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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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떠난 집에 들어가기 싫어 거리를 헤매는 피오나의 쓸쓸함에 한껏 몰입해, 폭풍우를 헤치고 무작정 그녀를 찾아왔던 그 애의 진심을 너무 무심하게 대했다. 나도 그의 경고를 알아채지 못 했다.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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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일인자 2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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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절정의 시리즈, ‘로마의 일인자’ 2권이다.

최하층민도 로마를 위해 싸울 수 있게 해 달라는 마리우스의 연설은 묵직한 감동을 전해주고, 자신의 엉뚱한 허영심 때문에 로마군을 전멸의 상태로 밀어넣는 카이피오의 어이없는 단호함에는 쯧쯧 혀를 찬다. 이 책에서 제일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한다면, 역시나 사랑 이야기 그리고(혹은?) 결혼 이야기이다. 2권에서는 두 쌍의 결혼이 진행되는데, 운명의 상대를 찾은 겁나게 운좋은 선남선녀 한 쌍의 이야기와 집안의 필요 때문에 결혼해야만 하는, 당시로서는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두 쌍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아우렐리아는 명문가의 외동딸이자 로마 당대 최고의 미녀로 손꼽였다. 결혼할 경우 그녀가 가지고 가게 될 엄청난 금액의 지참금은 그녀의 매력을 한껏 부풀려 주었는데, 딸을 결혼시키려다 주변에 수많은 정적을 만들게 될까 두려웠던 아우렐리아의 부모는 ‘아우렐리아 스스로 그녀의 배필을 선택하게 하라’는 외삼촌 루푸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아우렐리아는 로마의 귀족 여인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흠모하는 여성인 코르넬리아(162쪽)의 입장에서 자신의 배우자를 찾고자 한다. 로마인의 힘과 끈기, 로마인의 고결함과 인내를 갖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한다.

아우렐리아는 본래 큰 자줏빛 눈을 더 크게 뜬 채 자기 운명의 상대를 쳐다보았다. 로마인의 이상이나 코르넬리아는 전혀 떠올리지 않았다. 어쩌면 어딘가 그녀 마음속의 더 깊은 차원에서는 그랬을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되겠지만, 그는 실제로 두 가지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 만난 순간 그녀가 그에게서 본 것은 로마인답게 긴 코와 긴 얼굴, 짙푸른 눈동자, 굵고 곱슬거리는 금발과 아름다운 입뿐이었다. 그간의 모든 내적인 갈등과 신중하지만 무익했던 숙고 끝에, 아우렐리아는 가장 자연스럽고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자신의 난제를 해결했다. 그녀는 사랑에 빠진 것이다. (170쪽)

 

그렇게 지혜로운 여성, 그렇게 로마인의 불멸의 이상에만 몰두했던 아우렐리아는 그간의 모든 과정을 간단히 뛰어넘어, 지금 이 순간, 이 잘생긴 청년에게 빠져버린다. 아우렐리아를 만난 청년의 심정이라면 두말하면 잔소리.

“그래, 내 조카딸을 어떻게 생각하나?” 최고급 투스카니아산 포도주가 나오자 루푸스가 물었다.

“살아 있는 게 좋냐고 묻는 것과 비슷한 말씀입니다! 다른 대답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애가 그렇게 좋은가?”

“그녀가 좋냐고요? 네, 물론입니다. 사실 저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174쪽)

 

살아 있는 게 좋냐고 묻는 것처럼 당연한 질문이라고? 루푸스는 ‘다른 대답이 있을 수 없는’ 걸 괜히 물어봤다. 젊은 가이우스 역시 첫 눈에 아우렐리아에게 반해버렸다. 하지만, 로마에서 제일 지체 높고 부유한 독신남들이 그녀와 결혼하려고 ‘결혼 신청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데, 가난한 가이우스에게 그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해결책은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났을 때 아우렐리아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깨달았다.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카이사르 저택으로 카르딕사를 보내 청년에게 편지를 건넨 것이었다.

‘내게 청혼해 주세요.’

편지에는 대담하게도 이렇게 적혀 있었다. (179쪽)

 

가이우스는 청혼을 넣어 ‘대기표’ 마지막 번호를 받고, 아우렐리아는 자신의 부모에게 방금 ‘대기표’를 뽑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2세’와 결혼하겠다고 말한다. 의붓아버지 코타는 아우렐리아에게 청혼했던 남자들에게 ‘단체 편지’를 발송하고, 그녀가 가이우스와 결혼할 것임을 공식적으로 알린다.

아우렐리아의 구혼자 목록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리 혈통이 좋다고는 하나 한낱 원로원 평의원에 지나지 않는 자의 차남에게 밀려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그 운 좋은 청년은 지나치게 잘생겼고, 밀려난 구혼자들은 대부분 그것이 불공정한 특혜라고 여겼다. (183쪽)

 

직업-학력-재산 정도에 따라 급수를 매겨 사람을 평가하는 근래의 결혼 정보 회사나 당시 로마의 결혼 풍습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집안이 중요했지만, 그보다는 재산이 더 중요했다. 재산이 많은 쪽은 어떻게 해서든지 더 좋은 집안과 결혼하려 했고, 명문가이지만 돈에 찌들린 집안은 돈이 넉넉한 집안과 사돈을 맺어 자신들의 자녀와 자녀의 자녀 뿐 아니라 자신들도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자 했다.

더 좋은 집안의 남자, 더 부유한 집안의 남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아우렐리아가 선택한 남자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2세’. 예선과 본선에서 동시에 탈락한 남자들이 한결같이 외치듯 ‘반반한 외모’ 때문에 그녀의 선택을 받은 행운의 남자.

