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정치사] 광기의 여자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24<산문 속에서 입 다물기>, 294쪽까지 읽었다. (작년에 300쪽 정도 읽었으니 여기까지는 재독이라고 주장하는 나란 사람, 누구?)

 

 


가부장적 서구 문화에서 텍스트의 저자는 아버지이자 창시자이며 낳는 자이고, 펜을 음경처럼 사용하며 자손을 만들어내는 힘을 가진 존재다(78). 남성 예술가들이 만들어놓은 여성에 대한 지독한 혐오, 여성에 대한천사와 괴물의 양면적 이미지 속에서 성장한 여성 예술가들은 자아 정의의 과정 내내 가부장적 정의와 맞서 싸워야 한다. 지금 말하는 나, 창조하는 나, 문장을 써 내려가는 가 바로 그 천사, 그 괴물이기 때문이다.

 


해럴드 블룸의 지적대로 남성 예술가는 선배 작가의 영향에 대한 불안과 싸워야 했다. 선배들의 작품이 자신을 넘어서서 존재하고 자기 작품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할 것이라는 불안(141)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여성 예술가들은 작가가 되는 것에 대한 불안을 이겨내야 한다. (145) 여자인 네가? 창조하겠다고? 선배가 되겠다고? 작가가 되겠다고?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겠다고? 시인이 되겠다고? 소설을 쓰겠다고? 이건 외부의 소리가 아니라 여성 예술가 내부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내면화된 가부장제의 여성 혐오가, 여성 예술가의 몸 속에서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역시 생각날 수밖에 없는 토니 모리슨.

 















제 말씀은 남성들은 작가로서의 자격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겁니다. 저는 그럴 수가 없었는데 말입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글쓰기가 인생의 핵심이고 마음을 몽땅 차지하고 있고, 기쁨을 주고 자극을 주는데도 저는 제가 작가라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직업이 뭔가요?”라고 물으면 , 저는 작가랍니다.”라고 대답하지 못했어요. 대신 편집자랍니다.” 아니면 교사예요.”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작가란 무엇인가 2>. 311)

 
















내 남편은 섬세하고 다정한 남자로 아이들을 원했고 학계에 직업을 가진 50대 남자로서는 드물게 기꺼이 '도와주려' 했다. 그러나 이 '도움'은 너그러운 행동으로 이해되었고, 가족 안에서 진짜 일은 그의 일, 그의 직장생활이었다. 사실 이 사실은 몇 년간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나는 작가로서 나의 몸부림이 일종의 사치이자 나만의 특이성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144)

 



흑인 여성이라면 유모, 보모, 가정부만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세계 속에서 글을 쓰는 흑인 여성인 자신을 작가라고 부를 수 없었던 토니 모리슨이 말한다. “저는 제가 작가라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고의 깊이와 넓이와 폭에 있어서 철학자에 비견할 만한 에이드리언 리치가 쓴다. “나는 작가로서 나의 몸부림이 일종의 사치이자 나만의 특이성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작가로 정의할 수 없는 여성 예술가의 고뇌, 자신이 속한 사회와의 불화, 미친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 여성 예술가는 이 모든 과정을 이겨내야만 한다. 내면의 여성 혐오와 싸워 이겨야만 한다. 자신을 작가로 정의하기 위한 여성 예술가의 이러한 투쟁은 여성 선배를 적극적으로 찾아내는 행위로 이어진다. 여성 예술가에게 여성 선배는 죽이거나 넘어서거나 미워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가부장적 권위에 저항이 가능하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146) 여성 예술가에게 여성 선배는 작가 세계의 입장권으로 작동한다.

 

 


물론 이 작가들은 자신들의 반항적 충동을 여자 주인공이 아니라 미치거나 괴물 같은 (소설이나 시 속에서 적절하게 벌을 받는) 여자에게 투사함으로써 자신의 자아분열, 즉 가부장적 사회의 억압을 수용하고자 하는 욕망과 거부하고자 하는 욕망을 동시에 극화한다. 그러나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여성 문학에 등장한 미친 여자가 남성 문학과 달리 단순히 여자 주인공의 적대자거나 들러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미친 여자는 어떤 의미에서 작가의 분신이고 작가 자신의 불안과 분노의 이미지다. (189)

 



이 문단이 이 책의 주요한 생각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일 수 없는 여성 예술가가 작품의 주인이 되었을 때, 자신들의 반항적 충동을 여자 주인공이 아니라 미치거나 괴물 같은 여자에게 투사한다는 것이다. 가부장제의 억압을 수용하는 여자 주인공이 작가의 분신인 것처럼, 가부장제를 거부하며 미쳐 날뛰는 미친 여자 역시 작가의 다른 모습, 즉 분신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내 질문은 이렇다. <제인 에어>로만 특정해 보았을 때, 제인 에어 속 버사 메이슨 로체스터는 브론테의 분신인가. 미쳐 있고 갇혀 있으며 저택에 불을 지른 버사는 시련을 극복하고 자립하고 결혼하는 제인 에어의 다른 모습인가.

 


소설과 시에서 여성 괴물을 불러냈던 모든 19세기, 20세기 여성 작가는 자신을 괴물과 동일시함으로써 괴물의 의미를 수정하고 있다. 여성 작가는 보통 마녀-괴물-미친 여자야말로 작가 자신의 결정적인 분신이라는 생각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남성의 관점에서 가정생활의 순종적 침묵을 거부한 여성들은 무시무시한 대상(고르곤, 세이렌, 스킬라, 라미아, 죽음의 어머니, 밤의 여신)으로 간주되어왔다. 그러나 여성의 관점에서 보면 괴물 여성은 자신을 표현할 힘을 구하는 여자일 뿐이다. (191)

 



작년에 함께 읽은 [소설의 정치사]를 읽으면서 광기의 여자에 대해, 이렇게 정리해 두었다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은 <제인 에어>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읽기를 통해 버사를 야생 속 광기 어린 동물적 존재로 취급하면서, 미쳐 날뛰어 스스로 지른 불에 목숨을 잃게 하는 <제인 에어>의 서사 구조는 서구 주체가 인식하는 타자에 대한 인식의 폭력성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46) 헬렌 티핀은 “<제인 에어>가 일조하는 식민주의 담론에 따르면, 술에 취해 있고 난폭하며 음탕하고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은 곧 백인이 아니라는 말과 같다고 주장하며, “식민주의 이데올로기가 브론테의 서사에 미친 영향을 파헤친다. (<비평 이론의 모든 것>, 884)

 


, <소설의 정치사>의 낸시 암스트롱, <다락방의 미친 여자>의 길버트와 구바가 미친 여자를 사회적 정체성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작가의 분신으로 해석한 데 반해, 스피박과 티핀은 버사를 미친 여자로 이해하는 제인 에어가 가진 식민주의적 시선, 백인 위주의 세계관을 비판하고 있다. 

