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민음사 세계시인선 11
예이츠 지음 / 민음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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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예이츠의 나이 24살인 1889년시집 [Crossways]에서부터 그의 나이 73세때 마지막으로 나온 시집[Last Poems]에 이르기까지 그의 생애 전체를 포괄하여 발췌한 30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시의 배열은 시대순이어서 예이츠의 시의 변화를 한눈에 살필 수 있지만 그의 시세계를 깊이 이해하기에는 좀 적은 편수가 아닐 수 없다. 그의 시창작 시기 중 후기로 꼽히는  [The Wild Swans at Coole] 이후에도 200여편의 시를 썼으니까...
 
 예이츠의 시는 그에게서만의 독특한 느낌을 준다. [이니스프리의 호도]는 소로우의 월든을 연상시키지만 아일랜드적 분위기가 강한, 자연주의적 민족적 색채를 갖는다.  후기의 시는 단순해지고 탈개성적이 되어,  마치 블레이크와  프로이트가 섞인 듯하다. 변증적 역사관과 신비주의, 육체와 무의식에 대한 관심은 어느 다른 시에서도 느끼기 힘든 그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다음 시대gyre는 예이츠의 바람대로 接神을 통해 찾아올까? 아니면 그가 예언한 짜라투스트라의 재림이란 결국 [마술피리]처럼 한바탕 즐거운 깃털로 장식한 상상의 나래일 뿐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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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 민음사 세계시인선 9
릴케 지음, 김주연 옮김 / 민음사 / 197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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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릴케의 두 시집 [조형시집1902], [신시집1907]을 발췌하여 엮은 것이다. 릴케의 시인으로서의 생애 중 2,3기에 속하는 이 시들은 그의 생애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다. 릴케의 생애 중 제1기인 고향 프라하에서 그는 [인생과 소곡] [가신봉폐]로 시인의 삶을  시작했다.2기는 러시아 기행과 톨스토이와의 만남을 통해 종교에 눈뜨는 기간이었다. [구시집] [조형시집] [기도시집]이 이 때의 결과물이다.파리에서의 3기는 경제적 이유로 아내 클라라와 딸 룻과 떨어져 고독하게 보낸 시절이다. 당시 그는 인간 실존의 모습에 집중하고 죽음과 삶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는 시를 썼다.4기는 두이노성과 뮈조트에서 보낸 시절로, [두이노의 비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를 완성한다.
 

이 시집은 2기와 3기에 걸친 [말테의 수기] 이전의 릴케의 모습을 잘 보여주며, 비록 그가 목격하기는 하였으나 붙잡지는 못한 삶의 의미와 신적 존재에 대한 복합적 감정을 드러낸다. 너무도 세기말적인 당시의 유럽의 감정을 잘 반영하면서도, 릴케만의 섬세함과 어두운 진실에 대한 참담한 감정을 잘 드러내는 시집이다. 시인이란 결국 삶의 진정한 향기가 나는 곳의 냄새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집요한 눈길의 [검은 고양이]와도 같은 존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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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2005-11-01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도 품절?..! 이러다...품절, 절판 전문 서평자가 되시겠어요.
오랜 만에 올라온 서평 잘 읽었습니다. 요즘 릴케와 로댕을 살피고 있었는데..
그래서 더 반가웠어요.
열심히 고전을 정복하시길...
고전 완전 정복의 그 날을 향하여...!

카를 2005-11-03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어느덧 20세기초까지 왔군요
우리가 갖는 사고의 협소함을 더 절실하게 느끼고, 믿음의 중요성에 더 놀라게 됩니다
 
외투.코.초상화 범우 사르비아 총서 603
고골리 지음, 김영국 옮김 / 범우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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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
 
고골리의 [외투]는 19세기 중엽 러시아가 배경이다. 말단 관리인 아카키는 어느날 어렵사리 마련한 새 외투 한벌로 대단한 사람이 된 기분에 들떴었다. 주위의 부러워하는 눈빛과 다시 봐야겠다는 반응에 행복했던 그는 길에서 강도를 만나 외투를 빼앗기고 좌절한다. 되찾고자 백방 노력하다 되찾아줄 힘이 있는 사람을 만나 부탁해보나 결국 거절 당한뒤 상심하여 죽어버리고 만다. 인생의 의미를 같이 잃어버린 것이다.
 
