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스테인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싱가폴에 갔을 때다. 신혼여행과 괌으로의 짧은 여행을 빼면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던 나는 말 그대로 간만의 해외여행에 잔뜩 들떠 있었다. 싱가폴은 어디에 가나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고, 구경할 곳도 많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구경거리 중에 제일 재미있는 구경은 뭐니뭐니해도 ‘사람 구경(?)’이었다.

대부분의 싱가폴 사람들은 중국계이다. 우리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말할 때, 누가 기분 나쁜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외양상으로는 한국인과 비슷하다. 인도에서 온 사람들이 있고, 취업을 위해 말레이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있다. 관광 온 백인들도 자주 눈에 띄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종족 파악이 어려운 사람들(죄송합니다.)도 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 내 시선을 잡아끈 사람들은 단연 인도인이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새공원인 주롱새공원에서 특히, 인도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젊은 남자 한 명, 여자 2-3명, 그리고 아이들로 구성된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많았다. 인도 전통 의상인 사리 또는 사르와즈 카미즈를 입고, 곱게 곱게, 정말 곱게 곱게 머리를 땋아 늘어뜨린 모습은 너무나도 예뻤다. 인도의 젊은 처자도 이뻤고, 인도 아주머니도 이뻤으며, 인도 할머니도 이뻤다.

하지만, 그 중에 제일은 주롱새공원 푸드코드의 한 점원이었다. 카레와 흰 쌀밥, 그리고 또띠야처럼 생긴 넓적한 빵을 주문하러 계산대 앞에 섰을 때,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영어를 못해서라고 생각하면 적당하겠다.) 너무 이쁜 인도 아가씨, 정말 너무 예뻤다. 까만 피부는 반짝반짝 자체발광, 눈은 보석처럼 빛나고, 코는 얼마나 오똑한지, 그려놓은 듯한 입술까지. 완벽한 얼굴, 완벽한 비율이었다. 내가 이미 서구적 미인형에 길들여져 있다는 걸 전제하고서라도 정말, 너무 이뻤다. 말을 걸고 싶었지만, 그 아가씨는 조금 피곤해 보였고, 그리고 많이 바빠 보였다. (영어를 못해서라고 생각하면 적확한 판단이다.) 자리로 돌아와, 동생에게 말했다. 야, 진짜, 진짜 이쁘다. 어쩜 저렇게 이쁘냐. 동생이 말했다. 이쪽 애들이 화장 다~~ 하고 나온 것보다, 쟤네 세수만 하고 나온 게 더 이뻐. 왜 아니겠는가, 나는 까만 그녀에게 완전 반해버렸다.

한국에 돌아와 ‘세계의 인종’을 검색해보았다. 인도인은, 이렇게 예쁜 인도인은 도대체 무슨 종족이냐. 코카서스인종, 아르메니아인종, 몽골인종, 니그로인종, 말레이인종, 오스트레일리아 인종.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검색에 검색을 계속하다가 코카서스 인종, 흔히 백인종이라고 통칭되는 이 인종의 피부색이 다 새하얀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인도인들의 선조 중 아리아인이 있는데, 인도․아리아인은 키가 크고 피부는 백색에 가깝고 코가 높고 눈이 깊숙한 용모로 유럽인과 가까운 특징을 보이며, 현재 인도 인구의 70%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추측건대 내가 만난 어여쁜 아가씨는 대부분의 인도인처럼 혼혈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피부가 까만 인도아리아인이었을 것이다. 동생이 말한 ‘검은 백인’이 맞는 말이었다는 걸 확인한 셈이다.

나만 사람구경을 하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도, 우리를 구경했을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젊은 남자, 젊은 여자, 아이 둘. 외모는 싱가폴 사람과 비슷한데, 복장은 너무 자유스러운, 관광객 같지 않은 모습들. 우리도 그들을 구경하고, 그들도 우리를 구경했을 테다. 제일 재미있는 건, 역시 사람 구경이다.

 

아하, 이제 책 이야기를 해야겠다. 잠깐, 주스 한 잔 마시고.

『휴먼스테인』은 내 진정 애정하는 필립 로스의 소설이다. 주인공은 일흔 한 살의 남자로 최근에 아내와 사별한 전 대학학장이자 저명한 고전학 교수 콜먼인데, 그는 요즘 사랑에 빠져있다. 

    

콜먼은 더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자유롭게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미래가 없으니까. 콜먼은 일흔한 살이고 그 여자는 서른네 살이니까. 콜먼이 그런 관계에 뛰어든 것은 뭔가를 배우거나 계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험을 하기 위해서다. 콜먼이 그런 관계에 뛰어든 것은 포니아와 마찬가지로 즐기기 위해서인 것이다. (『휴먼스테인』 1권, 61쪽) 

 

콜먼이 사랑에 빠진 여자는 포니아라는 젊은 처자로서, 콜먼이 전에 학장으로 있던 대학의 청소부다. 콜먼과는 정치적, 사회적, 정신적으로 그 어떤 유사성도 발견하기 어려운 여자다. 그는 그녀에게 완전 빠져버린다. 일흔 한 살 남자와 특별한 관계를 갖게 된 포니아를 위해 콜먼의 모습을 잠깐 보여주는 게 예의라 생각된다.

 

콜먼이 몸에 걸친 거라곤 청반바지와 운동화가 전부였다. 뒤에서 보니 이 일흔한 살 먹은 남자는 채 마흔도 안 되어 보였다. 그것도 날씬하고 건강미 넘치는 마흔 살 말이다. 콜먼의 키는 기껏해야 5피트 8인치를 약간 넘었고, 근육이 울툭불툭한 체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몸 안에 엄청난 힘이 있었고, 고교 운동선수 같은 활력과 기민함, 생기라고 불리기도 하는 적극적인 행동력도 여전히 있었다. ... 전반적으로 콜먼은 나이에 비해 말쑥하고 매력적인 외양을 유지하고 있는 편이었다. 유태인치고는 코가 작은 편이라 턱 쪽에 무게감이 실리는 얼굴이었고, 사람들이 백인으로 착각하는 피부색이 옅은 흑인에게서 느낄 수 있는 살짝 모호한 분위기의 누르스름한 피부에 머리가 곱슬인 유태인이었다. (『휴먼스테인』 1권, 32-3쪽)

 

매력적인 용모의 콜먼, 그리고 신비한 느낌을 주는 포니아. 두 사람을 묶어주는 여러 가지 요소 중 가장 강력한 기제가 섹스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작가의 분신 주커먼은 말한다.

섹스는 언제나 삶의 일부인데 “아니, 삶의 일부라고 할 수 없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섹스라는 오염물은 인류를 이상으로부터 분리하고 우리의 물질성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우리를 구원하는 타락인 것을. (『휴먼스테인』 1권, 68쪽)

 

그동안 콜먼이 가지고 있던 사회적 명망, 노력하지 않아도 바쳐졌던 권위, 사려 깊은 존경의 표현은 모두 하찮은 것이 되어버린다. 그녀를 선택함으로써 콜먼은 자녀에게서, 친구에게서, 변호사에게서,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에서 비난과 지탄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다.

