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낚는 자기연출법 - 만남의 순간 상대를 사로잡는 마법의 테크닉
요시무라 다카미 지음, 김현영 옮김 / 시아출판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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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람을 낚는 자기연출법이라....낚는다는 표현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기연출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절실히 깨달았기에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일본인들이 쓴 책 중에는 이런 종류의 책이 다수 되는 듯하다. 굳이 일본인을 만날 때 다테마에(표면상의 원칙이나 방침)와 혼네(본심)를 구분하라는 말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랬거나 저랬거나, 상대방에게 끌려가지 않고 나의 편으로 만드는 방법은 중요한 기술이다.

 

이 책에서는 지금까지의 인간관계는 현재의 나를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즉, 유유상종, 초록은 동색이란 말이다. 하긴, 우리는 그 사람 자체에 대해서보다 그 사람 주변에 더 신경을 쓴다. 어떤 사람과 어울려 다니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등등... 그러니까,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도 어떤 사람을 사귀느냐는 중요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가식적인 생각과 행동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즉, 나 자신이 순수한 마음이 없으면 노력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순수한 마음의 기반 위에 이 책에서 말하는 실천요령을 접합해 보자. 그러면, 당신도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잇을 것이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만, 이런 종류의 책에서 가르쳐 주는 내용을 모두 적용시키려 하지 말라. 자기에게 필요한 엑기스만 차용하라.

 

우선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첫인상을 좋게 하는 커뮤니케이션기술에 동의한다. 꿈과 목표를 가진 사람, 유머, 성실함, 시선의 자연스러운 처리, 웃음, 칭찬, 그리고 목소리는 첫인상을 좌우하는 주요 포인트다. 이러한 것들은 연습이 필요하다. 평소에는 전혀 그러지 않는 사람이 갑자기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니까..

 

자, 또 한가지, 모임에서 호감을 사는 요령 중에서 가장 공감하는 내용은 "여성끼리 똘똘 뭉쳐있지 말자"는 것이다. 여러 모임에 참여해봤지만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모임의 분위기를 망치는 주범이다.

 

그러나, 초면에 받은 느낌이 좋지 않다면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는 조언은 그리 탐탁치 않아 보인다. 물론 나 자신 역시 첫인상이 좋지 않은 사람은 끝까지 그런 경우가 많은 편이긴 하지만, 내가 그를 소극적으로 보아서 일부만 봤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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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삶
레아 징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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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p. 147

에로스는 포로스(풍요)와 페니아(빈곤)의 아들이라서 다음의 상황에 처한다. 첫째로 그는 항상 가난하며, 사람들이 은밀히 상상하듯 결코 부드럽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그보다는 거칠고 불결하며 맨발로 정처 없이 떠돈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본성에 따라 언제나 맨바닥에 눕고, 문밖에서, 거리에서, 하늘 아래 노천에서 잠을 자고, 안식을 누리지 못한다. 그리고 아버지한테서는 선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쫓아다니는 성향을 물려받았으며, 아버지를 닮아서 남성적이고 영리하고 대담하다. ㄷ범한 사냥꾼이며, 영원히 술수를 부리고, 인식을 갈망하고, 교활하다. 일평생 철학자고 이대한 마법사고 독살자고 궤변가다. 그 본성에 따라서 영원히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 플라톤의 "향연"

 

에로스는 모차르트를 이야기하는데 딱 적당한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만 알고 있었을 뿐이지만-혹은 영화 아마데우스의 이미지- 책을 읽은 지금, 에로스만큼 모차르트에게 적당한 단어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콘스탄체는 그러한 에로스-모차르트-를 사랑한 여인이자 에로스-모차르트-가 사랑한 여인이다.

 

이 이야기는 코차르트의 죽음에서부터 시작한다. 모차르트가 죽은 후 콘스탄체는 [소문]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 소문을 모두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p.10 지금 이 시간에 결정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머지않아 자신을 향한 공격의 화살이 되어 날아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p.26 눈 앞에 선해요. 소문들... 곪은 내장같은 소문들, 터져서 모든 것을 오염시키는 소문들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다고요.

