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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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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 그는 우리 욕망의 대부분이 자신의 욕망이라기보다 타자의 욕망이라고 냉정하게 진단했던 것입니다. - 강신주, 상처받지 않을 권리, 머리말

 

철학자 강신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욕망을 분석하기 위해 라캉을 데려온다.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당황스런 말이 아닐 수 없다. 내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다는 말의 아이러니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게다가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의 사회를 통해 기호에 대한 욕망을 강조했다. 생산이 아니라 소비를 욕망하는 현대사회의 뒤틀린 욕망을 비판하고 있는 시선을 또다시 점검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 안의 숨은 욕망을 부정하는 이유와 그러한 욕망을 드러낸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 음험한 시선과 들키고 싶지 않은 당신의 욕망에 대해.

 

누군가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말했고 또 누군가는 논어가 사람의 길을 열었다고 말한다. 유교적 질서는 그만큼 한국인의 삶에서 중요한 화두이면서 상반된 관점을 드러낸다. 우리 문화의 중요한 축을 이루면서 행동의 준거 기준이 되었지만 그 부당함과 문제점이 일시에 해결되지는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생각을 지배해 온 이데올로기가 바로 유교적 윤리다. 처음 만나면 나이부터 확인해서 스스로 서열을 결정하고 온 가족이 마치 가족인 것처럼 형, 누나, 동생으로 지칭하는 버릇이 그러하다.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흐르고 세월은 간다. 태어난 순서, 직장에서의 경력이 도대체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개인의 노력과 능력 그리고 사유 방식이 아닌 것으로 관계를 설정하려는 불편한 방식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어느 조직이든 그것부터 확인하려는 전근대적 태도를 일시에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물며 욕망이라니!

 

 욕망해도 괜찮아를 통해 꺼내기 조차 불온한 언어를 꺼내 든 김두식의 용기에 일단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 욕망)과 계(, 규범)을 키워드로 풀어내는 개인적 삶에 대한 고백은 누구든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용기에 해당한다. 불편해도 괜찮아와 유사성을 떠올리도록 한 제목은 출판사의 상업주의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국가인권위에서 기획한 인권이야기가 담겨있는 불편해도 괜찮아의 판매고에 힘없어 책을 팔려는 의도 이외에 욕망해도 괜찮아불편해도 괜찮아와 전혀 무관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욕망해도 괜찮아불편해도 괜찮아에 못미치는 불편한 책은 아니다. 멘토 과잉의 시대, 자기 계발서 범람의 시대, 스펙 올인의 시대에 김두식의 고백은 오히려 불순한 현학적 자기 고백의 욕망에 충실한 책이다. ‘100퍼센트 장학금으로 스물일곱살에 미국에서 박사를 딴 후 서른한 살에 교수가 된 형이나 스물네살에 사법시험에 합격한김두식은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축에 드는 사람들이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부부 교사였던 부모님의 경제적인 상황을 자 가족의 사자 가죽으로 풀어냈지만 우리 사회의 99% 입장에서는 1%의 엄살로 비칠 뿐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타인의 죽음보다 고통스럽다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한계다. 김두식의 사회적 계급과 경제적 계층을 고려하면 하품나는 자기 고백에 불과하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 달리해서 중산층 일반의 시선으로 이 책을 바라보면 그 어떤 책보다도 솔직하고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어쭙잖은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의 욕망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힘을 경멸하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불안한 욕망을 나이브하게 드러낸 김두식의 글은 읽는 사람의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은 욕망과 규범의 갈림길에서 갈등한다. 그것을 색과 계로 읽어내며 영화 , 의 두 주인공의 관계로 풀어내고 있다. 양조위와 탕 웨이의 관계는 색과 계의 충돌이다. 하지만 결과는 위태롭고 불안하다. 그것을 조절하며 자신 있게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고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그 어느쪽을 선택하든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굳이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욕망을 인정하는 일로 시작하는 이 책은 학벌문제와 희생양, 신정아와 똥아저씨, 정신 승리의 비법, 중산층의 은밀한 욕망, 몸과 살의 소통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례를 통해 때로는 김두식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며 고백은 나의 힘이라고 외치는 이 책은 새빨간 표지만큼 발칙하다. 그래서 단숨에 읽히며 읽고 나서도 한동안 쓴 웃음을 짓게 된다. 세상의 모든 뒷담화에 던지는 도발이며 드러내지 않은 음험한 욕망에 대한 냉소다.

