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거이시선 - 당대편 110 중국시인총서(문이재) 110
김경동 엮음 / 문이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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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백거이의 평생의 시 중 일부인 38수를 시대순으로 발췌하여 모은 시집이다. 그의 풍류적 한가한 마음과 한편으로 백성을 근심하는 관리로서의 따뜻함이 모두 골고루 녹아있어 백거이의 사람됨과 그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많은 시들이 늦은 봄의 정취와 꽃들이 떨어짐을 아쉬어하는 마음들이 멋스럽게 드러나 있어 이 계절에 읽으며 절로 마음이 흥겹고 애틋해진다. 번역과 더불어 한시 원문과 짧은 주해도 있어, 한문으로 시의 원래 맛을 느끼는 것도 더욱 즐겁다. 이토록 풍부한 삶의 정취와 생각들의 보고를 향유할 수 있음은 얼마나 큰 우리만의 또다른 혜택인지 
 
送春

三月三十日  春歸日復暮
惆悵問春風  明朝應不住
送春曲江上  眷眷東西顧
但見撲水花  紛紛不知數
人生似行客  兩足無停步
日日進前程  前程幾多路
兵刀與水火  盡可違之去
唯有老到來  人間無避處
感時良爲已  獨倚池南樹
今日送春心  心如別親故


3월 30일,
이 봄도 가고
하루해도 또 저물어 간다.
너무나 서글퍼 봄바람에게 물었다.
"내일 아침엔 분명 떠나가고 없겠지?"
 
곡강(曲江) 가에서
이 봄을 떠나보내며,
아쉬운 마음 달랠 길 없어
이리저리 둘러본다.
보이는 건 물 위에 떨어지는 꽃잎
셀 수도 없이 어지럽게 흩날린다.
 
인생이란 나그네와 같은 것
두 발을 잠시 멈출 겨를도 없이,
날마다 앞을 향해 나아가건만
앞길은 또 얼마나 될까?
 
우리 인생에서 전쟁과 재난은
모두 다 피해 갈 수 있건만,
오로지 다가오는 늙음만은
인간 세상에 피할 곳이 없구나.
 
지나가는 봄날에 대한 감회,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체념하며
홀로 곡강 남쪽 나무에 기대어 선다.
오늘 이 봄을 떠나보내는 마음,
정든 이와 헤어지는 마음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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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로 버지니아 울프 전집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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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잃는 것이 아이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안다. 어머니와 떨어져 살던 12살 때 나의 사진은 초점잃은 얼굴의 깊은 박탈감을 아직도 잘 보여준다. 단지 잠깐 떨어진 것도 그러한데 사별은 얼마나 큰 아픔으로 아이에게 남는가? 이 소설은 버지니아 자신의 삶의 애환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프루스트, 조이스, 포크너와 맥이 닿는 [예술가로서의 삶에 대한 고백적 성찰]이다. 작가자신도 밝히듯 이 소설은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고스란히 자신의 아버지를 담아낸 소설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죽고 억압적 아버지 아래서 자라야 했던 그녀가 느낀 아버지에 대한 애증의 양가감정. 그녀에게 아버지란 단지 한 인간으로 그 자신의 완성을 꿈꾸던 학자였다. 한 인간으로 충실히 산다는 것과 부모로서 충실하다는 것은 다르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인생을 걸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들 삶의 가장 단단하고 따뜻한 기반 없이 자라야만 했다.
 
아버지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그도 삶의 기반인 아내를 잃고 무의미한 삶을 살아간다. 인생은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발견할 때까지. 멀리 보이는 등대처럼 무언가 대단한듯 했던 학문과 예술, 자연과 행복은 결국 초라한 삶살이에 지나지 않았다. 프루스트가 말했듯 멀리서 보면 대단해 보이던 사람도 막상 가까이에서 겪으면 일상의 사람이 되고말듯, 의미라는 것, 이상이라는, 예술의 완성에 대한 열망은 찬란한 빛으로 번쩍였으나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말한다. [우리는 각자 홀로 죽어가노라] 의미란 없고 우리는 혼자일 뿐이고 죽어갈 것이다. [우리는 질풍을 무릅쓰고 달린다. 우리는 침몰할 것이 분명하다] 진력하나 의미란 없고 끝은 소멸이다.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의 미움도 분노도 이상도 애정도… [램지씨는 상륙했다. 이제는 끝났다…꾸러미는 등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줄 것이야.] 아버지와 두 자녀가 상륙한 등대에는 허름한고 누추한 등대와 등대지기의 초라한 모습이 있을 뿐이다.
 
