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 인문학자 8인의 절망을 이기는 인문학 명강의
강신주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인문학적 소양` 정도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읽지 않는게 좋겠다. 이 책에는 `인문학적 성찰`의 본령이 `성난 얼굴`에 있음을 보여준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줄줄이 사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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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10-28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셨군요오~ ^^
100자평이 멋집니다!

단발머리 2014-10-30 10:04   좋아요 0 | URL
아직 다 읽지 못했는데요.
다 앍지 않고 리뷰써도 되지요? 완전 좋아하는 작가들꺼만 먼저 읽었어요.
강신주, 고미숙, 정여울.... 원래는 강준만이 톱3안에 드는데, 이번에는 주제가 가깝게 안 느껴져서요. ^^

다락방 2014-11-13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신간 대신 구간을 사야지 당분간은, 이라고 생각했는데 단발머리님 서재 들어왔다가 이 책 넣고 있네요. ㅠㅠ

단발머리 2014-11-13 12:25   좋아요 0 | URL
제가 좋아하는 강신주와 아무개님이 애정하는 노명우를 한 권에 만날 수 있습니다.
장바구니 많이 무거우실텐데,..... 크하항.... 힘내세요^^

다락방 2014-11-14 08:25   좋아요 0 | URL
강신주, 강준만,고미숙,노명우,문태준,이현우,정여울..이름만 들어도 아우라가!! 근데 정병설은 누군지 모르겠어요. 헤헷;;

단발머리 2014-11-14 08:32   좋아요 0 | URL
저도 몇 명은 다 읽지 못했어요. 정병설씨를 포함해서요.
좋아하는 사람 글을 먼저 읽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먼저 생각합니다.
ㅋㅎㅎㅎ
 

 

알라딘서재에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그리고 좋은 선물을 많이 받는다.

나는 매일 받기만 해서 죄송하고, 그리고 감사하다.

 

커피숍에 가서 아름다운 조명 아래에서 예쁘게 찍고 싶었는뎅.... 아쉬운대로...

 

이것은 앞모습.

 

 

 

 

 

이것은 뒷모습

 

 

 

 

 

왼쪽은 파우치이다. 감촉이 얼마나 좋은지, 닿는 손끝이 사르르~~~ 녹는다.

오른쪽은 티코스터이다. 가장 인기가 좋다는 청어그레이~~

응용하면 이런 식이다.

 

 

 

 

 

카푸치노, 카라멜라 마끼아또는 어렵더라도, 아메리카노 정도는 되야되는데...

둥글레차다. 안타깝다.

 

 

선물해주시고, 문자주시고, 비오는 날 친히 우체국까지 나가주신 서니데이님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서니데이님, 너무 예뻐서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예쁜 선물, 예쁜 마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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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7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28 0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그녀가 이해된다고, 그녀의 말이 이해된다고, 말할 때, 나를 비난하지 말기를. 나는 그녀가 옳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나는 그녀의 생각이 바르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녀가 이해된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녀가 이해된다.

몇 년 동안, 나는 가끔씩 늙은 남편의 죽음에 대해 한 여성 작가가 쓴 글을 떠올릴 때가 있었다. 비탄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녀는 자기 내면에서 ‘난 자유야’라고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진실의 목소리를 들었음을 시인했다. (113쪽)

 

죽어가는 남편, 비탄에 빠져 있으면서도 내면에서 들리는 작은 목소리.

이제, 난 자유야.

그 여성 작가를 이해하는 나. 그녀의 마음이 이해되는 나. 여기의 ‘나’는 ‘내’가 아니다. 지금 내가 뭐라고 말했던가. 아니다. 위의 문장은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내가 쓴 게 아니다.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은 무엇이냐? 리뷰냐? 페이퍼냐? 에세이냐? 아니다.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은 소설이다. 소설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소설이다.

소설 속의 ‘내’가 말한다.

나는 그녀가 이해된다. 죽어가는 남편을 보고 있는, 비판에 빠져 있는 한 여성, 그 여성의 내면에서 들리는 작은 목소리.

난, 자유다.

