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에 페미니스트 섹슈얼리티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 정말 알지 못했다. (72쪽)

 

어제는 D도서관에 갔다. 내가 주로 다니는 S도서관이 확장공사를 하고 있고, 3주에 한 번씩 가는 M도서관과 다른 S도서관은 이번주 토요일이 가는 날이다. D도서관은 시립 도서관답게 책도 많고 신간도서도 많이 구입한다. 전날 저녁에 검색을 통해 내가 찾는 책이 있는 걸 확인하고, 아롱이를 수영장에 떨궈 주고, 혼자서 도서관에 갔다.

 

 

대출하려고 했던 책은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와 『올 어바웃 러브』. 같은 저자 벨 훅스의 책 『행복한 페미니즘』이 페미니즘 책들 사이에서도 유독 눈에 띄여 대출했다. 헤세의 책에 대한 책,이 읽고 싶어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을 대출했는데, 집에 와서 살펴보다가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은 정여울의 『헤세로 가는 길』이였음을 알게 됐다.

 

 

 

 

 

 

제일 먼저 읽고 싶은 책은 『올 어바웃 러브』. 그 다음은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

아, 이건 아닌데.

총 707쪽. 저는 이렇게 각 잡고 공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묵직한 무게에, 대출하지 말아야겠다, 소심한 결심. 그래도 책을 찾았으니, 펼쳐는 봐야지. 책을 펼친다. 그리고 이 문단을 읽는다.

 

 

 

나는 늘 어머니가 돈 많은 애인이 싫은 건지, 아니면 그 사람이 아니라 그가 주는 걸 넙죽 받는 자기 가난이 싫은 건지 궁금했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싫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사람은 나이가 많고 약간 불구인데다 말더듬이에 가난했고, 엄마를 무척 배려해주었다. 아니 대단히 정중하게 대했다. (77쪽)

 

엄마의 돈 많은 애인에 대한 이야기. 절로 눈이 간다. 이 책의 부제는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35인의 여성/노동/계급 이야기’. 정희진의 문장을 다시 한 번 읽어본다. 

 

 

 

 

 

 

이 책은 내가 접한 페미니즘 입문서 중에서 가장 우수하며 가장 ‘충분’하다. 또한 가슴 죄는 명언들이 즐비하다. (97쪽)

 

가장 우수하며, 가장 충분한데다 가슴 죄는 명언까지 즐비하다니 더 이상 두꺼운 무게를 탓할 수 없다.

읽는다. 알든 모르든 읽는다.

일단, 읽는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06-30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30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개 2015-06-30 1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흡 ㅜ..ㅜ
사실....
저는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 읽기를 포기하고 책장에 모셔두었습니다....

단발머리님 꼭 완독하셔서 멋진 리뷰 남겨주세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아아!!!!

단발머리 2015-06-30 14:55   좋아요 1 | URL
아흐~~ 아무개님이 포기하셨다니 급 걱정 밀려옵니다. 저는 지금 78쪽이요. 완독가능할까요? 완독은 못 해도 리뷰는 가능하구요, 멋진 리뷰는 어려워도 일단 리뷰는 가능합니다. *^^*

아무개 2015-06-30 16:40   좋아요 1 | URL
으라찻차!!!!!!!!!!!

단발머리 2015-06-30 16:45   좋아요 0 | URL
차랏차라라라라라라라리라랏!!!!

cyrus 2015-06-30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스트 섹슈얼리티도 페미니스트 사상 분파의 일종인가요? 워낙에 페미니스트의 분파가 다양해서 공부할 것이 많을 것 같습니다. ^^;;

단발머리 2015-07-04 01:23   좋아요 0 | URL
제가 이해한 바로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것 같아요. 페미니스트의 분파가 다양한 것 같기는 한데, 서로 비슷한 점도 많지만 미세한 차이점도 많아서,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
공부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쭈욱~~~~~~~~~~~~~~~~

해피북 2015-07-01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희진님의 책을 읽고 또 그 책에서 알게된 책을 찾아 읽는모습 참 좋아요 ㅋ 저도`정희진처럼 읽기`를 준비해뒀는데 단발머리님의 모습이 제 미래의 모습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걱정이..ㅋㅂㅋ,,

단발머리 2015-07-04 01:24   좋아요 0 | URL
일단 그 걱정을 매우 축하드리구요!!!

