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아기 그림책 나비잠
이미애 글, 한병호 그림 / 보림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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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난 조카 세모가 요즘 부쩍 노래를 흥얼거린다. 얼마전 세모가 차안에서 불렀던 노래가 바로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다. 옆에서 장단을 맞춰 세모가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하면 나는 '젓가락 두짝이 똑같아요~'하고 다시 세모가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하면 '왼쪽 콧구멍과 요쪽 콧구멍이 똑같아요~' 하면서 노래를 이어 나갔다. 조카는 좋아라 했고, 그 좋아라 하는 조카가 이뻐 노래는 계속 흥얼흥얼 이어졌다. 조카에게 읽어 줄 책이 모가 없을까, 두리번 거리다 찾은 이 책은 저 노래를 부르며 읽으면 좋겠다 싶어 사고 읽었다. 동물의 습성과 아이의 일상적인 모습을 연결시켜 만든 것이 소박하게 눈에 들어 온다. 세모가 좋아해야 할텐데... 세모가 좋아하지 않으면... 히히.. 두 살 박이 네모에게 읽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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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계, 얌순이들의 보고서 청소년 리포트 4
안재희 지음 / 우리교육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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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이 책은 얌순이 문화의 가능성을 말미에 크게 부각시킴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며, 자신의 동경 집단(인문고 아이들,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아이들)으로 흡수되어 버리길 바라는 얌순이들의 성향/문화에 긍정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슈퍼우먼 콤플렉스와 견주어 보았을 때, 여성의 남성화, 즉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끊임없이 '남자처럼' 완벽하길 원했던 여성들의 최후가 결국 근본적인 갈등의 원인을 해소하지 못한 채, 몸 망치고, 가정도, 일터도 잃어버린 채 비극으로 끝났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문제의 설정이나 대상은 매우 흥미로웠는데, 결론이 좀 억지스러워 보인다. 슈퍼우먼 콤플렉스를 다룬 책의 논리를 다시 한 번 따라가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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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 청소년 리포트 2
배경내 지음 / 우리교육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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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리포트 시리즈 중 가장 깔끔하게 정리된 책이다. 이론적 배경을 자기 것화하여 우리 나라 현실, 학생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 맞춰 적확하게 잘 기술했다. 이 책의 요는 이 땅의 청소년은 대한민국 국민이기 이전에 '학생'이라는 것, 그 족쇄로부터 모든 인권 침해는 이루어지고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지속되며, 그 속에서 아이들은 때론 체념을 혹은 수용을 혹은 일탈을 하며 자신들의 권리를 내던져버린다는 것을, 20여 명의 아이들과 대여섯 명의 교사들의 적나라한 육성을 통해 기술해 내고 있다.

여전히 읽고 나서의 어떤 후련함이나 카타르시스보다는 현실 벽에 대한 갑갑함과 무기력함이 밀려오는 순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되는 글. '권리를 알고 행사하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권리라고 볼 수 없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p. 171) 이속에서의 필자의 주장은 간명하다. 교사와 서인과 사회는 학생들이 자신의 권리를 '경험'해 볼 수 있도록 그들의 권리 실천을 허해야 한다는... 그런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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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 All Boys Do It - 청소년 Report 1
엄기호 지음 / 우리교육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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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리포트' 시리즈는 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청소년 문화 담론이 유행처럼 번져나가면서, 현실에 토대를 두지 않고 외국 이론의 이름으로 '졸속적으로' 행해진 청소년 문화 담론과의 경계를 지우며, 바로 그 문제의식 위에서 기획되었다. 형식은 젊은 연구가들이 심층 면접과 심층 인터뷰를 통해 십대 아이들의 문화를 생생하게 기록하며 그들의 삶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 시리즈가 말하고 싶은 것은 포르노, 공부, 인권, 매체, 영상 등 몇 개의 테마들을 통해 아이들의 다양하고 역동적인 삶을 교사와 부모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이들에 대해 판단하고 규정하기 전에 그들의 이야기에 한번쯤 귀를 기울여 보자는 것이다. 이 시리즈의 첫번째 책이 바로 <포르노, All boys do it!>이다.