 

p.28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사람들이 소문으로 우리 아버지는 쓰러뜨릴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절대로 아니에요. 이제 나를 내버려둬요. 나는 소문들과 함께 살 수 있어요. 거의 모든 것과 함께 살 수 있다고요.

 

모차르트의 음악은 몰라도 모차르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얼마 전에는 모차르트 탄생250주년이다 뭐다해서 시끄럽기도 했고, 또, 아이의 태교를 시작할 때 흔히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몇년 전 개봉했던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도 있다. 그런데, 그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을까? 사실, 나는 유명인의 가족들이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중에게 인기있는 연예인의 온갖 사생활들을 다 이야깃거리로 삼아서는 그의 가족들의 대소사까지 전부 알려주는 연예뉴스의 가벼움에는 이미 질려버린 탓이다. 그런데, 나는 왜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에게 관심을 가지는가?

 

그것은, 콘스탄체에게 씌워진 악녀캐릭터 때문이다. 천재의 아내로 살아야했던 한 여인의 삶이 평탄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천재란 어떤 사람들인가? 나는 천재를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시대나 주위 사람들을 의식해서는 그의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열정이 제대로 분출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인간이 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모차르트만 해도 그렇다. 모차르트는 다른 일을 하는 순간에도 악상이 떠오르면 악보를 그려내야만 했던 사람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그 대상이 황제라해도 하고야 마는 사람이다. 벌어들이는 수입에 비해 지나친 낭비를 하면서도 그게 낭비인지도 모르고 살만큼 경제관념이 철저하지도 못했던 사람이다. 악보는 기가 차게 그려내면서도 그 손으로 제입에 들어가는 음식조차 제대로 못먹은 사람이다.

 

나라면 그런 남자와는 단 하루도 살지 못했을 것 같다. 그러나 콘스탄체는 모차르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았고, 모차르트의 음악적 열정을 이해했고, 그랬기에 그 모든 것을 감내할 수 있었다. 세간의 사람들을 그런 그녀를 모차르트를 이용해 돈을 벌어들이려고 하는 악녀로만 보았다. 모차르트 생전에, 그녀가 한 일은 오로지 모차르트를 내조하는 일밖에 없었는데도 말이다.

 

어쨌든, 그녀는 모차르트를 너무나 잘 이해했기 때문에, 그의 음악 작업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함께 할 수 있었다. 모차르트 역시 그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너무나 잘 알았다. 모차르트가 콘스탄체에게 보낸 편지는 그러한 모차르트의 마음을 잘 대변해준다. 콘스탄체 없이는 모차르트도 없었을 것이다.

 

콘스탄체를 비난하는 많은 목소리들은 결국, 그들 역시 모차르트를 이용해 한몫 벌려는 사람들의 목소리다. 그녀를 비난하고, 그녀를 악녀로 만들어 그녀의 것을 뺏으려는 사람들의 목소리다. 콘스탄체가 스무번이 넘는 이사를 하고, 모차르트의 낭비를 참아내고,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면서도 모차르트를 몰아세우지 않고 그의 음악작업을 오히려 격려했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녀가 모차르트 사후에 모차르트의 이름으로 부를 창출한다하여도 그 누구도 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 콘스탄체가 모차르트의 이름으로 벌어들인 수입이라는 것도 결국은 저작권이나 초상권 뭐 이런 등등의 권리이지 않은가?

 