 

 


제일 관심을 끄는 건, 스피박의 해석이다. 1세계의 여성인 제인이 제3세계의 여성 버사를 죽이는데공모함으로써, 제인은 비로소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사랑을 획득하는 주체가 될 수 있었으나, 이는 제3세계 여성 버사의 죽음으로만 가능했다는 점에서 제인 역시 제국주의의 일원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Three Women’s Texts and a Critique of Imperialism>/<세 여성의 텍스트와 제국주의 비판>) 비교적 최근의 저작(<Readings>, 2014 / 번역서 <읽기>)에서 스피박은 이렇게 밝힌다. 알라딘 책소개를 그대로 가져왔다.

 

















다음 장인 「스피박 다시 읽기」에서는 자신의 과거 텍스트인 「세 여성의 텍스트와 제국주의 비판」과 「잘못을 바로잡기」를 검토하면서 이 글들이 나온 배경과 더불어 저자인 과거 자신의 '검토되지 않은 문화적 가정들'이 무엇이었는지를 해명한다. 그리하여 그는 「세 여성의 텍스트와 제국주의 비판」이 "요컨대 그들은 틀렸고 우리가 옳으며, (비록 제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노라 말할 만큼은 조심스러웠지만) 샬럿 브론테는 인종주의자라는 식"(99) 으로 읽혀 온 것에, 그리고 자신이 그런 해석의 여지를 제공한 것에 유감을 표명하며... (<읽기>, 알라딘 책소개)  

 



샬롯 브론테가 인종주의자라고 읽혀온 것에 유감을 표하는 데까지는 이해하겠는데, 그래서 그다음에 어쩌자는 건지. 이 책을 읽었는데도 잘 모르겠다. 읽을 때도 그렇게나 어려웠다, 한없이. 그래서? 그래서! <제인 에어>를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제인과 로체스터로만 읽었던 텍스트를 제인과 버사로 읽어보려고 한다. 버사가 제인의 억압받은 내면인지, 버사가 작가의 분신인지. 버사는 제인의 두려움의 상징일 뿐인지, 역사성을 소유한 인간인지. 그런 면에 중심을 두고 다시 읽어보겠다.

 


제인 에어는 소중하니까. 오랫동안 제인으로 살았던 내가 버사라면, 이 역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나. 내가 생각하는 최상은 제인의 다른 자아로서의 버사이다. 은유로서의 버사. 찬찬히 다시 살펴보자. 제인인지 버사인지. 버사인지 제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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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락방의 미친 여자] 로체스터를 믿을 수 있는가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2-12-04 00:24 
    『제인 에어』에 대한 질문, ‘버사는 제인의 분신인가’에 대해 쓴다. 공동 저자 샌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는 “미친 여자를 작가의 분신 혹은 작가 자신의 불안과 분노의 이미지”(189쪽)로 보았다. 작가들이 자신들의 반항적 충동을 여자 주인공에게 투사할 수 없으니 괴물 같은 미친 여자에게 투사했다는 주장이다. 그들의 결론은 이렇다. 밤중에 나타나는 유령은 버사 메이슨 로체스터다. 그러나 비유적 심리적 수위에서 버사라는 유령은 제인의 또 다른 (사실상 가
 
 
바람돌이 2022-11-09 15: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버사가 작가의 또다른 분신인가? 그럴수도 있겟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인에어 읽을 때 이 부분도 잘 생각하면서 읽어야겠습니다. ^^
그런데 버사를 제3세계의 여성으로 볼 수 있나에 대해서는 의문점도 드네요. 출신지역만으로 따지면 제 3세계지만 버사는 식민지에서 부자가 된 백인의 딸이잖아요. 그쪽 인종으로 얘기하자면 크리오요인셈인데, 이들이 본토의 유럽인에 비해서 차별을 받은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제3세계라고 말할 정도는 아닌거 같은데말이죠.
하여튼 쉬운게 없네요. ㅎㅎ

단발머리 2022-11-09 15:35   좋아요 3 | URL
일단 이 책의 저자들은 작품 속 ‘미친 여자‘를 작가의 분신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부장제에 거부하고 싶은 작가의 욕망을 미친 여자, 괴물이 체현하고 있다고요. 제가 관심이 가는건 스피박의 해석 쪽인데요.

제인을 제1세계 여성으로, 버사를 제3세계 여성으로 본 건 스피박의 해석입니다.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버사는 식민지 부자인 백인의 딸인 크리올이지만, <제인 에어>에서도 ‘검은 피부‘를 가진 여성으로 그려진만큼 백인이라기 보다는 혼혈여성으로 예상됩니다. 그렇다면 버사는 백인 사회에서는 멸시를 받고, 원주민 사회에서도 속할 수 없는 애매한 위치에 있었던 건 확실한 것 같고요.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의 저자, 진 리스의 경우처럼 말이지요.

부유한 가문, 백인 혈통의 여성일지라도, 버사가 재산을 빼앗기고 감금되고 미친 여자로 규정되는 과정을 식민주의 침략의 은유로 보았을 때, 스피박은 제인도 버사의 ‘제거‘에 공모했다고 보는 것 같아요. 저도 다시 읽어봐야하고, 또 그렇게 보는 면이 불편한 지점이 없지 않지만, 지금까지 제가 대략적으로 살펴본 바로는 그렇습니다. 제2페미니즘 물결이 한참일 때, 백인 여성들이 운동의 주도권을 독점하고 흑인여성, 유색인종의 여성들을 억압했던 역사도 겹쳐져 보이고요.
쉬운 건 정말 없는 것 같습니다 ㅎㅎㅎ

바람돌이 2022-11-09 21:37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제인에어를 읽지 않았고, 버사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 얘기한걸 본거였는데 백인이 아니라는 생각은 한번도 못해봤는데 저의 또 선입견이었군요. ㅠ.ㅠ 똑바로 읽고 다시 오겠습니다. ㅠ.ㅠ(지금 잠시 벌서고 있어요. )

지금 읽고 있는 메리 셀리의 <최후의 인간>에서도 작가의 제국주의적인 관점이 너무 분명하게 나옵니다. 이 시대의 시대적 한계랄까싶기도 해요.

다락방 2022-11-09 16: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버사 부인을 비백인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읽기 전이지만, 단발머리 님의 이 글을 읽으니 버사 부인이 제인의 분신이라는 해석에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페이퍼를 읽었을 때 스피박의 해석 쪽으로 저는 좀 더 기울긴 하네요. 제가 다락방의 미친 여자 책을 읽는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요. 저는 진 리스도 결국 스피박 처럼 보았기 때문에 버사 부인의 입장에서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썼다고 생각되거든요. 읽은지 오래돼서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도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네요.

와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제가 아직 서문 딸랑 한 편 읽고 멈춘 상태지만, 읽고 써주는 여러분들의 글이 정말 재미있어요!

단발머리 2022-11-09 16:30   좋아요 2 | URL
진 리스는 버사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운 소설을 쓰고, 스피박은 제국주의 관점에서 두 소설을 비교, 분석했는데요. 언어의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저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아직도 안 읽었답니다.