 

자기를 계발하라고 부추기는 세상의 모든 책들, 모르는 것을 가르치겠다는 세상의 모든 멘토들, 내가 아니면 이 나라가 망할 거라고 믿는 세상의 모든 정치인들 그리고 그 모든 사람을 손가락질하는 세상의 장삼이사들이여 진정 용기 있다면 이 책을 읽고 김두식에게 손가락질을 하시기를. 나는 내 손이 부끄러워 슬며시 두 손을 주머니에 찌른다.

 

 

120606-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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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 인생 - 진짜 나답게 살기 위한 우석훈의 액션大로망
우석훈 지음 / 상상너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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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재벌 회장은 1명의 천재가 1만 명을 먹여 살릴 것이라며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말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 알게 된다. 인간은 나눔과 배려를 통해 협력해 왔고 공동체를 만들어 더불어 함께 살아왔다. 인간이 정치적 동물이라는 말의 어원도 따지고 보면 폴리적 존재 즉,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존재라는 뜻이다. 효율과 경쟁이라는 관점만으로 바라볼 때 1명이 1만 명을 먹여 살리는 것이라는 발상이 가능하다. 재벌의 눈에는 신기술로 많이 벌어줄 사람을 천재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그 사람 또한 이 사회에서 교육받고 사회적 자산을 공유하며 성장한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기발한 상상력 그리고 뛰어난 기술개발을 통해 인류의 문명이 발달하더라도 삶의 목적과 방향은 새롭게 발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무엇을 위해 왜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

 

나이와 무관하게 진짜 나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개인이든 기업이든 오로지 을 목적으로 한 삶은 얼마나 불쌍해 보이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을 우습게 여기거나 하찮게 여길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는 순간 인간도 수단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방황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 뚜렷한 목적과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고 해도 그것이 과연 깊은 철학적 고민에서 나온 주체적인 삶인지 말이다. 돈을 벌기위해 재테크에 미치라고 권하는 책을 만드는 출판사,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가며 상속을 하며 불법을 가르치는 재벌 회장, 국민에게 봉사할 줄 모르고 권력과 치부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국회위원 등 우리 주변에는 1인분 만큼의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우석훈은 1인분 인생을 외치는 것일까. 특이한 제목의 이 책은 우석훈의 산문집이다. 에세이의 특징은 우선 자유로운 형식에 있다. 분량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글쓰기는 저자의 감성과 이성을 종횡무진 누빌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우석훈은 똥 고양이에 대한 살뜰한 애정과 태권도 사범 실력을 갖춘 아내에 이르기까지 일상적 삶의 모습을 공개한다. 트위터를 통해 잘 알려진 우석훈의 고양이는 이 책의 시작을 알린다. 길고양이로 죽음 직전에서 살아난 녀석을 통해 우석훈은 자본과 생명에 대해 성찰한다. 돈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를 잃어버린 세상에 대한 참담함이 묻어난다.

 

 일상적 삶의 모습이 이 책을 편안한 수다로 읽을 수 있는 장점이라면 함께 잘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C급 경제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이야기는 감성 에세이로만 읽을 수 없는 장점이 된다. 88만원 세대이후 우석훈의 책을 참 많이도 읽었다. 촌놈들의 제국주의, 괴물의 탄생, 나와 너의 사회과학등 경제학자의 관점이 뚜렷한 책들이었다. 하지만 생활인으로서의 우석훈은 스스로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다. 국제기구에서 활동했고 정부의 요직에서 일했지만 자본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고 권력의 달콤함에 녹아버리지 않은 삶의 태도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석훈은 우러러 보고 존경받아 마땅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이 선망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읽어내야 하는 것은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한 외모와 나는 꼽사리다를 통해 들려주는 어눌한 목소리를 가진 한 남자의 외로움이다.

 