대중 연예인들이 소문에 휘둘리다 사라져가는 모습 - 죽음을 택하거나 연예계에서 사라지거나 - 을 자주 본다. 이제는 그러한 것이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그러려니 하지만, 소문이 사람을 어떻게 피페하게 만드는지는 한번쯤 생각해보아야할 일이다. 지금은-사후에- 모차르트의 명망이 하늘을 찌르는 듯하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에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모차르트가 그만큼의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콘스탄체의 덕분이 아니었을까? 모차르트가 죽을 때 제대로 된 장례도 치르지 못할 정도로 궁핍했었기 때문에 그의 묘지조차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지만, 그나마 콘스탄체가 그의 작품을 지켜냈기 때문에 현재의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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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일곱 송이 붉은 연꽃 샘깊은 오늘고전 3
허난설헌 지음, 이경혜 엮음, 윤석남.윤기언 그림 / 알마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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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을 알고 있는가? 학교 다닐 때 다들 한번씩은 들어봤음직한 이름이고, 허균의 누이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 허난설헌이다. 한국역사에서 이름난 여성이라 하면 의례 신사임당이나 황진이 정도만 떠올리는 우리에게 허난설헌은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인물이다. 그러한 허난설헌을 다시 되살려낸 책이 바로 이 책 [스물일곱 송이 붉은 연꽃]이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는 그리 녹녹치 않다. 그것은 과거나 현재나 마찬가지다. 특히 조선시대의 여성의 삶은 더더욱 그러했던 듯 하다. 우리가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서 신사임당을 기억하거나, 화담 서경덕과의 일화로 더 잘 알려진 황진이와 마찬가지로 허난설헌 역시 허균의 누이로 기억하는 이가 더 많다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같은 이유일 것이다. 남자보다 뛰어난 재주를 가졌지만, 그 재주로 인하여 오히려 불행하게 살다 간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책에서는 허난설헌의 사람과 문학을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대상을 굳이 청소년으로 한정하지 않더라도, 허난설헌의 한시를 이해하기 어려운 어른들이 많을 터이므로 이 책을 성인들이 읽어도 될 책이라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전체적인 설명투의 문장이 청소년용임을 표방하고잇긴 하지만 말이다.

자, 또 한가지, 이 책을 읽기 전에 맨 앞장에 있는 [일러두기]는 꼭 읽기 바란다. 이 책 속의 시는 허난설헌의 한시를 요즘 청소년들이 읽기 쉽게 번안했음을 알려두고 있는데, 굳이 딴지를 걸려는 사람이 있을까 노파심에 [일러두기]를 꼭 읽어두기를 바란다.

한시(漢詩)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니라면, 한시를 읽어도 어떤 감흥을 느끼기가 어렵다. 그것은 특히 요즘 젊은이들처럼 한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더욱 그러하다. 이 책에서는, 다행히도(??) 이경혜씨가 한시를 아주 멋들어지게 번안해놓았다. 그래서 이 시를 쓸 당시의 허난설헌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더욱 쉽게 다가설 수 있다. 한시는 우리문학이기는 하지만, 한글세대인 젊은이들에게는 한시 역시 외국문학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질 것이다. 따라서 한시를 풀어쓰는 것 역시 새로운 문학의 재창조라고도 할 수 있는 문학번역과 같이 생각해야한다. 그래서일까? 이경혜씨가 재창조해낸 허난설헌의 시가 쏙쏙 마음에 와닿는 것에 안도감마저 느꼈다. 어설픈 번역이야말로 오히려 그것에서 멀어지게 하는 계기마저 되어버리니까 말이다.

허난설헌, 그녀의 삶이 스물일곱의 나이에 끝나버렸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언이라도 한듯한 -꿈에 본 것을 적다- 시를 읽으니 가슴 한켠이 씁쓸해진다. 스물일곱해를 살다간 그녀의 삶이 결코 아름답기만 햇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더욱 그러하다. 뛰어난 재주를 칭송받아 마땅하지만 오히려 더 외롭게 살다간 - 부부의 정도 그러하고 자식과의 인연도 그러하다 - 허난설헌.

그리고 여기에 더해 윤석남 윤기언의 작품은 문학과 더불어 미술 영역으로까지 확대된 허난설헌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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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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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일주일에 세번, 음식 쓰레기통에 스티커를 붙여 밖으로 내놓는다. 그때마다 나는 냉장고에서 썩어가는 야채와 과일들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버리곤 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나의 생활은 적어도 지금까지의 행동과는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

 

이 책에서는 세계의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넘쳐나고 비만에 시달리고 있는데, 또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아이와 아버지의 대화를 통해 쉽게 풀어내고 있다. 세계를 살펴볼 것도 없이, 우리 나라, 아니 내 주변을 둘러봐도 이러한 불합리를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학교에서 주는 무료급식으로 끼니를 떼우는 아이들이 넘쳐난다. 한 학교에 3-40명이 넘는다는 말도 있다. 그 아이들이 굶는 이유와 책임을 어디다 물어야 할까? 그들의 부모가 게으르고 나태해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실업자가 넘쳐나고, 한부모 가정이 넘쳐나는 사회적 구조를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을터이다.