부모가 자신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이 결국 ‘외모’인가, 하는 쓸데없고 필요없으며 의미 없는 생각을 1초간 해보다가 다음 커플로 넘어간다.

다음 커플이라고 한다면 두 번째 커플이라고 할 수도 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커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두 커플은 첫 번째 커플의 탄생과 동시에 결혼이 진행되는데, 예선과 본선에서 동시에 탈락해 매우 불쾌한 드루수스가 친구의 아버지인 카이피오에게 결혼 동맹을 제안하는 것으로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즉, 자신이 친구의 누이동생과 결혼을 하고, 자신의 누이동생을 친구의 아내로 맞게 함으로써 공고해진 두 집안의 위세로 잃어버린 미스 로마 아우렐리아와 결선에서 승리를 차지한 가이우스 집안을 견제하겠다는 야심한 계획에서 나온 것이다.

문제는 여동생의 결혼을 진행하는 데서 발생했다. 드루수스의 여동생 리비아는 다리가 짧고 여드름난 얼굴에 어느 모로 보나 못생긴 세르빌리우스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갇혀서 지냈던, 오빠의 친구 한 두 명의 얼굴을 가끔씩 볼 수 있을 만큼 집 안에 갇혀 살았던 리비아는 자신의 침실에 감금된다. 음식이 제한되고, 빗장을 설치하고, 문 밖에 사람을 세워 항시 감시하게 했다. No라는 대답. 더 작은 방으로 옮겨가 감금되고, 식사도 효모를 넣지 않은 빵과 물로만 한정시켰다. 닷새 동안 완전히 혼자 있도록 했다. 그래도 리비아의 대답은, No. 그리고 또 다시 진지한 협박.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의 오빠. 실질적 가장. 삶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권을 강조하는 오빠. 죽음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권을 이야기하는 오빠.

리비아는 항복한다.

“너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내겐 진정한 기쁨이다, 리비아. 네가 적절한 로마 여성처럼 행동하고 네게 기대되는 일을 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나는 네가 자신의 결혼을 기뻐하는 여느 처녀와 마찬가지로 퀸투스 세르빌리우스를 대하기를 원한다. 그는 네가 기뻐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너는 그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경의와 존경과 관심과 애정으로 그를 대해야 한다. 단 한 순간도, 결혼한 후 침실에서조차, 네가 그를 남편으로 택한 것이 아니라는 암시를 줘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228쪽)

 

사랑하지 않는, 아니 싫어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도 모자라 그 사람에 대한 ‘애정없음’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라는 오빠의 주문은, 가장의 이 엄숙한 요구는 그의 지배 아래있는 리비아를 완전히 굴복시킨다.

삶과 죽음의 통제권을 모두 빼앗긴 존재. 여동생. 여자. 리비아.  

 

 

 

 

위의 사진에서 확인되는 바, 로마의 일인자 1권의 표지의 주인공은 금색이다. 2권의 주인공은 은색. 3권의 주인공은 당연히, 동색이다. 금, 은, 동. 나는 다음 시리즈의 표지 주인공이 무슨 색을 입고 등장할지 아주 궁금했는데, 금, 은, 동의 올림픽 배열이 끝났다면, 다음에는 빨강, 노랑, 초록의 신호등 배열 혹은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 배열이 가능하겠다 혼자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 도서관에 가서는 금색의 [로마의 일인자 3권]을 발견했다. 확인해보니 쇄가 다르다. 금메달은 1쇄, 동메달은 2쇄이다. 금, 은, 동 올림픽 정신을 이어가야 하는데...

이제 글을 마무리하려는 찰나, 서비스차원에서 아우렐리아 사진 한 장 투척한다.

좋아하시는 분도 없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나처럼 놀라시는 분들 여럿 있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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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9-17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비아의 오빠 때문에 빡치네요.. ㅠㅠ 그래서 리비아는 어떻게 되는겁니까!! ㅠㅠㅠ

단발머리 2015-09-17 15:05   좋아요 0 | URL
그 리비아의 오빠는 친구 여동생이 맘에 들었거든요. 집안끼리의 결합이기도 하고, 아우렐리아보다야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았거든요. 자기는 일단 괜찮으니까...

리비아는... 다른 대답이 있을 수 있을까요?

리비아는 오빠가 정해준 사람이랑 결혼하기로 했어요.
리비아가 결혼식을 어떻게 맞이했는지는 나오지 않아 모르지만, 아무튼 결혼하기로 했어요. 오빠 뜻대로요.
오빠의 협박은 정말... 압권입니다.

˝진심이다, 동생아. 책도, 종이도, 빵과 물을 제외한 그 어떤 음식도, 목욕도, 거울도, 여종도, 깨끗한 옷도, 새 이불도, 겨울에 화로도, 담요도, 구두와 덧신도, 목을 매어 자살할 수 있는 벨트나 띠나 리본도, 손톱과 머리카락을 자를 가위도, 스스로를 찔러 죽을 수 있는 칼도 주지 않을 것이다. 만일 네가 굶어죽으려고 하면 네 목에 음식을 강제로 밀어넣도록 할 것이다.˝ (225쪽)


다락방 2015-09-17 16:00   좋아요 0 | URL
이런 개자식 ㅠㅠ

단발머리 2015-09-17 16:02   좋아요 0 | URL
이라고 부르셔도 전혀 무방합니다~~

2015-09-17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2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2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2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2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2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2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3 0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근래에 이벤트에 자주 당첨되어 기분이 좋다.