저도 시작은 `정희진처럼 읽기`였던 것 같아요. 서문 읽다가 퍽! 충격을 받았더랬지요.
아무런 정보 없이 이리저리 막 부딪혀 하는 거라 모르는게 많아요.
저 좀, 도와 주세요~~ ㅋㅎㅎㅎ
 
집 나간 책 - 오염된 세상에 맞서는 독서 생존기
서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뱃속까지 보여주는 화끈한 솔직함

서평집은 인지도로 낸다는 점을 고려하면, 책을 내도 괜찮은 수준에 이른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나보다 인지도가 높은 분이 숱하게 있다. 하지만 그분들은 너무 바빠서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하고, 어쩌다 읽어도 서평 같은 걸 잘 쓰지 않는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적당히 인지도도 있으면서 서평도 봐줄 만큼은 써야 한다는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이 몇 없는 탓에 내가 서평집을 내게 되었다. 안타까운 점은 2014년 이후로 방송 출연을 거의 못하고 있어 인지도가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인데, 그게 바로 인물과사상사가 서둘러 서평집을 만들게 된 이유였다. (8쪽)

 

이렇게 ‘생각’할 수는 있겠다. 서평을 쓰는 이유가 책 한 권을 다 읽었다고 자랑하기 위해서라거나, 금전적 이익 때문(5쪽)이라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실제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멋진 모습, 근사한 모습으로 보여지고 싶은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다. 그런데, 그 욕망을 인정하고, 자신 안에 그런 모습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말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쉽지 않은 일을, 골몰히 생각해보면 나름 어려운 이 일을, 저자는 참 쉽게 한다. 솔직하게 말한다. 이런 이유로 서평집을 냈노라고 말한다. 그의 이런 솔직함은 저자의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이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급호감’을, 이미 그의 솔직함을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그의 솔직함이 독자를 무장해제 시킴과 동시에 저자와 독자의 암묵적 거리를 단숨에 단축시킨다.

 

2. 이런 생각 또 없습니다, 독특한 시선

      

 

 

 

『유령퇴장』은 작년에 내가 읽었던 책 중 Best 3에 속하는 책이고, 필립 로스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70대의 노인이 자신보다 40살이 어린 30대의 유부녀에게 끌린다는 이야기‘ 너머의 다채로운 빅재미를 엿볼 수 있다. 물론, 그 이야기가 가장 매력적이다.

내가 매료된 부분은 주커먼과 에이미의 가상대화인데, 에이미의 어린 시절을 묻는 이야기, 그녀가 읽었던 책 이야기, 주커먼이 권하는 책이야기가 길게 이어진다. 관심 가는 여자, 유혹하고 싶은 여자에게 독서 이력을 묻는 남자라니. 이런 남자야말로 진짜 ‘뇌색남’이다.

저자의 독특한 시선은 이 지점에서 발휘되는데, 조지 W. 부시 George W. Bush가 재선에 성공한 2004년의 상황을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과 연결지어 설명한 것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나도 그 생각을 했었다. (은근슬쩍 묻어가기^^)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이 ‘확실’하다는, 불길한 방송 사고부터 시작해서, 다음날, 그 다음날 아침까지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박근혜’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고, 믿을 수가 없었다. 완벽한 절망. 그 상황을 저자는 이렇게 풀어 쓴다.

발기도 안 되는 노인이 왜 여자에게 집적대는 걸까? 어쩌면 이 장면은 상징적인 비유일지도 모르겠다. 발기불능은 영영 집권이 불가능해진 우리나라 좌파를, 노인이 집적대는 유부녀는 이미 새누리당과 결혼한 우리나라 유권자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전히 집적대는 노인에게 유부녀는 그의 발기불능을 상기해준다. ... 책에서 노인은 결국 뉴욕을 떠난 원래 있던 산속으로 돌아가려고 결심하는데, 이는 저자가 한국 좌파들에게 “정치판을 떠나라”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27쪽)

 

부시가 당선되었을 때 에이미의 절망과 박근혜가 당선되었을 때 2030세대들의 절망은 나도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었지만, 발기불능 = 한국좌파, 유부녀 = 새누리당과 결혼한 우리나라 유권자, 의 해석은 정말 창의적이다.

저자만의 독특한 해석, 특별한 독법은 『유령퇴장』을 식탁 위에 두고 짬짬히 읽어가는 내게 이 책의 재독, 삼독을 간곡히 권유한다.

 

3. 유쾌상쾌 거침없는 매서운 비판 정신

 

 

아래 인용은 존 퀘이조의 『콜레라는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에 대한 글이다.

사후의 일이기는 하지만 스노가 바라던 안전한 물 공급은 결국 이루어졌고, 이제 웬만한 나라에서는 콜레라 환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국정원이 바라는 것처럼 유우성이 결국 간첩이라고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국정원에도 상하수도 시설을 만들어 국정원을 망치는 더러운 물을 차단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결국 스노의 의견을 받아들인 빅토리아 여왕과 달리 우리나라 대통령은 국정원이 깨끗해지는 걸 바라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다. 괜히 간첩으로 몰리지 않게 우리가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하는 이유다. (87쪽)

 

정부의 잘못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불만의 토로이다. 누구라도 정색을 하고 물어볼라치면, 은근슬쩍 꼬리 내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저자는 정부에 대한 비판, 정책에 대한 비판,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글’로 풀어내고 있다. 일전에 고소를 당했을 때,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하고, 산더미 같은 자료를 준비하셨던 지혜로운 아내를 두셨으니 망정이지(42쪽), 읽을 때마다 속 시원하고 통쾌한 건 사실이지만, 조금 걱정스럽기도 하다. 고소장 한 장에 벌벌 떨면서 “앞으로 글을 좀 부드럽게 써야겠다”라고 자체 검열하는 자신을 돌아보면서도(45쪽), 날선 비판을 멈추지 않는 그의 용기가 새삼 존경스럽다.

