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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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읽었던 문장/문단 중 몇일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구절이 있다. 오래 전, 김훈의 인터뷰 기사다.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어떻게 문학이 인간을 구원합니까. 아니 도스토예프스키가 인간을 구원해? 난 문학이 구원한 인간은 한 놈도 본 적이 없어! 하하….

문학이 무슨 至純하고 至高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할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2002.02 월간조선 김훈 인터뷰 中>

<출처> http://blog.naver.com/lemonplanet/120000691648

 

김훈이 하라고 해서 하고, 하지 말라고 해서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그의 글을 읽을 수 밖에 없기에, 또 지금 바로 죽을 수는 없기에, 문학이 인간이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그런 개소리를 집어치운다.

<화장(火葬)>

아내는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발작적인 두통에 먹던 것을 뱉어내고, 시퍼런 위액까지 토해놓고 정신을 잃곤 했다(37쪽). 뼈만 남은 육신으로 몸부림을 치다가 실신했다(45쪽). 실신하면 바로 똥을 쌌다(45쪽).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던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제가 당신을 당신이라고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 속으로 사라지고 저의 부름이 당신의 이름에 닿지 못해서 당신은 마침내 삼인칭이었고, 저는 부름과 이름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건너갈 수 없었는데, 저의 부름이 닿지 못하는 자리에서 당신의 몸은 햇빛처럼 완연했습니다. (54쪽)

 

그녀의 이름은 ‘추은주’. ‘내’가 상무로 있는 회사에 오년 전에 입사했다.

장맛비가 며칠째 쏟아지던 여름 분기 말의 저녁이었습니다. 당신은 목둘레가 둥글게 파인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고, 당신의 목 아래로 당신의 빗장뼈 한 쌍이 드러났습니다. 결재서류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던 나는 내 자리에서 일어서서 칸막이 너머로 당신을 바라보았습니다. 당신의 가슴의 융기가 시작되려는 그곳에서 당신의 빗장뼈는 당신의 가슴뼈에서 당신의 어깨뼈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빗장뼈 위로 드러난 당신의 푸른 정맥은 희미했고, 그리고 선명했습니다. 내 자리 칸막이 너머로 당신의 빗장뼈를 바라보면서 저는 저의 손으로 저의 빗장뼈를 더듬었지요. (55-6쪽)

 

종양은 살아있는 조직 안에서만 발생한다고 했나. 생명현상의 일부인 종양의 발생과 팽창으로 아내는 괴로워한다. 그렇게 종양과의 끈질긴 2년간의 사투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내의 육체는 점점 스러져간다. 까맣게 변해간다. 천천히 죽어간다.

아내의 빈소를 혼자서 지키던 새벽에 ‘나’는 다시 추은주를, 추은주의 육체를 생각한다. 참혹한 일이지만(75쪽), 그도 어쩔 수 없었으리라.

당신은 빈 그릇에 당신의 국밥을 덜어서 아기 앞에 놓았습니다. 숟가락질이 서툰 아기는 밥알을 많이 흘렸습니다. 당신은 손수건을 아기의 턱 밑에 걸어주었습니다. 당신이 숟가락으로 뜨거운 국밥을 떠서 입으로 후후 불어서 식혔고, 당신이 반쯤 먹고 숟가락 위에 남은 밥을 아기에게 먹였습니다. 아기가 입을 크게 벌렸지요. 아기의 입 속은 분홍색이었고 젖어 있었습니다.... 때때로 당신 가까이서 당신의 생명을 바라보는 일은 무참했습니다. 당신의 아기의 분홍빛 입 속은 깊고 어둡고 젖어 있었는데, 당신의 산도는 당신의 아기의 입 속 같은 것인지요. 그 젖은 분홍빛 어둠 속으로 넘겨지는 밥알과 고등어 토막과 무김치 쪽의 여정을 떠올리면서, 저의 마음은 캄캄히 어두워졌습니다. (78-9쪽)

 

그리고 그 날 저녁, 아픈 아내를 목욕시키던 일을 생각한다.

아내의 두 다리는 해부학 교실에 걸린 뼈처럼, 그야말로 뼈뿐이었습니다. 늘어진 피부에 검버섯이 피어 있었습니다. 죽음은 가까이 있었지만, 얼마나 가까워야 가까운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 닦기를 마치고 나자 아내가 똥물을 흘렸습니다. 양은 많지 않았지만, 악취가 찌를 듯이 달려들었습니다. “여보᠁᠁미안해᠁᠁” 아내는 또 울었습니다. ... 울면서, 아내는 자꾸만 고개를 돌리면서 두리번거렸습니다. (80쪽)

 

그가 돌봐야하는 여자, 그가 돌봐야하는 여자의 육체, 그가 가질 수 없는 여자, 그가 가질 수 없는 여자의 육체가 겹쳐져 보인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가 간절히 원하나 가질 수 없는 육체, 그 육체가 바로 나의 육체이다. 그가 숭배하는 여자의 육체, 그 육체가 바로 나의 육체이다. 아득하고 깜깜하게 그를 사로잡는 육체, 그 육체가 바로 나의 육체이다.

내가 가진 육체는 어떤 육체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입 속이 분홍색이었던 작은 여자아이였고, 5월의 청초함보다 더 푸르른 어린 소녀였고, 목 아래 빗장뼈로 스스로를 가두었던 순결한 처녀였으며, 그리고 잠시도 멈추지 않고 엷고도 비린 젖냄새를 품기던 젊은 엄마(58쪽)였다. 그가 숭배하는 그 여자가 바로 나다. 그가 숭배하는 육체의 진정한 주인이, 바로 나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는 겹쳐서 보이는 두 여자의 육체 중에, 왜 스스로를 ‘추은주’로 상정하는가. 나는 왜 자신을, 까맣게 변해가는 ‘그의 아내’가 아니라, 하얀색 반팔 블라우스의 머리를 틀어올린 ‘추은주’로 상상하는가. 죽는 것이 두려운가. 아니다. 죽음이 두려운가. 아니다.

그건 내가 건강해서가 아니다. 그건 내가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건 내 나이가 추은주와 가깝기 때문이 아니다. 그 이유는᠁᠁

나 스스로를 죽음 가까이 두지 않으려는 집념 때문이다. 나 스스로는 오래도록 젊으리라는 고집 때문이다. 나는 기어코 ‘그의 아내’처럼 아프지 않으리라. 나는 기어코 ‘그의 아내’처럼 다른 사람의 손에 내 몸을 맡기지 않으리라. 나는 기어코 ‘그의 아내’처럼 까맣게 죽지 않으리라.

