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무너진 생활
가족들은 모두 건강했다. 이따금씩 이반 일리이치가 입 속에서 야릇한 냄새가 난다거나, 왼쪽 배가 좀 거북하다고 말하는 일이 있었으나 아무도 그것을 심각하게 여기진 않았다.
그러나 이상한 기분은 점점 더 심해졌다. 별로 아프지는 않았지만 옆구리에 뭔가 끊임없이 묵직하고 답답한 기분이 느껴져 기분이 침울해지곤 했다. 이 침울한 기분은 나날이 더 심해져서 급기야 그가 고로빈 가문에 어렵사리 이룩해 놓았던 품위 있고 가볍고, 명랑한 생활 분위기를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내는 날이 갈수록 싸움이 잦아졌다. 머지 않아 가볍고 유쾌한 기분은 사라지고 체면 유지를 위한 법칙만이 유지되게 되었다. 아내가 전부터 가끔 남편에겐 음울한 성격이 있다고 말한 것이 이렇게 되고 보니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녀는 무엇이든지 좀 보태서 지껄이는 성품이었으므로 당신은 언제나 이렇게 무서운 성격이었어요, 내가 사람이 좋아서 20년 동안이나 그걸 참고 살아왔노라고 떠들어댔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제는 그가 먼저 그녀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것이 통례였다. 식사를 시작하기 전 그는 식탁에 앉아서 스프를 먹을 때쯤 거의 언제나 잔소리를 시작하곤 했다. 그것도 그릇이 이가 빠졌다거나, 요리가 글러먹었다거나, 또는 아들이 상 위에 팔을 올려 놓았다거나, 딸의 머리 모양이 어떻다는 둥 트집을 잡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것을 아내의 잘못 탓으로 돌렸다.
아내는 참다 못해 처음에는 말대답도 하고 불쾌하게 쫑알대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밥 먹기 전에 두 차례나 아주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한 후로는 그녀도 그가 병적인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화를 가라앉히고 잠자코 부지런히 식사를 끝마치기로 했다. 그녀는 자기가 그처럼 성격이 유순하다는 것을 큰 자랑거리로 삼았다.
그녀는 자기 남편이 아주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로 자기의 생활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내심 단정하고 자기 자신을 불쌍하게 여겼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더 남편을 증오하게 되었다.
그녀는 남편이 죽기를 바랐으나 그렇다고 그것을 실제로 그것을 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봉급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그녀는 더욱 마음이 상했다. 남편의 죽음조차도 자신을 불행으로부터 구해주지 못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자신의 처지가 더욱 무섭게 불행한 것으로 느껴졌다.
그녀는 늘 조바심을 쳤으나 그런 태도를 될수록 남편에게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이 감추어진 조바심은 더욱 남편의 울화를 긁어 놓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반 일리이치의 신경질이 유난히 심했던 어느날이었다. 감정이 가라앉은 후 그는 요즈음 자기가 짜증을 잘 내는 것은 모두 병 때문이라고 변명처럼 말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내는 말했다. 의사에게 보일 필요가 있다, 이름있는 의사의 진찰을 받도록 하라고 성화를 했다.
이반 일리이치는 의사를 찾아갔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했던대로였다. 그는 공식적이고 형식적인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마치 그 자신이 법정에서 취하는 태도를 흉내내기라도 한 것처럼 의사는 정중하게 꾸민 태도와 판에 박은 듯한 형식이라는, 직업의 가면을 쓰고 그를 대했다. 그에게는 이것이 아주 낯익다는 느낌조차 들었다.
"그저 모든 것을 내게 맡기시면 됩니다. 해롭지 않게 해 드릴 테니... 우리는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나 똑같은 방법으로 다 해결해 왔으니까요..." 이렇게 말하는 듯한 의사의 그 꾸며진 표정, 이것은 그가 한결같이 법정에서 지켜왔던 태도와 흡사했다. 법정에서 그가 피고인들에게 지어 보이는 표정과 그 저명한 의사가 그에게 보여준 표정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었다.