 

포니아가 막 떠나려고 할 때, 콜먼은 마침내 자신이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이 여자를 갈망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딸도, 아들들도, 포니아의 전 남편이나 델핀 루도 상관없었다. 이것은 단순히 삶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이 걸린 문제다, 콜먼은 생각했다. ... 생기 넘치는 아이 넷을 키우는 데, 전투와도 같았던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데, 고집불통인 동료 교수들을 움직이는 데, 그리고 이천오백 년쯤 묵은 문학작품을 매개로 그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 아테나 대학의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무기가 되었던 성실함으로부터 자신을 풀어 놓을 때였다. 이제 이 단순한 갈망을 지침으로 삼아 몸을 내맡겨야 할 때였다. 저들의 비난을 넘어서자. 저들의 고발을 넘어서자. 저들의 평가를 넘어서자. 죽기 전에 저들의 역겹고 멍청하고 분노에 찬 비난이 지배하는 구역 바깥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자. 콜먼은 스스로를 타일렀다. (『휴먼스테인』 1권, 106쪽)

 

이것이 일흔 한 살의 콜먼, 더 잃을 것이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다.

마지막 사랑 포니아에게 그는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했을까. 물론 콜먼은 그의 비밀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포니아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는 그녀를 포기할 수 없다. 그녀의 전남편 레스터 팔리로부터 살해의 위협을 당하는 순간에도, 그는 그녀에게 집착할 수 밖에 없다. 이 세상에 그와 비밀을 나눌 사람은 오직 그녀, 포니아 단 한 사람 뿐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수려한 외모의 엘리트로 그려지는 혼혈 흑인 주인공은 이른바 ‘비극적 혼혈(tragic mulatto)'로서 첫 미국 흑인소설인 『클로텔』에서부터 전통적으로 등장해온 가장 대표적인 한 유형이다.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 <해설> 천승걸, 204쪽)

 

콜먼은 외모로 보았을 때, 흑인인지 백인인지 구별이 모호한 사람이다. 사춘기 시절, 콜먼은 누군가 일부러 묻지 않는다면 굳이 자신을 밝힐 필요가 없다,는 권투 코치의 조언을 듣는다. 군대 입대 지원서에는 자신을 ‘백인’이라고 표기해 백인으로서 군생활을 했지만, 술을 마시고 사창가에 들어갔을 때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쫓겨나고 만다. 미국 남부지방에서의 ‘한방울 규칙(one-drop rule; 조상 중에 흑인의 피가 조금이라도 섞였으면 흑인으로 간주했던 제도)’에 의하면, 그는 흑인이다. 피부색이 하얀, 흑인. 하얀 흑인. 비극적 혼혈.

콜먼은 사랑하는 여자에게 자신의 존재를 솔직히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 한 때 사랑했던 흑인 여성이 있기는 했지만, 그녀와 결혼할 수는 없었다. 그녀로서는 만족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여성, 마음에 드는 백인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콜먼은 자신의 가족과 절교한다. 오직 백인으로서만 살기로 결정한 것이다.

 

’비극적 혼혈’이란, 1840년부터 19세기와 20세기 미국 문학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캐릭터이다. 이들은 ‘백인 세계’나 ‘흑인 세계’ 어느 곳에서도 적응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슬프다 못해 자살충동을 느끼기도 하는 삶을 살 것으로 여겨지는 혼혈인, 물라토를 말한다. (Wikipedia, 'tragic mulatto')

 

콜먼은 ‘백인’으로 살기로 선택한다. 어머니와 작별인사를 하고, 형과 절교한다.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에게 자신이 가공한 선조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스스로를 백인으로 설정한다. 그의 인생 말년에 찾아왔던 비극은 그의 선택에 대한 가장 적확한 ‘응답’이다. 오만하고, 자신감 넘치며, 지적이고, 전혀 흠 잡을데라고는 없는 완벽에 가까운 인간의 전형, 콜먼 실크. 그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이 남자는 다르다.

두 번째 학기가 끝나갈 무렵의 어느 날, 교장 선생님이 우리 반 교실로 들어와서 선생님에게 뭐라고 이야기한 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이렇게 말했다. “백인 학생들은 잠시 모두 일어서주세요.” 나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일어섰다. 그러자 선생님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내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넌 잠시 앉아 있다가 나중에 다른 아이들이랑 함께 일어나라.” 나는 선생님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선생님, 뭐라고 그러셨어요?”라고 물었다. 선생님은 좀 더 부드러운 어조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지금은 앉았다가 나중에 다른 아이들이랑 함께 일어나.“ 나는 멍해진 채로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때 흑인이었던 사람의 자서전』, 19쪽)

 

그 날 저녁, 눈물로 범벅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비로소 알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 굳게 믿고 있던 어머니의 생김새가, 어머니의 피부색이 자신이 어울리는 많은 사람들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걸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때, ‘나’에게는 사랑하는 여인이 생긴다. ‘나’는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또 다시 망설인다. 그도 콜먼처럼 그녀를 잃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걸 이해했다. 그래서 그녀를 내 품에 안고 싶은 욕망을 물리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 순간 수많은 행복의 희생제단이 되어온 그것, 즉 ‘의무’라는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녀의 손을 내 손에 꼭 쥔 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래요, 정말 사랑해요. 하지만 당신한테 해야 할 말이 더 있어요.” 그러고는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녀의 손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를 올려보았을 때 그녀는 마치 처음 보는 물건이기라도 하듯 황량한 시선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이상한 눈빛 아래서 나는 내 피부가 검어지고 얼굴이 두툼해지고 머리가 곱슬머리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 그러더니 (그녀는) 머리를 피아노에 떨어뜨리고 가냘픈 몸이 떨리도록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한때 흑인이었던 사람의 자서전』, 192쪽)

 

두 사람은 오로지 사랑의 힘으로 둘 사이의 장애를 극복한다. 결혼을 하고 아주 예쁜 아이들을 낳는다. 이렇게 『한때 흑인이었던 사람의 자서전』은 해피엔딩이다.

『한때 흑인이었던 사람의 자서전』도 물론 그렇지만, 『휴먼스테인』은 다양한 층위를 보여주는 아주 훌륭한 소설이다. 사회적 시선을 뒤로하고 일흔 하나의 나이에 자신의 딸보다 어린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이 전쟁터에서 돌아와 미국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이 얼마나 처절했는지 보여준다. 섹스를 섹스 이상의 것으로 만들지 말라는 포니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글자를 읽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내가 읽은 얼마 되지 않는 책들 중, 꼭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마지막으로, 여러 번 읽었던 문장을 적어본다.

살아 있으라,고 말하는 이 잔잔한 외침은, 단순히 견디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으라,고 말하는 이 조용한 외침은, 평화로운 목가적 풍경 속에서 들려온 이야기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 외침은 울림의 강도가 결코 작지 않다.