이 책은 더이상 포르노를 보는 것이 낯설지 않은 십대들, 그 포르노를 무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기성 세대(아저씨들의 성문화로 이야기되는)의 이중화된 성문화를 내면화시키고 있는 위험한 아이들에게 학교는 어떤 존재인고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고 따져묻고 있다. 그 따짐 속에서 필자는 '학교에서 포르노를 가르치자'는 과격해 보이는 주장까지 밀고 나가는데 이 주장은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비춰진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이상 학교는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곳이 아니며, 또 제공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러한 기능은 학교밖 사설교육기관을 통해, 또 인터넷을 비롯한 무수한 매체들을 통해 '훨씬 잘'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학교는 몰하지? 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학교 밖에서 제공되는 그 정보와 지식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학교의 역할이다.(중략) 학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다른 사람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이 다르다면 왜 그런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성찰하게 하는 훈련을 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라고.

'학교 너희들 언제까지 배 깔고 엎어져 있을래?' 하며 마치 학교의 안일함을 질책하기라도 하는 듯, 필자는 너희가 기존의 지식과 정보나마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면, 그것을 보는 눈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라고 한다.

여기서 또 괜찮은 설명 하나. '중세와 전기 근대에 학교의 기본적인 역할은 근대 시민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덕목을 가르치고 '먹고 사는 데 필요한' 기술을 습득시키는 것이었다. 학교 자체가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는 공간이었고, 학교를 제외하고는 최신의 지식과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는 이것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이제는 지식과 정보의 생산과 유통이 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 학교 안이 아니라 학교 밖이다. 하다못해 입시 준비만 해도 학교는 학원과 과외에 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는 여전히 구태의연한 지식과 정보를 다루고 있고 규번화된 담론만을 재생산하고 있다. 이것이 최근의 '학교의 위기'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 중의 하나다.'

나름대로 명확하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는 글. 아직 구체화되기 이전의 대안이긴 하지만 학교의 역할까지 되묻고 있는 이 건방진 책이 난 참 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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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지금 거리에 '소녀'는 없다 청소년 리포트 3
민가영 지음 / 우리교육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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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시-도피적으로 가출한 십대 여자 아이들의 성 경험담과 그 속에 녹아 있는, 유용한 교환 가치로 기능하고, 십대들의 성 의식에 내재된 여성의 몸에 대한 이야기. 필자는 가출한 십대 여자 아이들의 경험담을 통해 가출 그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 가출을 통해서 얻게 되는 성 경험, 성 의식,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에 대한 똑바로 된 학습(?)/인식이 필요하다고, 그 역할을 공교육이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이야기하고 있다.

문제설정이나 설정한 문제를 풀어내는 방식, 그리고 그 문제상황에서 공교육은 무엇을 할 것이냐는 대안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주제로 함께 읽어낼 수 있는, 십대 남아들의 성 경험담을 다룬 청소년 리포트 1편 <포르노, All boys do it!>보다 완성도가 높다고 판단된다. 더욱이 그 어느 곳에서도 무리하게 혹은 어설프게 십대 옹호론을 섭불리 펼치지 않아 이런 류의 글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머리와 가슴이 따로 진동하게 되는 갈등을 줄여주기까지 한다.

'가출 생활을 통해 여성은 자기 몸에 대한 결정, 혹은 협상의 권한이 자신에게 자원을 제공해 주는 남자에게로 넘어가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권한을 양도한 대가가 어떤 것인지도 경험한다.'

이 구절 속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하찮음을 발견한다. 인간의 모든 가치는 수요가 존재할 때에만 인정받을 수 있으며, 그 수요자는 거래의 법칙에 따라 인간의 어떤 가치에 대한 결정권을 갖게 된다. 그 거래종목이 성/몸이든, 노동이든 달라질 건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가치는 '교환' 혹은 '거래' 가능한 가치여야만 한다. 다시 비극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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