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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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01년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을 잡고 그를 지원하는 탈레반을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그 명분이 헛소리임이 밝혀지자 아프가니스탄 국가 재건과 여성인권의 확립이라는 명분을 다시 내걸었다.
그리고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인권 문제는 미국의 정당성을 확보해주는 선전물로 아주 효과적으로 이용되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보다 보면 곳곳에서 가슴이 터질듯한 막막함을 느낀다.
두 여인의 삶과 아프가니스탄의 역사가 교차하는 곳곳의 지점에서 여성들은 몸으로 마음으로 피를 흘린다.
중간쯤인가? 탈레반이 들어서고 모든 여성이 직장에서 집으로 강제유폐되고 난 이후,
라일라가 딸을 고아원으로 데리고 가는 장면에서 라일라는 어린 시절 학교 선생님을 마주친다.
세 아이의 손을 이끌고 고아원에 데리고 온 선생님.
그녀는 아마도 과부가 되었겠지?
그러니 무슨 방법으로도 아이들을 먹여살릴 수 없었을테고, 결국 고아원으로 아이들을 보내는 것 외에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와 딸 같은 나이차이의 두 여성 마리암과 라일라가 할아버지 같은 남자의 두 아내가 되는 것이 가능한 나라.
그곳에서 유폐되어 자신의 생각도 주장도 심지어 생존권조차도 모두 남편에게 귀속되어야 하는 삶

그래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인권은 이건 그들 나라의 문제야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가혹하다.
소설이 소설로 읽히지 않는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래서 탈레반을 몰아내준 미국에게 아프간 여성들은 감사하고 있을까?
탈레반이고 알카에다고 민간인이고를 구분하지 않고 그들의 땅에 폭탄을 퍼부어댔음에도 여성의 삶을 좀 더 나아지게 했다고 감사하고 있을까?
<천개의 찬란한 태양>이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화되고 함으로써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삶이 앞으로 더 나아질거라고 얘기해야 할까?

소설속에서 마지막에 라일라는 이제 다시 삶을 시작하려한다.
단지 생명만을 부지하던 무덤속에서의 삶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삶을.....
그러나 지금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은 정말로 희망의 삶을 준비하고 있을까?
미국의 침공 이후 오히려 여성의 분신자살율이 3배가 증가했다는데 그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
소설은 감동적이다. 눈물 날정도로 감동적이며 충분히 마음아프다.
마리암과 라일라에게 감정이입하며 그녀들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을 위해 눈물흘리게 한다.
하지만 이것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라는 그들이 저지른 죄악을 가리게 하는 것으로 이용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이렇게 마음아픈 소설의 운명이 어떤 길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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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9-05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대단한가 봐요~ 많은 분들의 반응이 좋아서 급호감과 급궁금...
하지만 읽을 책들은 쌓여만 가고...ㅜㅜ

바람돌이 2008-09-05 13:06   좋아요 0 | URL
사실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예상가능한 수준이죠. 딱히 명작이라고 할건 아니예요. 다만 이게 실제 현실이라는 전제가 깔리다보니 감정이입이 너무 잘되버리는 문제가 있고 그 상황이 또 너무 심각하다보니 흡입력이 아주 크게 되버려요. 현재의 관심과 문제제기 지점을 잘 파악한 책이라고 할가요?

porque 2008-10-02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탈레반이란 거 자체가 구소련에 점령된 아프간 탈환을 위해 미국 CIA에 의해 조직된 단체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아프간의 여성 인권이 어떻고 하며 떠들어대는 미국의 가식이란.. 이 책의 저자도 전 의심의 눈길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의사면 얼마나 눈코뜰새 없이 바쁜데 이런 책을 쓸 시간이 날까요. 더군다나 이 책이 갖는 정치적 파급력을 생각하면 대필이 아닌가 의심의 눈길이 가는 걸 어쩔 수 없습니다.

바람돌이 2008-10-02 23:31   좋아요 0 | URL
그렇다고 아프간의 인권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일종의 딜레마인 것 같아요. 이런 사실을 선전하면서 미국이 노리는게 뭔지를 제대로 봐야겠죠? 그리고 이런 현실이 미국에게 유리한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하는 이상은 조장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 미국의 의도라는 것. 그게 아니라면 아마도 미국이 왜 아프간 여성에 관심이나 가지겠어요?
설마 대필까지는 생각안하고 싶네요.
 
