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아롱이에게 책을 많이 읽어주지 못 해, 다시 '책을 읽어 주자'고 결심했다. 당연히 1번부터 시작이다. 비룡소 <난 책읽기가 좋아>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어린이 책 시리즈다. 그 이유는, 

첫째, 여러 작가의 책을 모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이야기가 다양하고, 그림이 다양하다. 
둘째, 교훈을 주려고 노력하거나, 노력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셋째, 어린이 책 치고는 크기가 작고 가벼워 이동할 때 가지고 다니기 편하다. 


 

딸롱이가 여섯 살때 구매했으니까, 나름 오래된 책인데도 나는 이 시리즈가 좋다. 가끔은 아이들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작품은 <너 정말 이러기야?>와 <꼬마 곰> 그리고 <원숭이는 원숭이>등이다. 1권, <꼬마 곰> 중 네번째 에피소드, '꼬마 곰의 소원'. 

꼬마 곰이 말했어요. 
"와아, 그 얘기 참 재미있네.
그런데 엄마가 케이크를 갖고 왔잖아요.
엄마는 늘 나를 행복하게 해요."

엄마 곰이 말했어요. 
"지금 너도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단다." 

꼬마 곰이 물었어요. "어떻게요?" 
엄마 곰이 말했어요. "네가 자면 되지."
"알았어요. 그럼, 저 잘래요." (60쪽) 

 

 

 

워낙 이 책을 좋아하다보니, 여기 저기 많이 추천해 주었다. 이 부분을 처음 읽고 감탄하지 않는 사람들, 정확히는 놀라지 않는 엄마, 아빠를 본 적이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놀라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필경 아이를 재우다 먼저 잠들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일 테다. 아이와 놀아주기, 아이와 이야기하기, 아이 밥 차려주기, 아이 씻기기 중에서 나를 가장 강력하게 불가항력의 세계로 내모는 건, 언제나 '아이 재우기'였으니까. 아이가 많이 자랐는데도, 그렇다. 아이 재우기는 힘들다. 

엄마 곰은 말한다. "너도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단다. 네가 자면 되지." 엄마 곰의 직구발언에 꼬마 곰이 응대한다. "알았어요. 그럼, 저 잘래요." 

세상에서 제일 이쁜 아기는 웃고 있는 아기거나, 놀고 있는 아기거나, 먹고 있는 아기가 아니라, '자고 있는 아기'니까. 자고 있을 때, 모든 아기들은 '하늘에서 잠시 이 땅에 내려온 조그만 아기 천사'가 되는 거니까. 

이젠 아기 천사라 부르기엔 많이 커버린, 아이 두 명이 자고 있다. 아이들과 씨름하다 지친 어른 한 명도 자고 있다. 이 때, 엄마 곰처럼 "나 지금 행복해~~"라고 말해 버리면, 너무 무심한 엄마, 매정한 아내일까. 그래도, 설마 그런다해도 나도 어쩔 수 없다. 

아, 행복하다.   

* 도서관에 갔다가 [꼬마곰] 시리즈가 다른 책으로  변경된걸 알게 됐다. 너무 오래된 책이라 그런가보다. 그래도 난 [꼬마곰] 시리즈가 좋은데,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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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10-17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 검색해 볼래요. 둘째 조카도 태어났으니 또다른 책들을 사줘야죠. 헤헷 :)

단발머리 2013-10-17 10:40   좋아요 0 | URL
이렇게 좋은 이모라니... 내가 둘째 조카하고 싶어요.
이모~~~

다락방님~ 근데 이 시리즈 검색하니까 영어동화책으로만 나와서요.
제가 가지고 있는 한글판은 없네요.
다른 서점에는 확인 못 해 봤는데요.....

<꼬마곰 시리즈>는 이렇습니다.
1. 꼬마 곰
2. 꼬마 곰에게 뽀뽀를
3. 꼬마 곰의 방문
4. 꼬마 곰의 친구
5. 아빠 곰이 집으로 와요.

다락방 2013-10-17 10:42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중고샵까지 검색해봤는데 없더라고요. ㅠㅠ
아쉬운대로 [너 정말 이러기야?] 와 [원숭이는 원숭이]만 사야겠어요.

단발머리 2013-10-17 14:59   좋아요 0 | URL
저희집 책을 스캔해서 보내드리고 싶군요. 1권, 2권은 진짜 압권인데....
[너 정말 이러기야?]와 [원숭이는 원숭이]가 위로가 되기를....
참고로, 원숭이도 시리즈예요.

