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절
찰스 디킨스 지음 / 푸른미디어(푸른산) / 199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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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디킨즈의 [어려운 시절]을 번역본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이 책은 디킨즈의 문학의 한 부분인 반공리주의적 경향을 명확히 보여주는 작품이며 [올리버 트위스트]나 [위대한 유산]에 가려진 그의 문학의 일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영국의 당시 유행하던 공리주의를 상대로 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헌사에 밝히듯, 이 책은 토마스 칼라일에게 바쳐진 책이다. 칼라일은 19세기 가장 대표적인 벤덤 철학의 비평가였고,  인간의 영적 가치를 강조했던 인물이다. 디킨즈 또한 이 책에서 분명 산업문명의 피해와 비인간화, 그리고 여러 부작용의 원인을 산업문명 자체의 몰가치뿐 아니라 이를 조장하는 잘못된 인생관, 즉 공리주의적 사고에서 본다.
 
그 중에서도 디킨즈가 생각하는 불행의 씨앗은 잘못된 교육에 있다. 공리주의가 가장 중요시 생각하는 인간개조의 원동력, 교육을 그 문제의 핵심에 두는 것이다. Fact에 기초한 귀납적 설명과 이해, 인간 가치에 대한 모든 기존 관념의 부정, 그래서 궁극적 가치를 갖는 존재가 아닌 수단의 하나로 동료인간을 바라보게 하는 것. 이것이 모두 공리주의적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사실을 제일 원리로 삼은 교육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영국 산업화의 부작용의 뿌리에 이를 합리화하는 잘못된 인생관이 놓여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거대한 기계에 끌려다니는 노동자의 삶을 더욱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취급하도록 만든다. 인간이 소중하지 않다면 목적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막을 힘도 없다. 과연 이것은 노동자만의 문제인가. 자본가, 정치가의 삶 또한 이 가치에 따르면 얼마나 스스로 비천해지는가를 디킨즈는 보인다. 드러난 모습만 보려는 철학이 인간 모두를 피폐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전락시키고만다는 것이다. 
 
21세기의 삶 역시 공리주의의 영향 아래에 놓여있다. 그것이 존 스튜어트밀에 의해 완화된 것이든, 혹 강화된 것이든, 새로운 fact에 대해 인간은 저항하지 못하고 끌려다닐 수 밖에 없다. 새롭게 밝혀진 복제기술, 인간이 만들어낸 가공할 정밀 살생 무기들. 인간의 문명은 더 이상 그것들을 거부할 아무런 근거를 갖지 못한다. 누가 기술발달을 거부하고 멈출 수 있을까.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인데...때로 피를 토하도록 절규하며 거부도 해 볼수도 있겠지. 그러나 무슨 소용인가. 리골렛토는 만토바공작을 절대 이기지 못한다. [어려운 시절]이라는 책이 묻혀가고 [~하는 몇 가지 방법]이 베스트셀러인 시대도 바뀌지 않듯이 우리는 공리주의를 벗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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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 민음사 세계시인선 38
E.디킨슨 지음, 강은교 옮김 / 민음사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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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에서 1886년까지 매사추세츠 암허스트에 살며 쓴 1700 여편의 원고를 서랍속에 감추고 소리없이 세상을 하직했던 시인이다. 첫 시집은 사후 4년만에, 그 후 간헐적으로 시집이 나오다 1894년에는 편지가, 1896년에는 세번째 시집이 출판되었다. 1914년 조카 마르타 디킨슨 비앙쉬가 [single hound]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다시 선을 보였고, 이 후 비앙쉬와 다른 옹호자들에 의해 점차 알려지게 되었다. 1955년, 시인의 사후 69년이 지나서, 그녀의 시집 3권은 Havard에서 전권 출판되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Emily Dickinson은 한 위대한 미국의 여류시인으로서 재조명을 받게 된다.
 
그녀의 시는 자연이 주제가 되는 시와 죽음이 주제인 시, 그리고 그녀 자신의 실연이 주제인 시로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의 자연에 대한 시 또한 대부분 인생을 비유하며 낙조와 그와 어울어진 모습은 죽음을 형상화하고 아름답게 보여준다. 이는 그녀의 자연에 대한 관심조차도 인간의 의미와 신적 주제에 물려 있음을 보여준다. 이 시집은 그녀의 시들 중 테드 휴즈가 뽑은 42편을 수록한 것이다. 앞의 10여편은 자연과 죽음, 중간의 15편 정도는 죽음과 영혼불멸, 뒤의 나머지는 삶의 모습으로서의 통찰력을 보여주는 시들로 구성되어있다.
 
