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1 세계문학의 숲 17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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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중부지방에 일주일이상 열대아 현상이 계속되던 7월의 마지막 주, 그 때의 뜨거운 감흥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겸손(humilitas)이란 인간이 자기의 무능과 약함을 고찰하는 데서 생기는 슬픔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스피노자의 말대로 무레의 겸손은 자신이 자랑하던 돈의 무기력함을 자각하는 데서 오는 슬픔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겸손은 동시에 한 여자를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다는 자각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바로 이것이 사랑 아니겠는가? ‘나의 뜻대로‘가 아니라 ’당신 뜻대로‘가 바로 사랑의 표어이기 때문이다. (『감정수업』, 284쪽) 

 

프레첼은 2,500원, 공차는 3900원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향한다. 샘소나이트 매장 오른쪽에는 가운데 탁자를 두고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세 쌍 있다.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왼쪽에는 샘소나이트 모델 김수현의 전신 크기 광고판이 세워져 있다. 김수현은 왼쪽으로 약간 갸우뚱하게 서서 65도 각도로 오른쪽을 쳐다보고 있다. 가운데 의자에 앉아 35도 각도로 왼쪽을 쳐다보면 김수현과 눈이 마주친다. 책을 읽다 눈이 피곤할 때, 적정한 안구정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다.

책을 펼친다. 책 속도, 책 바깥도, 백화점이다.

그녀의 한쪽 팔에는 이제 겨우 다섯 살인 어린 동생이 매달려 있었고, 어깨 뒤로는 한창 물이 오른 열여섯 살 소년 장이 두 팔을 출 늘어뜨린 채 서 있었다.

“저건,” 드니즈는 너무 놀라 나머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백화점이잖아!” (1권, 8쪽) 

 

자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상징, 백화점이다.

“하지만, 이제 너하고도 상관이 있는 일이니 어디 한번 네 생각을 말해보거라. 단순한 직물점에서 온갖 잡동사니들을 다 판다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인가. 예전에 다들 정직하게 장사를 할 때는 직물점에서는 오직 옷감만 취급했다. 다른 건 팔지 않았어. 그런데 지금 저들의 머릿속은 온통 이웃을 짓밟고 먹어 치우려는 생각만으로 꽉 차 있어 ...... 그래서 온 동네 사람들이 못마땅해하고 있는 거야. 저놈의 백화점 하나 때문에 우리 같은 소상인들이 다 죽게 생긴 거란 말이지. (1권, 45쪽)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 물건을 제조하던 시대에 백화점의 등장은 가히 충격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옷감이면 옷감, 우산이면 우산, 모자면 모자. 소상인들은 오직 하나의 물품만을 제조하고, 판매했다. 각자의 영역이 있었고, 서로를 침범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 괴물 같은 백화점은 이런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 백화점에서는 모든 것을 판매한다. 백화점에서는 무엇이든 살 수 있다.

특이할 만한 것은 고급스럽게 전시된 진열품과 양질의 상품 공급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가장 민감한 ‘탄력적 가격 정책’이 백화점의 주요한 판매 전략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여기 이 손수건도 좀 보실래요. …… 다들 놀라지 마세요. 브뤼셀의 아플리케랍니다. …… 오! 이런 게 내 눈에 띄다니 정말 운이 좋았지 뭐예요! 게다가, 고작 20프랑밖에 안 된다니까요!” (1권, 143쪽)

 

이 전략은 현재에도 계속된다. 이런 식이다.

 

 

<사진 : 해외 명품 대전 '인산인해', 소공동 롯데백화점, 충청매일, 2014년 8월 6일>

“오! 이런 게 내 눈에 띄다니 정말 운이 좋았지 뭐예요! 게다가, 80% 할인된 가격이라니까요!”

좋은 상품을 낮은 가격에 공급하던 백화점이 적정한 수준의 매출을 올리지 못했을 때, 사업 경영에 적자가 발생했을 때는 어떨까. 아름답게 보여지던 모습은 내팽겨쳐지기 일쑤이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백화점은 중간 관리자를 통해 ‘정리해고’를 감행한다.

그에게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장애물을 제거하는 핑계로 쓰일 수 있었다.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을 지어내기도 하고, 아주 사소한 부주의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당신이 의자에 앉아 있는 걸 봤소, 뮤슈. 창구로 가시오!*” “지금 나한테 말대꾸를 한 것 같은데. 창구로 가시오!” “구두를 반들반들 닦지 않았군. 창구로 가시오!” 그리하여 가장 잘나가는 판매원들조차 그가 저지르는 대학살의 광경 앞에서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1권, 260쪽)