 

        

 

 

 

저번주 토요일에는 교보문고 명강의 BIG 10에 다녀왔다. 마태우스님의 책은 무척 재미있지만, 강의는 5배 정도 더 재미있었다. 초등학생들이 적지 않게 참석했는데, 이 아이들은 마태우스님의 책을 다 읽었는지, 퀴즈란 퀴즈는 죄다 아이들이 맞혀 좋은 책선물을 많이 받아갔다. 기술이 부족해 마태우스님의 멋진 모습을 잘 포착하지 못 해 아쉬울 뿐이다. 사인을 받을 때, ‘단발머리’라고 써달라고 부탁드렸더니, 그 바쁜 와중에도 단발머리는 아니시잖아요, 라며 깨알개그를 선사하셨다. 주최측에서 준비한 네팔 어린이 돕기 팔찌는 아롱이 선물로 재탄생했다.

간만에 즐거운 외출이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개 2015-06-29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저 팔찌 받았어요!
끝번호가 0,3,6인가 맞죠? ㅎㅎㅎ

마태우스님 싸인 바뀌셨네요.
그전엔 멋진 말그림이였는뎅

그나저나 우리는 왜 일면식도 없으면서
두리번 거리면
알라디너를 알아볼수 있을꺼라 생각했던 것일까요.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5-06-29 19:50   좋아요 1 | URL
앗!! 아무개님도요? 그럼 우리 팔찌 받는 줄 앞에서 마주쳤을 수도 있겠군요. ㅋㅎ
저는 3으로 끝났어요.

아무래도 말은 그리려면 시간이 좀... 그래서 바꾸신것 아닐까요?

그게 저의 가장 큰 의문이죠. 저는 왜!!! 알라디너들을 만나면 단박에 알아볼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이마에 `알라딘`이라고 써 있지도 않는데 말이죠.
저도 그게 의문입니다.
다음에는 ˝알라딘˝이라고 써서 등에 붙이고 나갈까봐요. 진짜로요~~~~~

AgalmA 2015-06-29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 <유령퇴장>이랑 존 쿳시 <추락>이랑 비교해 읽어보고 싶어요...늘 그랬는데 시간이 없는 걸까요. 제 맘이 거기까지 다다르지 못한 걸까요ㅎ

서버가 해외면 못 잡는다고 푸념하듯이 대통령, 나라 질타를 맘껏 하려면 해외에서;; 쿨럭)) 젠장)))

˝단발머리는 아니시잖아요˝ ㅋㅋ 마태우스님 유해진 닮았어요. 실례는 아니겠죵ㅎ;;
하트머리ㅋㅋ 보슬비님 유머 실력도 상당한데!
그래! 유머를 서재에서 배우는 거야!!ㅎㅎ

단발머리 2015-06-29 19:55   좋아요 1 | URL
아하... 저는 그래서 또 존 쿳시의 <추락> 검색 들어갑니다.
Agalma님 많이 바쁘시고 시간도 없으시니까, 한가한 제가 비교하면서 읽어볼께요.^^

마태우스님을 실제로 본 사람으로서 말씀드릴께요.
유해진보다는 마태우스님이 더 멋지구요.

유머를 서재에서 배우시고, 갈고 닦으세요~~ 보슬비님 같은 고수분들이 아주 많구요.
참고로 저는 Agalma님 유머 스타일도 좋아합니다^^

icaru 2015-06-29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오~ 단발머리님이시닷,, 하트 치워주세요 미투요!

단발머리 2015-06-29 19:56   좋아요 0 | URL
우하핫....
마태우스님을 봐주시구요.
저기 줄 서서 기다리면서 다른 사람들 보면서 느낀 건데요. 마태우스님이 머리가 작으세요.
그래서 사진 옆의 사람이 대두처럼 나옵니다.
김수현 옆 일반인처럼요.
제 사진도 그런 식으로 나왔구요. 공개 못 하는 진짜 이유는....

제가 너무 명랑하게 나와서요.
저, 명랑한 여자로 나왔어요. 흐흑...................................................

다락방 2015-06-29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단발머리님의 저 하트 안에 숨겨진 초미모의 포쓰가 느껴져요!! >.<

단발머리 2015-06-29 19:58   좋아요 1 | URL
진짜, 다락방님도.... 히히힛...
다락방님, 사랑합니다.

다락방님이 완전 초미모시죠. 저는 아닙니다.

저는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마태우스 2015-07-04 0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이런 멋진 서평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ㅠㅠ 제 강의도 들으시고, 흑, 뭐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지, 앞으로 나오는 책은 꼬박꼬박 보내드릴게요! 글구 저도 페미니즘 공부 한창 했었는데, 그때 읽은 책 중 하나가 행복한 페미니즘이었지요. 저도 님 서재 가끔 들러서 인사 올릴게요.