인간 유형들 간에 나타나는 광범위한 불균형에 대한 나의 매혹, 성관계 방식이 지닌 비획일성과 가변성과 넘치는 불규칙성에 대한 나의 매혹, 인간과 소라는 대단히 구별되면서도 거의 구별되지 않는 우리에게 살아 있으라고, 그것이야말로 난제이자 삶이 지닌 무의미한 의미심장함이니, 단순히 견디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으라고, 계속해서 받고 주고 먹이고 젖을 짜고 진심으로 인정하라고 하는 명령에 대한 나의 매혹, 이 모든 것이 수만 개의 세세한 인상으로 현실처럼 기록되었다. (『휴먼스테인』 1권, 89쪽)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2-01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인이 지나가면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해요. 피부색과 외형이 우리나라 사람들과 달라서 시선을 많이 받기 쉽잖아요. 괜히 뚫어지게 쳐다보면 외국인 입장에서는 불편하게 느낄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15-02-01 19:3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럴때가 많아요.
척 봐도 관광객인 경우는 눈이 마주쳤을 때 그냥 가볍게 미소지을 수 있는데(어제 지하철에서 그랬거든요.)
이 곳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의 경우에는, 뭐랄까, 그 사람들도 한국 사람들 같아요.
모르는데 아는 척 하면 이상하게 여겨지고요.
cyrus님 말씀처럼 그런 시선을 싫어할 수도 있구요.

다락방 2015-02-01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먼 스테인 짱 재미있겠어요!! >.<

단발머리 2015-02-02 08:40   좋아요 0 | URL
네, 완전 킹왕짱 재미있어요.
저는 최근에 읽은 필립 로스의 작품 중에는 이 작품이 제일 좋아요.
곧 바뀔지도 모르지만요. >.<

라로 2015-02-02 0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페이퍼 읽고나니 휴먼스테인 안 읽어도 읽은 것 같아요~~~~ㅋㅎㅎ

단발머리 2015-02-02 08:48   좋아요 0 | URL
아.... 아닙니다요.
실제로 읽으시면 제 페이퍼 100배의 즐거움을 얻으실 수 있을거예요, 비비아롬나비모리님.

참, 비비아롬나비모리님, 아롬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비비아롬나비모리님을 옛날부터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좋아서요. 헤헤, 아롬님~~~

아무개 2015-02-02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방울 규칙`이 미국 남부에서만의 규칙인가봐요?
전 미국의 법이나 뭐 전체가 다 인정하는 규칙인줄 알고 있었다는 ㅎㅎ

저도 아롬님처럼 단발머리님 페이퍼 읽은걸로 휴먼스테인은.....^^:::::


단발머리 2015-02-02 12:06   좋아요 0 | URL
저는 이 `한방울 규칙`을 정확히는 모르는데요. 이 책 읽으면서 찾아봤는데, 사전에는 그렇게 나와있더라구요.

미국에 안 가본 제 생각으로는요.
외양이 중요한것 같아요. 일단 우리가 오바마를 보면 딱! 흑인으로 인식하잖아요. 헷갈릴게 없지요.
근데, 주인공 콜먼 같은 경우는 사실, 가족들 모두 흑인이고, 책에는 `피부색이 옅은`으로 나오던데요.
흑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콜먼은 백인으로 살고 싶어서 백인 아내를 맞이했구요. 아이들은 모두 백인. 일단 겉으로는요.
과거를 숨긴데 성공하죠.

아.... 읽으셔야됩니다. 넘넘 재미있어요.

icaru 2015-02-02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읽고 싶어요!!!
두권짜리인거예요??

단발머리 2015-02-02 12:06   좋아요 0 | URL
읽으시면 후회없으실겁니다.
두 권입니다. 근데 두껍지는 않구요.

사람들이 다 아는 필립로스를 전 작년 말에 발견해서요.
하아.... 하고 있습니다, 요즘에요^^

icaru 2015-02-02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모.. 이름만 익숙한 작가입네당 ㅋㅋ

단발머리 2015-02-02 12:11   좋아요 0 | URL
저는 얼굴에 익숙해지고 싶은 작가예요.
제 스타일입니다. 푸핫~~~~~~

책읽는나무 2015-12-31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북플에 님의 요글 읽어보라라고 뜨네요?^^
필립로스!!
저의 2016년 도전해볼 작가에요
님 덕택입니다^^

단발머리 2015-12-31 19:30   좋아요 0 | URL
아핫.... 그렇군요.^^
이 책을 읽으며 행복하게 책장을 넘겼던 때가 어제같은데, 올초에 읽었던 책이네요.
정말.... 시간 이렇게 빨리 가는건가요?

책 읽는 나무님도 필립 로스를 좋아하시게 될지, 어떤 책을 가장 좋아하실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네요. ㅎㅎ
 

1. [유엔미래보고서 2045]

유엔미래보고서는 될 수 있으면 챙겨보려고 하는 편이다. 미래를 예측해서 그에 대응하기 위해서, 라기보다는 그냥 단순하게 궁금해서이다.

 

 

 

미래 연대표에서는 이런 대목이 눈길을 끈다.

2020    생각만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된다.

- 생각도 마음대로 못 한다.

2025    무료 인터넷의 보급으로 한반도의 통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 현재 한국의 고령화 진행 속도로 가늠하건대 통일 시기는 이보다 훨씬 더 앞당겨 질 수 있다고 본다.

2035     전 세계적으로 온라인 강좌가 활성화되면서 한국 대학의 절반이 사라진다.

- 대학에 들어갈 학생이 없으니 당연한 일일 테지만, 웬지 속은 느낌이다.

2045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시점, 특이점이 온다.

 

더 이상 예측할 수 없는 지점, 미래학, 미래예측의 방점이며, 한편으로는 마침표가 되기도 하는 시점을 싱귤래리티 singularity, 특이점이라고 말한다. 학자들마다 이 시점은 조금씩 다르게 보고 있지만, 대체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시점을 특이점으로 보며, 시기는 2045년이다. (머리말)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고, 그래서 현재로서는 예측조차 불가능한 미래가 곧 다가온다. 2045년. 2045년이면 30년 뒤인데, 나는 할머니가.... 할머니가 되어 있을테지만, 아롱이, 딸롱이는 한창 때다. 이 아이들의 미래는 좀처럼 알 수가 없다.

저번주 [노유진의 정치카페] 2부에서는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가 출연했다. 대부분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일들이 이제 곧 우리의 실생활이 된다고 한다. 무인자동차는 이미 안전성 검사를 마친 상태라 5년 이내에 상용화 될 거라 했고, 인간의 일을 대신해주는 로봇 덕분에(?)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거라 했다.

 

제일 두려운 건, 스스로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우리 인간들보다 더 똑똑해졌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우리 인간을 지구에서 공존이 불가능한 존재로, 아니 지구에서 불필요한 존재로 최종 판단한다면, 우리 인간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상대는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존재들이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좀처럼 알 수가 없다.

 

 

 

2.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재미있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나는 솔직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는 시간들이 참 좋았다고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솔직한 사람이다.

은희경의 말처럼 이 소설은 천천히 읽을 수 있는 낯선 글이다. 과거를 잃어버려 자기 자신을 찾으려 애쓰는 이 불운한 남자를 따라가다 보면 더욱 그렇다. 모든 소설이 그렇지는 않지만, 어떤 소설은 첫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 소설은 첫 문장이 인상 깊은 그런 소설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9쪽)

 

 

 

3.

[낭송 열하일기]

신간이 나오면 무조건 읽는 작가 중의 한 명이 고미숙님이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글을 통해 만난 그녀는 화통하고, 털털하며, 정확하다. 그리고 부지런하다. 이번에 새로 기획된 낭송 시리즈는 그녀가 이전 책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던 ‘고전 낭송’ 의 워크북 격이다. 소리 내어 읽거나 암송하면 더욱 좋다고 안내되어 있다. 나도 처음에는 작게 소리내어 읽어 보았으나, 음독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금세 묵독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동청룡에서 다섯 번째 책 ‘낭송 열하일기’를 구매했는데, 풀어쓴 이들의 노고 덕분에 재미있게 읽고 있다. 전해 듣던 이야기를 읽어나갈 때의 재미도 솔솔하다.

