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히는 교과서 독서.토론.논술 5학년 - 창의적 사고력을 키우는 손에 잡히는 교과서 독서 토론 논술
글샘교육 편집부 지음 / 글샘교육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딸롱이 수업 시간에 필요하다고 해서 구입합니다. 독서와 토론과 논술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책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서도, 일단 필요하다고 하니, 읽어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망각과 자유 - 장자 읽기의 즐거움
강신주 지음 / 갈라파고스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우리나라는 절판이 쉽게 되는 것 같다. 김훈 작가님 책도 여러권이 절판이다. [철학vs철학]은 시작도 안 했고, [김수영을위하여]도 다시 읽어야 하지만, 일단 구입하고 본다. 다시 나와준 것만도 고마워 절하게 생겼다. 당일배송이 이렇게 좋은건지 새삼 깨닫게 되는 아침이다. 신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딜리팅‘ 의뢰를 원하십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 우리는 나를 둘러싼 세계를 확장해나가면서 내가 모르는 세계를 줄여나간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모르는 세계는 늘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하게 마련이다. 구동치는 굳이 물건을 없애는 것보다는 물건의 위치를 바꾸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구동치는 두 개의 세계 모두에서 물건을 없애는 것을 풀 딜리팅 full deleting이라 불렀고, 나를 둘러싼 세계에서 내가 모르는 세계로 물건을 옮기는 것을 하프 딜리팅 half deleting이라 불렀다. 물건을 그저 옮기는 것만으로 딜리팅이 가능한 것이다.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풀 딜리팅이든 하프 딜리팅이든 문제 될 게 없었다. (85쪽)

 

구동치는 딜리팅 전문 탐정이다. 죽은 사람들의 휴대전화기를 찾아 없애주고, 죽은 사람의 컴퓨터를 망가뜨리고, 죽은 사람의 일기장을 찾아서 갈기갈기 찢고 불태우는 일(84쪽)을 한다. 소설은 구동치의 의뢰자 중 하나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죽게 되면서 일어난 일들을 보여준다.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만약, 내가 생각해본다면, 난 어떤 물건의 딜리팅을 의뢰하게 될까?’였다. 일단, 이 노트북을 딜리팅 의뢰하겠다. 쓰단 만 글, 어디에다 대고 하는지 모르겠는 하소연 글, 내가 싦어하는 사람 명단 및 소소한 욕 등이 저장되어 있는 이 노트북. 노트북 딜리팅 의뢰. 그 다음으로는 곱슬머리 여드름투성이 중학교 시절 사진들 딜리팅 의뢰, 옷방 유아용의자 밑 쇼핑백 속에 00오빠가 보낸 편지꾸러미 딜리팅 의뢰, 휴대전화기는 2G라 딜리팅 하고 말것도 없고. 아, 참.

그리고보니, 진짜 딜리팅할 것들이 막 생각난다.

유통기한 확인조차 불가능한 냉동실 속 냉동식품들, 냉장고 속 시들시들 야채들, 각종 서랍 속 각종 물건들, 언제 쓸지 모르겠지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각종 물건들. 써놓고 보니, 이건 아니다 싶다. 이 책은 봄맞이 대청소와 정리 정돈에 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딜리팅에 대한 책이다. 딜리팅 의뢰, 딜리팅 의뢰를 원하십니까.

2. 구동치는 김중혁? 

소설은 의뢰인이 죽은 후에야 일이 진행되는 딜리팅에 대한 것이고, 소설 초반 의뢰인 중 한 명이 죽게 된다. 어둡고 자칫 음산해지기 쉬운 분위기를 화~하게 해주는 건, 악어빌딩에 사는 사람들이다. 주변에서 흔히 만날 것 같지만, 실제로도 만나고 싶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 제일은 역시 구동치다. 구동치에 대한 묘사 중 키에 대한 부분이 2번 정도 나오는데, 두 번 다 구동치가 보통 사람들보다 키가 무척이나 크다는 내용이다. 작가의 의도가 어떠하든 (그 의도일수도 있겠지만^^), 나는 구동치를 김중혁 작가님이라고 생각한다. 구동치는 김중혁이다.

남자는 코트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지갑을열자 비닐막 아래 있는 사진이 보였다. 남자는 손가락으로 사진을 문질렀다.

“그런데, 그냥 줄 수는 없지 않겠소?”

남자가 지갑 속에서 사진을 꺼내며 말했다.

