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슬란과 류드밀라 비룡소 클래식 7
푸슈킨 지음, 카랄리코프 그림, 조주관 옮김 / 비룡소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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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20세기』 에서 제일 먼저 소개된 작가가 푸시킨이고, 책 제목을 비룡소 클래식에서 본 것 같아 찾아보니, 이 책이다. 다짜고짜 첫날밤.

 

 

여러분! 속삭이는 사랑의 소리가 들리는가?

달콤한 키스 소리가 들리는가?

마지막으로 신부의

더듬거리는 수줍은 말소리가 들리는가?

신랑은 이미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안으려고 가까이 다가섰다.

이때 갑자기 … (19)

 


 






신부 류드밀라는 밤안개보다 더 검은 그림자와 함께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딸을 잃은 대왕은 류드밀라를 찾아주는 사람에게 그녀를 아내로 주겠다고 선언한다. 이미 그녀는 루슬란의 아내인데.... 그녀를 짝사랑하던 기사 3명과 그녀의 남편까지, 한꺼번에 네 사람이 길을 떠난다.









질투의 화신들인 기사들과 결투하고, 머리통과 대결하고, 핀란드 노인의 도움을 받아 난쟁이 마법사 체르노모르에게서 아내를 구출하는 데 성공한 루슬란. 한 번의 위기를 더 겪은 후에 잠자는 류드밀라를 마법에서 해제시키고 그녀를 구한다. 그리고는, 행복하게 오래오래. 오래오래 행복하게.  

 


루슬란과 류드밀라의 사랑과 모험이야기보다 더 관심이 가는 건, 작가의 이야기다.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말 그대로 동화 같은 이야기. 사랑과 질투, 명예 회복을 위한 결투 신청 그리고 죽음. 푸시킨은 정말 아내를 그렇게 사랑했을까. 사랑. 사랑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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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29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시킨이 자존심이 센 성격이었을 것 같습니다. 사랑과 명예, 두 마리 토끼를 되찾고 싶어서 결투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


단발머리 2017-05-30 14:31   좋아요 0 | URL
나탈리아가 니콜라이 1세와도 썸싱이 있고 해서, 사실 푸시킨이 많이 예민했던 건, 맞는 것 같아요.
사랑과 명예 중에,
사랑과 진지한 대화, 일테면.... 너는 날 사랑하지 않냐... 를 먼저 나눴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입니다. ㅠㅠ
 















로쟈 이현우님의 20세기 러시아 문학 강의. 고리키에서 나보코프까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문학이 어떤 자리에 있었나를 러시아 역사와 함께 짚어본다. 이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관심 가는 작가는 예브게니 자먀틴이다. 혁명에 열광한 친볼셰비키였지만 혁명 이후에는 오히려 볼셰비키로부터 반동 작가로 찍혀 1920년대 말 이후 작가 활동을 전면 금지 당한 불운의 작가. (61)















자먀틴의 『우리들』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와 함께 3대 안티유토피아 소설로 꼽힌다고 한다. (71) 『우리들』의 배경은 29세기 미래 사회이다. 조선 담당 기사이자 수학자인 D-503은 번호로만 존재하는데, 반란 세력의 일원인 여성 I-330과 만나 에로스적인 경험을 하게 되면서 자기 속의 진짜 나가 깨어난다.



자기 안에 있는 어떤 동물, 여기서는 어떤 짐승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 텐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바로 영혼이에요. 여기서 영혼은 뭔가 고상하고 순결하고 순수한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지워져 버린 동물성입니다. 우리가 이성적 존재로서만 인간을 규정할 때, 이성의 승리를 외칠 때 떼버린 것, 곧 본능, 감정, 욕망 이런 것들이 귀환합니다. (81)



이제 눈 떠 버린,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D-503I-330과 함께 반란에 참여하지만, 결국에 실패로 돌아가고, 목숨을 보전 받는 대신 수술을 통해 백치 상태가 된다. (83) 소설의 마지막은 그런 상태를 그리는 것으로 끝난다. “… 나는 우리가 승리하길 희망한다. 아니, 그보다 나는 우리가 승리할 것을 확신한다. 이성은 반드시 승리하기 때문이다.”