 

심유붕이 물었다.

“선생은 이걸 베껴 무얼 하시려는 건가요?”

“내 돌아가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번 읽혀 모두 허리를 잡고 한바탕 크게 웃게 할 작정입니다. 아마 이글을 보면 다들 웃느라고 입안에 든 밥알이 벌처럼 튀어나오고, 튼튼한 갓끈이라도 썩은 새끼줄처럼 툭 끊어질 겁니다.” (74쪽)

 

그 덩치에, 그 외모에, 고향 가서 친구들에게 들려준다고 종이를 준비해 땀을 뻘뻘 흘리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베끼고 있는 박지원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의 땀이 있었기에, 나는 오래전 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렇게나 재미있게 읽고 있다.

 

 

4.

[Becoming Jane]

내게 온 이 책이 이것보다 더 두껍다고 했을 때, 내가 그 두꺼운 책을 다 읽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쪽수 확인을 안 했다 하더라도, 이건 너무하지 않나 싶다. 얇아도 너무 얇다. 그래서 빛의 속도는 아니지만,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로 이 책을 읽어나간다.  

 

 

 

 

 

 

 

 

 

그나저나 이 책과 영화에서 제일 아련한 장면이다. 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Finally, she took Tom's hand and asked him sadly, 'How many brothers and sisters have you got in Ireland?'

Tom waited a second before answering. 'Enough,' he said nervously. 'Why?'

She took the letters out of his pocket, saying, 'What are their names?'

He suddenly realised that she knew about his large family. He was unable to speak....

‘Don't think. Do you love me?'

She did not want to answer, but finally said, 'Yes. But if our love destroys your family, it will destroy itself. It seems that we were not meant to be together.' (44쪽)

 

사진을 올리느라 제임스 맥어보이를 한참 들여다 보았더니 그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는 오늘 내 꿈에 나타날 것인가, 나타나지 않을 것인가?  

그는 내게도 미소 지을 것인가, 나를 모른 척 할 것인가?

 

혹시나 해서 굳이 다시 한 번 밝혀둔다.

내가 기다리는 사람은 [비커밍 제인]에서 톰 리프로이를 연기했던 제임스 맥어보이다.

진짜 톰 리프로이가 아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1-26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묵독에 익숙하다보니 혼자 방안에 있어도 낭독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어요. 이상하게 목소리 때문에 독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ㅎㅎㅎ

단발머리 2015-01-26 11:52   좋아요 0 | URL
네, 아주 어려운 책이 아닌데도 자연스럽게 묵독을 하다 보니까요.
음독을 10분만 해도 목이 메이고... ㅋㅎㅎ 그러네요.
그러고보니 <낭송 열하일기>도 겨우 두 장만 음독으로 읽었네요.

2015-01-26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27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15-01-26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세대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 예측이 어렵다는 것 다름아닌, 그 비관성 때문에 정말이지 절망이고, 불안한 일입니다... 아후...

인간의 일을 대신해 주는 인공지능을 소유한 자, 혹은 인공지능을 통제하는 그들이 누구냐에 따라 대다수가 불필요한 잉여의 존재로 전락할까요?
어후.. 상상이 두려워지는...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제목이 너무 근사하여서 읽었지요.. 11년 전에 읽어서, 책에 대한 기억이라는게 불꺼진 상가를 걷는 것처럼 침침하기 그지 없지마는요~제가 이책을 읽었다는 게 사실일까요? 아니면 내가 그 속에 미끄러져 들어간 어떤 다른 사람의 독서감상일까요?..

단발머리 2015-01-27 09:55   좋아요 0 | URL
노유진 방송에서 김대식 교수는 그런 말을 하더라구요.
2045년 이후, 인간보다 지능이 높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로봇이, 인간을 봤을 때,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아, 인간 참 필요없는 존재구나, 지구에 해를 끼치는구나, 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뭐, 영화 같은 일들이 실제로도 일어날 수 있을거라 생각하니, 조금 무섭기도 하구요.
평균 수명 늘어서 오래 살것 같은데... 쩝..합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11전에 읽으셨다니, 너무 근사해요. 저는 모디아노를 안지 얼마 안 되었거든요.
신간입니다, 저한테는^^

icaru 2015-01-26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그리고, 20세기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미래 사회에는 학교가 없어질 것이라 예언했다던데,,, 온라인 강좌 활성화와 맥락을 같이 할까나요?
이것도 참 그래요~ 미래 사회에는 웬만해서는 집밖을 나올 일이 없을 것 같은,, ;;;

단발머리 2015-01-27 09:57   좋아요 0 | URL
인간이 하던 일을 로봇이 대신하는 경우가 많고 자택근무도 많이 늘어날 테니까요.
학교에 안 가면, 집에서 화면으로 공부하는 건데, 그건 좀 아니다 싶어요.
학교에 가서 무언가 배우는 것도 있지만, 학교 가는 재미라면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랑 수다떨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맛이 있어야되는데, 집에서 혼자라면.... 별로일 것 같아요.

서니데이 2015-01-26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엔 미래보고서는 저는 작년에 나온 책을 읽었는데, 해마다 조금씩 숫자가 바뀌면서 미래에 대한 예측을 담고 출간되는 것 같아요. 알라딘에서 검색해보니까 몇 년간 나온 책이 있어요. 미래 예측은 지금의 시점에서 보는 거니까 실제로 그 시기가 되었을 때에 다시 이 책들을 보고 싶은 마음도 들어요. 그러고 보니, 저희집에는 고미숙님의 다른 책이 있는 것 같은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으니 한 번 찾아봐야 겠어요.
단발머리님, 페이퍼 잘 읽고 갑니다. 편안한 저녁 보내세요. ^^

단발머리 2015-01-27 10:01   좋아요 0 | URL
유엔 미래보고서, 저는 이전에는 빌려서만 읽다가 올해는 구매했는데, 아이들이랑 이것 저것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있고 좋더라구요.

예전에는 가능할까 생각하던 일들이 요즘엔 일상이니까요. 핸드폰으로 텔레비전 보고, 핸드폰으로 사진찍고 하는 것들이요 ㅎㅎ 앞으로 더 신기한 일들이 많이 벌어질 것 같아요. 기대됩니다~~
 

 

 

 

 

 

 

장담하건대, 그렇게 못생긴 아기는 여태 본 적이 없었다. 얼마나 못생겼는지 뭐라고 할말이 없었다. 내 입에서는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병이 있다거나 기형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런 건 하나도 없었다. 그냥 못생겼을 뿐이었다. 엄청나게 큰 붉은 얼굴에 툭 튀어나온 눈, 널따란 이마와 비대한 입술, 목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었고 살찐 턱은 서너 겹에 달했다. 턱의 주름은 귀밑까지 이어졌고 두 귀는 민둥머리에 툭 튀어나와 있었다. 손목도 온통 살투성이였다. 팔과 손가락에도 피둥피둥 살이 붙어 있었다. 못생겼다는 말조차 녀석에게 영예로울 정도였다. (34쪽)

 

그제는 맥도날드에서, 어제는 Kevin's Pie에서, 그리고 오늘은 스타벅스에서 책을 읽는다.