의사는, 이러저러한 징후는 당신의 몸에 이러저러한 병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이모저모 다양한 연구 결과에 의해 확인되지 않는다면 당신의 병은 아마 또 다른 이러저러한 것이라고 단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에는... 어쩌구저쩌구
이반 일리이치에게는 단 한 가지 문제만이 중요했다. 그의 병이 심각한 것이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사는 이러한 질문을 무시해 버렸다. 의사의 입장에서 볼 때 그 따위 질문은 이롭지 못한데다, 문제로 삼을 것도 못 되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다만 만성 탈장이냐 아니면 맹장염이냐 둘 가운데서 확률을 놓고 따지는 것일 뿐이다.
의사에게 있어서 이것은 이반 일리이치의 생명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맹장염에 대한 논쟁의 문제였다. 의사는 이반 일리이치를 앞에 앉혀놓고 아주 재치 있는 솜씨로 논쟁을 진행, 맹장염의 승리로 결론을 지었다. 의사는 이와 같은 진단에 덧붙여서 혹시라도 소변 검사 결과에서 새로운 증거가 잡힐지도 모르니까 그때는 다시 진찰해야 한다는, 발뺌을 위한 장치를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일들은 이반 일리이치 자신도 피고인들을 다룰 때 빈틈없는 솜씨로 천 번도 넘게 해오지 않았던가. 그가 늘 그랬듯이 의사는 즐거운 듯 득의만면해서 이제 피고의 입장에 선 그를 안경 너머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아... 의사나 다른 사람에겐 이런 일이야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 내겐 그렇지 않지...' 이반 일리이치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된 것에 놀라고 두려워졌다. 그는 자기 자신이 너무 가엾다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중대한 문제를 이렇게 무성의하게 처리하는 의사가 괘씸해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잠자코 일어섰다. 그리고 탁자 위에 돈을 놓으면서 한숨을 쉬고, 이렇게 물었다.
"환자들은 원래 쓸데없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만... 제가 혹시 아주 위험한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요?"
의사는 안경 너머로 그를 차갑게 쏘아 보았다. 마치 '피고인 그대가 허용되지 않은 질문을 끄집어낸다면 부득이 퇴정을 명령할 수 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지금 말씀드릴 필요가 있는 것은 모두 말씀 드렸는데요." 의사는 대답했다. "그 이상의 것은 조사 결과가 나온 다음에 말씀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그리고 의사는 정중하게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반 일리이치는 느릿느릿 그곳을 나와 기운 없이 썰매를 타고 집으로 달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의사가 한 말을 곰곰이 되씹어 보았다. 의사가 말한 그 모호한 낱말들은 과연 무슨 뜻을 담고 있는 것일까?
'과연, 내 병은 심상치 않은 것일까? 무척 위험한 것인가, 아니면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일까?' 그는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의사가 한 말 속에서 찾아내려고 애썼다. 그로서는 생각할수록 의사의 말이 아주 위험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길거리의 풍경도 그에게는 서글프게만 보였다. 합승마차도, 늘어선 집들도, 사람들도, 구멍가게도 모두 처량해 보였다. 게다가 잠시도 멈추지 않는 이 둔탁한, 곪는 듯한 아픔... 의사는 모호하게 말하지만, 이 고통은 훨씬 심각한 것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는 침울하게 아픔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그는 진찰 결과를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아내는 듣고만 있었다. 이야기 도중에 딸이 모자를 쓰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나가려던 참이었다. 사실 아내는 이 답답한 대화를 억지로 참으면서 자리에 앉아 들어주고 있었으나 그런 그녀의 노력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아, 그래요? 그럼 이제 안심이군요." 아내는 말했다. "당신도 이제부턴 정신 똑바로 차리고 꼬박꼬박 약을 드시도록 하세요. 그럼 게라심에게 처방전을 주어서 약국에 가서 약을 사오도록 하겠어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옷을 갈아 입으려고 다른 방으로 갔다.
아내가 방에 있는 동안 그는 숨도 쉬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 그녀가 나가자 그는 한숨을 무겁게 내쉬었다.
"이런 젠장! 어쩌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건지도 모르지..." 그는 중얼거렸다.
이반 일리이치는 약을 마시고 의사의 지시를 착실히 지켜 생활했다. 그러나 의사의 처방은 얼마 못 가서 소변 검사 결과에 의해 바뀌었다.
