팔았던 것 같아. 그런데 내 앞에 들어간 손님이 마지막 남은 하나의 꽈배기를 손에 들고 놓지 않으시며 다른 빵을 둘러보셨다. 왜죠? 나는 터벅터벅 빵집을 나왔다. 이렇게 네 곳이나 들렀는데 꽈배기 하나 못 가지고 가는 삶이라니, 이것은 실패한 산책인가. SPC 불매를 오래 이어오고 있었지만, 파리바게트 한 번 가볼까, 망설이다 파리바게트를 들어갔다. 딱 하나의 꽈배기가 남아 있었다. 나는 불매를 이렇게 깨버릴 것인가, 살것인가, 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돌아 나오려는데 흑흑 아니야 사자, 하고 다시 꽈배기를 먹겠다는 욕망에 굴복하며 그걸 사가지고 나왔다. 집에 와서 꽈배기를 먹는데 절반쯤 먹고 나니까 더 안먹어도 되겠더라. 역시 모든 것은 갖고 싶을 때 가장 욕망이 절실하고, 손에 쥐자마자 사라져버리는 것 같아. 어쩌면 갖지 않는 것이 더 열정적 삶을 살게 되는 방법 아닌가 … 하는 철학적 생각을 하며 다시 책을 펼쳐 들었다.



















주디스 헌은 혼자다. 식구도 없고 친구도 없다. 아니 친구가 없다고 할 순 없고 일요일마다 방문하는 가족이 있는데, 사실 그 가족도 주디스 헌을 별로 반기질 않는다. 남자는 주디스 헌이 올 시간이면 서재로 숨어버리고 아이들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그 자리를 피하고자 한다. 여자는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지만, 반가운 것이 본마음은 아니다.


주디스 헌은 살고 있는 집은 우리식으로 보면 예전 하숙집 같은건데, 각자의 방을 내어주고 아침을 같이 먹는다. 아침이면 하숙집 주인 식구들과 다른 하숙인들이 함께 만나 밥을 먹는거다. 그들 모두 근근이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다들 뭐 다정하거나 살갑지 않은데, 그 하숙집에 하숙집 주인 '라이스 부인'의 오빠 '제임스 매든'이 찾아온다. 못생기고 늙고 매력적이지 못한 주디스는 항상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남자만 만났는데, 제임스는 그녀에게 살갑다. 그녀의 망상은 그가 자신에게 빠져있고 그가 자신과 결혼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하는 걸로 이어지는데, 제임스로서는 그녀의 손목에 있는 시계가 비싸 보여서 돈이 좀 있는 여자인가 싶은 것이고, 그렇다면 그녀에게 나랑 사업을 같이 하자고 하자 …는 속셈이었기에 주디스 헌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고 싶어진다. 정신차려, 이 여자야! 


그런데 내가 지금 하려는 얘기는 이 가련한 영혼에 대한 얘기가 아니고, 이 하숙집 주인 '라이스 부인'의 아들 '버나드'에 대한 것이다.


버나드는 대학까지 들어갔지만 중퇴했다. 시를 쓴단다. 집에서도 시를 쓰고 있단다. 집에 가만 앉아서 엄마가 차려주는, 아니 하녀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다. 다른 하숙생들에게는 식빵과 버터만 내어주는 라이스 부인이지만, 자신의 아들, 가만히 앉아서 주는 거나 쳐먹는 아들에게는 베이컨과 계란 요리를 내어준다. 왜냐하면 시를 쓰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요하니까. 그러면 그가 시를 써서 돈이나 벌어다 주느냐, 하면 아직 시를 써서 뭔가 이룬 건 없다. 제대로 된 시를 써냈는지도 모르겠다. 버나드는 살이 찌고 배가 나오고, 그냥 길에서 만난다면 비호감인 아저씨 1일 뿐인데, 자신의 힘으로 하는 건 하나도 없는 라이스 부인의 귀한 아들이다. 그뿐인가. 심지어 그 집에서 일하는 열여섯 하녀 메리를 침대로 자꾸 끌어들인다. 메리로 하여금 결혼할 수도 있을거란 착각을 하게 하면서.



언젠가 SNS 에서 남자들의 하찮은 욕망에 대한 언급을 본적이 있다. 아무리 큰 재벌이어도, 큰 종교집단의 교주여도, 결국 그 커다란 권력과 재산을 가지고 하는 짓이 여자들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것이라니. 그렇게 큰 힘을 가지고 하는게 고작해야 없는 남자들도 하는 그런 여성에 대한 성매매 혹은 성학대라니. 너무 하찮지 않나, 남자들의 욕망은 그냥 고작 그정도란 말인가. 힘이 있으나 없으나 돈이 있으나 없으나 고작 그뿐이란 말인가. 버나드 역시 마찬가지. 집에서 차려주는 밥이나 가만히 앉아 받아먹는 돼지여도, 임금 노동도 가사노동도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아도, 일하는 여자를 침대로 끌어들인다. 너무 징그럽기 짝이 없다. 오히려 뺀질뺀질 거짓말하며 어떻게 돈을 벌어볼까, 어쩌면 돈있지 않나 하고 주디스에게 접근하는 제임스 매든이 더 나아 보인다. 아, 그것도 아니네. 제임스 매든도 '그러면 안되는거지, 아직 어린데!' 라고 하면서도 열여섯 하녀의 육체를 매일 생각하다 결국 '딱 한 번만!' 이라고 하면서 그녀를 강간하니까. 여기서 잠깐. 


주디스 헌은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는 외롭고 누구도 돌보아주지 않는다.

버나드와 제임스는 죄를 저지르고 사는 한심한 인간들이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식구도 있고 갈 곳도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자, 다시. 나는 버나드 얘기를 하고 싶다. 왜냐하면 버나드 얘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잘 몰라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헌 양은 분별력이 있으시니까 잘 아실 거예요. 전 마음이 평온해야 일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제임스 삼촌이 그걸 다 무너뜨렸죠. 삼촌이 온 이후로 엄마는 딴사람이 됐어요. 삼촌한테 돈이 많은 줄 알고 그 돈을 탐내고 있거든요. 엄마는 탐욕스러운 인간이에요,

불쌍하신 분이죠. 물론 제가 엄마를 탓할 입장은 아니긴 해요. 아시다시피 위대한 시를 쓰는 작업은 돈을 벌지 못하잖아요."

"당신이 마음만 먹으면 일은 언제든 구할 수 있어요. 아무리 시인이라고 해도 일은 해야죠."

"아뇨, 아뇨, 이해를 못 하시네요. 제 작품은 서사시에요. 위대한 서사시. 지금은 그 첫 단계를 작업중이고요. 5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 제가 왜 제 재능을 썩혀야 하죠?"

돌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버나드는 방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대체 왜요?" 그가 불평했다. "왜 우리 엄마는 불멸의 작품에 투자하지 않는 거죠? 명색이 엄마라면 그렇게 해야죠."

정말 웃긴 놈이네. 반쯤 미쳤나 봐. 제딴엔 예술가라는 거지. 그녀가 술병을 건네자 버나드가 술 두잔을 따랐다. 이제는 이 자식이 두렵지 않아. 해를 끼칠 만한 놈도 아니고. 그냥 웃긴 녀석일 뿐이야. - P303




위대한 서사시를 쓸 거기 때문에 엄마가 자기 뒷바라지를 당연히 해줘야 하는데, 그게 엄마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인데, 그런데 삼촌의 돈을 탐내느라 자기 마음이 평온하지 못하다는 거다. 이 날, 삼촌과 함께 떠나라는 얘기를 하기 위해 버나드가 헌의 방에 온거였는데, 자기에게 썩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위대한 시를 쓸 것이라는 것,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자랑스레 말하는 것이 정말 꼴보기 싫었다. 주디스 헌의 말대로, 아무리 시인이라고 해도 일은 해야 하는데, 어떻게 가만 앉아서 엄마가 주는 밥이나 받아 쳐먹고 있냔 말이다. 다 큰 성인이. 서른이랬나. 그렇게 배 두드리면서 하녀나 건드리고. 진짜 너무 꼴보기 싫다. 위대한 서사시래. 하아 - 마틴 에덴 생각 났지만, 마틴 에덴은 정말 재능이 있었고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했고, 그리고 마틴 에덴은 노동을 했던 사람이야. 마틴의 머릿속엔 정말 재능과 철학이 있었다고. 그리고 노동자의 육체미가 … 그런데 남들 다 식빵만 먹을 때 베이컨과 계란 먹으면서 배나 뿔룩 나오고 ㅠㅠ 엄마나 하녀를 부르기만 하는 삶 ㅠㅠ 아 너무 꼴보기 싫어서 미치겠는거다. 그리고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 위대한 서사시의 첫 단계를 작업중이냐. 사람은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다. 가만 집에 앉아서 도대체 무슨 위대한 시가 탄생한다는 거냐. 산책을 하면서 걷거나 자연을 보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해야 뭔가 머릿속에 영감이나 생각이 떠오르지. 가만 앉아서 주는 밥이나 먹으며 미성년자나 건드리는 새끼가 도대체 무슨 위대한 서사시를 쓴다는 거야. 딥빡이 오는 것이다. 새끼야, 정신차려라. 넌 그러다 고지혈증 고혈압 기타등등으로 일찍 죽을겨 … 나가서 일을 하라 젊은 청년이여!! 일을 하면 그 과정에서 시적 영감이 파바박 떠오른다니까?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 진짜 너무 싫다 너무 싫어. 그런데 열여섯 우리 하녀 메리는 이런 버나드를 좋게 본다. 다정하대, 결혼도 생각한대. 메리야, 그 남자랑 결혼하면 너 평생 뒷바라지만 하면서 살아야 돼 ㅠㅠㅠ 