영혼이란 순수하고 고결한 그 어떤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지워져 버린 동물성을 뜻한다는 설명이 무척 신선하다. 이성의 지배를 벗어난, 감정의 변화에 솔직한 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이성의 승리를 확신하는 백치 상태의 D-503과 현실의 503은 서로 비슷한 점이 하나도 없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판단하는 는 무엇의 지배를 받는 누구?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따르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가 공산주의입니다. … 한편 사회주의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노동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입니다. 능력에 따라 일하는 것은 당연하죠. 능력 이상으로 일할 수는 없으니까요. 능력에 따라 일하고 일한 만큼 가져가는 것이 사회주의입니다.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고 하는 공산주의와는 그 점에서 구별되죠. 반면 자본주의는 어떤가요? 능력에 따라, 혹은 능력 이상으로 일하지만 일한 만큼 가져가지 못하는 사회입니다. 자본가가 노동을 착취하기에 노동자는 언제나 잉여노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관점에서는 그렇습니다. (53쪽)

나에게 소설이란 심미적 희열을, 다시 말해서 예술을 기준으로 삼는 특별한 심리상태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에만 존재 의미가 있다. (나보코프,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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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뒤, 발문의 처음 두 문장이다.


아날렉타analecta, 이것은 먹다 남은 음식, 즉 남은 것, 나아가서는 빠진 것을 보충하고, 가외로 얻은 종류를 가리키는 라틴어다. 이 전체 제목 아래 지금까지 의뢰할 적마다 써왔던 수필, 서평, 대담, 토론, 인터뷰 등을 선별해서 모아 발간하게 되었다. (289)



이 책 맨 앞에는 <한국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짧은 글이 있는데, 그 글에서 사사키 아타루는 지난 가을부터 한국 광장에서 보인 촛불 시민의 불굴의 의지와 긍지에 대해 칭찬한다. 곤란을 극복하는 능력, 용기가 부족하지 않았던 한국 국민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넘친다. 느껴진다. 허락된다면 친애하는 마음을 담아서, 2017 3 10일 한밤중에, 보내어진 편지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글이 인상 깊었다.


이야기는 현대 최초로 대도시에서 대규모 화학병기 테러로 기록된 지하철 사린가스 사건의 주동 단체인 옴진리교에 대한 서술로 시작된다. 내부자료를 통해 옴진리교 신자들은 자살하려 했다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죽는 순간과 이 세상이 멸망하는 순간을 일치시키려 했다. , 자신과 세계의 멸망이 일치하는 그 한 점을 절대적인 향락’, ‘죽음의 향락’, ‘멸망의 향락으로서 욕망했다는 것이다. (81) 이것은 뿌리 깊은 인간의 욕망, 즉 내가 죽으니, 따라서 모두 죽어라. 깡그리 죽어라. 다른 사람들도 다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의 저급한 발현을 뜻한다. 저자는 모두 죽는다에서 모두 죽어라로 비약하는 파멸에 이르는 이 욕동 Trieb, 즉 충동을 인간은 불교 특히 원시불교와 일신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방법으로 수렴해왔다고 정리한다.


저자는 부처의 회답을 윤회전생으로 본다. 즉 전생에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현세에 이런 저런 고민을 갖게 되었고, 내세가 있으니 현재의 삶 역시 자포자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죽음의 공포를 죽을 수 없는 고통으로 바꾸는 것. 개개인의 죽음을 고통스러운 삶의 연속으로 바꾸는 것. 개개인의 죽음을 절대적으로 상대화하는 것. 그리고 이러한 개개인의 죽음을 초월한 절대적인 죽음을 마련해둡니다. 바로 참된 죽음입니다. 이 개개인의 죽음 그 자체인 연속되는 고통스러운 삶에서 완전히 탈출하고 벗어나는 것이 참된 죽음입니다. 그러면 더는 공포도 고통도 아니지요. 두 번 태어나지 않는 것이 참된 기쁨입니다. 이것을 해탈이나 열반, 니르바나라고 합니다. (93)



일신교 쪽은 오히려 더 간단하다. 죽음을 상대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진정한 죽음을 저편에 둔다. 죽음의 고통을 경멸한다. 최후의 심판이 실로 진정한 죽음이며 그것에 비하면 우리 개개인의 죽음은 하찮다고 말한다. 기독교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구원이 없는 것인데, 최후의 심판 명부에 자신의 이름이 빠져있는 것이 그것이다. (95)