13. 원숭이의 하루
14. 원숭이는 원숭이
15. 원숭이 동생

구매의 신, 다락방님 화이팅~~
 

 


 

 

 

 

 

 

 

 

 

 

 

 

 

시작이 어려운 책이 있다. 이건 어떻게 읽히느냐와는 다른 이야기이다. 읽기엔 어려워도 리뷰 쓰기 쉬운 책이 있는가 하면, 읽을 때는 술술 읽혔는데, 막상 리뷰를 써 볼까 하니 아무 생각도 안 떠오르고, 그냥 멍~한 경우도 있다. 근자에 나를 가장 멍~하게 만들었던 책은 한병철의 <피로사회>. 읽을 때는 마음에 쏙쏙 들어오는 구절 구절에, 어머! 나 성경 읽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더니만, 막상 리뷰를 쓸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함, 그 자체였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소설 형식의 전방위적 파괴라는 점에서, 철학적 사유가 자유롭게 펼쳐진다는 점에서,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가 너무 아름답다는 점에서, 육체적 사랑에 대한 사유가 구체적으로 보여진다는 점에서, 정치적 압박과 망명 생활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프라하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사실, 이 독특하고, 위대하며,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에 대해 무슨 말인가를 덧붙인다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일일 수도 있겠다. 

나는 읽고, 감동하고, 감격하고, 그리고 놀랄 뿐이다.   

칠년 전 테레자가 살던 도시의 병원에 우연히 치료하기 힘든 편도선 환자가 발생했고, 토마시가 일하던 병원의 과장이 급히 호출되었다. 그런데 우연히 과장은 좌골 신경통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 대신 토마시를 시골 마을에 보냈던 것이다. 그 마을에는 호텔이 다섯 개 있었는데, 토마시는 우연히 테레자가 일하던 호텔에 들었다. 우연히 열차가 떠나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 그는 술집에 들어가 앉았던 것이다. 테레자가 우연히 당번이었고 우연히 토마시의 테이블을 담당했다. 따라서 토마시를 테레자에게 데려가기 위해 여섯 우연이 연속적으로 존재해야만 했고, 그것이 없었다면 그는 테레자에게까지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58쪽) 

다음 날 아침 수화물 보관소에 짐을 맡긴 뒤 <안나 카레니나>를 겨드랑이에 끼고 프라하의 거리를 쏘다녔다. 저녁에 그녀가 초인종을 눌렀고, 그가 문을 열었다. 그녀는 책을 놓지 않았다. 그것이 마치 토마시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장권인 양. (88쪽)  

똥은 악의 문제보다 더욱 골치 아픈 신학 문제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으며 따라서 인류 범죄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점은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똥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인간을 창조한 신, 오직 신에게만 돌아간다. (378쪽) 

그러나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프란츠는 강하다. 그러나 그의 힘은 오직 외부로만 향한다. 그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는 약하다. 프란츠의 허약함은 선의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프란츠는 사비나에게 결코 명령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예전 토마시처럼 바닥에 거울을 놓고 나체로 걸어 다니라고 명령하진 않을 것이다. 그에게 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명령할 힘이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폭력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있다. 육체적 사랑이란, 폭력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176쪽) 

토마시를 테레자에게 데려가기 위해서는 여섯 번의 우연이 연속적으로 존재했다. 1984년에 출판됐지만, 2013년 10월 오늘, 내게 쿤데라의 소설이 와 닿기까지 여섯 번의 우연이 있었겠지. 그것이 없었다면 나는 쿤데라에게까지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팟캐스트 벙커 1 특강에서 강신주님이 쿤데라의 소설 <정체성>을 추천해 주셨다. 사랑이 시작될 때 사람들의 감정과 반응에 대해 잘 알 수 있을거라 하셨다. 반 정도 읽었는데, 그 놈의 반납기일 때문에. <정체성>의 쿤데라에게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여섯 번의 우연이 아니라, 여섯 번의 클릭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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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10-14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태그에 똥이라니!

저 176쪽 부분, 저도 몇 년전에 읽으면서 인상깊게 봤었어요. 그 때 사비나가 프란츠에게 물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당신의 힘을 내게 쓰지 않는 이유가 뭐죠?" 라고.

사랑이 시작될 때 사람들의 감정과 반응에 대해 잘 알 수 있을거라니, 저도 [정체성]을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단발머리 2013-10-14 09:01   좋아요 0 | URL
괜찮았어요? *^^*

나 지금 다락방님 방에 가서 이쁜 새 사람 발 보고 왔는뎅ㅋㅎㅎㅎㅎㅎㅎ

176쪽처럼 물어보고 나서, 사비나는 프란츠를 떠날 결심을 하죠. 사랑한다는 것은 힘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지,라고 프란츠가 말해서요. 사비나의 에로틱한 삶에서 퇴출당하죠. ㅋ

아, 웃으면 안 되는데... 암튼. <정체성>은 일단 다시 빌리려고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연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설정이 특이하죠.

