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곰 - 캄차카의 제왕
최기순 지음 / 들녘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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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차카..

캄차카는, 내게 한국어를 배우던 러시아 친구의 고향으로서 처음 알게 된 곳이다. 사실 그전에는 잘 알지 못했던, 아니 관심도 없었던 지역이었지만 그 친구를 알게 된 이후 캄차카는 그리 낯설지 않은 장소가 되었다. 밤늦은 시각 다큐멘터리 채널에서 보여주는 캄차카도 예전같으면 그냥 지나쳤을텐데 이제는 채너을 고정시키고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던 차에 [캄차카의 제왕 불곰]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책이라기보다 사진집에 가깝다고 할 만하다.

곰이라고는 반달가슴곰밖에 모르는 나에게(지리산 반달가슴곰 덕에 그나마 좀 알게 된 곰이지만) 불곰은 어떤 동물일까? 호기심도 일었다. 책을 펼쳐 든 순간 표지에서 나를 바라보는 불곰의 눈길이란...참 ^^ 이야깃거리로서의 곰은 언제나 흉악하고 무섭기만 하지만 사진 속 곰들은 평온하기 그지 없다. 아마도 작가의 애정어린 눈길이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투사된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몇장 넘기자, 어미 잃은 새끼곰이 다른 곰가족과 함께 가는 장면이 나온다. 아, 이건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어. 

작가는 캄차카에서 혹은 시베리아나 다른 지역에서 이렇게 생명의 사진을 찍고 기록으로 남긴다. 그는 그의 일을 자신의 천직으로 알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간다. 그의 아내인 비따도 그를 이해하고 그와 함께한다. 나는 내 남편이 이런 불안정한 생활-수입은 물론이요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을 한다면 견디지 못할 것 같다. 비따처럼 남편과 함께 카메라를 들고 다닐 자신도 없다. 그런 아내를 만나다니 참 천생연분이 아닐 수 없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 그렇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의 모습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이 책 속 사진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평온하다. 불곰이 연어를 잡는 모습은 영상으로 보는 것과는 또다른 느낌을 준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듯한 불곰의 눈은 귀엽기만 하다. 물론, 야생동물의 본성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언제 어디서 어떤 돌발상황이 일어날 지 모르니까. 야생동물의 삶을 쫓아 사진을 찍고 연구하던 이들이 어느라 습격을 당하거나 사라지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도 그런 돌발상황 중의 하나다. 그러나,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촬영을 하고 그들의 발자국을 쫓는 이들에게는 사람이 담겨있다. 밀렵이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사람들과는 차이가 있다. 그런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는, 애정이 듬뿍 담긴 책. 바로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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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읽기는 특별한 책을 골라잡지 않는다. 그러니까 손에 잡히는대로 읽고, 그때그때 마음에 따라 고른다. 특별한 장르도, 특별한 형식도 필요없다. 그저 읽고 또 읽는 것이 즐거우니까...

예전에, 조너선 캐럴의 [웃음의 나라]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 무슨 이벤트를 했었나보다. 출판사에서 이벤트 당첨선물이라며 이 잡지를 보내왔다. (안타깝게도 창간호 특별선물인 티셔츠는 없었다. 음.. 이왕이면 같이 넣어주시지..--'') [웃음의 나라]를 아주 재미있게, 즐겁게 읽은 기억이 있는지라 반가운 마음에 이 잡지를 펴들었다. 표지를 보니 판타지, SF, 미스터리, 호러, 문화매거진이라고 씌여있다. 나는 SF에 대해 잘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위에서 말한 저런 장르들의 정확한 구분을 할 줄 모른다. 그런데 이 잡지를 읽다보니 요즘은 그 경계가 제법 무너지고 있는듯하니 정확하게 장르를 꼬집을 필요는 없을듯싶다. 다행이다.(^^) 그렇지만 장르문학을 선호하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면 장르의 구분을 약간을 알려주었더라면 이 잡지를 읽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까? 기사 내용 중에도 SF에 대한 한국에서의 인식(공상과학이라는 것에 대한)을 아쉬워하면서도 정작 SF가 무엇인지는 설명이 없다. 나같이 장르문학에 대한 문외한에게는 이 잡지의 기사를 읽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고나 할까? 어쨌든, 독자대상층을 장르문학 선호자들로 한정한게 아니라면 약간의 친절도 필요한데 말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런 구분을 그다지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 모든 독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그저 읽기 위해 읽는 나같은 사람들은 그렇다. 따라서 기사를 제외한 소설이나 만화같은 작품을 맛보는 재미는 쏠쏠했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도 이런 장르문학이 되는구나. 아 요즘 유명세를 한참 타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이렇구나. 어, 만화도 있네. 등등등. 골라먹을 메뉴가 제법 되는 잡지다.