책이 좋아서 앞으로도 여러분들의 좋은 글이 많이 올라올 것 같아요. 또 비교적 ㅋㅋㅋㅋㅋㅋ 잘 읽히기도 하구요.
책선정의 달인님이 참 좋아하실 일입니다^^

건수하 2022-11-09 16: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많이 읽으셨네요. 저도 <생각하는 여자는 ~ > 읽고 스피박에도 관심이 가던데, 워낙 어렵다는 말을 (정희진 님 책에서) 많이 봐서 겁을 먹고 있어요. 또다른 분신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저는 하나의 가능성 (언제든 될 수 있는) 이라고 생각했는데..

<제인 에어>도 그렇고 <노생거 사원/수도원>에서 캐서린의 틸니 부인에 대한 상상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 언젠가 본인의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재미도 있었지만, 그 부분 때문에 노생거.. 가 좋았어요.

저도 (제3세계 여성이라서 그런가) 스피박의 해석을 부정할 수는 없더군요.

단발머리 2022-11-09 16:32   좋아요 2 | URL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같은 경우는 뭐,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고 하더라구요. 해러웨이님이랑 두 분이 좀 겨뤄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저는 수하님 리뷰 보면서 <노생거 사원>을 이번에 다시 읽었는데 너무 잘한 거 같아요. 캐서린이 틸니 장군 의심하면서 틸니 저택 돌아다니던 장면, 저는 그 장면이 좀 의아했거든요. 작가의 불안이 그 장면에 속속들이 숨어있더라구요.

저는, 아직은 스피박 쪽은 아닙니다. 아직도 제인이고 싶은 나여. 나, 제인이여.....

다락방 2022-11-09 17:03   좋아요 2 | URL
근데 스피박은 이름부터가 너무 어려운 느낌이지 않나요? 스피박... 이름부터 ‘나는 어렵지롱!‘ 하는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2-11-09 17:07   좋아요 1 | URL
사진 보셨어요? 사진 봐도 그런 느낌.... 나는 어렵지롱! 하는 느낌 들더라구요, 저는.

다락방 2022-11-09 17:11   좋아요 2 | URL
저 지금 단발머리 님 댓글 읽고 검색했거든요? 근데 이미지가 정희진 쌤 비슷한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2-11-09 17:17   좋아요 2 | URL
응응, 맞아요. 근데 정희진쌤이 좀 더 순한맛 같아요.
스피박은 키가 크다고 어디선가 읽은 거 같아서요, 180센티미터 가깝다고요. 그래서 정말 그런가 찾아볼래니, 못 찾겠어요.

책읽는나무 2022-11-09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제인 에어 2> 읽고 있는 중입니다.
숨가쁘게 달리고 있었는데, 단발님 리뷰 읽으면서 잠깐 끼익!!!!!! 멈춰지네요.
제인이 작가의 분신일 것이라 생각하고 읽고 있었는데 버사가 분신일 수도 있다구요?
아...그래서 샬롯 브론테 작가를 제국주의자, 인종주의자라고 비판하는 거였군요?
그게 살짝 이해가 안갔었는데 2 권을 읽으면서 로체스터의 넋두리에서 살짝 제국주의적 의식이 엿보이는 말들이 있어 이걸 두고 그러나? 싶었는데...버사의 설정이 이유였군요.
제가 제인 에어를 늦게 읽어 아둔했네요ㅋㅋㅋ
근데 비평들이 일리가 있기도 합니다.
남은 부분들은 좀 더 꼼꼼하게 읽어봐야겠어요.
순전히 제인의 고통에 빠져 읽다 보니...로체스터 바람둥이로 눈 흘기고 읽었는데, 또 한편으론 가문에 이용당한 피해자로 보이기도 하고, 지금은 제인의 슬픔에 빙의되어 있어 앞뒤 눈에 보이지 않았는데.....정신 바짝 차리고 읽겠습니다.^^;;;

단발머리 2022-11-10 17:55   좋아요 1 | URL
제인이 작가의 분신이며 버사도 작가의 분신이라고 하네요. 저도 좀 더 읽어봐야 하는데 읽어갈수록 머리 속이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책나무님 제인 에어 열독하시는 피드 보았습니다. 참고도서 읽기에 다미여 읽기까지.... 진정한 학인이십니다!!

- 2022-11-09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재밌어요! 너무 재밌어요! ㅋㅋㅋ
이상한 말이지만 저는 한번도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적이 없어서, 만약에 제인에어를 어렸을 때부터 읽었더라면…. 제인에어에 이입했을까? 싶었거든요 ㅋㅋㅋ
노생거도 ㅋㅋㅋ 저 캐서린에 이입이 안되어서 너무 읽기 힘들어요 ㅋㅋㅋㅋㅋㅋ (오늘 쯤엔 다 읽을 거 같은데 ㅋㅋㅋㅋ)
저는 데미안이 인생책이고 사주팔자도 남자사주였음 좋을거 같단 이야기 듣고, 만화도 순정만화보단 차라리 소년만화였는데요 ㅋㅋㅋ
인생책이 제인에어였던 단발님께 스피박의 지적이 얼마나 중요한 질문인지 뭐랄까 좀 가슴이 아프지만 지적으로 흥분되는 그런 시선으로 이 글을 읽게 되었어요. 스피박의 읽기는 사야겠네요 ㅋㅋㅋㅋㅋ 후…. 종횡무진 겹쳐읽기에 레퍼런스마저 미치도록 지적인 글에 좋아요 백개 누르고 갑니다 ㅋㅋㅋ

단발머리 2022-11-10 17:57   좋아요 1 | URL
쟝님 인생책 데미안 기억할게요. 나도 데미안 이었으면 근사할텐데...
나는 온 국민이 다 아는 제인 에어가 인생책이어서... 스피박의 지적은 저에게 너무 날카롭고, 그래서 저는 부담스러우며, 진도는 지지부진하고, 흥분되면서 동시에 힘이 빠지는.... 그런 형국입니다.
스피박 좀 읽어주세요. 설명 좀 해줘요, 쟝쟝님!!!

독서괭 2022-11-18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단발님, 이글 읽고 잊고 있던 ‘찜‘기능을 이용했어요. 넘 좋네요. 여러 책을 넘나드는 단발님의 깊이 있는 생각 넘 좋아요!
예전에 <제인에어> 두번 읽었는데도 버사가 제3세계 사람인지 몰랐어요;; 아놔.. 다시 읽어야겠어요 ㅠㅠ
그리고 방금 제가 <아그네스 그레이> 리뷰를 쓰면서 제인에어의 남주인공을 ‘맨체스터‘라고 썼는데 이글 읽으며 ‘로체스터‘임을 깨닫고 후다닥 고쳐쓰고 왔어요 ㅋㅋ 감사합니다 ㅋㅋ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야 뭐야 ㅋㅋㅋ
제인에어 재독하고 쓰실 단발님 글 기대할게요!!