그렇게혜윰 2013-10-14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읽은 책 중에 단 한 권을 뽑으라면 [피로 사회]를 뽑을 정도로 저도 이 책이 좋았어요. 그 이후에 [시간의 향기]도 샀는데 아직 읽기 전이네요,,,그렇게 좋았으면 당장 읽을 것 같은데 도통 손에 잡고 있는 책은 다른 책이니 ㅋㅋ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볍움]도 [향수] 읽고 얼른 읽어야지 했는데 여적이구요 ㅠㅠ [정체성]은 제목 때문에 산 것 같은데 가물가물~~하네요 ㅎㅎ 저도 강신주 님 추천이니 읽어야겠네요^^

단발머리 2013-10-14 10:40   좋아요 0 | URL
와~~ 책만먹어요살쪄요님.
진짜 책 많이 읽으시는군요. 진짜 이러다가 살 찌시는 거 아니예요?

저는 <시간의 향기>는 꿈도 못 꾸구요. <향수>도요. <정체성>을 어떻게 한 번 해볼까 생각중이예요.
강신주님 추천이니까~~ ㅋㅎㅎ

테레사 2013-10-14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가벼움 읽고, 놀랍도록 지적이면서 에로틱하고, 사색적이면서 반항적이라는데 열광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 이후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쿤데라처럼 되면 얼마나 좋을까..그의 글을 모방하고 싶어 안달이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네요.. ...불멸 역시 철학적이면서 유머스럽고, 재치가 넘치지만 사색적이어서 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저는 쿤데라에게서 무엇을 취하고 싶냐고 선택하라면 이 두권만 고스란히 가져오고 싶었더랬죠...사실은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것 같아요..숨이차서.

단발머리 2013-10-14 10:42   좋아요 0 | URL
아, 테레사님.
<불멸>도 좋군요. 그럼, 그것도 읽어야겠어요.

집에는 <농담>이 있거든요. 집에 있는 <농담>은 안 읽고, 테레사님 댓글 추천에 집에 없는 <불멸>이 읽고 싶은 이 알 수 없는 느낌은 뭐죠? 너무 너무 기대돼요.

<참을 수 없는...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아, 다시 읽어야겠다, 이 책은....

다락방 2013-10-14 10:57   좋아요 0 | URL
아 단발머리님, [불멸] 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농담]도 정말 좋아요. 전 [농담] 읽고 완전 흥분해서 친구들에게 열변을 토하며 얘기하기도 했었어요. [농담] 어떻게 더 설명할 수는 없지만 좋아요, 진짜 좋아요!!

단발머리 2013-10-14 13:06   좋아요 0 | URL
아핫!!! 그래요?
<농담>도 엄청 좋군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요?
그럼 저는, 집에 없는 <정체성>을 다 읽은 후에, 집에 있는 <농담>을 읽는걸로 해야겠어요.
이러다 남편한테, 밀란 쿤데라 전집 사자고 보챌거 같은데요.

근데, <농담> 이렇게 말고요. 다락방님처럼 네모난 괄호 어떻게 하는 거예요? 다른데서 써와서
붙이는 거 아니지요? 키보드 어디에 네모난 괄호가 있나요? @@

다락방 2013-10-14 15:04   좋아요 0 | URL
p 옆에요.

단발머리 2013-10-14 18:43   좋아요 0 | URL
어흥... 찾았어요. 아까는 안 보였는데 @.@

테레사 2013-10-15 10:03   좋아요 0 | URL
농담도 재밌었죠.....아직 가야할 길이 먼 젊음의 느낌이 난다면(아주 단순화해서^^;) 불멸은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긴 아녜스, 그 여자의 삶의 태도를 한없이 따라하고 싶은, 뭐랄까..아무튼...ㅎㅎ

단발머리 2013-10-15 11:01   좋아요 0 | URL
오호~~ 젊음의 느낌 [농담] 좋아요~~

그럼 순서는 이렇게 ~~
집에 없는 [정체성] - 집에 있는 [농담] - 집에 없는 [불멸]
아하, 신나는데요*^^*

다락방 2013-10-17 09:59   좋아요 0 | URL
저는 [정체성] 샀지 뭡니까, 이 페이퍼 읽고요. ㅎㅎ

단발머리 2013-10-17 10:24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나도... 에잇!!!
 


 

1. 딸롱이와 뮤지컬 공연을 보러갔다. 