 

먼저, 페미니즘 도서를 읽고 쓴 100자평/리뷰 작성자 중 추첨된 사람에게 책을 주는 이벤트에서

『하우스 와이프 2.0』를 받았고 (이 책은 지금 부지런히 다락방님에게 가고 있다),

 

 

 

 

 

 

두번째로는, 알라딘 인문교양 상반기 결산 & 하반기 기대 이벤트에서

하반기 기대작 『우리 역사는 깊다』를 받게 되었다.

 

 

 

 

이 상승모드를 이어가고자 마태우스님 이벤트에 응모했다.

 

마태우스님 이벤트 응모 페이지는 여기,  

 

 http://blog.aladin.co.kr/747250153/7779521

 

 

 

되고 싶다, 간절히...

 

와일드카드 한 사람 남았다는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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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09-14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사람 남았대요??
나도 첨엔 생각없었는데 오늘 아침 불현듯 의욕이 앞서 댓글 세어보고 심호흡 한 번 하고 댓글 달았거든요ㅋ
그러곤 내가 너무 웃겨서ㅋㅋ
며칠전 유레카님 책을 받아 읽고 기분이 좋아진데다 님이 두 권이나 이벤트 당첨됐다니 또 불현듯 와일드카드 한 사람 되고 싶네요ㅋ
암튼 누가 되나 지켜보자구요
매의 눈으로!!!

단발머리 2015-09-14 15:22   좋아요 0 | URL
4명은 당첨 확정이구요.
와일드 카드 한 명 남았다고, 그러니까 31번째 댓글 뒤에 댓글을 한 번 더 달 수 있다 하시더라구요.
저는 방금 달고 왔습니다.^^

마태우스님이, 댓글 100개 정도 달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저조하다고 하시대요. ㅎㅎ
아, 되고 싶다, 진실로~~

책읽는나무 2015-09-14 15:49   좋아요 0 | URL
저도 금방 마태님 댓글 확인했더니 와일드카드 다시 도전하란 글에 용기얻고 댓글 달았어욤^^
들어가 확인전엔 댓글이 80여개가 있어 깜놀!!
역시 인기알라디너 마태님!!그러고 들어갔더니 마태님의 답글 포함 80여개ㅎㅎ
정말 옛날에는 어떤 이벤트라도 눈에 불을 켜고 동참하여 댓글 100개는 순식간였는데 말이죠!
덕분에 방문자수도 쭉쭉 올라가고^^

여튼 저도 저책 기생충 책 옆에 꽂아두고 싶네요!!

단발머리 2015-09-14 18:49   좋아요 0 | URL
저는 사실, 그 옛날에 알라딘을 몰랐잖아요. ㅎㅎㅎ
그래서 이런 이벤트가 너무 반갑고 신나고 재미있고 그러거든요.
근데 마태우스님 글이랑 책읽는나무님 글 보니까 예전에는 반응이 더 뜨겁고 그랬나봐요.
인기 방송 출연자 서민교수랑 알라디너 마태우스님이 같은 사람인줄 몰라서 그런거 아닐까요? ㅋㅎㅎ

아.... 되고 싶네요. 진짜...

2015-09-15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15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5-09-14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우리 역사는 깊다>를 받았어요. 그런데 하반기 기대작을 두 권짜리 중 한 권을 주다니 2권을 구입하게 만들려는 상술(?)에 걸려든 것 같아요. ㅎㅎㅎ

단발머리 2015-09-15 08:1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는 책은 받았는데 아직 읽지를 못했어요. 뭐, 대부분 그렇지만요.
알라딘의 상술인가요? ㅎㅎ 치밀하군요.

보슬비 2015-09-17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간 한글책에는 한글로 싸인해주었을거란 생각이 든건 왜인지....ㅋㅋ
그랬음 더 멋졌을것 같아요.^^

단발머리 2015-09-22 11:2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한글이면 더 멋졌겠지요.
저자 친필 사인본이라.... ㅎㅎㅎ
 

 

 

 

 

 

 

 

1. 스티븐 킹 : 제 책은 모두 오락물입니다.

 

『셀』이 ‘오락물’이라면 다른 범주에 들어가는 책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킹              당신도 아시다시피 제 책은 모두 오락물입니다. 어떤 점에서는 그게 바로 문제의 핵심입니다. 소설이 오락거리가 아니라면 성공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어렵잖아요. (468쪽)

킹              셜리 해저드(스티븐 킹이 전미도서상 수상식에서 기존 문학계에서 무시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들의 목록을 밝힌 것에 대해 ‘그런 도서 목록 따위는 필요 없다’고 말한 미국의 소설가)에게도 도서 목록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셜리에게 필요한 또 다른 것은 이렇게 말해줄 사람입니다. “일이나 해. 인생은 짧아. 가만히 앉아서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쓰레기 같은 이야길 하는 대신에, 진짜 일을 해. 신께서 재능을 주셨지만, 살날은 많지 않으니까.”

                 한 가지만 더요. 진지한 대중소설에 문을 걸어 잠그면 진지한 소설가들에게도 문을 닫아버리는 겁니다. (470쪽) 

 

책은 대중의 선택지에서 쫓겨난 지 이미 오래다. 텔레비전, 영화, 인터넷으로 유통되는 것들만이 선택받는다. 사람들은 읽지 않는다. 사람들은 본다. 시, 소설, 수필, 대중서, 한국어로 쓰여진 책 뿐만 아니라, 외국서적이 번역된 경우라도 천만 명 이상이 읽은 작품이 얼마나 될까. 비교적 최근에 천만명을 돌파한 영화 ‘암살’의 기록은 곧 이어 따라올 다른 영화들에 의해 금세 갱신되고 말 것이다. 인구 오천만의 나라에서 ‘천만 영화’ 탄생은 2-3년에 한 번쯤 있을 법한 일이지만, 책 한 권이 천만부가 팔린다? 언감생심. 30만부만 팔려도 출판계에선 대박이다.