단발머리 2022-11-24 20:04   좋아요 0 | URL
독서괭님, 맨체스터 저 너무 웃겨서 ㅋㅋㅋㅋㅋ 저도 다른 분 방에서 마리 앙투아네트 이야기하다가 ˝알라딘 대유형˝ 이렇게 썼더라구요 ˝알라딘 대유행˝인데요. 지금 월드컵이라 독서괭님 오타는 괜찮은데 저는 어째요. 저는 하루 지나 발견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제가 제인인지 버사인지가, 저한테는 중요한 문제라서요. 제가 <제인 에어> 재독하고 돌아오겠다 했는데... 저 시작도 못하고요. 이러다 발췌독하게 생겼습니다. 흐미....
 

















예순이 다 되어가는 해러웨이가 병상의 아버지에게 반려견 카옌과의 어질리티(장애물 넘기를 포함한 인간과 개의 협동 게임) 경기에 대해 설명한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수 없었다. 스포츠 기자였기 때문에, 그리고 나의 아버지였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관심을 원했고, 아버지의 인정을 원했고, 내가 하는 것을 제대로 알아주시길 바랐다. (220쪽) 











재가 된 사체를 땅에 묻는 것은, 떠나는 것이 단순히 그 사람이나 그 영혼만이 아니라는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신체라고 부르던 매듭으로 묶여있던 것이 떠났다. 그것은 풀려버렸다. 내 아버지가 풀려버렸다. 그것이 내가 그를 기억re-member *해야만 하는 이유다. 나를 비롯해서 아버지와 얽혀 살았던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육신이 된다. 우리는 죽은 자와 친척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체가 우리를 접촉해왔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신체는 내가 딸로서 알았던 신체이다. 나는, 내가 물질적 기호론과 기호론적 물질성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텍스트와 신체를 연결하는 육신으로서, 물질적 문채와 물질적 실수로 아버지의 신체를 계승한다. - P204

사업가이자 지역의 명사이기도 했던 할아버지는 덴버에 베이브루스와 루 게릭 같은 스포츠 명사들을 오게 했다. 그들은 꼼짝 못 하고 누워 있는 아버지를 위해 집에까지 와서 야구공에 사인을 해 주었다. 할아버지를 비롯한 지역의 사업가 동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프로농구보다 훨씬 이전에 백인 농구 리그를 만들었다. BF 굿리치, 에크론 굿이어, 피글리 위글리를 비롯한 중서부와 서부의 실업 농구팀 선수들은 모두 중간관리자의 지위가 약속된 백인남성이었다. 인종화라는 신체적 실천은 많은 형태를 취할 수 있다. - P208

가족, 스포츠, 비즈니스가 뒤섞인 계보는 그 전형일 것이다. 아버지는 스포츠 기자였다. 그것은 나의 백인으로서의 존재 방식이나 게임 이야기를 구성하는 일부이다. 인종과 돈은 아버지가 스포츠 기자가 된 경위를 구성하는 일부이다. - P209

나는 신체성을 통해서 아버지와 관계를 맺고 아버지의 관심을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말의 관능성과 쓰는 행위를 통해서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말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말장난을 하고, 저녁 식사로 말을 먹었다. 그 말들은 우리의 음식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요리를 해 주시는 가운데, 그녀의 외로움과 우리가 거의 눈치채지 못한 그 신체적인 허약함 속에서, 우리가 그녀의 마음-몸을 먹고 있는 사이에도, 그 말들은 우리의 음식이었다. - P215

중년 여성과 재능 있는 개가 함께 몰두하는 스포츠, 지금은 월요일 밤의 황금시간대를 아메리카 풋볼이라 불리는 인간을 깨부수는 그 스포츠가 차지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 시간에 방영하게 될 경기. 아버지가 고통으로 정신을 못 차리고 진통제 때문에 환각을 보고 있을 때도 나는 국제 수준의 상급코스 도판을 보여드리고, 기술적으로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설명하고, <미국 개 어질리티 협회> USDAA 전국 대회 비디오를 보여 드렸다. 그리고 카옌과 나의 희비가 교차하는 자초지종도 적어서 보내 드렸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수 없었다. 스포츠 기자였기 때문에, 그리고 나의 아버지였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관심을 원했고, 아버지의 인정을 원했고, 내가 하는 것을 제대로 알아주시길 바랐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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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8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08 2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2-11-08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질리티라고 해서 또 책상 어지르는 이야기인줄 알고 들어옴요. ㅠ.ㅠ

단발머리 2022-11-08 21:48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고요. 혹시나.... 해서 사진 넣어보았습니다. 강아지랑 호흡 맞춰서 같이 달리는 게임인가 봐요.

다락방 2022-11-09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것은 반려종 선언에서도 언급된 바로 그것이 아닙니까! 저 오늘 임소연의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읽었는데 거기에도 도나 해러웨이 언급되더라고요. 사이보그 선언 얘기하는데 그전에 사이보그 선언 읽어둔 게 어찌나 좋던지요. 당시에 이해하지 못해도 다른 책에서 언급될 때마다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2-11-10 17:59   좋아요 0 | URL
임소연의 책에도 어질리티가 나온다는 거에요? 신기하네요. 읽었던 해러웨이 책 중에 이 책이, 이 챕터가 제일 쉬웠어요.
저는 해러웨이 아버님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해러웨이 더 많이 읽기를 다짐했습니다.
사이보그 선언 미리 읽어두기 진짜 잘했어요. 헤헤
 

















너무나도 특별하고 독특해서 과거에 존재한 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절대 존재하지 않을 유일한 배열로서의 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11)’ 그리고 마찬가지로 유일한 조건으로서의 너같은 표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위인들의 개인사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아는 보부아르의 처녀 시절, 내가 아는 체슬러의 반항적 10대 시기, 내가 아는 아렌트가 하이데거와의 관계를 두고 고민했던 시간에 대해 듣는 것은, 내게 그런 일이다.

 


도나 J. 해러웨이의 <종과 종이 만날 때>에서 아마도, 거의 확실히 가장 쉬울 것이라 예상되는 챕터 <6 : 유능한 신체와 반려종>를 읽었다. 해러웨이는 아버지 프랭크 해러웨이의 삶을 비교적 자세히 서술한다.

 

 



















원서 읽기 친구들과 같이 읽는 <Me before You>는 이제 두 주 정도의 분량이 남았다. 미리 읽어두자, 하는 마음에 이번 주 분량을 어제 읽었는데 마음이 아팠다. , 이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마음을 울리는 책을 원서 읽기 책으로 선정했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안타까움과 슬픔, 그리고 약간의 원망이 차오르는데, 그런데도 주인공 윌을 미워할 수 없어서 더욱 속상했다. 교통사고로 하체가 마비되고, 얼굴과 목, 그리고 손가락 몇 개만을 움직일 수 있게 된 윌은 스위스에서의 안락사를 선택한다. 윌의 부모는 새 간병인 루이자에게 마지막 희망을 건다.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고, 자기 집, 자신이 살았던 동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루이자에게 윌은 새로운 가능성, 삶의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어 준다. 루이자는 윌을 통해 새로운 꿈을 꾸게 되고, 그 길에 윌과 함께하기를 원하지만, 윌은 자신의 결정을 바꾸지 않는다. 루이자는 자신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스위스행을 고집하는 윌을 원망하지만, 결국에는 그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하고 그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다. 소설 끝부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윌을 이해하게 됐다. 그가 자신을, 자신의 삶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리고 그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알게 됐다. “I can make you happy.“라고 루이자가 말할 때, 그녀의 그 모든 말들은 100% 진심일 테지만, 그녀의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는 루이자조차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윌은 그걸 알고 있었다.