 

결혼했다고 해서, 다 사랑을 아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랑의 시간이 생활이 되었을 때, 더 큰 신뢰와 더 깊은 실망의 롤러코스터와 같은 시간이 있다. 갈등의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내 옆에 있는 사랑을, 사랑의 눈길을 보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우리는 30년을 함께했다.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서른두살이었고, 그녀가 죽었을 때는 쉰여섯 살이었다. 그녀는 내 삶의 심장이었다. 내 심장의 생명이었다. (111쪽)

 

눈으로 문장을 읽어가다가 여기에서 멈추고 말았다.

그녀는 내 삶의 심장이었다. 내 심장의 생명이었다.

30년을 함께 산 아내를 회상하는 한 남자의 고백이다. 그녀는 내 삶의 심장이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구나. 사랑에 빠진 또 한 명의 남자가 떠오른다.

 

 

[김대중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다. 누구였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한국사에 정통한 학자가 말하기를, 한국사에 대해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고 했다. 한국 현대사의 모든 주요한 사건은 ‘김대중’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나는야, 김대중 대통령님을 매우 사모하고 사랑하기에 읽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그 분을 많이 애정하지 않는다면, 책 곳곳에 그 분의 사심 없는 자랑에 맘 상할 수도 있겠다. 예를 들면 이렇다. “(그 어려운 문제를) 내가 가서 바로 해결했다.” “(미국의 주요한 책임자를) 내가 직접 만나 오해를 풀 수 있었다.”

 

[김대중 자서전]의 발행 즈음에 김대중 대통령님의 마지막 일기가 샘플북 형태로 유통된 적이 있었다. 나도 한 권 갖고 있었는데, 사진 한 장 올려보려 찾아보았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얇은 샘플북은 잃어버렸는데, 읽었던 글 한 대목은 잊히지 않는다.

 

0월 0일 0요일

오늘은 하루종일 아내와 함께 있었다. 책을 읽고 정원을 둘러보았다. ... 둘만 있으니 정말 좋았다. 아내와 같이 있는게 즐겁다.

 

 

정확한 내용은 아니겠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이 일기를 쓰실 무렵에 김대중 대통령의 나이가 83세이시다. 결혼 생활 50년 이상이다. 이휘호 여사는 아내이자 정치적 동지로서 각별한 사람이었던 것은 확실하지만, 아내와의 하루, 아내와의 시간을 이렇게도 행복해 하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아내를 이리도 사랑하는 사람을, 아내를 이리도 애정하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여기, 이 사람을 빼고 말이다.

나는 단순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랬던 건 내게 행운이자 악운이었다. 일찍이 내 머릿 속에 떠오른 말들이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하건, 무엇을 하지 않건 모든 면에서 아내가 그립다.’ 이 말은 내가 어디에 있고, 내가 누구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나 스스로에게 반복했던 말 중 하나였다. (134쪽)

 

자신보다 그 사람을 더 사랑하는, 자신보다 그 사람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런 사랑이 있다.

아내가 어떤 식으로든 살아 있는 한, 그녀는 내 기억 속에 살아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물론 아내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도 생생히 살아 있다. 그러나 나는 아내를 기억하는 가장 주된 사람이다. 만약 그녀가 어디엔가 존재한다면, 그녀는 내 안에 내면화되어 존재한다.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자살을 할 수 없는 이유 또한 그러했고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자살하면 나 자신만이 아니라 아내까지 죽이는 일이 되기 때문이었다. (148쪽)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는 주로 아내와 함게하는 것을 의미했다. 나 혼자서 하길 좋아했던 것에 대해 말하자면, 나중에 아내에게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는 즐거움이 얼마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것 말고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일까? (133쪽)

 

30년을 함께 하고도, 더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함께 하고 싶은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 맞다. 슬픈 진실은, 모든 사랑 이야기는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60쪽)라는 것이다. 우주가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더 슬픈 건, 그렇게도 어렵고 힘든 일을 그 사람 없이 해내야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을, 혼자 헤쳐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 가장 외롭고, 슬픈 일을 말이다.

더 힘든 건, 긴 시간을 함께 해왔던 친구들마저, 오랜 우정을 나눈 친구들마저, 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어서 아픔을 털고 일어서라고 한다.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그를 외면한다. 힘들어하는 그를 채근한다. 일부 친구들과는 절교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이제 그만 울음을 그치라는, 이제 그만 일상으로 돌아오라는 이 쉬운 말들은, 심장을 잃은 그에게 너무나도 가혹하고 잔인하다.

아내를 땅에 묻고 돌아온 지 한 주가 지났을 때 받은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내게 묻는다.