그런데 왜, 어째서, 어째서 주디스 헌이 외로운거죠, 네? 주디스 헌이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거, 믿음이 스러져가는 거, 너무나 자연스런 수순 아닌가요? 휴 …




어제 동생들과 톡을 하는데 여동생은 '언니는 뭐해?' 하고 물었다. 나는 이런 사진을 보내주었다.



책을 읽고 있다고. 너무 행복하다고. 조문영의 《빈곤 과정》읽다가 《하틀랜드》언급되길래 살려고 잠깐 알라딘 들어갔던 때에 찍었다. 나 이거 있지 않나? 하고 산책앱 봤더니 없던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조문영의 빈곤 과정 읽으면서, 종종 생각했던 공부 총량의 법칙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한 사람에게는 공부를 해야 하는 총량이 정해져있고, 그것이 어릴 때 발현되면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 취업하는 거고, 그것이 늦게 발현되면 나처럼 되는 거다. 학창 시절 공부 못하고 그럭저럭 살다가 나이 들어서 머리가 따라가지 못하는데 이것도 알고 싶고 저것도 알고 싶고 그래서 막 이 책도 보고 저 책도 보고 … 몇해전에는 퇴근하면 강의 들으러 다니느라 육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엄마는 누가 시켰으면 절대 안했을 것을 니가 원하니까 막 하러 다니네~ 했더랬다. 이번에도 '허영선'의《제주 4·3을 묻는 너에게》읽으면서 아이패드에 얼마나 메모를 했는지 … 

조문영의 책 읽으면서, 아 내가 어릴 때 이미 공부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면, 그래서 조문영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조문영은 대학에서 <빈곤의 인류학>강의를 한다고 했는데(정확한 기억이 맞나?) 그런 거 들을 수 있었으면 나는 또 얼마나 달라졌을까.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되어 있지 않을까? 막 그런 생각 하면서, 지금 그런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학생들이 부러웠다. 물론 지금 학생들이라고 모두 그 강의를 알고 수강 신청을 하진 않을 것이며, 알아도 들으려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의 내가 보기에는 이런 강의를 듣는다면 확실히 인생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은 거다. 삶의 방향이 바뀔 수도 있을 것 같고. 내가 어릴 때 공부를 잘했다면 인생의 어느 순간 마리 루티 강의 들으러 하버드에 갔을 수도 있을텐데 …


부질없다, 이런 얘기.



어제 남긴 꽈배기나 먹어야겠다.


이게 종교였다. 종교란 숙취로 입이 바싹 마르고, 하녀와 있었던 어젯밤 일을 생각만 해도 괴로운 이런 아침에 하느님께 용서를 비는 것이었다. 그래서 1년에 한 번 부활절 의무를 다하고 일요일 아침 미사에 참석하는 것이다. 게다가 종교는 일종의 보험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훗날 구원을 받을 거라는 뜻이다. 그러니언제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삶의 최후를 맞기 전에 완벽히 회개하기만 하면 모든 준비가 끝나는 것이다. 매든 씨는 연옥이나 속죄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고해와 그에 따른 용서가 그의 신앙을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그는 되도록 자주 과거를 잊고 새롭고 희망찬미래를 시작하는 게 위안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P111

노란 액체가 잔 속에서 천천히 맴돌았다. 향이풍부하고 기름진, 만족으로 이끄는 이 열쇠. 그녀는단숨에 삼켰다. 배 속이 데워지며 술기운이 서서히 몸에 퍼졌다. 떨리는 손이 가라앉았고, 알 수 없는 힘이그녀를 가득 채웠다. 따뜻하고, 편안했다. 세상 하나뿐인 연인. 그녀는 손을 뻗어 잔 가득 술을 따랐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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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06-07 10: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들어와서 다락방님 글 읽는 즐거움이란 저희 동네 꽈배기 맛집의 금방 만든 꽈배기맛입니다. 아, 저도 꽈배기 먹고 싶네요. 팥도너츠도 맛있어요. 아, 찹쌀 도너츠도요 ㅋㅋㅋㅋㅋㅋㅋ

새 책 담아갑니다. <빈곤 과정>이 제일 관심가네요. 저도 찾아서 읽어보려고요. 그러나 퇴근하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빨래 후 건조대에 안 널고 구석에 처박아둔 빨래 같은 나 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6-07 13:26   좋아요 2 | URL
구석에 처박아둔 빨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완전 상상됩니다.
기운 차리시고, 다시 햇볕에 그 빨래 널어놓을 날이 오기를 간절히 응원합니다!

다락방 2023-06-07 13:51   좋아요 2 | URL
아니, 단발머리 님. 이게 얼마만입니까! 자주 자주 좀 오셔서 흔적 좀 남겨주세요. 단발머리 님 글 읽은게 대체 언제란 말입니까. 흑흑. 저의 꽈배기 맛집이 되어주셔야죠!! ㅠㅠ

빈곤과정 읽다보면 막 답답하거든요. 뭐랄까, 오늘 정희진 오디오매거진에서 ‘학습된 무기력‘에 대해 들었는데, 빈곤이야말로 학습된 무기력으로 분노만 남게 되는건 아닌가 하면서요. 우리가 빈곤을 안다고 말할 때, 그건 정말 ‘아는‘게 맞는 건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게 아닌가 하고요. 그런 한편 박완서의 <도둑 맞은 가난>도 읽어야겠고 말이지요. 아, 책 사러 가야겠어요.

아무튼 건조대에 빨래 널어놓으세요!!

독서괭 2023-06-07 14:40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빨래라니 ㅠㅠㅠㅠㅠㅠㅠ

잠자냥 2023-06-07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부장님이 <주디스 헌> 읽으면 저 아기 라이스인지 버나드인지의 끔찍함에 대해 구구절절 욕해줄 줄 알았어요. 아 속시원해.......... 근데 넘 징그럽죠?! ㅠㅠ 우엑.......

무튼 꽈배기... 파바에서 욕망에 굴복하신 것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나 인간적이라 정이 가네 이 인간.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6-07 13:53   좋아요 2 | URL
저 아기 라이스 진짜 너무 싫어요 엄청 싫어요. 제가 싫어하는 인간의 총집합체예요. 저는 어떻게 저런 인간이 다른 인간과 섹스를 할 수 있는지 그것도 너무 신기해요. 저는 옆에 있기만 해도 혐오감으로 도망치고 싶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옷을 벗고 저 남자랑 섹스를.. 으 너무 싫다. 그리고 그 엄마도 미치겠어요. 그 아들이 그렇게 살 수 있는건, 그 삶을 그 엄마가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죠. 도대체 왜 때문에 이런 한심한 돼지가 아니라 주디스 헌이 외로워야 되는건지. 아 너무 싫어요.

파바에서 욕망에 무릎 꿇은 제 자신이 싫어요. 흑흑 ㅠㅠ

DYDADDY 2023-06-07 14:23   좋아요 0 | URL
불매운동이 좀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특정 기업의 제품은 사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할 때 그 것 외의 다른 대안이 없으면 살 수 밖에 없는 것이잖아요. 욕망을 위한 소비이지만 더 도덕적이기 위한 것뿐이니 자책하지 않으시면 좋겠어요. 환경을 걱정하는 모든 사람이 파타고니아를 입을 수 없는 것 처럼요. ㅎㅎㅎ

다락방 2023-06-07 14:37   좋아요 1 | URL
뭐랄까, 사실 그거 안먹는다고 큰일나는 것도 아닌데 너무 식탐에 굴복해버린 것 같아서 그 점이 제 스스로 좀 실망스럽더라고요. 실망스럽다고 해도 이미 제가 그 행위를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지만요. 식탐은 너무 힘이 세네요. 하아-

독서괭 2023-06-07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워 버나드 ㅋㅋㅋㅋ 서사시 ㅋㅋㅋㅋ 그 서사시는 대체 뭘까요. 포르노 대서사시??
근데 주디스 헌이 속으로 까는 거 되게 시원한데요. ㅋㅋㅋ
아무튼 이 글의 주제는 꽈배기인 거죠? 저도 꽈배기 좋아하는데.. 그 맘 압니다. 그렇게 애썼는데 빠바에 들어가고 만 그 마음 안타깝네요 ㅠㅠㅠ 그래도 남은 꽈배기는 맛있게 드세요!