 


윌은 자신을 사랑했고, 자신의 몸을 사랑했다. 운동을 좋아했고, 수영을 좋아했고, 그리고 섹스를 좋아했다. 휠체어에 갇힌 삶,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이런 삶을 계속 살아야 하는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자신을,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해러웨이의 아버지는 생후 16개월 때 넘어져서 엉덩이를 다치고 그때쯤 앓게 된 결핵으로 8살에서 11살 때까지 가슴에서 무릎까지 단단하게 깁스로 고정된 상태로 침대 위에서 생활했다. (208) 휠체어와 목발이 그의 다리가 되어 주었다. 그는 휠체어에 탄 채로 농구 경기에 나갔고, 탁구 경기에 나가 3회 연속 우승을 했다. 목발을 짚고 스포츠 현장에 나가 경기를 기록했다. 스포츠 기자가 되었고, 그 일로 돈을 벌었다. 해러웨이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갈수록 그의 호기심과 열정, 그의 생명력이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했다. 고통과 고난, 절망과 좌절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형태로 작동하는 건 아니지만, 이처럼 명확한 불행속에서 이렇게 담대하게 삶에 직면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나는 이 문장이 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아버지는 1930년대의 콜로라도주 탁구 선수권 대회에서 3회 연속 우승을 했다. 상대가 되받아치기 불가능한 서브 - 그 서브들은 몇 년 후에 규칙 위반이 되었다 - 를 구사했고, 운 좋게 타이밍도 겹쳐서다. 한 번이라도 탁구를 본 적이 있다면 자신의 다리로 테이블 주위를 움직이는 것이 이 스포츠에서 필수임을 알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히 아버지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손과 눈의 동조, 균형, 근성, 상체의 강인함, 마음과 신체의 창의성, 그리고 욕망 때문이었고, 또한 자신의 신체와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단 1분이라도 그것을 거부하거나 부동의 상태(, 신체 바깥에서 사는 것)를 실행 가능한 선택지로 상정한 적이 없이 살았기 때문이다. (213)

 


그런 삶을 예상치 못했던 윌과 그런 인생이 삶의 기준점이었던 프랭크 해러웨이. 인생은 예상치 못했던 일들로 가득 차 있기에 다른 삶, 다른 가능성에 대해 윌이 받아들여 주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외부자의 희망일 뿐이다. 프랭크 해러웨이가 윌보다 더 강인해서가 아니라, 윌에게는 그런 삶의 조건으로 자신의 삶을 상상할 수 없었다는 것이 더 주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윌이 강원래처럼 살아남기를 바라지만, 그리고 루이자는 그의 김송이 되어줄 거라 믿지만, 이것 역시 쓸데없는 생각일 수도 있겠다. 윌은 윌이고, 루이자는 루이자인 것을.

 

 

 


 

모두 다 그렇겠지만 나 역시 조용하고 우울한 한 주를 보냈다. 내가 돌아간 일상에는 나 혼자여서 얼마든지 조용할 수 있었는데, 생각 없이 켠 라디오에서 생존자 인터뷰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이 흐르고. 미안하고 암담한 마음 너머에는 무력감이 자리했다. 세월호 사건 때도 그렇고 이번 사건도, 나는 마흔을 넘긴 모든 사람에게 이 일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는 젊은이들을 지켜주지 못했고, 아이들은 그렇게 죽어갔다. 서울 한 복판, 이태원에서.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말을, 오래오래 생각했다. 슬픔의 전시라는 말에 대해서도. 이 일로 인해 온 국민이 느끼는 슬픔과 아픔, 그리고 애통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인가. 그렇게 볼 수 있는가, 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잘 모르겠다. 나의, 잘 모르겠다, 는 그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의 애도는 무엇인가, 어떤 방식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고통을 이겨내고 슬픔을 잠재우고 그리고 떠나간 이를 애도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데. ‘잊지 않겠습니다의 세월호에 대한 마음이 24시간 365일 세월호을 생각하겠다는 다짐은 아닌데. 10.29 참사에 대한 애도가 한정되어야 하는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입에 밥을 넣은 채로 애도할 수 없단 말인가. 장례식장에서도 그렇게 한다. 조문을 하고 상주에게 안타까운 심정을 전하고, 그리고 밥을 먹는다. 입에 밥을 넣은 채로도 울 수 있고, 밥을 먹으면서도 애도할 수 있다. 애도의 방식이, 애도의 표현이 어떠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다움의 요구일 수 있다는걸. 모른다는 말인가.

 


나는, 밥을 먹고 책을 읽었다. 빨래를 널고 물을 마시고 책을 읽었다. 인터뷰를 들으며 한 번 울고, 진공청소기를 돌렸다. 설거지를 하면서 한 번 울고, 그리고 수건을 개어 욕실 서랍장에 넣었다. 생각만해도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르는 친구들과 톡을 하면서, 힘을 내, 우리 힘을 내자, 말하고, 빨래를 하고 다시 책을 읽었다. 아침에 나가 주검이 되어 돌아온 아들, 딸을 마주한 희생자 가족들의 원한, 하늘 끝까지 사무칠 그 억울함. 친구를 잃은, 친구는 죽고 나만 살았다, 고 말하며 우는 젊은이들의 눈물.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닌 소방대원과 경찰들의 죄책감. 그날, 그 시간, 그 장소에 간 것이 잘못이 아니고, 친구는 죽고 살아남은 것이 잘못이 아니고, 최선을 다했지만 살리지 못한 것이 그들의 잘못이 아님을. 밝혀줄 사람이 누군가. 누가 이 일을 해야 하나. 우리 어른들은 무얼 해야 하나,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로 이미 세상을 떠난 젊은이들을 살려낼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억울함을, 유가족의 원한을 그리고 온 국민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것이 애도의 시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잊지 않고, 모른체 하지 않고, 이 비극적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는 일이 거기에 포함된다고 믿는다. 

 

 




10. 29 참사 희생자에게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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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8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10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2-11-08 17: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단발님 글 읽으니 또 마음이 아프네요 ㅠㅠ 애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자‘라는 사람들이 정작 그 말로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입니다. 애도하면서 밥도 먹고, 생활을 이어가고, 그러면서 또 애도하고 생각하고, 힘내서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겠지요.
미 비포 유를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페이퍼네요. (해러웨이 읽겠다는 말은 안함.. 심지어 해러웨이는 집에 있음..ㅋㅋ)

단발머리 2022-11-10 18:01   좋아요 2 | URL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지, 저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자주 생각합니다. 슬픈 마음을 뒤로 하고요.

미 비포 유는 정말 베셀의 반전이라고 할까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그러면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추천합니다!!

건수하 2022-11-08 20: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발님이 이런 글 써주실 줄 알고 기다렸어요. 감사해요.