“그냥 줄 수 없으면, 반으로 접어서 주십시오.”

구동치가 웃으며 말했다. (415쪽)

 

이 외에도 깨알 재미 에피소드가 수두룩 빽빽, 촘촘하지만, 일단 이 정도만 하기로 하고.

3. 빛나는 어록

킥킥거리며 읽어갔던 부분이다. 이 멋진 소설을 작가가 쓴 원문 그대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내가 한국어에 이렇게도 능통하다는 것이, 무척이나 기쁘다.

“아 역시, 구 선생님이시네요. 멋진 말씀입니다. 예방이 의심보다 낫다. 제가 아이들에게 인성 교육을 할 때 그 말도 꼭 하겠습니다. 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꼭 밝히겠고요.”

“아뇨, 뭐 그러실 것까진 없고요.”

“부담스러우시면, 제가 한 말로 하고 이렇게 고쳐도 되겠습니까?”

“어떻게요?”

“인자무적이요, 예방 우선이다. 어진 자에게는 적이 없고, 적의 공격을 예방하는 자에게는 한 치의 의심도 없다.”

“뭐든지 인자무적이냐. 아주 지랄하고 자빠졌다.” (28쪽)

 

“사진 안 찍으시면 안 되냐고요.”

“뭐요?”

“사진 왜 잘 안 나오는지 모르죠?”

“무슨 소리예요?”

“사진이 왜 자꾸 이상하게 나오는지 모르죠? 얼굴이 별로니까 사진이 잘 안 나오는 거예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니까 일찌감치 포기하시라고요.” (168쪽)

 

4. 작품은 작가보다 위대하다.

소설가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부쩍 드는 요즘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는, 구동치=김중혁이라 생각할 때가 참 많았지만, 사실, 철물점 백기현도, 합기도관장 차철호도, 영민한 이영민도, 선배 형사 김인천도, 피시방 이빈일도, 셰프 박찬일도 모두 다 김중혁이다. 그들 모두는 김중혁의 자식이고, 김중혁의 인형이고, 김중혁의 작품이고, 그리고 모두 다 김중혁이다. (내 진심으로, 김작가님을 좋아하니까, 천일수는 일부러 빼주는 거지만, 만일 작가님이 ‘천일수도 나야.’, 그렇다고 하면, 뭐, 그것도 OK.)

그들은 모두 김중혁이고, 각자 백기현이고, 차철호고, 이영민이고, 김인천이고, 이빈일이고 그리고 박찬일이다.

어설픈 귀동냥으로 들은 얘기 하나. 김작가가 위대하지 않다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어쨌든, 작품은 작가보다 위대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무라카미 하루키

나는 사실, 하루키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해서 그의 작품을 모조리 읽은 것도 아닌데, 별처럼 빛나는 작가들 중에서도 하루키의 인터뷰가 제일 궁금했다고 하면, 지리적 근접성이 아니라, 심리적 근접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기라성 같은 작가들 중에서도 웬지 모르게 하루키와 가깝다고 느끼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몇 살 때 작가가 되셨나요? 작가가 되었을 때 놀라셨나요?

무라카미 제가 스물아홉살 때 작가가 되었지요. 물론 놀랐어요. 하지만 곧 익숙해지더군요. (115쪽)

사실, 이런 류의 인간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예컨대, 공부 열심히 안 하는데 전교 1등이라거나, 피부과 안 다니는데도 타고난 피부미인이라거나, 아니면 작가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스물 아홉에 갑자기 쓰기 시작해 전 세계 손꼽히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거나.

하지만, 이런 문장이 있어 다시 하루키가 좋아진다.

무라카미 저는 지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오만하지도 않아요. 저는 제 책을 읽는 독자들과 같은 종류의 사람입니다. 재즈 클럽을 운영하면서 칵테일도 만들고 샌드위치도 만들었지요. 작가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어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요. 그건 일종의 하늘이 준 재능이랍니다. 그래서 아주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114쪽)

하늘이 준 재능이므로, 자신은 겸손해야 된다는 하루키의 말. 이러한 깨달음 자체가 이미 하늘이 준 재능 아닌가 싶다.

지금도 제 글쓰기의 이상은 챈들러와 도스토예프스키를 한 권에 집어넣는 거예요. 그게 제 목표랍니다. (120쪽)

내가 아는 챈들러는 [프렌즈]의 챈들러 뿐이라, 알라딘에서 챈들러를 찾아보았고, 이이는 레이먼드 챈들러인 듯 하다. 훌륭한 작품이 많으나, 읽어본 작품은 아직, 없다.