다락방 2023-06-08 08:59   좋아요 1 | URL
그런데 저렇게 멀쩡한 주디스 헌은 왜 외로울까요. 왜 그 외로움이 그녀를 병들게 할까요. 세상은 정말 어찌 돌아가는건지. 세상이 원망스럽습니다. 하아-

제가 사실 특별히 꽈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데, 토요일에 남동생이 시장에서 꽈배기를 사왔는데 따뜻해서 너무 맛있더라고요. 그 뒤로 자꾸 생각이 나는 바람에 그만 … ㅋㅋㅋㅋㅋ
남은 꽈배기는 어제 흡입했습니다. 빠샤!

새파랑 2023-06-07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꽈배기 하나에 저런 철학적 깨달음을 얻으시다니~!! 역시 이작가님~!!

SPC가 그런거지 꽈베기가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ㅋㅋ

다락방 2023-06-08 09:00   좋아요 1 | URL
무릇 철학이란 꽈배기에서도 붕어빵에서도 얻을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생각만 한다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으하하하하.
음 또 출출하네요. 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3-06-07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에 낚여서...^^

다락방 2023-06-08 09:02   좋아요 1 | URL
^^
 

1. 병렬독서 하시나요? 아니면 한 권씩 읽고 한 권 다 끝내면 다른 책으로 넘어가시나요? 엄청 두껍고 머리 아픈 책이면요?


-그동안 한 권 끝내야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사람이었는데, 아마도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시작하면서 병렬독서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 같다. 나는 의무감에 읽는 독서, 읽어야 해서 읽는 독서를 진짜 싫어해서 대학때도 '이 책에서 시험 문제 낼거다' 라고 하면 부러 그 책을 안읽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같이읽기를 하자!' 해버리니 얄짤없이 읽어야 했고, 그런데 읽어야 되는 책이니까 읽기 싫고, 그런데 읽어야 되니까 읽어야 겠고 그러다보니 의무감에 책을 읽으면서 다른 책이 너무 읽고 싶어지는 현상이 자연스레 발생. 누구나 시험기간에 드라마 보고 싶잖아요? 출근시간 집중력이 좋은 걸 이용해 여성주의 책은 출근시간에 읽고 그 외에는 읽고 싶은 책을 읽는 병렬독서를 현재 하고 있다. 


2. 도서관에 신청도 하시고 전자책도 구입하시는 것 같은데 도서관 신청or전자책 구입or종이책 구입은 어떤 기준인지?


-도서관에 신청하는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1.우선 내 돈주고 사긴 아까울 것 같은게 분명해 보이는 책, 읽게 되면 분명 아주 깨끗하게 읽고 다시 팔 책이 확실해 보인다면 신청하는 편이고 2.내가 최근에 책을 졸라 많이 사서 양심에 찔리니까 지금 또 사고 싶은 책은 도서관 신청할까? 해서 신청하기도 한다. 킁킁.


전자책은 크레마 생기고나서 얼라리여~ 막 샀는데, 일단 종이책으로 가지고 있어도 반복해 들여다보는 책을 몇 권 사두었고, 가볍게 읽을 책들(역시 종이책으로 갖고 싶진 않을 것 같은 책들)을 사두었는데, 그러다보니 전자책도 사두고 안읽고 쌓여버려서 최근엔 전자책을 거의 구입하지 않고 있다. 


종이책은 그냥 막 산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도 사고 서재며 SNS, 시사인 등, 돌아다니다가 흥미 있어 보이는 책 발견하면 또 사고 막 산다.




3. 읽은 책은 다 100자평 남기시는 건가요?


-예전에는 쓰고 싶은 말이 생기는 책에 대해서만 기록을 남기는 편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내가 읽은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내가 읽었는지 안읽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아서 이제는 웬만하면 모두 백자평을 어떻게든 남기려고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것도 남겨두고 나면 나중에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어. 이를테면 내가 과거 일기장을 보면 '그가 너무 좋아서 미치겠다' 막 이런문장 나올 때 '하 시발 그가 누구야..' 이렇게 되어버리는 거다. 그래서 해당 날짜를 보고 '가만있자, 이 때가 그 때면 그러니까 그 놈인가 …' 이렇게 되어버려서, 웬만하면 언제 봐도 짐작 가능하게끔 구체적으로 쓰자 노력하고 있지만, 그건 잘 안된다. 애초에 태어나기를 이렇게 태어나고 이렇게 생겨먹어서 시간이 흐른 뒤에 보면 '이 말이 뭔 말이여' 이렇게 되어버리는 나란 여자. 매력이 끝이 없다.



4. 막상 읽어보니 별로라 페이지가 잘 안 넘어가는 책은 미련 없이 덮으시는지 아니면 그래도 붙잡고 완독하시는지?


-어떻게든 끝까지 읽자는 생각을 가지고 한 권을 막 몇달간 읽은 적도 있는데, 세상은 넓지 할 일도 많지, 먹을 것도 많지, 갈 곳도 많지, 책은 쌓여 있지, 안되겠다 이젠 포기할 건 과감히 포기하자! 라고 해도 사실 중도 포기는 내게 쉬운 일은 아니다. 중도 포기한 책은 '나중에 다시 읽자'고 다짐해도 그게 안된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이대로 멈추면 우린 영영 안녕이야!' 하게 되어 진짜 꼭 끝까지 읽으려고 하지만, 그러다가 다른 책도 못읽는 독서 침체기 와버려, 안된다 포기하자, 계속 훈련을 들이고 있는 중이다. 

아무튼 현재 읽다 포기한 책은 버지지아 울프의 《올랜도》와 미셸 우엘벡의 《투쟁 영역의 확장》이 있다. 올랜도는 절반쯤 읽었고 투쟁 영역의 확장은 십분의 일쯤 읽었나. 미안합니다…


5. 중고로 팔아버리는 책과 남기는 책은 어떤 기준인지?


-시간이 지나면 사랑도 끝나고 입맛도 변하고 책을 파는 기준도 변한다. 

처음 중고로 팔 때는 읽었지만 다신 안읽을 책만 골라서 팔았는데 이제는 읽자마자 거의 대부분 다 팔아버린다. 심지어는 안읽었지만 안읽을 것 같은 책들도 팔아버린다. (응? 왜 샀어?)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나는 책을 계속 사서 이렇게 팔아버려도 쌓이는 걸 어떻게 잡아낼 수가 없어. 읽으면 일단 알라딘에 중고팔기를 신청하고, 매입불가한 상품은 매우 저렴한 가격에 회원에게 팔기로 등록한다. 주문이 한두건씩 들어오는데 빠른 배송 친절한 서비스가 관건이며 그래서 매우 평도 좋지만, 문제는 한 두권씩만 판매 되므로 나에게 들어오는 돈은 몇 백원에서 몇천원 정도 뿐이다. 여기서 알 수 있다. 내가 돈 벌려고 책 파는 게 아니라 정말 책을 없애려고 책을 판다는 사실을. 여러분, 다락방의 중고서점을 이용해주세요. 저렴한 가격에 모십니다.


다락방 중고 서점은 여기 ♣



6. 책 구입하실 때 중점적으로 보시는 게 뭔지? 평소 믿고 보는 작가라면 그냥 구입해도 되겠지만 아니라면 저자 이력이나 뭐 소재나 상 받은 목록이라든가 뭘 주로 보시는지. 더해서 이런 책은 아묻따 거른다 하는 것도 있으실 텐데 궁금합니다.



-관심 작가의 책은 대부분 사는 책이고 관심 주제의 책도 사는 편이다. 몇해전만 해도 관심 주제는 여성주의 였는데, 요즘엔 좀 관심 분야가 확장되어서 철학, 사회학에도 관심이 생기고 역사도 좀 알고 싶다. 즉,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책을 더 많이 사고 있다는 뜻 되시겠다.