진작에 예매해놓고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 날이 바로, 그 날이었다. 올해에는 '화려한 외출'이 잦아서 남편에게 조금 눈치보였는데, 철없는 딸롱이는 지하철에서 물었다. 

"엄마, 아빠가 1년에 뮤지컬 몇 번 보래?" 
나는 "홍광호꺼는 다 봐야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마음속으로만 '자막'으로 처리하고, "응, 두 번. 두 번이면 되지."하고 말했다. 홍광호가 일년에 두 작품을 하지는 않겠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2. 부드러운 목소리 '콰지모도'의 절규 

'콰지모도'는 애꾸눈, 꼽추에 절름발이이다. '미치광이들의 교황'으로 뽑힌 것이 당연하다.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홍광호'가 콰지모도로 분해 분장을 하고 무대에 섰을 때, 마음속으로 충분히 각오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실망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아, 그러게, 왜 콰지모도를 맡아가지고... 

하지만,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난 뒤, 난 그를 용서했다.(*^^*) 
난 홍광호를 용서했다.  

안타깝고 절망스러운 콰지모도의 삶을 연기하기 위해, 국내 아니, 세계 최고의 꿀성대, 미친 가창력의 홍광호는 나름 '거칠게' 노래하려 했지만, 고음의 발성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아름다운 소리가 무대 전체를, 관객석 이 쪽에서 저 끝까지 가득 채워버렸다. 이렇게 부드러운 목소리의 '콰지모도'라니. 이렇게 귀여운 홍광호의 '콰지모도'라니. 

 

 

 

 

 

 

 

3. 코스트코에서 피자를 주문할 때 

난 작품이나 무대, 오리지널 팀이나 아니냐를 보고 뮤지컬을 결정하지 않는다. 오직, 배우.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그의 연기를 보기 위해 뮤지컬을 감상한다. 

<노트르담 드 파리>도 원작이 위고의 작품이라던가, 그 동안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성공적인 공연을 이어왔다던가, 아름다운 넘버들이 많다던가 하는 이유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내 결정의 원인과 목적은 오로지 하나, 오직 홍/광/호/다. 

그런데, 공연장에 가보니, 사실 홍광호의 노래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조연들의 노래가 무척이나 (특히, 내게는 더욱) 많았다. 오죽하면, 이 뮤지컬에서 제일 유명한 곡 '대성당들의 시대'가 작품 속에서 시인으로 나오는 '그랭구와르'의 곡이겠는가. 아무튼, 여러 조연들의 노래와 댄서들의 화려한 춤을 감상할 시간이 많았다.

그 중에, 아름다운 집시 여인 '에스메랄라'와 귀족처녀 '플뢰르 드 리스'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페뷔스'의 심정을 표현한 <괴로워>라는 곡이 있다. '이 고통~~~'을 외치며 노래하는 페뷔스 뒤로 커다란 막이 쳐지고, 켜지고 꺼지는 다섯 개의 조명 아래 다섯 명의 무용수들이 거칠고 긴박한 움직임을 통해 페뷔스의 고통을 표현했다. 다섯 명의 남자 무용수들은 짧은 하의 타이즈만을 입고 있었는데, 그들이 보여주는 아크로바틱은 정말, 너무나 아름다웠다. 

인간 내면의 슬픔과 고통을, 낙심과 절망을 인간의 육체 그 자체로 여과 없이, 가감 없이 보여주는 역동적인 무대였다. 내 사랑하는 '홍광호'의 <춤을 춰요, 에스메랄라> 다음으로 감동적인 곡이었다.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명 속에서 자신의 몸을 통해, '페뷔스'의 고뇌를 표현해내는 다섯 명의 무용수들을 멍하니 바라 보고 있을 때, 갑자기 코스트코의 직원들이 생각났다. 

 

코스트코에 두번째 갔을 때, 대형 피자와 베이크를 먹기로 했다. 맛은 어쩐지 모르겠지만, 커다란 쟁반보다도 더 큰 대형 피자와 베이크, 그리고 머스타드를 곁들여 양파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맛과 사이즈, 아니면 두 가지 모두에 만족한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피자와 베이크를 주문하러 '주문대' 앞에 섰을 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주문을 받는 직원 뒤로 보이는 은색의 커다란 조리기구들, 내 키보다도 더 큰 오븐들, 어마어마하게 큰 대형 피자, 뜨거운 불고기 베이크, 밖까지 훅~~ 몰아치는 열기. 하얀 가운을 입고, 역시 하얀색 빵모자를 쓰고, 쉴새 없이 손을 움직이는 직원들을 쳐다봤을 때,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 이 사람들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구나. 이 사람들은 자기가 맡은 일에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구나." 

그런데, 나는 뭘 했나. 