우리는 마음속에 제정신인 부분과 제정신이 아닌 부분이 함께 있어요. 이 두 부분을 타협해가면서 사는 거지요. 이게 제 신념입니다. 저는 글을 쓸 때 특히 제 마음의 제정신이 아닌 부분을 잘 볼 수 있어요. 아니, 제정신이 아니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군요. 오히려 비일상적인, 비현실적인 부분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127쪽)

‘비일상적인, 비현실적인 부분’이라기보다는 ‘제정신이 아닌 부분’이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마음 속 깊은 곳, 제정신이 아닌 부분이 말하게 하는 것, 제정신이 아닌 부분이 말하는 것을 듣는 것, 그런 것이 문학이 아닌가 싶다. 제정신인 부분과 제정신이 아닌 부분의 타협이 얼마나 절묘한가, 두 부분이 얼마나 조화로운가, 이 쪽에서 저 쪽으로 얼마나 유연하게 뻗어가느냐가 결국은 위대한 작품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해 준다. 옆집, 줄기차게 짖어대는 미친X소리여도 안 될테고, 5학년 도덕교과서에 나오는 뻔한 이야기라면 굳이 읽을 필요가 없을테니 말이다.

2. 움베르트 에코

성장소설은 대개 어느 정도 감정적이고 성적인 교육도 포함합니다. 당신의 소설 전체에서 성적인 장면이 묘사된 것은 딱 두 군데뿐입니다. 하나는 『장미의 이름』에서이고, 다른 하나는 『바우돌리노』에서입니다.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에코 성에 대해서 쓰는 것보다는 직접 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네요. (42쪽)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이런 류의 사람이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만큼 어마어마하게 똑똑하고, 감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좋지만, 이런 방식, 이런 톤으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 나는 이런 사람을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캐릭터이기는 하다.

요즘 제일 큰 즐거움은 무엇인가요?

에코 밤에 소설을 읽는 거예요. 가톨릭 배교자로서 제 머릿속에는 아직도 낮에 소설을 읽는 것은 지나치게 쾌락을 좇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가느다란 목소리가 있지 않나 생각한답니다. 그래서 낮은 주로 에세이나 어려운 작업을 위한 시간이랍니다. (45쪽) 

예전에 ‘양파’에 대한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양파의 효능 및 효과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 프로그램에 의하면 양파만 먹으면 성인병 대부분을 예방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 뿐이 아니었다. 양파는 물에 삶거나, 불에 볶아도 영양소 대부분이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 제일 반가웠던 건, 그 때는 ‘양파가 아주 저렴했다’는 것이다. 몸에 좋고, 조리하기도 쉽고, 구하기도 쉬운데 가격까지 싸다. 거의 ‘신의 선물’ 수준이다. 몸에 좋고, 조리하기 쉽고, 구하기 쉽고, 가격이 저렴한 ‘양파’라니.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서’를 폭풍흡입할 때였다. 최신의 교육이론으로 무장한 갖가지 알록달록 육아서들 사이에서 옥석을 가리느라 분주했던 때, 여러 권의 육아서를 간파한 후에, 내가 내린 결론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결론은 ‘책읽기’다.

물론, 나는 “그래, 책 많이 읽어야돼. 그래야~~“라고 말하는 엄마들의 의견에 찬성하지 않는다.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책에는 효과 같은 게 없습니다. ‘이제야 되돌아보니 효과가 있었구나’라고 알 뿐입니다. 그 때 그 책이 자신에게 이러저러한 의미가 있었음을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입니다... 책을 읽어야 생각이 깊어진다는 말은 생각하지 말기로 합시다. 책을 읽는다고 훌륭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독서라는 것은 어떤 효과가 있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보다는 어렸을 때 “역시 이것”이라 할 만큼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한 권을 만나는 일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141쪽)

책을 읽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즐거움’을 배제한 독서를 나는 생각할 수 없다. 가끔은 어려운 책도 읽어야하고, 답답한 현실을 고발하는 책들 또한 읽어야한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위해 책을 읽어야하고, 작심삼일의 흐트러진 마음을 붙잡아줄 책들 또한 가끔은 필요하다. 하지만, ‘즐거움’ 그 자체를 위한 책읽기를 포기한다면, 책읽기가 수많은 의무 중의 하나로 변질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주장하는, 엄마들이 말하는 ‘독서 교육’에서 가장빨리, 가장 멀리 도망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책읽기의 즐거움은 그렇다치고.