“그래, 어떻게 지내? 주말 도보여행 떠나나?”

나는 1~2초 정도 수화기에 대고 고함을 지른 후 전화를 끊는다. 그건 안 된다. 주말 도보여행은 내 삶이 평탄했던 시절, 아내와 함께 했던 일이다. (123-4쪽)

 

연애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나는 연애는 많이 못 해봤는데, 그에 비해 연애 편지는 많이 받았다. 사과 한 박스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된다고 수줍게 밝혀본다. 15장짜리 연애편지를 받았는데, 읽는데도 한참이 걸렸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니기에, 남의 연애 편지 대하듯, 그래에?? 하면서 성의 없이 읽어내려가고 있었다. 아, 나는 그 때 얼마나 철없었는지.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도 내 마음처럼 소중하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목적으로 한 내 감정만 중요한 줄 알았지, 나를 목적으로 한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서는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다. 나는 그런 철없는 10대였다.

아무튼 14장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이었다. 15장째 장에는 다른 이야기 없이, 편지지 가운데에 이문열의 문장만이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정확히는 아니지만, 대략 이런 뜻의 문장이었던 것 같다.

“이 세상에는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심장을 가진 사람도 있다. - 이문열

내가 그런 사람이야.“

나는 허걱, 하고 놀랐고, 어머, 하고 무서웠다. 책에서나 보던 그런 사랑이었다. 이미, 나는 그런 사랑을 하고 있었음에도, 나역시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심장 때문에 몸져 누워 신음했음에도, 또 다른 사랑, 한 사람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심장의 사랑이 나를 향하고 있음을 알았을 때, 나는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무서웠다.

그저께 청소기를 돌리는데 그 편지가 생각났다. 한 사람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심장으로 나를 사랑한다던 그 사람은 지금도 나를 사랑하고 있을까? 만약, 내가 그 사람과 결혼했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서 ‘줄리언 반스가 아내에게 바치는 것과 같은 순정의 사랑’을 받고 있을까? .....

그 사람을 무시해서도, 그 사랑을 가벼히 보아서도 아니지만, 난,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지금의 나를, 내 남편처럼 사랑해주지 못할 것이다. 그 사람이 하나의 심장으로 사랑한다던, 10대의 나는, 피아노 치는 ‘나’이고, 노래 부르는 ‘나’이고, 웃고 있는 ‘나’일 테다. 건강한 ‘나’이고, 정도된 ‘나’일 테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국적불명, 정체불명의 이상한 김치찌개를 내놓는 ‘나’이고, 와이셔츠를 다려놓지 않아 영상 9도에 “반팔입고 가세요~” 하는 ‘나’이고, “자기야, 내 생일에 뭐 사줄거야?”라며 아이처럼 채근하는 ‘나’이다. 본능과 욕망이 가감없이 보여지는 ‘나’이다.

2001년에 결혼했으니, 올해로 결혼생활 14년째다. 다시 한 번 굳히 밝히자면, 저기 위의 모든 문장들은 소설 속의 문장이고, 그 문장 속의 ‘나’는 현재의 ‘나’, 지금의 ‘나’가 아니다.

나는, 사랑을 믿는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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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10-25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편지를 받아 보셨다니... 놀랍군요.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심장을 가진 사람으로 사는 게 행복할까요, 불행할까요?

저는 말이죠, 결국 부부애밖에 안 남을 거라고 봐요. (나중에 자식들은 다 분가하게 되어 있고요)
제 선배가 남편과 이혼하려 했는데 남편이 이상 증세가 보여 병원에 입원하게 되니 이혼을 접더라고요.
큰 병 걸린 남편을 버릴 수 없대요. 어떻게 자기 혼자 잘 살 수 있느냐는 거죠.
그러고 잘 살다가 남편이 세상을 떠났는데 지금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몰라요.
그게 부부라고 봐요.
버리고 싶을 만큼 열정 없고 버리고 싶을 만큼 밉다가도 병에 걸려 누워 있다고 하면 달려가게 만드는 것, 그게 부부라고 봐요. 그 끈끈한 정을 부부애라고 봐요. 연애 시작할 때 느끼는 뜨거운 사랑보다 더 신뢰할 만한 사랑이죠.