리버 보이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 / 놀(다산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따지고 보면 참 단순한 내용인데...
그게 참 뭐라고 할까?
강물이나 바다를 오래 보고 있으면 순간적으로 내가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물귀신인가? ^^;;
근데 이 소설이 닥 그런 느낌이다.
책 속으로 자꾸 빨려들어가는 느낌 - 딱히 재미있다 없다의 느낌과는 다른 그 무엇.

읽다보면 내가 어느새 15살 소녀 제스가 되어 강물을 헤엄지고 있거나
리버보이의 모습을 쫒고 있거나
할아버지와 소녀의 애정을 가만히 훔쳐보고 있는 느낌 그런 것들이다.

이 책에서 분명한건 사실 아무것도 없다.
죽음을 앞에 둔 할아버지의 집착과 상처의 근원이 무엇인지
리버보이의 정체가 무엇인지...
할아버지가 그토록 완성하고자 한 그림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지...
정말 모든 것이 어렴풋하게 환상처럼 스쳐갈뿐이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어쩌면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단숨에 이 책을 읽게 한 매력의 정체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 또 너무나 분명한 것은 굳이 말이 아니어도 손에 잡힐 듯 느껴지는 할아버지와 제스간의 특별한 유대이다.
아마도 모든 환상의 근원에는 이 둘 사이의 지극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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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Journey 2008-08-26 0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 브리핑에 뜬 제목을 보고, 순간 '케익?'이란 생각을 하며 달려왔어요. ^^;

바람돌이 2008-08-26 13:17   좋아요 0 | URL
마음이라고 앞에 붙일걸 말예요 전 이런 제목이 케익이나 화장품을 연상시키리라고는.... ㅎㅎ

순오기 2008-08-26 0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이 책을 읽다 말았어요~ 계속 다른 일이 생겨서 읽다 말고 읽다 말고~` 서너번 그랬더니 그만 김이 빠져버려서 못 읽었어요. 독서도 방해받지 않고 집중해야 하는데... 나중에 처음부터 다시 봐야겠어요.^^

바람돌이 2008-08-26 13:18   좋아요 0 | URL
인연이 안돼는 책이구만요. 이 책은 제스를 따라 가는 긴장감이 핵인 것 같은데 그런 작품은 역시 긴장감 풀어지기 전에 단번에 읽어야 될 듯... 안그럼 좀 김이 샐것 같아요. ^^

Kitty 2008-08-26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서재 브리핑에서 '촉촉하게'만 보고 화장품 리뷰인 줄 알고 ㅎㅎㅎㅎㅎㅎㅎㅎ

바람돌이 2008-08-26 13:18   좋아요 0 | URL
다음엔 꼭 촉촉하게로 시작하는 화장품 리뷰를 쓰겠습니다. ㅎㅎㅎ

세실 2008-08-26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글이 가슴에 와 닿네요. 지극한 애정이 그립습니다. ㅎㅎ

바람돌이 2008-08-26 13:19   좋아요 0 | URL
사실 할아버지와 손녀가 그것도 사춘기의 손녀가 저렇게 지극한 애정으로 연결되기가 쉬울까 싶은데... 한편으로 부럽기도 합니다.

미설 2008-08-26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랬어요, 솔직히 뭐 아주 재밌는 느낌은 아닌데 고요함 속에서 뭔가 끌어당기는 느낌이 있더라구요, 읽는 내내 강물소리가 들리는 느낌이었어요^^

바람돌이 2008-08-26 13:2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읽는 내내 강물소리가 들려요. 어둠속에 묻혀 바위를 휘감고 돌며 흘러가는 강물소리.... 이게 책의 흡입력인 것 같아요. ^^
 
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영난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오랫만에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잡았다.
한 번 잡으면 워낙에 중독성이 강해 오히려 왠만하면 뒤로 미루어두게 된다.
이번에도 역시나 책을 잡자 마자 결국 다 읽을때까지 다른 일은 다 미루고 새벽까지 책을 읽게 되버렸다.

한 여자가 갑자기 사라진다.
약혼까지 하고 곧 결혼할 남자를 두고, 우연히 신용카드를 만들려 하다가 개인파산을 한 사실이 알려지자 그야말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것.
그녀는 왜 사라졌을까?
휴직중인 형사 혼다는 여자의 연인인 처조카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그녀를 찾기 시작한다.
그런데 곧 밝혀지는 놀라운 사실들.
그녀 세키네 쇼코는 진짜 세키네 쇼코가 아니었다는 것.
어떻게 된 일일까? 그럼 그녀는 누구지? 진짜 세키네 쇼코는 어디에 있지?