세상을 향해 최소한 1인분어치의 삶을 제대로 살자고 외치는 경제학자의 목소리가 쓸쓸하게 들리는 이유는 얼마나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줄 것인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책읽기와 글쓰기 강연과 팟캐스트를 통해 가난한 자유를 누리는 우석훈은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이다. 지금은 성공회대 외래교수와 타이거 픽처스의 자문을 맡고 있으니 먹고사니즘에서는 조금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그는 여전히 경제와 사회, 문화와 생태에 대해 날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들의 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그는 보다 나은 삶이 무엇인가를 늘 고민하고 있다. 그것이 단순히 경제적인 관점으로만 해결될 수는 없다. 정치와 경제의 관계, 정책 결정자들의 생각과 실제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 우리들의 삶을 직접 지배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석훈은 이 편안한 에세이들을 통해 그 질문에 간접적으로 답하고 있다. 1인분의 인생을 충실하게 사는 것조차 힘겨운 세상이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부지런하다. 근면하고 성실함으로 한 세상을 살아온 부모와 그 윗세대를 살펴보자. 신산스런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폐허 위에서 생존을 강요했다. 위정자들에게 기대지 못하고 스스로 한 목숨을 부지해야했던 사람들은 모질게 세상을 버텼다. 생존을 위한 경쟁과 나부터 살고 보자는 마음은 여전히 각박한 세상을 만들고 있다. 나눔과 배려, 소통과 대화보다는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만 고민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남의 자식은 곧 나의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내 자식만 잘 되는 방법을 고민하고 내 가족만의 행복을 추구한다. 세상 모든 사람이 불행해지고 있다면 그건 불가능한 게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인분 인생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개인의 게으름과 능력 때문만은 아니다. 구조적인 모순과 시스템의 문제가 많다. 고개를 들고 전체를 보고 내 삶의 조건을 결정하는 외부를 분석해보자. 우리의 삶은 근면 성실만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1인분 인생을 충실히 살기 위해서는 타인도 1인분을 살고 있는지 반칙을 하거나 남의 1인분을 뺏어가는 사람은 없는지 살펴보자. 불신과 비난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과 대책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자는 말이다.

 

이제 40대 후반에 들어선 우석훈의 에세이 한 편 한 편에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이 담겨 있다. 개인적인 소회와 감상적 일상으로 점철된 산문이 아니라 진솔하고 애정 어린 타인에 대한 시선과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다. 국민 모두가 정치를 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감시자의 시선으로 권력을 바라보며 우리 삶의 조건을 성찰하고 진짜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는 세상이다.

 

120318-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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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로 산다는 것 - 우리 시대 작가 17인이 말하는 나의 삶 나의 글
김훈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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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십년 만에 알고 황당했다. 여덟 장 짜리 컴필레이션 앨범 중 두 장은 비닐포장도 뜯지 않은 채 CD사이에 꽂혀 있었다. 잡스런 CD와 빈 케이스를 버리려고 정리하다가 발견한 여덟 장 사이의 두 장은 들어보지도 않았다는 말이니 선물한 사람에게 미안해졌다. 컴필레이션 앨범은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뷔페와 흡사하다.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잔뜩 쌓아놓았지만 뭘 먹었는지 알 수가 없고 무엇보다도 각자 먹는 속도와 양이 달라 수시로 오로지 먹는행위에만 집중하는 방법도 내키지 않는다. 좋은 것만 골라 놓는다고 해서 최고가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전체적인 어울림이다.

이런 방법은 음악뿐만 아니라 책도 가능하다. 목적과 방향에 따라 다르게 기획되고 편집될 수 있지만 독특한 아이템이 아니면 잡탕 찌개가 될 수도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문학사상에서 나온 소설가로 산다는 것은 월간 <문학사상>에 연재됐던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이라는 작가의 창작 노트를 한데 모은 책이다. 동시대의 소설가들에게 듣는 창작론은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매력적인 읽을거리다. 한 두 명도 아니고 열일곱 명의 작가를 한 번에 만날 수 있으니 매력적이지 않은가. 다만, 한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짧다는 아쉬움은 뷔페의 모든 음식을 무한정 없는 것과 비슷하다.

 

한 권의 책으로 만나는 여러 작가의 창작론은 서로 비교하며 읽을 수 있는 색다른 장점이 생긴다. 김경욱부터 함정임까지 가나다순으로 배열된 작가들의 나이와 개성이 제각각이다. 자신의 소설에 대한 창작론이라니 본문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많이들 곤혹스런 눈치다. 작가들은 나름의 방식대로 자신의 소설을 이야기하고 창작의 과정을 들려준다. 독자들은 맛있는 커피 한 잔과 함께 소설가들의 편안한 형식의 진지한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사건을 떠올리고 인물을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방식과 소설에 담아내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어떻게 다른지 즐기면 되는 책이다. 숱한 질문과 심각한 고민은 필요 없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날것 그대로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혹시 읽지 않은 작가라면 그의 소설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첫 번째 주자로 나선 김경욱은 자신의 창작론을 이렇게 결론짓는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실존적 전언을 떠올려본다면 화자와 주인공의 타자성이라는 지옥을 작가가 견뎌낼 때 실존의 문학은 문학의 실존을 견인하지 않았는가. - 김경욱, 25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하며 스스로 다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작가의 또 다른 자아인 화자와 주인공은 분명 작가에게 지옥일 것이다. 그것을 견뎌낼 때 문학의 실존보다 먼저 드러나는 것은 우선 독자들의 기쁨이다. 살아 숨쉬는, 손에 잡히는 또 하나의 세계와 마주하는 기쁨을 욕망하는 독자들은 기꺼이 작가들을 지옥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는다.