 

 

 

 

 

 

방학에는 교직원 자녀를 대상으로 한 English Camp가 있다. 말은 Camp지만 그냥 하루에 한 시간씩 이루어지는 영어 수업이다. 남편은 우리가 오는 게 귀찮은건지, 아니면 지겨운건지, 아니면 싫은건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수업이 별로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무조건 참석하겠다고 했다. 수영과 로봇토리 그리고 우주항공이 아롱이 과외 수업의 전부인데, 공짜로 영어 배우는 기회를 왜 놓치느냐 했다. 남편은 농구, 도서관 투어, 요리수업 등이 맘에 안 든다고 계속 얘기했지만, 나는 원어민에게 “Hi!"나 원 없이 해봐야한다며 강하게 밀어붙였다.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한 번 돌린다. 빛의 속도로 돌린다. 머리감고 화장하고 옷을 입는다. 아이들과 함께 학교로 간다. 아롱이는 수업 보내고, 딸롱이와 맥도날드로 향한다. 밀크쉐이크와 컬리후라이를 시키고, 넉달째 읽고 있는 The Giver Quartet을 읽어준다. 짬이 나면 내 책을 잠깐 읽는다. 아롱이와 남편이 나오면 점심을 먹는다. 학교 앞 도서관에 들어간다. 1시간 자유시간을 주고 나서, 아롱이 방학 숙제를 도와준다. 3시 반에 문화센터로 간다. 수영을 하고, 발레를 한다. 집으로 돌아온다.

저번주와 이번주의 생활이다. 아이들 방학이라 점심 차리기 싫어서 나가는거냐,고 말하지 말아 달라,고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지내고 있다. 즐거운 시간이다.

모두 다 행복한 시간이지만, 맥도날드에서의 시간이 즐겁다. 너희들은 공부를 하거라, 엄마는 책을 읽으마, 하는 이런 시간 말이다.

정말 못생긴 아기였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버드와 올라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아마 그들은 못생겼다고 해도 어쨌든 괜찮아,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 아기니까. 지금은 이런 시기를 거치는 것뿐이지. 조만간 다른 시기가 찾아올 거야. 이런 시기도 있고 다른 시기도 있는 것이니까. 결국에는, 그러니까 모든 시기가 지나가고 나면, 모두 괜찮아질 거야.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39쪽) 

 

첫 번째 단편 <깃털들>은 한 달 전쯤 읽었는데도, 기억에 오래 남았다. 나와 아내는 직장에서 알게 된 버드의 집에 초대를 받아 저녁식사를 함께 하게 된다. 그날 저녁, 나와 아내는 집안을 걸어 다니는 조이라는 이름의 공작을 보고, 흉측한 치열 석고본을 보관하고 있는 버드의 아내 올라를 보고, 그리고 너무나도 못생긴 그들의 아기를 보게 된다. 할 말이 없어지는 상황이 이어진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그 날 저녁, 나는 내 인생이 여러모로 썩 괜찮다고 느꼈다. 내가 느낀 걸 프랜에게 말하고 싶어서라도 나는 어서 둘만 있고 싶었다. 그 저녁에 내게는 소원 하나가 생겼다. 식탁에 앉아서 나는 잠시 두 눈을 감고 열심히 생각했다. 소원이란 그날 저녁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것, 혹은 다시 말해 그날 저녁을 놓아버리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40쪽)

 

좋은 시간도, 나쁜 시간도 결국에는 지나가게 되어 있다.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의 행복한 순간이란 대부분 극적인 경우일 테다. 대학에 붙었을 때나, 회사에 취업했을 때,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 인생의 어느 순간, 덜 재미있고, 덜 활기찬 순간이 다가왔을 때, 나는 그제를, 어제를, 그리고 오늘을 기억하고 싶다.

아이들은 제법 자라 스스로 옷을 챙겨입고, 양치하고, 혼자 신발을 신을 수 있고, 걸을 때 손을 잡아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 어려 밥을 차려줘야 하고, 옷을 사 줘야 하고, 차들이 빨리 다니는 교차로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 게 분명한 키 작은 아이의 손을 잡아 줘야한다.

나는 향수 뿌리고 멋내고 집을 나서는 딸애에게 백화점 같이 가자고 조르지 않을 예정이다. 나는 말끔하게 차려입고 친구 만나러 간다는 아롱이에게 영화 보러 가자고 매달리지 않을 예정이다.

하지만, 바로 지금, 그 날의 할 일을 모두 마치고 엄마랑 숨겨둔 과자를 꺼내먹으며 <반지의 제왕> 복습하는 걸 제일 좋아라 하는 이 아이들하고 사이좋게 지내려 한다. 그리고 <깃털들>의 나처럼 열심히 생각하려 한다.

지금 이 순간을 잊지 말아야지.

행복하고 즐거운 이 시간을 잊지 말아야지.

오래 오래 기억해야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icaru 2015-01-15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보고,, 오늘 무슨 기념비적인 일이 있으셨던갈까 함서~ 들어왔어요!!
소소한 행복들~~,, 상큼상큼 고소고소~해요.. ㅋㅋ
아이들이 자기들의 행복을 찾아 가느라,,, 더이상 곁을 맴돌지 않을 때까지,,
그대들(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내겠다고,, 저도 조그맣게 속으로 외쳐 보아요! ㅎㅎ

단발머리 2015-01-17 10:01   좋아요 0 | URL
소소한 행복이 가득한 한 주였어요.
다음주는 별다른 계획이 없어 아이들과 싸우지 않고 삼시세끼 밥 차려먹는게 목표입니다^^

아직은 아이들이 어리니까요, 모든 면에서 엄마를 찾네요.
찾아주니, 좋아요. 아직은요~~ 헤헤
icaru님도 외치신 그대로 행복하게 지내시기를요~~~

2015-01-22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22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000 작가님, 000 감독님, 추운데 같이 고생한 스탭분들, 000 대표님, 그리고 항상 힘을 주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라고 연말시상식에서는 다들 이야기하더니만.

나는 뭐라, 해야 하나.

3번의 도전 끝에 드. 디. 어. 신간 평가단이 되었습니다. 이 기쁨을 가족들과(가족만?)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성실하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

 

 

 

 

 

첫 번째 책은 빨간책방에서 다루어졌던 책들 중 외국소설 7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은 책이다.

<출판사 책소개>

숭고하고 윤리적인 속죄―《속죄》, 이언 매큐언

우연과 운명, 권태와 허무, 그 가볍지 않은 무게―《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마지막, 당신이 만나게 되는 진실은―《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7권의 소설에 대한 즐거운 책수다는 아직 읽지 않은 책에 대한 흥미로운 ‘맛보기’의 시간이며, 이미 읽었던 책들은 다시 읽게 만드는 놀라운 책선전의 장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는 ‘핑크빛 미래’를 약속하고, 이미 읽은 책에 대해서는 옛 애인을 기억하는 듯한 즐거운 추억의 시간을 제공한다.

 

2.

 

 

 

 

 

시인 이성복의 아포리즘을 모아 엮은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2001)가 새로 나왔다. 이성복 시인의 시집을 하나씩 사모아 읽고 있는데 이 귀한 산문집의 개정판이 아주 반갑다. 나는 새 책을 좋아한다.