그건 별로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의사의 검사와 그 결과에 따른 치료 방법에 일종의 혼란이 생긴 것이다. 이것을 의사의 실책이라고만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의사가 한 말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생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반 일리이치는 종전대로 의사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그 속에서 일종의 위안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약을 먹고 기타 요양에 관한 의사의 지시를 제대로 지키는 것은 이반 일리이치의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그는 또 몸의 고통과 내장의 기능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의 병이나 건강에 대해서 흥미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앓고 있는 어떤 환자의 이야기, 특히 자신의 증상과 비슷한 병을 앓는 환자 이야기가 나올라치면 그는 억지로 마음의 동요를 감추면서 열심히 귀를 기울이거나 여러 가지 질문을 해서 자신의 증상과 견주어 보았다.
9. 혼란과 고독
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이반 일리이치는 억지로라도 자신의 병이 나아지고 있다고 믿으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특별히 흥분할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스스로를 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내와의 사이에 불쾌한 일이 생기거나 근무상 실수를 하거나 빈트 놀이 패가 좋지 않거나 하면 느닷없이 그 고통을 온 몸으로 느꼈다. 전에는 설혹 실수를 하더라도 굽히지 않고 성공을 되찾을 때까지 버티고 이겨낸다는 의지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온갖 상스럽지 못한 일들, 사소한 불쾌감이 모두 그의 기력을 꺾어 버렸다. 그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상태였다.
그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 겨우 좀 나아져서 약 효과가 생길 만하면 꼭 빌어먹을 놈의 재수없는 일들이 일어난단 말야 - 그는 자신에게 그런 재수없는 일을 가져다주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재수없는 일 자체에 대해 화를 내고 증오했다. 그런 심정이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리라는 것을 그는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그는 그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주위 사람과 환경에 대한 그의 이런 분노는 분명 그의 병을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역시 불유쾌한 일에 대해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신경을 쓰지 말고 무시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정반대로 자신에게는 안정이 절대로 필요하며, 그 안정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을 조심해야 하며, 결국 그래서 조금이라도 안정이 방해되면 신경질이 날 수밖에 없다고 핑계를 대고 있었다.
그는 이것저것 의학 서적을 읽고 의사를 이 사람 저 사람 찾아 다녔다. 그러나 이것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병세가 꾸준히, 전체적으로 악화되고 있어서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특별히 달라진 것도 없다고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의사를 찾아보고 이야기를 해보면 병세가 악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속도도 무척 빠르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래도 그는 부지런히 의사를 찾아 다니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 달에 그는 또 다른 명의를 찾아갔다. 이 의사도 앞서 찾아간 다른 의사들과 거의 비슷한 의견이었다. 그는 진찰하는 각도가 달랐을 뿐이다. 이 의사와의 상담도 그에게는 오로지 의혹과 공포를 더해줄 뿐이었다. 한 다리 건너서 아는 친구 가운데 아주 명성 높은 의사가 있어서 그는 또 찾아가 보았다. 그랬더니 그 진단이 또한 여태까지 들은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 의사는 반드시 고칠 수 있다고 장담했으나, 여러 가지 질문과 그 나름의 추측으로 미루어 본 생각으로 그는 더욱 혼란에 빠졌을 뿐이었다.
의사들은 진단은 각각 다르게 내리면서도 치료 방법은 비슷했다. 또 주는 약은 의사마다 달랐다. 이반 일리이치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일주일 동안 새 약을 복용해 보았다. 그러나 전혀 효과를 볼 수 없었다. 그는 아무도 신뢰할 수 없었다. 도리어 우울한 마음만 하루하루 더해갔다.
하루는 친하게 지내는 여인이 찾아와 기도로 병을 고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내가 정말 이렇게까지 정신적으로 약해졌단 말인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제부턴 괜히 쓸데없는 의심을 품지 말고, 믿을 수 있는 의사 한 사람만 골라 철저하게 그의 치료법을 따르도록 하자. 당연히 그래야지... 이제부턴 딴 생각 말고 여름까지 한 가지 치료법에만 전념해야지. 나중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 이젠 이따위로 갈팡질팡하는 것은 정말 지긋지긋하다...'