 

이외에도 김애란, 김연수, 김인숙, 김종광, 김훈, 박민규, 서하진, 심윤경, 윤성희, 윤영수, 이순원, 이혜경, 전경린, 하성란, 한창훈, 함정임이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자신의 삶에서 우러나온 소설과 영혼의 목소리를 담아낸 작품들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나열하고 보니 그들이 보여주었던 소설의 세계가 중첩되며 펼쳐지고 저마다 다른 소리를 지르는 것 같다. 그 즐거운 비명은 독자들을 위해 충분히 질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조금 아쉽다. 지난 90년대, 2000년대 소설들의 치열함이. 개인적인 소회겠지만 현실 사회에 대한 분석과 이해 치열한 고민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소설을 만나기 힘들다.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 내고 또 다른 인물을 만들어 인간의 삶과 보이지 않는 세상의 비밀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 작가들은 과거와 현재를 종횡무진 누비면서 새로움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여기의 현실적인 고민과 아픔들을 성찰하는 이야기에 조금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소설은 여전히 현실을 반영하는 가장 선명한 거울이 아닌가.

 

삶은 잠이고 사랑은 꿈이다. 자는 동안에는 계속 꿈을 꾸고 싶다.’는 김연수의 말은 창작론을 넘어 삶에 대한 반성이 아닌가 싶다. 자는 동안에도 사랑하고 싶다는 욕망은 인간에 대한 작가의 분석이기 전에 작가의 소설에 대한 욕망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언제나 사랑을 외친다. 누구나 사랑을 말하고 어디서나 사랑을 욕망한다. 그러나 그보다 지독한 미움과 분노와 폭력이 난무한다. 나르시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사랑과 세속적인 조건과 관계를 고려한 사랑을 꿈꾸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과 이별이든 삶과 죽음이든 친구와 가족이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또 만들어내는 작가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너무나 뻔한 스토리의 삶을 견디고 있는지 모른다. 보다 새로운 삶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보다 새로운 이야기를 욕망하는 독자들을 위해 작가들은 어떤 창작론이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의무가 있다. 수많은 독자들은 여전히 소설을 통해 잠을 자고 꿈을 꾸기 때문이다.

 

120208-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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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행복하라
비노바 바베 지음, 사티쉬 쿠마르 엮음, 김문호 옮김 / 산해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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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진정한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 그의 곁에서 스스로 배울 뿐이다. 태양은 누구에게도 자기 빛을 주지 않는다. 다만 만물이 그 빛을 받아 스스로 자라갈 뿐이다. - P. 31

한 문장에 꽂혀 책을 찾아 있는 경우가 많다. 고미숙의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을 읽다가 한참 동안 멍하게 들여다보았던 문장이다. 늘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분명한 문장으로 만났을 때의 기이한 느낌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가르치지 않는 교사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 말은 지식이 아니라 온몸으로 삶을 가르치는 교사를 이르는 말일 것이다. 교과서 밖의 삶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고 그것을 행동에 옮겨 실천하는 교사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몰라서 학교에 오는 아이는 없다. 객관적 사실을 판단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진실을 깨닫고 스스로 생각하며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 교육이다. 태양은 스스로 빛난다. 만물이 그 빛을 받아 스스로 자라는 것처럼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해 가르치지 않아도 배우는 학생들이 있어 교사는 늘 그들을 두려운 법이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를 만나 비폭력 사회 변혁 운동에 뛰어든 비노바 바베의 『버리고, 행복하라』는 오늘 하루를 경건함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그것은 내 삶에 대한 엄숙함이었고 일반적이고 익숙한 것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영적인 지도자로 추앙받는 저자의 이야기를 담아 사티쉬 쿠마르가 엮은 이 책은 ‘교육, 권력, 정의, 평화, 자아’의 다섯 개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얄팍한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영혼의 찬물을 끼얹는 울림이 있는 책이다. 사람들은 보통 종교에 기대어 산다. 불안한 미래와 현실적 고통, 사후 세계에 대한 공포가 만들어낸 안식처가 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 존재인 인간에게 영혼이란 무엇인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욕망에 충실한 존재가 아니라 영혼의 안식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삶을 고민해 본적이 있다면 버리자, 그러면 행복해질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삶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21세기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실천 항목을 제시할 수는 없다. 다만 한 인간의 삶을 통해, 그리고 그의 목소리를 통해 나의 모습을 돌아 볼 수는 있다.

