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 버트런드 러셀의 실천적 삶, 시대의 기록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박병철 해설 / 비아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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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인 꿈과 사회적인 꿈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개인적으로 고귀한 것, 아름다운 것, 온화한 것에 도움이 되며,
통찰의 순간들을 통해 갈수록 세속화되어가는 시대에 지혜를 제공하는 것을 꿈꾼다.
사회적으로는 개개인이 마음껏 성장하는 사회, 증오와 탐욕과
질시가 자랄 토양이 없어 죽어버린 사회가 창조되는 모습을 꿈꾼다.
나에게는 이런 믿음이 있고, 제아무리 참혹한 세상도 나를 흔들어대지 못한다.

역사에 명멸했던 수많은 철학자들을 떠올려본다. 철학사에 족적을 남긴 사람들과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철학자들 중에 버트런드 러셀처럼 실천적인 삶을 기록했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학문적으로도 일가를 이루고 시대를 기록하며 사회 구성원으로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고 그 변화를 위해 노력했던 철학자는 많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러셀을 읽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새로 번역된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는 에그너 교수가 편집한 ‘러셀의 베스트’이다. 1872년에 태어나 1970년 98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70여권의 방대한 저서를 남긴 러셀의 글 중 정수를 모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니 어지간한 러셀의 사상과 철학을 일괄할 수 있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정치, 심리, 종교, 교육, 성과 결혼, 윤리 등 여섯 개 분야로 나누어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목소리를 높였던 러셀의 면면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엮었다. 『서양철학사』에서 ‘노벨상 수상 연설’의 내용에 이르기까지 러셀은 인간 이성의 합리성을 의심치 않았던 철학자로 이해된다. 따라서 윤리학은 러셀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분야다. 서양 사상의 근원인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러셀의 인생을 뒤흔들었다. 강단의 평온한 철학자를 거리로 나서게 한 이유를 살펴보면 종교가 아닌 인간의 편협한 사고와 아집 때문이라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어쨌든 러셀은 평생 대중적 글쓰기, 즉 쉽고 편안하면서도 풍자와 위트 넘치는 문장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죽을 때까지 매일 3천 단어 이상의 글을 쓴 것으로 유명한 러셀은 여전히 글쓰기의 전범으로도 삼을 만하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철학자의 문장이라고 해서 빛이 날만큼 눈부시게 현란하지 않다. 번역문을 통해 그 진가를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특유의 기지와 풍자가 번뜩인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를 거치면서 급변하는 인류 역사의 현장을 목도하면서 철학자는 불변하는 철학적 진리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까. 생각은 갈피갈피 흘러가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이다. 하지만 러셀의 글은 하나의 주제와 일관된 흐름으로 읽는 사람들에게 긴 여운과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인도주의를 기억하라.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무시하라”

하지만 아쉬운 점은 짤막한 호흡이다. 하나의 주제와 연관된 러셀의 방대한 저서 중 일부분 만을 발췌해서 실었기 때문에 러셀의 저작을 어느 정도 읽었거나 집중력 있게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면 수박 겉핥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 당대의 사회를 이해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만이 아니라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과 철학적 사유가 필요한 게 아닌가. 이 책을 즐기기 위해서는 세계사의 급박한 흐름뿐만 아니라 시대정신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 또한 러셀의 저작들을 어느 정도 섭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쉽고 편안한 에세이들을 읽다보면 러셀의 유머를 통해 고뇌까지 느껴지는 듯하다.

백 년 가까이 긴 세월을 살았다면 철학자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그리고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되지 않을까. 엉뚱하게도 러셀의 하얀 머리칼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자신의 인생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겨우 인생의 출발선에 서 있는 십대, 결혼을 앞둔 신혼 부부, 중년의 사십대 그리고 황혼녘에 선 사람들에게 인생은 무엇일까. 나이가 인생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러셀의 글을 읽으면서 나의 존재와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세상에 대한 나름의 생각들을 정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존경하는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 러셀, <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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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
박홍규 지음 / 필맥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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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서양의 철학자는 지금의 우리들과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지식과 학문의 상대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들의 생애와 사상은 오롯이 박제된 철학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며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사유의 단초를 제공하는 철학자들을 우리는 외면할 수 없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후에 모든 철학의 근간이 되어 수많은 해석과 분석을 낳았다. 동양의 공자와 맹자 그리고 노자처럼 문제적 철학자들의 사상은 세계를 바라보는 창문의 역할을 했으며 인류 역사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해왔다.