그러나 이렇게 마음 먹기는 쉬웠으나 실행은 불가능했다. 옆구리의 통증은 늘 마음에 걸렸고, 점점 더 심해졌다. 입 속의 메스꺼운 기운도 점점 더 심해졌다. 입에서 항상 역겨운 냄새가 난다고 느껴 식욕도 갈수록 줄어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스스로를 속일 수 없었다. 뭔가 새로운 것, 아주 두렵고 여태까지 그의 일생에서 만난 적이 없었던 중대한 사태가 그의 몸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오직 그 혼자만 알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아무도 이를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들에겐 매사가 예전처럼 아무 탈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반 일리이치가 무엇보다도 괴로운 것은 바로 주위 사람들의 그런 무관심이었다. 집안 식구, 특히 아내와 딸은 나돌아 다니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서 무엇 하나 그의 고통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그들은 그가 이렇게 늘 우울하고 화를 잘 내게 된 것이 마치 일부러 그러는 것인 것처럼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물론 그들도 될 수 있으면 그런 내색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자기를 돌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내는 그의 병에 대해서 판에 박힌 듯한 태도를 꾸며내 그가 뭐라고 말하든 상관없이 그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그 태도란 이런 것이었다.
"글세, 어쩌면 좋아요..." 그녀는 친지들에게 말한다. "우리집 주인은 딴 사람들처럼 의사가 지시한 치료 방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요. 오늘은 제대로 약을 먹고 음식도 가려 먹고 시간 맞춰서 잠자리에 드는가 싶더니, 다음 날엔 말짱 도루묵이란 말이에요. 약 먹기를 잊어버리고 몸에 좋지 않은 상어 고기를 먹고, 빈트 놀이를 하느라 밤 한 시까지도 자지 않고 버티는 걸요."
"아니 내가 도대체 언제 그랬단 말이야?" 이반 일리이치는 화를 버럭 내며 말한다. "그 일은 표도르 이바노비치에게 놀러 갔을 때 딱 한 번 그랬던 것 뿐이야!"
"어젯밤에도 슈베크씨 하고..."
"글쎄, 늦게 잠드는 건 나도 어쩔 수 없어. 옆구리가 쑤셔서 아무래도 잠을 잘 수가 없는 걸 나더러 어쩌란 말이야..."
"글쎄 이유가 어떻든 그러다간 당신은 도저히 병을 고칠 수 없을 게 뻔해요. 괜히 우리들만 괴롭히구 말이에요."
아내는 남편의 병에 대해서 남들에게나 또는 그에게, 그 병은 이반 일리이치 스스로의 잘못에서 생긴 것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병이라는 것도 실상은 자신에 대한 남편의 새로운 학대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반 일리이치도 아내가 순전히 악의로만 그런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고통이, 분노가 조금도 가시지는 않았다.
법원에서도 이반 일리이치는 남들이 자신을 아내와 똑같은, 기묘한 태도로 대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그렇게 느낀 것으로 생각했다.
어떤 때는 모두들 자신을 머지 않아 자리를 물러날 사람 대하듯 힐끔힐끔 살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때로는 친구들이 갑자기 다정한 말투로 병에 대한 그의 지나친 걱정을 놀려대곤 했다. 그의 몸 속에 번식해서 쉬지 않고 그의 피를 빨아 먹으며 그를 사정없이 죽음으로 몰고 가는 이 무섭고 두려운 병이 그들에게는 다시 없이 재미난 농담거리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다.
특히 슈발츠는 더욱 그의 비위를 긁어 놓았다. 슈발츠의 태도는 10년 전의 이반 일리이치 자신을 연상시키는, 명랑하고 생기발랄하고 의젓한 것이었다.
친구들은 이따금 트럼프를 하러 찾아왔다. 새 트럼프를 뜯어서 섞고 패를 돌린다. 다이아몬드에 또 다이아몬드... 일곱 점이 됐다. 딜러가 말했다. 지금 가진 패만으로 까보기로 하자고. 이건 바로 베팅하는 거다 - 유쾌하고 신나는 판이다. 바로 그 때다. 이반 일리이치는 예의 그 자지러질 것 같은 아픔과 입 속에 피어나는 역겨운 메스꺼움을 맛보았다. 그러자 자기가 지금 노름에서 이긴다는 것이 무슨 기괴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는 딜러인 미하일 미하이로비치를 건너 보았다. 미하일 미하이로비치는 혈색이 좋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치면서 세련되고 너그러운 태도로 도중에 포기한 다른 카드들을 쓸어 모았다. 그리고 이반 일리이치가 팔을 벌리지 않아도 쉽게 카드를 모을 수 있도록 그의 앞으로 밀어주었다.