아묻따 거르는 책이라면 베스트셀러로 만인이 사랑하는 책을 좀 피하는 편인데, 베스트 셀러에는 잘 팔리는 이유가 있고 그것은 분명 그대로도 유의미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책에는 유의미 이상의 무엇이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꿈백화점 어쩌고 류도 평소의 나라면 관심없이 무시할 책이었는데, 그런데 어린 조카가 재미있게 읽었다고 해서 소통하려고 샀다. 독서의 폭은 때로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이렇게 확장되기도 한다. 조카 때문에 꿈백화점하고 또 뭐 비슷한 거 있는데 … 여튼 안읽던 베스트셀러 읽었고, 

내가 일전에 알라딘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어쩌고 잡화점 읽고 느낀건데, 책 안읽던 사람들이 쉽게 많이 읽는 책은 대체로 내가 읽었을 때 빡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책 많이 읽는 사람들이 많이 읽는 책은 대체로 좋다.

나 역시 자기계발류는 피하는데, '그걸 읽어봤자 자기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성공한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계발 서적을 읽지 않아도 이미 나는 훌륭하게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평일의 루틴이 확실하고 스스로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도 투철하며 책임감과 사명감 준법정신이 투철하고 마음도 따뜻하며 인류애 넘치는 내가 도대체 자기계발 서적을 읽을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나는 자기계발 서적을 읽을 사람이 아니라, 이제 쓸 사람이다!!


무조건 구입하는 관심작가의 책은, 너무 자주 언급해서 이제는 모두가 외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써보자면,

한나 아렌트,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줌파 라히리, 샤론 볼턴, 이승우 등이다. 정희진 선생님 책도 다 읽어보려고 하는 책이고. 책장에는 여성주의 책장이 아예 한 군데 모여있고 그외 위 언급 작가들은 따로 한 칸이 마련되어 있다. 


사실 이거 몇 개 사진도 찍긴 했는데 이미 예전에 올린 사진들의 중복이라 사진은 생략하겠다.




자, 그리고 월요일의 책탑.

목요일에 아파서 조퇴하고 금요일에 연차를 사용했다. 증상은 에이형독감인데 검사결과는 다 음성. 목요일 저녁에는 몸살 잡아준다는 수액을 맞았고 금요일에는 병원 가 다시 검사했지만 음성. 금요일에 좀 괜찮다가 토요일 오후부터 상태가 다시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해 목이 붓고 목소리가 잘 안나왔는데, 그나마 오늘은 좀 괜찮다.



















《형사 박미옥》은 내가 바라는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 같다. 현장에서 일하며 겪었던 어려움과 그리고 '여자라서' 더 힘들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 최근 《경찰하는 마음》은 담긴 글들이 좀 아쉬웠는데 그 아쉬운 지점을 형사 박미옥이 다 풀어주지 않을까 하다.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는 프로이트의 책이다. 무조건 사 모으게 되는 작가들에 나는 최근에 프로이트를 넣을까 어쩔까 고민중이다. 그간 읽은 책이 별로 없다보니 모으겠다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런데 읽다 보면 어쩐지 내가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랄까. 게다가 나는 모세 같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어서 프로이트가 말하는 모세가 궁금하다. 


《당신의 남자를 죽여드립니다》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용의 제목 같지만, 그러나 죽여야 할 남자 다 죽여버리겠다는 마음으로 샀다.


《비극》은 테리 이글턴의 책인데, 테리 이글턴의 책도 사두고 안읽은 게 집에 있는데, 김혜리의 팟빵 듣다 보면 정윤수 작가 님이 테리 이글턴 극찬하시는 바람에 안 살 수가 없어 샀다. 나란 여자 …


《패배의 신호》는 사강을 별로 안좋아하지만, 최근 물감 님의 리뷰를 읽고 다시 도전! 하고 샀다. 다시 도전했어도 내가 좋아할 책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그 뭐랄까, 인생의 최고 목표? 가치?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부분? 이 사랑과 집착과 연애와 섹스, 성애 …인게 참 별로인 것이다. 나는 로맨스 소설 좋아하지만, 내가 로맨스 소설에서 좋아하는 부분은 그 로맨스가 시작되고 진행되기 까지의 어떤 간질간질함과 갈등의 극복 같은 것이지 나는 사랑 없이 못살아 사랑이 짱이야 사랑 최고 사랑만이 답이다 이러는 것에 대해서는 좀 답답해져버려. 특히나 그것이 섹스로 연결되어가지고 막 사랑과 섹스의 집중 하모니 이렇게 되어버리면 상당히 피곤해져 버린다. 내가 사강을 그동안 두 권 읽었나 세 권 읽었나 모르겠는데, 내가 별로 안좋아라 하는 그런 감성의 책이었으므로 피하다가 이번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보기로 한다. 근데 역시 나는 아닐것 같긴 한데 … 아무튼 인간들이 좀 인생에서 사랑 좀 밀어내고 살고 좀 그랬으면 좋겠다. 사랑 하기도 했으면 사랑 밀어내기도 하고 좀 그래야지 어떻게 내내 사랑을 붙들고 있는지 … 그리고 왜 사강 내게 이런 느낌을 주는건지 … 여하튼 얇고 가벼우니 읽어보겠다.




다시 병원 간 이야기를 잠깐 이어보자면,

목요일에 병원 가 검사를 하고 몸살 잡아주는 수액을 맞고, 다음날 독감및 코로나 검사를 다시 하기 위해 병원데 재차 방문했더랬다. 닥터가 이미 다시 오라고 일러둔 터였다. 카운터의 간호사 샘들은 날 보고 좀 어떠냐 물으시더니, 어제보다 얼굴이 한 결 나아졌다고, 어제 수액을 맞아 다행이었다고 말씀들을 해주셨다. 실제로 몸이 전날보다 나은 상황이었던지라 감사하다고 말했다.

독감과 코로나 검사를 다시 했는데 여전히 결과는 음성이었고 약은 다르게 다시 처방 받았다. 원인이 뭘까 다른 피검사와 소변 검사를 했고, 어쨌든 독감과 코로나가 아닌 것이 좋아 나오면서 간호사 쌤들께 '저 둘다 아니래요!' 했더니, 아니 간호사 쌤들이 다들 '너무 다행이에요! 걱정했어요!' 이러면서 좋아해주시는게 아닌가. 감사합니다, 하고 병원을 나서는데 기분이 너무 좋은 거다. 너무 감사하네, 간호사쌤들 … 나는 그 길로 제과점에 가 카스테라를 샀다. 그리고 다시 병원으로 갔다.


"감사해요. 이거 드세요." 하고 내가 사온 카스테라를 내밀었다. (잠자냥 님, 이런 나라 싫어요? 그렁그렁.)

사기 전에 슬라이스 되었는지 묻는 건 기본이었다. 내가 직장생활 해보니 내가 썰어서 먹는 거 가져오는 사람들 너무 싫어. 특히 수박이랑 멜론 사온 사람들, 진짜 그러는 거 아닙니다. 회사 갈 때 그런거 사가지 마세요. 도대체 그 수박 누가 자르라고 수박을 사와요, 수박을? 케익도 사오지 마세요. 그거 칼로 잘라서 나눠야 하잖아요.

일인용 포장되어 있는게 제일 좋습니다. 

이 케익 안에 슬라이스 되어 있나요? 물었더니 빵집 사장님은 그렇다고 해주셨다.





이전 조카들에게도 느꼈던 바지만, 내가 이 아이들에게 마음껏 사랑을 주고자 했을 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주고 표현을 할 때, 나는 그것만으로도 생이 충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째 둘째 조카들도 내 사랑을 그냥 흡수하기만 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사랑을 번번이 내게 표현해줬다. 내가 안아주면 마주 안아주고 내 팔짱을 껴고 종알종알 얘기하고 막 웃어주는데, 그러면 정말 가슴 가득 충만함이 차오른다. 

토요일에 아가 조카가 집에 왔다. 


아가 조카는 정말이지 방긋방긋 잘도 웃었다. 아가 조카를 데리고 시장에 갔는데, 해물을 파는 곳 앞에서는 주저 앉아서 관찰하기를 계속했다.




아가야, 만지면 안돼~ 하면 응, 하며 만지지 않았다.


오후에 달걀샐러드를 만들어주려고 오이를 썰고 있는데, 이제 막 여러가지 말을 배우기 시작한 조카가 내게로 달려와서는,


"고모 모해?"


하는게 아닌가. 뭐하냐는 물음은 아가의 아빠도 처음 들어본 말이라서 다들 빵 터졌다. 나는 조카가 사랑스러워 어쩔 줄을 모른채로, 고모 오이 썰어~ 해줬다.