나는 기어이 ‘추은주’처럼 젊으리라. 나는 기어이 ‘추은주’처럼 아름다우리라. 나는 기어이 ‘추은주’처럼 마지막 만남에서도 여자이리라. 마지막 순간에도, 나는 여자이리라. 여자의 육체이리라.

 

김훈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언제나 똑같다. 참 좋고, 그리고 참 싫다. 방금 읽은 문장을, 지금 읽은 단락을, 어제 읽은 단편을, 다시 한 번 읽고 싶다. 다시는, 다시는 읽고 싶지 않다.

로쟈님의 표현은 정확하다. 때로 전설은 그 자신이 전설임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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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4-02-11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독으로 읽을 수만은 없는 페이퍼네요 ㅠ)

한때는 언제 죽음이 오더라도 담담하게, 가 제 인생의 모토 같은 거 였는데,,, 정말 들여다본 현실은,, '죽음'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고 하는 게 맞겠어요..
'죽음'이 가장 실감나게 다가올 때는 암이나 백혈병 같은 불치의 병을 알았을 때, 그리고 죽음이 뚜벅뚜벅 하며 정면에서 마주 걸어 올 때일까요..
남편은 항상 자기가 치매가 되거나, 불치의 병에 걸리거나 하면,, 간병할 생각하지 말라고 하거든요. 굉장히 차갑게 들리는 말이기도 하고,,, 뭔가 달관한 듯 느껴지기도 하고..


아,,, 참 좋고 참 싫다,,, ㅎㅎㅎ 어쩐지 애정과 혐오가 동시에 느껴지네요~ 저도 그런 작가가 있어요.

가오리,, 씨... 냉정과 열정 사이를 쓴 그녀요~

단발머리 2014-02-12 09:27   좋아요 0 | URL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제가 아직, 어리고 (ㅋㅎㅎㅎ 어리고....) 아직 죽음이 저에게서는 멀리 있다고 믿고 있고, 또 믿고 싶기 때문에, 죽음 멀리에 제 자리를 두려하는 이런 글이 써진다는 생각이요.

김훈님은 언제나 참 좋고, 참 싫죠. 아직 [강산무진]도 다 안 읽었고, 김훈님의 산문집은 아직 시작도 못 했어요. 참 좋고, 참 싫어요.

그 유명한 [냉정과 열정 사이]는 아직 못 읽었구요. (저 숙제 너무 많은거 아니예요?) ㅋㅎㅎㅎ

다크아이즈 2014-02-11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인터뷰 기사 똑똑히 기억해요. 김훈 식 적나라한 사유, 김훈의 문체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추은주, 가 나오는 김훈의 소설도 똑똑히 기억해요. 처음 화장 말고, 어딘가 문학 잡지에 추은주가 나오는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한두 횐가 하다 말고 포기했어요. 어리둥절했는데 나중에 화장이란 작품에서 추은주가 다시 등장하더군요.
추은주에 대한 이미지를 작가는 결코 버리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단발머리 2014-02-12 09:31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은 예전부터 김훈을 주의깊게 보고 계셨나봐요.
저는 워낙에나, 독서력이라는게 없어서요. 김훈은 [칼의노래], [남한산성]으로 온 나라가 들썩들썩할 때부터 알게 됐어요. 이 단편소설집도 김훈 책 다 절판되기 전에 몇 권 사놔야되겠다 해서 구매한거거든요.

추은주에 대한 이미지, 참 놀랐죠. 사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 주위에 아주 많은 '여자들'에 대한 이미지 중 하나인데, 김훈 손을 거치니까 '여신'이 되네요. 여신....^^
 

 

 

 

 

 

 

 

 

 

 

 

 

 

 

 

2월 4일 그제 아침이다. 밤새 안녕하신가 알라딘서재 내방에 들어왔는데, 방문자가 498명.

허걱?!? 이게 무슨 일이냐? 지난주에는, 심지어 지난달에는 아이들 겨울 방학, 내 성수기인 관계로 글을 많이 올리지 못했는데, 오전 8시 35분에 방문자가 498명. 이유를 알 수 없었다.  

 

2월 4일 오전, 포털에서 강신주 발견!!! 띠띠띠!

 

 

 

 

icaru님이 지지난주에, 다다음주에 강신주님이 힐링캠프에 출연할 예정이라고 알려주셨었는데, 그게 2월 3일이었나 보다. 그 날 밤부터 사람들이 강신주를 검색, 그의 책을 검색, 그래서 내 서재에 498명?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오늘 아침에는 이런 기사도 있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 인터뷰 기사다.

 

강신주 도서, 힐링캠프 방송 직후 30대 여성 구매 급증

 

 

지난 3일 힐링캠프 방송 이후 강신주 열풍이 뜨겁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자사 판매량을 분석해본 결과 강신주 도서 판매량이 3일 밤 힐링캠프 방송 이후 5배 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방송 전에도 이미 베스트셀러였던 < 강신주의 감정수업 > 은 어제 하루 판매량이 방송 전보다 4.5배 가량 증가했으며, < 강신주의 다상담 > 1~3권도 기존 판매량 대비 6.7배 가량 증가했다. 이전에도 저자가 방송에 출연한 후 도서 판매량이 급증하는 경우는 적지 않았지만, 강신주의 책은 기존에도 종합 베스트셀러 5위 안에 랭크될 정도의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는 도서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놀라운 상승폭이라고 알라딘 측은 전했다.

 

알라딘 인문사회 담당 박태근 MD는 "철학자가 이 정도로 대중의 관심을 끈 사례는 도올 김용옥 이후에 처음 아닐까 싶다. 도올이 고전이라는 인문학 본연의 재료를 특유의 해석과 강의로 풀어냈다면, 강신주는 인문학이나 철학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철학의 오래된 방법인 대화술을 활용해 상대방의 구체적 상황에 접근하고 분명한 해답을 전한다"며 "대중 역시 고정된 가치나 정해진 롤 모델이 아니라 자기 상황에 맞는,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갈 방법을 찾는 적극적인 태도로 바뀌었는데, 이런 점에서 강신주와 대중의 궁합이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스와이어 | 입력 2014.02.05 15:47

 

2월 4일 밤에는 700명을 찍었는데, 하루 평균 방문자 30~50명을 자랑하는 내 서재 폭발과 강신주의 힐링캠프 출연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그의 책이 많이 읽힌다니, 무척이나 기쁘다.