단발머리 2014-10-27 08:31   좋아요 0 | URL
네... 전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심장을 가진다는게 행복한 일일거라고 생각했었어요. 10대에는요.
그런데, 지금은 그게 가능한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좀 무섭기도... 하구요.

결국 부부애라는 말씀에 많이 공감합니다. 12살, 9살도 벌써 독립을 준비하더라구요.
저는 신랑이 많이 밉지는 않으니까, 미운정 빼고 고운정으로만 해야 되나요? ㅋㅎ
그런 사랑이 더 신뢰할 만한 사랑이라는것에 동의합니다.

2014-10-25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27 0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26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27 0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 아침 기사다.

[단독] ‘판교 참사’ 생존자 “환풍구 위에서 방방 뛰지 않았다”

 

“사회자, 안전요원 누구도 내려오란 말 하지 않았다”

“일부 언론의 오보 근거로 희생자 비난해서는 안돼”

경찰도 “행사 영상 확인했는데 안내 없었다” 밝혀

 

해당 사고를 두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일부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환풍구 위에서 방방 뛴 사람들의 잘못”이라는 피해자 책임론이 힘을 얻고 있는데, 이 책임론이 잘못된 사실을 근거로 한 것이라는 현장 진술이 나온 셈이다. (한겨레신문 2014. 10. 23. )

 

오늘 지필 평가를 보는 아롱이의 국어 2-2(가)의 내용이다. 넘어진 친구를 보고 댕기동자가 말한다.

 

 

 

 

1) 급하게 서두르니까 넘어지잖아? 다음부터 서두르지 마.

2) 너는 왜 복도에서 그렇게 뛰어다니니?

3) 무척 아팠겠구나. 복도에서는 사뿐사뿐 걸어 다니면 좋겠어.

 

조금 아쉬운 면이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초등학교 2학년 국어 수준으로도, 보통의 '사람'이라면, 넘어진 사람에게 할 말은 “아프겠다, 괜찮아?”이다. 그런데, 한국의 유수 언론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게, 거기 왜 올라가?”

우리 아롱이랑 같이 초등학교 2학년 국어 지필평가에서 그렇게 답해봐라.

너네들 빵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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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3 1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23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4-10-23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딩 2년만도 못한 사람들이네요. 크-

단발머리 2014-10-23 11:12   좋아요 0 | URL
사실, 주위에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 있어요.
세월호에 대해서도 그렇구요.

사람은 자기 일이 아니면, 그렇게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에휴......

아무개 2014-10-23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모에서 이서진이 다친 하지원에게
˝아프냐?...나도 아프다.˝
라고 했던 대사가 가끔씩 떠오릅니다.

네가 다쳐서 나도 아프다.
나는 다치지 않았지만,
네가 아프다니 나도 아프다.

이런 공감의 바탕에는 상대에 대한 연민이 있는건데
우리는 이미 각자 너무 아파서, 너무 다쳐서
상대가 아픈것을 느낄수 있는 여력이 남아 있지 않은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단발머리 2014-10-25 10:31   좋아요 0 | URL
이서진같은 외모에, 이서진 같은 진심을 담아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니,
제발 인간으로서 기본 예의만 갖춰주었으면 좋겠어요.

앞에 울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이런 말들을 할 수 있는지 ....
참 답답하구요, 혹 나도 남의 일에 대해 쉽게 말하는 면은 없는지, 새삼 반성하게 되네요T.T

서니데이 2014-10-23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로 나온 답은 3번을 고르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2번 아니면 1번이 더 많을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14-10-25 10:32   좋아요 0 | URL
대부분은 1번 같아요. 그러면 빵점이지요.
문제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일반인들이 아니라, 언론이라는 거지요.
언론에서 자꾸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니까, 사람들도 동조하는 면이 있는 것 같구요.
참..... 안타까워요.

페크pek0501 2014-10-23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비난하다니... 말도 안 됩니다.

