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한다.

 

소설은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한 세계다.

소설 읽는 것만큼 좋아하는 건 ‘작가의 말’ 읽기다. 완벽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 기발하고, 환상적인 아이디어의 소유자, 언어의 마술사가 내게 말을 건다. 평범하지만, 쉽게 알아듣기 어려운 ‘작가들의 말’이 난 좋다.

‘작가의 말’보다 더 좋아하는건, ‘수상소감’이다. 어떤 마음으로 이 소설을 시작했는지, 자신이 창조한 세계 속에서 어떻게 방황했는지 작은 목소리,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면, ‘수상작품’보다 ‘수상소감’이 더 멋있다고 생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수상소감 쓰는 것도 연습하나. 뭐,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야 만다. 특히 좋았던 건, 한겨레 문학상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의 수상소감이다. 지금 한 번 더 읽고 싶은데, 책이 없구나.

2. 이미 ‘책머리에’서부터...

이 책은 누구에 대한 책인가. 니체의 책에 대한 책이다.

니체, 설명이 필요 없는 세기의 철학자.

그의 역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를 만나기 전에, 차라투스트라를 만나기 전에, 먼저 ‘고병권’을 만난다.

나는 “모든 사상가는 자기 시대의 아들”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저기 먼 시대의 감옥에 갇힌 ‘할아버지들’과 어떻게 참된 대화를 펼칠 수 있는가. 시대를 뛰어넘는 우정의 커뮤니케이션은 그들이 자기 사상의 정점에 서 있던 그런 건강 상태로 다가올 때에야 가능하다. 그들이 우리와 동시대인으로서의 건강을 누릴 수 있을 때, 그들도 ‘지금-여기’의 삶을 위한 사상을 만드는 데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7쪽, 책머리에)

이건, 니체의 문장이 아니다. 차라투스트라의 말이 아니다. 그를 설명하는, 그를 해체하고자 하는 고병권의 문장들이다. 한 문장, 한 문장 당당한 그의 문장들을 보고 있노라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하나는 그가 구사하는 문장들이 ‘철학자’의 문장이라는 것, 또 하나는 그가 구사하는 문장들이 너무나 ‘문학적’이라는 것. ‘책머리에’서 나는 직감하고 만다. 니체만큼, 차라투스트라만큼, 고병권도 내게 커다란 산으로 다가올 것임을 말이다.

3.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위대한 건강이란 하나의 건강이 아니라 수백 개의 건강이다. 그것은 하나의 신, 하나의 진리, 하나의 이상을 찾는 고단한 수행의 과정이 아니라 수백 개의 건강을 즐겁게 횡단하는 변모의 예술이다. 위대한 건강을 지닌 자는 자기 안에 수백 개의 힘들을 갖는, 이른바 ‘힘들의 과잉 상태’를 즐기는 사람이다. (55쪽)

니체의 생애를 살펴볼 때, 질병이 없었을 때보다 질병이 있었을 때가 더 일상적이었다. 니체의 전 생애는 질병과의 ‘원치 않는 동거’였다. 특히, 두통과 근시가 심했다고 하는데, 1888년 말부터는 정신장애가 아주 심해졌다고 한다.

의사 자크 로제는 저서 『니체 신드롬』에서 1880년을 기점으로 니체의 상태가 울증이 지배하는 조울증에서 조증이 지배하는 조울증의 만성적 단계로 변했다고 말했다(40쪽). 이는 니체의 성격, 행동, 표현, 문체, 작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고병권은 인생 후반기 니체의 변화에 있어서, 1877년부터 1881년까지 니체를 괴롭혔던 질병에 대한 니체 자신의 평가, 즉 “가장 건강한 자만이 시도할 수 있는 모험”이었다는 니체의 말을 조금 더 신뢰하는 것 같다. 질병과 치유의 체험을 통해 니체가 자신의 삶을 치유하고 세계의 운명을 치유하는 철학적 원리들을 발전시켰다(58쪽)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니체가 말한 ‘힘들의 과잉 상태’는 다양한 자아의 출현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라고 하는데, 이는 힘들의 배치가 바뀌면서 자아가 달라져 다양한 자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즉, 니체는 스스로를 ‘힘들의 과잉 상태’로 만들려고 노력했으며, 그 방안으로 질병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이는 고병권도 지적했듯이 니체 같은 예술적 수완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자아 분열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어려운 일이다.

