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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부조화 이론 ㅣ 나남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382
레온 페스팅거 지음, 김창대 옮김 / 나남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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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부조화 이론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심리적으로 불일치하는 두 개의 인지 요소(아이디어, 생각, 믿음 등)가 사람들에게 있을 때 부조화가 발생하며, 사람들은 행동이나 인지를 수정하거나 새로운 인지 요소를 추가함으로써 부조화를 감소시키려고 한다는 이론이다. 1957년, 레온 페스팅거는 주장은 이전에 보상과 강화로 인해 인간의 행동과 태도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강화이론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인지부조화를 줄이려는 노력이 인간을 변화시킨다는 주장은 어떤가.
범죄자가 인지부조화를 극복하는 방법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정치인들이나 처벌받지 않은 권력자도 마찬가지다. 이는 신포도 기제나 달콤한 레몬 기제와 같은 합리화의 일종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레온 페스팅거는 비일관성inconsistency 대신 논리학적 의미가 덜한 부조화dissonance, 일관성consistency이라는 용어 대신에 중립적 용어인 조화consonance라는 개념으로 인간의 생각과 행동과 태도를 설명한다. 부조화 이론의 기본 가설은 다음과 같다.
(1) 부조화의 존재는 심리적 불편함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부조화를 감소시켜 조화를 달성하려는 동기를 유발할 것이다.
(2) 부조화가 발생하면 그것을 감소시키려 할 뿐만 아니라, 부조화를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나 정보를 적극적으로 회피하고자 할 것이다.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는 것은 마치 배고픔이 배고픔의 감소를 지향하는 행동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부조화의 감소를 지향하는 행동을 유발하는 선행조건으로 볼 수 있다.(20쪽) 부조화가 조화를 지향한다는 전제에 동의하지 않으면 인지부조화 이론을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론이 성립하지 않거나 틀린 건 아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합리적 판단, 논리적 과정을 비난하기 쉽다. 인지부조화 때문이다.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타인이 틀렸거나, 세상이 글러먹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화는 모든 인간의 내면적 평화를 가져오지만 옳고 그름이나 도덕적 기준에 부합하는 건 아니다.
심리학의 제반 영역들이 경제학, 법학, 철학, 정치학, 인류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철학적 질문에 답을 주기 시작한 건 불과 100여 년에 불과하다. 최근 뇌과학의 발달로 인체의 마지막 신비가 밝혀지는 듯하다. 모든 게 유전자 혹은 호르몬 탓이라는 농담과 함께 진화 생물학과 진화 심리학의 관점에 대한 비판이 뒤섞여 ‘나’의 생각과 감정이 어떻게 내 것이 되었는지, 그 근원은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다시 한번 살폈다. 다양한 실험을 담은 논문을 정리한 이 책은 사회심리학 분야의 기념비적 이정표를 세웠다. 타인을 향한 자신의 태도와 감정 조절, 행동의 동기와 추동력은 오로지 확고한 신념이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많은 사유의 시간 대신 페스팅거의 주장에 귀 기울여봐도 좋겠다.
당신, 아니 그들은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가. 인간은 일관성 있는 기계나 로봇이 될 수 없다. 어차피 모순된 말과 행동과 감정에 허우적거린다. 그 과정에서 겪는 내적 고통과 인지부조화를 극복하는 방법은 배울 필요가 없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기적 존재인 개인은 마음의 평화와 안정, 자존심과 인정 욕구 때문에 끊임없이 노력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과 태도가 아름답고 행복하게 태어난다고 믿던 시절은 행복했을까. 우리는 모두 아이였다. 여섯 살 아이의 눈과 다섯 살 아이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 수 없으니 각자 자기 위로와 변명으로 일관하며 객관성과 합리성에 기대는 대신 인지부조화 극복에 골몰하는 건 아닐까.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은 치유해야 할 질병이 아니다. 누구나 겪는 삶의 전제 조건이다. 자유를 누리며 불안이라는 세금을 내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다. 누군가 곁에 없어 고통스러운 외로움과 달리 타인에게 기대지 않는 고독을 즐길 수 없다면 홀로 선 단독자로 살 수 없다. 한 인간의 깊이와 넓이를 측정할 수는 없으나 사람 다 거기서 거리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심리적 태도와 본능적 욕망을 알고 대처하는 방식과 태도가 한 인간의 삶을 결정한다. 무엇이 옳은가, 더 나은 것은 어떤 것인가, 보다 중요한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성찰이 없는 한 어떤 외부적 시선과 조건으로도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즐거운 일상이 언제 어떻게 슬픔과 고통으로 바뀔지 알 수 없다. 지옥은 어딘가 구멍을 파고 기다리는 함정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영혼의 감옥일 뿐이다. 하루를 견뎌 내일을 맞이하는 평범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타인과 세상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가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