 

이 책에서는, 수천만명이 기아로 사망하고, 수억명이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것의 주범은 살인적이고 불합리한 세계경제질서 (p.22) 라고 말한다. 그 세계 경제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선진국들(이른바 강대국들)과 다국적기업들, 세계 시장의 가격을 쥐락펴락하는 거대 자본들의 각성이 필요한 때이다. 물론 그들의 최고 목표는 이윤의 극대화이다보니 그런 각성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기아로 허덕이는 나라들을 살펴보면, 그들 나라에서 농산물을 생산할 수 없어서라기보다 자유무역협정이나, 식민지정책의 잔재로 계속되고 있는 단일농작물의 재배 등에 의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그 나라에서 생산, 소비가 가능한데도, 다른 나라의 잉여농산물이 싼 가격으로 시장을 점령해버리면 그 나라의 농가들은 더이상 생산을 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에 생산을 포기하게 된다. 또, 선진국들이 필요로 하는 농작물만을 생산하는 단일농작물재배 시스템이 되어버리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결국 주식이 되는 농작물(자동차나 공업제품과는 달리 생존을 위협하는 품목이다)을 자급할 수 없게 되니 다른 나라에서 수입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아져 버린다면??

 

지금 한미FTA협정으로 시끄럽다. 한두해 있어 온 일도 아니지만, 그동안 저게 뭐 그리 큰 문제일까 생각했었다. 싼 농산물을 들여와서 먹을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닌가 라는 안일한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주는 참혹함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의약품도 그렇다. 축산업을 통해 양질의 가축을 길러 풍요롭지는 않아도 자급이 가능했던 나라가 의약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축산업을 더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는 내용을 보면 어느 하나 자유로운 것이 없다.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자는 식의 협정이라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줘도 손해볼 것 없고 받으면 좋은 강대국의 입장일 뿐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론을 등에 업고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강대국들의 횡포는 이제 극에 달한 듯 하다. 국가를 떠나 자유롭게 무역을 하도록 하자는 허울 좋은 껍데기에 둘러싸여 그 이면을 보지 못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경제력과 기술을 가진 강대국과, 소규모 생산밖에 할 수 없는 나라들이 어떻게 같은 조건이라 할 수 있을까? 결국 강대국들에 의해 경제를 잠식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이다.

 

이 책 속의 아이도 그렇지만, 나도 항상 가진 의문이 하나 있다. 왜 남아도는 농작물을 기아로 허덕이는 이들에게 주지 않고 바다에 버리거나, 땅을 갈아엎어버리거나 하면서 없애버릴까? 결국은 그것 역시 무지막지한 경제 논리 속에 가려진 이유, 즉, 이윤 극대화가 최대의 과제이기 때문이었다.

 

또, 자연재해 등과 같은 어쩔 수 없는 사건에 의한 기아 외에도, 전쟁이나 내전때문에 기아에 시달리는 국가들도 있다. 미국이 잘하는 짓(?)이 있지 않은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남의 나라 내전 문제에도 거침없이 참견하고 전쟁을 선포하는 짓... 그런 짓도 골라가며 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쿠웨이트와 그 석유는 서방 강대국의 경제에 대단히 중요하지만, 아프리카 내전은 선진국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지. (p.89)

 

미국의 국제기업이 그때까지 누려온 많은 특권들이 침해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란다. (p.101)

 

부르키나파소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도 아니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도 아니니까. (p.143)

 

그러니까,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거나 자국 기업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발벗고 나서지만, 자국과는 아무 관련이 없을 때에는 한마디로 쌩깐다(--)는 사실이다. 세계 평화 수호자라는 탈을 쓰고 그 이면에서는 이리 저리 자를 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인간은 살기 위해서는 밥을 먹어야 한다.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한 최소한 조건 중에서도 음식은 가장 중요하다.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고 인권이 어떻고 떠들기 전에 가장 최소한의 조건조차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것인가는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저자는 기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자급자족 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하는 것 외에는 진정한 출구가 없다. (p.152)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밀어붙이기식의 FTA협정에서 자유로워져야 할 것이다. 누구를 위한 자유무역인가??