단발머리 2015-07-04 22:48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 저자 직접 방문 완전 감사드립니다. 저, 가족들한테 막 자랑하고 이 화면 캡쳐했어요~ 마태우스님의 역작과 야심작들은 제가 모두 차곡차곡 사 모을테니 걱정마시구요~ 앞으로도 재미있고 유익하며 감동까지 주는 좋은 책들 많이 쓰시기를 바래요~~~ 마태우스님과 아리따우신 사모님, 그리고 귀여운 기생충들을 응원합니다!!!
 
[나의 사적인 도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간평가단을 하면서 완전 좋은 점은 내가 신청한 책이 선정되어 내게로 오는 일이고, 나름 좋은 일은 내가 신청하지 않은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저자, 새로운 책을 알게 되는 것이다.

박상미 에세이, 『나의 사적인 도시』는 나름의 즐거움을 준 책이다.

미술에 대해서는 모르는 내가, 더더욱 현대 미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내가 이 책을 재밌게 술술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예술을 다루는 사람의 진솔한 속이야기를 듣는 재미는 솔솔했다.

여기 그려진 뉴욕은 나만의 특별한 뉴욕이다. 그 안에서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 내가 생각한 것은 모두 뉴욕이란 도시의 일부이고, 나만의 사적인 뉴욕이다. 사적이라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모든 일은 지독히 사적인 것에서 비롯하니까. (서문)

그녀만의 사적인 이야기, 뉴욕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미술을 공부하기에 여러 미술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내게는 생소한 작가들이고, 처음 보는 작품들도 많았지만, 그녀의 설명과 함께 하니 조금 더 쉽게 이해된다.

 

 

 

<뉴욕 부류>의 글도 재미있었는데, “서울과 별로 다를 게 없던데? 더럽기만 하고”라고 말하며 뉴욕을 좋아하는 않는 사람들은 보스턴 백인 동네를 아주 좋아한단다. 깨끗하고 예쁘고 안전하다면서 말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뉴욕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란 공항에서 맨해튼으로 들어오는 미드타운 터널을 통과할 때부터 흥분했다는 사람들이다. (215쪽)

그런 사람들이 뉴욕을 즐기는 장소는 타임스퀘어, 센트럴파크, 그리고 밀도가 높은 빌딩 숲이라 한다. 뉴욕에 가게 된다면, 도전해보고 싶다. 인생에 놀랄 일만 있다면 그것 또한 별로겠지만, 가끔은 예상치 못한 일들도 일어나기 마련이니까. 뉴욕에 가게 된다면 타임스퀘어, 센트럴파크 그리고 밀도가 높은 빌딩 숲 사이에 서 보겠다. 마천루가 그리는 밀도의 미학과 1점 소실 원근법의 드라마(216쪽)를 경험해 보고 말테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icaru 2015-06-25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상미의 <뉴요커>라는 에세이를 재밌게 읽었어요. 그당시에 읽었던 책 팔할은 중고로 내놨던 거 같은데, 뉴요커는 갖고 있어요.. ㅎ 책이 나름 예뻐서...

단발머리 2015-06-25 15:32   좋아요 0 | URL
나름 유명한 필자군요. 전 이번에 처음이었는데 담백함 느낌이 좋았어요. 많이 어렵긴 했지만요^^

다락방 2015-06-25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히히 저는 십년전에 타임스퀘어, 엠파이어스테이트, 센트럴파크에 다녀왔습니다! 히히히

단발머리 2015-06-25 17:4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께는 십년전 추억이고, 저한테는 미래 계획이네요. 우앙~~~~~부럽습니다.

AgalmA 2015-06-27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평가단 신청하고 싶다가도, 워낙 책을 이것저것 읽는 제 습관과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 회피증 때문에;_;)
평가단이 원하는 책을 건의하고 의견조율을 하나 보죠? 알라딘에서 일괄적으로 정해서 주는 줄 알았어요.

단발머리 2015-06-27 20:52   좋아요 0 | URL
네~ 신간평가단이 신청한 책 중에서 출판사와 연락이(?) 되는 책으로요. 저는 풀이 좁아서 신청한 책이 많이 선정되었다죠~~ 저도 아직 적응이 안 됐는데 벌써 6개월이 지났다는..... 슬픈...

AgalmA 2015-06-27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와 연락이 안되는 경우도 있어요? ㅎㅎ재밌다. 그러게, 벌써 6개월이군요. 흥미로운 신간이 많은 시즌이라면 신간평가단 대박이겠군요! 신기신기

단발머리 2015-06-27 21:22   좋아요 1 | URL
연락은 되는데, 책은 공짜로 못 준다~~ ㅋㅎㅎ 그런 경우가 있겠죠. 네~ 좋은 책이 많아서 좋았어요. 다음에도 하고 싶은데... Agalma님은 인문/사회쪽으로 하시면 딱이신데요~~~^^

AgalmA 2015-06-27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이번에 인문/사회쪽에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신간평가단 책인 거 보고 얼마나 땅을 치며 부러워 했던지;_;))...

