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히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그런데, 이게 또, 책만 준다고 읽는게 아니더라며 겁내는 부모가 한둘이 아닌 것이다. 나의 경우, 어린이독서도우미클럽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고 배우고 있는데, 그것마저도 힘든 사람에게 딱 좋은 책이 바로 이 책인 것 같다.

유아부터 초등학생 고학년까지 활용할 수 있는 독후활동이 상세하게 안내되어 있는 책이다. 독후활동을 하기 위한 관련 도서들도 재미있고 유용한 책을 골고루(테마별) 소개하고 있고, 그 책을 읽은 후 할 수 있는 독후활동을 재미있는 실전사레와 더불어 준비물과 방법까지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독후활동을 아이들에게 시키고 싶은데 자신이 없는 부모님이라면 이 책을 보고 따라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게다가, 소개한 책 외에도 더 읽으면 좋은 책도 소개하고 있어서 추천도서목록의 역할까지 하고 있으며, 지역별 도서관 정보나 어린이 독서와 관련된 사이트 정보 등등 유용한 정보들을 부록으로 첨부하고 있어서 활용하기 좋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인덱스를 테마별, 도서제목별로는 구분해놓았는데, 이왕이면 연령별로 찾을 수도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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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반지 - 그는 짐승, 새, 물고기와 이야기했다
콘라트 로렌츠 지음, 김천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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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반지]가 대체 뭐야? 처음에 솔로몬의 반지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하이에나는 우편배달부](비투스 B 드뢰셔)를 통해서였다. 솔로몬왕은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반지를 끼고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 콘라트 로렌츠는 동물들이 하는 이야기 중에서 어떤 걸 들려줄까? 라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의 첫머리에는 초판2쇄 머리말이 있는데, 이걸 읽어보니 콘라트 로렌츠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초판에서 미처 챙겨보지 못한 오류와 실수를 콕콕 집어내어 솔직히 고백하고 있는데, 그 머리말은, 동물학자(비교행동학자)의 학자로서의 모습보다 우리 이웃에 사는 친근한 아저씨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아하, 이 책도 역시 편안하게 읽어도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콘라트 로렌츠는 [이 책이 살아있는 동물에 대한 나의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동물을 다룬 책에 대한 분노에서 나온 것](p.9)이라는 그의 말은 그가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동물을 집적 기르거나 연구해보지 않은 사람의 상상에 의해 쓰여진 책이, 일반독자들, 혹은 어설픈 동물애호가들에게 얼마나 많은 엉터리 정보를 남발하고 있는가. 물론 저자는 문학적 형상화에 대해서도 [동물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에게만 허락되어 있다](p.10) 는 말로 지적한다.

 

이 책의 초판이 나온 게 1949년 여름이라 하니, 한참 늦게서야 번역된 셈인데, 이런 류의 책(뒤늦게 번역된 책)을 읽다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다른게 없다는 데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얼마전 읽었던 [안녕하세요 아그네스선생님](커크 패드릭)때도 그랬다.

 

저자는 수족관을 꾸밀 때에도 모래를 깔고 수초 몇개를 넣은 다음, 수초가 자라기 시작하면 물고기 몇마리를 넣어주라고 한다. 그때 주의할 점은 너무 많은 물고기를 넣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적정한 숫자의 물고기가 있다면, 수족관은 다른 장치 없이도 생명이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다. 아래의 글을 읽어보자.

 

[노련한 수족관 애호가들은 인공적인 공기주입기를 통해 공기를 넣음으로써 이 위험에 대처한다. 그러나 이 기술적인 보조수단은 수족관의 매력을 감소시킨다. 수족관의 물 속 세계는 스스로 유지되도록 되어 있고,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것과  수조의 앞면 유리를 닦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생물학적 보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p.29)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수족관은 <우리>다. -중략- 수조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특정 동물의 사육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p.32)

 

저자는 동물을 사랑한다고 해서, 동물을 집에서 기르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집에서 기르거나 함께 살기는 하되, 그 동물의 생활환경 혹은 기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부합하는 동물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함께 사는 동물도, 그 동물을 기르는 사람도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동물을 사육하려는 욕망은 문화를 갖게 된 인간이 잃어버린 낙원인 대자연을 동경하는 데서 온 것이다. 모든 동물은 자연의 일부다. 그러나 모든 동물이 자연의 대표로서 당신의 집에 같이 살기에 적당한 것은 아니다.](p.164)

 