이제 19세기, 산업혁명후 인간의 삶이 소유물에 의해 결정되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물질이 인간에게 끼치는 놀랄만한 혜택에 기뻐하던 사람들은 점차 물질 자체에 휩쓸리는 존재가 되어간다.  이것은 읽는 사람에게는 우스꽝스런 놀음이고 재미있는 이야기꺼리지만, 이것이 인간이 당한 현실인걸. 이제 옷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건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허름한 옷의 고객은, 혹은 동료들은 차별 받는 세상이 되었다. 사회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고 우대하도록 이미 포맷되어져 있다. 우리는 매일 다른 사람의 옷, 머리 스타일과 장신구에 주목하도록 짜여진 틀안에 이미 들어와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그의 시계는, 핸드폰은, 차는 무엇인가?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고 자신한다. 우리는 사람 그 자신에게는 점점 관심이 없어진다. 인간은 어디에 있을까? 고귀한 성품, 뜨거운 사랑, 부드러운 마음이 들어있는 인간. 나도 너도 서로에게 인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존경받기 위해 갖추어져야 할 것은  성품이 아니라 명품이라고 진심으로 믿는다. 행복의 기준도 물론 [소유]이다. 더욱이 그런 소유를 사람들이 부러워해 주어야 인간은 비로소 행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이면 외투는 이미 아카키를 집어삼킬 지경에 이른 셈이다.
 
[외투]는 인간의 원래 의미, 행위의 원래 의미를 잃게 만든다. 인간의 희망은 무엇을 갖게 되느냐에 있고, 즐거움은 얼마나 비싼 미술, 음악, 요리를 소비하느냐에 있다. 학문도 상품가치로서 평가된다.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지식인가. 얼마에 팔 수 있는 특허인가. 21세기에 무한히 많은 돈을 벌어들일거라 큰 소리치는 학문만이 정부의 지원과 세인의 관심과 자기 명예를 벌어들인다. 몇년을 묵혀두면 얼마가 되는 그림, 악기, 와인인가. 인간은 왜 사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으면서도, 자기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는데 저항하지 않는다. 돈으로 환산된다면 그 가치는 인간의 가치는 아니다. 이런 짓거리가 우스꽝스럽게 비쳤던 고골리의 19세기는 차라리 얼마나 행복한가.
 
아카키는 외투만큼의 가치를 가진 존재로 그려진다. 그가 진정 외투와 등가치인 것은 그가 죽어서도 혼백으로도 외투를 찾아다닐 때 더 극적으로 나타난다. 나의 등가치는 무엇인가? 내가 죽어서도 찾아다닐 나의 가치는 무엇인가? 돈 혹은 명예인가? 자긍심 혹은 칭찬인가?  내안의 성품 혹은 깨끗하여진 영혼인가? 아니면 아직 다 닮을 수는 없었지만 언젠가 닮고 싶은,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형상인가? 
 
P.S 주인공의 이름 아카키는 러시아인이 쓰는 이름이 아니다. 이 작품 속에만 등장하는, 작가의 의도가 들어있는 복선이다. 그리스 어원은 [A-Kaki] 흠과 티가 없는 인간 이다, 그리고 전체 이름,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아카키의 아들, 아카키]이다. 아버지의 아들이란 의미만을 같는 이름이다. 흠과 티가 없는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아들. 고골리의 종교적 배경에서 이것은 곧 인간의 본래 형상, 아버지의 형상을 가진 존재를 의미한다. 그것은 곧 인간이 원래 기원한 신의 형상을 뜻한다. 그가 잃은 것은 인간성이고 그 인간성은 신성, 곧 하늘의 형상이다. 어쩌면 아카키는 마땅히 되어야 할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잃어버린, 신의 흠없는 모습을 닮아야할 자신의 목적도 상실한 현대인의 코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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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책세상 니체전집 14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정현 옮김 / 책세상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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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이해에 있어 이 두 책은 큰 의의를 지닌다고 한다. 서사시적이며 비유적인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해 이 책들에서야 비로소 그의 사상의 맥락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니체의 전집의 일부로 이런 번역본이 국내에 있는 것은 우리에게는 큰 혜택인 셈이다. 더욱이 [도덕의 계보]는 [선악의 저편]의 속편으로 그 이해를 돕기 위해 써진 책이니만큼 [도덕의 계보]의 독서는 니체 이해에 중요한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또 품절이다...흑

[도덕의 계보]

니체는 힘의 원리에 의해 세상을 본다. [좋다]라는 정의는 힘있는 자의 자기정체이고, [나쁘다]가 약한자들에 대한 강자의 정의라면, [악하다]는 약자의 강자에 대한 원한과 복수심의 투영이고, [선하다]는 약자의 자기위로와 궤변적 인간이해라는 것이다. 니체는 현대사회의 모든 병리가 이 선악에 의한 인간사회 체제에 있다고 본다. 약자들이 개발해낸 궤변의 그물에 강자들은 얽매여, 병들어 죽어가는 사자와 같은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모든 선악을 논하는 도덕이라는 것, 어떤 의미가 인간에 있다는 주장,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모두 강자를 속여 무장해제시켜왔다는 것이다.