전혀 풀릴 것 같지 않은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여기도 풀어보고 저기도 풀어보고 하면서 쫒아가는 길은 잠시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아! 나도 궁금해 죽겠다. 도대체 어떻게 된걸까? 뒤쪽을 살짝 먼저볼까? ㅎㅎ

하지만 이것 뿐이라면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 이다지 나를 잡아끌지는 못할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 가지는 강점은 책속 형사인 혼다를 따라가는 길에 사라진 그녀- 범죄자일지 모르는 그녀를 어느새 동정하고 마음아파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혼다의 마음이 되어 그녀를 이해하고 싶어지게 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렇기에 그저 범인이 누군지 왜 그랬는지가 궁금증의 다가 아니게 되고 그녀가 그토록 절박하게 되었던 이유, 그리고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로 궁금해지는 것이다.

신용불량이니 개인파산이니 하는 말은 이미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되었다.
그럼에도 이것을 사회 전체의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여전히 부족하다.
대부분이 개인의 불성실이나 잘못으로만 치부해버리는 것이 여전히 많은것 같으니...
이 책은 이런 현대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사회 구조와 끊임없이 상업적 환상을 만들어내는 자본주의 체제에 있음을 고발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정말로 다시 고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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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2008-08-24 0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야베 미유키의 책은 한번 잡으면 놓기 정말 힘들지요. 가독성도 그렇지만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왠지 예사롭지 않더군요.

전 이 책을 꼭 읽고 싶어서 중고샵을 통해 간신히 구해놓고선 아직도 못 읽고 있답니다. 언제든 읽어야지...하면서도 매번 기회를 놓치게 되네요. ㅠㅠ;;

바람돌이 2008-08-24 23:54   좋아요 0 | URL
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어요. 요즘 일본 소설이 진짜 인기인지 방학 하면서 도서관에 일본 소설들이 싸그리 대출되고 거의 비어있더라구요. 뭐 간신히 빌렸죠. ㅎㅎ 모방범 보다야 못하지만 그래도 미야베 미유키의 진면목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책이었어요. 빨리 읽으세요. ㅎㅎ

마노아 2008-08-24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영주 감독이 영화로 만든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진짜라면 기대가 꽤 커요. 200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잡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설정들이잖아요ㅜㅜ 안 그래도 볼 책 많은데 미미여사한테까지 꽂혔으니 저는 큰일이에요^^;;

바람돌이 2008-08-24 23:57   좋아요 0 | URL
아 변영주 감독이요? 이거 진짜 기대되네요. ^^
모방범은 보셨나요? 전 모방범이 최고던데... 뭐 그다지 많이 봤다고 할수는 없지만요. 미미 여사는 화차나 모방범같은 사회파 추리소설이 딱인것 같은데 어찌나 곳곳으로 외도를 하는지... 그런데 아무래도 초능력 얘기나 게임, SF쪽은 좀 떨어지던데 말이죠. ^^

노이에자이트 2008-08-24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야베는 20대 초반들에게도 인기가 있더군요.근데 이 분 작품은 분량이 상당하더라구요.

바람돌이 2008-08-24 23:57   좋아요 0 | URL
저도 20대랍니다. 마음만... ^^
분량이 장난 아니지만 워낙 가독성이 뛰어나서 한 번 잡으면 끝장을 봐야해요. ^^

노이에자이트 2008-08-25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몸매와 목소리가 20대!!! 마음은 해맑은 10대! 배가 안 나왔어요!!! 근육도 탱탱하구요.소녀시대와 원더걸스를 섞어놓아도 다 분류할 수 있어요.

바람돌이 2008-08-25 23:40   좋아요 0 | URL
윽! 배 얘기에서 항복... ^^;;
 