육아서 독파의 결과가 ‘책읽기’라는 결론은 꽤나 흥미로웠다. 책읽기는 아이의 정서발달에도 최고의 효과를 내고, 아이들에게 무엇보다도 강력한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어휘량을 늘이는 데도 최적의 방법이다.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힘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엄마의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무릎에 아이를 앉히고,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읽어주기만’ 하면 된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면 좋겠지만, 그것도 일정부분 ‘제 몫’이다. 지금은, 엄마인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 곁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 된다는 거였다.

그리고, 에코는 말한다. 요즘은 가장 큰 즐거움은 ‘밤에 소설을 읽는 것‘이라고 말이다. 에코와 나는 알고 있는 게 다르고(하늘땅 별땅), 가지고 있는 게 다르고(너무 다르고), 사회적 영향력면에서는 비교할 필요조차 없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세계적인 석학, 5만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저명한 에코에게 근자의 가장 큰 즐거움인 ’밤에 소설을 읽는 것‘은, 한국의 평범한 전업주부인 나에게도 가능한 일이라는 거다.

많은 책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많은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훈련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밤에 소설’을 읽는 거다. 좋아하는 소설, 좋아하는 소설가의 소설을 그렇게 읽는 거다.

근래에 나는 너무 행복한 밤을 보내고 있다. 이 자리를 빌어, 나에게 즐거운 밤을 선사해 주신 김중혁 작가님께 감사의 인사를 살포시 전한다. 작가님, 땡큐~

 

 

 

 

 

3. 오르한 파묵

그렇다면 누구를 위해 글을 쓰십니까?

파묵 남은 생이 짧아지면서 그런 질문을 더 자주 스스로에게 하게 돼요. (중략) 세월이 너무 빨리 바뀌니 오늘날의 책은 100년 후에는 아마 잊힐 겁니다. 극소수만 읽힐 거예요. 200년 후에는 요즘 쓰인 책 중 다섯 권 정도만 살아남겠지요. 내가 그 다섯 권 중에 들어갈 책을 쓰고 있다고 확신하는가? 하지만 그 점이 글쓰기의 의미인가? 200년 후에 읽힐지에 대해서 내가 걱정해야 하는가? 삶에 대해 더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 아닐까? 내 책이 미래에 읽힐 거라는 위안이 필요한가? 이런 생각을 늘 하면서 계속 글을 써나가지요.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답니다. 제 책이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믿음이 이 삶을 즐겁게 지내기 위해 제가 갖고 있는 유일한 위안이에요. (97쪽)

말로는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분위기의 책 『검은 책』은 재미있었지만, 조금 어려워,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놈의 대출기간 때문에 끝까지 읽지 못 했다. 오르한 파묵, 작가의 이름을 컴퓨터 화면에 띄워놓고 보니, 그 책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 『검은 책』이라.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쓰는가. 파묵은 자신의 책이 미래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믿음이, 자신에게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자신의 책이 미래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믿음이 있다면, 맞다. 글쓰기는 외로운 일이 아닐테고, 어쩌면 그렇게 많이 힘든 일도 아닐 것이다. 외로운 글쓰기란, 힘든 글쓰기란 내가 하는 지금의 이 일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고 하는 글쓰기이다.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모르고서 계속되는 글쓰기. 그런 글쓰기가 외로운 글쓰기, 힘든 글쓰기 일테다.

4. 레이먼드 카버

카버 ... 삶이 제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지요. 언제나 엄청나게 많은 좌절감에 직면해야 했어요. 예를 들면, 글을 쓰고 싶은데 글을 쓸 시간도 장소도 없다는 것 등이지요. 밖에 나가 차에 앉아서 무릎 위에 공책을 놓고 글을 쓰려고 애썼죠. 이때는 제 아이들이 사춘기일 때였어요. 이십 대 말이나 삼십 대 초였을 때였죠. 우리는 여전히 가난했고, 언제나 한 발만 내딛으면 파산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323쪽)

작가라는 이름이 주는 아우라, 소설가라는 이름이 내뿜는 광채와는 상관 없이, 글을 쓰고, 지우고, 소설을 완성하고, 아니, 소설을 쓸 수 없어 단편이나 시를 써가면서 삶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은, 이미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소설과 같다. 모든 소설의 결말이 해피엔딩일 수 없고,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아이를 달래가며 써내려간 소설이 모두 [해리포터]가 될 수 없듯이, 지난한 삶의 결국이 행복이 아닐수도 있고, 내가 가진 하얀색 도화지에 파스텔 분홍만 칠하겠다고 고집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게 삶이고, 그런게 인생일테다.