단발머리 2015-06-28 07:37   좋아요 0 | URL
이번에 또 모집하거든요. 6개월에 한 번씩이요. 저는 신간평가단을 연속으로 5번 하신 분도 보았어요. 성실하게 활동하면 오래 하시는 것 같아요. 다른 인터넷서점 신간평가단은 책 그냥 줘도 읽고 싶지 않은데 일단 알라딘은 그 쪽으로는 탑입니다^^ 선정된 책들이 와우!!! 앗! 사은품도 탑인가요? ㅋㅎㅎㅎㅎ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난과 외곽을 그리는 소설이 의미를 잃는 시대에 나는 소설가로 살고 있다. 변방의 삶을 그들의 언어로 쓴 소설이 나오면 으레 고색스러운 방 하나에 한꺼번에 모아놓고 체크인 해버리는 게 요즘 풍토이다. 토속적이다, 질펀하다, 한마디 내뱉어주면 된다고 여긴다. 평론가들의 모국어 기피, 근친 혐오. 그 배경 속에서 쓰고 있다.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욕망과 만나고, 그렇기 때문에 우울하고, 우울하기 때문에 웬만한 책임은 피할 수 있는 소설이 대부분이다. 대중 속의 고독도 사람의 일이라 작가가 그곳으로 손을 뻗지 않으면 안 되지만, 너무 많이들 어두운 카페로 걸어들어가버렸다. 개인의 우울이 사회의 비참보다 더 크고 강렬해져버린 것. 이른바 문학적이다. 그러나, 문학을 키우는 것은 비문학적인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108쪽)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 서울이 고향인 나에게 한반도 저 끝 바다에서 들려오는 소리, 냄새, 정취, 풍경은 오히려 이국적이다. 그럼에도 그 토속적이고, 질펀하며, 끈끈한 그 무언가는 계속 내 마음을 끈다. 더 많이 듣고 싶다. 더 많이 읽고 싶다. 하나의 완벽한 우주, 하나의 완전한 세계, 한창훈이 만드는 우주, 한창훈이 만드는 세계를 말이다.

돌아올 준비를 하는 잠깐 동안 서둘러 낚시를 던진다. 기다렸다는 듯이 뭔가가 물어댄다. 노래미, 용치놀래기 따위다. 뭐라도 좋다. 운좋으면 감성돔과 문어도 문다. 아주 커다란 동갈치를 낚은 적도 있다.

오후 새참으로 충분하다. 잡은 생선 회 뜨고 대가리와 껍질에 점심때 남은 김치를 넣고 소금 간하여 앉은뱅이 냄비 하나 대충 끓여놓으면 훌륭한 안주가 된다. 되들이 소주병이 빛을 발하는 것도 그 때이다. (32쪽)

 

근래에 젊은 작가들의 발랄한 문체와 최첨단 소재가 등장하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을 때면 이들이 나와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 존재함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나와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작가들이 살고 있음을 느낀다.

이 책에서는 예전에 상상했던 시인, 소설가, 작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를 테면, 시인은 가난해야 한다거나, 소설가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전국을 떠돌아야 한다거나, 작가는 깊은 동굴 속에서 격력한 기침을 참아가며 인고의 순간들을 창작의 재료로 삼는다는 생각들이 꼭 상상만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환상적인 모습’으로 상상했던 작가의 ‘원형적 모습’을 여기저기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생소하면서도 놀랍다. 작가님이 좋아하는 형, 유용주 시인에 대한 이야기다.

사건사고 많았다. 오해 때문에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뜯어말리고 달래서 들쳐업고 들어온 날도 많았다. 풀어낼 방법이 없는 슬픔. 제멋대로 돌아가는 상황. 파멸되어버리고 싶은 충동. 그게 수시로 얼굴을 디밀었다. 피는 더 데워지고 주먹 불끈거려졌다. 껍질은 삭풍에 벗겨지는데 용광로 같은 마음속 불길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한겨울 이불도 안 덮고 밤을 새우곤 했다. (185쪽)

 

마음에 불꽃을 품고 사는 일이 어디 쉬울까. 시를 쓸 수 밖에 없는 삶을 산다는 건 또 어떨까. 시시때때 안현미, 곤두박질 안현미, 그리하여 한번 더 안현미를 외치는(260쪽) 작가님이 말한다.

그럼 됐지 뭘 더 바라겠는가. 그러니 너무 열심히 살지 말자. 시인의 성공은 세상의 실패를 증명하는 척도이다. 좋은 세상에는 아픈 시인이 있을 리 없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걱정 없는 것은, 계약의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근사한 자세를 그녀는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262쪽)

 

이제는 그의 소설을 읽어야겠다.

수필의 말이 아닌, 소설의 언어로, 한창훈을 읽고 싶다. 읽어내고 싶다.

그가 들려주는 바다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22쪽)  

책을 추천하거나 추천받는 것 모두 한결같이 주저되는 일인데, 알라딘서재에서 소개받는 책들은 찾아 읽는 편이다. 원래 치밀한 독서 계획이 없기도 하지만, 알라딘서재에서 추천받아 읽은 책들이 연타 흥행(?)에 성공해 역시 믿을 구석은 알라딘서재~라는 생각 때문이다.