출판계의 불황은 그 중에 제일 잘 팔린다는 소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독서 시장이 한국과 비교 불가한 미국의 소설가 스티븐 킹은 말한다. “진지한 대중소설에 문을 걸어 잠그면 진지한 소설가들에게도 문을 닫아버리는 겁니다.“

그나마 이상문학상 수상집이 불티나게 팔리는, 순수문학이 대우받는, 순수문학만 인정받는, 표절을 해도 그냥저냥 넘어가는 이런 요상한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한국소설의 미래는 어찌될지, 책 읽지 않고 자라난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건지, 계속해서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건지....

엄청나게 뻔한 내용이지만 나름의 재미와 감동이 있는 네이버 웹소설 하나를 월요일, 수요일마다 찾아 읽는 이 사람은 매우 걱정스럽다.

 

 

2. 오에 겐자부로 : 프랑스어와 영어를 외국인으로서 읽지요.

 

독자로서 이러한 언어들을 얼마나 잘 이해하십니까?

오에               프랑스어와 영어를 외국인으로서 읽지요. 이탈리어는 읽는데는 오래 걸리지만 텍스트의 목소리를 잡아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516쪽)

 

텍스트를 원어로 읽는다는 건 근사하면서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읽을 수 있는 언어가 제한되어 있고(영어), 읽을 수 있는 언어를 읽는 속도가 매우 느리며(영어),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한 것인가 확인하기 위해서는 번역본과의 비교독서가 필요해(영어), 원서 읽기가 많이 꺼려진다. 집에 사 놓은 원서는 장식용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실제는 구입해놓고 읽지 않는 책이 너무 많아 누가 ‘장식용’이라 놀려도 할 말이 없기는 하다.

80대의 소설가가 영어책, 프랑스어책, 이탈리어책 그리고 일본어 번역본을 앞에 두고 독서를 한다.

나도 한 번 해볼까, 책 두 권을 나란히 펴 본다.

될지 안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일단 해 본다.

흉내라도 내 본다. 

 

 

3. 토니 모리슨 : 읽는 것이 실제로 제 직업이죠.

 

무식한 사람은 용감하다고, 하나를 알게 되면 이 세상이 이전과는 확실히 다르게 보인다. 『이기적 유전자』 두 장을 읽고 나서, 이틀 동안 말만 하면, ‘그러니까 유전학적으로는~~’,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이건 말이야~’라고 읊어댔더니, 남편은 ‘아... 책 한 권 읽고 나서...“라며 한탄했다. 남편은 틀렸다. 나는 책 한 권을 읽은 게 아니다. 오직 두 장을 읽었을 뿐이다.

나는 ‘페미니즘’이라는 하나의 툴, 현재의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다양하고 다채로운 방법 중의 하나인 ‘페미니즘’이라는 툴만으로 이 세상을 해석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글, 이런 글을 읽게 되면.... 뭐랄까. ‘페미니즘’ 세포가 좀 돋는 것 같기는 하다.

 

모리슨         제 말씀은 남성들은 작가로서의 자격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겁니다. 저는 그럴 수가 없었는데 말입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글쓰기가 인생의 핵심이고 마음을 몽땅 차지하고 있고, 기쁨을 주고 자극을 주는데도 저는 제가 작가라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직업이 뭔가요?”라고 물으면 “아, 저는 작가랍니다.”라고 대답하지 못했어요. 대신 “편집자랍니다.” 아니면 “교사예요.”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311쪽) 

 

‘작가’라는 말이 주는 무게.

눈에 보이는 확연한 차이라서 부인할 수 없는 인종적 격차를 넘어서고 나서, 아니 그 격차를 넘어서는 것과 동시에, 모리슨이 넘어야할 ‘여자’로서의 장벽, 여자가 작가가 된다는 것.

모리슨          당시에는 개인적으로 아는, 성공한 여성 작가가 전혀 없었어요. 작가가 되는 건 남성의 영역처럼 보였지요. 그래서 주변부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작가라도 되기를 바랐습니다. 허가라도 얻어야 할 것처럼 느껴졌지요. (311쪽) 

 

남성들은 당연하게 여기는 그 일, 자기 자신을 ‘작가’라고 밝히는 일이 어려웠던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성공한 작가, 성공한 여성 작가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성별을 감안해, 인종을 감안해 ‘작가’의 숫자가 조정되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은 말이 안 되는 것이지만, 전체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이,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대변해줄 목소리를 거의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 역시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작가들의 인터뷰 모음집이라 깊은 사색과 특별한 통찰력에서 오는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이 있지만, 내 마음에 쏙 드는 문장은 토니 모리슨의 다음 문장이다.

“읽는 것이 실제로 제 직업이죠.” (307쪽)

오랫동안 랜덤하우스의 편집자로 일했고, 1988년 『빌러비드』로 퓰리처상 수상, 199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 다른 사람들이 쓰지 않은 이야기만을 썼다는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작업은 ‘쓰기’가 아니고, ‘읽기’인가. ‘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성질의 일이 아니고, 아무나 한다고 해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지만, ‘읽기’라면, ‘읽기’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누구나 도전해도 되는 일 아닌가.