장르문학을 소개하고 활성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같이 장르문학 자체에 문외한인 사람에게 약간은 친절한 잡지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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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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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책은 제목들이 모두 멋있다. 며칠 전에 읽었던 [황혼녘 백합의 뼈]도 그러하고 이 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도 그러하다. 그리고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의 제목도 그러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온다 리쿠는 제목을 먼저 정해놓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스타일의 작가인 듯 하다. 멋진 제목들만큼이나 내용도 멋지길 바라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솔직히 온다 리쿠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도 이 책 [삼월~]에 대한 리뷰들을 보고나서이다. 그전에는 이런 작가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삼월~]을 읽은 이들의 열광은 온다 리쿠라는 작가에 관심을 가지게 하기 딱 알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보다 [황혼녘 백합의 뼈]를 먼저 읽었는데, 그 책의 주인공 리세가 바로 이 책의 4부에 등장한다. 4부를 확대 재생산(?) 낸 것이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이고, 중학생이던 리세가 고등학생이 된 후가 [환혼녘~]이라 하니 늦었지만, [삼월~]에서 리세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삼월~]에서는 4가지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4가지 이야기가 각각 다른 이야기면서 마치 하나인 듯한 생각이 들게 한다. 특히 나는 이 중에서 제1장 기다리는 사람들 편이 마음에 들었고 4장 회전목마는 온다 리쿠의 작품관이랄까? 그런 걸 알 수 있었던 것 같고, 내가 궁금해했던 리세가 등장하여 이 책 중에서 그래도 가장 미스터리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었다. 사실, 1장의 결말 부분이 조금 허무하긴 했지만, 그건 4가지 이야기 중 하나의 유형일 뿐이니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듯하다. 

온다 리쿠는, 아니 [삼월~]의 작가는 이야기가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삼월~]이라는 책을 둘러싼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가지고 책을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결말이 지나치게 설명적이라는 점인데, 각 장이 하나의 중단편소설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다 끝내지 못한 게 아닐까. 그래서 결국은 [삼월~]의 이야기는 다시 새로운 장편을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각 장의 인물과 사건들은 구체적인 이야깃거리를 내포하고 있어서 그의 다른 작품을 읽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는듯하다.

온다 리쿠의 작품이, 미스터리라고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긴장감이나 긴박감은 떨어져 보인다. 대신, 이야기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듯이 수많은 이야깃거리의 변형을 만들어낼 수 있는 구전 같은 느낌은 독자로 하여금 끼어들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준다. 그러니까, 온다 리쿠가 기가 막히게 이를 맞추어 놓은 이야기를 독자가 마음대로 해체해서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해도 한들 작가는 오히려 환영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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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팔다 베스트 모음
끼노 지음, 조일아 옮김 / 아트나인(비앤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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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풍자만화가 이렇게 재미있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아니, 어쩜 그렇게 심각하고도 중요한 이야기들을 잘 풀어내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마팔다는 숱많은 검은 머리모양이 인상적인 여자아이다. 마팔다가 태어나 살던 시대 1960년대에서 70년대 사이의 아르헨티나를 적나라하게 풍자하고 있지만, 2007년인 지금 읽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그것은, 지금도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건 여전하기 때문이고,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국민들의 생활이 불안정한 것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른들의 생각이란 게 몇십년이 지나도 똑같다는 것도 재미나다.

 

만약 요즘 그려진 만화라면 라디오나 신문대신 텔리비전이나 인터넷을 이용하는 모습이 나왔을 것이고, 마놀리또의 식품점도 대형할인마트 정도로 크기가 달라졌겠지?

 

그런데 아르헨티나의 남자들도 군대이야기만 시작하면 끝낼줄 모르고 계속하나 보다^^

마팔다의 엄마의 수다는 사회심리학적인 수다로 변신하고, 아빠의 사회생활도 그리 녹녹치 않다. 자동차 하나 구입하기 위해 이것저것 이유를 만들어대는 모습이나, 집밖으로 나가는 순간 TV광고와는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빠의 모습이 지금 우리네 아빠들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같다. 마팔다는 아이지만, 아이답지 않게 조숙하고 게다가 직설적이기까지 하다. 사실, 아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요즘 아이들을 보면, 마팔다 비슷한 아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싶다. 어른들은 이것저것 재느라 하지 못하는 말을 아이들은 생각한 그대로 말한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정보를 구하기 쉬운 시대에는 더 그러하다.

