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우유와 소보로빵 마음이 자라는 나무 8
카롤린 필립스 지음, 전은경 옮김, 허구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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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은, 아프리카의 에리트레아에서 독일로 이주해 온 외국인 노동자가 독일에서 낳은 아이이다. 그래서, 샘의 겉모습은 에리트레아인이지만, 샘의 정체성은 에리트레아인이 아니라 독일인이다. 그는 에리트레아에 대해서 부모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저 낯선 이국땅처럼 느껴질 뿐이다. 게다가, 그곳은 부모님의 고향일 뿐 샘에게는 아무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곳이다.

 

에리트레아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인해 샘의 부모님은 난민수용소에 있다가 만나게 되었고, 결국은 고향을 등진채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것이 파괴된 그곳은 고향의 어떤 이미지도 불러올 수 없는 황폐한 곳이 되어버렸다- 독일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독일에서는 마침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기여서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받아들였고 그것은 샘의 부모에게도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샘의 아빠 친구 중에는 꽤 성공하여 고향인 에리트레아에 돌아가 재건사업에 힘을 보태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샘의 부모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것은, 고향에 돌아가본들 남아 있는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샘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은 환경과, 교육의 기회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결정이 과연 옳은 결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바로 이 책의 사건-학교에서 놀림을 당하거나 사회적인 위협을 받는-들은 그들 부모의 결정에 확신을 주지 못한다. 게다가, 샘의 반 친구 중에서도 폴란드나 포르쿠갈에서 온 학생들도 같은 외국인 노동자의 아들들이지만, 샘은 그의 외모때문에 더 눈에 띄게 되고 그로 인해 더많은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30년전 독일의 노동력 시장에는, 우리나라의 노동자들도 많이 유입된 걸로 기억한다. 그들이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와 새 삶의 터전을 가꾸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현지에서 계속 생활하고 있다. 따라서 샘의 일은,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렇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 반대의 입장에서 설 수도 있다. 우리 기업에도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되었고, 또 농촌에도 많은 외국여성들이 결혼을 하여 정착했다. 독일의 어떤 교실에는 40% 이상이 외국인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학교에도 이제 곧 외국인 자녀, 혹은 한쪽이 외국인인 부모의 자녀들이 입학을 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책 속의 외국인들에 대한 반감은, 노동력이 넘쳐 나고 자국민들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와 집을 차지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우리나라도 곧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내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한국어 교육을 위해 현장에 나갔을 때 그들-대부분이 동남아시아의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현장에서 싼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었다. 사실, 힘들고 어려운 일인데도 임금이 지나치게 싸게 책정되어 있고, 그렇기때문에 한국인들이 그런 일을 기피하는 것이지만, 그들을 대체할 인력들은 어떻게든 공급이 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기업이 임금을 현실화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한국의 노동자들이 눈을 낮추는 수밖에 없지만, 둘다 힘든 일이다. 그러니, 곧, 조만간,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한국인 노동자들의 실업은 점점더 늘어날 것은 뻔한 이치가 아닌가.

 

어쨌거나, 그렇게해서 만들어진 어른들의 이기적인 반발심은 아이들에게까지 아무런 여과장치없이 그대로 전달되어 차별과 따돌림이라는 현상을 만들어내게 된다. 샘은, 독일에서 태어났고 에리트레아보다는 독일이 더 익숙한 소년이다. 그래서 샘은 왜 자기가 그렇게 사회의 위협을 받아야하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친구들의 놀림도 자신의 피부색이 다르기때문일거라는 생각 외에는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어른들의 이기적인 발상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외국인노동자, 특히 그들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지어내는 이야기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조차 그런 허위정보를 믿게 만든다.