아, 직업이요? 읽는 것, 책을 읽는 게 제 직업이예요. 전업주부, 엄마, 아줌마, 동남아가 아니구요. 책을 읽는 게 제 직업이예요. 읽는 것이 실제로 제 직업이죠.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실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연습 좀 해야겠다.

책을 읽는 것이 직업이예요.

네, 맞아요. 읽는 것이 실제로 제 직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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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9-10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멋진 글이네요. 멋진 페이펍니다.

단발머리 2015-09-10 19:32   좋아요 0 | URL
아침부터 다락방님 멋진 댓글에 우쭐하고, 기분이 좋았어요.
헤헤헤~~

sslmo 2015-09-10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렇게 멋진 페이퍼라니~^^
저도 이책 읽었는데 님 페이퍼를 보니, 다시 읽고 싶어지는걸요, 불끈~!

단발머리 2015-09-10 19:31   좋아요 0 | URL
우와, 양철나무꾼님이 칭찬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제 페이퍼가 멋지기 보다는 인용된 글들이 너무 좋지요.
전, 이 시리즈가 너무 좋아요. 작가들의 목소리가 막 들리는 듯 가깝게 느껴지구요.

양철나무꾼님은 벌써 읽으셨는데, 전, 이제서야... 조금 늦었지만 정말 좋네요.

책읽는나무 2015-09-10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것이 직업이라니~~~~~~
멋진 말이네요!!^^
저도 멋진 페이퍼에 공감백배요♡

단발머리 2015-09-10 19:2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런 멋진 말이라니요.
예전에 읽었던 <혼자 책읽는 시간>에도 비슷한 구절이 나오더라구요.

독서가 주는 편안함과 책 한 권을 들고 내 보랏빛 의자에 앉는 즐거움을 고대하고 있었고, 그것을 일이라 규정했다. 일이라 부름으로써 그것을 신성하게 만들었다. (50쪽)

저도, 그렇게 할려고요. 부끄럽지만..... ㅎㅎㅎ

2015-09-10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10 1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5-09-11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제가 스티븐 킹이 좋아해요.^^
제게 책은 오락이거든요. 진짜 멋진 작가라니깐요. ㅎㅎ

단발머리 2015-09-11 08:41   좋아요 0 | URL
사실.... 저는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만 읽어봤어요.
어린시절 이야기랑 일하면서 글 쓸때의 일이 너무 감동적이라 스티븐 킹을 좋아하게 됐지요.

<11/22/63>이랑 <닥터슬립> 도전했다가 무서워서, 순수하게 무서워서 포기했어요.
정말, 저는 읽지를 못하겠더라구요.
보슬비님은 영어로도 읽으시는거지요? 완전 엄지 척~~ 멋지십니다.*^^*
 
올 어바웃 러브
벨 훅스 지음, 이영기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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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제일 흔한 게 사랑이다. 모든 시, 모든 소설, 모든 노래는 궁극적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세상 하고 많은 사랑이 있겠지만 협소한 의미의 사랑, 남녀간의 사랑, 로맨틱한 사랑이 가장 많이 ‘사랑 받는다’.

이 세상 제일 찾기 어려운 것도 또한 사랑이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던 입으로 어쩔 수 없다며 이별을 고하고, 떨림을 전하던 따뜻한 손으로 사랑하는 그/그녀를 가차없이 후려친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어렵게 만나서는 마침내 결별한다. 진정한 사랑,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진정한 사랑’이 이 시대에 가능한 일이기는 한가.

 

1. 사랑이란

정신의학자인 스캇 펙 Mr. Scot Peck이 1978년에 출간한 『아직도 가야할 길The Road Less Traveled』에서 그는 사랑이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spiritual growth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규정했다. (35쪽)

모두 다 사랑을 원하지만, 모두 다 사랑받고 사랑하기를 원하지만, 아무나 다 사랑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랑하려는 ‘의지’를 갖고서 사랑을 ‘선택’하는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다 (35쪽). 사랑이라는 선택, 즉 단순한 애정을 넘어선 진정한 사랑이란 상대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 상대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태도, 상대에 대한 신뢰와 헌신(36쪽)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스캇 펙의 사랑에 대한 정의는 ‘순간적 충동이나 끌림’이나 ‘폭발적 감정 몰입’의 유무로 사랑을 판단하는 우리에게 진지한 사랑의 단면을 제시한다.

사랑이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 스캇 펙

 

2. 소리 지르는 딸

우리 집에서 오빠는 아무리 말대꾸를 해도 벌을 받거나 꾸중을 들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자기 의견을 고집하는 것은 남자다운 모습이라며 권장되었다. 반면 딸들이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면 버릇없고 나쁜 행동이라며 제지를 당했다. 특히 아버지는 여자들이 자기 의견이 강하면 여성스럽지 않다며 꾸지람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경고를 무시했다. 우리 집안은 가부장적인 성격이 강했지만 남자는 아버지와 오빠뿐이었고, 여자가 더 많았기 때문에 마음 내키는 대로 말을 하고 말대꾸를 해도 안전했다. (96쪽)