(* “창구로 가시오!”라는 표현은 해고를 당한 노동자가 회계 창구에서 급료를 정산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무지막지한 기계의 주인은 무레이다. 모든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어느 여자에게도 자신의 진심을 주지 않던 무레. 무레는 쉽게 여자를 얻고, 쉽게 여자를 버리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러다 한 여자가 눈에 들어오면, 그땐, 꽉 잡고 절대 놓지 않는 거야. 그러면 절대 실패하는 일이 없어. 난 내 여자를 결코 남에게 뺏기지 않거든. 하지만 중요한 건 여자가 아니야. 나한테 여자는 그다지 중요한 존재가 아니거든. 알겠나, 중요한 건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면서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거야. (1권, 117쪽)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그가, 돈으로 원하는 모든 여자를 얻었던 무레가, 돈으로 살 수 없는 여자, 돈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드니즈. 허름한 옷차림, 발에 맞지도 않은 큰 신발을 힘들게 끌고, 두 눈을 휘둥그레. 경탄어린 시선으로 백화점을 돌아보던 순진한 시골 처녀 드니즈. 그녀의 매력을 발견한 무레는 다른 여자 대하듯 그녀를 대한다.

그는 그녀에게 ‘돈’을 제시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의 힘으로 그녀의 ‘사랑’을 사려고 한다. 하지만, 드니즈는 특별한 사람이다. 그녀는 돈의 힘에 무릎 꿇지 않는 사람이다. 가난한 점원 드니즈 앞에서 이 거대한 기계의 주인 무레는 크게 당황한다.

이제 무레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의 유혹에 넘어오지 않은 여자는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동안 그는 몸을 숙여 여자를 줍기만 하면 되었다. 주변의 모든 여자들이 순종적인 하녀처럼 그의 입에서 나오는 변덕스러운 말 한마디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 여자는 그럴 듯한 핑계조차 대지 않으면서 단번에 그를 거절했다. (2권, 112쪽)

 

톱니바퀴처럼 어김없이 굴러가는 시스템과 군대를 방불케 하는 수많은 직원들이 그의 눈앞을 차례로 지나가면서 그가 지닌 막강한 힘을 확인시켜줄수록, 그는 자신의 무력함으로 인한 수모를 더욱더 절실히 느낄 뿐이었다. 심지어 유럽 전역에서 주문이 몰려들어, 우편물을 운반하기 위한 특별 운반차가 필요한 실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를 거부했다. (2권, 176쪽)

 

자신의 힘으로도, 자신의 돈으로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는 드니즈를 맞딱뜨렸을 때, 무레는 변한다. 이전의 방탕한 생활을 정리하고, 재미로 만나던 여자들을 정리한다. 백화점 직원들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한 드니즈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녀의 가족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시는 결혼하지 않으리라’던 이전의 생각마저 바꾸게 된다.

그와 그녀의 사랑이 ‘결혼’이라는 형태로 마무리된 것에 대해 전혀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적 권리가 ‘결혼’ 이외의 방식으로 보장받을 수 없던 사회였던 걸 감안한다면, 이런 결론도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여하튼, 무레는 드니즈를 안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숱한 눈물의 시간과 열정적 고백, 계속되는 구애에도 냉담한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녀를, 마침내는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에게 그렇게도 중요했던 ‘돈’의 힘이 아니라, 이전에는 그에게 없었던 ‘사랑’의 힘으로 그녀의 마음을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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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4-09-01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여전히 강신주의

단발머리 2014-09-02 15:30   좋아요 0 | URL
네~~~ㅋㅎㅎ 아직도 '강신주의 ~' 라고 시작할 만한 책이 일곱권정도 남아있어요. 부지런히, 달려갑니다.

icaru 2014-09-03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제가 본래 달았던 글은 대여섯줄이었는데,,
아직도 여전히 강신주의,,까지만 올라가다니.. 대략 난감인데요 ㅠ,ㅠ
기억을 더듬어서...
저도 아직 강신주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읽고 있는데, 무슨무슨 상 받았던데,, 정말 상받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단발머리님께 댓글 단다는 것이... 음. ㅠ,ㅠ

이 책을 읽진 않았지만, 무레라는 사람 진짜 대단한걸요...
결국 돈으로 얻지 못했던 여인의 사랑을 스스로 깨달음에 의하여,, 혹은 여인이 원했던 방식으로 돈을 씀으로써 ( 노조,,) 사랑도 얻게 되었으니,,, 안 가진 것이 무엇이뇨!! ㅎㅎ

단발머리 2014-09-03 15:2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요즘 알라딘 댓글 다는데 오류 많아서요.
저도 다른 분 방에서, "강준만의... "여기까지만 쓰여있더라구요^^

저도 [상처받지 않을 권리]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 소설이랑 연결되어 있어서, 페이퍼에서 관련지어 쓰고 싶었는데, 아하..... 용량이 부족하여~~~

무레는 흰 얼굴에 금발, 잘 생겼답니다~
 

 

 

 

 

 

 

건강을 위해서는, 자신의 성향을 잘 파악해야한다. 오늘 같은 아침, <한겨레>를 읽어도 답답한 마음이 가득한데, 이런날 하물며 <조선일보>더냐, <중앙일보>더냐.