초등 책을 보고 공부해야 할 시점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단발머리 2014-10-25 10:34   좋아요 0 | URL
이런 경우 실제로 공부는 잘 했는데,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이 사람들 답안지에는 3번을 표시하겠죠. 시험이니까요.
그리고는, 이런 식의 이야기, 1번이나 2번보다 더 험악한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거지요.
여러가지로, 암담합니다. T.T
 
부모로 산다는 것 - 잃어버리는 많은 것들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제니퍼 시니어 지음, 이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7명은 가장 후회되는 일로 학창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꼽는다고 한다. 나는 ‘대학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했다기보다는 대학에 다닐 때 워낙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 후회되는 일이 한 가지 더 있는데, 그건 아무런 ‘대책 없이’ 첫째 아이를 낳았던 일이다. 나는 아주 일찍 결혼한 케이스가 아니고, 결혼 전에 아이를 낳은 케이스도 아니다. 다만, 나는 아무런 ‘정보 없이’ 아이를 낳은 케이스다. 임신했을 때는 각 개월별로 산모의 변화와 태아의 발달 단계에 대해 훤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아이를 낳은 후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이를 쳐다보고, 아이를 돌보기에도 벅찼다.

아기는 새로운 세상이다.

새로운 우주, 그 자체다.

텔레비전에서 연예인들이 아기들와의 일상을 이웃집처럼 가감 없이 보여줄 때, 뭐, 저리 호들갑을 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우주 그 자체인 자신의 아기가 얼마나 특별하고, 얼마나 예쁘게 보일련지, 일면 이해가 된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고,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다시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나는 첫 아이의 3살 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 애에게 더 많은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 더 많이 그 애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 그 애를 더 많이 업어주고, 더 많이 안아주고 싶다. 생각해보니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겠다. 그 아이는 나와 비슷할 정도로 키가 훌쩍 자랐지만, 아직은 내 옆을 좋아하고, 아직은 내 손을 뿌리치지 않으며, 아직은 내가 그 애에게 해줄 일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보니, 유아기는 어디까지나 예선경기라고 한다. 사춘기, 결선경기가 곧 시작된다.

적어도 (아빠들은) 아이들이 어릴 때는 자기들의 자유 시간을 더 적극적으로 지키고 누리려고 한다. 하지만 아빠들이 이렇게 한다고 해서 이들이 자기 아내들보다 아이를 덜 사랑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살아갈 운명에 대해서 관심을 덜 가진다는 뜻도 아니다. (153쪽)

 

나는 스스로를 ‘날라리 주부’, ‘모성 결핍 엄마’로 규정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나는 가정생활에 큰 취미가 없고, 모성이 부족하며, 결정적으로 게으르다. 게으름이야말로 나의 날라리 주부 생활의 모토, ‘무엇이든 설렁 설렁’을 일관되게 유지하게 하는 근간이다. 그래도 나는 내가 ‘엄마’인줄 알았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다가는, 무릎을 쳤다.

“아, 나는 ‘엄마’가 아니라, ‘아빠’구나!”

자신의 자유 시간을 적극적으로 지키고 누리려고 노력하는 아빠, 그런 아빠 같은 엄마, 내가 그런 엄마다. (사실, 어제 밤에도 3M을 남겨두고 밤외출을 감행했다.) 그런 엄마라 하더라도 내 남편보다 아이를 덜 사랑한다는 뜻은 아니다, 라고 저자가 말해준다. 맞다. 사실이다. 이렇게 말해줘서 고맙다.

과잉 양육이라는 현상이 미래에 대한 혼란과 불안이라는 새로운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 다가올 미래에 제대로 준비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오늘날 중산층의 확고한 믿음이다. (204쪽)

 

부모가 하는 모든 일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부모는 이제 더 이상 가족을 위해서 혹은 가족의 범위를 넘어서는 보다 넓은 세상을 위해서 자기 아이를 키우지 않는다. 오로지 아이들만을 위한 목적으로 아이들을 키운다. (216쪽)

 

어린이에 대한 현대적 개념이 정립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어린이는 가정의 주된 ‘수입원’의 하나였다. 어린이는 쉽게 무시당했고, 학교가 아닌 일터로 내몰렸다. 그게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로지 아이들만을 위한 목적으로 아이들은 키워진다.’ 미국 중산층의 자녀에 대한 집중도가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아 오히려 어색하다. 아이의 학업은 물론이고 취미생활 전반까지도 관리하는 부모 모습이 보인다. 다른 점을 찾아본다면, 교육 전쟁의 전면에 엄마가 나서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부모가 이 일에 모두 나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국보다는 특기활동 중 ‘체육 활동’에 대한 투자비용과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오로지 아이들만을 위한 목적으로 아이들을 키울 때, 그런 과정과 결과가 아이들 스스로에게 이로울 것인가.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이로울 것인가. 가정의 주된 수입원에서 주된 지출원이 되어버린 아이들, 이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중산층 부모가 있다. 아이들 위주의 삶, 아이들 위주의 식사, 아이들 위주의 생활. 이것이 옳은가.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이로울 것인가.