칼라일이 이야기한 것처럼 진정한 문인은 그 시대의 예언자이며, 현상 이상의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정말 그렇다. 자연의 모습 하나하나에서 인생의 모습을 발견하며, 그 의미에 한줄기 빛을 비추어준다. 같이 실린 영어원문으로 읽는 재미만큼 시인 강은교 번역의 묘미도 있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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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역사
토머스 칼라일 지음, 박상익 옮김 / 소나무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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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칼라일이 런던에서 강연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그가 말하는 영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며 영혼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의 영웅 리스트는 특이함을 지닌다. 북유럽의 신으로 여겨진 오딘이라는 인물부터, 마호메트, 단테와 셰익스피어와 루터와 녹스, 그리고 영국의 문인들과 크롬웰 등이 포함되어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이고 그것을 발견하고 성실하게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살았다는데 있다. 그는 이 목록에 포함된 인물중 루소나 나폴레옹에게는 인색하다. 성실하며 남이 못보는 것을 보았으나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끝까지 진실한 사람들은 아니라는 칼라일의 판단 때문이다. 그는 물질과 야망, 표면적 역사와 인생관이 아닌 저너머의 세계에 눈을 고정하고 그 열정에 압도되어 산 사람들에게서 위대함 즉 영웅적 삶을 본다.
 
이 책의 원제 [Heroes, hero-worship and heroic in history]에 포함된 hero-worship영웅숭배란 이런 위대한 한 인간의 시각을 공유하며 그를 믿고 따르는 것이다. 그를 믿고 힘을 실어줌을 의미한다. 이 세상은 먼저 영적 본질을 본 영웅과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들에 의해 살만하고 의미있으며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영웅의 위대성이 신을 보며 그 앞에 놓인 인생의 의미성을 알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이라면, 그 진정함을 알아차린 사람은 그런 모습에 공감하고 그 방향을 따르게 된다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올바른 지도자가 섰을 때 백성도 올바른 삶을 볼 수 있게 된다. 결국 우리시대의 혼란과 비참의 원인은 신을 잃어버리고 인간의 겉껍질 뿐인 인생을 마치 그것이 모두인양 살아간데서 있다고 보는 것이며 인간역사 속의 빛이 비추이는 한 지도자의 깨달음의 순간에 바로 구원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인물중 마호멧, 루터, 녹스, 크롬웰은 나이 사십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들의 위대한 업적을 이루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에겐 이미 인생이 모두 궤도에 진입한 시기에 그들은 도리어 진정한 삶의 새로운 궤도를 밟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십까지 살아보니 앞으로 살 날도 이와 비슷할 것 같은데, 이렇게 허접하게 살다 죽을순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사십은 불혹, 옳은 뜻이 흔들리지 않게 되는 나이라 했다. 흔들리지 않는 뜻을 갖게 됐다면 그 다음은 진정 그렇게 사는 일이 남는다.  인생이 정말 육체밖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일리 없다는 걸 안다면, 이제는 더 높은 삶을 원하여 그 가운데 불타고, 그 기쁨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 나도 이제 곧 사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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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과 몽상 -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에드거 앨런 포 지음, 홍성영 옮김 / 하늘연못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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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는 과연 무엇 때문에 이 사람에게 열광했었던가? 흥미거리의 대중소설이나 써서 밥벌이를 하던 망나니가 아니었단 말인가? 과연 포가 시작한 일은 무엇인가? 그의 단편을 모아놓은 이 책은 그의 소설에 있어서의 특징과 그의 문학관을 엿보기에 충분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포 소설의 특징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그 길이의 짧음에 있다. 그는 시에서도 그렇지만 머리 속에 정리하지 않고 글을 써대는 사람만이 길게 글을 쓴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의 글이 짧은 또 다른 이유는 그가 한편의 소설에서 얻고자한 것은 오직 하나의 분위기 혹은 하나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공포이든 두려운 호기심이든 그 한가지를 얻기 위해선, 나머지 잡다한 것들이 끼어들면 들수록 그 목적인 감정은 희석된다. 그에게 특징적이고 탁월한 분위기와 심리의 묘사도 오직 단일 효과의 획득에 모아진다. 짧게 모두 표현하면서도 미적 효과의 전달에 성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런 그의 소설관은 자연히 대중을 끌어들이는데 더욱 큰 힘을 갖는다. 저작의 의도부터, 치밀한 상황설정과 앞뒤의 아귀를 맞추는 모든 노력이 "moved"에 있는데 moved 안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읽고나면 섬뜩함이든 안타까움이든 황당스러움이든 작가가 원한 방향으로 감정의 움직임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짧은 글 속에 독자의 흥미와 집중을 놓치지 않는 그의 글쓰기의 성공인 것이다.
 