 

3.

<출판사 책소개>

고발 뉴스 객원 사진기자 이동호가 유가족의 동의를 얻어 초상권을 허락받고, 세월호를 영원히 기억하자는 사진집을 펴냈다. 유시민 작가, 국민 TV 김용민 PD, 대한 성공회 김현호 신부, 방송인 김미화 등 많은 사람들이 글로서 이 책에 참여했는데, 이 책의 처음과 끝은 하나다. '세월호'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세월호의 새로운 기록'인 것이다.

 

 

세월호에 대한 책이다. 앞으로도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될거라 생각한다. ‘거위의 꿈’을 가졌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버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을 테고, 파도 파도 계속되는 업계의 비리와 무능한 정부의 비호와 그것을 밝히려는 노력 또한 끝이 없을테니 말이다.

 

4.

데뷔때의 동영상 속에서도 신해철은 20대 초반의 풋풋함과 함께,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당찬’ 이면을 보여준다. 이제 우리 곁을 떠나버린 마왕의 마지막 이야기다. 그렇게, 그렇게도 신해철을 좋아하던 친구가 자꾸만 생각난다.

 

 

 

 

5.

 

이 책에 대해서는 저자 소개가 필요할 듯 싶다.

<출판사 책소개 >

저자 임헌우는 교수라는 직과 디자이너라는 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레드닷 커뮤니케이션 어워드에서 2011년과 2012년 연속으로 본상을 수상하였으며, iF커뮤니케이션어워드 2013과 그래픽디자인 USA에서도 본상을 수상했다. 계명대학교 최고의 명강의에 선정되기도 하였고, 탁월한 강의평가 결과로 ‘우수교육상’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학생들로부터 장난삼아 받은 ‘선생니므상’을 가장 자랑스러워한다.

 

‘버리는 것’이 어떤 것이냐에 대해선 금방 이해가 되지만, ‘스티브’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책을 읽어봐야 될 듯 싶다.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5-01-05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평가단 되신것 축하드려요, 자주 뵐 수 있을 것 같아 기대할게요^^

단발머리 2015-01-05 07:24   좋아요 1 | URL
아, 감사합니다.

신간평가단 꼭 되고 싶었거든요. 계속 미끄러졌는데, 이번에 성공해서 무척 기뻐요.
격려해 주셔서 감사해요, 열심히 해 볼께요.^^

아무개 2015-01-05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단평가단 축하축하요!! *^^*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에서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이 없는게 좀 놀라웠어요.
소설을 읽은건 아니지만 두 사람이 얼마나 침을 튀겨가며 칭찬을 하던지..

엄청나게 피곤한 월요일 오전입니다.
졸다가 상사한테 들켰어요 아우.......



단발머리 2015-01-06 19:31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사실, 저 아주 많이 기뻐요.
줌파 라히리의 소설은 아주 최근에 다루었는데, 그 편은 책을 읽고 듣고 싶어서 1부만 들었어요.
역시나 두 사람이 침을 튀기면서.... ㅋㅎㅎ

졸다가 상사한테 들키지 않던 화요일이었기를.... 바랍니다.

자성지 2015-01-05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 평가단 활동으로 책을 읽고 서평하는 가운데 행복한 생활 이으시길 바랍니다.

단발머리 2015-01-06 19:32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해요. 자성지님.
신간 평가단 활동 기대하고 있는데, 처음부터 마감일 간당간당하게 추천신간 페이퍼를 작성했네요.
열심히 해 볼께요, 불끈!

기억의집 2015-01-07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이성복 시인은 대학 시절에 엄청 좋아했던 작가였는데, 지금은 감성이 무뎌져서 그런가, 크게 와 닿지 않더라구요. 아직까지 황동규시인이나 최승자는(이상하게 최승자시인은 최승자라고 쓰게 돼요) 40이 휠씬 넘은 나이에도 읽어도 좋은데, 이성복 시인의 시는 딱 이십대 초반 그 때 읽었을 그 때 멈추고 더 이상 동반자같은 시인이 안 되더라구요.

단발머리 2015-01-12 07:52   좋아요 0 | URL
저는 사실 이제서야 이성복 시인을 읽고 있어요. 저는 20대엔 뭐 했을까요?
아직 시는 많이 어렵고 그래서, 앞으로도 많이 노력해야될거 같아요.

2015-01-12 0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12 0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5-01-13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놔드리고 갑니다.^^

단발머리 2015-01-14 19:26   좋아요 0 | URL
첫책 기다리고 있는데 이 마음으로 쭈욱~~ 해야될텐데.
사실 조금 걱정도 됩니다.
놓아두신 축하, 감사합니다.

[그장소] 2015-01-14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뭘..걱정까지야.지금처럼 하시면 되실텐데..!^^ 무리하고 욕심 내니 스트레쓰에 자연스런 글도 안나오고..뻣뻣하기까지..그러니.늘 하시던대로..저는 단말머리님..오래뵌것은 아녀도 내공이 있으시리라 믿어요.^^
응원할게요..언제나!!

단발머리 2015-01-17 10:04   좋아요 0 | URL
지금처럼보다 조금은 더 성실하게 해야될것 같아요. 내공은 없지만서도 조금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만약 열심히가 안 되면, 보통으로라도요.
응원, 감사해요, 그장소님^^

[그장소] 2015-01-17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어젠 쓴것 수정하느라 한권도 못올렸어요.
한번 날려먹고는 좀채 글맥을 못잡는 소년이온다..편..소녀가 와야..올려나?
한 살이라도 어릴때 쓰는건데..조금 후회.하기도..ㅎㅎㅎ

단발머리 2015-01-17 10:09   좋아요 0 | URL
내년보다는 올해 한살 어리시니, 지금도 늦지 않으셨어요,
라고 말하면 제가 나이 많아 보이지만, 사실 저도,,,,, 어립니다. ㅋㅎㅎㅎ

[그장소] 2015-01-17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근 억담이십니당..^^ 내년까지.소년이..
그 녀석 오라고 한편을...끄응..:-*
힘내야징..!!
 

 

 

 

 

 

 

1. 구매가 자랑스러운 책

나쓰메 소세키 시리즈는 8권까지 구매했다. [풀베개]만 다 읽은 상태인데, 현재 읽고 있는 [산시로]만 빼고, 책장 가운데에 7권이 나란히 모여 있는 모습이 얼마나 뿌듯한지.. 이제 한가로이 ‘소세키’를 읽을 일만 남았다. 읽자, 이제는...  

 

 

 

 

2. 아껴읽은 책 [신중한 사람]

이승우 작가님의 신작 [신중한 사람]을 아껴가며 읽었다. 주옥같은 단편들이다.

 

 

 

 

 

3. 빨리 읽은 책 [소설가의 일]

다음장이 궁금해 뒤로 미룰 수 없는 책이었다. 빠르게 읽었다. 읽으면서 웃었고, 읽고 나서도 많이 웃었다.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다시 읽을 참이다.

 

 

 

 

 

4. Thanks to를 가장 많이 받은 책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하얗게 빛나는 종이에 비치는 글자의 검은 줄에 자신을 던지는 일, 그 일의 즐거움에 대해, 그 일의 위대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Thanks to의 즐거움도 함께한다.