 

하여, 강신주를 힐링캠프에서 처음 만나, 그의 책을 처음 읽으려는 분들을 위해 강신주의 저서를 정리해 본다. 나도 끝까지 읽지 못한 책이 여러 권 있어서, 다시 마음을 다잡는 용도로도 쓰일 수 있겠다.

 

 

1. 강신주를 처음 읽는 분들에게 추천하는 책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상대방에게 철저하게 노예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다시 말해 상대방은 자신에 대한 나의 헌신이 나의 자유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나는 상대방의 뜻을 따르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어야만 하고, 또 상대방이 그런 사실을 잊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상대방은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고, 동시에 정말로 나를 사랑한다면 내게 기쁨을 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56쪽) 

 

 

 

 

 

2. 강신주가 가장 사랑하는 책

 

 

 

철학이 뭔지 보여주는 철학사책이죠. 제가 단행본을 열일곱 권인가 냈는데 가장 사랑하는 책이 [철학vs철학]이에요. 너무 힘들게 써서.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49쪽)

 

 

 

 

 

 

 

 

 

 

3. 강신주가 두 번째로 사랑하는 책

 

 

 

사람들이 당신의 스승은 누구냐고, 당신은 어디서부터 출발했냐고 물어보면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어요. 저는 김수영으로부터 출발하려 했다고. 그러니까 40대 중반에 자기의 정신적 계보를 연결시킨 거예요. 저를 기억해도 김수영을 기억하고, 김수영을 기억해도 저를 기억할 수 있게. 앞으로 나올 모든 작업의 뿌리를 볼 수 있게.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57쪽)

 

 

 

 

 

 

 

 

4. 인문학자 강신주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책

 

 

 

 

인문학은 흉내내는 게 아니라 고유명사에 육박해 들어가는 거라는 것. 그걸 배우고 책을 읽었기에 나름 성공한 거예요. 드디어 이제 사람들과 얘기할 수 있게 된 거죠. 이제부터는 제 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고요. (215쪽) 

 

 

 

 

 

 

 

 

5. 강신주와 인생상담이 필요할 때 읽는 책

 

 

 

 

 

 

 

 

 

 

 

 

 

 

 

6. 강신주의 전공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책

 

 

 

 

 

 

 

 

 

 

 

 

 

 

 

 

살육과 분쟁을 근본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해서 노자가 철저한 국가주의를 선택한다면, 장자는 국가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부인하고 개체들에게 긍정적인 삶의 전망을 제공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의 사상을 묶는 데 사용되는 ‘도가사상’이나 ‘노장사상’이란 범주는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사후에 구성된 상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86-7쪽)

 

 

 

7. 철학과 시의 절묘한 만남을 보여주는 책 

 

 

 

 

 

 

 

 

 

 

 

 

 

 

 

 

8.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를 얻었던 책

 

 

페르소나를 찢어버리고 맨얼굴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는 자신의 삶을 연기가 아니라, 삶으로서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우리에게 페르소나를 벗고 맨얼굴로 자신과 세계에 직면할 수 있는 힘을 주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면 거짓된 인문학은 여러분에게 더 두텁고 화려한 페르소나를 약속할 것이다. 거짓된 인문학은 진통제를 주는 데 만족하지만, 참다운 인문학적 정싱은 우리 삶에 메스를 들이대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15p)

 

 

 

 

 

 

 

 

9. 자본주의의 폐해를 파헤친 책 

 

 

 자본주의적 욕망들은 그 힘이 너무도 강해서 하루아침에 종식시킬 수 있는 것들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얼마나 자본주의에 의해 상처받고 있는지를 절실히 느끼기 시작한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더 이상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우리 자신과 우리 후손들이 치료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떠안기전에, 치유의 노력이 곧 시작될 수 있기를 말입니다. (432쪽)

 

 

 

 

 

 

 

 

 

10. 앞으로 기대되는 강신주의 책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강신주의 책

 

 

 

 

 

 

 

 

 

 

 

 

 

 

 

 

그렇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딱 한 가지입니다. 저의 책이나 강연이 여러분 스스로 한 번밖에 없는 자신의 소중한 삶을 돌아보고, 자신만의 삶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여러분을 자극했으면 좋겠다는 것 말입니다. (597쪽)

 

 

2월 4일 오후에, 친한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자기야, 포털 검색어에 자꾸 강신주가 뜨네. 자기 생각이 나서 걸었어. 무슨 일 있어?"

 

일단, 이 지역 강신주 관리는 내가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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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2-06 11: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 친구가 강신주 힐링캠프 보더니 제게 이러더라고요.

"넌 안봐도 돼. 넌 이미 강신주가 말하는 삶을 그대로 살고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단 이 지역 강신주 관리는 단발머리님께 맡깁니다. 아울러 다락방 관리도 좀... ( ")

단발머리 2014-02-06 11:16   좋아요 0 | URL
이 지역이 저희 동네인데, 일단~~ 다락방님 동네까지 제가 맡아드리구요.ㅋㅋ
아흐..... 다락방님 관리를 제게 맡기신다면...
마음과 정성, 사랑과 애정, 기쁨과 환희, 정열과 열정을 다해 제가, 관리해드리겠습니다.

아하... 저를 바라보는 저 뭇 알라디너님들의 눈빛, 부러우시지요?
다락방님, 그럼 우리..... 흐흐흐...

그렇게혜윰 2014-02-06 1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강신주님 책을 한권 선물받았는데 연세가 있으신분이 주셨으니 작가님 독자층의 스펙트럼이 참 넓네요^^

그나저나 강신주앓이 하시는분들 많을텐데 투표안하셔도 되겠어요?ㅋ

단발머리 2014-02-07 09:51   좋아요 0 | URL
아하... 강신주님 책 선물 받으신 거 축하드려요~~ 헤헤
강신주않이 하시는 분 많아서, 특히 30대 주부들. 좀 그렇기는 하지만, 제가 혼자 독점하기에는 너무....
크신 분이라...