결국 동물을 기르는 것도 동물을 사랑하는 한가지 방법이기는 하되, 어떻게 기르는 것이 동물을 더욱 사랑하는 방법인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솔로몬의 반지가 없는 우리는,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지만 저자와 같은 사람을 통해 연구되어진 결과를 잘만 이용하면 훌륭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그런 우리의 믿음을 배반하는 상상으로 쓰여진 동물행동에 대한 책과 지식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물의 이미지는, 이미 우리 머리 속에서 하나의 정답으로 인식되어 있다. 동물은 인간의 하위개념으로, 인간의 나쁜 행동은 동물적인 행동으로 정의내려버린다. 그러나, 동물들의 생활을 가까이서 보고 연구한 사람들은 그것이 잘못되어 있음을 안다. 동물적인 폭력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육식동물에게서는 강력한 폭력성을 초식동물 혹은 조류(특히 인간의 주위에서 사는)에게서는 비폭력성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인간적인 시각인지는 이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의 비인간성은 인간들 스스로가 만든 것이지 그것이 동물적인 행동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동물들은 나름대로의 자제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무기를 만드는 것과 우리의 파멸을 막아 줄 책임감이나 자제력을 형성하는 것, 둘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용이할까?] (p.221)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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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하나에 사계절 그림책
김장성 지음, 김선남 그림 / 사계절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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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책장을 휘리릭 넘겨본다. 책 표지가 강렬한 인상을 주었고, 햇빛 강한 여름날 나무 한그루 올려다 본 느낌이 들었다. 슬쩍 넘겨본 페이지에,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있는 나무 그림이 가득하다. 어떻게 보면 나무인지도 모를 그림인데, 글과 함께 읽어보면, 나무가 품고 있는 생명을 한가득 만날 수 있다.

그림을 휘리릭 넘겨보았다면 이제는 글을 볼 차례다. 한 페이지에 두세줄의 짧은 글이 있을 뿐이다. 읽어본다. 그런데 뭐랄까? 그 짧은 글 속에 또 생명들이 꿈틀대고 있다. 그러니까, [나무 하나에]는 생명으로 가득찬 넓은 우주 같은 책이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든다. 이 책을 읽는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 책 분류상으로는 4-6세를 위한 유아그림책인데 혼자 읽어서는 그 많은 생명들이 살아숨쉬는 나무를 이해할 수 있을까싶다. 나무 한 그루가 그냥 나무 한 그루가 아니란 것만 알아도 되는 걸까? 책 속 그림은 세밀화도 아니고, (사실 이 책이 도감이 아닌 이상 그런것까지 요구하기엔 무리지만) 글의 내용을 대체할만큼의 그림도 아니다. 추상적인 개념을 약간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에는 혼자 읽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인다. 대신, 함께 읽어주는 이도 공부를 좀 해야겠다. 다람쥐 다섯마리는 왜 나무 구멍에 있는지, 둥지 속 새들은 왜 오목눈인지, 풍뎅이, 하늘소, 사슴벌레가 무엇인지, 꿀벌도 아닌 쌍살벌은 어떻게 생겼는지, 애벌레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생명을 품은 나무들이 모여 이룬 푸른 숲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의 시선을 더 넓은 곳으로 인도한다. 오목눈이든, 쌍살벌이든 그런거 몰라도 푸른 숲은 나를, 아이를,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준다.

<어린이독서도우미클럽 서평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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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조리 숨바꼭질 - 우리아기 까꿍놀이
애플비 편집부 엮음 / 애플비 / 2006년 12월
품절


아이가 10개월이 되었어요. 지금 한참 까꿍놀이에 재미를 붙였답니다. 이 책은, 여러가지 물건 뒤에 숨은 동물이나 사람을 찾아내면서 까꿍놀이를 한답니다.

주황색 모자를 들추면 무엇이 있을까요?

펄럭거리는 코끼리 귀를 만지고 있네요.
의성어 의태어가 적절하게 사용되어 있어서, 재미있게 읽어주면서 까꿍놀이를 해보아요^^

앗, 소방관 아저씨도 있네요.

그런데, 아이들이 모두 외국아이들이라서 조금 불만이에요. 애플비의 카드에도 외국아이들 사진이죠?

아이와 까꿍놀이를 하기에 좋은 책이에요. 그런데, 혹시 애플비의 터치 앤 필 카드를 갖고 게시면 다른 책을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터피엔 필 카드의 기법과 똑같아서 아이의 흥미를 떨어뜨릴 수도 잇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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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그네스 선생님을 읽은 후에, 몇가지 생각을 더해본다.

"성적이 전부는 아니야." (p.34)

듣기 좋은 말이지만, 현실은 반대지. 성적이 전부인 세상이 되어버렸잖아. 혹시라도 저 말을 곧이들을 청소년이 있을까? 예전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 - 보지는 않았고, 제목만 안다 - 는, 그 제목만으로도 이슈가 되었지만, 살다보니 행복은 성적순이더라구. [행복]을 어떻게 정의내리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결국은, 좋은 성적 - 잘 나가는 대학 진학 - 고액 연봉 입사 - 화려한 결혼 - 뭐 이렇게 나가는 공식아닌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행복은 금전순이더라.....라는 말. 남의 말 같지는 않네.