<내 서재 속 고전>은 챙겨서 읽는 유일한 칼럼이다. 서경식, 고미숙, 강신주가 필진인데, 오늘은 강신주의 마지막 칼럼이다. 강신주가 고른 책은 김선우 시인의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이다. 그가 각별히 좋아하는 시인이라는 말에, 진작에 사두었고, 진작에 읽었으나, 아... 시는 언제나 어렵다. 그 깊이와 넓이를 아직은 잘 모르겠다.

죽은 것에 목메어 울고 죽어가는 것을 살리려고 하며 살아가는 것들을 품어 주려는 시인이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아파했을지 미루어 짐작이 가는 일 아닌가. ‘이 봄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시의 일부분을 읽어보자. 

어리고 푸른 봄들이 눈앞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동안

 

생명을 보듬을 진심도 능력도 없는 자들이

사방에서 자동인형처럼 말한다

가만히 있으라 시키는 대로 해라 지시를 기다려라

 

가만히 기다린 봄이 얼어붙은 시신으로 올라오고 있다

욕되고 부끄럽다 이 참담한 땅의 어른이라는 것이

만족을 모르는 자본과 가식에 찌든 권력

가슴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무능과 오만이 참혹하다

미안하다 반성없이 미쳐가는 얼음나라

너희는 못 쉬는 숨을 여기서 쉰다

너희는 못 먹는 밥을 여기서 먹는다

                   (한겨레, 2014. 8. 25. <내 서재 속 고전>, 강신주)

 

 

아롱이 아침을 먹이며, 칼럼을 읽는다.

병원으로 실려간 유민아빠 김영오씨와 동조단식을 하다 쓰러진 김장훈씨와 동조단식 중인 문재인 의원과 다른 여러 시민들에 대한 기사를 읽는다.

 

 

 

밥을 먹고 있어서 미안하고.

그래도 평범한 아줌마, 30대 후반의 전업주부인 나보다는 대통령에게 더 큰 책임이 있지 않나, 왜 피해자인 유가족을 만나지 않나,하는 생각에 화가 치밀고.

그래서,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

아침부터... 월요일 아침부터, 답답하다.

이대로 잊는건, 잊혀지는 건, 결국 ‘가만히 있으라’던 그들이 바라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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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4-08-26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님 잘 계시지요?
이 부분 -세월호 특별법 제정 -에 대해서는 저로서는 명쾌한 답을 내릴 수는 없어요.
특별법 내용도 잘은 모르지만 유족팀이 요구하는 그 모든 것이 바람직하다고 느껴지지도 않구요.
다만 약자에게 마음 씀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적 정서라는 건 고백하겠어요.
대통령이 적극 나서지 않는 것도 당근 화가 나구요. 너무 갑갑합니다.

그래도 단발님 가는 8월 잘 보내시고 가을맞이도 잘 하시길요~~

단발머리 2014-08-28 17:21   좋아요 0 | URL
아하.... 합리적인 세월호 특별법이 하루빨리 제정되기를 바라고만 있어요.
질질 끌다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거나, 아니면 악성 루머가 퍼지는 상황 자체는 이 상황과 상관있는 누구들만 좋아하는 형국일것 같아서요.

팜므느와르님도 가을맞이 잘 하고계시나요? 근데... 오늘은 너무 덥네요. 가을 멀었나봐요.T.T
 
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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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많이 읽는 책이라고 다 괜찮은건 아니지만, 많이 읽힐 때 그럴만하다고 `완전 수긍`되는 책이 있기는 하다.
이 책은 별 여섯개 짜리다.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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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4-09-01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추장~ 이렇게 시작하는 저자의 책이 생각났어요! 별 여섯개짜리라시니, 머릿속에 깊이 아로새기고,,,

단발머리 2014-09-02 15:33   좋아요 0 | URL
저는 고병권의 니체 관련 책이랑 에세이를 묶은 책만 읽어봤네요.
고추장~ 이렇게 시작하는 책은 아직인데요, 이 책 끝나면 도전해볼까 합니다.^^
 
The Giver (Paperback + Audio CD 1장)
로이스 로리 지음 / Language World / 199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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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시디에 대한 평이 좋아 구매했는데, 같이 들어 있는 원서는 집에 있는 거랑 사이즈까지 똑같아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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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4-08-30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영화로도 개봉하지요. 이 책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영화 예고편은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아요.

단발머리 2014-08-30 15:04   좋아요 0 | URL
저는 딸롱이가 영화 보고 싶어해서 같이 봤는데, 그런대로 재미있었어요.
남주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2014-08-30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30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 전달자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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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영어로 읽었는데, 그 때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이 많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체와 단어선택에 있어서 최고의 솜씨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영어로 읽어보는게 좋을 듯 하다. 한글책에 대한 100자평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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