고병권의 자세하고 세밀한 설명과 분석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부분이 어려웠다. 물론, 무지의 소치겠지만, 다양한 자아를 갖는다는 것 자체도 매우 힘든 일인데, 니체는 어떻게 다양한 자아를 가질 뿐만 아니라, 질병의 여러 변화 과정을 스스로 조절했을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정상인'과 ‘광인’의 경계를 어떻게 넘나들었을까. 이 부분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세상에 자기 작품을 사랑하지 않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마는 니체만큼 자기 작품과 그 속에 표현된 작가로서의 자신을 사랑하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자기가 써 온 작품들을 쭉 리뷰하면서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라는 낯 뜨거운 제목을 달았을까. 심지어 그는 자기 책을 읽는 사람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거라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누군가 내 책 중의 하나를 손으로 받쳐 들고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드문 존경의 하나다”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60쪽)

웬만해서는 이렇게 말하기 힘들지 싶다. 보통 글을 쓸 때는, 글을 엮어 책을 낼 때는 자기의 생각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기가 쓴 글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에 책으로 엮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책을 내놓고는 말한다.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리뷰를 쓰고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왜 이렇게 좋은 리뷰를 쓰는가> 아니다, 안 되겠다.

차라투스트라가 사람들 사는 것을 보니, 그 삶이 완전히 ‘가상 현실 체험하기’였다. 살아 있는 자들은 죽은 뒤에 벌어질 일에 관한 이야기로 삶을 탕진하고, 대지에 발 붙인 자들은 대지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천국’ 이야기로 날밤을 세운다. (138쪽)

 

 

물론 고대 사회에도 노동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고, ‘어떻게 노동 없는 사회가 가능하겠느냐’는 주장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동이 불가피한 것이라는 주장과 그것을 찬미해야 한다는 주장은 별개다.

이제 노예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로, 이른바 “만인의 동등한 권리” 또는 “인간의 기본권”, 인간으로서의 인간의 권리, 또는 노동의 존엄과 같이, 예리한 시 선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거짓말로 하루 하루를 이어가야 한다. (「그리스 국가」, 175-6쪽)

 

 

국가는 가장 냉혹한 괴물이다. 국가의 모든 것이 가짜다. 잘 무는 버릇을 가진 국가의 이빨도 훔친 것이다. 그 내장도 가짜다. 너희가 국가라는 새로운 거짓 신을 숭배할 때 국가는 너희에게 모든 것을 주려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국가는 너희의 자랑스러운 두 눈을 매수하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 181쪽)

 

당연하다. 강신주가 생각난다.

인문학자가 비판해야 하는 세 가지, 종교, 자본, 국가에 대해, 니체는 지속적으로 비판한다. 특별히, 현대 사회에서 노동에 대한 찬미는 우리 모두를 ‘노예’보다 더 한 ‘노예’로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개미와 베짱이에 대한 고병권의 지적도 재미있다.