저자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인용해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고, 모든 사람이 나누는 절대적 경험, 죽음. 다른 모든 가능성을 무로 만들어버리는 가능성. 모든 불가능성의 가능성, 죽음. 하지만, 내가 죽었을 때, 내가 죽었는지를 확인해 주는 것은 육신이 없는 이승의 타인들이다. 나는 죽어갈 뿐, 나는 내가 죽은 것을 확인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절대적인 비은폐성 Unverborgenheit=aletheia’ (숨어 있지 않은, 드러난, 들춰진, 나타난 혹은 밝혀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습니다. 저승은 없습니다. 이승 또한 없습니다. 죽음에는 피안도 차안도 없습니다. 우리는 죽어갑니다.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향해 가는 무한한, 끝없는 여정입니다. 어차피 죽는다거나 어차피 죽으니까 같은 부질없는 말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어차피? 그러므로? 그런 말은 불필요합니다. 우리는 죽어갑니다. 무한히 이어진 죽음에 이르는 길을 갑니다. 죽음이 없는 양 그 길을 가는 중입니다. 자포자기의 심경으로서가 아니라 웃으면서 죽음을 대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117)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돈이나 미모, 명예 혹은 인기에 대한 집착에서는 벗어날 수 있겠지만, 존립 그 자체, 생명에 대한 집착은 죽는 그 순간까지 계속된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마지막 숨을 다해 나 죽기 싫어,를 외치는 (혹은 속으로 되뇌이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가야할 때를 알고 스스로 곡기를 끊을 정도로 단련된 분들, 자연의 섭리를 자신에게까지 적용할 수 있는 분들은 정말 극소수다.


우리 중 누구도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이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살고 있지만, 이제 곧,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을 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질문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죽음은 삶을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의문이다.


죽으면 모든 게 다 끝이다. 저승도 없고, 이승도 없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아 참된 죽음에 이르기 위해 해탈에 도달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이제 눈을 감으면 아버지 집에 영원히 살리라,하는 사람도 물론 있다. 누구의 답이 맞는지는 눈을 감아봐야 알 것이다.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없기에, 우리 모두 죽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신할 수 없다. 자신의 믿음과 신념에 따라 살 뿐이다. 죽은 후에야, 내가 죽은 후에야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마지막은 역시나 저자가 추천하는 책들로 마무리되는데, ‘나의 소설관을 바꾼 책 세 권이라는 제목이 시선을 끈다.


사무엘 베케트 : 『말론, 죽다』

제임스 조이스 : 『율리시즈』

헨리 밀러 : 『남회귀선』

















제목은 3권이라는 데, 베케트는 3부작의 다른 2『몰로이』,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이나 단편집 중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한 소설과 텍스트들』과 바꿀 수 있고, 조이스는 『피네건의 경야』와 밀러는 『마루시의 거상』과 바꿀 수 있다고 하니, 8권이 되는 셈이다. 몇 권은 검색이 되지 않는데, 번역된 제목이 다른 듯하기도 하고 내가 못 찾는 이유도 있다. 제목들이 한결같이 무겁고 장엄해서 좀 부담스럽기는 한데, 일단 책 제목과 표지는 한 번씩 훑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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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5-24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헨리 밀러가....남회귀선도 썼네요? 북회귀선만 알고 있었는데......

단발머리 2017-05-24 14:2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도 오늘 알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네요 ㅎㅎㅎㅎㅎ
 



 

 취한 나머지 일본 수상과 정부와 재계의 지나친 횡포와 행동을 강하게 비판했나 봅니다. 헌법과 법의 지배의 무시, 배외주의, 모든 차별의 허용, 격차, 원전사고, 과거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태도…. 그러자 손아랫사람인 한국 작가가 저의 팔꿈치를 꽉 잡으면서 말했습니다.  

 

사사키 씨, 우리나라도 마찬가집니다. 대통령도, 정부도 똑같아요라고. 그때 따뜻하고 차가운 감정을 보았습니다. 차디찬 분노였습니다.