보편타당한 삶의 원칙과 태도는 시공을 초월해서 깊은 울림을 준다. 그것은 종교를 초월하며 인종과 민족의 범위를 넘어선 자리에서도 빛을 발한다. 비노바 바베는 종교를 앞세우지 않는다. 절대자의 말씀이나 권위를 빌리지 않고 온몸으로 실천하고 자신의 행동으로 말하기 때문에 더욱 경건해 보인다. 토지헌납운동을 통해 우리의 삶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성찰하게 한다. 누군가의 소유가 될 수 없는 것들을 우리는 소유하고 있다. 비노바 바베는 묻는다. 그것이 가능한 삶인가.

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교육 분야는 구름처럼 허망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한다. 현실 적용 문제를 떠나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공교육의 현실이다.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우기 위해 그리 오랜 시간동안 학교에 다니는 것일까. 근본적인 질문을 통해 우리의 삶을 성찰해 보자. 사람들은 많이 가지고 싶어하며 경쟁에서 이기길 원한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즐기라는 섬뜩한 문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책상위에 붙여놓은 아이들을 바라볼 때마다 부끄럽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이 땅의 교사와 학부모들이 새겨들어야 할 만한 잠언들이 곳곳에 숨어있는 이 책은 거시적인 안목으로 현실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우리의 지향점이 어디인지 고민해 볼 수 있는 책이다. 비노바 바베 혹은 그 어떤 영혼의 안내자의 말이라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책은 아이들에게 독이 될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경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삶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면, 내 생의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는 책이 아니라면 독서를 권할 이유가 없다. 창밖에 멀리 시선이 가는 날,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게 되는 날 비노바 바베의 말에 귀 기울여 보자.

우리는 아이가 독서를 통해서 지식을 얻는다는 것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상 독서는 지식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독서는 우리를 현실세계와 갈라놓는 장막과도 같은 것이다. - P. 39


11032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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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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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나 할 듯한 고민을 나이 들어가면서 문득문득 떠올리는 것은 왜일까. 수많은 책을 접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일이 많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 장삼이사의 일화, 세상을 뒤흔들만한 역사적 사건 들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올 때가 있다. 사회적 존재가 아니라 한 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가 했던 내밀한 고민과 일상적인 삶에서 오는 갈등이 느껴질 때 ‘나는 누구인가’를 다시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무얼 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는지 말이다.

20세기 초반 세계사의 급격한 변화를 온몸으로 겪은 작가의 글들은 많은 울림을 준다. 작가 조지오웰은 영국의 명문 사립 이튼스쿨을 졸업하고 유일하게 식민지 경찰에 자원한다. 5년간의 인도 경찰 생활 후 귀국해서 부랑자 생활을 하며 글을 쓰기 시작하는 작가를 다시 돌아본다. 권력과 부를 거머쥘 수도 있는 상황의 반전과 그가 남긴 작품들 사이의 거리를 돌이켜 생각해 보게 하는 『나는 왜 쓰는가』를 읽는 내내 책에 빠져들었다.

『동물농장』, 『1984』로만 기억되는 조지 오웰은 다양한 글과 소설들을 남겼다. 이한중은 그의 에세이 중에서 가려 뽑아 번역한 책을 묶어 그의 대표적인 에세이를 책 제목으로 삼았다. 선택한 글들이 읽을 만 했고 번역도 어색하지 않아 작가의 내면을 읽어내는데 손색이 없었다. 두툼한 분량임에도 막힘없이 읽힌 것은 당대 현실에 대한 조지 오웰의 솔직한 내면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국주의와 파시즘이 판치던 시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인도와 영국, 러시아 혁명과 스페인 내전까지 소용돌이치는 세계사의 흐름에 대한 작가의 대응방식이 흥미롭다.