TV에 출현하지 않는 개미들, 즉 기적을 체험 못한 대부분의 개미들은 불행히도 우화 속 주인공과는 많이 다르다. 그들은 우화 속 개미와 똑같은 여름을 보내지만 똑같은 겨울을 맞이하지 못한다. 현실을 보면 개미와 베짱이 운명이 뒤바뀐 예가 휠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름철에 너무 많이 일한 개미는 겨우내 디스크에 걸려 누워 있고 보험 혜택도 못 받아 병원비 걱정으로 날을 세는데, 베짱이는 최신곡이 떠서 소위 잘 나가는 스타가 된다. (172쪽)

물론, 요즘은 사정이 조금 바뀌었다. 베짱이도 노력 없이는 ‘스타’가 될 수 없다. 언제 데뷔할지도 모른 채 고단한 연습생 시간을 견뎌내야 하고, 인기를 얻어 많이 알려졌다 해도 지속적인 관리와 노력 없이는 스타의 자리에 오래 머무를 수 없다. 연기 공부도 꾸준히 해야 하고, 휴식기에는 얼굴도 좀 고쳐야 하고, 남녀불문 몸매 관리도 해야 한다. 그래도, 베짱이는 개미보다는 나은데, 개미는 한여름 땡볕에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또 일해도 남는 것이 없지만, 20대 초반의 아이돌들은 50억짜리 주택을, 아니 별장을 구입해서는, 서로 이웃사촌을 맺고는 사이좋게 행복하게 잘도 살더라. 역시, 개미보다는 베짱이. 요즘 대세는 베짱이다. 노래하자. 춤추자.

4. 예의상으로는

이 책을 읽었으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는 것이 예의겠지만서도, 비는 너무 많이 오고, 습도는 너무 높고, 그리고 곧 폭염이 몰려올 거다. 예의에 좀 어긋나더라도 이해해 주신다면, 이 책으로 도전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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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경선의 남편은 그녀의 칼럼을 읽지 못 하고.

아롱이 준비물로 신문을 챙기다가 한겨레신문 5월 16일자 임경선의 칼럼을 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수영 수업을 할 때, 읽어보려고 가방에 챙겨 넣었다. 맨 먼저 보이는 글자는 <끝>, 그 날은 <임경선의 남자들> 연재 마지막 날이었다.

내용은 이랬다. 15개월 전, 임경선은 한겨레로부터 칼럼 연재 제안을 받았는데, 주제가 ‘내가 사랑한 남자들’이었다.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어떠냐 물었더니, 남편 왈, ‘사랑했던 남자들 얘기만 해서는 한계가 있지 않겠냐. 반년이라도 버티려면 ’사랑한 남자‘만이 아니라, 미워하거나 인상적이었다거나 다양하게 써야 하지 않겠냐’며 다만 자기 얘기는 빼줄 것을 점잖게 요청했다는 것이다. ‘사랑한 남자들’로도 반년은 족히 쓸 수 있었지만, 아무튼 그러마고 연재를 시작했고, 격주로 신문이 나올 때마다 그녀의 남편은 칼럼이 실린 섹션만 고이 빼내, 손도 안 댄 듯 그녀의 책상 위에 올려놓더라는 것이다. ‘읽지 않고 있다’는 그만의 표현이었다고.

2. 홍서트에서 생긴 일

지난 주 티켓은 남편 카드로 결제했다. ‘홍광호, 홍광호’를 연호하며 정신줄을 놓아버린 날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는 하지만, 남아있는 자리 중 그래도 괜찮은 자리를 골라주며, 결제를 향해 클릭, 클릭하는 모습이 뭐, 그렇게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 전날 갑작스레 발생한 가정사도 있고 해서, 남편은 토요일 아침 8시부터 그 날밤, 그러니까 내가 집으로 돌아온 밤 11시까지 애들을 돌봤다. 차려놓은 아침을 먹이고, 김밥을 사 먹이고, 콩국수를 사 먹였더랬다.

<Hongcert>에 다녀와서 나는 페이퍼를 썼다. 기획사를 통해 공지되었다시피 <Hongcert>는 ‘홍광호’를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콘서트였다. 홍광호는 몽골청년 '솔롱고'도, 로맨시스트 '유리 지바고'도, 냉혹한 ‘지킬’도, 귀족청년 ‘라울’도, 가면을 쓴 ‘팬텀’도, 넉살 좋은 ‘배비장’도 아니었다. 그냥, 말 그대로, 홍광호 팬들이 표현하듯 순수배우 그 자체, 인간 홍광호였다.