그런데, 그렇게혜윰님. 투표는 무슨 투표인가요? 강신주님 관련이면 뭐든 투표하고 싶어요~~

2014-02-07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07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14-02-11 1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지역 강신주 관리는 하던 친구가 따로 있어놔~ ㅋㅋ
그 친구와 지난 주 힐링캠프 방영 후에 담날 나눈 대화는,,, 그 친구왈..
"악플이 인터넷에 많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ㅠㅠ)"
였어요 ㅠㅠ


단발머리 2014-02-12 10:22   좋아요 0 | URL
아, 강신주님 관리하시는 친구 따로 있으시군요.
저희 동네는, 강신주님 모르는 사람도 아주 많아서요.
그냥 제가 관리한다고 해도, 아는 사람도 없고, 관심있는 사람도 없고... ㅋㅎㅎ
악플이 좀 많아진것 것 같기는 해요. 뭐, 악플이 거의 인기랑 비슷하게 가는 거니까요. 나 좋다는 사람, 너도 좋아라 할 수는 없지만, 강신주님 본의가 맥락과 상관없이 오해될 때는, 좀 아쉬운 마음이... 있어요.

- 2023-02-27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
이런 역사가 있었다.... 우연히 서재에 들어왔다가 태그에 굵은 강신주를 눌렀다가 이런 비극을 봐버림...
단발머리님 미안해요.. 그냥... 많이....

단발머리 2023-02-27 14:04   좋아요 1 | URL
미안해요 ㅋㅋㅋㅋ 나한테 미안해해라 ㅋㅋㅋㅋㅋ 인생의 어느 순간에 강신주에 기댄 때가 있었죠. <철학 vs 철학> 냈을 때 누가 물어봤다죠. 여성 철학자 한 명도 안 넣었나? 넣을만한 사람이 없다… 고 했다는…
(먼 산)

- 2023-02-27 14:08   좋아요 1 | URL
나 철학 vs 철학 을 읽기는 해요… 도올 이후로 강신주만한 철학자 없는 건 사실이고 ㅋㅋㅋㅋㅋ
근데 지역 관리자 일 정도였다….? ㅋㅋㅋ
근데 이 와중에 다락방 이미 강신주래 ㄴ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02-27 14:11   좋아요 0 | URL
그건 사실이지요. 강신주 안 들어도 되는 삶을 ㅋㅋㅋㅋㅋ 우리는 추구합니다.
락방님 빠르네요. 2014년이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 일 하나고 노나, 쟝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심해?

- 2023-02-27 14:20   좋아요 1 | URL
헤헷! 아뇨 ㅋㅋㅋㅋ 밥먹고 산책하고 와서 자리에 앉았다가 일하기 싫다 ㅋㅋㅋ 월요일이니까 페이퍼!!! ㅋㅋㅋ 다-잠-단 한바꾸 돌았어요 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02-27 14:26   좋아요 1 | URL
에구 수고많아요 ㅋㅋㅋㅋㅋ 쫌 놀고 일하고 밥 먹어요 홉스랑 언제 놀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3-02-27 14:29   좋아요 1 | URL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놀아줘야하는데 ㅋㅋㅋ 요즘은 자꼬 늦잠잡니닼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02-27 14:31   좋아요 0 | URL
내가 놀아주고 싶다 ㅋㅋㅋㅋ 나랑 안 놀라고 그러겠지? ㅋㅋㅋㅋㅋㅋ
 
초조한 마음 대산세계문학총서 116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유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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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함께 있을 때는 기쁨을, 반대로 떨어져 있을 때는 슬픔을 가져다주는 감정이다. 이에 반해 연민은 남의 불행을 먹고사는 서글픈 감정일 수밖에 없다. ... 결국 연민을 계속 품고 있으려는 사람은 상대방이 계속 불행하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강신주의 감정수업], 203쪽)

 

안톤 호프밀러는 케케스팔바 성으로의 방문이 즐거웠다.

난생처음 나보다 계급이 높은 상관이 계급을 의식하지 않은 채 나를 대해주었다. 그는 내게 부대 생활에 만족하는지, 진급 가능성은 어떤지 등을 물어보았고, 빈에 오거나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자신을 찾아오라고 말해주었다. (63쪽)

 

일개 장교에 불과한 자신이 상류층의 사람들과 격의 없이 편안하게 어울리고,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진귀한 음식들을 대접받았을 때, 호프밀러는 행복했다.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감탄을 자아냈고, 이런 호화로운 생활을 상상할 수도 없는 자신의 친구들을 떠올리며 뿌듯해했다. (64쪽)

그 뿐이 아니다.

매일 오후 나는 여러 마리의 암탉을 거느린 수탉처럼 두 여자 사이에 앉아 있었다. 그들의 밝고 여성스러운 목소리에 몸이 노곤노곤해지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끼며 나는 난생처음 젊은 여인들과 있으면서도 전혀 움츠러들지 않는 나의 모습을 즐겼다. (72쪽) 

 

케케스팔바 성에 속해 있을 때,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꼈다. 수염이 덥수룩한 거친 남자 동료들 대신에 아름다운 여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에게 케케스팔바 성은 황홀경이다. 지옥 아닌 천국, 지상 아닌 낙원, 케케스팔바 성과 부대, 호프밀러는 그렇게 서로 다른 두 개의 세계를 겹쳐서 살고 있었다.

케케스팔바는 마치 어린아이나 여자를 쓰다듬듯이 아주 부드럽고 수줍게 내 팔을 어루만졌다. 이 수줍은 손길에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깊은 애정과 감사가 담겨 있었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깊은 행복감과 절망감이 또 다시 나의 마음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67쪽)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 자신이 뭔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 지구상의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확신(68쪽), 희망 없는 에디트에게 자신이 환희와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에 호프밀러는 계속해서 케케스팔바 성을 방문한다.

하지만, 술집에서 만난 친구들의 조롱 때문에 호프밀러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케케스팔바 성을 방문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자신은 다른 사람을 ‘돕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들은 자기를 그저 부자들의 환심이나 사고 저녁식사비를 아끼고 선물이나 받을 요량으로 그 화려한 저택에 드나들고 있다(85쪽)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호프밀러는 자신의 선한 의도가 그렇게 이해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다음날, 그는 아무런 연락 없이 매일 방문하던 케케스팔바 성에 가지 않는다.

케케스팔바 성은, 케케스팔바 성 전체는, 그 곳의 모든 사람들은 그를 기다린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결국에는 그를 찾는 사람이 그가 죽치고 있던 카페 근처까지 오게 된다. 무심한듯 하지만 사뭇 진지한 초대 때문에 호프밀러는 다음날 케케스팔바 성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한다. 그 다음날, 어설프게 핑계거리를 찾던 호프밀러의 거짓말은 ‘연민으로서는 찾아오지 말라’는 에디트의 솔직함 앞에서 떨어진 낙엽처럼 초라하게 굴러다닌다.