단발머리 2022-11-10 18:01   좋아요 1 | URL
수하님, 댓글 감사해요.....

- 2022-11-09 2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현재진행형인 사건에 어떤 말을 가져다 붙이는 것 마저 쉬운 타자화같단 생각이 들어서 가슴아프다는 표현을 짤막하게 일기에 써둔 것 말고는 이태원 참사에 대해선 말을 아끼는 중예요. 이성은 차갑고 감정은 뜨겁다고 오래오래 그게 우리의 도식였잖아요. 연결을 끊을 수 없는 이 세계를 사는 동안 참사는 계속될 것이고, 정치 역시 이어질 것이며, 고통은 목도될 것인데, 감정은 차갑게 이성은 뜨겁게라고 혼자 열심히 생각했어요. 한나 아렌트가 자꾸 생각나고…

그리고, 이 글에서 ‘그런 인생이 삶의 기준점’이었다는 말에 대해서도 전 더 생각해보고 싶어요. 그 기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 내가 놓아야하는 것은, 무엇일까하고… 질문들은 또 제게서 부딪히는 데요. 너무 한꺼번에 다 답을 내겠다고 스스로를 볶아대진 않으려고요. 애도합니다. 애도 중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이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단발머리 2022-11-10 18:04   좋아요 2 | URL
감정은 차갑게 이성은 뜨겁게 나도 기억할게요. 말이 안 되는 상황이 억울한데 누구한테든 물어볼 수가 없네요.
어떻게든... 답을 찾아야겠죠. 암담하긴 하네요.
오래 고민하고 올린 글이라서..... 저도 답을 모르겠고요. 댓글 고마워요, 쟝님.
 


 

















사랑에는 원래 질곡이 많은 것이 자연스러우니, 이 책의 주인공들도 오해하고 화해하고 미워하고 용서하는 사건, 사고가 많다.

 


첫 번째는 남주(콜린)가 여주(올리비아)에게 무시하는 말을 해서 올리비아가 화가 났고, 콜린이 찾아와 진지하게 사과했다. 두 번째는 올리비아가 콜린을 오해한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연성이 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올리비아가 콜린을 오해하고 콜린 역시 화가 난 상태였다. 얼마 후에 진실을 알게 된 올리비아가 사과하면서 화해를 청하고 콜린은 올리비아를 용서한다. 그리고 세 번째. 이 오해/실수/잘못은 전적으로 콜린의 것이면서 또한 작가의 것이기도 한데, 이런 설정 자체가 이 소설의 틀이 되기 때문이다. 콜린은 미안하다고 말하며 올리비아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올리비아는 설명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올리비아가 아니라, 내가 콜린이라면 어떨까. 말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오랜 시간 올리비아를 속인 건 잘못이고, 그것 때문에 올리비아가 (가볍기는 했지만 진지했던) 두 사람의 관계를 끝내겠다고 하면,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콜린은 올리비아를 진심으로 대했고, 올리비아를 너무 좋아하게 되었고, 그녀 역시 자신에 대해 그런 마음이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화가 난 올리비아는 그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전화를 차단하고, 집(같은 아파트, 다른 층)에 찾아오지도 못하게 한다. 용기를 내서 보낸 커다란 꽃바구니를 아파트 로비 테이블 위에 놓고 갔다.  

 


이제 콜린에게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만약 여기에서 더 많은 문자를 보내고, 더 많은 전화를 하고, 그녀의 아파트와 직장을 찾아간다면, 그건 스토킹 범죄다. 올리비아는 명시적으로 자신은 더 이상 이 관계에 관심이 없다고, 너랑 끝내겠다고 말했다. 설명하고 싶은 건 콜린의 마음이다. 되돌리고 싶은 것도 콜린의 마음이다. 올리비아는 그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만약 나의 진지한 이 마음을 그녀가 제대로듣기만 한다면, 그녀의 마음이 돌아설 거라는 건, 그만의 착각이다. 듣지 않기로 한 것이, 올리비아의 선택이다. 그 선택 때문에 두 사람이 어긋나고, 이별하고, 다시는 못 본다 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해 때문이건 잘못된 판단 때문이었건, 후에 사실을 알게 된 올리비아가 혹은 그를 용서하게 된 올리비아가 땅을 치고 후회를 하든 말든 어쩔 수 없다. 지금 상황에서 콜린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똑같은 상황이 아니기는 하다. <오만과 편견>에서 다아시는 매사에 오만하기는 했지만, 위컴과의 사건에 관해서는 잘못이 없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위컴의 말만 믿고 다아시를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자신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에게 편지를 쓴다. , 사랑과 정성의 러브레터. 역시 편지는 손편지가 최고지요.



 
















이 편지를 받고 제가 지난밤 당신을 그토록 불쾌하게 했던 감정을 다시 토로하거나 또다시 청혼을 할까 봐 놀라지는 마십시오, 엘리자베스 양. 제가 편지를 쓰는 의도는 우리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 빨리 잊으면 잊을수록 좋은 희망에 대해 길게 논함으로써 당신께 고통을 주거나, 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려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런 편지를 써서 당신이 읽어주시도록 부탁드리는 것이 제 성격상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더라면 제가 이 편지를 쓰고 당신이 그것을 읽으셔야 하는 수고는 덜어질 수도 있었겠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멋대로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을 용서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당신이 이 편지를 기꺼이 읽어줄 기분이 아니시라는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공정함의 문제라고 감히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277)

 


다아시는 편지를 썼다. 콜린은, 콜린은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콜린은 이사를 간다. 살던 집을 정리하고 다른 도시로 떠나기로 한다. 올리비아가 없는 곳, 올리비아를 볼 수 없는 곳으로 간다. 혹 그렇게 하면 그녀가 자신을 붙잡을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할 수 없는 상황. 이렇게 계속 살 수 없으니, 살려고 간다. 나도 살아야겠다, 는 심정으로 이사를 간다.

 



 





이 문단이 이 소설에서 제일 좋았다. '나는 너를 사랑해' 라는 말 뒤에, ‘나는 너 없이는 살 수가 없어가 아니라, ‘죽을 거 같아서, 난 여기서 벗어나야겠어라고 말하는 게 좋았다. 죽을 것 같은 심정이고, 정말 죽을 것 같지만, 그 사람이 끝내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고, 나는 결국 그 사람을 얻지 못할 것이 확실해진 그 상황에서.

 


너 없는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너 없이는 살 수 없어. 그래, 나 죽고 너 죽자, 가 아니라. 나도 이렇게는 못 살겠어. 나도, 나도 살아야겠어. 그런 마음이 좋았다. 돌려받지 못한 마음, 이미 내게서 떠나버린 내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살아야겠다고, 이렇게 바보처럼 망가진 채로 살 수는 없다고, 여기서, 이 상황에서 도망가겠다고 말하는 게, 좋았다. 애원보다는 이사를 권한다. 혹시 모를 일, 올리비아처럼 그녀가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

 

 



주말이니까 느긋하게는 아니고. 밥 먹기 전에 커피를 내렸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사람은 밥 먹기 전에 달달한 탄수화물 일체를 먹지 못한다. , 도넛, 쿠키 등등. 나는 그런 순서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고, 저 도넛 다른 사람이 먹기 전에 내가 먹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이게 마지막 도넛이다. 맛있는 거는, 제발 내가 먹어야 한다.