 

그리고, 이 책에서는 내 지식의 단순함을 일깨워준 대목도 있었다.

식료품을 실은 비행기가 수단 남부의 관목지대 위를 낮게 날면서 그 화물을 연신 떨어뜨리는 사진, 그리고 바싹 마름 덤불 속에서 거의 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나타나 화물 쪽으로 몰려드는 장면이었지. 사진 설명에는 "드디어 구호의 손길이 수단에 닿다"라고 적혀 있었어. 정말 현실과는 동떨어진 사진들이지. 하지만 실제로 구호활동은 그런 장면과는 크게 다르단다. 전문 의료지식을 바탕으로 대단히 면밀하게 이루어지거든. (p.59)

 

즉, 이런 식의 구호활동은 그저 그림일 뿐 현실이 아니란 것이다. 우리가 아플 때를 생각해 보자. 허약해진 몸의 기운을 북돋우고 추스리기 위해 먼저 위에 부담이 되지 않는 음식부터 먹기 시작을 한다. 그것도 어려울 때는 주사를 맞아 기력을 회복한 다음에 음식을 먹는다. 그런데 하물며, 만성적으로 굶고 있는 이들에게 적절한 처치 없이 곧바로 음식을 먹게 한다는 건 비상식적인 일이다. 음식을 주기 전에 의사의 진료와 처방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 내전이나 전쟁으로 인해 기아에 시달리는 지역에서는 특히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 하늘에서 떨어뜨린 화물을 줍기 위해 뛰어가다 지뢰를 밟거나 하여 다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한장의 사진을 통해 우리가 할건 다했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진정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다같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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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18 22:09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갈라파고스 2007년 11월 도서목록에 있는 책으로 2007년 11월 8일 읽은 책이다. 관심분야의 책들 위주로 읽다가 알라딘 리뷰 선발 대회 때문에 선택하게 된 책인데, 이런 책을 읽을 수록 점점 내 관심분야가 달라져감을 느낀다. 총평 물질적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이 책에서 언급하는 "기아의 진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막연하게 못 사..
 
 
 
바다의 풍경 1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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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타니 겐지로의 책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부끄럽게도.

솔직히 아동문학이니 청소년 문학이니 하는 책들에 관심이 없었던 탓도 있고

이런 류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어떤 계기가 주어지지 않았던 탓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하이타니 겐지로의 책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고

추천하던 책이라 이번에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생기자마자 주저않고 읽게 되었다.

책을 다 읽은 나의 첫느낌이자 하이타니 겐지로와의 첫만남은,

대단히 만족스러우며, 그와 더불어 많은 생각꺼리를 안게 되었다.


소키치는 고3이 되면서부터 등교거부를 하고

도시락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버지의 흔적 찾기를 하고 있는 학생이다.

자신의 생각을 잘 이야기하지 않기때문에 선생님과 친구들 뿐만 아니라

유일한 가족인 누나조차도 소키치가 왜 등교거부를 하고 있는지 알지를 못한다.

소키치의 담임인 시마오 선생도 소키치가 단순히 학교교육에 반항하기 위해

등교거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소키치 때문에 교사로서의 자신에 대해 고민을 거듭한다.

 

책의 첫머리부터 소키치의 등교거부는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등교거부는 일본의 교육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문제로 익히 들은 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등교거부에 대해서는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내가 알고 있는 등교거부는 학부모 또는 어른들의 요구 관철을 위해

이유도 모른채 등교거부를 명령(!!)받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뉴스 정도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도 아이들의 자발적 의지에 의한 등교거부가 존재한다.