나는 사실 홍광호의 연기를 본 적이 없다. 뮤지컬 배우 홍광호의 뮤지컬을 본 적이 없다는 거다. 난 그냥, 그의 노래 소리가, 그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 그 콘서트에 가게 된 거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기 전부터 ‘빠순이’ 문화가 한반도 널리 널리 퍼지기는 했지만, 난 누가 보고 싶어, 누가 좋아서, 어디를 쫓아다닐 만큼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었다. 대학 때는 부지런히 쫓아다닐 곳이 있었고, 졸업 후에는 바로 결혼을 했다. 이제는 얘가 둘, 명실상부 제3의 성, 아줌마다.

그런 내가, 거금을 주고 티켓을 예매하고, 남편과 스케쥴을 조정하고, 싱가폴에서 사 왔으나 노출강도가 심해 입지 못했던 새 원피스를 꺼내 입고, 8cm의 샌들을 신고, 바야흐로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 나타났던 거다. 오직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

그런데, 아뿔싸. 그의 노래를 듣던 중, 난 정말로 ‘홍광호’에게 반하고 말았다. 그에게 열광하는 4,000여명의 10, 20, 30, 40대 및 50대 여성들의 환호성은 귀에 들리지 않았다. 저번 페이퍼에 썼듯이, 내 귀엔 그의 노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노래가 좋아서, 노래를 들으러 콘서트장에 갔는데, 그런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그의 얼굴만 보일 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지독한 ‘외모 지상주의’라는 비난보다는 ‘콩깍지’ 이론을 선택한다.

 

 

 

3. 내가 쓴 페이퍼를 남편은 읽지 못 하고.

콘서트에 다녀온 후, 난 페이퍼를 썼다. 미친 가창력, 꿀성대, 뮤지컬계의 아이돌, 이런 이야기야 다 당연하고, 선곡은 물론, 피아노 연주도, 색스폰 연주도 너무 너무 훌륭했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유머를 구사할 때도 자신만만한 모습이 항상 당당해 보이는데, 홍광호의 말 소리를 직접 들어본 바, 홍광호에게서는 ‘연극 배우’ 느낌이 났다. ‘어이구, 감사합니다, 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좌측, 우측, 정면으로 90도 폴더인사를 날려주었다.

저번 페이퍼에서, 난 정말로,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썼다. 내게 일어난 중대한 심적 변화를 난, 내 서재, ‘사람 사는 이야기‘에 올렸다. (알라딘 서재에 ’일기 좀 올리지 말라‘는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올라오는 건 알고 있지만, 난 사실, 다른 분들의 ’일기‘가 그렇게나 재미있다. 또 나름 생각하기에, 내 이야기는 ’그냥 일기‘가 아니라, ’사람 사는 이야기‘다라는 생각도 있고.) 암튼, 그 날 오후, 집에 돌아온 남편이 말했다.

“그가 눈을 감았다.

그가 눈을 떴다.“

헉.

 

 

내가 홍광호와 사랑에 빠지기 직전, 그의 아름다운 모습을 묘사한 저 잔잔하고, 애잔한 문장을 남편은 아무런 느낌 없이 그렇게 외우고 있는 것이었다.

“뭐야? 읽었어? ... 읽었어?”

“로그인을 했는데, ... ”

왜 읽었어, 왜 읽었어를 5분간 목놓아 외치고, 다시 들어와 그 글을 읽어봤다.

남편에게 보여주기 어려운, 보여주기 싫은 글이었다. 임경선의 남편은 그녀의 칼럼을, 그것도 신문에 정기적으로 실리는 그녀의 칼럼을 읽지 않고 고이 고이 접어 그녀의 책상에 올려놓았다는데, 어째 울 신랑은 ‘알라딘 서재’에 올려진 내 페이퍼를 읽었단 말이냐.