이런 선악의 이해는 결국 니체로 진리자체를 문제 삼게까지 한다. 플라톤을 그리스도교를 문제삼는다. 진리의 원형, 도달점, 어떤 목적지가 있으리라는 인간역사의 오랜 개념 자체를 문제삼는다. 인간은 인간의 본능에 쓰여진 인간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플라톤적인 혹은 기독교적인 인간의 이해와 사회의 체계가 인간이 인간되지 못하고 자기의 단순한 생리적 문제를 해결치 못한 것을, 더욱 배배꼬이게 하여 복잡한 콤플렉스 속으로 빠뜨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진리라는 것,목적이라는 것, 기준이라는 것에 대한 부정이다. 아니 참된 긍정이란 없으므로 부정도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의 고통에 이유를 달지말고 해결하면 된다는 처방이다.

이런 이유에서, 한편으로 그는 진화론도 반대한다. 인간의 자기멸시 즉 현재 있는 그대로가 아닌 과거의 동물이었던 인간으로 바라봄과, 이런 독단론으로 인간을 해석하는 것이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고 결국 저편의 세계를 바라고 이 세상을 바로 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란다. 이 모든 일체의 진리의 추구를 그는 썩은 공기를 뿜는 수천년의 거짓말이라고 규정한다. 결국 목적점이 없어야만 인간이 위대하지도 비참하지도 않아야만 자유로와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니체에게 있어 이런 위버멘쉬(초인)이란 이런 도덕적 체계를 벗어난 창조적 인간이다.

진리란 없다. 목적이란 없는 셈이다. 오직 니체에게는 힘만이 있다. 증폭이 있다. 풀려난 힘의 의지와 위로의 상승이 있다. 그것은 더 높은(위버) 것인데 이제 허공 한가운데, 진리란 없다는 지점에 섰으니 어느쪽이 위인지는 모른다. 니체는 거꾸로 서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상관치 않는다. 그가 위라고 생각하는 위가 위다. 초인은 다른 인간이 보기에 동물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상관없다.  니체에게 더 강력한 비도덕적적 인간은 초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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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찰스 다윈 지음, 박영목 옮김 / 한길사 / 199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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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최근 새로 써진 [종의 기원]의 번역판으로, 다윈의 원문을 살리면서도 현대생물학적 관점에서 본 [종의 기원]의 오류와 현대생물학에 의해 증명된 점들에 대한 코멘트를 같이 실었다. 원문의 차례를 그대로 따르면서도 축약할 부분은 축약되어 있고, 새로운 증명자료나 오류에 대한 설명과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과 사진이 풍부한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그래서, 원본보다 짧지만 도리어 책 전체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다윈의 원래 의도들과 그 가치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다윈은 모든 생물이 한 생명체에서 분지되어 환경에 적응하며 다양화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다양한 생명체들은 유전을 통해 일정한 성질을 지닌 종을 구성하게 된다. 수많은 조상종과 분지되어 나온 종들, 혹은 다른 속에 속한 생물들끼리도 환경 안에서 서로 경쟁하며 조금이라도 유리한 형질을 가진 종들은 생존하여 번영하고 작은 차이라도 이 경쟁에서 뒤쳐지기 시작하면 결국 멸절하게 된다. 실제로 조상종의 대부분이 멸절한 것은 후손종이 훨씬 특이한 형태로 환경에 유리한 기관이나 조직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
 
현대생물학은 종 내부에서 적응에 따른 변화는 가능해도, 염색체 수가 다른 종으로의 변화는 설명이 힘들다는 의견이 여전히 많은 편이다. 생쥐의 조상이 사람으로까지 변하는 것은 유전적으로 설명이 어렵기 때문이다. 연금술에서 말하는 납으로 금을 만드는 원소의 변화만큼 염색체수의 변화는 가능성이 낮은 일이다. 하지만 당시 이런 종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포괄적 그림은 기존의 세계관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고, 이로 인해 점진적 개량과 진보에 의한 완성, 자연의 내재적 생명에너지에 대한 생각들이 그 이후 철학과 인간 사회의 가치에 영향을 주었음은 틀림없다. 인간은 진화의 와중에 나타난 생명체 중 유리한 두뇌시스템으로 인해 타종을 물리치고 지구의 지배자가 된 가장 최근의 발달된 동물의 하나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인간사회내에서도 삶살이의 방법을  결정한다. 진정한 생존의 법칙은 더욱 강하고 경쟁자를 따돌릴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최적자만이 번성해 갈 수 있다는 뜻이다. 무기이든 사회시스템이든, 한정된 자원의 독점자만이 미래에 존재하며, 약자에게 미래는 없다. 이것은 분명 우리 사회의 진실의 일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에서 유추되는 인간의 존재의 의미, 그리고 삶의 방법은 선뜻 받아들이기에는 생물학의 더 많은 검증을 요구하고픈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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