당신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십니까? 당신의 작품이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카버 소설이나 희곡, 시집 한 권이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대한 생각이나 자신에 관한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시대는 - 그런 시대가 설혹 있었다 해도 - 이미 지나가 버렸어요. 특정한 삶을 사는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소설을 쓰면 어떤 분야의 삶을 전보다 약간 더 이해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저 자신에 관한 한 예술의 역할은 딱 그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 소설은 뭔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소설은 단지 그것에서 얻는 강렬한 즐거움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뭔가 지속적이고 오래가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어떤 것을 읽는 데서 오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지요. 아무리 희미할지라도 계속해서 불타오르는 이런 불꽃을 쏘아 올리는 어떤 것이랍니다. (348쪽)

추천사 이야기를 해야겠다. 추천사를 쓸려면 이 정도는 써주세요. 추천사를 쓸려면 요렇게 써주세요.

나름대로 정의하자면, 소설가란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말하겠다. 소설가란 지금 소설을 쓰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는 이야기다. 소설 쓰기에 영적인 요소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소설가는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 소설을 쓴다. 결국 그는 매일 소설을 쓰게 될 텐데, 그러자면 건강과 체력은 필수적이다. ... 그러므로 한 권 이상의 책을 펴낸 소설가에게 재능에 대해 묻는 것만큼 어리석은 질문은 없다. 그들에게 재능은 이미 오래전에, 한 권의 책으로 소진돼버렸으니까. 재능은 데뷔할 때만 필요하다. 그다음에는 체력이 필요할 뿐이다. (7쪽)

그 위대한 이름들을 처음 볼 뿐 아니라, 그들의 위대한 작품 역시 처음 보는 이름이 수두룩했지만, 그래도 이 책은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책이다. 다시 읽기 전에 파리 리뷰 인터뷰 2가 나오겠지만 말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4-03-25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아직 사지도 않았네요. ㅎㅎ
그나저나 에코의 센스 쩌네요. 직접 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라니! 아...나도 이렇게 센스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챈들러가 만들어낸 캐릭터인 '필립 말로'는 진짜진짜 러블리 합니다, 단발머리님. 대박이에요!!

단발머리 2014-03-25 15:59   좋아요 0 | URL
센스 쩌는 에코를 저는, 좋아합니다.

그리고 저는 러블리 '필립 말로'를 곧 좋아할 예정인데요. 그렇다고 치면, 저는 무척이나 바빠질 것 같네요.
문제는 '필립 말로'가 챈들러의 무슨 작품에서 나오는지 몰라서요. 다락방님 방에 가서 찾아볼 예정입니다.
그럼 전 이만 바빠서~~ 휘리릭~

다락방 2014-03-25 16:46   좋아요 0 | URL
챈들러의 모든 작품에 필립 말로가 나옵니다, 단발머리님.
현재 국내에 번역된 챈들러 작품은 필립 말로 시리즈에요.
기나긴 이별, 빅슬립, 하이 윈도우, 안녕 내사랑, 호수의 여인, 리틀 시스터
모두 다요.
<안녕, 내사랑>으로 시작하시는 건 어떨까요. 움화화핫
저도 조만간 다시 읽을라고요.

단발머리 2014-03-25 17:50   좋아요 0 | URL
접수 완전 완료되었구요.
권해주시는대로 <안녕, 내사랑>에서 시작합니다.
주루룩 읽어가진 못하겠지만, 러블리 '필립 말로'니까. 움하하핫~~ 기대됩니다.
지도 편달 매우 감사합니다^^

icaru 2014-04-01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면전에 두고, 행복한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진정 멋드러지게 사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ㅎ
저도 최근 이 책을 잡았었어요... 쿄호~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는 같은 부분에 밑줄 긋기 하셨세여~
ㅋ 하늘이 준 재능이라고 인정하는 부분,, 특히 ㅎ

단발머리 2014-04-02 07:20   좋아요 0 | URL
icaru님 덕분에 저 멋드러진 사람 됐어요~ 브이!!
그래서 사람들이 하루키 좋아하나봐요. 그렇게 성공하고 돈 많고ㅋㅋ 그러는 데도, 달리기 하고 수영하고, 열심히 소설 쓰고. 하늘이 준 재능이라 진짜로 인정하는 사람만 그럴 수 있는 거 같아요~~

날씨가 너무 좋네요. 화창한 하루 되세요~~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안나 카레니나]의 가치에 대해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이 담긴 책은 박웅현의 [여덟개의 단어]이다. 나는 그 책을 읽고 나서, 2권 중반에서 중단해버린 [안나 카레니나]를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겠다고 굳게 결심을, (작년에 하고 아직까지 읽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결심을 했다.