중국계 미국 여성들, 중국인인 어머니들과 미국인으로 자란 딸들에 대한 소설 『조이럭클럽』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10여전 전에 읽었던 거라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다. 주인공 중의 한 명인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새어머니를 들였고, 새어머니는 새어머니, 소설 속의 ‘나’는 갖은 구박을 받게 된다. 당시 중국에서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그 다음 해, 새해 셋째날에 돌아온다는 미신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날, 죽은 엄마의 영혼이 돌아온다고 믿어지는 바로 그 날부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완벽한 객관성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 싶다. 세상은 원래 자기중심적으로 돌기 마련이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내 주위에는 온통 고집 센 둘째들뿐이다. 아들-딸, 딸-아들, 딸-딸, 아들-아들의 경우를 모두 조사해보았지만, 결론은 똑같다. 첫째들은 말을 잘 듣고 눈치가 없다. 체제 순응적이고 융통성이 없다. 둘째들은 말을 안 듣고, 애교가 많다. 반항적이고 생존기술이 뛰어나다. 이럴 때, 가장 안 좋은 경우의 수는 딸-아들의 구성으로 태어난 ‘누나’, 여자 아이다. 애교가 많아 덜 혼나고, 고집쟁이로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막내라는 이점을 마음껏 누리는 아들에 비해, 누나인 큰아이는 엄마, 아빠 말은 잘 듣지만, 융통성이 없어 더 많이 칭찬받지 못한다. 위와 아래에서 모두 치인다.

초등학교 1학년, 간식으로 나온 ‘콜팝’을 태어나서 처음 먹게 된 딸아이는 ‘환상적인 맛’에 완전 감동했음에도 불구하고, 10개의 팝콘볼중에서 4개만 먹고 6개를 고이 남겨왔다. 사랑하는 동생과 이 ‘환상적인 맛’을 나누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딸애에게 잘했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 다음을 더 강조해서 말했다.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남기지 말고, 네가 다 먹어. 맛있는 거잖아. 네가 다 먹어.”

둘째가 커가면서 싸우는 일이 잦아졌는데, 말로 몸으로 싸우고 나서 우는 아이는 누나인 큰아이였다. 동생은 누나를 때렸고, 누나는 동생을 때리지 못 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나는 딸애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앞으로는 동생에게 양보하지 마.”

형이라고 언니라고 무조건 양보해야 한다는 건 불합리한 일이다. 스스로 선택해서 양보한다면 참 좋겠지만, 무조건 그렇게 해야 한다면, 자기주장이 강하지 못 해 항상 양보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억울한 일이다. 남동생에게 맞고 우는 여자아이라면 어디에 가서도, 누구에게도 결국은 양보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나는 딸아이를 더 강하게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롱이에게는 양보와 배려를 강조했고, 딸아이에게는 자기 스스로를 주장할 것을 가르쳤다.

요즘은 거의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겠지만, 아이들도 부모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다. 신기한 건,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아들은 소리 높여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했고, 딸애는 무슨 이야기든 말만 할라치면 일단 눈물바람이었다.

다시 한 번,

아롱이에게는 양보와 배려를 강조했고, 딸아이에게는 자기 스스로를 주장할 것을 가르쳤다.

양보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걸 딸애에게 말한 건 지금으로부터 5-6년 전인데, 페미니즘 책을 읽었거나 읽지 않았거나 그에 상관없이, 나는, 딸애를 소리지르는 아이로, 소리 지를 수 있는 아이로 키워내고 있었다.

소리 지르는 딸, 소리 지르는 여자로 말이다.

 

3. 영적인 삶

나는 오랫동안 영적인 실천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친구나 동료들에게 털어 놓지 않았었다. 진보적인 사상가나 학자들은 ‘신성한 정신’에 열정적으로 몰두하기보다는 무신론적인 태도를 취하는 편이 더 멋지고 자신들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 그토록 젊고 똑똑하고 멋진 학생들이 연구실로 찾아와 자신이 얼마나 삶에 낙담하고 있는지 고백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 고통을 위로만 하고 끝내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21쪽)

청소년기 시절, 내가 기억하던 두 개의 다른 구절.

책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책의 한 구절, “이성으로부터 오는 따뜻한 격려와 사랑이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위안”이다. 또 한 구절,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내면은 오직 신에 의한 사랑으로서만 채워질 수 있다. 인간은 오직 신, 하나님 안에서만 완벽한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초등학교 때 제일 친했던 친구는 초등 6학년 때 좋아하던 오빠가 있었는데, 나이 스물에 웨딩드레스를 입고 그 오빠의 손을 잡고는 결혼식장에 입장했다. 중학교 때 제일 친했던 친구는 중학교 2학년 겨울부터 좋아하던 오빠와의 ‘연애전선’에 뛰어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내게서 너무 멀리 있었고, 근처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그냥 그렇게 혼자였는데, 당시에는 이성교제가 요즘처럼 흔하지 않아 남자친구가 없다는 게 그리 유난한 일은 아니었지만, 가까운 친구들이 모두 남자친구가 있는데, 나만 남자친구가 없어, 쓸쓸한 나날이었다. 당시에는 조금 심각했는데, 써놓고 보니 조금 웃긴다. 그 때는 진지했는데, 지금은 왜 웃긴가. 나는 왜 웃는가.

무튼, 나는, 혼자인 나는, 내게 사랑을 주는 어떤 대상을 갈구했다. 나를 사랑해줄 사람,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날 사랑해 줄 어떤 사람을 말이다. 물론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 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은 내게서 너무 멀리 있었고, 그건 물리적 거리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것을 포함한 거였다. 그런 사람을 찾고 찾았지만, 만나지 못 했다. 그런 사람을 만나지는 못 했지만, 그런 사랑은 만났다.