"아그네스 선생님은 우리가 그렇게 남한테 속지 않으려면 산수를 잘 배워야 한다고 하셨어." (p.50)

아, 나도 지독하게 산수가 싫었어. 아니, 정확하게는 수학이 싫었지. 산수는 그런대로 할만했거든. 남한테 어리버리 속지 않고 살려면 셈 정도는 정확하게 해야지. 아, 필요에 의한 공부는 할만해. 못하면 나만 손해잖아. 열심히 일하고도 한푼도 못버는 일은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해. 그런데, 말야. 산수든 수학이든 남한테 속지 않으려고 배우는 건 아니겠지? [수학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라는 책을 읽어보니 세상에는 정말 많은 수학이 존재하더라구. 남들이 수학으로 만들어 놓은 결과물만 내가 이용하고 산다고 그게 불행한 것은 아니겠지만, 한편으로는 좀 억울하기도 할것같네. 그렇지만 역시 수학은 재미없어 --''

 
"듣지 못한다고 학교에 다니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어?" (p.56)

알래스카의 이 학교처럼, 보코가 수화를 배우는 동안, 다른 아이들도 수화를 배울 수 있어서 대화가 된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아. 수화도 상대가 있어야 하는 거잖아. 듣지 못한다고 학교에 다니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수화를 통해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가 없는 학교에 다니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그래서 특수학교가 있는 거겠지만 특수학교가 아니라 일반학교에서 어울려 배우려면 다른 아이들도 수화를 할 수 있는 환경 - 선생님도 물론이고 - 이 되어야하는 거 아닌가? 듣지 못하는 아이뿐만 아니라 보지 못하거나, 몸이 불편한 아이도 마찬가지야. 그런 환경을 만드는 일이 가장 우선일텐데, 거기에 들어갈 학교 예산은 어떻게 한다? 처음부터, 학교라는 공간을 만드는 순간부터 함께 고려되었어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싶어. 이 이야기가 1940년대 이야기라는 사실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근 60년이 다 지난 지금도 해결이 안된 이야기라는 거지.

"마리, 나중을 위해서라도 읽고 쓰는 것 정도는 꼭 배워야 해." (p.70)

어린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거드느라 제대로 배우지 못한 마리에게 선생님이 하신 이야기야. 옛날 우리 부모세대하고 비슷하지? 얼마전에 구청에 갔다가, 서류 작성을 하려고 하는데 옆에 서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부탁을 하셨어. "~서류가 어느 것인지 좀 찾아주세요. 내가 글을 몰라서 그러는데, 대신 좀 써주세요."라고.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많이들 계신다고. 아이들을 장성시켜서 결혼도 시키고 다했지만 정작 자신은 읽고 쓰는 게 서툴러서 고생인 사람들 말야. 아주 남의 얘기는 아니지.

"공부는 평생하는 거야. -중략- 내가 봐도 살아가면서 계속 무언가 새롭게 배워나가야 한다는 것은 참 좋은 생각인 것 같아. 게다가 평생이니까 시간에 쫓길 필요 없이 느긋하게 즐기면서 배워도 된다는 뜻이잖아." (p.71)

요즘같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평생 느긋하게 즐기면서 배울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참 아이다운 발상이지만, 요즘 시대였다면 꿀밤이나 맞을 소리였겠지?

"아그네스 선생님은 예전 교재 대신에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교재를 손수 만들어 주셨어. 그것도 학생 한 사람 한사람마다 수준에 맞게 각기 다른 걸로." (p.97)

요즘, 아이들 독서교육에 대한 책을 계속 읽고 있는 중인데 결국은 1940-50년대 아그네스 선생님의 방법과 다른 게 하나도 없는거 있지? 책을 읽고 연극을 한다던가, 그림을 그린다던가, 읽기 교재의 내용을 아이 자신의 이야기로 바꾸어 읽는다든가... 결국은 뭐야, 이 책은 아이들이 읽어서 감동을 얻는다기보다 어른들이 읽고 반성해야하는 이야기란 말이지. 또 시대를 초월하는 감동의 문학이 아니라 시대를 읽어야하는 실용적인 책과 가깝더라는 말이야.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청소년문학으로 분류되는 걸 반대해. 아이들에게는 공부에 대한 반감을 줄이거나 선생님에 대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류의 소설이 아닌것같아. 이 책이 1970년대쯤에 아이들에게 읽혓다면 또 다른 이야기겟지만...대신 1970년대생인 어른들이 읽으면 생각꺼리가 제법 있을것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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