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집은 제사에 대한 집념이 대단하다. 장손집이다 보니 제사도 많은데다 일가친척도 많아 제삿날도 북적거리는 편... 특히 명절이나 큰 제사의 경우는 며느리들 엉덩이 붙이고 있을 틈도 없다. 게다가 제사 시간은 무조건 12시였다.
처음에는 너무 너무 힘들었지만 그것도 지나다 보니 요령도 생기고 뭐 그래봐야 일년 중 한달도 안된다 생각하면 봉사하는 마음으로 견디자 한다. 순전히 내 맘 편하고자 미련을 버린거다.
제사를 줄이는건 꿈도 안꾸지만 제사시간에 대한 미련은 참 오래도 남는다. 저 12시 제사 지내고 나면 어른들 모두 제사밥으로 식사하고 그거 치우고 그러면 집에 가면 새벽 2시 3시가 보통이다. 제사 다음날 놀게 해주는 것도 아닌데, 저 시간에 가서 자고 출근하는건 정말 죽을 맛이다.
그러던 어느날 시아버님께서 갑자기 하신 말씀... 요즘에는 다 제사도 일찍 지내는데 우리도 좀 빨리 지내자 하신다. (이런 횡재가!!! 룰루랄라~~~) 그러데 다음 말씀. "할아버지 제사는 빼고 나머지는 11시에 지내자"
아니 쓰시려면 팍팍 좀 쓰시지. 11시가 뭐란말입니까... 김 팍 샜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싶어 눈물을 머금고 위로했다. 그건데 그 11시로 당긴 첫 제사때. 이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시할머니께는 모두 12시라고 속이고 제사를 지냈다. (시할머니가 눈이 어두우셔서 벽시계를 못보신다.) 무사히 넘어가는가 싶었는데 무심코 둘째 작은 아버님께서 할머님께 "제사를 이렇게 빨리 지내니 얼마나 좋으냐"고 말해버린 거다. 한동안 난리가 났었다. 그래도 그 이후로는 아무도 고자질 안하고 순항중....
세상이 다들 살기 어렵고 바쁘다 보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제사에 오는 어른들의 숫자도 줄어들고, 작은 제사는 어떨 때는 시아버님과 우리집 서방 달랑 둘이서 절할 때도 가끔 있고....
그러던 어느날의 또 제사. 그날은 정말로 아무도 못오신다고 연락이 와서 시아버님이랑 우리집 서방 달랑 둘이서 절하나 했다. 근데 게다가 시아버님이 상가집에 가시게 돼서 절을 못하신다는거다. (울 시집은 이런거 하나는 철저하게 지킨다. 전에 한 번 내가 그 전날 상가집에 갔다가 제사지내러 갔더니 그 말 들으신 울 시엄니, 부정탄다고 제사음식 근처도 못오게 했다. 결국 그날 난 아무것도 안하고 탱자 탱자 놀다가 설겆이만 조금 했다. 근데 남들 일하는데 노는것도 별로 편하지는 않더만....^^;;)
저녁 8시쯤 시아버지께서 돌아오셨는데 어차피 제사에 절은 못하니 약주를 걸치시고 오셔서 바로 주무신다. 우리집 서방 이때다 싶어서 시어머니를 조르고 졸라 9시에 번개처럼 제사를 지내버렸다. 그리고는 마지막 마무리 치우기를 하는데 이대로 잘 넘어가나 싶었다. 근데 아뿔싸!! 우리 예린이!!! 아무 생각없이 할아버지한테로 슬라이딩.... "할아버지 제사 다 지냈어요" 잠에서 깨어나신 시아버님, 시계 보시고 난리가 났었다. 우리서방 완전히 깨졌다.
지금도 여전히 제사는 11시... 달라질리가 없건만 그래도 이것만은 왜이리 미련이 남는지....많이도 안바란다. 9시 제사, 이게 내 소박한 꿈이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