학교교육에 반발하여 스스로 학교를 떠난 학생이나,

이런 저런 이유로 학교 측이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학생 등등.

그리고 그런 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가 이슈가 된 적도 있다.

 

혹시 주변에 등교거부를 하고 있는 학생이 있는가?

있다면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가?

 

대부분 등교거부의 이유에 대해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 대부분이 주위 사람들을 믿지 않으며(혹은 믿을 수 없게 되었으며),

또, 친구들조차도 그들을 외면하기 일쑤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눈높이에서 그들과 같이 생각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는

일단 학교에 가야한다는 전제하에서 그들을 지도하려 들거나,

설득하려들기 때문이다.

 

소키치도 마찬가지다. 소키치는 학교에 가지 않는 대신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웃들의 고기잡이 일을 돕기도 한다. 또, 돌아가신 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위해

사람들에게 묻기도 하고 직접 찾아다니기도 한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등교거부학생 = 문제아 라는 공식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는 소키치를 역시 그와 같은 공식의 눈으로 바라본다.

이것은 소키치 뿐만 아니라 다른 등교거부 학생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그 학생이 왜 무슨 이유로 등교거부를 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찾아 근본원인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일단 학교를 벗어난 학생은 문제아라는 공식에 사로잡혀 있는

어른들의 눈 때문이다.

 

자, 다시 소키치로 돌아가보자. 소키치가 학교에 가지 않고 아버지의 뒤를 좇는

이유는 누구보다 섬을 사랑하고 어부를 천직으로 알던 아버지가 섬의 자연을

파괴하는 송전탑 건설에 동참한 것에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키치는 아버지의 흔적을 뒤쫓으면서, 정치와 기업의 논리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일본의 섬과 자연들, 그리고, 1차 산업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개발이 곧 발전이라는 논리가 얼마나 황망한 것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즘 한참 FTA협상때문에 시끄럽다. 자동차니 의약이니 여러 가지가 걸려 있지만,

가장 크게 대두되는 것 중에 하나가 농업이나 축산업 같은 1차 산업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1차 산업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어떻게 굳어져왔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게 게으름을 부리면 농사꾼 밖에 될 수 없다"는 선생의 말에 상처받은 아이가

"기왕이면 그렇게 게을러서야 어떻게 훌륭한 농사꾼이 될 수 있겠냐고 야단쳐줬으면" (p.66)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1차산업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바로 그 선생과 다를 것이 무엇이던가.

게다가 그런 현실을 잘 알고 있는 1차 산업 종사자들이 자신의 자녀들은 이런 일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소키치가 아버지의 흔적으 뒤좇는데에는 그만의 이유가 있었다.

그토록 섬과 자연을 사랑한 아버지가 섬의 파괴가 눈에 보듯 뻔한 송전탑 건설을

도왔다는 사실이 과연 다른 이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어업을 일치감치 포기하고

토산품 가게를 하면서 편안한 삶에 안주하기 위해서가 아니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야 자신의 삶을 좀더 능동적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소키치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행을 따라가면서

히데요의 가족, 시마 아저씨, 유코, 오키나와의 리쓰, 시마오 선생님, 와카마쓰 선생님,

그리고 학교 친구들 등 소키치가 만나는 사람들을 함께 만났다.

그들을 통해 소키치가 남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풀어야할

문제라는 걸 인식하게 되면서 소키치는 자신이 독선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듯이

나 역시, 소키치와 마찬가지로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소키치가 학교를 떠나 혼자서 많은 고민을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

이제는 친구들과 함께 풀어나가려고 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것이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계기로 발전하면서, 학교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난 걸 행복하다고 여길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권의 책 속에 하이타니 겐지로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등교거부 문제, 환경파괴문제,

1차산업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등등..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각각 다른 문제가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문제라는 걸 보여주었다.

또한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주어진 레일을 따라 얌전히 걸어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새로운 레일을 깔고 그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인간으로 태어나서 행복한 사회,

살아있어서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됨을 알 수 있었다.

 

청소년 책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성인들에게도 충분한 감동과 화두를 던져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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