그러나 세계의 철학사는 그들의 재해석에 머물러있다는 비판을 가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그런가? 인류의 지난한 역사, 과학문명의 발달은 새로운 세계와 인간에 대한 끝없는 의문을 가져왔고 그것을 해명하는데 노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아직도 왜곡되고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자명한 현재적 삶이 되었지만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사람들의 희망은 여전히 미래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

사상적 은사 중 한 사람이 되어 준 박홍규의 『디오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또다시 기존의 질서와 관성적 사고에 제동을 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스승이며 서양철학의 중심축인 아리스토텔레스를 디오게네스와 견준다는 사실 자체를 통념상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저자는 디오게네스를 ‘자유’의 철학자로 아리스토텔레스를 ‘예속’의 철학자로 선언하며 그들의 철학을 비판적 시선으로 꼼꼼하게 분석한다.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필요한 것을 묻자 햇빛이나 가리지 말고 비키라고 말한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스스로를 개에 비유했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 정의,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철학자다. 두 사람은 삶의 방식과 후대에 미친 영향이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그래서 저자의 비교는 다소 억지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대표적 저작을 통해 디오게네스의 철학을 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뚜렷한 흔적을 남긴 철학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의 목소리는 선명하고 두 철학자를 비교하는 동안 우리가 간과했던 부분들을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열풍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이 시대의 ‘정의’에 대해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하는 것이 아닐까? 한 사회가 지향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합의되지 않은 채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고 경쟁하고 오로지 ‘돈’이 꿈이 되어버린 시대의 비애는 단순히 감상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시민으로서 행복을 추구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근본적인 고민은 윤리 시간에 외운 철학자들의 사상을 암기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저자의 고민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여전히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서 살아가야하는 시민의 슬픔이 묻어 있다. 포스터에 쥐, 불온한(?) 사상이 적힌 책, 나와 다른 생각과 주장들 때문에 잡혀가는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야 하는 아픔으로부터 이 책의 고민은 시작된다. 민주주의의 원류로 이해되는 폴리스의 사회와 정치 그리고 그 시대의 사상가들을 살펴보고 디오게네스의 삶과 사상을 복원한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인물을 탐구하고 그의 국가, 정의, 정치에 관한 사상적 근원을 탐구한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두 철학자를 비교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관점에서 당대를 비판하고 당대의 사상으로 현재를 고찰한다. 하나의 사상은 특별한 엘리트의 창조적 산물이 아니다. 사회와 역사적 존재로서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통해 만들어지는 하나의 세계 해석 방법이다. 디오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아테네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달랐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해석이 달랐다.

비교될 수 없을 것 같은 두 철학자가 비교되는 것은 그들의 사상이 보여주는 간극만큼이나 현실세계의 비극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서양철학사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디오게네스에 대한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저자는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에 대한 오해와 숨겨진 그의 철학사상을 밝히는데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 『소크라테스 두 번 죽이기』, 『플라톤 다시보기』, 『그리스 귀신 죽이기』 등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우리 굳게 믿고 있는 지식과 사상에 대해 의심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온 것들이 과연 모두 진실일까?

2,500여 년을 거슬러 저자와 함께 시간여행을 하다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을 돌아보게 된다. 짐작도 가지 않는 시간동안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서양의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우리들의 삶을 성찰하는 일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의무는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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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한 예술가들의 유쾌한 철학교실
프랑수와 다고네 외 22인 지음, 신지영 옮김 / 부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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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입시를 위한 논술이 계속되는 한 올바른 독서교육과 글쓰기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는 힘들어보인다. 대학에서는 아무리 뻔한 정답을 적어내는 틀에 박힌 답에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고 말하지만 논술평가의 객관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상태에서 학생들의 창의적이고 종합적인 사고력을 측정하기 위한 논술 평가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제시문을 분석하고 논제에 따라 글을 쓰는 형태의 현행 대학 입시 논술의 가장 큰 특징은 모범 답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국 주관식 시험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논술시험에서 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지문 독해 능력이 필요하고 자신의 생각보다 출제자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우선시 된다. 다양한 배경지식과 통합적이고 창조적인 사고력을 측정하고 싶지만 평가 척도와 객관성 확보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프랑스에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철학 논술 시험의 형식도 완고하다. 이성 중심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철학 교습 방법에도 한계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철학에 접근하기 어렵다고 본다. 프랑수아 다고네를 비롯한 22명이 철학적 질문들에 답하는 책 『삐딱한 예술가들의 유쾌한 철학교실』은 자유로운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이 바칼로레아에 던지는 도전장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스스로 점검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이 책도 그런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머리말에서 20년간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옹프레의 이야기는 새겨 들을 만하다. 현행 프랑스의 논술시험인 ‘바칼로레아’에 관한 분석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옮긴이 신지영은 “철학은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이미 주어진 답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것을 비판하고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자기만의 답을 찾아 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비판과 자기만의 답을 찾는 여정이 철학이라면 그것은 곧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결국은 철학은 우리들 삶의 과정이며 목적을 고민하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러한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일률적인 형식이나 내용으로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 상식적인 이야기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다양한 형식으로 이러한 철학적인 질문에 답한다. 텍스트의 형식뿐만 아니라 시, 만화, 단편 소설 형태 등을 통해 철학과 비철학의 경계를 넘나들고 예술가의 행위와 철학자의 행위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고민한다. 이런 화두들이 책머리에 소개된 후 철학적 주제별로 글들이 모여있다. ‘자연과 문화’, ‘의식, 무의식, 주체’, ‘언어, 의사소통’, ‘시간, 존재, 죽음’, ‘기술’, ‘예술과 아름다움’, ‘이성과 감성’, ‘의견, 지식, 진리’, ‘논리와 방법’, ‘신화, 과학, 철학’ 등 열 개의 주제가 그것이다.