소설 첫 장에서, 호프밀러는 말한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어디까지가 나의 단순한 실수이고 어디서부터 나의 죄가 성립되는지 그 경계를 구분 짓지 못한다. 아마 앞으로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19쪽)

 

영 모르겠다니, 내가 알려준다. 호프밀러의 단순한 실수가 죄로 변용되는 지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바로 이 지점부터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연민으로써 자기를 찾아오지 말라는 에디트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은 것, 그것이 그의 실수다. 자신에게 희생하지 말라는 에디트의 말을 주의깊게 듣지 않았던 것, 그것이 그의 잘못이다. 자신을 동정하지 말라는 에디트의 말의 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 그것이 그의 죄다. 바로 이 지점부터, 호프밀러는 ‘연민’의 감정을 ‘우정’으로 위장한 채, 케케스팔바 성을 방문한다. 그와의 모든 시간을 한없이 소중히 여기는 에디트의 본심을 까마득히 모른 채 말이다.

케케스팔바 성에서 한 발짝 발을 빼려 했던 호프밀러는 오히려 콘도어 박사에게 에디트의 병에 대한 진척 여부를 물어봐 주기로 케케스팔바씨와 약속한다.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케케스팔바의 가장 중요한 문제에 접근해간다. 케케스팔바씨의 딸이자 케케스팔바성의 진정한 주인, 불쌍한 소녀 에디트의 삶 속으로 그렇게 걸어 들어간다.

자신의 진실한 사랑을 상대방이 연민으로 대하고 있음을 알게 됐을 때, 그것만큼 불행한 일이 있을까. 에디트에 대한 연민으로 호프밀러는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의 쾌유를 기원하고, 회복 후 그녀 앞에 펼쳐질 밝은 미래를 기약한다. 그는 그녀를 돕기 원했다. 그는 그녀에게 희망을 주고, 그녀를 격려해 주고, 그녀를 칭찬해 주었다. 그녀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녀와 체스게임을 두고, 그리고 그녀와 식사를 했다.

그는 그것이 그녀를 돕는 일이라 생각했다. 에디트, 아름다운 소녀이자 성숙한 여인, 불구의 몸이나 날개처럼 가벼운 사람. 어쩌면 그녀는 그에게 신비롭게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연민은, 호기심은, 그리고 희생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랑은 그렇게 쉽지 않다.

호프밀러는 누군가를 사랑하기에는, 혹은 누군가에게 사랑받기에는 아직 나약한 사람이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솔직히 직면하는 에디트와 비교하면 그의 나약함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는 결정을 번복하고, 이별을 연기하고, 사람들의 눈물 어린 부탁에 어쩔 줄 몰라한다. 그의 이런 우유부단함은 에디트를 더욱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나약한 호프밀러의 연민, 그의 연민에 사랑을 기대하는 에디트, 그런 에디트에 종속되어 있는 케케스팔바성. 아슬아슬하다.

다만, 호프밀러를 위해 변명 한 마디를 하자면, 이렇다.

호프밀러는 여러 번 케케스팔바 성으로 다시는 가지 않겠다, 다짐한다. 하지만, 에디트의 아버지, 에디트의 주치의, 에디트의 사촌언니, 그리고 케케스팔바 성의 하인들은 그에게 간청하고 또 간청한다.

“제발 이 곳에 와 주세요.”

“내일 아침 일찍 와 주세요.”

“잠깐이면 됩니다. 꼭 와 주세요.”

그들에게 에디트는 ‘거부할 수 없는 명령 그 자체’이다.

그녀는 불행하다.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고, 아무도 부럽지 않은 환경속에서 자랐지만, 에디트는 불행하다. 앞으로도 살날이 창창한 그녀는 족쇄같은 기계에 매여 있다. 언제 회복될지 모르며, 효능을 예상할 수 없는 치료를 계속해야 한다. 친구를 만날 수도, 산책할 수도, 걸을 수도, 달릴 수도 없다. 도망갈 수도, 그렇다고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다. 그녀는 불쌍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손 치더라도...

“... 그 아이가 얼마나 예민한지 당신은 모를 겁니다. 모든 것을 우리보다 훨씬 강하게 느낀답니다. 지금도 자신이 자제력을 잃은 것에 대해 우리보다 더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자제를 하겠습니까? (56쪽)

 

에디트는 불행하고, 불행한 그 소녀는 스스로를 자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종종 자제력을 잃을 수도 있고, 그리고 자신이 자제력을 잃은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고통스러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많이 불행하다고 해서, 그녀가 스스로를 자제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본문 인용의 굵은 글씨체는 내가 한 것이 아니다. 작가가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케케스팔바씨가 말한다.

“... 어떻게 자제를 하겠습니까?“

불쌍한 딸을 둔 아버지의 절절한 심정이, 사촌언니의 애달픈 마음이, 케케스팔바 성 하인들의 충심이 한데 모아져서, 결국에는 스스로 자제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든 욕망을 끝까지 관철시키고야 마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졸도해버리고 마는, 그런 에디트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어리석고 바보같은 사람이지만, 그래도 남주, 안톤 호프밀러 소위를 위한 한 가지 변명이다.

결국에는 케케스팔바 성 전체를 파국으로 이끌었지만, 그래도 한 때는, 그 성에서 가장 활기찬 웃음소리를 만들어냈던 남주 안톤 호프밀러를 위한 내 작은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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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4-02-05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어디까지가 나의 단순한 실수이고 어디서부터 나의 죄가 성립되는지 그 경계를 구분 짓지 못한다. 아마 앞으로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현실에서도 이런 적나라한 자기고백적 문장을 술술 구사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은 자기검열(주인공 시점이든, 작가적 시점이든)이 덜할 것 같은 느낌도 드네요. ~ 일단 초조한 마음, 보관함에 넣습니다. 단발님 덕이지요.

볼 때마다 깊이 읽고, 높이 읽으시는 단발님...
열심히 보고 배울게요. 오늘 하루도 상큼하게 출발하시어요.^^*

단발머리 2014-02-05 10:35   좋아요 1 | URL
팜므느와르님, 이렇게 칭찬해 주시니 정말 몸둘바를 모르겠어요.
저는 읽고 쓰는게 아직 서툴러서 솔직히 이렇게 리뷰 올리는게 아직 부끄러워요.
그래도 팜님처럼 응원해주시는 분이 계셔서 얼마나 신나는지 모르겠어요.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겠습니다.
한 수 말고, 다섯 수, 열 수 가르쳐주세요~~~~~~~~~~~~~~~~~~~


다락방 2014-02-05 0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엄청나게 좋지요, 단발머리님? 진짜 최고에요 최고!!
구구절절 단발머리님의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단발머리 2014-02-05 10:44   좋아요 1 | URL
맞아요, 다락방님. 진짜 최고라는 말이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소재도 특별하지만, 츠바이크가 사건과 심리를 엮어서 전개하는 방식도 너무 좋구요.
말 그대로 술술 넘어가더라구요.