나는 오늘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나. 나는 오늘 내 몫을 잘 담당했나. 남을 돕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내 할 바를 감당 못 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나. 나는 내 맡은 일을 잘 해나가고 있는가. 이 사람들처럼 이렇게 열심히,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가. 

피자 구역에서 일하는 직원들 대부분은 앳된 얼굴의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낮에는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혹은 저녁에는 코스트코에서 일할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도 학자금 대출을 받지 않으면 등록금을 낼 수 없는 상황. 간신히 학교를 졸업한다해도 취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답답한 앞날, 계속되는 경제적 압박, 미래를, 핑크빛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암울한 환경. 이미 학교를 졸업하고, 이 곳에 취직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곳이 직장, 이 곳이 일터인 사람들. 주문하기 위해 서 있는 사람들, 줄어들지 않는 줄, 끝업는 줄. 하얀 까운에 하얀 빵모자를 쓰고, 계속해서 바쁘게 손을 움직인다. 쉬고 있는 손이 하나도 없다.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에서 '이만교'가 말했듯이, 나는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전업주부다. 웬만해선 잘릴 일이 없다. 내가 하는 일은 이 세상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이 엄마, ##이 엄마다.

아무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나, 해야할 일이 있는 나, 그런 나는 내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나는 내 맡은 바를 잘 해 나가고 있는가. 이런 저런 생각에, 코스트코 대형 피자는 맛이 없었다. (원래, 맛이 없는 것일수도 있겠다.) 

공연장에서 <괴로워>라는 곡을 들으며, 코스트코 대형 피자가 생각났다. 조명의 움직임을 따라 자신의 육체를 통해 '페뷔스'를 표현해내는 다섯명의 아크로바틱 무용수들. 자신의 일에 열정을 다하는 사람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그리고 코스트코 직원들.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사람들, 또는 그 곳이 자신의 일터인 사람들. 하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자신의 몫을 다해 내는 사람들. 

만약, 내가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니면 내가 아직 직장에 다니고 있었더라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일하고, 잠깐 여유를 내는게 뭐가 어때서?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내가 번 돈이 아닌, 나의 노동과 직접적인 관계를 찾고 찾아야 비로소 그 연관성을 조금 추측해 볼 수 있는 '돈'을 사용해 표를 끊고, 비싼 커피 한 잔을 마신 후, 공연장 의자에 앉았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불편함을 느끼고 말았다. 

나는 열심히 살고 있는가. 나는 내 몫을 잘해 내고 있는가. 

혹, 내가 맡은 일에 전문가인 '프로 전업 주부'라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항상 낙제점에 간단간당 걸려있는, 말 그대로 '날라리 주부', 내지는 '모양만 주부'이다. 언제나처럼 할 수 아는 것보다 못하는 게 훨씬 많은, 그런 주부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를 관람하며 다른 것을 생각할 수도 있었을텐데. 

이를테면, 정념에 사로잡혀 신에 대한 사랑을 저버린 '프롤로'의 고뇌라던지, 마음 속 타오르는 '에스메랄라'에 대한 사랑과 정숙한 귀족여인 '플뢰르 드 리스' 사이 '페뷔스'의 갈등이라던지, 흉칙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가장 순수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 '콰지모도'라던지. 이런 것은 생각이 안 나고, 코스트코의 피자가 생각나, 울적한 기분이 들려 했다. 

한 가지 위로는, 
오직 한 가지 위로는 그의 노래였다. 


그의 노래 소리, 
그의 노래, 
그의 목소리가
유일한 위안이었다.

4. 책은 진작에 사 두었지만

 

 

 

 

 

 

 

 

 

 

 

 

 

 

 

 

 

그 때 막 <레 미제라블> 5권의 대장정을 마친 터라, '빅토르 위고'의 책을 연거푸 읽기가 조금 두려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결국 책을 읽지 못하고 공연을 보게됐다. 항상 그렇지만, '얼른 읽어야겠다.' 혼자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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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10-08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파리의 노트르담 읽고 싶어했었는데 그래서 사두었는지 안사두었는지가 기억나질 않네요. 사두고 안읽은건지 아직 안사고 안읽은건지..원.. ㅠㅠ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보면(제목이 정확하게 이게 맞던가요?) 사람들이 '프로'병에 걸렸다고 하는 부분이 나와요. 왜 너도나도 다들 프로가 되어야만 하는건지, 아마추어이면 안되는건지, 언론의 홍보가 사람들을 뭔가 있어보이게 만드는 프로로 이끌었다 뭐 그런식의 말이요. 그렇지만 단발머리님, 프로가 뭘까요? 왜 프로가 아니면 불편한 마음이 들어야 할까요? 누구나 하루하루 간당간당하게 살고 또 어떤것들에 대해서는 불편해 하면서 사는거, 그게 삶이 아닐까요? 만약 단발머리님이 프로였다면 피자를 앞에 두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죠? 같은 상황을 마주하고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잖아요? 생각했으니 우리는 그 생각을 하기전과 조금, 아주 조금이나마 달라질 수 있을거에요. 설사 태도가 달라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생각은 머릿속에 남아있을테고, 그것은 언제 어떻게든 영향을 미칠겁니다. 전 그렇게 생각해요, 단발머리님.