그리곤 생각했다.

남편에게 보일 수 없는 글을, 어떻게 알라딘 서재에는 올리고 있나.

이건 <Hongcert> 아니, 홍광호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물론, ‘홍광호’에 대한 것이 가장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글들, 책에 대한 내 생각, 내 느낌, 내 감상, 내 결심을 표현한 내 글, 내 페이퍼를 난, 남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

알라딘 서재에는 떡~하니 올려놓는 그 글들을, 남편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다.

하루를, 이틀을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임경선은 결혼 전 ‘사랑한 남자들’에 대한 글을 1년 넘게 신문에 연재하면서 남편이 읽었단 한들 어쩌라고~ 말하고, 임경선의 남편은 그녀의 칼럼을 읽지 못 하고, 나는 내가 ‘사랑하게 된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알라딘 서재’에 올리고, 울 남편이 ‘우연히’ (남편은 내가 그렇게 ‘알라딘 서재’에 가서 놀아도 도통 관심이 없다. 아마, 이번 글도 실수로 읽었을 가능성이 크다.) 내 글을 읽게 된 걸 알게 된 나는, 통탄해 마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쓰는가.

나는 무엇에 대해 쓰려 하는가.

무엇에 대해 쓸 때, 남편에게 보여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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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1 1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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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1 11: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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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서트에서 홍광호가 제일 먼저 부른 곡이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참 예뻐요. 내 맘 가져간 사람

 

참 예뻐요. 내 맘 가져간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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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또 강신주다.

나는 전작주의자가 아니고, 그럴 만한 능력도, 생각도 없는 사람이지만, 강신주니까, 강신주 책이니까 읽는다.

난 강신주가 좋다.

이번에 정해진 서열은 거의 확정적인데, 강신주는 서인국보다 섹시하다. 물론, 서인국 앞의 앞은 홍광호다. 홍광호는 부동의 1위, 강신주랑 서인국 정도가 같이 덤벼야 1위 탈환이 가능하다. 이번 주의 인기투표는 이렇게 마무리하고.

날개 돋친 이 길손, 얼마나 기가 죽어 어색한가!

전에는 그토록 아름답더니, 얼마나 우습고 초라한 몰골!

골통대로 부리 건드리며 약올리는 사람에.

절뚝거리며, 못 나는 병신 시늉을 해대는 사람!

폭풍 속을 넘나들며 활잡이를 비웃는

이 구름의 왕자를 닮은 것이 바로 시인.

땅 위로 쫓겨나 놀림당하는 마당에서는,

그 거인 같은 날개 때문에 걷지도 못하다니.

-보를레르, 「알바트로스」 (『악의 꽃』) (38쪽)

 

알바트로스는 추운 북극 지방에 서식하며, 커다란 날개로 매우 높이 그리고 아주 의연하게 날 수 있는 새로 유명하다(38쪽). 그러나 위엄 있게 하늘을 날던 알바트로스가 땅에 착륙할 때의 모습을 직접 본 사람들은 웃음을 참지 못 한다고 한다. 떼굴떼굴 구르다시피 땅에 착륙하는 알바트로스의 모습이 너무나 우습기 때문이다. 하늘 높이, 의연하게 날 수 있게 해 준 알바트로스의 커다란 날개가 땅 위에서는 짐스러울 뿐이다.

알바트로스의 모습은 하늘의 삶을 꿈꾸지만,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시인의 삶을 닮아있다. 시인은 그의 상상력을 펼치며 창조의 공간을 날아다니는 사람이지만, 땅 위에서는 ‘쫓겨나 놀림을 당’할 뿐이다. 시인이 꾸는 꿈, ‘거인 같은 날개’ 때문이다.