저자는 스테퍼니 스탈(Stephanie Staal). 바너드 대학을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언론학 석사. 언론계와 출판계에서 활약하다가 결혼-임신-출산으로 프리랜서 기자로 전업. 아이를 키우며 바쁘게 살아가던 중, 잊어버린 ‘여성으로서의 삶’을 찾기 위해 대학 때 들었던 ‘페미니즘 고전’ 수업 청강. 이 책은 그녀가 도전한 ‘페미니즘 고전 독서’의 결실이다.

나는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는 스테퍼니 스탈의 말이다. 이 글의 첫째 줄은 “(422쪽)“인데, 사실 내가 썼던 첫 번째 글의 첫 문장은 “나는 잠을 이루지 못 했다.”였다. 내가 썼던 두 번째 글의 첫 문장은 “나는 ‘페미니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였다. 너무 많은 생각이 들어서,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어서,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쓰고 지우고 다 지운 후에 다시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좋은 학교를 나오고, 좋은 직장을 다니다, 좋은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아 키우는 야무지고 똑똑한 한 여성의 ‘페미니즘 고전 서평’이 이렇게 많은 생각을 가져다 줄지는 상상도 못 했다. 가끔은 책을 읽다 말고, 잠시 덮어야만 했는데, 그래야만 마음속 가득한 동감과 울분을 겨우 식힐 수 있었다. ‘개인적인 소회’ 정도로 읽지 말라,고 저자는 당부했지만, 사실 내 개인적인 소회 때문에 그녀의 개인적인 소회에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전업 주부가 꿈인 명문대 여학생들, 아이비리그를 졸업한 직장 여성들이 결혼이나 출산 후 일을 그만두는 현상은 1~2년 전부터 언론의 단골 소재였다. 그런데 거기서 한 술 더 떠 여대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전업주부를 목표로 세포 생물학이나 르네상스 문학 같은 과목을 수강한다는 것이 그 기사의 주요 골자였다. (108쪽)

그 기사 내용은 우리 모두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여대생들이 전업주부를 꿈꾼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고작 열아홉인 그들이 불평 한마디 없이 전통적 성 역할에 안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110쪽) 

 

결혼 이후의 삶은 결혼 전과 같지 않다. 좋은 변화와 나쁜 변화가 동시에 일어난다. 하지만, 결혼 이후의 크고 작은 변화를 넘어 삶이 근본적으로 변하는 쪽은 여자다. 결혼 이후에 여자의 삶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변해야만 살 수 있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생물학적 변화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가슴뭉클한 순간이 많았다. 많았다,라고 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나 스스로 내 몸을 어찌할 수 없다는 깊은 절망감에 힘들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내 인생의 가장 큰 변화라면 아이를 낳은 후에 일어났다. 자고 있는 딸아이를 안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출산 휴가 마지막 밤, 다음날부터는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기로 했는데, 내게는 그 밤이 그렇게도 길었다. 시설이나 모르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도 아니고, 시어머니에게, 가족에게 아이를 맡기는 데도 내 아이를 버려 두고 일하러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쌔근쌔근 곤히 잠든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남편이 직장생활을 하고 내가 아이를 돌보는 편이, 내가 직장생활을 계속하고 남편이 살림하며 아이를 돌보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유리한 선택임에는 확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비리그 졸업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 108~110쪽의 여대생들처럼 행동하지 않기 위해,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삼개월 동안 잠을 이루지 못 했다. 남편은 내게 결정하라며 공을 넘겼고, 나는 엉겹결에 받은 큰 공을 어쩌지 못해 밤마다 뒤척였다. 나는 친정과 시댁 양쪽에서 육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천혜의 환경 속에 있었다. 도와달라고 부탁드리면, 4-5년 아예 아이를 키워주실 분들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결정하지 못 했다. 잠 못 드는 밤이 계속됐다.

아이가 웃을 때 엄마의 뇌에서 생성된다는 도파민. 마약처럼 작용한다는 도파민이 모성이 한참 부족한 내 뇌 속에서도 활발히 작용해, 나는 일평생 한 번도 예상치 못한 이름을 갖게 되었는데, 그건 ‘엄마’라는 무거운 이름과 ‘전업주부’라는 이상한(?) 이름이었다. 아이 때문에, 오직 그 이유 때문에 일을 그만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일을 그만둔 가장 큰 이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물론 ‘아이’였다.

나는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모른다.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하려는 알라디너들 틈에 에이바님 서재에 줄을 서기는 했는데, 하이드님 서재의 ‘추천 도서 목록’을 보고서는 완전 기가 팍 죽었다.

똑같이 한국의 입시전쟁을 치르고, (똑같은 대학은 아니지만) 똑같이 대학에 입학하고, 회사에 취업하고,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같이 만든 아이를 앞에 두고 직장을 그만 두는 쪽이 ‘나’여야만 했다는게 페미니즘에 관련된 건지, 아니면 그냥 효율성을 고려한 선택이었는지 모르겠다.