'뭐야, 이 친구는 내가 아주 다 죽게 돼서 팔도 벌릴 수 없는 줄 아는 모양이군...'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완전히 심사가 틀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만 남에게 돌릴 카드를 자기 앞으로 돌려 버렸다. 그는 결국 세 점이 부족해 완전한 승리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가 괴로운 표정을 짓자 친구들은 "몸이 편치 않으면 오늘은 그만 두지. 자 일찍 쉬는 게 좋을 것 같네..." 이렇게 말했다.
쉬다니? 그는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그가 게임을 계속하자고 우겨대자 친구들은 그 판 노름을 마지막까지 놀기로 했다. 그러나 모두 말이 없어졌고, 자리에는 우울한 기분이 감돌았다. 그는 분위기를 깬 것이 자기이며 이제 이 우울한 기분을 회복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친구들은 밤참을 먹고 헤어졌다. 그들이 돌아가자 이반 일리이치는 자기의 병은 자신만을 해롭게 하는 게 아니라 남들의 생활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런 피해는 줄어들기는커녕 끊임없이 자기의 전 존재 위에 퍼져 가고 있다... 이런 괴로운 자의식과 함께 그는 혼자 남았다.
그는 이런 생각과 육체적인 고통, 거기 따르는 두려움을 안고 잠자리에 들어가 뜬 눈으로 밤을 밝히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런 다음날 아침에도 그는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법원에 출근해서 남들과 이야기도 하고 서류를 뒤적였다.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똑같은 스물 네 시간으로 채워진 하루를 순간순간 고문으로 가득찬 집 안에서 보내야 했다.
이렇게 그는 누구 하나 이해해 주거나 동정해주는 이도 없이 외로이 견디며 살아가야 했다.
10. 감출 수 없다!
이런 나날이 한 달 두 달 흘러갔다. 새해를 앞두고 처남이 찾아와서 그들 집에서 묵게 되었다. 그날 이반 일리이치는 법원에 나갔고, 아내는 장을 보러 외출했다. 집에 돌아와 서재로 들어서면서 그는 가방을 풀고 있는 처남을 발견했다. 처남은 원기 왕성하고 다혈질이었다. 처남은 이반 일리이치의 발 소리에 고개를 돌리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처남의 눈초리가 이반 일리이치에게는 모든 것을 분명히 깨우쳐 주는 것 같았다.
처남은 '악!' 비명 소리를 지르려다 간신히 참은 것이다. 감추려고 해도 그의 놀란 모습은 역력히 드러나고 있었다.
"어때, 내가 많이 달라졌지?"
"네에, 좀..."
이반 일리이치가 아무리 처남에게 자신의 변한 모습에 대해 이야기해보라고 애를 쓰며 말해도 처남은 끝내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이반 일리이치는 방문을 닫고 열쇠를 잠근 다음 거울 속 자기 모습을 들여다 보았다. 앞으로 또는 옆으로. 그 다음에는 전에 아내와 둘이서 찍은 사진을 꺼내 놓고 거울 속 모습과 견주어 보았다. 그는 너무나 어처구니 없게 변해 있었다.
그는 소매를 걷어 올리고 자기 팔뚝을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의자에 주저앉아 밤보다 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안 되겠어, 이러다간 안 되겠어...' 그는 자신을 이렇게 타이르고는 벌떡 일어나 책상으로 가서 서류를 펼쳐 읽으려 했다. 그러나 허사였다.
그는 방문을 열고 나갔다. 응접실 문은 닫혀 있었다. 그는 발소리를 죽이고 문으로 다가가 방 안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아냐, 그것은 동생이 너무 심하게 생각한 거야." 아내가 말했다.
"심하게 생각하다니요? 누님은 그래, 모르시겠어요? 자형은 지금 송장이나 마찬가지에요. 그 눈을 좀 보세요. 생기가 하나도 없지 않아요. 무슨 병이래요. 글쎄?"
"그걸 아무도 모른다는 거야. 의사가 뭐라고 일러 주기는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고... 또 어떤 의사는 정반대 얘기를 하니 말이야..."
이반 일리이치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서 자리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그는 의사들이 한 말들, 신장이 갈라져서 흔들흔들 움직이고 있다던 말을 생생하게 눈 앞에 그려 보았다. 그는 상상력을 긴장시켜 이 신장을 붙잡아 고정시켜 보려고 애썼다. 그렇게만 해도 좀 나은 것 같았다.