각각의 주제에 해당하는 글들이 한 개 혹은 여러 개 모여있다. 글의 형식은 앞서 설명한 대로 전통적인 철학적 글쓰기가 아니라 주제를 해명하기 위한 다양하고 신선한 시도들이 선보인다. 시, 사진, 만화 등 예술의 다양한 형태가 동원된다. 다만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과 태도가 예술가의 것이든 철학자의 것이든 그 고민의 깊이와 표현의 방법면에서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언어가 모든 것에 우선할 수는 없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의 고민과 인식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면 모든 것을 텍스트에 의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만화가, 작가, 교사, 유전학자, 철학교수, 연출가, 번역가 등 다양한 사람들의 글을 모았기 때문에 다소 산만하고 소략하다는 한계가 있을 수 있으나 ‘바칼로레아’를 이해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이 제시하는 문제점의 개선 방향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계속되어야 한다. 이 책에 선보이는 다양한 형식과 자유분방한 내용들은 바칼로레아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학습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바칼로레아를 위한 고민거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주제가 모두 대학 입학 자격 철학 시험에서 제시되는 것들이지만 시험에서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 형식과 조건들로 가득하다. 철학가의 사상과 이론을 암기하는 것은 죽은 철학이다. 살아가면서 철학에 대한 욕구를 잃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 낡아빠진 형식에 대한 도전, 기발하고 독창적인 방식, 세계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이 이 책의 지향점이 아닌가 싶다. 현실에서 온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는 바칼로레아의 주제가 실제 생활에서 어떻 의미를 갖고 있으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대한민국의 대학입시 논술 주제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모든 사람들이 토론하며 자신의 삶을 고민하는 주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실제 우리가 지향해야할 논술의 목표여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삶과 거리가 먼 시험용 논술 대신 늘 생각하며 토론하고 책 속에서 고민했던 주제들을 대학 입시 논술에서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책읽기와 글쓰기가 곧 철학이며 삶의 한 방법임을 깨달을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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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 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에 대한 반론
마이클 샌델 지음, 강명신 옮김 / 동녘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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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하는 책은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다. 최근 『정의란 무엇인가』로 서점가를 휩쓸고 있는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은 제목으로 이 시대를 웅변한다. ‘공정사회’를 부르짖는 사회의 불공정성은 악취를 풍길 정도라는 걸 모두가 안다. 감사원의 지적을 받은 정부 각 부처의 결과를 공개한 최근 국감 자료는 우리 사회의 공정성을 방증한다. 이처럼 한 권의 책은 유행가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 현상의 일부로 시대를 측정할 수 있는 리트머스 역할을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앞서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를 읽어본다. 이 책의 부제는 ‘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에 대한 반론’이다. 짧은 논문에 나타난 저자의 생각은 부제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롤스의 정의론 비판으로 27세에 하버드대 교수가 된 석학의 말하기 방식은 공감과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다. 유전학적 강화와 자연발생적 선택에 대한 지극히 자극적인 도입부는 관심을 집중시킨다. 청각장애 부부가 5대째 청각장애인 가족에서 정자 공여자를 찾아 청각장애 아들을 고뱅을 얻었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그른가?