우리 시대에는 '정치와 거리를 두는' 일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모든 문제가 정치 문제이며, 정치란 본래 거짓과 얼버무리기, 어리석음, 반목, 정신분열증의 집합체인 것이다. 그러니 전반적인 분위기가 좋지 않을 경우 언어는 수난을 당하게 된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71쪽

이런 이야기는 시대를 넘어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 아닌가. 시대의 한복판에서 가장 첨예한 문제들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그것을 해석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형상화하는 일이 작가의 의무가 아닌가. 조지오웰은 신랄한 풍자와 뛰어난 상상력으로 소설을 썼다. 명성을 얻기 전까지 20여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글을 쓸 때 주의할 점이나 헌책방에서의 경험, 부랑자 생활, 간디에 대한 생각 등을 발표했다. 그의 글들은 재치 있고 발랄한 풍자가 돋보인다. 비극적이고 부정적인 인식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조롱과 비꼬는 솜씨가 일품이다.

어느 시대를 살았던 작가든 마찬가지겠지만 그 시기의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갖기란 쉽지 않다. 조지오웰은 백인 영국인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부랑자를 바라보고, 인도에서의 경찰 생활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부족한 점, 간디에 대한 평가에서 엿볼 수 있는 작가의 태도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작가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든 작가가 그 시대에 어떻게 반응하든 ‘글’은 오래 기억되고 읽히고 해석되고 영향을 미친다. 독자들은 작가의 글을 통해 시대를 들여다보고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고 작품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조지오웰과 그의 소설들을 재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부터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97쪽

가령 이런 고백들은 그의 소설을 이해하는 좋은 문장이다. 그것이 소설로 어떻게 실현되었고 독자들의 평가가 어떠하든 작가의 솔직한 고백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그의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을 통해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조지오웰이라는 작가의 내면 풍경과 그가 살아냈던 시대를 그의 눈을 통해서 바라본다는 점이다. 표현론적 측면에서 작가의 생애와 사상을 통해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좋지 않은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풍부한 배경지식과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는 시공간적 무대가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고 작품에 대한 해석을 보다 다양하게 이끌어 낼 수도 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지금 여기에 적용될 수 있는, 현재적 유용성 측면에서 우리의 현실을 성찰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많다. 진지하고 엄숙한 시대 비판이 아니라 비틀고 냉소하는 태도는 당대 현실을 넘어 현실을 성찰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의 소설들이, 그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이렇게 다양한 사회를 살아내야 하는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시선을 제공한다. 케케묵은 이념의 시대를 지나왔지만, 우리 사회의 거시적인 방향성과 미래를 고민하는 데도 그의 글들은 여전히 재미있게 읽힌다. 이렇게,

좌파 정부는 거의 예외 없이 지지자들을 실망시킨다. 왜냐하면 그들이 약속했던 번영이 달성 가능한 것이라 해도, 국민에게 진작에 말해준 적이 거의 없는 불편한 이행 기간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442쪽

이 책을 통틀어 가장 통렬하게 다가온 글은 ‘어느 서평자의 고백’이다. 책을 만들고 유통시키는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재미있는 글이다. 더구나 대가없이 미친 듯 읽고 써대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그러하다. 공짜 책은 없다! ‘서평단’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공짜책 서평이벤트와 서평 관련 잡지들과 기자들 그의 표현대로 ‘꾼’들에게 날리는 카운터 펀치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상적인 문장 몇 개를 옮겨둔다.

아무리 지겨워한다 해도 서평자는 책에 대한 관심이 각별한 사람이며, 매년 수천 권씩 쏟아지는 책 중에 쉰 권이나 백 권쯤에 댛서는 기꺼이 서평을 쓰고 싶어 한다. 업게 최고 수준인 사람이라면 열 권에서 스무 권 정도를 택할 것이며, 두 세권만 꼽을 수도 있다. 그 나머지 일은 아무리 양심적으로 칭찬을 하든 욕을 하든, 본질적으로 사기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86쪽

모든 책이 서평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당연시하는 한, 어떤 문제도 해결되기 어렵다.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서평을 하다보면 대부분의 책에 대해 과찬하지 않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책과 일종의 직업적인 관계를 맺고 보면 대부분의 책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지를 알게 된다. 객관적이고 참된 비평은 열에 아홉은 '이 책은 쓸모없다'일 것이며, 서평자의 본심은 '나는 이 책에 아무 흥미도 못 느끼기에 돈 때문이 아니면 이 책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일 것이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87쪽

내가 보기에 최선의 방법은 대부분의 책은 그냥 무시해버리고 중요해 보이는 소수의 책에 아주 긴(최소한 1000단어는 되게) 서평을 쓰도록 하는 것이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87쪽


110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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