'한 번만 더 표도르 이바노비치에게 부탁해 봐야겠군.' 그는 그 유명한 의사와 친하게 지내는 친구였다.
이반 일리이치는 갑자기 초인종을 울려 마차를 준비하라고 이르고 외출 준비를 했다.
"아니, 지금 어딜 가세요. 여보?" 아내는 슬픈 표정으로 전에 없이 상냥하게 물었다. 그는 침울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를 좀 만나봐야 할 일이 있어."
그는 의사를 친구로 둔 그 친구 집으로 마차를 달려갔다. 그리고 그 친구와 함께 의사에게 갔다. 의사와 오래 동안 이야기 한 끝에,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자세히 검토했다. 그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맹장 속에 아주 조그마한 것이 있다. 그것이 원인이다. 그건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기관의 에너지를 보강하고 다른 기관의 활동을 약화시키면 흡수작용이 생겨서 금방이라도 나을 수 있다.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그는 저녁식사에 좀 늦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그는 가족들과 명랑하게 웃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는 늦게야 서재로 돌아왔다. 그는 서류를 읽으면서도 자기에게는 꼭 해야 될, 중요한 일이 따로 있어서 지금 하는 일을 마치면 곧바로 그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잠시도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일을 끝마쳤을 때 그는 그 중요한 일이란 바로 맹장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금방 그 일을 시작하지 않고 응접실로 차를 마시러 나갔다. 응접실에는 손님이 와 있었다. 그들은 집안 사람들 여럿이 함께 이야기도 하고 피아노에 맞춰서 노래도 불렀다.
그의 아내의 말에 의하면, 이반 일리이치는 그날 밤 누구보다도 명랑하게 지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는 맹장에 관한 중요한 일을 뒷전에 돌려놓고 있다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다. 11시에 그는 자리를 떠나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병이 든 이래 그는 서재에 딸린 작은 방에서 혼자 자고 있었다. 그는 옷을 벗고 졸라의 소설을 펼쳤으나 별로 읽히지 않았다. 지금 그의 상상 속에서는 그처럼 간절하게 바라던 맹장의 회복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흡수 작용이 일어나고, 배설 작용도 순조롭다. 이제 맹장이 올바른 기능을 회복한 것이다.
'그렇지 바로 이런 식으로 해야지.' 그는 스스로 다짐했다. '오직 자연의 힘에 협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약 먹을 시간임을 깨닫고 일어나 약을 마시고 이번에는 반듯이 누워 약이 제대로 자리를 찾고 아픔을 없애주는 현상을 숨을 죽이고 살폈다.
'그래, 맞아. 그저 규칙적으로 약을 먹고 좋지 않은 것들을 멀리 하는 것이 최고야. 벌써 상당히 차도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 아니, 분명히 상당히 나아졌어...'
그는 옆구리에 손을 대 보았다. 만지기만 해서는 아픔을 느낄 수 없었다.
'이것 봐라.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 이젠 정말 훨씬 나아졌어!' 그는 촛불을 끄고 옆으로 돌아누웠다. '이제 맹장은 다 나았고 고통을 흡수하고 있다...'
바로 그때였다. 그는 또다시 전에 느끼던 그 둔탁한 아픔, 곪는 듯한 느낌, 끈덕지고 조용한, 아주 확실한 아픔을 다시 느꼈다. 입 속에서도 똑같은 그 메스꺼운 느낌과 함께... 머리가 흐려지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이구, 맙소사!'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또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도대체 왜 또 이러는가, 언제까지 이렇게 계속될까? 이런 빌어먹을!'
그러자 그에겐 문제가 이제 다른 측면에서 다가왔다.
'아니다. 문제는 맹장도 신장도 아니다. 산다는 것 그리고... 죽음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 생명은 늘 있어 왔다. 그러나 이제 사라지려 한다. 아니 이미 사라지고 있다. 나는 그것을 붙잡지 못한다. 그렇다. 어떻게 내 스스로를 속일 수 있단 말인가? 나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단지 오늘이냐 내일이냐 또는 내주냐 하는 시간 문제일 뿐이지 않은가. 어쩌면 지금 당장일지도 모른다. 전에는 희망이 있었다. 지금은 어두움 뿐이다. 전에는 내가 여기 있었으나 이제는 저기로 가고 있는 것이다. 거기는 어디일까?'