살육과 분쟁을 근본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해서 노자가 철저한 국가주의를 선택한다면, 장자는 국가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부인하고 개체들에게 긍정적인 삶의 전망을 제공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의 사상을 묶는 데 사용되는 ‘도가사상’이나 ‘노장사상’이란 범주는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사후에 구성된 상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86-7쪽)

 

이 책에서 지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한 가지 생각, 그가 전하고자 하는 한 가지 생각이 이 문단에 표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듯이 장자는 복잡한 세상사를 뒤로 하고, 흰 수염에 부채를 들고 산 속에서 신선놀음이나 즐기자는 ‘노장사상’으로 간단히 묶여버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자가 철저한 국가주의를 통해 개인의 삶보다 공동체, 국가의 존립 및 유지에 큰 의미를 두었던 것에 반해, 장자는 각 개인의 삶의 긍정적인 전망을 중시했다는 것이다.

강신주는 장자의 이러한 사상의 배경으로 양주, 송견, 혜시를 꼽았다.

개체의 삶보다는 공동체의 유지를 우선시하게 될 때, 우리 삶은 단지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양주는 우리의 삶 자체가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절대적 목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162쪽)

 

우리의 삶 자체는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절대적 목적이다.

우리 각 개인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절대적 목적이다.

내 삶 자체는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환원될 수 없는, 절대적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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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돈을 내고 공연을 본 게 얼마만이던가.

2. 난 노래 잘 하는 남자를 좋아한다.

예전에는 목소리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는 목소리가 좋으면서 노래 잘 하는 남자를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톤은 베이스에 가까운 테너의 소리, 다른 말로 하면, 고음이 가능한 약간 굵은 톤의 소리다.

3. 내 서재에 ‘지금 이 순간’ 동영상을 올린 날은

2012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이후에 두 분의 인생 여정을 보여주는 영상의 배경음악이 ‘지금 이 순간’이었다. 그 노래는 가수 김연우씨가 불렀다. (무척 감동적인 동영상이긴 했지만, ‘당신이 나를 버리고 저주하여도’의 가사가 웬지 맘에 걸렸다. 나의 찜찜함은 12월 19일, 찜찜한 결과로 돌아왔다.) 유튜브의 여러 가수 버전 ‘지금 이 순간’을 찾아 듣던 중, 다른 노래와는 차원이 다른, 전혀 새로운 ‘지금 이 순간’을 듣게 되었다. 홍광호가 부르는, 홍광호의 ‘지금 이 순간’이었다.

4. 진짜로 좋아하게 됐다.

소이진님(소이진님, 오랜만이예요. 안녕~~)이 댓글을 달아줬는데, 노래 부르는 사람이 반반하다고, 잘 생겼다고 했다. 나는 놀랐다. 괜찮은 정도라고는 생각했지만, 잘 생겼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좋다는 것(타고난 목청), 노래를 잘한다는 것(다른 뮤지컬 배우들이 옆에서 같이 노래 부르기 싫어한다고 소문남),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확한 곡 해석, 섬세한 표현력은 인정하겠지만, ‘잘 생겼다?’ 그건 조금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 콘서트장에서 그의 노래를 듣고 있는데.

화면 가득 그의 얼굴이 잡혔다. (나는 E3구역 05열 10번이라, 화면이 아니면 그의 얼굴과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노래를 부르는 그.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일순간 난 깜짝 놀랐다.

화면에 잡힌 그의 얼굴이 너무 예쁜 거다. (세종대왕님께 죄송하다. 이렇게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한글을 만들어주셨건만, 내 표현력은 겨우 이정도다.)

그의 얼굴이 너무 예쁜 거다.

난 그의 목소리가 좋아서, 그의 목소리를 라이브로 듣고 싶어서 공연장에 왔는데, 어머나, 난 그만, 그의 얼굴에 반하고 말았다. 그 때 나왔던 노래가 무엇이었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마리아’였던가, 레미제라블의 ‘Bring Him Home'이었던가. 아님 무슨 노래였던가.

노래 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았고, 보이는 건 오직 그의 얼굴뿐이었다.

 

 

 

 

 

 

 

 

(사진 출처는 사진에, 토요일 사진이 아닐 수도...)