 


올해는 유독 로맨스를 많이 읽었다. 영어책이니까, 라는 변명을 하기에는 너무 그쪽으로 치우쳐졌다. 이제 제발 그만.

 


사랑 그만. 로맨스 그만. 뜨거운 밤 그만. 이제 제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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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2-10-29 1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뜨거워서 선풍기 트셨나봐요?

단발머리 2022-10-29 11:0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더워요 ㅋㅋㅋㅋㅋㅋㅋ 이상기온 생각보다 오래 가네요, 올해는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2-10-29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저 잔은 제가 품절이라 못 산 미친여자 맥주컵이네요! 아아도 넉넉히 들아가고 손잡이도 커서 좋고.. 부럽네요. 도넛도 너무 맛나보이고요~

단발머리 2022-10-29 12:24   좋아요 1 | URL
아이고 ㅋㅋㅋㅋㅋ저는 커피잔으로 애용하는 맥주컵입니다. 제가 아침에 커피를 좀 진하게 타서 글씨가 잘 안 보이죠? ㅋㅋㅋㅋㅋ 알아봐주시는 안목, 반갑습니다^^
멋진 컵은 다음에 좋은 책과 함께 또 다른 기회가 있으실 거에요. 저도 다른 건 아닌데 컵은 항상 욕심나서 그 맘 압니다^^

프레이야 2022-10-29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니 단발머리 님 선풍기에 맥주잔 아아 얼음까지 동동 ㅎㅎ 열기는 좀 가라앉았나요. 그나저나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유혹 참고 있는데 오만과편견 초판본 디자인도 못 참게 하네요.

단발머리 2022-10-29 13:59   좋아요 1 | URL
저도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중에서 오만과편견이랑 이방인은 정말 사고 싶기는 한데요. 집에 오만과편견이 총 3권이네요. 자중해야겠지요 ㅎㅎㅎㅎㅎ
열기는 그만 가라앉아야합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헉헉.

- 2022-11-01 1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님 로맨스 쟁이 놀리려다 태그....보고.. ㅋㅋㅋㅋㅋ 뜨밤을 누가 말려요.. 계속 하세요.. 뜨겁게..... 춥잖아요? (쿨럭...)
저도 요새 감정이 좀 남아서... 로맨스 끊기 전까지 인생 드라마였던 동백이나 다시 볼까 싶어요... 비록 내겐 강하늘이 없지만 ㅜㅜ 강하늘의 응원은 좀 필요하니까요... 흑 ㅜㅜㅜㅜㅜㅜㅜㅜ 근데 강하늘은 요새 작품 이상한 것만 찍더라? (그러고 보니 잊고 잇었다. 내가 강하늘을 좋아했던 것을...)

단발머리 2022-11-10 18:05   좋아요 0 | URL
나 로맨스 끊게 도와줄 수 없는지 그게 좀 궁금합니다. 가능하시면 협조 좀 합시다.
강하늘은 요즘에 뭐하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상속자들> 이후에는 강하늘 못 봐서요, 미안합니다.

독서괭 2022-11-04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원 대신 이사라는 제목에 이런 심오함이..!! 매우 공감합니다.
근데 도넛은반드시내꺼 뭐예요 ㅋㅋㅋ 사랑그만 ㅋㅋㅋ 왜 아무도 나 안말려요 ㅋㅋㅋ 왜 말려야 하나요? ㅋㅋㅋ

단발머리 2022-11-10 18:06   좋아요 1 | URL
애원이 곧 협박되고 그러더라구요. 한 번, 아님 두 번 진지하게 물어보고 안 되면 이사 권합니다.
도넛은 제꺼인데, 왜냐하면 딱 한 개 남아서요. 제가 먹어야 돼요, 맛있는 거는요^^
 


















1. An American Bride in Kabul

 


밀린 책 읽기에 여념이 없는 요즘이다. 2챕터 남았던 책을 마저 읽었다.

 


카불의 미국인 신부, 필리스 체슬러는 제2세대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페미니스트 중의 한 명이다. 미국으로 유학 온 아프칸 남성과 결혼해 카불에서 5개월 정도 체류하면서 죽음의 위기 가운데 간신히 카불을 탈출했고, 시간이 지난 후에 그때의 경험을 책으로 펴냈다. 지적이고, 여유로우며, 개방적이었던 남편이 카불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사람으로 변해 버린 일에 대해 체슬러는 이렇게 쓴다. 그는 나를 진지한 지적, 미적 포부를 가진 미국 대학교육을 받은 학생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아프칸 아내로 대했을 뿐이다.

 

 




명예 살인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며, 아프칸이 아닌 미국 혹은 캐나다에 살면서도 과거의 관습 때문에 아버지 혹은 남자형제들에게 살해당하는 여성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이론가이자 혁명가로서의 그녀를 보여준다. 페미니즘은 서구 사상의 산물이라던가, 명예 살인을 문화 상대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당당히 맞서 싸운다.

 






지독한 과거, 죽을 것만 같은 고통으로 점철된 과거를 직면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각각 다를 것이다. 체슬러는 그 과거에 당당히 맞섰다.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였고, 그 나라가 자신을 억압하고 감금하고 굶주리게 했음에도 자신을 그 나라 역사의 일부라고 여겼다. 그곳에서의 삶을 잊지 않았고, 자신은 이미 탈출에 성공해 꿈꾸던 대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곳의 억압받은 여성들을 잊지 않고, 그들을 위해, 그들과 함께 싸웠다.

 


이론가이자 혁명가. 페미니즘의 산증인. 예언가. 실천하는 지성. 진정한 영웅, 마이 히어로. 필리스 체슬러.

 




 














2.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글이 사람을 얼마만큼 보여줄 수 있나. 어느 정도 그 사람의 진면목을 노출시키고 그 사람의 부족함을 전시하는가. 전영애 교수님의 글은 따뜻하다. 따뜻해서 지금이라도 찾아가면 금방 차를 한 잔 내어 주실 것 같고(이건 예의가 아니라서, 해서는 안 될 일이기는 하다), 이 책에서와 같은 좋은 이야기를 한없이 들려주실 것 같다.