 

마팔다가 시원스레 꼬집어주는 이야기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이건 만화니까, 이미지적인 측면을 봐도 마팔다의 캐릭터는 친근하면서도 강하다. 그래서 마팔다의 생각 속으로 빠져드는데 주저할 틈이 없다. 마놀리또는 기업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상정된 듯하다. 그런데, 그런 마놀리또가 돈 버는데는 열중하면서 멍청하다는 것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기업인들에 대한 풍자랄까? 지구본을 바라보면 속이 다타버려 번쩍 들릴만큼 가벼워졌다고 생각하고, 세계사람들이 속을 썩여서 위궤양에 걸렸을 거라 걱정하는 마팔다를 보면, 황당하지만 한편으로는 동감을 하게 된다. 게다가 주입식 교육을 비롯해 선생님의 체벌, 시험과 같은 교육문제에서부터 정치, 경제, 환경, 실업, 출산, 기아 등등등 마팔다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시사만화는 요즘들어 한컷짜리가 대세인듯한데-사실, 종이신문 안본지가 오래 돼서 인터넷으로는 기사만 보게 된다-, 4컷짜리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보는 맛도 색다르다. 시사풍자만화이면서도 웃음의 여지를 남겨두는 만화다. 마팔다처럼 세계와 인류를 생각할만큼 마음이 넓지도 않은 나지만 오늘만큼은 마팔다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마팔다같은 아이가 주변에 있었다면 경상도 말로 '대라졌다'고 표현할만한데 그런 마팔다가 결코 밉게 보이지 않는다. 잘난척 하는 걸로도 보이지 않는다. 만화를 보다보면 마팔다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같다.

 

내가 이 책을 누군가에게 추천한다면 그건 바로 정치인들이다.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마팔다보다도 머리가 안돌아가는 그들,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고 명분만 가지고 싸우는 그들, 때로는 그 명분조차 개도 안물어갈 허접한 것들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네들이 하는 짓은 1960년대 아르헨티나의 상황과 뭐가 다르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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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세계는 지금 - 정치지리의 세계사 책과함께 아틀라스 1
장 크리스토프 빅토르 지음, 김희균 옮김 / 책과함께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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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한국은 FTA(자유무역협정)기사가 연일 넘쳐난다. 한미FTA에 이어 한-EU FTA 협상이 진행중이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세계무역은 있는 자들의 잔치상이 되어가고 있다. 뭐 그런 일이 한 두해 이어진 일도 아니고, 좁게 보면 국내경제도 세계경제와 똑같이 굴러간다. 기업 간의 이윤 경쟁이 국가 간의 이윤경쟁으로 확대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런 시점에 이 책은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그런데 왜 하필 지도인가? “지도가 현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라는 말은 지금 그려져 있는 지도가 절대적인 진실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까 정치나 경제와 같은 힘의 논리에 의해 지도는 변해왔고 또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앞으로의 지도가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과거와 현재의 지도는 그동안 어떤 사건이 어디에서 발생했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이 이란을 ‘지정학적 골칫덩어리’로 보는 한 이란을 이해할 수 없다. 이란의 시각에서 이란을 볼 필요가 있다.(p.10)라고. 그러니까, 적어도 이 책이 지향하는 바는 어느 국가, 어느 대륙을 자신들의 눈으로 비판하고 재단하려는 것이 아니라, 각 대륙, 각국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여진다. 그 의지만은 아주 높이 살만하다. 프랑스 아르테 방송의 다큐멘터리 <지도의 이면>을 책으로 풀어내기 위해 수많은 자료들을 지면에 옮겨놓은 수고 또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 책의 곳곳에는 세계에 대한 편협한 시각에서 탈피하려는 원래의 의도에 부합하는 꼭지가 있는가 하면, 유럽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곳이 드문드문 드러난다. 경쟁상대인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과, 아시아의 경우 경제대국으로서의 일본이나 잠재적인 구매력을 가진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 등이 그러하고, 유럽연합에 회원국이 되려는 국가나, 그들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는 유럽연합의 태도(궁극적으로는 유럽연합에 이익인가 아닌가로 판단하고 있는 사실)에 대한 비판이 지나치게 약한 점이 그러하다. 나름대로는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듯 보이나 실상은 그들도 유럽연합의 대변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TV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옮겨오면서 설명과 화면이 동시에 제공되는 형태 때문에 지면이 복잡하게 구성된 것은 책을 읽는데 조금 불편했다.