스타인버그는, 아이가 맞는 사춘기는 일이든 취미든 간에 집 바깥의 어떤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부모에게 특히 가혹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이가 자기 곁에서 멀어져 갈 때 자기 관심을 따로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중략)

“결정적인 변수는 일반적으로 예상하듯이 어떤 부모가 양육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느냐 아니냐 하는 게 아니었다. 부모가 양육과 관련이 없는 다른 어떤 것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는가의 문제였다.” (323-4쪽)

 

사춘기 전초전을 맞이하며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긴다. 양육과 관련이 없는 다른 일이 내게 있는가. 아이들과 관련이 없는 다른 일, 가정과 상관이 없는 다른 일, 그런 일들이 내게 있는가, 그런 이야기가 내게 있는가.

행복해지고 싶으면 무언가를 해야 한다. 주일학교에서 어린이를 가르치는 소박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정부 권력에 비폭력 저항을 하는 거대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 머리를 쓰는 활동을 할 수도 있고 등산을 하는 육체적인 활동을 할 수도 있다.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그리고 17세기 초 영국 시인인 벤 존슨이 일곱 살 아들을 위한 엘레지에서 썼던 것처럼 ‘내 최고의 시’인 아이를 키울 수도 있다. (418쪽)

 

서문에서도 밝혔다시피, 이 책에서 가장 주요하게 다루고자 했던 것은 ‘어떻게 자녀를 양육할 것인가’가 아니다. 오히려 ‘양육이 부모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것이다. 양육 활동을 통해, 그 지난하고 지루하며, 기쁘고도 행복한 과정이 부모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주제가 ‘행복’이라는 것은 특히 작가의 통찰을 돋보이게 한다. 행복이 기쁨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 즐거움과 기쁨, 슬픔과 고통, 기대와 환희가 모두 양육의 과정 안에 들어있다는 것, 아이들이 우리의 삶을 복잡하게도 만들지만, 또한 아이들 때문에 우리의 삶이 단순해지기도 한다는 것(434쪽), 우리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 즉 우리의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들을 더 사랑하게 되고, 기쁨을 느끼는 방법을 점점 더 익히고, 그러면서 우리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435쪽)

 

어제는 카레를 만들었다. 일품요리로서 카레만한 게 없는데, 만들기가 쉽고, 영양이 풍부하며, 아이들에게 야채를 먹일 수 있고, 한 번 만들어 두 끼 이상을 해결할 수 있어 그야말로 가정요리계의 초특급 아이템이다. 마침, 그저께는 카레의 강황성분이 손상된 뇌를 치료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큰아이가 5살 정도부터 카레를 만들었으니, 대략 8년째다. 한 달에 1-2번 정도 카레를 만들었다고 계산하면, 1년에 20번으로 잡아도 벌써 160번 카레를 만든 셈이다.

커다란 웍에 가득찬 161번째 카레를 보며 생각했다. 그래, 아이들이 다 커서 결혼하고 남편이랑 나만 남으면 이렇게 많이 카레를 만들어도 먹을 사람이 없어서, 오래오래 먹게 될 거야. 아이들이 있으니까, 이렇게 많이 만드는구나. 기쁘고, 감사하다.

내 요리에 별다른 코멘트가 없는 남편은, 역시나 별말없이 카레가 올려진 밥 위에 신김치를 한 조각 올려 맛있게 먹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카레를 부은 카레라이스를 식탁에 올려놓자마자 둘이 한 목소리로 외쳐댄다.

‘“카레, 싫어~~~~~~~~~~~~~~~~~~~~~~~~!“

내가 말한다.

“알았어, 이제 카레 안 만들게. 근데 이미 만들었으니까,

이건,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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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4-12-02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육아서 리뷰도 유머러스 훈훈하게 쓰시는구랴요~~!!!

단발머리 2014-12-03 08:43   좋아요 0 | URL
헤헤.... 그래요? 육아서 리뷰는 나름 진지하게 쓸려고 하는데요. 반성도 많이 하구요.
근데, 결론은 항상 이렇게 유머로 끝나네요.
쓰시는구랴요!!! 좋아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