부모가 아이를 고른다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면 프리미엄 난자를 구하기 위한 광고나 장애아 검사 등에 대한 도덕적 논란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근육 강화, 기억 강화, 신장 강화, 성 감별 등에 대한 서로 다른 기준과 잣대가 아니라 ‘생명’ 자체에 대한 윤리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과연 가능한가? 종교, 인종, 문화적 차이에 따라 도덕적 기준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마이클 샌델도 첨단 과학인 생명공학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는 것에 대한 한계를 토로한다. 배아세포에 이용에 관한 서로 다른 기준과 견해는 이 논쟁의 출발이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생명으로 볼 것인가. 이 이야기는 에필로그에서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의 전제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생체공학적 운동선수와 자녀를 디자인하는 부모 그리고 우생학에 대한 자유주의와 공동체적 관점을 다룬 본문의 내용들은 철학적, 윤리적 논란에 대해 어렵지 않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논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논점에 대한 문제를 제시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저자의 이러한 말하기 방식은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것이 단순히 기능적 관점이나 종교적 관점이 아닌 인간사회의 보편타당한 윤리적 관점에서 해결할 수 있음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아이비와이즈사가 최상류층을 상대로 대학 입학과 관련된 지원에 2년 동안 3만 2995달러가 드는 ‘플래티넘 패키지’를 출시했다. 창업자 캐서린 코헨은 “나는 대학 지원만 도와주는 게 아니에요. 인생 설계를 도와주죠”라고 말한다. 한국의 맞춤형 고액과외, 입학사정관제 관리 프로그램 등과 다를 바 없다. 저자는 아이를 과도하게 공부시키는 일에 대한 예를 들어 우생학과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아이들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부모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면 도덕적으로 별반 다르지 않다는 주장일 것이다.

윤리학의 관점에서 ‘생명’의 문제는 과학의 발달을 따라가는 형태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논란은 가열되지만 기술의 진보는 철학을 앞선다. 서로 다른 생각들이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명 윤리를 논하는 것은 그것 자체에 대한 위험부담을 넘어 우리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어쩌면 영원히 그 꿈을 향해 노력하는 것이 인간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의 욕망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마이클 샌델은 이 문제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을 제안 한 듯하다. 정답이 없다고 해서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다. 다수결로 결정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윤리학자들의 논리가 정답일 수도 없다.

이 책은 이러한 수많은 논쟁과 서로 다른 관점에 대한 성찰과 당면한 생명공학에 대한 제문제를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완벽하고 근사한 이론을 제시하고 훌륭한 대안을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생각의 방향과 일관성 없는 윤리적 기준들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가능성에 도전하면서도 도덕적 가치와 과학적 발전의 욕구 사이에서 갈등할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이며 생명은 어떻게 시작되어 끝을 맺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수많은 담론들은 풍성한 말잔치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의 윤리적 기준과 도덕적 잣대가 ‘생명’이라고 해서 비껴갈 수는 없다. 정교하고 흔들리지 않는 법과 제도를 만들 수는 없겠지만 우리 사회의 기준과 원칙을 세워나가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이 건강한 대한민국의 출발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생명의 윤리’ 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삶의 윤리’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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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다는 것 - 고병권 선생님의 철학 이야기 너머학교 열린교실 1
고병권 지음, 정문주.정지혜 그림 / 너머학교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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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나에 불과한 내 삶을 돌아보면 느리고 답답하게 보인다. ‘철이 든다’는 말은 세상에 대한 판단력, 사람들에 대한 이해, 삶에 대한 목표 등이 생겼다는 말이다. 아울러 생에 대한 가치관이 정립되고 사회역사적 안목이 생겼으며 삶에 대한 태도와 방법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살펴볼 때 나는 여전히 사춘기 소년에 불과한 지도 모른다. 영원히 철들고 싶지 않다는 꿈을 꾸고 때묻고 물들지 않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치며 청년정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런 생각들은 겨우 서른이 넘어서야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직접 경험은 물론 간접적인 경험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하고 세상사를 관찰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정리된 생각들이 지금의 나를 규정한다. 상식과 합리의 기준이 다르고 이성과 논리의 힘을 개인의 이익과 자기 합리화를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면 어렵지 않게 우리가 나아갈 방향과 목적이 보일 것도 같은데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씩 다르다. 이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홍세화는 『생각의 좌표』를 통해 그 이유를 묻고 우리들이 생각하는 방향에 대해 반성을 촉구한다. 그러나 어른들의 경우 이 생각을 바꾸는 것은 산을 옮기는 것만큼 어렵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지도 않는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디에서 배워야 하는 것일까.