거실 저쪽에 있다가 뛰어와 내 다리를 끌어 안을 때면 정말이지 너무 예뻐서 내가 어떻게 이런 조카가 있나, 나에게 어떻게 이런 조카가 있나 감사와 사랑이 솟아올랐다. 도서관에 데려갔는데 도서관 마당의 잔디에서 나비를 보더니 "나비야!" 하고 큰소리로 계속 불러서 너무 예뻤다. 아직 데리고 들어가기엔 어리지만, 우리 자료실에 들어가볼까? 하니까 남동생이 괜찮을까? 물어서 '조용히 하라고 하자' 하고 아가조카 데리고 자료들이 가득한 책 빌리는 곳으로 들어갔다. 아가야 여기서는 조용히 해야 돼, 하니까 자기 입에 검지 손가락을 대고 쉿~ 하는데 와, 진짜 이 귀여움은 어디서부터 온것인가. 나에게서 왔니? 그런데 조카가 참지 못하고 책들 사이에서 와- 해버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조카야 쉿, 여기는 조용히 해야 해, 했더니 금세 조용해졌다. 축복된 시간이었다. 헤어지고 나서 바로 보고파지는 사랑이었다.



자, 오늘은 또 오늘의 책을 사야겠다. 불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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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 2023-06-05 10: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썰어야 하는 거 가져오는 사람 좋아요. 그런데 썰것도 같이 가져오심 더 좋죵 ㅋㅋㅋㅋ
형사 박미옥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저도. 즐거운 한주 되세요!
여전히 조카는 러블리 하네요.
다락방님 건강 조심 하세요!

다락방 2023-06-05 17:46   좋아요 3 | URL
저는 특히 수박 멜론 너무 화가 났어요. 대체 사무실에 올 때 그걸 왜 사오는지,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하라고.
너무너무 싫어요. ㅎㅎ
페르소나 님도 건강하세요. 어휴 저도 아플줄 몰랐다가 너무 깜짝 놀랐네요 ㅠㅠ

persona 2023-06-05 17:50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음식물 쓰레기는 처리하기가 어려워서 ㅠㅠ 저는 그래서 저번 회사에서도 음쓰 그냥 제가 가지고 갔었어요. 그거 가방 안에서 터질까 노심초사하면서요. 지금은 부모님이랑 일하니깐 괜찮아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다락방님 말씀 들으니 예전에 음쓰 가방에 싸오던 거 생각이 나네요;;;

잠자냥 2023-06-05 13: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월요일 책탑?! 띠용했더니 오늘 작업실 가셨군요? 저는 오늘 연휴인 줄 ㅋㅋㅋㅋㅋ(연차 쓰고 뒹구는 자- 근데 알람 울려서 깼다는 ㅋㅋㅋ)

역시 재밌습니다. 대부분 저랑 비슷한데….. 안 읽었는데 안 읽을 거 같은 책 팔아버리는 거에 빵터짐요… 왜 샀어! ㅋㅋㅋ
그 와중에 100자평에서도 넘쳐나는 자뻑 ㅋㅋㅋ 그 와중에 자기 중고서점 홍보와 자기계발서 쓰겠노라 포효! ㅋㅋㅋㅋㅋ

하지만 가장 저를 웃긴 것은 그 아픈 와중에 카스테라오지랖! ㅋㅋㅋㅋㅋㅋㅋ 수박이
아니니까 용서할게요.

건강 잘 챙기시고 언능 퇴근하고 쉬세요.

다락방 2023-06-05 17:49   좋아요 2 | URL
아아 잠자냥 님 조용하시더니 작업실 출근을 안하신거였군요. 흑흑 ㅠㅠ 부러워 부러워. 그렇지마 오늘은 이미 지나갔고 저도 내일 쉽니다. 남들 다 쉬는 날, 저도 쉽니다. 하하.

샀을 때는 읽을라고 산건데 ㅋㅋㅋㅋㅋㅋㅋㅋ몇 년 지나도록 안읽는 거 보며 안읽겠구나 싶어서 ㅋㅋㅋ안읽었지만 안읽을 것 같아서 공간 확보차 팔아버립니다. 그러다가 다시 사는.. ㅋㅋ 바보같은 악순환을 하고 있지요.
저는 늘 느끼는 것이지만, 자기계발서는 제가 써야 합니다. 모두에게 저처럼 살 수 있는 팁을 전해줘야죠. ㅋㅋㅋㅋ

카스테라 사들고 병원 가면서 이거 페이퍼에 쓰면 잠자냥님이 또 오지라퍼라고 흉보겠지 했어요. ㅋㅋㅋ 그렇지만 저도 저를 어쩔 수가 없네용. 뭔가 사드리고 싶은 마음 참을 수가 없었어요. ㅋㅋㅋㅋㅋ

저도 이제 퇴근하렵니다. 오늘 정말 몸을 불살라 일했네요. 잠자냥 님, 오늘밤도 내일도 잘 보내세요!!

독서괭 2023-06-05 14: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니 ㅋㅋㅋ이거ㅋㅋㅋㅋ 잠자냥님의 진지한 페이퍼와 결이 다른 코믹 페이퍼네요 ㅋㅋㅋ 다락방님 멋지신 거야 알라딘 공인의 사실이지만 크크크큭 웃을 수밖에 없는 .. 이 솔직함 ㅋㅋ 종이책은 그냥 ˝막 산다˝에서 빵 터졌습니다. 전 전자책은 눈에 안 보이니 막 사게 되어 끊었고, 종이책은 눈에 보이니까 절제 중인데.. 따라갈 수 없는 이 담대함ㅋㅋ
아프시군요 ㅠㅠ 아프지 마셔유 ㅠㅠ 요즘 온갖 바이러스 유행 중인 듯 합니다. 팬데믹 해제의 반대급부인가.. 카스테라는! 전 그런 마음을 10번 느끼면 1번 실천할까 말까 한데 역시 다락방님, 너무 좋아요~~ 게다가 센스도 넘쳐!
누군가에게는 연휴인 오늘 애들 맡겨놓고(애들은 휴원) 꾸역꾸역 일하는 중인데, 다락방님 페이퍼 보고 크게 웃고 갑니당. 역시 다락방님 짱이예요~~ 귀여운 조카도 최고~~ 고맘떄가 정말 젤 귀엽지요~^^

다락방 2023-06-05 17:52   좋아요 4 | URL
저도 원래 진지하게 써야지 하고 사진도 찍었었는데 사진 찍어둔게 마음에도 안들뿐더러 다 올렸던 사진들이라.. 그래서 그냥 글로만 쓰자 했더니 저도 모르게 재미난 글이 나와버렸어요. 저의 유머감각은 좀처럼 시들지도 않고 감출 수도 없는건가 봅니다. 자연스레 튀어나와 버리네요. 껄껄.
저 오늘도 바쁜 와중에 책 뭐 살까 막 장바구니 들여다보다가 정신차려 하고 나왔다가 뭐살까 들어갔다가 정신 차리라니까 했다가 쿠폰 다운 받고서는 쿠폰 쓰자! 막 이렇게 되어가지고. 에휴.. 저는 도대체 언제 정신 차릴까요?

저는 친구들이 저한테 뭐 할지 생각하지 말라고 해요. 생각하는 즉시 실천을 해버린다고 생각하지마 생각하지마 막 옆에서 그래요. 제가 생각하는 것 같으면요. ㅋㅋㅋㅋㅋ

저도 오늘 열심히 일했어요. 마음 같아서는 쉬고 싶었지만 돈 버는 일은 제 마음대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기에, 그러면 돈이 안벌어지기에.. ㅋㅋ

독서괭 님, 이제 오늘 하루가 다 지났습니다. 우리 내일은 푹 쉬도록 해요.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뽜이팅!!

잠자냥 2023-06-06 12:37   좋아요 1 | URL
이 댓글 자뻑 어쩔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6-06 12:40   좋아요 1 | URL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ㅎㅎ

다락방 2023-06-06 13:23   좋아요 1 | URL
유머와 자뻑을 모두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흠흠.

거리의화가 2023-06-05 15: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매력이 뿜뿜 나오는 성실하면서도 유쾌한 답변들이네요. 저도 전자책은 이제 비슷한 이유로 안 사게 되는 것 같아요. 아무리 가벼운 책도 일단 기기 켜는 것부터가 장애!ㅋㅋ 하다 못해 킨들도 매일 키는 것이 시험인데 전자책 기기 키는 것 쉽지 않더라구요ㅠㅠ 따로 모으는 작가분들이 계시다는 게 저는 신기합니다. 저는 파는 작가는 딱히 없어서 암튼 흥미롭습니다.
크~ 뒤돌아지면 보고파지는 사랑이라니 찐 사랑 아닙니까ㅎㅎㅎ 제 조카들은 이미 나이가 먹을 대로 먹어서(고딩, 군대 가 있음) 저런 기억이 한참 됐네요^^;;;
그리고 오늘 역시 다들 쉬는 게 아니었군요. 다락방님 건강 잘 챙기셔요!