버지니아는 인생이란 것, 예술이란 것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는다.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좀더 거센 파도 밑에서 그보다 더 깊은 심연에 가라앉노라] 호주머니에 돌을 채우고 강에 빠져죽은 그녀의 마지막처럼, 오필리아에게서 내려오는 영국인의 水葬에의 동경만이 그녀에게 남았다. [비가 올거야 너희는 등대에 갈 수 없다.] 반대를 무릅쓰고 그것을 동경할만한 가치가 과연 우리가 우발적으로 의미를 두는 그것들에 있기나한건가. 왜 평생 그녀는 고통스러워했고, 결국 지쳐 어린시절 충격에서 처음 나타나기 시작한 정신질환의 굴레를 메고 우울한 삶을 마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P.S 이 독자도 한정되어있는, 난해하기 그지 없는 텍스트를 번역하기로 마음먹은 역자와 출판사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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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유 2006-04-26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시절엔가 에리히 아우얼바흐가 쓴 [미메시스]를 읽다가 울프의 [등대로]를 처음 만났었어요. 아우얼바흐는 사건(과 현재) 사이사이에 끼어드는 의식의 흐름을 좇는 울프의 서술 기법을 꼼꼼히 분석해냈는데, 그나 울프나 당시의 제게는 놀라울 수밖에 없었지요. 그 충격은 여전합니다. 소설과 서술의 세계가 4차원으로 직접 육박해들어가던 것...울프에 대한 리뷰가 넘 반가워 몇 자 붙입니다요^^
 
신곡 -하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1
단테 지음, 최현 옮김 / 범우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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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의 하편인 [천국편]은 상편의 [지옥편]의 원한과 [연옥편]의 반성에 이어, 이 우주적 조감도를 마무리해내며 동시에 얼마남지 않은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단테의 겸허한 마음이 내비친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억울함과 복수에 목소리 높이지 않고 단지 보편적 교회의 철학관에 의탁한다. 그는 이 글을 쓸 즈음인 말년 베로나와 라벤나에서 스칼라家나 노벨로의 보호를 받으며 살았던 처지였다남에게 의지하고 살아야하는 나이듦, 인간조건인 죽음 앞에 선 원래의 모습...차례대로 펼쳐지는 천국의 아홉 하늘을 단테는 의로운 황제, 신학자들, 가난의 성인들,수도사들에 대한 흠모로 바친다. 그가 즐겨 읽었다는 [철학의 위안]중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여신과의 대화를 연상시키는 스콜라 철학적 대화편이 등장하는 것도 그의 이러한 얼마남지 않은 삶을 느끼는 마음낮아짐이 있다성 베르나르에 의한 그의 삶의 완성은 이와 같은 온전한 [귀의歸依]이고 혈기의 잠잠함이며 복수의 칼날을 신에게 내어놓음이다 . 

괴테는 [신곡] [지옥편은 처참하고, 연옥편은 애매하며,천국편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고 폄하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삶은 한편으론 어찌 그리 닮았을까하는 느낌을 준다. 피렌체의 위대한 시인에서, 시의원을 거쳐 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단테. 그는 배신과 모함으로 인해 유랑으로 삶을 마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유럽에 명성을 떨친 괴테 역시 정치의 길에 들어서게 되고 그의 삶을 고사시키는 추밀관 자리를 박차고 이탈리아로 도주한다단테의 유랑은 [신곡]괴테의 도피는 [파우스트]를 낳았다그들에게 예술의 길은 구원의 상징인 베아트리체와  그레첸처럼  다른 모든 걸 버리고 얻을만한 그들 삶의 이유였고 결국 올바른 길이었다.

괴테가 단테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했을까이성의 힘과 무한한 발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18세기말의 그에게단테는 구시대적 [유럽의식]의 잔재에 불과한 인물이었을까? 괴테가 땅을 개간하고 거기에 후손들이 살게 될 때를 그리며 살았다면 단테는 이 땅의 삶이 고스란히 보존되어질 또 다른 사후의 세계를 그리며 살았다. 똑같은 고통과 시대의 옳음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전혀 다른 두 결론이다. 그래서 이들 고전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이 두가지 목소리로, 삶의 의미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끝없이 되묻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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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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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의 자서전적 내용을 담은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의 예술관과 이런 예술을 추구하게 된 성장배경 및 그 자신의 타고난 소질을 찾아감에 그 초점을 맞춘다. 아일랜드의 영국에 대한 정치,문화,언어적 피지배 상황과 가톨릭에 바탕을 둔 로마에 대한 종교적,교육적,문화적 종속, 그리고 이런 모든 지배상황의 살아있는 실물인 아버지,어머니,선생님들의 영향이 그를 고스라니 만들어냈음을 그는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벗어나기 원한다. 또한 그 자신의 안에 있음을 발견하기 시작한 한 [거룩한 부름], 정적인 숭고한 예술을 추구하길 원한다.
 