사촌언니들이 모두 출가해 홀로 남은 ‘손녀’로서 ‘설거지담당’으로 낙하하지 않고, 이른바 ‘남자상’에서 밥 먹던 내가, 명절에는 친가에 먼저 가야한다고 딸애에게 말하는 것이, 말해야만 하는 것이 페미니즘과 관련된 것인지, 한국의 유교 문화와 관련된 것인지 나는 알지 못 한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여자라고 불평등한 대우를 받은 적이 없다고 믿고 살았던 내가, 결혼 후에 느꼈던 사소하지만 형태가 분명한 각양각색 불편한 감정들이 페미니즘에 관련된 것인지, 우리 부부 두 사람의 문제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제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한다. 아는 게 없으니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모르는게 무엇인지부터 알아보려고 한다. 각 잡고 제대로 한 번 붙어보자,는 식은 아닐테지만, 나름대로 알차게 공부해보고 싶다. 목표라고 한다면, 이제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하기로 단합한 알라디너님들 틈바귀에서 정박자, 기본템포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여성의 권리 옹호』, 『각성』, 『자기만의 방』

 

 

 

 

 

 

『제2의 성』, 『가사노동의 정치학』,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성의 변증법 : 성 해방을 통한 인간 해방 역설』

 

 

 

 

 

 

페미니즘을 ‘하나’로 사고하는 것 자체가 성차별이다. 나는 숱한 사람들이 사상가들을 언급할 때 마르크스, 프로이트, 푸코, 루소, 그리고 페미니시트 식으로 나열하는 데 대해 분노를 느낀다. 남성들은 ‘개인’으로 호명하면서, 어째서 페미니즘은 한 덩어리로 간주하는가? 그러니까 마르크스 한 사람과 모든 여성이라는 식의 발상이다. (11쪽, ‘혁명보다 진화’, 정희진) 

 

나는 결혼을 하고 어머니가 된 후에야 비로소 나이가 들수록 아는 것이 적어진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슴 터질 듯한 사랑도 느꼈지만 미칠 듯한 좌절감도 맛보았다. 그전까지는 생각해 보지도 못한 존재의 근간을 뒤흔드는 새로운 감정이었다. 백만 가지 방식으로 아이와 연결된 어머니가 되고 나서야 페미니즘의 이상향을 현실에 접목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페미니즘을 저버릴 수도 없었다. 아이를 욕조 속에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20쪽)

 

모성신화를 떠받치는 기둥은 어머니는 더 이상 자신만의 야심도 호기심도 욕구도 느낄 필요가 없다는 믿음이다. (88쪽)

 

에드나는 끝내 자아를 포기하지 못하고 아내와 어머니라는 운명에도 완전히 빠져들지 못한다. 라티그놀레 부인에게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에 대해 열띤 토론이 오가는 가운데 에드나가 입을 연다. “본질적이지 않은 것은 포기할 수 있어요. 돈과 생명은 아이들에게 내줄 수 있어요. 하지만 나 자신을 내주지는 않을 거예요.” (156쪽)  

 

나는 나를 낯선 이의 손에 맡겨야 했던 부모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는 말할 수 없지만 남의 손에 자란 내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는 말할 수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 중 한 분이 출장을 떠날 때마다 나는 원인 모를 고열에 시달렸다. 학교가 파한 후 빈집에 들어갈 때 귓가에 울리는 내 발자국 소리가 왠지 서글펐던 기억, 초등학교 학예회 때 꽉 찬 관중석 어디에도 부모님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주여 오소서」를 부를 때 느낀 외로움 등이 내가 치러야 했던 대가였다. 나는 연극이 끝난 후 무대 뒤에서 한 이웃 아주머니가 자기 자식에게 주려고 가져온 꽃다발에서 뽑아 낸 꽃 한 송이를 건네받은 적도 있었다. (238쪽)

 

아이를 키우려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피부로 체험하고 나자 가슴에 맺혀 있던 어린 시절의 상처가 어느 정도 씻겨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아이의 기대에 찬 눈빛에 매번 녹아 내리고 마는 엄마였다. 해야 할 일들을 옆으로 밀어 놓은 채 책을 읽어 주거나 실비아가 만들었다는 노래를 들어주기 일쑤였다. 나는 아이들이 세상을 원색으로만 본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주지시켰다. 정규직을 버리고 프리랜서를 선택한 데는 다른 이성적 동기도 영향을 주었지만 사실 감정적 동기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시간을 유동적으로 쓸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실비아가 필요로 할 때마다 옆에 있어 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부모님의 부재로 인한 결핍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242쪽)

 