 

보리스가 샘의 집에 가서, 그의 집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샘의 집을 보고 부모님들이, 어른들이 한 말이 틀렸음을 알게 되는 장면이 그런 사실을 잘 알게 해준다. 보리스는 자신이 그동안 했던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되고, 샘이 사고-습격-로 학교를 결석하면서 그동안 샘이 자신을 더 분발하게 하는 좋은 라이벌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화해의 손길을 내밀게 된다. 바로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 아무도 그들이 함께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지만 그들은 샘의 왼손과 보리스의 오른손으로 훌륭하게 피아노를 연주해낸다.

 

어른들의 이기심에 아이들의 동심이 무너지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그들을 마치 먹여살리는 듯-사회보장제도의 이득을 보는 건 그들이라는 생각- 보이지만, 결국 우리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고 살아가야 할 아이들이 바로 그들이라는 생각을 해보자.어른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결국은 모든 이들이 함께 살 수밖에 없는 흐름을 거스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이 책은 청소년이 읽어도 좋을 것 같고, 어른들도 함께 고민해야 할 주제가 담겨잇는듯하다. 요즘, 텔레비전에서는 [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제법 인기인듯하다. 그녀들의 이야기가 외국인들의 생각을 모두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새겨 들어야 할 이야기도 제법 나온다. 우리는 이제 한국인은 단일민족이라거나, 타민족과 차별을 두거나 하는 옛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한다.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부터가 바로 세계화로 가는 올바른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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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칵테일 -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상큼한 세계사가 온다!
역사의수수께끼연구회 지음, 홍성민 옮김, 이강훈 그림, 박은봉 감수 / 웅진윙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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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를 보자!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상큼한 세계사가 온다!!

만화보다 흥미진진하고 영화보다 스릴 넘치는 130가지 세계사의 비밀!

 

그러나, 알아야 한다. 달콤하고 먹기 좋은 것만 찾아서는, 그것이 오히려 결핍을 가져오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바로,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내가 가장 먼저 느낀 점이다. 세계사 칵테일은 그 달콤함으로 사람을 유혹하였으나, 유혹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었다.

 

재미와 유익 두 마리 토끼를 잡기에는 너무 힘겨워 보이는 책이다. 일단, 세계사를 재미있게 훑어보고자 한 글쓴이의 시도와, 한국에서 이 책을 번역 편집하면서 끼워넣었을 만화(삽화)를 이용한 구성 등은 괜찮은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템을 어떻게 제대로 이용했는가하는 것을 살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1. 등장인물 소개와 프롤로그/에필로그

이 책의 내용을 좀더 흥미있게 만들기 위해 편집자측에서 보강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한페이지를 사용해가면서 소개한 등장인물의 역할은 애매하기만 하다. 더군다나 소개글에 나타난 그들의 특징은 책속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프롤로그와 마지막 에필로그... 뭐냐? 이건... 이 책과 별 관련이 없어보인다. 왜 있는지 모를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각 연대별 세계사

각 시대로 들어서기 전에 연대순으로 정리한 부분은 간단하게 세계사를 둘러볼 수 있으므로 괜찮았다.

 

3. 각장의 130가지 제목들

지적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한 제목보다는, 흥미를 끌기 위한 제목이 많았음을 인정해야할 터이다.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다루기보다, 일종의 스캔들이나 가십란에 나오면 딱 알맞을 내용이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고 제목과 내용이 어울리지 않는 부분도 상당수 있다. 왜? 라는 질문에 이유를 대답하지 않거나, 한줄의 대답으로 끝내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진짜 이유는? 이라는 제목을 보자. 진짜 이유를 찾으려면 그 표면적인 이유, 그러니까 흔히들 알고 있는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부정하면서 이게 진짜 이유다라고 말해야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았다.

 

4. 만화와 삽화

이 책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만든 책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만화나 삽화는 더 정확한 사실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하도록 끼워넣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속 삽화는 제목과 동떨어진 경우도 있고, 만화의 인물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인테넷 용어로 점철되어 있다. 아이들의 흥미유발에는 효과가 잇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것이 교육적인 효과를 생각하는 책이라는 점에서는 부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5. 바이킹요리?