다락방님께서는 [연민]으로 읽으셨다고 하셨죠? 저는 도서관에서 요 책을 만나 '한 번 읽어볼까?'하고 마믐 편하게 시작했다가, 단번에 읽었다는.... ㅋㅎ 요 위에 페이퍼에는 못 썼는데, 번역도 아주 유려하고요.

이 나이에 츠바이크
조금 늦은감 있지만,
이제라도 츠바이크
읽으니 다행이다...

착한시경 2014-02-05 1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넘 멋진 글~ 저도 이 책 지난달에 구입해 놓고 아직 표지만 구경 중인데~ 단발머리님 글을 읽고 나니 맘이 급해져요~ 빨리 읽고 싶네요^^

단발머리 2014-02-06 09:07   좋아요 1 | URL
착한시경님, 벌써 구입하셨군요. 저는 책을 집어들고 이렇게 빨리 읽게 될 줄 몰랐어요. 폭풍처럼 몰아치는~~ ㅋㅎㅎ 저는 책을 빨리 못 읽거든요. 근데 빨리,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오늘 서울은 별로 안 춥네요. 착한시경님, 즐건 하루 되셔요~~
 

 

 

나는 책을 빨리 읽지 못 한다. 예전에는 몰랐다. 나는 보통 속도 아니면 그것보다 조금 빠른 정도라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나는 책을 빨리 읽지 못하는 편이다.

 

물론, 내게도 변명거리는 있다.

 

1. 애들이 방학이다

2. 딸롱이가 집에 있다

3. 아롱이가 놀자고 한다

 

아이들이 방학이니, 아무래도 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읽기 싫어서가 아니라, 읽을 수가 없어서,라고 어젯밤, 신랑에게 말했으나, 콧방귀를 흥흥~~

 

책을 빨리 읽지 못하는데다가, 나는 책구입에서도 두 세 걸음 느리다.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전집] 중 1-4권을 구매했는데, 알라딘서재에서는 이미 유행이, 지나버렸다. 좀 바보같다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어쩌겠나. 알라딘서재에서 여러 분들이 이 책을 샀어요, 사진을 올리실 때, 책 내부를 보여주실 때, 나도 꼭 읽고 싶다. 정확히는 갖고 싶다,이지만. 

 

 

예전부터 눈독들여왔던 [김승윽 소설전집]도 구매했다.

 

 

 

 

그러나, 책을 받아든 나는 그렇게는 기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이 출간됐기 때문이다!!!

 

물론, [김승옥 소설전집]은 위대하고, 아름답고, 소중하다. 하지만,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를 본 순간, 난 또 외치고 말았다.

 

아, 너무 예뻐. 사고 싶다.

 

 

 

 

 

 

 

 

 

 

두 세 걸음 느린 나는 언제쯤이나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을 사게 될까. 일단 사고 싶은 책 몇 권만 골라본다. 알사탕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미리 말해둔다. 이사를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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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1-24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움화화핫 저는 문동한국문학전집 별로 안땡겨요. 움화화화화핫. 아...이런 저라서 정말 다행이에요! ㅎㅎㅎㅎㅎ

단발머리 2014-01-24 08:56   좋아요 0 | URL
앗! 다락방님, 벌써 출근하셨군요~~ 아니다, 아까 전에 출근하셨죠?
다락방님은 문동전집에 있는 책들 다 읽으신거 아니예요? 그러니까, 안 땡기시지요.
저는 아직 안 읽은게 많아서.... 항상 바쁠 뿐이랍니다.

아무튼 다락방님, 다행이라서... 부러워요. @@

icaru 2014-01-29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명관의 고래는 표지만 시뻘건 것에서 바뀌었을 뿐인데, 호감도 급상승이네요~
김승옥 전집은 우아우 이뻐요,,, 제목 서체도 감각적이구... 무진기행이랑 19몇십년 겨울... 이라는 제목 긴 소설밖에 모르는 저는,,, 저렇게나 두께감있는 다작을 했던 시절이 있었군요. 김승옥 작가...
절필 비슷하게 언제부터인가 작품을 쓰지 않아 그 이유로 호기심이 일었던 작가네요 ^^

단발머리 2014-02-04 10:09   좋아요 0 | URL
전 아직 [고래] 안 읽어봤는데요, 평이 너무 좋아서, 벼르고 있어요. 벼르고만 있나요? ㅋㅎㅎㅎ

김승옥 전집 너무너무 이쁘죠~~ 근데, 그 옆에 나쓰메 소세키 4권이 짠 등장하니까, 외모면에서 확 밀리는거 있죠. 외모 1위는 나쓰메 소세키, 현암사가 1등이네요~ 승자만 기억하는 이 나쁜 기억력 ㅋㅎㅎ

김승옥 전집을 샀을 때는 크고 원대한 꿈이 있었는데, 지금 완전히 밀려있어서 작가님께 죄송합니다.
김승옥 작가님은 전에 <빨간 책방>에서 다룰 때 이야기로는, 종교적인 체험을 하신 후에 절필 비슷하게 하셨고, 또 몸도 불편하셔서 더 이상은 작품활동은 어려울 것 같다 하시더라구요.
아..... 천재들에게는 항상 시간이 짧게 주어지나요.....
 
에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3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김영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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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다시는, 이 책을 읽고, 저 책을 읽어야겠다는 계획이나, 이 책 다음에는 어떤 시리즈를 읽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이제서야 알게 됐는데, 나는 작가 한 명의 책을 연달아 읽지 못 한다. 지루해서가 아니다. 나는 세계 문학사에 길이길이 빛나는 고전, 그 중에서도 소설 분야를 주로 읽고 있는데, 어디 지루할 틈이 있겠나. 졸릴 짬이 있겠나. 

이번에도 그렇다. 밀란쿤데라의 [농담]을 다 읽고, 그의 다른 책 [불멸]을 집어들었으나, 들었으나, 아, 첫장을 넘기지 못 했다. 