 그러나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지도를 통해 세계 정치경제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고, 각국의 이해관계를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잘 풀어낸 점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은 몇몇 강대국이나 경제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수많은 나라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적이었던 국가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손을 잡을 수도 있고,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혹은 경제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군사력(또는 핵무기)을 과시하기도 한다. 이 책 속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지만(분쟁지역인 독도문제에 있어서도 일본 중심적 서술로 일관되어 있다) 오늘의 우방(미국)이 내일의 적(미국)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일이다.


 최근의 지도의 변화는 미국이 빠지면 이야기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아주 커졌다. 미국이 내세우고 있는 여러 가지 기치 중에서 아주 중요하게 취급되었던 ‘민주주의의 수호’는 냉전체제 이후 급격하게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사실, 냉전체제 당시에도 정말로 미국이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그렇게 싸웠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국의 이익이 걸려있지 않다면, 자국의 안보가 문제되지 않는다면 절대 개입하지 않았을 일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거대해진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돈과 군사무기로 점철된)은 확장일로에 있다. 저자는 (미국의) 30만 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쳐 유럽의 민주주의를 지켰다는 점만큼은 두고두고 기억해야할 것(p.56)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과연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이었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미국은 보스니아나 코소보의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이었는데도, 발칸반도에 미국의 첨예한 이익이 걸려있지 않다고 판단(p.57)하여 개입하지 않았다. 탈레반 정권의 뿌리는 파키스탄이며 1998년 핵실험으로 핵클럽에 가입한 이후, 이란과 북한의 핵개발을 지원하고 있다는 의심도 받고 있는 상태다.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뒤에서 떠받치고 있는 것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는 이라크가 아니라, 파키스탄이기 때문(P.118)인데도 미국은 파키스탄을 공격하지 않았다. 마약이 가장 많이 나가는 곳이 미국이기 때문에, 미국은 마약 생산지 콜롬비아를 노릴 수밖에 없으며 북동부를 통과하는 카뇨리몬 송유관이나 경제적 이권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2004년에만 콜롬비아에 700만 달러의 지원금을 주었다. 미국의 이익에 관계없는 일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개입을 하든지, 개입을 하지 않든지, 뭔가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미국은 항상 정치적인 손익계산을 한다.(P.166) 그러나 이것은 유럽연합도 마찬가지이다. 대규모 난민이 유럽으로 몰려드는 사태를 감당(P.167)해야 하기 때문에 아프리카나 중동 지역에 개입하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쿠르드족을 보호하기 위해 감시체제에 들어간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쿠르도족 지역 내에 있는 유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p.113)였음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유럽연합의 꼼수에 대해선 특별한 비판을 가하지 않고 있다.)


 아시아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주로 중국, 일본, 인도 등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지만 세계 경제대국인 일본에 비해 중국에 대해서는 약간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또한 분쟁지역으로서의 독도에 대한 발언도 일본 쪽 견해에 따르고 있다. 즉, “우리는 그곳이 일본해라고 알고 있지만, 한국은 동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P.143)고 하며 일본 쪽 주장에 어울릴 지도를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라는 것은 저자나 아르테 방송국이 아니라 유럽연합을 의미하는 듯하다. 며칠 전부터 국제수로기구(IHO)에서 동해와 일본해를 동시 표기하는 문제가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무슨 특별한 때나 되어야 동해니, 독도니 하는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도 문제고, 일본에 대해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세계의 구도가 어떻게 개편되어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 등의 경제대국이 이끌어가는 구도가 뻔히 눈에 들어올 뿐만 아니라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자국의 번영과 안녕이지 세계평화와 지구의 안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허울좋은 세계화도 결국은 강대국과 경제대국을 위한 세계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그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묘책은 없는 것일까? 이란이나 북한이 핵무기로 무장하려고 하는 이유도 다 살기 위해서가 아닌가. 쥐도 도망갈 구멍을 놓고 쫓으라했다. 핵무기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핵무기를 만들려고 하는 국가를 위협하거나 제재를 가할 것이 아니라 이미 핵무기를 가진 자들부터 비핵화되어야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겠지만, 결국은 핵무기를 가진 자들이 큰소리치는 세상에서, 절벽 끝까지 다다른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또 무엇이 있을까? 환경문제도 그러하다.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이 자기네들이 개발하고 파헤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저질러놓고 후진국들이 살아보겠다고 힘쓰는 걸 환경보호니 뭐니 하면서 거창한 이유로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세계사는 오늘도 힘의 논리에 지배를 받고 있다. 오늘은 집에 세계지도를 사다가 하나 붙여볼까. (^^)


 사족, 15-49세 에이즈 환자 지도(p.217)에 나타난 한국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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