이 책에서는 바이킹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바이킹 요리는 한국에서는 뷔페로 알려져있고, 바이킹요리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뷔페를 바이킹이라고 한다. 이 책이 일본의 책을 번역한 것이라는 것을 감안한다하더라도, 제목을 조금 수정햇더라면 더 좋았을듯싶다.

 

6. 세계사에 아예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나, 세계사를 딱딱한 역사라고만 생각햇던 사람들에게는 좋은 읽을거리가 되었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책이 어려운 이야기는 없고 쉽게 풀어서 써간 내용이 많다. 화장실이나 지하철에서 읽기 딱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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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어떻게 깨우지? 책그릇 아기 그림책 1
이종희 기획, 이승희 그림 / 책그릇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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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아이 아빠는, 평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잠만 자는 아빠입니다.

평소에도 잠이 많은 아빠지만, 야근이 많기때문에 주말이면 더 쉬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아이는 아빠와 많이 놀고 싶어하고,

또, 엄마인 나도, 아빠가 주말에 아이를 좀 데리고 놀아줬으면 하는 바램이 아주 많습니다.

지금은 아이가 8개월밖에 안되어서 아빠에게 제대로 된 의사표현을 하기가 힘드니까,

아빠는 아이가 아빠와 놀고싶어하는 것도 모릅니다.

어쨌든, [아빠를 어떻게 깨우지]라는 이 책을 펼친 순간, 어쩜 우리집 아빠와 한치도 다를게 없는지

감탄 또 감탄했답니다...

아빠가 집에서 뒹굴거리는 모습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한참 웃었어요.

특히 아빠 앞에 놓여진 리모컨이며, 책이며, 과자 같은 소품은 물론이고,

바지속에 손넣고 뒹굴거리는 모습까지도요^^

 

처음에는 아이에게 그림책을 보여줬습니다.

우리 아이는 그림책 넘기기를 아주 좋아하거든요. (내용과 상관없이)

그 다음에, 다시 제가 읽어주었지요.

특히 둥둥둥둥....코옥~! 같은 소리를 낼때 참 좋아하더군요.

 

 

그런 다음, 아빠가 잠들기를 기다려 실전에 돌입했답니다...

물론, 우리 아이는 배 두드리기와 코 눌리기 정도밖에 못따라하지만, 그래도 참 재미있게 하더군요.

마지막으로 뽀뽀하기 같은 경우에는, 평소에 연습을 해서인지 잘했어요^^

 

이 책의 장점이라면, 아빠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려서 아이가 직접 적용하기 좋다는 거구요..

또 아이에게 여러가지 행동을 가르쳐줄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리고 별책 부록으로 아빠와 함께 붙이고 공부할 수 있는 낱말카드가 있어서

아빠를 깨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빠와 함께 놀 거리를 만들어줘서 더 좋았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있었어요.

유아들이 보기에는 책이 좀 큰게 아닌가 싶어요.

책은 큰데 책장은 얇아서 아이가 혼자 넘기기 힘들어했거든요.

그리고, 그림이 색연필로 그린듯한 그림이어서, 알록달록한 원색을 좋아하는 아이의 시선을 끌기에

조금 힘들었구요,

마지막으로, 단어카드에 영어단어를 한글발음을 표기해 놓은 것은 없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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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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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영화를 본듯한 느낌이 든다. 아주 잘 짜여진 극본과 적절한 클라이막스, 끝까지 살아남는(여기서는 눈을 뜨고 있는) 주인공까지..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 구성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잡은 그 순간부터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책을 손에서 놓기가 어려웠다. 어떻게 되어가는지 궁금증은 자꾸 증폭되었고, 사람들의 행동의 변화와 더불어 생각이 변화해가는 모습을 놓치기가 아까웠던 것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는 언젠가 읽은 기억이 있다. 아마도 이번에 읽은 건 두번째이지 싶다. 그런데, 그전에는 내가 이 책을 통해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었는지 다시 책을 잡고 읽으면서도 예전에 읽었던 책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게다가 내 책장에 이 책이 없으니(아마도 그땐 빌려읽었던듯) 더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생각과, 나의 환경이 달라지면서 의미가 없던 책들도 의미를 가지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책이 그런 책 중의 하나였다.