 

똑같지는 않았습니다, 결코. 작년 10월 말부터 한국의 광장으로 반복해서 끈질기게 몰려오는 무수한 촛불 시민의 불굴의 의지와 긍지를 우리는 보았습니다. 경탄할 만한 넓이와 깊이의 분노의 바다를. 이토록 많은 사람의 강력한 지성과 의지와 행동을 이 열도에서는 본 적이 없습니다. 아니,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고, 더러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 누구나 압니다. 똑같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지 못한 일을 여러분은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러분을 선망하고 동경합니다. (7)



 

사사키 아타루의 저작 『제자리걸음을, 멈추고』, <한국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일부다. 그의 말대로 일본과 한국은 똑같지 않았다. 일본이 하지 못한 일을 한국은 해냈다. 우리는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리고, 2016년 가을 촛불 혁명은, 평범한 시민들의 자랑스러운 성취는, 한국 국민들의 위대한 승리는, 1980 5 18, 광주의 희생에 빚진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월 광주의 시민들이 나눈 주먹밥과 헌혈이야말로 우리의 자존의 역사입니다. 민주주의 참 모습입니다. 목숨이 오가는 극한 상황에서도 절제력을 잃지 않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광주정신은 그대로 촛불광장에서 부활했습니다. 촛불은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위에서 국민주권시대를 열었습니다. 국민이 대한민국의 주인임을 선언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부가 될 것임을 광주 영령들 앞에 천명합니다.       <문재인 대통령, 5·18 기념사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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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8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7-05-19 11:15   좋아요 0 | URL
언제던가요. 김제동씨 강연이었던 같은데......
일본 사람들이 탄핵 정국 중에 너희들 어떻게 하냐고 이야기했다는데, 김제동씨가 그래서 우리는 바꾸려고 모여서 촛불을 들었다. 우리는 희망이 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다는 거 기억이 나네요.
우리는 좀 다르죠.
사사키씨가 부러워하는 마음이 지면을 넘어 여기까지 막 느껴집니다.
자랑스러워 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cyrus 2017-05-19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주항쟁과 탄핵 촉구 촛불 집회. 이 두 가지 역사가 ‘행동‘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할 이유를 알려줍니다.

단발머리 2017-05-19 19:30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518 광주 민주 항쟁이 보여준 희망, 절제된 힘이 이번 촛불 혁명까지 완벽하게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투표 한 번 하고 나서, 그래.... 니들이 됐으니까 니들 맘대로 해라,가 아니라,
어? 너희들 그렇게 니들 맘대로 하는 거니? 막 거짓말 하면서? 그럴려면 내려와! 지금 내려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걸, 국가 권력, 최고 국가 권력조차도 국민의 요구 앞에 물러나야한다는 걸,
이번 탄핵 정국이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승리의 경험이 우리 세대, 그리고 우리 다음 세대까지 전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흐뭇한 일이죠.
 
서민적 정치 - 좌·우파를 넘어 서민파를 위한 발칙한 통찰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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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적정치』 는 정치인에게만 맡겨 두기에 너무나 중요한 정치’(드골)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 정치의 아쉬운 점을 말하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에 더해 그 해결책을 고민한다. 정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판단을 위해 저자는 다양한 책읽기와 사색, 그리고 타인과의 의견 교환을 제안한다. (31) 하지만 그보다 더욱 강조하는 것은 바로 지금, 한국 정치에서 세월호가 갖는 의미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앞에서 길게 세월호를 말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세월호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국가가 버린 국민의 삶이 얼마나 참혹해지는지 보여 주는 사건. 그러니 우리 정치의 회복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그곳에서 우리는 국가가 책임을 방기했던 과정을 볼 것이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시스템의 재건을 확인할 것이다. 진상 규명 과정들이 낱낱이 투명하게 밝혀질 때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과 유가족들,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들이 수장되는 상황을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던 우리의 이 처참한 아픔들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55)


2014 4 16.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세월호가 침몰했고, 국가는 국민들을, 어린아이와 수학여행중인 고등학생들을, 선생님들을,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았다. 이게 세월호 참사의 전부다. 세월호 사건은 놀러가다가 교통사고 난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일부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국민 전체에게 잊을 수 없는 아픈 상처를 남겼다. 세월호 이후 내수 시장이 침체에 빠지고 오랫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월호는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사람은 언제든 죽을 수 있고, 갑작스러운 죽음 역시 도처에서 일어나지만, 전 국민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침몰하는 배를 바라보고 골든타임의 1, 1초에 가슴 졸이는 일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우리 모두 상처 입었고 두려웠다.