나는, 두려운 것이다.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을 연거퍼 읽었을 때, 혹 줄거리가, 주인공의 이름이, 작품의 배경이 서로 서로 섞이는 것은 아닌가. 혹자는 말한다. 그럼 어때. 어떻게 세세히 다 기억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좀 심하다. 나는야 읽고 나서 돌아서면 모두 잊어버리는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로서, 포스트잇 옮기는 걸 까먹어서 읽은 부분을 다시 읽는 일이 일상 다반사다. 그것도 30페이지 넘게 말이다. 그러니, 한 작가의 작품을 이어서 읽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에 읽은 소설의 남자주인공이 지금 읽고 있는 소설의 여주인공과 키스할 테세다. 이건 아니다 싶다. 

그래서, 연작이 아닌 이상 한 작가의 책을 연거퍼 읽겠다는 야무진 계획은 일단 무기한 보루하기로 한다. 이번에는 제인 오스틴, [에마]다. 

자랑삼을 만한 미모나 총기도 없었다. 젊은 시절은 별다른 일 없이 스러져 갔고, 중년기는 노쇠해 가는 모친을 보살피며 얼마 안 되는 수입으로 애면글면 살림을 꾸려나가는 데 바쳐졌다. 그럼에도 그녀는 행복한 여인이었고, 그 이름을 거론할 때면 누구나 선의를 함께 표하는 그런 여성이었다... 소박하고 쾌활한 성격, 자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정신은 모든 사람에게 귀감으로 여겨졌고 그녀 자신에게는 지복의 원천이었다. 그녀는 자잘한 화제를 끝없이 펼쳐 놓는 대단한 이야기꾼이어서, 잡담과 무해한 뒷공론을 즐기는 우드하우스 씨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33쪽) 

 

요즈음은 많이 자중하는 편이지만, 사실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말이 많아져서, 친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러 갈 때는, '오늘도 조금만 말하자' 혼자 다짐을 하고서는 집을 나선다. 이 책에는 나보다 더 말하기 좋아하는 분이 나오는데, 국보급 이야기꾼 베이츠양이다. 베이츠양에 대한 묘사에서 나는, 제인 오스틴을 본다. 

자랑삼을 만한 미모도 지혜도 재산도 없지만, 소박하고 쾌활한 성격에 자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그녀. 자잘한 화제를 끝없이 펼쳐 놓는 대단한 이야기꾼. 제인 오스틴, 그녀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닌가. 사실 조금 암울할 수도 있겠다. 미모도 지혜도 재산도 없는 노쳐녀, 늙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적은 수입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처지가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행복한 여인'이라고 말한다. 지금 자신의 외적 상황과는 상관없이, 자신은 만족한다고, 감사한다고, 그리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베이츠양이 그런 것처럼, 자신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자신은 만족한다고, 감사하다고, 행복하다고 말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는 제인 오스틴이 예전보다 좀 더 좋아졌다.  

"해리엇, 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규칙은 여자가 남자를 받아들일지 말지 잘 모르겠다면 당연히 거절해야 한다는 거야. '좋다'라고 말하는 데 망설임이 있다면, 곧바로 '아니요'라고 말해야지. 마음이 반만 기운 채 긴가민가 하는 감정 상태로 결혼에 뛰어드는 것은 안전하지가 못하지. (79쪽)

 

 

이와 비슷하면서도 사실 다른 경우의 이야기를 [강신주의 다상담]에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강신주의 다상담을 '들은' 이유는 강연이 책으로 묶여 나올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강연은 두 번, 세 번까지 듣기도 했는데, 들을 때마다 느꼈던 건, 강신주님 답변이 정말 '돌직구'라는 것, 그리고 돌직구 조언 사이사이 그의 진심어린 애정이 묻어난다는 것이다. 


특별게스트로 김어준님이 나왔을 때였던 것 같다. 이혼을 고민하는 상담이었는데, 강신주님과 김어준님 모두 이혼을 '독려'했다. '이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된다면, 일단은 '이혼을 하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한 번 '이혼 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면, 다음에도 또 그 다음에도 작은 사건 사고에도 그 생각이 이어질 수 있다는 거다. 이혼하고, 한 번에 훅 털어버리고, 그리고 다시 시작하라는 거다.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이혼의 파장력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한 번에 밀어붙이기엔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결혼의 3.5 내지 5.5배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혼'을 '생각'할 만한 단계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른 경우이지만, 똑같은 측면에서 에마의 말은 옳다. 어떤 남자를 받아들일지 말지 잘 모르겠다면, 당연히 거절해야 한다. 사귈지 말지 잘 모르겠다면 사귀지 않는편이 낫고, 결혼할지 말지 잘 모르겠다면, 결혼하지 않는게 낫다. 그녀의 말이 옳다. 긴가민가 하는 감정 상태로 결혼에 뛰어드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 너 아니면 안 돼, 너 아니면 난 죽어, 해서 결혼해도, 그 다음엔 너 때문에 내가 죽겠다,가 절로 나오는 법이니까. (마지막 문장은 생활 속에서 얻어진 문장이 아님을 '굳이' 밝혀둔다.)

그는 대단히 잘생긴 청년이었다. 키며 태도며 말씨며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고, 표정은 부친을 닮아 활기와 박력이 넘쳤다. 그는 분별 있고 영민해 보였다. ... 그녀는 그가 자기와 친해지려는 생각으로 왔으며 곧 서로 친해질 수 밖에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274쪽)

 

제인 오스틴 소설에서는 남자주인공, 여자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조연까지도 인물이 훤한 것이 특징인가 보다. 프랭크 처칠은 남자주인공급으로, 잘 생긴 외모를 자랑하며 짠~ 하고 등장하고 있다. 그는 대단히 잘생긴 청년이다. 본인 의사와 상관 없이 여러명을 생각해볼 수 있겠으나, 역시 '잘생긴'은 장동건-원빈 태극기 형제가 제격이다. 장동건은 이미 결혼한 관계로, 원빈을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으나, 나는 굳이 '잘생긴'을 '매력적인'으로 해석하는 바, 프랭크 처칠 등장시에는 별그대 외계인 도민준 김수현을 생각하면서 읽기로 한다.   