다락방 2023-06-05 17:54   좋아요 2 | URL
저 한동안 크레마 열심히 들고 다녔었는데 어느 순간 전원도 안켜고 있고요 사실 지금은 어디 잇는지.. 아마 방전된지도 한참일텐데.. 스맛폰으로도 물론 볼 수 있지만 이제 노안이 심하게 와서 스맛폰 보는게 너무나 힘듭니다. 흑흑 ㅠㅠ 역시 종이책 멀리 떨어뜨리고 보는게 최고예요. 책의 물성은 역시 종이책이 짱인것 같아요. 종이책이여, 영원하라. 종이책 만세!!

저는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아요. 나오는 즉시 고민할 것 없이 살 수 있잖아요. 그리고 누군가가 ‘네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나왔네‘ 라고 알려주는 것도 좋고요. 이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아아, 제 조카중에 남자 아이 있는데, 그 아이도 군대를 가겠죠. 흑. 지금 조카들 어려서 너무 예쁘고 조카들도 저를 너무나 좋아해주지만 이 아이들도 무럭무럭 자라면 절 잊고 살겠죠. 흑흑 ㅠㅠ 아이들아, 그래도 좋다, 무럭무럭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거리의화가 님도 오늘밤과 내일 모두 잘 보내세요!

책읽는나무 2023-06-05 17: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기 계발서를 읽을 게 아니라 이젠 써야 할 사람이라 안 읽는다.ㅋㅋㅋㅋ
100자평은 진짜 시간 지나서 읽어 보면 나 뭐래니? 그런 기분 드는 거 저만 그런 게 아녔군요?ㅋㅋㅋ
아유...읽으면서 참 빵빵 터졌습니다^^
기분 충만할 때 누군가에게 마음의 보답을 하고 싶을 때가 있던데 잘라져 있는 카스테라를 드려야 하는군요! 메모✍️
수박이나 메론은 피해야 한다.ㅋㅋㅋ✍️
사무실에 선물로 들어온 수박이나 메론은 난감하긴 하겠습니다. 수박껍질도 처치곤란이겠군요.ㅜ
조카의 큰 머리가 이쁘네요.
저 때 팔 다리는 짧고 머리는 큰 체형인데 조그만 운동화 신고 힘차게 짧은 다리로 걷는 아가들 넘 귀여워요.
조카와의 시간들을 축복된 시간, 헤어지고 나서 바로 보고파지는 사랑이라고 표현하시는 다락방 고모는 넘나 하트 눈인 게 그려져 웃음이 납니다. 동생분이랑 올케가 본인들의 아이를 넘 사랑스러워 해주시는 누나(시누이)를 보고 참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겠단 생각을 해봅니다.
건강 관리 잘하시고 오늘도 즐겁게 퇴근하시기를^^

다락방 2023-06-05 17:58   좋아요 3 | URL
책나무 님, 책나무 님은 백자평 달인이시라 책나무 님의 백자평 이라면 훗날 읽어도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아주 잘 날 것 같은데요? 저처럼 그냥 막 쓰는 게 아니라서요. 하하.
수박 껍질 메론 껍질 진짜 처치곤란이에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걸 사오는건지 모르겠어요. 상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걸 사가는 나‘에만 취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수박 선물 메론 선물 싫어요. 요즘 환영받는 건 커피 입니다. 커피 사와서 한 잔씩 나눠주면 좋지요. 누가 음료 내올 것도 없이 말이지요. 아무튼 누가 노동하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음료나 빵이 최고입니다.

조카 너무 예뻐요! 할머니 부르는데 ˝할미야!˝ 하고 소리지르는데 진짜 이쁘고요, 제 텃밭에 물준다고 ㅋㅋ 베란다 나가서 분무기로 물 뿌리면서 쪼꼬만게 콧노래 부르는데 진짜 너무 예뻐서 미치겠어요. 어떻게 저런 아이가 존재하는지 너무 행복해요. 전 몸이 아팠고 목소리 내기도 힘들었지만 조카 너무 사랑하고 조카 졸졸 따라다녔고 조카도 저에게 쪼로로 달려와 안기곤 했어요. 흑흑.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조카입니다. ㅎㅎ

책나무 님도 좋은 저녁 그리고 좋은 휴일 보내시길 바랍니다!

새파랑 2023-06-06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기가 빨리 낫기를 바라겠습니다.
안읽고 바로 파는 책도 있으시군요~! 혹시 책탑을 위해? ㅋㅋㅋ
읽기보다 구매에 더 진심이 느껴집니다~!!
이작가님과 사강 이미지가 비슷(?) 하실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군요~!!

다락방 2023-06-06 11:47   좋아요 2 | URL
ㅋㅋㅋ 새파랑 님의 말씀에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씀을 드리지를 못하겠네요. 어쩌면 저는.. 책탑을 위해서 책을 사는 건 아닐까요? 이건 제가 저에게 솔직히 묻고 답해야 할 문제인듯 합니다. ㅋㅋㅋㅋㅋ 맞습니다. 읽기보다 구매에 진심입니다. 원래 읽기에 진심이었고 그래서 구매를 하였는데 어째서 지금 이렇게 되어버린건지. 이건 직장생활에서 온 스트레스 탓일까요? 껄껄.

사강은 사실 젊은 시절에 읽어서 기억이 희미해요. 이번에 읽어보면 새로이 감상을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 기억과는 달리 새파랑님 말씀대로 저랑 비슷한 면을 찾게될 수도 있겠지요. 후훗.

새파랑 님, 휴일 잘 보내세요!!

은오 2023-06-07 02: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궁금증이 해소돼따!!! 일단 써주셔서 감사해요 다락방님~!🙌🫶
“종이책은 그냥 막 산다.˝ ˝하 시발 그가 누구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생겨먹어서 시간이 흐른 뒤에 보면 ‘이 말이 뭔 말이여‘ 이렇게 되어버리는 나란 여자. 매력이 끝이 없다.˝ <- ???
오랜만에 다락방님한테 언급되는 올랜도랑 투쟁 영역의 확장 ㅋㅋㅋㅋㅋㅋㅋ
˝심지어는 안읽었지만 안읽을 것 같은 책들도 팔아버린다.˝ <- ???
웃음포인트 너무 많아서 다 얘기하지도 못하겠어요!! 다락방님은 자계서를 읽을 게 아니라 쓰실 때라는 거 정말 공감하고요. 완벽주의버리는법 꾸준하게하는법 글잘쓰는법 부장님되는법 귀여워지는법 멋있어지는법 자뻑하는법 다정해지는법 등등 제가 목차 뽑아드렸으니 이제 쓰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아프셨다니까 제가 너무 스트레스받네요. 아프지마세요 ㅡㅡ

다락방 2023-06-07 08:04   좋아요 1 | URL
아직 목소리는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몸은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어제는 휴일인데도 꼼짝도 안하고 먹고 책읽고만 계속했어요. 어찌나 행복하던지요. 그래도 저녁 때는 답답해져서 샤워도 하고 시장도 나가서 한 바퀴 돌고 오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독서의 길로. 오랜만에 하루를 풀로 독서했던 시간이었어요. 으하하하.

꾸준하게 하는 법에 대해서는 제가 그 방법에 대해서까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꾸준하다는 것이 결국 모든것임에 대해서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이 어제와 같고 내일이 오늘과 같은듯해도 그것이 하루하루 쌓이다 보면 일년이 되고 만년이 되고 결국 무언가의 성취가 나타나거든요. 단시일 내에 되는 것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진득한 시간이 쌓여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부장이 되는 길도 이와 같으며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오 님과 잠자냥 님의 하모니가 저로 하여금 이 질문들에 답하게 했어요. 제가 진짜 뭐 답하는 거 너무 싫어해서 심리테스트 이런것도 하다 말아버리는 사람이거든요. 아 됐어 안해~ 이러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른덴 형제의 <토리와 로키타>는 미성년 난민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년 '토리'는 본국에서의 아동학대가 인정되어 벨기에에서 머무를 수 있는 체류증을 받았지만, '로키타'는 체류증을 받기 위한 인터뷰에서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토리는 심사단에게 '왜 나는 여기 있을 수 있고 우리 누나는 있을 수 없냐' 묻지만, 돌아오는건 '네 누나에게 물어보렴' 이라는 싸늘한 대답이다. 우리 누나와 내가 함께 있을 수 없다면, 나를 누가 돌봐주죠? 이 커다란 문제 앞에 아무도 답을 주지 않고 시간은 흘러간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대화들로 토리와 로키타가 친남매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들은 밀입국하던 배에서 만나 서로를 의지하게 되었고, 체류증을 더 쉽게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서 친남매로 지내기로 한 것. 서로에게 서로뿐이었던 만큼 이들은 떨어져 지내는 걸 상상할 수 없다. 어딜 가든 함께 다니고 앞으로도 함께여야 한다. 그도 그럴것이,