Thanks to여, 영원하라!

 

 

 

5. 자주 써먹은 문단이 있는 책 [책으로 가는 문]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아이들 책읽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주 써먹는 문단이다. 맥락에 맞춰 제대로 써먹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본다.

책을 읽으면 이러저러한 효과가 있다고 말하지 말자.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이 깊어진다거나 훌륭해지는 게 아니다. “태어나길 정말 잘했구나.” 아이들에게 이런 응원을 보내는 것이 어린이문학의 출발점이다.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한 권을 만나는 일이 더 소중하다.

 

 

6. 기억되었으면 하는 책 [종횡무진 한국사 상, 하]

 

 

 

 

 

남경태님의 책 [종횡무진 한국사]는 역사 읽기의 새로운 진면목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작가 특유의 숨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명작 중의 명작이다. 남경태 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역사책의 책장을 넘기는 일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나, 행복해하며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인사도 못 했는데, 안타까운 부고 소식에 암담한 마음이다. 그 분의 다른 책들도 찾아봐야겠다. 

  

7. 가장 가슴 두근거렸던 책 [초조한 마음]

많이 두꺼운 책은 아니지만, 그렇게 얇은 책도 아닌데, 술술 넘어가는 책장에, 작중 인물 뿐만 아니라, 작가도 좋아하게 만들었던 놀라운 소설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츠바이크의 작품은 모두 읽어야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8. 2014년, 내가 뽑은 올해의 책 [눈먼 자들의 국가]

 

 

 

 

 

진심으로 대통령께 고하건대 아직 당신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당신도 분명 그 꽃다운 아이들을 구하고 싶었을 것이다. 선실 구석구석을 수색해 단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구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기회가 당신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비서실장의 말 그대로, 누가 보기에도 생각보다 배는 너무 일찍 넘어갔다. 그러나 아직 기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바라건대 각하, 지금 당신에겐

 

저 불쌍한 유가족들을

구조할 기회가

아직은

 

아직은 남아 있다는 말을 진심으로 하고 싶다. 그리고 이것은 마지막 기회이다. 역사가 당신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단 한 번도 진실이 밝혀진 적 없는 나라에서 이 글을 쓴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 때문이고 이곳에 발붙인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모두 한 배를 탔기 때문이다.

내릴 수 없는 배다. (62-3쪽)

                                                                                               <눈먼 자들의 국가> - 박민규

 

 

 

지난 11월 마지막 주는 아롱이네 반 녹색 어머니회 담당주간이었다. 8시부터 8시 40분까지 등교지도를 했는데, 첫 번째날은 학교 정문 앞에 서게 되었다. 초등학교 정문 바로 위에 중학교 정문이 있는데, 초등학교 아이들은 대부분 후문으로 등교하기에 정확히는 초등학교 등교 지도가 아니라, 중학교 등교 지도였다.

8시 25분,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언덕길을 오르는 아이들의 얼굴이 최대치인 시간, 가끔 신호를 무시하고 길을 건너려는 아이들도 있어, 내 긴~~ 팔을 이용해 제지하며 말했다.

“얘들아, 저 차 지나고 나서, 다음에 건너자.”

그러면 아이들은 금방 자리에 멈청서곤 했다. 햇빛처럼 빛나는 아이들, 젊음이라 하기에는 이르지만, 세상의 온갖 싱그러움을 간직한 아이들, 귀엽고 예쁜 아이들이 그렇게 언덕을 올라온다.

교복을 입은 그 아이들을 볼 때, 그 또래의 아이들을 볼 때마다 뒤돌아볼, 눈물 지을 사람들이 생각나, 또 한 번 마음이 침울해졌다.

이제 세월호 이야기는 그만하라고, 카톡 노란 리본도 그만 내리라고 말하던 요가 강사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난 요가강사를 이해한다. 요가강사의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가강사의 조카가 죽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그 일이 정말 ‘운 나쁜’ 저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이고, 그 일은 나에게는, 내 가족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말할 수 있는 거다. 저 운 나쁜 사람들이 ‘극성스럽다’고 말이다. 자식이 죽었는데, 자식이 눈 앞에서 죽었는데, 극성스럽지 않을 사람이, 그런 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다른 작가의 글도 읽었지만, 특히 박민규의 글은 꼼꼼히 2번을 읽었다. 그의 애절한 호소가, 간절한 바램이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세월호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다.

 

9. 2014년, 올해의 문단 [독서의 즐거움]

 

 

 

 

 

 

하지만 우리는 일로만 평가받기를 거부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유, 즉 성찰, 계몽, 이해가 똑같이 가치 있다고 고집해야 합니다. 고전을 스스로의 힘으로 읽어 나가는 프로젝트, 즉 하루에 일정 시간 동안 앉아서 책 한 권을 읽는 행위는 생산물과 축적물로만 우리의 가치를 재는 세상에 맞서는 저항의 행위입니다. 뭔가 ‘생산적’인 다른 일 대신에 아침에 혼자서 책을 읽는 행위는, 가치 있는 존재가 되려면 구체적인 뭔가를 생산해야 한다는 명령을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자, 저항하십시오. 앉아서 성찰하는 기쁨을 느끼십시오. 인간이란 생산력만이 아니라 이해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고집하십시오. 아침에 눈을 떠서 부엌을 청소하고 서류를 정돈하기 전에, 무엇보다 고전을 한 권 집어 들고 읽는 시간을 가지기 바랍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5-6쪽)

 

부엌을 청소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널고 개고 하는 것이 싫어 고전을 읽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하기엔 부끄러운 삶이지만, 일단 이 모든 가정사보다 고전을 한 권 집어들어 읽는 시간을 가지라는 그녀의 말은 내게 너무나도 달콤해, 나는 그녀의 말을 따르려 한다. 문제는 어떤 고전이냐는 것인데, 일단 처음은 쉽고 가볍게 가는 게 좋지 않겠나 싶다. 아직 정하지는 않은 상태다. 

 

10. 2014년, 올해의 작가

 

 

 

 

 

필립 로스. 그의 책 [미국의 목가 1, 2]를 읽었고, [유령퇴장]을 읽었고, [휴먼스테인 1, 2]를 읽었고, 지금은 [굿바이, 콜럼버스]를 읽고 있다. 다음으로는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와 [에브리맨]을 읽으려 하고 있고, [울분]과 [전락]도 눈여겨 보고 있다.  

 

11. 2014년, 올해의 문장 [유령퇴장]

 

 

 

 

 

그     자넨 겨우 서른 살이야. 남자를 많이 수집했나?

그녀  몇 명이면 많은 건지 모르겠는데요. (다시 웃는다)

그     대학을 떠난 이후로. 그러니까 졸업식 이후부터, 자네의 남자를 유혹하는 힘으로 날 수집한 오늘 오후까지 말일세…… 그런데 지금 자네는 그런 능력이 전혀 없는 것처럼, 어린애처럼 행동하는군. 자네의 그런 힘에 대해 언급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나?

그녀   그런 얘길 듣긴 했어요. 제가 웃은 건, 선생님이 선생님 당신을 수집된 남자에 포함시키신다면, 제가 수집한 남자를 어떤 식으로 계산해야 할지 몰라서였어요.