 


공부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을 끌었다. 치열하게 공부하며 살아냈던 시간이 눈앞에 그려졌는데, 아이를 낳은 지 2달 만에 유학길에 오르는 몸과 마음을 상상하면 더욱 그랬다. 저자가 그 모든 인고의 시간을 거쳐 대학에 임용되고 그리고 정년퇴임을 하고 여백서원을 지었던 일들이 모두 꿈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돌아보면 그 캄캄하고 절박했던 세월이 내 인생의 초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막막하게 쭈그리고 앉아 읽고 손가락이 굳도록 적었던 것들이, 혼자 힘으로 무얼 읽고 읽어내는 일, 지금껏 제 자양분입니다. 그 캄캄한 10년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저는 없을 것도 같습니다. 그 시절 제가 의지했던 건 미안하기만 한 제 아이들로부터 받은 힘이었고(아이들은 고맙게도 잘 커주었습니다), 대학원 시절에 받은 소중한 장학금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무언가 보답이 될 만한 사람이 되고 싶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89)



 

특히, ‘캄캄한 10이라는 문구가 오래오래 뇌리에 남았다.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인정받는, 혹은 평가받는 그 모든 시간 바로 앞에. 나 혼자 책을 펴고 읽고 번역하고 쓰고 공부하는 그 인고의 시간이, 그 캄캄한 10년이 얼마나 길었을까, 외로웠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하루를 살았다고 말했다. 10년을 그렇게 살았던 것이 아니라, 오늘 할 일, 오늘 바로 해야 할 일, 그것만을 생각하며 살았다고 했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암담함 속의 공부에 대해 생각한다. 하루, 오늘 하루, 오늘 하루치의 공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독서괭님과 서곡님의 페이퍼 덕분에 놓치지 않고 마저 읽을 수 있었다.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3. Mr. Wrong Number

 


일전에 친구들과 원서 읽기를 하던 중에 친구 한 명이 내게 연애 사건 발생(?)과 관련해서만 봤을 때, 일단의 가능성자체를 ‘차단'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친구는 내 글과  내 댓글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인데, 그 때는 그게 맞는가, 내가 정말 그런가, 생각했더랜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친구의 생각이 옳음을 확인했다.

 


제목이 9할인 로맨스 소설이니, 이 책은 Wrong Number을 가지고 여주에게 문자를 보낸 Mr.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겠다.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한 번 실수로 문자를 보내고, 재미있고 위트 넘치는 대화를 나눌 수는 있겠으나, 그다음날 혹은 며칠 후에 또 다시 그런 문자가 온다면? 바로 차단이다. 더 읽어볼 필요도 없다. 그 사람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남자인 척하는 여자이든, 여자인 척하는 남자이든 관심이 없다. 모르는 사람과 문자를 주고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걸로 이야기는 끝이다. 하지만, Mr. Wrong Number는 계속해서 문자를 보내고, 여주는 계속해서 답장을 한다. 스스럼 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멍청한 질문과 멍청한 대답을 주고 받으며 킥킥거린다. Mr. Wrong Number 29, 여주가 25이라서 가능한 걸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가끔, 우리는 우리를 모르는 사람 앞에서 더 솔직해진다. 말하고 싶어하고, 그리고 말한다.

 



 

 

만약 Mr. Wrong Number와 여주(Mr. Wrong Number는 그녀를 Miss Misdial이라 부른다)와의 이야기가 전부였다면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남주는 따로 있다, 물론.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여주 오빠 절친인데, 두 사람은 참을 수 없는 끌림 때문에 키스를 하고, 그건 실수였다고 합의했지만, 또 다시 길고 뜨거운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것마저 실수라고 주장하는 여주에게 남주는 fun fling, 썸을 타는 정도의 가벼운 연애를 제안한다.

 


 


 

두 사람이 데이트하는 장면이 좋았다. 손잡기가 섹스보다 좋다거나 혹은 섹스가 손잡기보다 강렬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긴 시간 서로를 알아 왔고, 또 아무리 봐도 이해되지 않는 엉뚱한 생활습관, 약점, 일말의 비밀까지도 알고 있는 두 사람이, 게다가 이미 섹스까지 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알콩달콩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일이 즐거웠다.

 

 

위의 인용문 보면 확인 가능하지만 보통 혹은 보통보다 쉬운 수준이다. 다만, 남녀 주인공들이 서로를 놀리면서 주고 받는 농담들은 너무 재치 만점이라 이해하지 못 하고 패쓰하는 경우도 많았다. 두 사람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Love you Forever.

 

 
















4. , 윌리엄

 


<오, 윌리엄> 출간을 축하드리며, 집에 있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책을 꺼내 보았다. 나는 이 중에 한 권을 읽었고, 한 권을 반정도 읽다 말았고, 두 권은 읽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제일 먼저 읽은 스트라우트 책은 <에이미와 이저벨>이어서, 내게 스트라우트는 좀 쎄고 강한 인상이다. 다른 책들도 읽게 될 날을 고대한다. 더 미루면 안 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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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0-28 13: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영애 선생님의 따뜻함은 이미 여러 분께서 올려주시는 인용문과 내용을 통해서 느껴졌습니다.
스트라우트 원서들 표지가 다 이쁘네요. 배경과 문자체의 조화가 근사합니다. 특히 <Olive, Again> 저 짙은 청록(!)색 참 마음에 드네요. 흩날리는 단풍잎도 근사하고ㅎㅎㅎ

꾸준히 원서읽기하시는 모습 멋지십니다. 저는 두달동안 이제 한 권 다 읽어가네요ㅠㅠ

단발머리 2022-10-28 14:14   좋아요 0 | URL
전영애 선생님 책은, 저도 알라딘 이웃님들 페이퍼 보고 읽게됐는데 읽는내내 참 따뜻하고 좋았습니다.
스트라우트의 책은 모두 다 예쁜데요. 저는 루시 바턴 저 시리즈가 예쁘더라구요. 가지고 있는데 의의를 두지 말고 읽어야할텐데요, 저도 제가 걱정입니다.

꾸준히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진도는 느립니다. 거리의화가님은 다른 책들을 많이 읽으시니까요. 두 달에 한 권도 대단합니다.
저도 카불의 신부 두 달 걸렸다죠 ㅠㅠ

다락방 2022-10-28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 롱 넘버 내용 알 것 같아요. 따로 있는 남주가 바로 그 남주.. 이겠군요. 그러니까 이건 그 뭣이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같은 바로 그것? 오호호호. 저도 다운 받아놓았으니 읽어볼래요. 지금은 미 비포 유를 읽어야 하지만 말입니다.

전영애 선생님 글은 하도 여러분이 좋다 하시니 저도 이젠 정말 읽어야할 때가 온것인가 싶습니다. 오..

단발머리 2022-10-28 14:16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맞아요, 맞아요!! 역시나! 제가 모르게 하려고 샤샤샥 해 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군요. 그 남주가 그 남주고, 그 사람이 이 사람입니다. 즐겁고 유쾌한 시간 보내시기 바래요.

전영애 선생님 책은 저도 한 권 더 있는데 읽어야지 싶습니다. 잔잔하면서도 강인하고... 참 좋아요^^

독서괭 2022-11-04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감사를 다 받다니, 영광입니다^^ 제가 늦게 왔네요.
카불의 신부 완독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쉽지 않은 원서 완독이라니, 대단하세요.
태그에 씩스팩 보고 웃고 갑니다 ㅋㅋㅋ

단발머리 2022-11-10 18:07   좋아요 1 | URL
완독 축하 감사드려요. 저도 너무 흐믓합니다. 체슬러라니, 이게 웬 떡입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씩스팩은... 글쎄, 그게 뭘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