 

어쨌거나, 이 책에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나오지 않는다. 작품 속 '작가'의 말처럼 '내 목소리가 나'인 것이지 이름은 '나'가 아니다. 눈먼자들에게는 이름보다는 '소리'가 그들을 대표한다. 누가 화자인지, 청자인지 구분하지 않은 데다가, 가끔은 시점이 바뀌기도 하는 이 책을 읽다보면, 내가 그들이 되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음을 느낀다. 이것이 작가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우리]라는 단어는 책을 읽고 있는 [나]도 그 장소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처음 눈먼 남자는 자동차에 앉아서 신호등 색깔이 바뀌는 것을 기다리다가 눈이 멀었다. 그다음부터 줄줄이 연쇄적으로 세상 사람들이 눈이 멀기 시작한다. 마치 무서운 전염병처럼. 보통 이 책 속의 사람들은 갑자기 눈이 멀거나, 눈이 멀까 두려워하다가 눈이 멀었다. 단 한 사람, 의사의 아내만이 끝까지 눈뜬자로 남아, 보고 싶지 않은 장면들까지도 다 보게 된다. 의사의 아내는, 의사가 구급차에 실려가기 전에 뭔가를 결심한 사람처럼 준비를 한다. 이 [준비]는 집을 청소하고 정리하거나, 남편의 짐과 더불어 자신의 짐을 챙기거나하는 것과 더불어 마음의 준비, 그러니까 남편과 함께 갈 마음, 남편과 끝까지 함께 하려는 마음 -의지- 의 준비까지 아우른 것이다. 그런 준비를 한 아내의 눈은 다른 사람들이 다시 눈을 뜨는 그 순간까지도 멀지 않는다. 

 

처음 수용소에 격리된 사람들은, 적어도 희망이-눈을 뜰 수 있다는- 있었고, 또, 눈을 뜨고 있고 모든 상황을 제어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여자, 의사의 아내가 있기 때문에 다른 병동이나 병실 사람들과는 달리 생활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녀가 눈을 뜨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걸 발설하지 않으면서 따라준 일부 병실 사람들의 지지(?)가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세상 사람들이 눈이 멀지도 모를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이미 눈먼자들을 격리수용하면서부터 그들-수용소 밖의 사람들-의 이기심은 발동되기 시작했다. 그들이, 눈먼자들을 격리 수용하고, 자신들마저 눈이 멀까 두려워하며 인간적인 도움의 손길을 거두어버리지 않았다면 상황은 어땠을까? 의사의 아내처럼 언젠가는 나도 눈이 멀겠지만, 먼저 눈먼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눈을 의미있게 사용했더라면 과연 그 도시 전체가 눈먼 사람들로 가득찼을까? 

 

인간의 이기심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혹은, 인간의 이기심이 세상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아주 효과적으로 보여준 책이 아닐 수 없다.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보려하고, 자신과 관계 없다고 생각되는 것에는 아예 눈을 감아버리는 인간의 이기심때문에 언젠가는 이 세상도 눈-이 아니라 그 어떤 것이든-먼자들로 가득찰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미 세상은 기아로 허덕이는 아이들이 있는 세계와 잉여농산물을 버리거나 비만으로 가득찬 세계로 나누어졌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쟁-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을 일으키는 나라와 전쟁의 피해자가 되는 나라로 나누어져있다. 모두들, 남을 배려하지 않는다. 당신에게도 바로!! 그 두려움이 곧 닥칠지 모른다.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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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적인 삶 - 제100회 페미나 문학상 수상작
장폴 뒤부아 지음, 함유선 옮김 / 밝은세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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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폴 뒤부아, 이 사람은, 아니, 이 사람의 작품은, 나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타네씨~]에서 엄청난 실망감을 안겨줬다가, [이 책이 너와 나를]에서 열광하게 하더니, [프랑스적인 삶]에서는 인내심을 요구했다.
어쨌거나, 내 인내심은 그의 작품을 견뎌냈고, 그 결과는, 무난하다.