  너머학교에서 나온 고병권의 『생각한다는 것』은 십대를 위한 철학이야기 책이다. ‘철학’이라는 말만 들으면 딱딱하고 어렵다고 생각한는 친구들이 많지만 사실 철학은 생활이며 실천이다. 책 속의 어려운 개념이나 철학자들의 고리타분한 대화가 아니라 실제 삶을 위한 도구이며 행복한 삶을 위한 준비물이다.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삶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공부’와 ‘돈’만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어른들은, 학교에서는 왜 행복과 삶에 대해 진지하게 가르치지 않는걸까?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 공부 잘하는 방법, 돈버는 방법에 대한 관심과 이야기는 넘쳐난다. 대형서점도 학습법과 재테크, 자기계발서들이 점령한지 오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만큼 여유있고 행복해지고 있는 걸까.

  연구공동체 ‘수유+너머’에서 활동하는 고병권은 다양한 철학적 탐구와 인문학적 사유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왔다. 이 책은 십대를 위한 철학 입문서이다. 어깨에 힘을 빼고 짧은 글들을 통해 철학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열린교실’ 시리즈의 출발에 서 있는 이 책은 이후에 출간될 책들에 대해서도 관심과 기대를 갖게 한다. 새로운 기획과 신선한 책들은 청소년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선물이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을 책을 통해서라도 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두가 같은 꿈과 미래를 향해 부나방처럼 달려들지 않도록 다양성을 인정하고 차이를 이해하는 사람들의 생각의 변화가 우선이지만 아이들의 생각도 조금씩 달라질 필요가 있다. 결국 아이들의 생각은 어른들의 생각이 세뇌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삶의 주인으로 우뚝 서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가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히만의 경우를 보면, 악마란 악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따져보지 않았던 거예요. 그냥 주어진 일을 기계처럼 무조건 했던 것이죠. 생각이 없으면 우리도 언제든 악마가 될 수 있는 겁니다. - 고병권, <생각한다는 것>, 50쪽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생각’의 중요성과 ‘철학의 의미’를 아주 쉽게 간단하게 설명하는 대목이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왜 ‘악마’가 될 수 있는지 역사 속 인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청소년들을 우리들의 미래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키우고 무엇을 가르치는지 생각해보자. 삶을 이해하고 세상을 따듯하게 해 줄 수 있는 생각과 판단력과 능력을 함께 길러주고 있는지 공부하는 기계가 되어 수능 성적표로 인간의 등급을 매기는 일에 몰입하고 있는지 말이다.

  아이들의 다양한 꿈을 스스로 찾아나갈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고 생각을 이끌어 주고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땀흘려 일하고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어른인가 반성해본다. 다르게 산다는 것은 대충 산다는 말이 아니다. 굳이 남들처럼 살지 않겠다는 반항도 아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고 이 길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고민이며 이렇게 사는 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고 내 삶이 행복해지는 길인가에 대한 반성이다. 그래서 생각한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생각을 낳는 것’, 즉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고, 그것은 또한 ‘다르게 살아가는 것’ 입니다. 철학은 ‘생각하는 기술’이지만, 그때 생각의 기술이란 ‘삶을 가꾸는 기술’이었잖아요. - 고병권, <생각한다는 것>, 76쪽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는 십대에게, 모든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는 청춘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그들을 행복하게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때대로 불면의 밤을, 고통스런 고민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렇게 ‘철학을 한다’는 것은 생각하고 공부하고 자유롭고 행복하다는 말과 다름없다. 조금 더 먼 미래를 보고 보다 나은 나를 위해 행복하고 즐거운 인생을 위해 철학 즉 생각한다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 책을 통해 생각을 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떤가.

‘철학을 한다’는 말은 참으로 여러 말과 통하는 것 같네요. 행복하게 산다는 것, 생각한다는 것, 공부한다는 것, 자유롭다는 것, 친구를 만든다는 것, 이 모든 말들이 ‘철학을 한다’는 말과 통하는 것 같습니다. - 고병권, <생각한다는 것>, 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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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고병권이 쓴 '민주주의'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5-25 15:43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무엇인가’를 묻는 책들이 태풍처럼 출판계를 흔들어놓고 있다.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바람이 채 가라앉기 전에, 뒤를 이어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바람이 불고 있다. 이제 여기에 다시 고병권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바람을 추가해야 한다. 그러나 고병권이 몰고 올 바람은 일시적으로 불고 지나갈 바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해서 되돌아올 바람이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사상 지형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파열을 내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