서라벌 사람들
심윤경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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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증왕의 부인인 연제태후의 이야기에서 화랑의 이야기, 김춘추, 향가 혜성가의 이야기, 원효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글들은 모두 다른 이야기인것 같으면서도 같은 줄기로 이어지고 있다.
고대의 신라는 그야말로 소백산맥 아래에 치우쳐 있는 작디 작은 소국에 불과했다.
일찍부터 중국과 대결하거나 교류하며 국제성을 키워왔던 고구려나 백제와는 다른 것.
고신라의 예술품들을 보면서 흔히 고졸하다는 표현을 쓰는데 그건 어떤면에서는 촌스럽다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신라가 외부로 눈을 돌리고 확장을 위한 새로운 이데올로기 - 불교로 대표되는 중국문화를 받아들이는 시기에 그것에 대한 고대신라인들의 태도를 작가 심윤경은 너무나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고대사회에서 흔히 왕은 신 또는 신적존재이다.
신적 존재 또는 신이라는 것은 어쩌면 왕권을 더 강화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그 왕의 신적역량 또는 무당적 역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때는 바로 왕권을 겨냥하는 칼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왕들은 끊임없이 신비한 탄생설화나 신적인 예지 능력같은걸 보여주어야 했고 이것은 소설속에서 신국이라는 이름과 성골출신 왕들의 신체적 거대함으로 표현된다.
실제로 삼국유사에서는 왕의 신체적 특징이 아주 거대했다는 기록은 지증왕과 진평왕대에 나올뿐 나머지 왕들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지증왕은 내물왕 이후 고구려의 끊임없는 간섭을 받고있던 신라가 드디어 외부로 눈을 돌리며 확장을 시도하기 시작하는 시기의 왕이며, 진평왕은 불교를 받아들인 신라왕실이 왕실의 부처가계화를 시도하며 왕족에 성골개념을 만들어낸 이다.(이것은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니며 성골과 진골의 구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일치된 학설이 없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중 지지를 많이 받고 있는 견해중 하나이다.)
이 두왕의 기록에서 작가 심윤경씨의 신국 신라 이야기는 실타래를 풀어나간다.

신국 신라는 거대한 신체를 가진 성골 왕- 즉 신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이며, 신들의 교합제에 의해 풍요를 가져오는 나라.
이런 설정만으로 본다면 황당하기 그지 없지만 이것을 당시 중국문화를 받아들이는 신라 각계 각층의 이야기로 풀어나가면 의외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아진다.
고대의 전통신앙에 대항해 새롭게 합리성으로 무장해 밀려오는 중국문화를 걱정하는 연제태후
혼인을 앞두고 열린 연회에서 세상의 변화를 직감하고 거기에 대항하거나 합류하거나 하는 귀족들.
진골 최초의 왕이 된 김춘추가 가지는 성골에 대한 열등감이 대식과 그로 인한 파멸로 이어진다든가...
신라 전통의 신앙이 혜성을 물리쳤음에도 이미 시대와 왕은 불교의 편을 들어주어 고대신라의 퇴장을 씁쓸하게 보여주는 혜성가 이야기
신분의 차이를 무릅쓰고 야밤도주를 통해 뜻을 이룬 김서현과 만명부인, 그리고 그들의 아들인 김유신. 자신의 사랑을 위해 그토록 정열적이었던 만명부인이 아들의 천관녀와의 사랑에 대해서는 그토록 엄격했던 이율배반을 문화의 충돌과 변화로 풀어가는 천관사 이야기.(난 천관사 이야기는 원효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김유신 집안의 이야기로 읽었다)

고대사회는 워낙에 기본 자료가 부족하다보니 사실상 그 시대를 실증적으로 복원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틈새가 이야기가 만들어질 공간을 더없이 넓게 펼쳐내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것을 흥미로우면서도 나름 공감이 가는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것이다.
한줄 내지 두줄의 자료에서 그 시대의 사람들을 재창조해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창조의 힘을 만끽할 수 있는 영역일테니...
일전에 비슷한 시기를 소설화한 <미설>이란 작품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주제를 다루지만 공감의 힘에 있어서 <미설>과 <서라벌 사람들>은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이것이 이야기꾼의 힘이 아닐까?
발표하는 책마다 즐거움을 주는 이야기꾼 심윤경씨.
다음 작품은 어떤것이 될지 벌써 기다리는 즐거움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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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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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화될 수 없는 전쟁'이라고 어느 영국 주교는 영국 공군이 독일 도시를 폭격한 행위를 비난했다. 가장 악명높은 영국 공군의 폭격은 1945년 2월 13일과 14일에 걸쳐 드레스덴에 가해진 것이었다. 이때 떨어진 폭탄 1,000개로 사망한 사람 수는 약 6만명에서 12만명 정도로 추산되며, 18세기의 아름다운 건축물도 이때 많이 파괴되었다. 이 사진은 시 청사의 탑에서 내려다본 폐허가 된 시가지 전경이다. '엘베 강의 피렌체'로 불리는 드레스덴은 진격하는 러시아군에 쫒긴 피난민들로 가득차 있었다.......(사진과 글 - 20세기 포토다큐세계사 4 독일의 세기 186-187쪽)