나를 지탱해주는 것은 신God이 곧 사랑 ― 사랑은 모든 것이고, 우리의 진정한 운명이다 ― 이라는 믿음이다. 나는 매일 명상과 기도, 묵상과 봉사, 예배와 자비로움을 통해 이 믿음을 확인한다. (121쪽)

나를 설명하는 여러 가지 말, 정체성, 아이덴티디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다. 나는, 내가 찾던 사랑을 찾았고, 그 사랑을 찾은 후에야 그 사랑이 먼저 나를 찾아왔음을 알았다. 그 사랑이 나를 먼저 찾아왔고, 나를 위해 죽었고, 나를 다시 살렸으며, 지금도 내 곁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됐다 (로마서 5장 6-10절). 이 사랑이 내게는 가장 소중한 사랑이었고, 그리고 지금도 그러하다.

나우엔은 “아무리 친구가 많고, 사랑하는 애인이 있고, 남편과 아내가 있고, 어떤 탄탄한 조직에 속해 있어도 완전한 wholeness 자아, 통일된unity 자아를 찾고 싶다는 내면의 갈증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한다”면서, 그 갈증은 우리가 고독을 기꺼이 받아들여서 자기 안에 ‘신성한 정신’이 드러나게 될 때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83쪽)

남편, 아이, 애인, 부모, 동생 그리고 친구.

날 아껴주고 지금도 변함없는 사랑과 지지를 보내주는 사람과 결혼했다. 사랑을 하고, 아이들을 낳았다. 뜨거운 사랑과 뿌듯한 사랑, 가슴 찡하고, 가슴 벅찬 사랑이 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하지만,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사랑은, 나의 진정한 첫 사랑은, 남편도 아이도, 내게서 항상 멀리 있던 그 사람도 아니다.

나의 내면의 갈증을 충족시켜주는 이는, 내 영혼을 만족케 하는 이는, 내 안에 사는 이, ‘신성한 정신’, ‘거룩한 성령’, 하나님이자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다.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는 커플들과 오랫동안 대화를 해보고 내린 결론은, 진정한 사랑의 가장 공통된 특징은 ‘무조건적’이라는 점이다.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에 대해 어떤 조건도 내걸지 않는다. 서로가 상대를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건설적으로 투쟁하고 노력하는 가운데 진정한 사랑이 꽃피는 것이다. (234쪽)

결국엔 사랑이다.

마지막은 사랑이며,

또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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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08-31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가끔은 신앙을 가진 분들이 대단하다거나 부럽다거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흠...모르겠어요.
앞일은 모르는거지만
이따위 세상에서는 제게 신에 대한 믿음이나 사랑은 불가능하게 느껴지네요.

2.따님이 너무 착한건
아무래도 단발머리님을 닮아서 그런게 아닐까요? *^^*

단발머리 2015-09-01 13:07   좋아요 0 | URL
1. 흐음.... 맞아요.
신에 대한 믿음이나 사랑을 갖고 살기 힘든 세상이예요. 그건 참 맞습니다. T.T

2. 저를 닮은 건 아닌 것 같구요. 헤헤.
강하게 키우고 싶어요. 당당한 여자로요. 그런데 조금 사근사근했으면 좋겠구요.
이거 가능한 건가요?

다락방 2015-08-31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이, 단발머리님의 바람대로, 소리지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같이 바랄게요.
잘 읽었습니다, 단발머리님. 좋은 책을 읽고 좋은 글을 써주셨어요. 뭐랄까, 고마운 마음도 들어요. 읽고 써준 것에 대해서도, 그리고 아이의 교육에 대해서도요.

단발머리 2015-09-01 13:4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뭐 이미 아시겠지만서도.
저는 이 책을 다락방님 서재에서 보고는, 나도 읽어야겠다~~ 하고서 한참 지나서 지금에서야 읽었네요.

정말 좋은 책이예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감동을 주었던 글이구요.
저는 기억력이 진짜 별로라서, 한 번 본 건 꼭~~ 잊어버리는데, 리뷰도 그렇고 다른 페이퍼에서도 다락방님이 이 책을 반복 소개해주셔서 제가 읽을 수 있었네요.

감사해요, 다락방님~~

지금행복하자 2015-08-31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년생 두 남자아이를 기르면서 큰 애. 작은 애의 개념을 심어주지 않으려고 무지 노력했었어요. 아들. 큰 아들 작은 아들 요련거 없이 항상 이름불러주고~
4
형의 의무 안 심어주려고 애썼고, 무조건 양보는 안되고~ 동생이라고도 의무. 무조건양보 이런거 없이 나름 동등한 개체로 키웠더니~~
음~~ 사춘기가 되니 집안이 ~~ ㅎㅎㅎ

어째든 좀 시끄럽기는 해도 자기목소리내고~ 엄마인 저 한테도 지지않으려고 하는걸 보면 원하는 대로 큰것도 같은데., 속으로는 쩝~~ ㅎㅎ

서운한건 서운한거고 자기 목소리내고 제 몫 다 해내는 아이로 기르는 것이 우리 부모들이 해야할 일인것 같아요~ ㅎㅎ

조이럭 클럽은 진짜 오래전에 봤었고 읽었던 책인데.. 지금 보면 좀 느낌이 다를것 같아요~

단발머리 2015-09-01 13:14   좋아요 0 | URL
무조건 양보 없이 키우는 엄마가 별로 없다고 봐요. 제 주위의 엄마들은 대부분 첫째에게 양보를 강요하더라구요. 지금 행복하자님, 정말 대단하세요.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저는 큰 아이가 딸이라는게 크게 작용했던것 같아요.
연배보다 성차이요.
그러니까, 큰애가 작은애한테 밀리는 것으로 이해했다기 보다는 누나가 남동생한테 지는 상황이 싫었어요.
지금은 많이 싸웁니다. 정말 많이 싸워요.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오늘은 새벽에도요.
자기 주장은 하되, 배려를 아는 아이로 키우는 게 제 목표이지만.... 가능한가요?
세상에 제일 어려운 일이 자식키우는 일... @@