단발머리 2013-10-08 12:16   좋아요 0 | URL
내가 다락방님 보다 먼저 읽을 수도 있으리라는 ㅋㅎㅎㅎㅎㅎ

나두 저 책 읽었는데, 저 부분은 기억이 안 나요. 가물가물도 아니고, 아예~~요. 책이 없으니 확인도 불가하고.
맞아요, 그럴 수도 있네요. 프로가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제 공연관람을 엄청 방해했죠.^^

나를 불편하게 했던 생각이 나에게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기는 할 텐데요. 사실....................................
이런 불편한 생각은 일을 그만두고 집에 있으면서부터 시작된거 같아요. 해보지 않던 집안일이 생각보다 어려웠구요, 아이들이랑 투탁거리는 것도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전 시집오기 전까지 재미로 청경채 샐러드는 고사하고, 떡볶이 한 번 만들어보지 않던 사람이거든요. 가정사랑 완전 담쌓고 살다가, 이제 주로 하는 일이 이게 되니, 솔직히, 아직도 적응 안 됐는데.

앞으로도 안 될 거 같아요. 그냥 ..... 이렇게...... 살아도............ 되겠지요. 호홍

순오기 2013-10-10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뮤지컬과 친할 수 없는 고장에 살다보니 홍광호 이름도 처음 들어요,
하지만 앞으로 단발머리님이 사랑하는 그 이름을 꼭 기억할게요!^^
다음주에 바리톤 김동규의 노래를 들으러 가요,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생각만으로도 즐거워요!^^

단발머리 2013-10-11 09:07   좋아요 0 | URL
아하... 꼭 기억해 주세요. 아름다운 이름, 홍광호... ㅋㅎㅎㅎ

김동규씨가 오시는군요.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 김동규씨 버전이 최고더라구요.
10월에 이 노래를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 야외무대였으면 더 좋을텐데요.

mira 2013-10-13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뮤지컬 팬이시군요. 저도 뮤지컬 좋아하는데 시간내기가 참 힘들더라구요. 내용은 아는데 안읽은 고전중 하나이네요. ㅎㅎ

단발머리 2013-10-14 09:27   좋아요 0 | URL
네, 안녕하세요, mira-da님.
전 시간은 괜찮은데, 지갑이 안 도와줘서요. 많이는 못 가구요.

이렇게 찜만 해놓고 아직 못 읽은 책이 많아서 이 책은 순서 많이 기다려야겠어요.^^
 

 

1. 홍대 와우북 페스티발에 다녀왔다.

 

'책만 먹어도 살쪄요'님 서재에서 소식을 듣고, 온 가족이 함께 다녀왔다.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에 부스를 설치하다 보니, 생각보다 좁아 통행이 불편했다.

딸롱이는 이 책을 사고 싶어했지만, 하루종일 들고 다닐 일이 만만치 않아 다음에 사주겠다고 꼬셨다.

 

 

 

 

 

 

 

 

 

 

 

 

 

 

2. 나온김에 팥빙수 먹는다고, 팥빙수 먹으러 가는 길에 '공연'을 보게됐다.

 

<투스토리>라는 인디밴드였다.

 

노래하는 언니의 목소리는 감미롭고, 바이올린 소리도 너무 좋았다. 

기타치는 언니도 실력이 수준급, 작은 드럼에서도 신나는 음악이 계속 흘러나왔다. 

드럼 치시는 분, 남자냐 여자냐 물어보다가 신랑한테 퉁 들었다.

신발을 벗고 앉았다.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중간 중간 노래를 불러주는 공연이었다. 

아이들은 노래를 듣는 둥, 마는 둥, 앉으라고 준비해온 방석을 쌓아놓고 재미있게 놀았다. 

주위는 시끄러웠지만, 노래 소리는 참 좋았다.

 

 

 

 

 

 

3. 옥루몽에서

 

 

 

 

팥빙수를 먹었다.

 

가마솥에서 4시간 팥을 삶아서 만든다는 '팥빙수'는 부드럽고 맛있었다.