 

 

 

 

 

이 책을 펴서 제일 먼저 읽은 챕터도 당연히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것이었다.

안나는 스스로가 놀랄 만큼 브론스키를 사랑합니다. 그만큼 브론스키가 완벽했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안나가 모든 걸 브론스키에게 쏟아부었다는 의미겠죠. 브론스키는 늘 같은 브론스키인데 안나가 달라지는 겁니다. 이런 사랑을 브론스키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과잉된 생기와 열정을 가진 안나의 사랑은 두 몫의 사랑이거든요. 이것이 세료자와 브론스키에게로 나뉘었다가 브론스키에게만 흘러가요. 그건 브론스키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랑입니다. (263쪽)

과잉된 생기와 열정, 두 사람의 몫의 사랑을 가지고 있던 안나의 사랑이 브론스키에게로만 흘러갈 때, 브론스키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해석은 설득력이 있다. 브론스키가 안나를 외면하려 했던 이유가 그녀의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집착 때문임은 확실하니까.

이런 제안도 재미있었다.

가끔 강의 시간에 이런 질문을 하는데요. 만약 고골이 『안나 카레니나』를 썼다면 누가 주인공일까요? 스치바가 주인공입니다. 대표적인 생리학적 인간이죠. 잘 먹기만 하면 모든 게 해소됩니다. 도덕적인 문제도 생리학적 문제로 해소되는 인간형이죠. 고골의 소설에 등장하는 속물적 인간의 전형입니다. 그렇다면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작품을 썼다면 누가 주인공일까요? 도스토예프스키가 가장 흥미를 느낄 만한 인물은 카레닌입니다. 오쟁이 진 남편 이야기. 도스토예프스키는 뭔가 굴욕적인 대우를 받는 인물에 관심이 많았으니까요. (254쪽)

러시아 문학사 뿐 아니라 세계 문학사의 두 거장,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비교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는 유럽이라는 타자에 대한 대타의식으로서의 러시아(자아)라는 민족의식을 강조합니다. 그에게는 ‘나’와 ‘타자’를 어떻게 구획할 것인지가 『가난한 사람들』 이후 줄곧 이어진 문제의식이었고, 그것이 나중에 러시아 대 유럽이라는 대립으로 확장됩니다. (중략) 하지만 톨스토이는 타자보다 ‘나’의 세계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평생 니힐리즘과 대결했다면, 톨스토이는 에고이즘과 싸웠다고 생각되는데, 톨스토이의 경우 데뷔작부터가 자전 3부작이죠. 자기 이야기였던 셈입니다. 이게 확장되면 러시아라는 나라의 정체성과 통일성의 문제가 됩니다. (243-4쪽)

대중의 눈높에 맞춘 강의로 엮어진 책이라 그런지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읽고 있다. 러시아가 그렇게나 오랜 기간동안 몽골의 지배 아래 있었다는 걸 몰랐던 1인으로서, 책 앞부분에 러시아의 역사에 대한 개관 역시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을 통해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넘어 푸슈킨과 투르게네프의 작품으로도 손뻗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4-03-20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 살까말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사야겠어요. 헤헷. 재미있겠다. 저는 안나 카레니나가 그래서 좋았거든요. '나 자신'에게 충실한 소설이라서요. 그렇지 못한 혹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보기에 안나 카레니나는 그저 불륜녀 일 뿐이지만, 톨스토이는 독자로 하여금 안나가 되게 하고 레빈이 되게 하고 브론스키가 되게 하잖아요.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나 자신에게 충실한, 그런 소설을 쓰는 천재적인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재밌겠다. 사야지. 히히.

단발머리 2014-03-21 20:54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내가 안나가 되게하고, 브론스키가 되게 하는, 이런 고도의 기술은 정말, 최고죠.
천재라는 말이 전혀 아깝지 않아요.
조금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요. ㅍㅎㅎ

2014-03-21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1 2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