김밥 도시락과 음료수, 과자와 돗자리를 가방에 넣어줄 때마다, 세월호를 생각한다. 그 아이들도, 몰래 쥐어준 용돈에 웃음을 터뜨리며 그렇게 수학여행을 떠났다. 다시 돌아오지 못 했다. 숨막히는 입시 위주의 교과와 성적이 주는 엄청난 부담감 속에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교복 입은 아이들은 히히히 웃고 까르르 웃는다. 아이들 가방에 매달려 이리저리 흔들리는 노란 리본을 보며 세월호를 생각한다. 그 아이들도, 교복을 입고는 그렇게 환히 웃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못 했다. 세월호의 아픔은 우리 시대를 꿰뚫는다. 아무도 세월호가 갖는 무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정치의 회복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에 있다는 저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의 말이 옳다. 철저한 사건의 진상규명만이 우리의 후회와 슬픔, 그리고 아픔을 달래는 유일한 길이다. 오직 그것만이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국가란 무엇인가이게 나라냐의 질문, 가장 정치적이며 가장 서민적인 우리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혹은 사회적 주요 사건에 대한 저자의 방대한 지식은 저자의 전공이 정말 정치학이 아닌 기생충학이 맞는가 의심이 들 정도다. 책 곳곳에 숨어있는 촌철살인 유머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특히 2012년 대선 직전 색깔론에 대한 칼럼은 정말 최고다. 저자의 전공과 정치학적 혜안의 절묘한 조화가 그의 칼럼 좌변기의 꿈에서 아름답게 꽃피는 광경을 직접 확인할 수 있으리라.


무엇보다 나는 저자의 용기와 기백에 감탄했다.


착한 대통령은 아무나 욕한다. 일개 검사와 마주앉아 토론하겠다는 대통령에게는 예의에 어긋나는 말도 쉽게 던진다. 장관도 아니고, 수석도 아니고, 청와대 기술직 직원들과 마주앉아 밥 먹는 대통령에게는 대통령이라는 최소한의 호칭조차 빼버리는 게 언론이란다.


하지만, 논조가 마음에 안 든다고 언론사 사장을 불러다 조인트 까는 정권의 대통령, 정권과 반대되는 의견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세월호를 추모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작가를, 출판사를, 언론사를 친절하게(?) 따로 관리하는 정권의 대통령에게는 침묵의 무거운 무게를 감당하는게 언론이다.


만약 언론이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성실히 이행했다면, 국가 운영 전체를 마비시켰던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최소한의 감시 기능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언론, 세월아 가라~ 힘이 빠지는 정권 말기만을 기다렸던 언론은 암흑의 시간에도 건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던, 가장 졸렬한 정권에게도 당당했던 서민의 기개를 본받아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정치는 권리이자 책임이다라는 문단에서 저자는 국민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대통령을, 국회의원을, 기타 공직자를 부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이상 금배지의 전횡과 특권을 방관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자고 말한다. 감시와 견제, 관심과 애정만이 자신들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움직이는 정치인들의 시선을 국민들의 시선과 일치시킬수 있는 방법이라 말한다.


홍대 프리허그에 참여(?)하기 위해 집을 나설 때만 해도, 그 행사가 수도권에서의 마지막 유세인줄 알았는데, 대선 전날 광화문 유세가 예정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주말에 혼자 외출하고, 엄마가 또 나간다는 말에 어색한 분위기 만들어질 찰나.


딸애에게는 어버이날 선물 특별히 준비한 거 없으면, 선물을 이걸로 하자고 했다. 아롱이에게는 참치김치볶음밥을 만들어놓았다. 남편에게는 카톡을 보냈다. “여보, 오늘까지만내일은 가정으로 돌아올께요.”


그 다음날부터는 가정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웬걸, 이런 아름다운 사진들이 주의를 끈다. 관심과 애정. 나는 관심과 애정을 쏟으려 한다. 거짓말과 말 바꾸기, 유체이탈 화법과 불통의 정치가 이제 막 변하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 안구정화 서비스, 진정한 소통, 찾아가는 민원 해결 서비스, 상식의 상식화가 눈앞에서 펼쳐진다.


자고로 진정한 서민정치, 서민적정치의 시작이다.


시작이다. 이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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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5-19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갈 때 잘 다녀오라고 등 두드려주던 동네 꼬마도 인상 깊었져~

단발머리 2017-05-19 11:20   좋아요 1 | URL
요즘에 문대통령님 사진 찾는게 제 일인데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말씀하신 사진 못 봤어요.
찾아볼 것이야요~~~~~ 헤헤^^

2017-05-19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9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9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9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