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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광주코뮌에 참가했던 조선인 공산주의자요. 내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잊어버린 적은 있어도 내 조국을 잊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오.....나는 동무와 계급이 먼저냐, 민족이 먼저냐를 따질 마음이 없소. 우리에게는 필요한 건 오직 우리만의 나라, 우리만의 국가일뿐이오. 그게 바로 모든 조선인의 꿈이오."
"그 퍽이나 낭만적인 생각의 후과는 누가 치른다고 생각하오? 간도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시오. 우리는 일제의 첩자이자, 중국 공산당의 앞잡이요. 우리는 나기를 그렇게 태어났소. 동무가 한인 소비에는를 한번 꿈꿀 때마다 수많은 조선인들이 억울하게 죽어가오. 동무가 조선인만의 국가를 꿈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모두에게 배척당하오. 동무가 민족해방을 외칠때마다 수많은 전사들이 처형당하오." (278-279쪽)
1930년대 간도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이면서
중국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조선인들이 억척으로 일군 땅.
무엇하나 손에 확잡히는게 없는 혼돈과 불확실의 땅.
그럼에도 그속에 너무나도 확실하게 그어진 국경선
그래 빛인지 어둠인지 알 수 없는 그 모든 모호함은 거기에서 시작되어진게지....
누가 저들의 물음에 이것이 답이오라 말할 수 있을까?
조선의 혁명은 조선인의 손으로?
아니면 프롤레타리 국제 연대에 걸맞게 연합전선을?
그저 말이 아니라 아끼는 모든 이들의 생존을 걸고 하는 의견대립이란
결국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의심의 극한에서 울리는 소리 "탕!!!"
그렇게 총소리는 간도 땅 골짝골짝마다 울렸으리라...
수많은 조선인 공산주의 독립운동가들을 동료의 손에 죽어가게 했던 민생단사건은
단순히 당대 공산주의 운동, 독립운동의 어리석음이었다고
또 그저 안타까운 비극이었다고 말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간도 땅에서 불리우는 밤의 노래는
빛도 어둠도 아닌 그 어디쯤인가 벼랑끝 경계에서 불리우는 노래다.
자신의 사랑이 혁명가 푸가초프이기를 바랬지만
결국은 푸가초프가 아니라 사랑에 목숨을 거는 그리뇨프에게 끌림을 알게된 이정희의 운명은
그래서 비극이었을게다.
이상과 현실의 그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의 경계
그 경계는 그녀에게는 결국 죽음으로써만 넘을 수 있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일제의 고문을 강건히 이겨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프락치의 의심을 받고,
결국 그것을 못견뎌 진짜 일제의 앞잪이로 돌아서버린 남자 최도식.
그의 고뇌는 배신자의 것이라 그저 외면당하고 배제되어야 하는 그 무엇일까?
일제하 조선인들, 일본인일까? 조선인일까?
아 후세의 우리들에겐 너무나도 말도 안되는 답이 너무나 분명한 문제일지 모르지만,
다시 한번 물어보자.
태어날때부터 일본이었고 일본국 조선땅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란 사람에게 이 질문은 그렇게 간단할까?
김해연은 그렇게 일제하의 조선에서 국적에 대한 자각없이 자랐고,
또 다시 국적이 모호할 수밖에 없는 간도땅에서 일한다.
사랑이 그에게 그렇게 비극적, 폭력적으로 끝나지 않았다면 그래 그는 그렇게 한 세상을 살다 갈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아주 낮지만....
한 인간의 삶과 존재를 날때부터 규정지어버리는 모든 경계들.
김해연은 이정희로 인해 그 경계들을 자각한다.
아니 그 경계들의 첨예한 대립의 벼랑끝으로 내몰린다고 해야겠지.
간도땅에 사는 이들 누구도 피해갈 수없었던 그 벼랑끝으로....
그래서 죽음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누군인지 알수 있다는 그 읊조림은
결국 모든 외부적 경계선들이 걷혀지고 그저 나라는 존재만이 남는 그 마지막 순간에서야
내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결국 그 무엇은 사랑이었단 말이지.
이정희에게도, 여옥에게서 구원을 얻은 김해연에게도, 심지어 가족에게 귀환한 최도식에게도...
어쩌면 그 모든 경계들이 아니었다면 평범했을 그 모든 이들이
결국 마지막으로 원하는건 그저 사랑하고 사랑받고 그렇게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었겠지
나와 너라는 경계, 이쪽과 저쪽이라는 경계, 구분짓기에서 인간 비극은 싹트는 것이리라..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그리고 그 내부에서도.....
그러므로 이 소설을 사랑얘기로 읽든
아니면 1930년대 간도땅의 비극적 역사로 읽든
결론은 결국 경계에 갇힌 인간들의 아픈 이야기가 되리라..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전에는 벗어날 수없는,
단지 과거가 아니라 언제나 재현될 수 있는 ,
아니 어쩌면 지금도 우리속에 들어와있는 그 경계선들의 비극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