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꿈 / 베니스의 상인 / 말괄량이 길들이기/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줄리어스 시저/리처드3세 동서문화사 월드북 6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상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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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다양한 재주를 엿볼 수 있는 연애담이다. 희곡으로서 만들어낼수 있는 최대한의 재미를 갖춘 가벼운 로맨스 드라마다. 그가 위대한 것은 이것을 그리스희곡의 원형에서 끌어내어 현대에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는 인간 본성에 와닿는 전형을 보여주었다는 점일거다.

언제나 지속되는 두 연인의 사랑과 부모의 반대 [옛 이야기책이나 역사책을 읽어봐도 진정한 사랑이 순순히 진행된 일은 없더군], 도피를 위한 계획과 엎치락 뒤치락거리는 소동들. 유쾌한 엔딩. 너무나 식상한 이야기거리가 아닌가? 하지만 그는 여기에 요정들의 입다툼과 동네 일꾼들의 연극연습, 성요한 축제 전날의 한여름 밤에서 느끼는 관중의 무드를 엮어내 유쾌하고도 즐거운 볼거리로 바꾸어놓는다. 400여년전의 작품이지만 여전히 오늘 우리의 작가들과 연출가들이 머리 속에 전형으로 삼는 플롯과 주변배치와 분위기 만들기를 보여준다. 이것은 그래서 오늘도 성공하는 코미디 멜로영화들이 갖춘 미덕이기도 하다.

희극의 재미요소인 갈등과 해소의 수법은 때론 너무 뻔한 결말로 지루해지거나, 갈등의 증폭으로 무거워질 위험을 갖는다. 그는 비극과 다름없는 갈등요소 옆(로미오와 줄리엣)에 우스꽝스러운 주변인물과 말도 안되는 일로 싸우는 부갈등을 배치하여 주갈등조차 어두운 색채가 아닌 가벼운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재주를 부린다. [삼순이]와 [환상의 커플]의 그 낯선 재미를 다시 보여줄 새 드라마가 기다려지는 한 여름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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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어던 -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중단하라 서해클래식 15
토마스 홉스 지음, 신재일 옮김 / 서해문집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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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의 시대의 영국은 바야흐로 유럽 패권의 중심에 서 있었다. 에스파냐의 패권시대가 지나고 네덜란드와 프랑스와 함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은 하지만 아직 종교의 갈등과 이로 인한 국가분열 국가라는 내환이 더 큰 문제로 등장한다. 홉스는 이런 국가정체의 혼란기에 국가의 의미를 조명하고, 그 기반이 될 수 있는 계약적 국가관을 제시하여 영국을 통합하고자 한다.

그에게 있어 이상적 국가는 군주체제의 국가이다. 여러 차례의 귀족중심적 혁명으로 인한 유혈 사태를 경험한 그에게 이런 선택은 어쩔 수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현재적 국가관으로 본다면 거리가 있는 것이다. 어떤 국가관이 과연 옳으냐의 문제보다 이 책의 가치는  그래서 국가관의 탄생시기에 있어서 어떤 생득적 인간권리들이 국가 아래에서 양보 혹은 억압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보여주는데 있다.

지난 2년 미국생활을 하며 느낀 것은 미국을 움직이는 기본적인 법개념과 통치개념, 경찰국가적 형태가 계약국가에 의한 국민의 권리이양의 개념위에 서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계약론적 국가관은 사실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식민지적 지배를 옹호하며, 이로 인해 종이 된 자들의 [백년의 고독]은 설 자리가 없는  개념이다. 일본 또한 이러한 개념하에 그들의 식민지를 지배했고, 당시 종살이 했었던 나라에서는 이러한 계약개념의 국가관을 처음부터 [억압]으로 경험하였기에 쉽사리 계약적 국가관을 받아들이기에는 심리적 장벽이 있는 것이다. 

남미와 우리나라 국민의 계약국가 저항적 국민권리관이란 그래서 단순히 근대국가 이행의 시간적 차이가 아닌 역사적 질곡으로 인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를 우리의 안전을 위한 동의가 아닌 억압과 수탈의 주체로 보는 관점이 정치인과 국민 사이에 남아있는 한 우리의 민주주의적 국가발전은 큰 걸림돌 앞에 있는 셈이다. 

홉스는 3,4부에서 교회의 국가지배에서 유럽사회의 정치적 희생과 살육이 시작되었으며 이를 바로잡는 방법으로서 교회의 정치적 분리와 국가권력의 인정이 성경적 유추임을 제시한다. 혹 이러한 과거 가톨릭적 국가관이나 사제관이 개신교 안에도 그 뿌리를 내려 목회자의 지배권이나 기독교인의 정치적 권한행사라는 행동을 유발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신교는 여전히 구교의 영향 중 가장 벗어나려 한 것에 여전히 묶여있는 셈이다. 신앙은 정치를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권력을 통해서는 아니다. 이것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여전히 유효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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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유형지에서 (외)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9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박환덕 옮김 / 범우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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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개와 같이 잠을 자면 벼룩이 옮는다] 유대인 스승 뢰비에게 영향을 받기 시작한 28살의 카프카에게 아버지가 주는 경고다. 유대인인 아버지가 유대인 아들에게, 개라는 유대인에 대한 독일인의 모욕적 호칭으로, 그에게 유대의 정신이라는 벼룩이 옮겨왔다고 이야기한다. 유대인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아버지는 아들이 이제 유대인이 아닌 존재로 뿌리내려 주길 원했다. 유대의 정신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 카프카는 이제 스스로 커다란 벼룩, 한 마리 벌레가 되어간다.  정작 유대인의 피를 물려준 아버지의 이 선언은 이작크 뢰비와의 만남을 통해 민족적 정체성을 발견하여 가는 그를 스스로 벌레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그레고르이자 카프카인 그는 어느날 아침, 벌레임이 드러났다. 그의 유대인으로의 주장, 혹은 그 주장으로 말미암은 변신은 그에게 죽음 혹은 격리를 뜻한다. 그는 소통을 꿈꾸며, 그의 존재를 그대로 가진 채로 그의 가족과 직업, 이웃과의 관계가 지속되길 원한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이미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해답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이고 또 [기대 당하고 있는 것]이다. 벌레인 식구를 가졌다는 고통을 더 이상 주지 않기 위해 가족의 눈앞에서 사라져줌 혹은 죽어줌. 이야기는 예기된 결론에 다다르고, 다시 가족에겐 평화가 찾아온다.