이 세상의 어른들이 이들에게 너무 가혹하다. 미성년자 난민에게 너무 가혹하다. 쉼터에서 그들을 돌봐주는 어른들이 있긴 하지만, 벨기에의-물론 벨기에 어른만 그런건 아니겠지- 어른들은 이 보호자 없고 오갈데 없는 처지의 미성년자 난민들을 착취한다. 노동을 착취하고 성적으로 착취한다. 그리고 겨우 벌어들인 몇 푼의 돈도 착취한다. 게다가 이 미성년자들에게 대마초 팔이 심부름까지 시킨다. 거기에서 얻게 되는 돈은 극히 적고, 그러나 토리와 로키타에게 돈은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한다. 또다시 인터뷰에 실패한 로키타에게 마약 판매상 쉐프는 대마초 키우는 컨테이너에서 3개월간 생활하면 가짜 체류증을 만들어주겠다 제안한다. 그곳은 불법이며 드러나서는 안되기에 일단 들어가는 이상 그 안에서 3개월간 갇혀 있어야 한다. 갖다 주는 음식을 먹고 외부와의 연락도 단절된 채로 대마초를 키워내야 하는 것. 내 동생을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만나게 해달라는 요구는 묵살되지만 토리는 어떻게든 누나를 만날 방법을 찾아낸다. 물론, 이 어른들에게 들켜서는 안되기 때문에 몰래 이루어져야 하고 몰래 들어갔다 몰래 빠져나와야 한다. 


로키타는 체류증도 필요하지만 돈도 필요하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체류증이 필수다. 로키타의 가장 큰, 아니 유일한 희망은, 체류증을 얻어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것이다. 그러면 고향에 있는 어머니에게 돈을 보낼 수 있다. 고향에 동생들이 있고 동생들은 학교에 가야 하고 그런데 집에 돈은 없고, 여기서 제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데 어떻게든 고향에 돈을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이민 브로커가 숨어 있다 벌어들인 돈을 착취하는 세상속에 사는 로키타에게, 엄마는 통화할 때면 왜 돈을 못보내냐 너 돈 다른데 쓰냐며 윽박지른다. 도처에 학대하고 원망하는 어른들 뿐인데 이 와중에 로키타를 진심으로 다정하게 대해주는 이는 토리 뿐이다. 물론 토리에게도 마찬가지. 이들이 그러니 서로와 어떻게든 붙어 있으려는 것은 당연하다.


목표라는 것 그리고 희망이라는 것은 과거의 나를 보여준다. 장래 희망이 가사 도우미라고 답을 하는 소녀에게는 어떤 시간들이 그동안 있었던걸까. 어떤 시간들이 로키타에게 있었길래 인생 목표가 가사 도우미가 되는 것인가. 그러나 가사 도우미는 로키타의 가장 큰 희망이고 행복의 상징이다. 가사 도우미가 된다면 이 성착취와 노동착취와 불법 노동으로부터 그리고 브로커의 폭력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다. 감히 과학자나 대통령이나 유튜버를 희망할 수 없는 현재는 그 전의 온통 학대와 가난으로 얼룩진 과거를 반영한다. 내 목표는 체류증 받아 가사도우미가 되는 거야, 라고 말하는 십대의 소녀를 보는 일은 짐작보다 더 크게 가슴을 찌른다. 이 십대 난민 소녀는 모든 어른들에게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존재가 되어 있다. 그러나 머무를 곳도 돈도 보호해줄 어른도 없는 소녀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항변도 할 수 없고, 하다못해 경찰에 신고도 할 수 없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삶이 가사도우미인 소녀가 벨기에의 유럽의 하늘 아래서 다른 어른들과 함께 살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나는 희망을 바랐다. 어떤 작은 희망이라도 그들을 찾아오겠지. 매 장면마다 그럴 리 없다는 걸 말해주는데도, 그래도 미성년이잖아, 절망만 주지는 않겠지 했는데, 다르덴 형제 할아버지들 얄짤 없으셨네요. 내용 언급 없이 결말을 말하자면 비극이고, 그러나 그것은 현실일 터였다. 그렇다면 현실은 비극인걸까.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영화속에는 미성년 난민의 성착취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직접적인 장면 묘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성착취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관객은 알고, 충분히 끔찍하게 여길 수 있다. 이 장면에서 나는 또다시 잔인한 강간 장면을 묘사하는 다른 많은 영화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 장면은 필요했는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보여주어야만 하고자 하는 말을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건 능력 부족 아닌가? 다르덴 형제는 그러지 않고서도 이미 충분히 전달했는데?



오늘 아침 읽기 시작한 책은 '조문영'의 《빈곤 과정》이다. 서문부터 좋은데, 나는 이런 구절을 보게 된다.



불안정성에 대처할 자본이 부족한 사람들은 비합법적 관계망에 연루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낙인의 대상을 자의적으로 구별하며 스스로 안전고 정상성을 확보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서문, p.13











로키타에게 체류증이 있었다면, 대마초를 키우는 컨테이너에 갇히는 일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대마초를 키우는 일은 합법적이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로키타가 놓여 있다. 로키타에게 돈이 있었다면, 대마초를 키우는 컨테이너에 갇히는 일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로키타에게 머물 곳이 있었다면, 돌봐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그렇다면 대마초를 키우는 컨테이너에 갇히는 일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안정성에 대처할 자본이 전무했던 로키타는, 비합법적인 일에 어쩔 수 없이 자꾸만 연루된다. 



로키타-자본 없는 미성년 난민-를 착취하는 어른들은, 착취함으로써 자기가 원하는 이익을 채웠다. 돈을 벌었고 불법적일을 대신해줄 사람을 얻었고, 성적 쾌락을 만족시킬 수단을 얻었다. 원하는 것들을 더러운 방식으로 다 가지게 됐지만, 그에겐 더러운 방식을 썼다는 일은 남아 있다. 물론 쉐프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착취에 가담한 모든 어른들에게는 그런 행위를 한 자신이 남는다. '미성년 난민을 착취한 나' 가 그들 자신에게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들이 보이지 않는 건 보지 않기 때문은 아닐지, 그러니 봐야 되지 않겠냐며, 다른덴 형제들이 이렇게 영화를 만들었네. 그러나 극장에는 나와 친구를 포함 열한명만이 있었다.


가끔, 아니 자주. 제도와 체제와 정치와 기득권이 해야 할 일들을 예술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예술이 해야 할 일도 그것이겠지만, 불안정성에 놓인 자들을 좀 더 안정적인 곳으로 이끌어줘야 하는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그 불안정성을 이용하고 있으면서 본인의 만족을 채우는 일을 하고 있다. 비극이지만, 무겁지만, 어휴 너무 쎈 거 아니에요, 했지만 그러나 좋은 영화였다. 



자, 월요일에 올리지 못한 책탑을 화요일에 올려보자.



















《개 신랑 들이기》는 제목만 보고 선택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일지 상상도 안돼. 그러니까 개 성질 닮은 남자를 들였다는 건지, 아니면 이것이야말로 동물과의 섹스를 얘기한건지-그러지마-, 아니면 집에서 키우던 개가 사실은 마법에 걸린 왕자님이었는지... 내가 한 번 읽어보겠다.


《그래서 나는 억만장자와 결혼했다》는 출간 당시,그러니까 아마도 2016년에 이미 구매해서 읽고 다시 판 책인데, 최근에 이 책 생각이 자꾸 나서 또 샀다. 책을 파는 일은 과연 잘하는 일인가?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어졌다.


《나는 너와의 연애를 후회한다》는 받아들고나서 앗차 싶었는데, 어쩐지 있을 것 같아서.. 그러니까 내가 언젠가부터 <산 책> 앱에 정리를 안하고 있거등여? 표지가 너무 익숙해서 아, 제기랄 책장 어딘가에 있는거 아니여.. 싶어졌다. 흑.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어려울 것 같아서, 도저히 이해를 못할 것 같아서 내내 미뤄두던 책인데, 얼마전에 북플에 재밌게 읽었다는 평이 올라오길래, 그래? 그럼 어디 나도 한 번? 이러고 샀는데, 사놓고 나니 또 아 역시 나는 안될지도.. 라는 생각이 들고 있다.















《최재천의 동물대탐험1》은 2를 샀으니까 샀는데, 아직 1도 안읽었다. 흠흠.