책의 초반부에서 지루함을 느끼면 책을 덮어버리는 내가 끝까지 읽었다는데에 일단 박수를 보내자.
그 지루함이, 소재나 주제에서 오는 것인가, 아니면, 장폴뒤부아의 문체에서 오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구성에서 오는 것인가..
아마도 이 책이 프랑스적이 아닌 한국적인 삶이었다면 그 몰입은 쉽게 이루어졌을 듯하다.
즉, 프랑스의 정치 경제적 상황을 잘 모르는 상태거나, 남녀관계(동거나 결혼)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 나와 같이 지루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참고 읽어보자. 까짓거 정 지루하면 대통령 한 두명쯤 건너뛰면 어떠랴...
폴 블릭의 인생에서 몇 년쯤 모른다고 대수냐 라고 과감하게 건너뛰어도 괜찮다. 읽다가 궁금하거든 그때 다시 앞을 보지 뭐.
폴 블릭이 일반적인 프랑스인이 아니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소설 속 주인공이 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이 덧붙여진 프랑스인이다.
아주 질곡 많은 삶을 겪음으로써, 소설 속 사건을 이루는 조건 말이다.


뒤로 갈수록 그의 사람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한다. 아니, 남의 불행을 재미있다고 말하는 건 좀 어폐가 있나?
대학을 졸업한 폴 블릭이, 떠밀리다시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내 대신 전업주부가 되어 생활하다가, 취미로만 끝날 줄 알았던 사진작업으로 돈을 벌고, 아내가 배신하고, 아내가 죽고, 아이들이 성장하여 분가하고, 딸이 정신병을 앓게 되는 과정들이 이 책의 지루함을 날려버리고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사실, 그 이전의 사건들에서는 프랑스의 정치경제적 상황이 조금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면, 폴의 결혼 이후의 삶에서는 그다지 영향을 끼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냥 시대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양념일 뿐이다. 


여기서 잠깐,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나는 이말에 반대한다. 일본의 문학이 다른 나라에서도 인기가 있는 이유 중에 하나를 무국적성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제법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한국적인 것은, 다른 나라 사람이 한국에 왔을 때, 혹은 이국적인 것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좋을지 모르지만, 그서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지루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품은 세계가 공통점으로 관심을 가진 문제라야한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이 책이 초반부의 프랑스적인 색채의 영향에서 벗어날 즈음에야 나의 지루함이 날아가고 주인공의 삶에 뛰어들 수 있었다는 말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동거를 많이 하는 편이고 결혼은 많이들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동거 상태에서 아이를 낳아도 사회보장혜택을 결혼한 것과 동등하게-혹은 비슷하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히려 결혼이라는 절차를 밟은 후에는 그 책임이 막중하다고 한다. 그러니 결혼보다 동거를 택하는 사람이 더 많을듯하다. 물론 이 책 속 등장인물들처럼 배우자 외에 애인을 두고 있는 사람도 많겠지만 말이다. 폴 블릭의 삶이 일대 전환을 맞는 것이 그의 결혼과, 안나의 출산과 맞물리는 것은 당연해보인다. 또, 아내가 일하고 남편이 전업주부로서 사는 모습도 소설 속에서는 특별한 거부감을 느낄 수 없다.


소설의 말미에서 그의 불행은 끝없이 생성되는 듯 보이지만,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주인공의 모습은 없다. 오히려 딸 마리와 함께 산 정상에 올라 새로운 꿈을 꾸고 희망을 안게 되는 모습이 건강해보이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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