지금행복하자 2015-09-01 14:37   좋아요 0 | URL
정말 많이 싸워요~ 심할정도로.. 부모도 몰라보고~~ㅎㅎ
아직은 자기 목소리만을 내는 시기라 더 그럴거라 생각해요~ 생각해보면 남 생각하고 주위둘러보기시작한것이 그리 오래전은 아닌것 같아요. 많이 싸우고 싸우면서 타협도 하고 포기도 하고 하면서 배려라는 걸 배우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배려를 받아보지 못했는데 배려를 할 수는 없잖아요.
배려가 인권지수에서 높은 레벨이라고 하더군요~ 그 만큼 어려운거라고~~
잘 하실거에요~ 아이들도 엄마의 마음을 충분히 알고요~~~

우리는 가장 힘든 자녀교육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ㅎㅎ 인성교육.
차라리 공부시키고 말지~~ 라는 생각 정말 많이 했어요~~ ㅎㅎ

단발머리 2015-09-07 15:18   좋아요 0 | URL
저는 요즘, 소리 지르는 걸 너무 가르쳤나 하는 생각이. ...
소리를 정말, 너무 지릅니다. 그래서, 요즘엔 예절을... 불만이 있으면 조근조근 이야기하자.
나는 소리 안 지르는데, 넌 왜 소리지는냐, 한답니다.

저도 님 생각에 동의하는데, 사랑 받아야 사랑할 수 있고, 배려 받아야 양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충분히 사랑해 주려하는데.... 아
교육 중에는 인성 교육이 제일 어렵죠.... @@

cyrus 2015-08-31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년 전에 이 책을 밑줄 그어가면서 읽었는데 공감되는 문장이 많았어요. ^^

단발머리 2015-09-01 13:16   좋아요 0 | URL
아... 역시 cyrus님의 좋은 책을 알아보는 놀라운 심미안~~~
3년 전에 읽으셨군요.
저도 이 책이 너무 좋아, 그녀의 다른 저서도 찾아볼까 하고 있어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랄까요~~~~~~~~~~~

icaru 2015-09-18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이럭클럽의 세세한 내용까지 기억하시네요 와아--..
저도 이 책을 읽고 밑줄도 긋고 했었던 것 같은데,,, 또 느낌이 달라요~ 단발머리님이 풀어내신 리뷰로 읽는 맛도 근사하고 말이죠... 분명한건.. 벨 훅스의 이 책 속에서, 스캇 팩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소개받았던듯 싶어요..오오 위에도 나와요! ㅋㅋ
첫째와 둘째 통계 내신 것 어쩌면,,딱.. 맞나요.. 체제순응적인 둘째와 구테타를 꿈꾸는 반골의 첫째 좀 한번 만나고 싶네요!!! ㅋㅋ 어디 있어 니들은..

단발머리 2015-09-22 11:19   좋아요 0 | URL
역시나~~~ icaru님은 조이럭클럽도 읽으셨군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위의 에피소드만 기억나네요.
벨 훅스의 책은 다른 책도 찾아서 읽고 있어요. 쉬우면서도 깨달음을 주는 책들이라 좋아요.

첫째, 둘째 통계 괜찮았나요? 제가 주변에서 보는 애들은 그렇더라구요.
체제순응적인 둘째는 그래도 몇 명 생각할 수 있는데, 반골의 첫째는.... 오호라....

수이 2023-12-23 19: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한테 지금 딱 맞춤인 페이퍼입니다 단발님 🥰

단발머리 2023-12-23 19:48   좋아요 2 | URL
그 사랑의 제일 큰 특징이 무조건적이라지요 ㅋㅋㅋ 무조건적 사랑🩷💕💖

수이 2023-12-23 19:56   좋아요 1 | URL
미친듯 공부하면 돼? 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12-23 20:24   좋아요 2 | URL
네 ㅋㅋㅋㅋㅋㅋ 그것이 곧 💕을 얻고 sexy해지는 길입지요 ㅋㅋㅋㅋㅋㅋㅋ

- 2023-12-23 20:27   좋아요 2 | URL
두번 사랑하면.... 곧 아인슈타인 되실 듯......... ㅋㅋㅋㅋㅋㅋ 섹시해지십시다!

수이 2023-12-23 20:51   좋아요 1 | URL
무조건적 사랑은 이번 생 한번으로 족합니다. 에너지가 후달려 두 번은🙄

단발머리 2023-12-23 21:02   좋아요 1 | URL
홀쭉해지신 근황에 후달린다는 댓글 이해도 됩니다만 ㅋㅋㅋㅋㅋ 뜨거운 화이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진 & 정진! 🔥🔥🔥

수이 2023-12-23 21:08   좋아요 1 | URL
같이 라깡 읽는 거야?

단발머리 2023-12-23 21:10   좋아요 1 | URL
지금은 그대만 읽으시는데요 ㅋㅋㅋㅋ

수이 2023-12-23 21:15   좋아요 1 | URL
전 입문서입니다. 라깡 읽자, 잼날 거 같아, 일단 입문서 먼저 읽어봐 자기야

단발머리 2023-12-23 21:17   좋아요 0 | URL
그럼 라깡 뭐를 읽자시는거에요? 수이님? 😳

수이 2023-12-23 21:23   좋아요 1 | URL
입문서 읽으면서 좀 알아보자, 쟝이랑 알아볼게