《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읽기 싫은데 읽고 싶다. 뭔지알쥬? 모르고 싶은데 모르면 안될것 같다. 흑 ㅠ


《여성, 총 앞에 서다》는 사게 된 계기에 대해 정말 할 말이 많은데 … 얼마전에 '페미니스트라면 반전에 앞장서야하지 않냐'는 말을 듣고 아득해져서 샀다. 페미니스트는 세상 모든 일을 다 해야 하나, 다 앞장서야 하나, 그리고 반전 시위와 운동에 있는 여자들이 안보이나. 뭐 이렇게 페미니스트들에게 바라는 게 많아. 반전도 해라, 애들 생각도 해라, 디지털 성폭력 잡아라, 환경 생각도 해라, 채식해라 … 페미니스트는 신입니까? 페미니스트는 흠없고 세상 모든 일을 두루 다 참견하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왜 유독 페미니스트에게는 그러라는 요구가 많아? 아득하고 한숨이 난다. 


《문화의 위치》는 정희진 쌤이 극찬한 호미 바바의 책이라 샀다. 정희진 쌤의 추천으로 읽은 인생 수업 좋았어서 호미 바바도 좋겠지 싶네.




《늑대 인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언제? 나도 몰라용.













식물들은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지만, 치커리는 영 힘이 없어 연휴동안 다 뽑아버렸다. 이로써 상추랑 치커리를 없애버리게 됐는데, 자라는 걸 보면서 그리고 나의 성격을 보면서 '상추랑 치커리는 다시 심지 말자'고 결심하게 되었다. 이렇게 식물을 키우면서 내 자신을 좀 더 알게된다. 


콩이 진짜 무럭무럭 잘 자라는데, 내가 이렇게 자라는 콩을 보면서 엄마한테 그랬다.


"엄마, 얘 보면 집이 가난하고 부모도 지원을 안해주는데 지 혼자 잘나서 서울대 간 사람같아." 엄마빵터짐..





요즘 제일 예쁜건 바질 담당이다. 볼 때마다 예쁘고 기특해서 베란다를 온통 바질로 가득차게 만들고 싶은 심정이야.



그런데 얘도 한 화분에 너무 많은 게 아닌가 싶어서 앞으로 좀 더 건강하고 여유롭게 자라라고, 치커리 뽑아낸 화분에 옮겨 심어주었는데,



내가 다 망쳐버린 건 아닌지 걱정이다. 애들이 다 힘이 빠져버렸어. ㅠㅠ 내가 잘못한거니? ㅠㅠ 힘내, 바질들이여…



어휴 그나저나 쓸 거 너무 많아서 큰일이다. 츠바이크의 《우체국 아가씨》도 써야 되는데. 이 책 너무 좋아. 여러분 읽으세요, 두 번 읽으세요. 흑흑. 시간나는 대로 우체국 아가씨에 대해서도 쓰겠습니다. 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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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3-05-30 09: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 <우체국 아가씨> 너무 좋아요? 난 제목이 좀 그렇고 -..- 이미 나온 거 다시 나온 거라길래 좀 우습게 알았는데 그럼 지금 바로 주문해도 되는 걸까요? 바질 정말 이뻐요. 콩 꼬투리도 맺혔네요. 저는 애가 학교에서 씨 세 개 뿌려서 화분 들고 왔길래 그거 키우는 중이에요. 분갈이 했다가 죽을까 봐 무서워 죽는 줄 ㅋㅋ 이게 화분 옮기는 게 식물한테 엄청 스트레스래요. 인간 이사랑 같은 수준인가봐요. 다락방님의 책탑은 언제나 기다려집니다. 저는 <우체국 아가씨> 주문하러 갑니다용.

다락방 2023-05-30 17:20   좋아요 1 | URL
우체국 아가씨 라는 어감이 좀 안좋지요? 이게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의 개정판이더라고요. 저는 구판 가지고 있으면서 안읽었네요. 껄껄.
오와 정말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여러가지 생각도 많이 들어서 메모까지 해가며 읽었거든요. 감정들 다 날아갈까봐요. 그래서 여기에 대해 적어보고 싶어요.
블랑카 님, 분명히 재미있게 읽으실 거고요 그리고 아마 근사한 글 써내실 겁니다. 저는 일정 부분 <노멀 피플> 생각도 났어요. 빈부의 계급차에 대해서 말이지요. 블랑카 님, 얼른 읽고 얼른 써주세요. 기대됩니다!

분갈이 했다가 무서워 죽을 뻔 햇다는 블랑카 님의 마음이 바로 제 마음입니다. 지금 바질 잘못될까봐 전전긍긍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유수 2023-05-30 10: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전쟁은 지들이 해놓고 왜 반전 앞장을 페미니스트한테 서래???? 웃기고 있네요 진짜. 3기니구만.. 3기니여…책 독후감 못쓰고 여기서 뭉뚱그리고 있음
바질 너무 탐나네요. 얻으러 가고 싶어요. 계속 탐스럽게 자라라~~

다락방 2023-05-30 17:19   좋아요 1 | URL
각자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을텐데, 그러면 자기가 거기에 힘을 실어주면 되는거 아닙니까. 왜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세상 모든 이슈에 앞장 서야 하는건지, 아 피곤합니다. 너무 피곤해요. 성평등 주장한다고 세상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라는 사고방식은 왜 튀어나오는건지 원. 아 피곤합니다. 피곤해요.

바질 너무 예쁜데 제가 너무 망쳐버린 것 같아서 미치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차트랑 2023-05-30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옥과 악마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옆에 가까이 존재한다는 것을 절감케하는 좋은 글입니다. 마음이 무겁군요. 시대는 늘 정신을 요망합니다.

다락방 2023-05-30 17:21   좋아요 0 | URL
차트랑 님, 오셨네요.
좋은 영화는 마음을 무겁게 하는 법인가 봅니다. 그러면서도 또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아가는 저도 그런 사회를 만든 사람이겠지요. 역시 마음이 무겁습니다.

잠자냥 2023-05-30 1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르덴 형제 감독 영화가 또 개봉했군요. 지난번에 내한하셨다고 해서 무슨 영화를 개봉하나 싶었는데.... 저도 이 영화 봐야겠어요. 또 마음이 불편해지겠지만...

그나저나 서울대콩 비유 너무 웃깁니다. <우체국 아가씨> 리뷰 기다릴게요~

다락방 2023-05-30 17:21   좋아요 1 | URL
친구는 ‘극장에야 가나 볼 수 있고 집에서느 안보게 되는 영화‘ 라고 켄 로치 감독의 영화를 얘기했는데, 다르덴 형제의 영화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극장에 가 보고싶지만 집에서 혼자는 안보게 되는 영화 ㅠㅠ

우체국 아가씨 진짜 너무 재미있어요. 시간 내서 꼭 써볼게요. 그런데 제가 너무 바쁘네요. 오늘도 오전 내내 회의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독서괭 2023-05-30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울대 콩 ㅋㅋㅋㅋㅋㅋ 너무 찰떡 비유예요!!
영화 내용이 참 너무 씁쓸하고 슬프고 안타깝네요 ㅠㅠ 그와중에 성착취 ㅠㅠ 아오 한숨..
오늘도 멋진 책탑으로 대리만족합니다👍 산책어플 다시 꼬박꼬박 활용하시기를 바라고요 ㅋㅋ

다락방 2023-05-31 07:47   좋아요 1 | URL
오늘 아침에도 들여다보고 왔는데 콩이 정말 잘 자라고 있어요. 기특합니다. 제가 뭐 해주는 것도 없는데. 흑흑.
독서괭 님의 말씀을 받을어 산책 앱을 꼭 활용하겠어요. 어제도 책이 왔거든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건수하 2023-05-30 14: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스트는 흠없고 세상 모든 일을 두루 다 참견하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왜 유독 페미니스트에게는 그러라는 요구가 많아?

- 이거 진짜 공감입니다 ㅠㅠ

이슬람~ 땡투 감사해요 다락방님 ^^!

다락방 2023-05-31 07:48   좋아요 0 | URL
페미니스트라면 ~해라, 하는 요구가 진짜 너무 많죠. 매사에 다 페미니스트 소환돼요. 아주 놀고들 있어요 증맬루. 성차별을 하지말자!! 이러는 사람들이 뭐가 그렇게 신같은 존재라고 이것도 해달라 저것도 해달라.. 쯧쯧. 아득하고 힘빠집니다.

이슬람 땡투로 책 한 권 더 사시기 바랍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은빛 2023-06-02 1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으며 다락방님 정말 글 잘 쓰신다 하고 새삼 깨달았습니다.
여러 식물들이 잘 자라는 모습 정말 좋네요.

페미니스트라서 앞장서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은 다 앞장서야 하는 것이거늘.
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늘 뒤쳐져 있는 건지 오히려 따지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