일과 양육이 주는 만족도가 얼마나 큰지, 두 가지가 자아실현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비교해 보려는 시도는 허울만 그럴듯할 뿐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두 가지가 서로 다른 종류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인쇄되어 나온 내 이름을 보는 경험과 실비아의 무용 발표회를 보는 경험은 서로 비교할 수 없다. 어느 한쪽이 월등히 더 좋거나 더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두 가지가 서로 다른 욕구에 부응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이라면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직장 맘 대 전업 맘 전쟁’ 같은 자극적 기사들을 내보내면서 그런 중요한 차이를 언급하지 않은 채 오만하게 넘어가 버린다. (255쪽)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6-24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만 이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문파랑출판사에 나온 쇼팽의 소설 제목이 마음에 안 들어요. 원제가 ‘The awakening’이라면 그냥 ‘각성’이라고 정해도 무방한데, 왜 굳이 ‘이 명박한 세상을 여자가 느껴 깨칠 때’를 달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제목에 자꾸 MB가 보입니다. 정말 MB스러운 제목입니다. 부클래식 출판사에 나온 <내 영혼이 깨어난 순간>이 더 마음에 듭니다.


에이바 2015-06-24 20:51   좋아요 0 | URL
부제가 왜 저렇죠? 제가 이 분의 이름을 국립국어원 사전에 검색할 날이 오다니... 명박하다: 운명이나 팔자가 기구하고 복이 없다. 한자성어 가인명박(佳人命薄)의 그 명박이군요.

AgalmA 2015-06-24 22:10   좋아요 0 | URL
이거 뭔가요ㅎㅎ; 그 명박은 전혀 이 命薄스럽지 않으니...화납니다))

단발머리 2015-06-25 13:26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각성`도 괜찮고, <내 영혼이 깨어난 순간>도 괜찮은데요.
정말 `이 명박한 세상`은 정말 깨어나고 싶지 않은 순간이네요.
여자들의 `각성`을 저지하려는 `명박적` 의도 아닐까요?

아무개 2015-06-25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결혼하고 출산하면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할지
남자들은 전혀 고민하지 않지요.
저는 왜 그렇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요?
단발머리님 말씀처럼 오로지 효용성때문에?....

한 설문조사에서
결혼후 80%의 남성들은 자신의 삶의 질이 높아 졌다고 하고
결혼후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삶의 질이 낮아 졌다고 대답했다는군요.
남성은 가정부, 정부, 때로는 어머니의 역할까지 해주는 아내가 생겼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거나 할 필요는 없죠.
게다가 자신을 성을 따르는 2세까지 얻게 되구요.
저는 현 가부장제 시스탬안에서
결혼후 여성이 얻는것은 강요된 모성애과 끊이지 않는 가사노동
경력과의 단절 이거나 슈퍼우먼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외에
또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결혼전 남자들 상에서 밥을 먹었던 , 직장에서 어느정도 성공한 위치까지 올랐던
여성은 결혼후에는 아이에게 명절에는 시댁에 먼저 가야 한다고 가르치게 되고
아무리 바빠도 남편 아침상은 꼭 차려주고 출근하는 아내가 되어야 하는게
부당한게 아닌가?라는 의문을 갖는것.
무언가 잘못되었다 라고 이야기 하는것.
이런것이 페미니즘의 시작이 되는게 아닐까 싶어요.
물론 궁극적으로는 억압받고 있는 모든 젠더들의 해방이 목표가 되겠지만요...
저도 페미니스트는 아닙니다. 아직까지는요.
단발머리님 말씀처럼 모르는게 너무 많아 제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겠어요.

에이바 2015-06-25 11:03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 댓글에 줄 섭니다..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들이 낯설어지는 것, 의문이 생기는 것- 그것이 페미니즘의 시작이란 말씀에 동의합니다.

단발머리 2015-06-25 13:35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아무개님.

남자들은 결혼 후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느끼고 실제로도 그런것 같아요.
여자들은 삶의 질이 낮아지고 실제로도 그렇게 대답하구요.

출산 후에 직장일을 계속하려는 여자들은 직장과 가정에서 이중으로 노동해야 하구요.
그렇다고 집에 있는다고 편하냐.
그것 또 아니더라구요. 집에 있으면 일단 경제적으로 독립이 안 되니 불안하기도 하고, 또 경력도 단절되기 때문에 가정에 더욱 매인 형국이 될 수 밖에 없더라구요. 그런 경우, 자신의 영향력이 최대한 발휘되는 지역의 최대치가 가정이 되는 거니까요. 남편을 감시하고, 아이를 쪼고. 매일 집 치우고, 아이들 교육 정보에 혈안이 되고.
그 경우에도 개인으로서의 `나`는 없는 거죠.
나는 ** 엄마일 뿐이니까요.

갈길 멀어 조금 막막하기는 한데, 은근 호기심이 막 생기네요.
나는, 아무개님 뒤를 바짝 따라가야지, 하고 있는데, 워낙 읽는 속도가 느려서요... 걱정 조금...

단발머리 2015-06-25 13:37   좋아요 0 | URL
에이바님,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들이 이미 낯설어지기 시작해서요.
의문도 조금씩 생기구요.
시작이 제대로 되고 있군요.^^

줄은 제가 먼저 섰네요. 에이바님 서재에서...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