이 책을 보며 포의 소설이 반드시 그의 시와 함께 읽혀야 한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보들레르는 당시 낭만주의에서 볼 수 없는 치밀한 이성과 계산을 포의 시에서 본다고 했다. 또한 보들레르 자신과 너무나 닮은 초월의 추구를 발견하고 기뻐한다. 포는 분명 의도된 작가이고 그 의도는 아름다움에 대한 절대적 추구가 구원의 가능성을 갖는다는 [악의 꽃]과도 통한다. 죄의식에 대한 집요한 추적과,  인간이 무엇인지 더 철저히 알고 이 어두운 부분까지를 결합시킴으로서 인간의 통합이라는 구원을 찾는 것이다. 그의 소설 또한 이런 기획과 절망적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에서 더 잘 이해됨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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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광인일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5
루쉰 지음, 정석원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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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아Q는 그들 모두를 함축한다. 우리의 응삼이인 셈이다. 아(阿)는 친근감을 주기 위한 접두어이고, Q는 청나라말 중국인들의 변발한 머리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란다. 그는 어떤 누가 아니고 대표인물인 셈이다. 루쉰 당시의 중국인 모두이다. 루쉰은 [나는 아Q 본인은 아니다]라고 책 서두에 밝히고 있지만, 누가 아Q라고 했나. 그는 서둘러 나는 아니라고 한다. 입가를 훔치며 내가 먹은 것 아니라고 말하는 아이처럼...자신안의 아Q를 그도 넌즈시 비치는 것은 아닌지... 비열하고 천박하며 상스럽고 믿을 수 없는 주인공은  중국인의 한 모습이고, 중국인인 이상 루쉰 자신이기도 하다.

아Q는 이야기 내내 공공연한 멸시와 비웃음의 대상이다. 당연히 독자에게도 이런 감정을 일으키려 작가는 노력한다. 유대인들은 염소에게 모든 죄를 전가시키고, 들짐승들이 기다리는 허허벌판으로 내보내는 것을 scapegoat(희생양)이라 불렀다. 그들이 모두 내면에 가지고 있는 악, 그 어둠을 상징하는 짐승인 이 염소, 그 머리에 손을 얹고 죄를 전가한다. 빈들로 울음소리를 내며 사라지는 이 짐승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악을 보상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아큐는 루쉰이 설정한 중국인의 스케이프고트이다. 그들이 싫어하고 죽이고 싶은 중국인 자신이다. 루쉰은 이것을 벗고싶다. 제발 내 겨레에게서 이런 모습이 사라지길 원한다. 

아큐는 결국 중국인 스스로 돌아보는 자기의 아픈 구석이다. 이 글을 읽고 우리가 중국인의 성격이, 민족성이 어쩌고 말할 수 없는 까닭은, 루쉰의 이 글을 쓰던 심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는 아픔으로 자기와 중국인의 치부를 보여준다. 사랑하는 겨레의 부끄러운 모습. 내 민족을 향한 그의 사랑과  안타까움이 나로 감히 중국인을 폄하케 하지 못한다. 드러내 보이고 고치길 원하는 한 사람이 있는 한 그들은 나아질 수 있다. 신해혁명의 와중에 보여준 그들 자신의 천박함과 잔인성. 다른사람들이 혁명을 두려워하는 꼴을 보고 혁명의 동조자가 되거나, 그 혁명군에게 중요한 인물인양 처형당하는 걸 자기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방법으로 여기는 아Q들. 루쉰은 그들의 모습을 비웃는 지성인으로 머물러 있던 사람이 아니라 가슴저리게 자기 안에서 그 모습을 끄집어내는 사람이었다. 

내 속의 한국적 아Q. 서두르고 앞지르며 무례함을 개의치 않는 것. 쉽게 화내며 욕이 근질거리기 시작하는 것. 같은 편이 아니면 잔인해지는 습성들. 끈이 닿으면 관대해지는 비열함. 그까이껏 대충 하는 것. 손에 검정 묻히며 일하는데 익숙해져 가는 것. 원래 그런 사람들은 아니었다.  우리 속 안에는 아름답고 쾌활하며 다정한 사람들이 있는데... 하지만 이제는 거리에 나서면 거친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건 당연한 일이 되어간다. 가슴 저림을 느끼며 바뀌어 갈 수 있을까? 언젠가 수치스럽지 않은 내가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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