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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철학 ㅣ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남경태 지음 / 들녘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철학자도 아닌 사람이 이야기하는 철학은 특별하다. 그 특별함은 철학을 바라보는 눈과 철학을 이야기하는 방식에서 온다.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주관적 해석이 개입되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어차피 철학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그것을 다루는 태도 또한 한 개인의 주관과 객관이 뒤섞이게 마련이다. 그것은 다양한 책들 속에서 나름의 빛깔과 향기를 지니며 그 책의 특징이 된다.
남경태의 <철학>은 독특하다. 이 책의 특징을 먼저 살펴보자. 넓은 범주에서 살펴보면 서양 철학사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시대 구분에 의해 통시적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철학의 기원과 출발에서부터 가지를 치고 잎을 피워나가는 과정을 상세하게 그리고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도 철학의 주변을 한 번씩 짚고 넘어간다. 그 과정이 번잡스럽거나 잡다하지 않고 필요한 부분에서 언급되는 사회 문화적 상황이나 정치 경제적 여건들이 철학에 미친 영향을 언급하는 정도다. 깊이가 없어 보이지만 큰 맥락과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는다.
두 번째 특징은 철학을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크게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계론의 관점을 1부에서 이야기한다. ‘대상’이 그것이다. 세상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과 고민에서 출발한 철학의 면면들을 살펴보고 2부에서는 인간론이라는 큰 주제로 철학의 역사를 더듬는다. ‘주체’에 해당되겠다. 인간과 종교의 관계와 철학의 역할을 집중적으로 점검하며 데카르트 이후 ‘인식론’을 중심으로 3부를 구성하고 있다. ‘주체-인식-대상’의 축을 세계론과 인간론 그리고 인식론의 발달 단계에 따라 철학자들의 주장과 핵심 개념을 엮어가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모호한 말장난에 속은 느낌도 없다. 4부에서는 세 단계의 결론이고 기존 인식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으며 5부에서는 가타리와 들뢰즈 그리고 하버마스에 이르기까지 지금, 이 순간의 철학적 문제들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논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역사 시대별로 구분하여 백화점식으로 철학자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철학적 특징과 개념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나버릴 염려가 없다.
세 번째는 처음부터 끝까지 선적인 조직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개념들이 미끌어지고 가로지르면서 철학의 전반적인 문제들을 통찰하고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과 개념들이 2,500년을 가로질러 철학사 곳곳에 그 흔적들을 묻어놓고 있지만 현대 철학으로 넘어오면서 그 영향력과 범주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전에 보지 못했던 현상이나 개념들이 전면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들을 저자는 종횡무진 철학사를 넘나들면서 합종연횡을 시도하고 있다. 깊이는 알 수 없으나 단순하고 피상적인 지식과 얄팍한 개념의 이해만 가지고서는 가당치도 않은 작업이다. 거기에 이 책의 장단점이 모두 녹아 있다.
철학에 관한 입문서로 손색이 없는 책이다. 그러나 철학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는 수박의 모양과 색깔만 보이고 맛을 본 적이 없다는 아쉬움을 깊게 남기는 책이기도 하다. 수많은 철학자들의 개념과 용어들이 난무하고 그들의 말이 짧은 구절로 인용되기 때문에 감질나서 미쳐버릴 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깊이와 넓이를 이야기하면서 부분적으로 옥의 티가 보이기도 한다.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는 소크라테스를 그렇게 소개하는 부분 같은 대목이 그렇다.
2500여 년에 걸친 방대한 서양 철학사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인간이 세계에 관한 올바른 앎을 얻는 과정”이라고 요약된다. 여기 포함된 세 가지 계기, 즉 ‘인간-인식(앎)-세계’를 해명하는 것이 철학의 과제다. 더 근대적인 형태로 변환하면 ‘주체-언어(또는 감각, 경험)-대상’으로 표현할 수 있다. - P. 545
저자의 에필로그 앞부분이다. 이 책은 ‘사람이 알아야할 모든 것’이라는 시리즈의 부제를 달고 있지만 사람이 모른다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는 ‘철학’이야기다. 하지만 알고 모르고의 차이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이 가진 특별함에 손이 갈 것이다. 단편적인 것들을 섞고 뒤집어 하나로 통합하는 관점이나 ‘가로지르기’가 2% 부족했던 독자들에게 적합한 책이다. 두 번쯤 더 읽어야겠다.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말한 탈현대 그 후의 철학이 궁금하다. 예의주시하며 읽어나가는 재미도 남다를 것 같다.
철학의 비판적 기능 역시 앞으로도 불변일 것이다. 철학은 탄생할 때부터 눈에 보이는 것의 배후에 있는 진리를 탐구하는 자세를 견지했다. 진리를 확정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해도 보이지 않는 것을 탐구하는 철학의 정신은 필연적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비판을 전제로 한다. 언어의 모호함을 악용한 권력 행사를 비판하는 탈현대 사유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 P. 548
개별적인 철학자들의 담론을 읽어나가면서 오래 기억될만한 문장이다. 철학이 비판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현실을 주도하며 진보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철학이 아니다. 새로운 세계의 변화를 수용하고 세계를 이끄는 새로운 사고의 틀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철학에 기댈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철학이 지닌 고유의 역할과 기능이 아니라 철학을 통해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이며 가능성이다. 그것이 진정한 철학은 아닐까 싶다.
070508-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