 

그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다.

그가 눈을 감은 채 노래를 불렀을 때, 나는 어서 그가 눈을 뜨기를 바랬다.

그가 눈을 떴을 때, 나는 그의 눈 감은 모습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그는 분명 노래하고 있었는데, 난 그의 노래 소리를 듣지 못 했다.

나는 홍광호의 노래를 좋아해서, 그의 노래를 듣고 싶어서 공연장에 갔는데, 그 곳에서 나는 정말로 ‘홍광호’를 좋아하게 된 거다. 그를 진짜로 좋아하게 된 거다.

5. 공연 후기

박정현과 함께 부른 곡 ‘Come What May'는 좋았다. 박정현의 솔로곡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도 물론이다. 박정현은 컨디션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노래하는 그녀를 보니, 노련미가 느껴졌다. 프로였다. 뮤지컬배우 최민철의 무대도 좋았다. 토크는 19금이었지만, 모두들 좋아했다.

2달동안 렛슨 받았다는 색소폰 연주도 좋았다. 아롱이는 피아노고, 바이올린이고 다 패스다. 무조건 색소폰이다.

나는 피아노 치는 남자에 대한 환상이 없다. 잘은 못 치지만, 피아노는 나도 치니까. 그게 뭐,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 하지만,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하는 건 사실, 쪼금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뭐 연습하면 그 정도도 할 만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엄격하고 까칠한 기준에도 불구하고 홍광호의 피아노 연주에는 큰 점수를 주고 싶다. 그 이유는, 선곡 때문이다. 홍광호는 피아노를 연주하며, Billy Joel의 ‘Honesty'를 불렀다. 물론, 완벽에 가까운 라이브였다. 박수를 크게 쳐주었다. 환호와 함께.

가요도 여러 곡 불렀다. 여수밤바다도, 안 되나요~도 좋았다.

하지만, 그의 폭발적인 가창력을 보여주기에는 역시 뮤지컬 곡이 더 맞는 것 같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는 정말 최고였다.

신기한 일은 한 번 더 일어났다.

그가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부를 때, 노래 가사가 그의 눈동자에 새겨지는 게 보였다. 다른 노래를 부를 때도, 각 노래마다 각각 다른 눈빛을 선보여 날 깜짝 놀라게 하더니, 급기야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에서는 눈동자에 가사가, 마치 교회 찬양 시간에 ’찬송가‘의 가사가 파워포인트로 두 줄씩 화면에 나오는 그런 일들이, 아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나한테만 그렇게 보이는 게 틀림없다. 지금 생각해도 뭔가.... 싶다.

6. 궁금한 건.

검은 정장의 안전요원들이 사방을 살피는 바람에, 난 홍광호 사진 하나 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쩜, 그렇게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더냐 하는 거다. 내 주위에서도 사진 찍겠다고 핸드폰 꺼낸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는데... 다른 사람이 잘 찍은 사진이다. 다른 사진들도 많은데, '다른 이름으로 저장'이 안 되는 관계로...

 

 

음원이 곧 나온다고 하는, 홍광호의 첫번째 싱글, 발걸음이다.

그의 말처럼, 그의 콘서트가 내겐 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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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7-08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늘 임태경의 지금 이 순간만을 찾아 들었었는데, 홍광호의 지금 이 순간이 좋다고요? 한 번 검색해 들어봐야겠어요. 불끈!

단발머리 2013-07-08 12:17   좋아요 0 | URL
여러버전 중에 뮤지컬 어워드 때 영상이 좋아요~~ 제가 보기엔요.

임태경은 야들야들 하지요.^^

홍광호는 폭발적 가창력, 미친 가창력, 꿀성대, 뮤지컬계의 아이돌이지요. ㅋㅎㅎ

저는 홍광호의 인기가 더 많아지는걸 원해야 할지,
나만의 사람으로 간직해야할지, 아... 괴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