어느날 모임에서 미국에 산지 이제 20년을 넘어가는 어떤 분에게 들은 얘기다. 이민자의 자녀들이 느끼는 혼란. 아이들이 5, 6학년이 되며 불현듯 스스로가 한국인임을 발견하게 될 때, 혹은 친한 아이들이 피부색, 인종에 대한 사회적 압력으로 멀어져 갈 때, 아이들은 자신이 한국인인걸 너무 싫어하게 되는 때가 있다고 한다. 주위 사람과 똑같은 나였는 줄 알았는데, 다른 종족의 일원임을 알게 될때, 아이들이 느끼는 당연한 반응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더 크면 조금씩 스스로 자신을 받아들이고 상처도 아물며 조금은 위축되었지만 다시 부모와의 관계도 회복된다고 한다.

어쩌면 이 일은 굳이 이방인으로 사는 이민자 혹은 유대인만의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문득 자신의 본래 모습을 소스라치듯 놀라며 발견하는 우리 각자의 모습일 수도 있다. 아름다운 삶, 깨끗한 삶, 지리멸렬한 구세대와 다른 삶을 꿈꾸던 자신에게서 갑자기 버러지와 같은 삶을 사는 자신을 본다. 나일리가 없는 모습의 나를 주위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다! 벌레. 악다구니가 되어가는 무명인, 밥벌이 존재. 그런 아저씨. 그런 아줌마. 나만 나를 더 나은 존재로 생각했던 것인가?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인지도 모른다. 주홍글씨를 각자의 가슴에 새긴, 자신만 모를 뿐이다. 점점 남을 욕할 수 없어지고, 스스로에게 기대할 것이 없어지는걸 깨닫는다. 혼란을 이겨낸 아이들처럼 언젠가는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나며 웃게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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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동양고전 슬기바다 11
법구 엮음, 한명숙 옮김 / 홍익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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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부처의 말씀을 묶은 책의 하나이며, 그 형식에 있어 시적 운율을 지닌 게송이다. 구원이 마음의 선악에 달렸다는 쌍요품에서, 진정한 브라만이란 인연을 끊어내고 삶을 벗어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범지품까지 26품으로 구성된 이 책은 초기불교의 기본적 생각 즉 소승적인 형태의 불교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우주의 질서에 합류하여 윤회의 고리를 끊고 신의 품에 드는 방법으로 현생에서의 올바른 업을 부처는 가르친다. 고통의 세상 가운데 아직 닿지 못한 내 자아 안의 신의 모습을 찾아 혈연과 情의 일체의 얽어매는 것을 풀어버리고 우주의 중심 안으로 소멸하는 자아를 꿈꾸는 것이다. 
 
이 책은 현재 인류가 가진 인간과 신에 대한 태도의 한 편을 잘 설명해 준다. 하나는 신이 인간의  외적 조건을 무시한 채 말할 수 없이 사랑하여 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로 느껴지듯 고통 뿐인 이 시험의 세계에서 인간은 신을 향해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신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다른 세계를 살게 하고 인간에 대한 태도도 바꾼다. 신이 사랑하는 가장 궁극적 존재가 인간이라면, 우리는 현재를 긍정하고 나의 오류와 약점이 언젠간 사라질 것에 대한 긍정적 희망을 갖고 살게 된다. 달리 만약 인간이 우주의 원리로부터 파생되어 나와 일시적 과오의 응어리로서 현재의 인간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면, 우리는 현재를 부정하고 나의 존재를 부정하며 신의 성품의 실마리를 찾아 지난한 싸움을 시작하여야 한다.

이토록  다른 두 세계는 우리가 [이 고통은 무엇으로 인한 것인가?]라고 물을 때마다 우리 앞에 언제나 등장하는 두 실마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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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 핀의 모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
마크 트웨인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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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 핀을 읽게 될지는 몰랐다. 나 역시 어린이 소설로만 여긴 까닭이었다. 마크 트웨인은 이 책을 어린이를 위해 쓰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이 내용은 거의 어린아이에겐 부담스런 쌍소리와 사기기술, 아동학대,어른에 대한 조롱들,극악무도한 장난과 기만들로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곳곳에 숨겨진 넌센스들과 어린이적 상상력의 극단까지 몰고간 비참한 결론들.  혼자 낄낄거리며 읽어간 책이다. 

저작초기의 장난스런 글에 대한 혹평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결국 중요한 저작이 된 이유를 알 만하다. 1884년 당시 미국에서의 외면적 사회의 번지르함에도 불구하고 속 깊은 곳에 어두운 모습, 노예제를 유지하던 기만을 지적하고 그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흔히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의심해 보라는 목소리다. 우리는  한 시대 안에 살며 모든 걸 너무 당연히 받아들인다. 당시 노예제도를 지속하던 그들이 특별이 더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다. 우리의 고정관념이란 것이 삐딱하게 한번 생각지 않고 계속 살면 자칫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일을 사회전체가 용인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경험이다. 우리들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믿을 때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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