그     자넨 날 수집했네. (190-191쪽)

 

 

 

올해의 문장은 ‘자넨 날 수집했네.’이다. 사실 수집된 건 나다. 그래서 이 문장은 이렇게 바뀔 수도 있겠다.

필립로스, 당신은 날 수집했어요.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요? @@

올해의 문장에 필립 로스의 문장이 뽑힘으로 해서, 필립 로스는 당당한 2관왕이 되었다. 축하드립니다, 필립 로스씨! 축하선물을 보내드리겠사오니, 비밀댓글로 주소 3종세트 보내주세요. 꼭이요~~

한 일 없이, 한 해가 다 가버렸다고, 또 한 살 먹었다고, 새치 아닌 흰머리라고 울적해했는데, 아주 많이는 아니지만 예상보다는 더 많은 책을 읽었다. 읽은 내용을 많이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기억하지 못했다 해도 뭐가 대수인가. 책과 함께 보냈던 행복한 순간만 기억하면 될 것을.

무엇보다 책을 읽고, 책에 대한 감상을 적을 수 있는 ‘알라딘서재’가 있어서 너무 기쁘다. 그 책 참 좋지요? 저도 그 책 읽어야겠어요, 알라딘 이웃들의 반가운 댓글이 있어 더 신나게 감상을 적을 수 있었다. ‘공감’과 ‘좋아요’. 물론 나는 ‘좋아요’ 보다는 ‘공감’을 더 좋아하지만, ‘좋아요’가 더 많아지는 그런 세상도 금방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이 자리를 빌려, 허접한 방에 찾아와 부족한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겨주신 모든 알라딘서재 이웃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꾸.벅.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더 멋지게 변해가는 나 자신을 상상해 본다.

그렇게 많이는 아니더라도,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말이다.

갑자기 기대된다. 흥분도 조금...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렇게혜윰 2015-01-01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승우 단편집. . . 읽고 싶네요!! 다른 책들도 찜~♥

단발머리 2015-01-01 19:44   좋아요 0 | URL
전, [칼]이랑 [딥 오리진], [리모컨이 필요해] 좋았어요. 읽으신 후에 알려주세요~~
그렇게혜윰님은 어떤 작품을 좋아하실까, 궁금해요:)

cyrus 2015-01-01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리즈로 구매할 때가 책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 가장 뿌듯할 때인 것 같습니다. 그냥 책장에 꽂힌 것만 봐도 기분이 좋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책 많이 소개해주세요. ^^

단발머리 2015-01-01 19:52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cyrus님. 나란히 꽂힌 애들 덕분에 밥 안 먹어도 든든합니다^^ 이제 읽는 즐거움을 누릴 때가 되었네요. 헤헤
cyrus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부탁은 제가 드려야죠. 좋은 책 많이 소개해 주세요~~~~~

icaru 2015-01-01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태그마저도 깨알같이 성실합니다! ^^
단발머리 님 페이퍼 덕에 좋은 책들 많이 만난 한 해였어요.. 최근에만 해도 불황10년. 소설가의 일.. 유머를 사랑하는 사람은 재치기처럼 숨기려해조 숨길 수 없나봐요.. ㅎㅎ;;
참참.. 단발머리님은 단발머리시죠? 아님 조용필 님 팬 ㅎㅎ;;

단발머리 2015-01-01 20:15   좋아요 0 | URL
아, 감사합니다. icaru님~~~ 새해에는 더욱 정제된 유머로 찾아뵈어야 할텐데.... 가능할까요?
새해 인사 주고 받으니 이제서야 새해 느낌이 나네요. 올해도 자주 뵈어요^^

참, 저는 이 닉네임 만들때는 딸롱이가 단발이라서 아무 생각 없이 만들었고요.
지금은 제가 단발머리네요. 마음에 안 들지만서도...

2015-01-01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5 0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5-01-01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정성 가득한 단발머리님의 페이퍼를 볼때면 글 잘쓰시는 분들이 부러워요. ^-^ 그리고 2014년 올해의 책 분류도 참 좋아요. 특히 `구매가 자랑스러운 책`은 너무 부러운데요. 진짜 `나쓰메 소세키` 전집 멋지긴해서 갈등했었어요. 저 진짜 사리 나올것 같아요. ㅎㅎ

단발머리 2015-01-05 07:30   좋아요 0 | URL
네~~~ `구매가 자랑스러운 책`이 1번이지요.
외적으로 너무 이뻐요. 책 중 책, 책 중의 김태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슬비님, 새해에 좋은 영어책 많이 부탁드려요.
물론 제가 많이는 못 읽겠지만, 보슬비님 방에서 표지만 많이 봐도 웬지 영어랑 친해지는 기분이~~~ ^^

서니데이 2015-01-01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난해에도 단발머리님의 서재에서 좋은 글 많이 읽었는데, 올해도 기대 많이 하고 있을게요.
항상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 되셨으면 해요.

단발머리 2015-01-05 07:31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좋은 일 많이 생기시고 사업 번창^^ 하시는 한 해 되시기를 바래요.
앞으로도 자주 뵈어요~~~

기억의집 2015-01-07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책에 대한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해요. 책이 사유의 폭이 넓혀지거나 사고의 질이 더 좋아지는 건 아니건 같아요. 예전엔 책을 읽으면 뭔가 다른 사람으로 짜짠~ 탈바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인생사 여러 사람을 거쳐보니 아니더라구요. 단지 전 아이들에게 책을 읽게 하고 싶은 이유가 타인의 상상력에 재미를 느꼈으면 해요. 제가 아들냄 영어를 가르치는데, 어휴.... 진짜 평소 독서부족이라 이해력이 떨어지는데, 그런 거 보면 책이 일부분 간접체험같은 거라 요즘은 강요해요. 예전에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은 생각이라 전혀 애들한테 책에 대한 강요을 안 했는데 요즘은 하게 되더라구요~

필립 로스의 휴먼 스테인은 읽었는데, 어떤 내용인지 기억이 안 나요. ㅠㅠ

단발머리 2015-01-12 08:00   좋아요 0 | URL
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야기에 완전 공감해요. 책 많이 읽는다고 훌륭한 사람 되는 것 아닌 거 같아요.
다만, 한 권의 책, 그 한 권을 찾고 있어요. 딸롱이는 대략 찾아가는 것 같은데, 아롱이는 아직도 다이나포스만 사랑하네요. ^^
아들 영어 가르치신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아들을 가르치는 것도 어려운데 영어라니요... 응원합니다!

전, 아직 필립 로스에게 빠져 있답니다. ㅎㅎㅎ

기억의집 2015-01-12 08:03   좋아요 0 | URL
휴먼 스테인 재밌게 읽은 거 같은데 에브리맨도 읽었고... 근데 기억이 안 나요. ㅠㅠ 이래서 리뷰나 페이퍼라도 써야하나봐요. 영어 실력 안 되는데 학원비 절약해야해서...

mira 2015-03-09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권도 읽은 책이 없네요. ㅠㅠ 아, 소설가의 일은 읽다가 말았어요. 좀 천천히 읽으려구요

단발머리 2015-03-12 11:39   좋아요 0 | URL
mira님은 다른 분야를 많이 읽으시니까요. 저는 아무래도 소설 쪽을 많이 읽게 되더라구요.
[소설가의 일]은 정말 좋았어요. 천천히 읽으셔도 좋으실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