하지만 이 길 또한 철저히 그의 성장배경에서 태생한 것임을 조이스는 숨기지 않는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부르심을 좇아가는 삶]이며, 성모 마리아의 죄인을 용납하시는 한계내에서의 추구임에 그러하다. 그는 결국 아일랜드와 가톨릭과 가정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런 발전을 위한 소명의 추구는 [율리시즈]에서 계속되며 반복되며 앞으로 나아가나  끝을 만나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그 자신의 삶을 소재로 형상화해낸 [인간의 의미]라는 주제의 1부에 해당하는 이 책은 정확히 그의 추구의 결말이 그의 성장배경을 벗어날 수 없을 것임을 이미 암시하고 있다. 결국 아일랜드를 떠나는 그의 발은 떠났던 곳에 돌아오고 자아라는 것, 父性이라는 것의 한 실마리를 본 것에 만족할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한껏 날아오를 능력을 부여받은 위대한 장인의 소임이다.
 
언젠가 성취하게 될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 것은 살아갈 유일한 이유가 된다. 그런 것이 없다고 믿는다면 젊음은 고달프다. 늙어서 비로소 그런 것이 없다고 여긴다면 죽기가 두렵진 않을꺼다. [결국 신을 발견치 못한다면 행실과 말로 죽음을 불러내고 죽음을 친구로 여겨 그것을 열망하며 죽음과 계약을 맺으리라(지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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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6-04-11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를 님 마지막 인용구는 좋네요. 글 가져가도 돼죠?^^;

카를 2006-04-12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이죠
 
유토피아 서해클래식 4
토머스 모어 지음, 나종일 옮김 / 서해문집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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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년 포르투갈 스페인의 패권과 새로운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득세의 와중에 영국은 본격적으로 나라의 기틀을 잡아가고 있었다. 16세기초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제4차 항해후 [신세계]를 발표하였고, 여러나라들은 비등한 힘을 가지고 서로 동맹국을 바꾸어가며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후스에 의해 시작된 새로운 종교의 기운은 이 책의 다음해인 1517년에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 운동으로 나타나게 되며, 왕권에 대한 전략적 사고는 이미 1513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으로 사람들에게 더 나은 것을 위해 옛것을 뒤엎을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이런 부글거리는 시대에, 토마스 모어는 플랑드르에 사절로 파견되어가 있던 와중에 새로운 세계에 대한 우화와 같은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그가 그린 유토피아는, 당시의 영국처럼 필요없는 유한 계급과 독점적 양모산업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범죄자로 나서야하는 그런 국가가 아닌, 정치적 이상국가이다. 모양은 영국과 흡사하나 사유재산이 없고 놀고먹는 사람이 없는 이 나라에선 누구나 여가를 즐기며 사치와 호사에 타인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그들의 가치는 진정 정신과 영적 세계에 있으며, 외교는 어리석은 주위국가로부터의 전쟁을 막고자 하는 노력일뿐 스스로를 다른 국가에 의존치 않는 나라이다. 박노자가 언뜻 떠오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모어의 세계는 우선 철저히 물질적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영국에 비일비재한 굶주림과 범죄, 비인간적인 의식주에 내몰린 빈민들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방향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삶의 형태를 떠받치는 힘이 그리고 이런 공산사회가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는 제도로 자리 잡은 이유가 그 주민의 영적 세계관에 있음을 놓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세상의 것에 그렇게 안달하지 않음으로해서 공산사회를 즐겁게 받아들인다. 그들은 강요되지 않으며 비교에 농락당하지 않는다. 과연 이 책이 500년전의 책인가? 우리는 아직도 이 일들을 스스로 겪으면서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 
 
나종일 번역의 이 책은 화보로 가득하고 책 표지가 마치 청소년용처럼 예쁘게 꾸며져 있음에도, 번역에도 충실하다. 번역자의 다른 책인 윌러스틴의 [자본주의 문명]도 이런 다채로운 화보가 곁들여지면 혹 청소년들도 관심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책읽기에 좋은 시절이다. 마음에 여유만 없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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