소름이 끼치며 호흡이 멎었다. 그는 단지 심장의 고동 소리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없어진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역시 죽는 것일까...? 아니다. 죽기는 싫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촛불을 끄려고 떨리는 손으로 더듬거리다가 촛대와 초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베개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결국은 다 마찬가지 아닌가? 죽음... 그렇지. 죽음이다. 그런데도 저들은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한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고, 가엾게 여기지도 않는다. 흥, 음악을 듣고 있군...'
그는 문을 통해 아득히 들려오는 사람들의 웅성대는 목소리와 리또루니에리 반주곡을 들었다. '저들은 내가 어찌 된들 상관없지. 하지만 저들도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다. 바보들 같으니! 내가 먼저 가고, 저희들은 나중에 간다는 차이일 뿐이다. 결국은 마찬가지야. 그런데도 저것들은 그저 즐길 뿐이야. 빌어먹을 것들!'
그는 마음에 원한이 차서 답답하고 견딜 수 없게 괴로워졌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누구나 다 이런 무서운 공포를 느껴야 하다니...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결국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그 무언가 이것과 다른 것이 있을 거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처음부터 차분히 다시 생각해 봐야지.'
그는 다시 생각에 골몰했다.
'그래, 이 병의 원인은 옆구리를 부딪친 거였어. 그땐 아무런 변화도 없었어. 어제나 오늘이나 나는 똑 같은 나일 뿐이었어. 처음엔 조금 욱신거리다가 차차 심해져서 의사를 찾게 됐고, 그때부터 기운이 쇠약해지고 우울해졌지. 그래서 또 의사에게 보이고... 이렇게 나는 점점 더 깊은 구렁텅이로 가까이 간 것이다. 몸은 자꾸 쇠약해지고 눈에 생기도 사라졌다. 바로 죽음이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창자가 어떠니 이 따위 공연한 생각만 하고 있다. 창자의 병을 고치려고 하지만 사실은 이것이 곧 죽음인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죽음이란 말인가?'
또다시 그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몸을 구부려 성냥을 찾으려고 했다. 뭔가 나무 기둥 같은 것이 팔에 걸렸다. 나무 기둥이 그의 팔을 누르자 그는 홧김에 이를 밀어서 쓰러뜨렸다. 그리고는 분통이 터져 벌렁 나자빠져 지금 당장 죽음이 찾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숨을 헐떡거렸다.
이때 손님들은 흩어지고 있었다. 아내는 손님들을 배웅하다가 뭔가 넘어지는 소리를 듣고 그의 방으로 들어왔다.
"아니, 여보 왜 그래요?"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뭘 좀 떨어뜨렸어."
그녀는 나가서 촛불을 들고 왔다. 그는 멀리서 달려온 사람처럼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 눈을 휩뜨고 그녀를 쳐다보고 있다.
"아! 왜 그러세요, 여보."
"아... 아냐, 아무 것도... 그저 뭘 좀 떨어뜨려서..."
무슨 말을 하랴? 말해 보았자 알아듣지도 못하는 걸.
프라스코비야 후요드로브나는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부지런히 초를 주워서 불을 당기고는 급한 걸음으로 나가 버렸다. 또 다른 여자 손님을 배웅해야 했기 때문에.
그녀가 다시 돌아왔을 때도 그는 그대로 천장을 쳐다보면서 벌렁 자빠져 있었다.
"아니, 왜 이러구 계세요? 갑자기 병이 더 심해요?"
"아아니..."
그녀는 알 수 없다는 듯 머리를 흔들며 곁에 와서 앉았다.
"이봐요, 여보, 저어... 다른 의사를 불러보시는 게 어때요?"
이 말은 요컨대 용한 의사를 불러 오자는, 돈은 아까울 게 없다는 뜻이다. 그는 독을 품고 미소를 띠면서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잠깐 앉아 있다가 옆으로 다가와서 그의 이마에 입술을 댔다.
그는 그녀가 자기 이마에 입맞추고 있는 동안 자기 영혼의 힘을 다 기울여서 그녀를 증오했다. 그녀를 밀어버리지 않기 위해 모든 의지력을 동원해 스스로를 억제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이젠 괜찮죠? 푹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