 

책으로 시작해, 팥빙수로 끝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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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3-10-07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팥빙수 진짜 맛나 보여요...꿀꺽!
저 책은 가끔 알라딘 중고서점에도 깨끗하게 나오곤 해요. 전 오프라인 서점에서 반값 안주고 산 것 같아요.
지난 주말 덕수궁돌담길에서 장이 섰던데 거기서도 봤네요^^ 기회 많은 책입니다. 그나저나 많이 사셨어요?^^

단발머리 2013-10-07 18:32   좋아요 0 | URL
팥빙수는 진짜 맛있었어요.
둘째가라면 서운하다고 할 만했고요. 팥도 팥이지만, 우유얼음이 완전 눈처럼~~ 사르르.
강력추천합니다^^

그럼 저 책 중고로 사도 될까요? 책을 잘 안 사기도 하고, 중고도 자주 이용하는 편이 아니라서요.
고민 좀 해봐야겠네요.

글구, 책 대신 팥빙수라서요.
팥빙수만 먹고 책은 안 샀다는.... ㅋㅋ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순오기 2013-10-10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엔 꼭 팥빙수를 먹어줘야 무더운 여름나기를 인정할 수 있어요.ㅋㅋ
저도....알라딘 중고샵을 종종 이용해요. 출판사나 작가한테는 미안하지만....

단발머리 2013-10-11 09:16   좋아요 0 | URL
여름 끝자락에 먹었지만, 그래도 여름 날씨에 먹어서 좋았어요.
사실 전 중고샵에서 책 한 권 팔아본게 다거든요.

딸롱이 책은 워낙 잘 안 사주다 보니, 사줄때는 새걸로 사주거든요.
근데, 사실, 중고샵이 너무 깔끔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요. ㅋㅎㅎ
앞으로는 이용 많이 할것 같아요.^^
 



 

 

 

 

 

 

 

 

 

 

 

 

 

 

 

1. 서평을 쓸 때가 가장 행복했다. 

서평을 쓰면서 평소 읽고 싶었던 책들을 맘껏 읽고 그에 대한 내 느낌을 말할 수 있어 좋았다. 15년 이상 여러 다양한 일간지에 글을 쓰고 살았지만, 서평을 쓸 때가 가장 행복했다. (5쪽)  

서평을 쓸 때, 가장 행복했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이 된다. 책을 다 읽은 후의 따뜻한 '감동'과 가벼운 '감상', 그리고 기억하고 싶은 구절들을 '인용'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 방금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 그에 대해 무언가를 쓰고 있을 때, 난 행복하다. 최재천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다. 



2. 취미로 하는 독서예요. 

독서를 취미로 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마음을 비우고 머리를 식히기 위해 하는 독서도 때론 필요하리라. 하지만 취미로 하는 독서가 진정 우리 삶에 어떤 발전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조금 공허해진다. ... 눈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취미 독서를 해야 하는지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독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게 훨씬 가치 있는 독서라고 생각한다. ... 하지만 기왕 읽기 시작한 그 분야의 책을 두 권, 세 권째 읽을 무렵이면 신기하게도 책장을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자츰 내 지식의 영역이 넓어지는 가슴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7-8쪽) 

중학교, 아니 고등학교 때부터인가, 학기초마다 선생님들은 똑같은 잔소리를 하시곤 했다. 
"야, 니네 취미란에 제발 '독서'라고 좀 쓰지 마! 독서가 취미야, 생활이지!"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학교에, 집에, 학원에, 다시 학교에, 집에, 학원에.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는 우리에게 '취미'라는 건 너무 사치스러운 거였다. 그렇다고 취미 옆 '빈 칸'을 그냥 그렇게 놔둘수도 없었다. 선생님이 뭐라 하시든, 우리는 꿋꿋했다. 

취미 : 독서 

여기에 그 선생님들을 떠올리게 하는 분이 한 분 계시다. 저자는 말한다. 눈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취미 독서를 할 필요가 있느냐. 그렇게 해서 '발전'이 있겠느냐. 독서를 '일'이라고 생각해라. 모르는 분야의 책과 '씨름'해라. 그것이 '가치'있는 일이다. 후에는 '가슴 뿌듯함'을 느낄 것이다. 

작은 따옴표 안의 단어들이 모두 마음에 안 든다. 발전, 일, 씨름, 가치 그리고 가슴 뿌듯함. 독서는 그래야만 하는가. '발전'을 위해, '일'처럼 독서하고, 책과 '씨름'하고 (책이 '이만기'도 아니고), 그래서 그 일이 '가치'있다고 평가받고, 그리고 '가슴 뿌듯'하면 된다는 건가. 