드레스덴 폭격이 전후 20년간 미국에서는 아는 놈만 알고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던 데는 아마도 이유가 있으리라...
2차대전동안 무수히 많았던 폭격들이 모두 은폐되었던 것은 전혀 아닐터이다.
오히려 전쟁의 혁혁한 성과로 널리 알려지고 찬양되어졌을터...
그럼에도 이 폭격은 예외적으로 쉬쉬 되어왔던 것은 이 폭격이 군사적으로는 거의 쓸모가 없고 단지 독일의 항복을 며칠 더 앞당긴다는 명분으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폭격이었기 때문일터... 또한 희생자의 대부분이 민간인이었고...

따라서 서양인들에게는 이 드레스덴 폭격이 하나의 집단적 트라우마가 아니었나 싶어진다.
드레스덴 폭격이 소재로 등장하는 소설이 근래에 본 것만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수 없게 가까운>, <책도둑>, 그리고 <제 5도살장>이다.
그들 나름대로 이 트라우마를 제대로 표현하고 치유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은 드레스덴 폭격때 미군포로의 신분으로 이 도시에 있다가 요행히 살아남은 빌리 필그림 또는 저자자신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제목의 상징감으로 인해 전쟁의 비참한 모습을 현장묘사를 통해 얘기하고자 하는 소설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소설속에서는 잔인한 장면은 의외로 별로 없다.
빌리 필그림이 아니 커트 보네거트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전쟁의 트라우마이다.
드레스덴에 가해진 아군의 폭격에서 살아남은 빌리 필그림은 남들이 보기에는 전혀 문제없이 그것도 아주 부자가 되어 성공적인 삶을 이룬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삶은 늘 시간여행중이다.
그가 살아남았던 드레스덴을 떠나지 못하여 배회하고, 때로는 트랄파마도어라는 행성의 우주인들이 잊어라 잊고 살아라 하는 것처럼 다른 행성으로 자신의 정신을 보내버리기도 한다.
하루 하루 매순간 그는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 비현실을 넘나드는 삶을 살고 있다.
전쟁의 트라우마가 한 인간의 정신을 어떻게 만드는지 빌리 필그림을 보라라고 얘기하는 것일까?

하지만 빌리 필그림은 끊임없이 읊조린다.
그렇게 가는거지 뭐......
모든 인간과 생물의 죽음에 그저 그렇게 가는거지 뭐라고 읊조리는 빌리는 과연 달관한 것일까?
아니 내가 보기엔 견디기 힘든 악몽으로부터 그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 바로 그 읊조림일 것 같다.
그런식으로 인간의 숙명으로 죽음을 받아들여버리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는 훨씬 더 전에 자기 머리에 총을 들이댔을지도 모르겠다.

커트 보네거트가 이 책을 씀으로써 빌리의 트라우마를 전면에 내세온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드레스덴 폭격을 고발하기 위해서?
아니면 전쟁의 상처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아니!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인류가 아직도 드레스덴을 여전히 아니 더 확대된 형태로 반복하고 있기 때문일게다.
이대로라면 전 지구의 생물들이 집단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의 확대반복!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지구 어느 한켠에서는 총알이 튀고 폭탄이 터지고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고 누군가를 죽이고 있을게다.
제2 제3이 아니라 수백 수천개의 드레스덴이 지금도 만들어지고있을 것이다.
그것이 당신이 사는 땅은 절대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할까?
모든 행동의 정당한 출발점은 휴머니즘이어야 한다.
빌리의 상처에 진심으로 슬퍼하고 공감해보자!!
그속에서 분노도 저항도 애정도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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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8-05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개!
제가 강추한 보람이 있어 보입니다.ㅎㅎ
현실과 비현실같은 현재상황이 자꾸 체념화될까 우려됩니다.
그렇게 살다 가는거지...ㅎ

바람돌이 2008-08-05 22:59   좋아요 0 | URL
여우님 덕분에 좋은 책 읽었죠 뭐.. 제가 감사합니다. 단 리뷰는 여우님과는 절대 비교안해요. 도대체가 비교가 돼야죠 ㅎㅎ
전 개개인은 체념도 하고 포기도 하지만 전체로는 늘 새로운 세대가 희망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그저께 읽은 지식 e에 그런 얘기가 나오더군요. 68혁명으로 세상이 바뀌었냐고? 아니 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바뀌었다고... 그게 우리의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