 

 

 

 

 

 

나는 대개 아무런 정보 없이 책을 읽어나간다. [에마]가 아주 유명한 책이기는 하지만, 난 대략의 줄거리도 모른 채였다.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 그래서 에마가 프랭크하고도 이어질 수 없게 되나 싶었을 때,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이 소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에마는, 에마는 어떻게 되는거야? 누구랑 해피엔딩인 거야? 제인 오스틴 소설의 마무리는 항상 '결혼'인데, 그래서, 에마는 누구랑 결혼하는 거야?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책 뒤쪽을 기웃거렸다. 이 쪽, 저 쪽 페이지를 넘겨가던 중에, 나는 알게 됐다. 에마는 그 사람이랑 결혼을 하게 된 거다. 아하... 

나는 그 사람이 처음 나왔을 떄부터 둘 사이의 대화가 참 건전하고, 진지하고, 교육적이며, 서로에게, 특히 에마에게 유익하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 소개됐을 때에 알게 된 그의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나는 일찌감치 그 사람을 '신랑 후보군'에서 제외한 상태였다. 그런데, 에마의 짝은, 소울메이트는, 그녀의 결혼상대는 바로 그 사람이었던 거다. 

나는 놀랐다. 제인 오스틴이 그 사람을 일부러 숨겨놓은 것도 아니고, 그녀가 특별한 소설적 기법을 통해 그 사람의 중요성을 감추려 한 것도 아닌데, 나는 끝까지, 소설을 반 이상이나 읽어갈 때까지, 에마의 배필을 찾아내지 못한 거다. 에마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을 알아채지 못한 거다. 나만 그런 건 아니다. 나같은 사람, 꼭 나같은 사람이 여기 하나 있다. 

에마는 즉각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몇 분간 속으로 생각을 되씹으며 얼어붙은 듯 앉아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데는 몇 분으로 충분했다. 그녀와 같은 정신은 일단 의혹을 품으면 급속한 진전을 보게 마련이었다. 그녀는 모든 진실을 문득 감지하고, 인정하고, 확인했다.... 한 가지 생각이 쏜살같이 에마의 뇌리를 스쳤으니, N씨가 자기 말고 누구하고도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591쪽) 

 

자기가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해리엇이 그 사람을 연모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와의 결혼을 꿈꾸고 있음을 알았을 때, 에마는 비로소 알게 된 거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란 걸 말이다.  

참아 줄 수 없는 허영심으로 그녀는 모든 사람의 숨겨진 감정을 자기가 안다고 믿고, 용서할 수 없는 교만으로 모든 사람의 운명을 조정하겠노라고 나댔다. (598쪽) 

현명한 중매자를 자처한 에마, 정작 자기의 앞가림은 하지 못한 셈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또는 읽기를 결정하면서 기대했던 것, 바랬던 것들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나 싶다. 

1. 단편소설이나 시보다 장편소설에 대해 부가되기 마련인 사회적 목적, 즉 소설이 개혁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일말의 주장에 대해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어떻게 답하는가? (해럴드 블룸의 독서 기술, 21 제인 오스틴, [에마], 216쪽) 

 

 


2. 작가로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이 층 침실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 작은 거실 한쪽에 놓인 일인용 책상에 앉아 소설들을 써 나갈 때, 글을 쓰는 여자 제인 오스틴의 사회적, 역사적 위치는 어떠한가? (작품 해설, 704쪽) 

3. 가장 좋아하는 인물인 에마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는 한편 가장 비호감인 인물에게조차 공감을 표시하는 일, 즉 셰익스피어로부터 배운 것이 분명한 이 어려운 작업을, 제인 오스틴은 어쩌면 이리 유려하게 해낼 수 있었는가? (해럴드 블룸의 독서 기술, 21 제인 오스틴, [엠마], 219쪽)   

4. [에마]의 배경이 되는 영국 귀족 사회에서, 결혼이 가능한 또는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가문 사이, 사회적 지위간의 층위는 얼마나 다양한가? 

그런데, 나는 하나도, 단 하나도 대답을 찾지 못 했다. 

내가 알아냈던 건, 에마가 자신이 누군인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끝까지 몰랐다는 것이다. 그리고, 에마처럼 소설 속에 갇힌 사람이 아니라, 소설 바깥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나도, 에마가 정말 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에마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책 뒤쪽을 펴보기 전까지는 정말, 까마득히 몰랐다는 거다. 

고전의 위대한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내가 이 에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진짜 남자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다른 사람이 채 간다고 해서야 그 사람이 자기 사람임을 눈치채는, 책 뒤쪽을 펼쳐봐야 내용을 알게 되는,   

내가 바로 에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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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4-01-23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가 재밌어요~ 내가바로에마다 ㅎ 이런 맛과 멋에 태그다나 보다~
써머셋 모옴이 쓴, 작가 비평전이라고 해야 하나 대여섯명의 작가에 대한 평전을 썼는데,,
불멸의 작가, 위대한 상상력 이라는 책을 보면, 제인 오스틴이 있는데 ㅋㅋ~ 참 맛나게 읽은 책 중 하나죠... 책 비주얼은 두껍고 글밥 많은 게 하품나게 생겼는데요~ 혹시 읽어보셨을 수도 ㅎㅎ

온다 리쿠의 흑과 다의 환상을 보면, 주인공이 네명인데, 그중에 한명 세스코라는 여성이 있어요~
어릴 떄는 소심했고, 친구도 없었는데,,, '친구'를 바라지 않으면서 친구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세쓰코에게, 심히 반했었죠~

"친구, 우리는 이 말에 얼마나 큰 공포를 느끼고 살아왔을까. 이 악의 없고 진부한 말을 중얼거릴 때, 누구나 가슴 속에 복잡하고 씁쓸한 감정을 품을 것이다."라고 내레이션하는 세스코...

눈썹을 찡긋찡긋하면서 능란하게 대화를 뒷받침하는 세쓰코의 쾌활함....ㅋㅋ ㅇ 이여성도 작중 수다대마왕인데~ ㅋㅋ

단발머리 님 이야기 듣고 있으니까 생각나서뤼..

단발머리 2014-01-24 09:04   좋아요 0 | URL
icaru님, 말씀하신 서머셋 모음이 썼다고 하는 책은 처음 들어봤어요. 외국 쪽에서는 제인 오스틴에 대한 연구가 많은것 같아요. 갑자기 영화 <제인 오스틴 북 클럽>도 생각나고요. 아직 못 봤거든요.

서머셋 모음이 썼다고 하면, 웬지 믿을만 하겠는데요. 사실, 제인 오스틴 작품, 읽은게 얼마 안되네요.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 몇 개 안 되는데... 참, 그렇죠?

수다대마왕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들어도 재미있군요. 멀리갈 것도 없이 제가 '수다대여왕'인 관계로다가... ㅋㅎ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