어떤 사람이 어떤 책을, 어떤 목적으로 읽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위의 방법은 내게는, 적어도 내겐 맞지 않다. 아, 맞다. 저자는 과학자다. 나는 그걸 잊고 있었다. 과학자는 과학자 나름의 독서법이 있기 마련이다. 과학자는 인류의 '발전'을 위해, '일'처럼 독서하고, 책과 '씨름'하고, 그리곤 '가슴 뿌듯'해 할 것이다. 난, 과학자가 아니다.  

나에게 독서의 가장 큰 목적과 이유는 오로지 하나다. 즐거움. 그렇다. 바로 '즐거움'이다. 내가 읽는 책의 대부분이 '소설'이라서, 내가 '문학'을 좋아하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 (아니더라도 그렇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내게는 다른 무언가 거창한 이유나 이론 같은 것이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간단히 생각해봐도 그렇다. '소설'이란게 무언가. '문학'이란 게 무언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공간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 사이를 오가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인물들이 들려주는 하나의 이야기 아닌가. 있지도 않은 일,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을 쫓아가는 일이 어떤 '발전'을 이룰 수 있나. 그 일이 어떻게 '가치'있다고 평가받을 수 있나. 그 일이 무슨 '쓸모'가 있나. 

하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세상에는 '쓸모 있는 것'이 필요하고, 또 '쓸모 있는 것'이 많아야 하겠지만, '쓸모 없는 것'도, 가끔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쓸모 없는 것', '쓸데 없는 짓'도 이 세상에는 필요하다. 



3. 도전하고 싶은 책 

진화학이 모든 학문의 선두에 선 것은 확실해 보인다. 가히 모든 첨단 학문에는 접두어로 '진화'라는 단어를 붙여야만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과학엔 문외한이지만, 저자의 추천 속에 아래의 책 세권은 읽어봐야겠다, 생각해본다. 

다만, '발전'이 아닌 '즐거움'을 위해, '일'이 아닌 '취미'처럼, 책과의 '씨름'이 아닌 책과의 즐거운 '요가'를 하다보면, '가치'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웬지 '가슴은 뿌듯'해질 것 같다. 

취미가 독서다. 
독서가 취미다. 

유전자의 관점으로 보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이기적 유전자> 
위대한 사상가 다윈의 자화상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 
과학시간에 이런 책을 읽히면 어떨까? <거의 모든 것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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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3-10-02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책과 관련된 일을 할 때, 얼마나 행복한지요^^

단발머리 2013-10-02 12:2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는 책과 관련된 중요한 일은 없고요ㅋㅎㅎ

도서관에서 예약도서 도착했다는 문자 받고 도서관에 책 찾으러 갈때, 참 좋아요.
행복해요^^

다락방 2013-10-02 14:04   좋아요 0 | URL
저는 책을 삽니다. 부지런히........................

단발머리 2013-10-02 18:48   좋아요 0 | URL
아....

난 언제나 이런 주옥같은 멘트를 남기나.

저는 책을 삽니다. 부지런히..................... 홍홍홍

그렇게혜윰 2013-10-02 20:34   좋아요 0 | URL
저도 어떤 직업적인 일을 하는건 아닙니다요^^;
여기서의 일이란 그냥 움직임 뭐 비슷한...^^; 작업이라고 할걸 그랬나요^^;;;

단발머리 2013-10-02 20:38   좋아요 0 | URL
헤헤헤. 네, 책과 관련된 모든 일과 모든 작업에 관여하신다는 얘기지요? ㅋㅎㅎ
저도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책과 관련된 작업은 많이 하고 있어요.

읽고, 보고, 쉬고, 찾고.
또, 읽고, 보고, 쉬고, 찾고...

테레사 2013-10-04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저는 인문학을 전공하였지만, 진화론에 경도되어 진화론에 관련된 책을 이것 저것 읽어왔어요. ..뭐랄까..자신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열망이 자연스럽게 이런 류의 책에 끌리게 하였던 것 같아요..^^. 물론 소설만큼 좋은 것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과학이 말하는 진리(?)에 몰두하는 것도 참 즐거운 일이에요. 이기적 유전자와 거의모든것의 역사 완전 강추!!근데 상대적으로 이기적 유전자는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느낌을 주더군요.

단발머리 2013-10-06 18:3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테레사님.

아, 네 맞아요. 소설만큼 좋은 것은 없지만 (ㅋㅎㅎㅎ) 과학이 말하는 새로운 세상도 매력적이기는 하지요.
전 만약 읽게 된다면 '이기적 유전자'부터 시작하고 싶은데, 그것도 꽤 두껍네요.

앞으로 자주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